강과 어우러진 풍경은 정겨움을 자아내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쉼과 여유를 보여주는 듯하고, 멈춘 듯 흐르는 강물따라 수면에 비춰지는 정경은 한가롭기만 하다. 하늘과 산이 내려앉고 건물이나 사람의 모습까지 얼비치는 강물은 고요히 흐르면서 한 편의 시나 수필을 쓰는 듯하다. 강물을 바라보면 물결따라 마음이 흐르는 것 같고, 깊은 강이 소리 없이(深江無聲) 흐르는 것처럼 한결같이 깊어지며 소리 없이 살아가는 삶의 깊이가 강물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
경남 진주시를 관통하는 남강이 휘돌아가는 가좌산 기슭에는 마치 강물이 소리 없이 깊어진 듯한 문향이 한옥의 아취 속에서 창연하게 피어나고 있다. 강물이 쌓이고 쌓여 깊이를 얻듯이, 수많은 근현대의 서책과 시조집, 문예지, 문인들의 육필, 편지, 서화작품 등이 모이고 더해져 마치 문학의 유장한 강줄기를 이룬 듯하다. 그것도 700여년 면면히 이어진, 우리 겨레의 얼과 숨결이 오롯이 담긴 시조 장르의 다양하고 방대한 작품과 유물이 깔끔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으니, 가히 시조문학의 산실(産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전문 문학관인 ‘한국시조문학관’이다. 고려말~조선시대에 간결하게 다듬어져 성행된 고유의 정형시-시조를 새롭게 부흥하고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시조시인인 김정희 선생이 11년 전 남편과 함께 사비를 들여 건립됐다.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여 금계국이 피어나는 자연 속에 모두 한옥 4채로 구성된 한국시조문학관은, 시조의 역사와 변천·홍보·다양한 문학행사를 열면서 시조문학의 발전과 깊이를 더해가는 곳이다.
즉, 시조의 근현대의 사료적 가치를 집대성해 놓은 주시설인 시경루(詩境樓), 신라의 향가에 연원을 둔 고시조와 별곡, 무곡, 가사 등 시조의 근본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수류화개(水流花開), 진주와 경남지역의 향토문학 근대 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숙소로도 이용되는 보문산방(寶文山房) 등의 공간이 전시·열람·체험·교육·세미나 등으로 시조세계의 지평을 넓히고 전통문학을 지키고 가꿔가는 ‘한민족 시의 보고(寶庫)’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과연 빼곡하게 들어찬 시조집과 문예지를 비롯 김소월의 필적과 미당선생의 빛 바랜 편지, 엽서 등과 문인들의 시서작품을 직접 보니, 오랜 세월 자료를 모으고 보관하며 준비와 구상, 정리해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내공과 안목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문학의 종가라 할 수 있는 시조가 외래문화에 떠밀리고 일반인들에게 멀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구순이 지났음에도 시조문학의 융성에 온 힘을 쏟고 계시는 김 관장님을 직접 뵈니 경외심마저 들었다고나 할까?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이나 유럽 등지의 문화대국에는 겨레시가 있기 마련이지만, 대대로 이어온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문인들과 지자체의 몫일 것이다. 짧고도 명확한 서사구조를 가진 시조를 일상 속에서 즐겨 지으면서 현대인의 감성을 표현하고, 시조 백일장·시화전·낭송대회 등 창의적인 전환의 모색으로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를 창출하여 시조의 대중화,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