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폭죽처럼 터지듯 들끓던 민심이 4·10총선으로 표출됐다. 정권 심판론이 우세해서 야당의 압승으로 결판나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폭죽처럼 터진 승리에 도취해 자만한다거나, 참패의 충격에 빠져 낙담해서는 안 될 일이다. 열흘 붉은 꽃은 없듯이(花無十日紅), 금세 벚꽃이 진 자리마다 연둣빛 새순이 손을 내밀고 잎새들의 잔치를 준비하며 생동하는 봄날의 기운이 왕성해지고 있다.
봄꽃은 기후나 주변 여건에 따라 조금 늦게 필 수도, 한 해 또는 몇 해 건너 필 수도 있으니, 이번의 선거결과가 여야에 있어서 결코 현재나 미래 모습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듯이(陰地轉 陽地變) 세상에 영원한 것도, 영원히 머무는 것도 없다. 당락이나 성패, 행불행 따위는 끝없이 돌고 돌 뿐이다. 말이 가는데 소도 갈 수 있듯이(馬行處 牛亦去), 기회가 다시 올 때를 대비해 꾸준히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성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꽃자리를 내주면서 작은 열매가 맺히거나 잎새를 불려 나가는 나무들은, 꽃이 많이 피거나 열매를 적게 맺음에 상관없이 묵묵히 수액을 길어 올리고 광합성작용을 하며 성장의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연초록이나 담록, 진초록 빛깔로 산과 들을 물들이며 연이어 잎새를 드리우는 것은, 어쩌면 대지의 광활한 캔버스에 봄날의 신명난 붓질로 생명의 조화로움을 채색해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코 대립하거나 반목, 질시하는 일 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어울리다가 온통 잎새들의 잔치로 초록의 싱그러움을 뿜어 올리고 있다.
대화와 타협, 조정의 과정이 생명인 정치판에서도 이 같은 자연의 조화로움이 깃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의 무수한 잎새 같은 정치인들의 온갖 말이 공염불이거나 일방적이고 배타적이며 어불성설이라면 결코 초록동색의 순리적인 조화로움에 근접하지 못할 것이다.
과반을 과신하여 횡포나 전횡을 일삼고 소수에 대한 안배와 양보가 없다면 나무와 숲에서 볼 수 있는 상생과 협치의 지혜로움을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통과 신뢰, 타협과 협력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거나 민의와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한다면 급기야 자가당착에 빠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같아서 상황이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수많은 견해나 요구, 변수로 인해 돌연히 변화할 수 있기에 각종 현안에 대한 섣부른 단정이나 취사, 조율을 해나가기가 극히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견제와 균형의 열린 사고로 대화와 소통의 실마리를 찾고, 공생과 공동선의 가치를 기반으로 대의명분과 국익에 보탬이 되는 합일점을 도출하는 통찰력과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과 친화하며 서로 조화를 이루나 부화뇌동으로 편향되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야 말로 주체적인 정치를 펼치는 정치가들이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