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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번째의 장수사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등록일 2025-04-15 19:56 게재일 2025-04-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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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꽃 떨어지자 눈꽃인가. 팝콘 같은 벚꽃 잔치가 끝나기가 무섭게 강풍과 돌풍에 때아닌 4월의 폭설과 우박을 동반한 봄비라니? 사람사는 세상에 탄핵과 파면, 화마와 붕괴 같은 이변이 속출하자 하늘에서는 일진광풍의 일갈(?)로 날씨마저 변덕을 부리는가. 그래도 꽃이 진 자리마다 연두색 새 움이 실눈을 뜨고, 산과 들에는 소생의 희뿌연 기운에 연초록이 어우러지며 하루가 다르게 생동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몇 차례의 꽃이 피고지며 봄날이 깊어가는 때, 봄꽃은 산이나 들, 길거리에만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짧게 피었다가 져버리는 꽃보다 더 밝고 화사하게 오랫동안 향기롭게 피어나는 꽃이 있으니, 이른바 ‘사람 꽃’이다. 머리와 얼굴을 곱게 손질하고 분홍, 연두, 남색의 알록달록한 한복 저고리로 새단장한 모습은 그야말로 활짝 피어나는 꽃이나 다름없다. 움직이는 사람 꽃이 피워내는 웃음꽃은 얼마나 환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울까?

 

그러한 꽃같은 매무새와 얼굴 표정을 애써 카메라에 담으며 오래도록 사람 꽃을 기억하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의 갈퀴 같은 이마의 주름살이며 검버섯이나 오므라들고 쪼그라드는 얼굴의 살갗마저 순수하고 리얼하게 앵글에 담으며 시간의 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람의 얼굴에는 저마다의 희로애락이 스미고 풍진세사가 점철돼 있다. 그러한 얼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존중과 배려의 마음으로 당사자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려는 진솔한 정성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취지에서 어르신들의 인물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사진봉사단은 2019년 7월 창단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의미가 담긴 장수사진을 찍어 두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활기차게 익수(益壽)한다는 속설로 붙여진 ‘장수사진’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긍정이고 자신감이라 할 수 있다. 즉, 지금까지의 자취이자 앞으로의 존재감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남겨두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출범 이래 포항시의 읍·면지역과 동·리단위의 마을 30여곳을 골고루 찾아다니며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찍어 드린지 5년 9개월만인 지난 주 촬영누계 2,000명을 돌파했다.

 

포항시 65세 이상 인구 11만여명의 2% 남짓한 어르신들께 장수사진을 선물한 셈이다. 직장에 몸 담으면서 주말이나 개인일정을 뒤로하고 간혹 휴가까지 내면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단원들과 가족의 노력이 사뭇 가상하고 고무적이다.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쓰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을 체득하면서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소리없이 일조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작년 말 기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는 갈수록 고령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때, 경로효친의 측면에서도 ‘찾아가는 장수사진’은 주위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추억과 스토리가 배인 사진을 보면 기억력이 살아나고 뇌운동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장수사진 속에서 피어나는 웃음꽃이 여생을 환하게 비추는 등댓불이 되어 어르신들께서 편안하고 느긋하게 연년익수(延年益壽) 하시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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