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초목은 새벽부터 내리는 비에 더욱 짙어지며 싱그러움을 더해가고 있다. 지난 5월 12일부터 22일간 초단기 대선 레이스에 목놓아 외치던 지지와 호소도 암록(暗綠) 속에 잠기며 지금은 ‘갈림길의 선택’을 하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 인한 정치적 혼돈과 사회적 피로감이 고조된 국면에서 제21대 대통령을 뽑는 6·3 조기대선의 투표가 시작됐지만, 전국의 유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책임감 있는 선택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늘의 귀중한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 5년을 결정지으며 새롭게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관심이 온통 대선후보의 경쟁이나 판세 가름으로 요동칠 때, 차분하게 정중동(靜中動)의 몸짓으로 의미 있는 걸음을 옮기며 고찰과 추모, 일깨움의 움직임이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것도 여타 지역에 비해 비중이 크며 정작 실제적인 활동을 펼친 본거지에서는 그다지 부각되지 않은 존재와 그 의미를 심도 있게 되짚어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행보라 한결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겨라(事人如天)’는 가르침을 실천한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을 기리는 ‘해월문화제’가 5월 30일부터 오늘까지 포항 일원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해월 최시형을 깨우다’ 주제의 2025년 해월문화제는 (사)일월문화원의 창립 15주년 기념사업으로 해월선생의 숨결을 더듬어 동학의 정신과 자취를 재조명하는 문화축제이다. 동학 2세 교주로 포항이 길러낸 위대한 실천가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을 집중 조명·기념하여 바른 인식과 보급, 전승을 위한 문화행사로 전국적인 대규모 행사로는 처음이다. 작년 11월 ‘포항시 동학사상 계승·발전을 위한 지원 조례안’이 포항시의회에 의결된지 6개월만에 소기의 결실을 맺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해월과 일월 동행 전시회’ 개막식과 함께 시작된 해월문화제는 문화·학술·예술·탐방·순례·추모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됐다. 해월초상화 그리기 대회와 해월 어록 서예전·해월 생애와 사상· 해월 순례길 안내도·해월 도피 경로연표 등의 보기 드문 전시물들이 해월선생의 고고하고 험난한 일생과 포덕(布德)을 떠올리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도종환 시인을 초청해 ‘해월이 키운 어린이 세상’ 주제강연과 백승종 교수의 ‘21세기 동학을 묻다’와 김상백 시의원의 ‘검등골 사적지 지정’ 등에 대한 열띤 강연이 열렸다. 그리고 해월순례길(용담정↔검등골) 1~4구간 안내판 설치와 1구간 걷기·천곡사~해월 어록비~동학 16접주 임명지 답사·숲속 작은 음악회 등이 진지하고 다채롭게 펼쳐졌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지고 바람처럼 떠돌던 구도자의 아픈 이름-포항 사람, 해월선생께서 130여 년의 잠을 깨고 후대들의 늦은 일깨움과 추념의 정에 여한(餘恨)이 조금이나마 풀리셨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포항이 낳은 ‘거룩한 성자’ 해월 최시형임에도 그와 관련된 유적이나 기념물은, 포항시민의 해월선생에 대한 인지도 만큼이나 너무 빈약하다. 민간주도의 기념·추모사업은 예산과 지원에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이번 해월문화제를 계기로 해월에 대한 포항시민들의 관심과 자긍심이 높아지고 자치행정 주관의 해월문화제 인프라가 꾸준히 구축되기를 기대해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