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해진 봄의 길목에서 난데없는 산불로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지난 주말, 건조한 날씨 속에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산청과 의성, 울주 등 하룻동안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이 29건으로, 강풍을 타고 번져 나간 불길이 좀처럼 잡히질 않고 연기와 매캐함이 동해안 일대에서까지 느낄 정도였으니 심각함에 우려를 금할 길 없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이 무슨 화마의 변고란 말인가?
하늘이 온통 스모그 마냥 희뿌연 장막을 드리운 듯한 현상을 접하다 보니 초읽기에 들어간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안개정국과 뒤엉키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아 때아닌 산불의 연무로 연상됨은 필자만의 억측일까?
어쨌든 봄은 왔고 산불은 곧 진화될 것이며 베일 같은 안개는 사라질 것이다. 널뛰기하듯 잎샘추위에 3월의 폭설까지 내리다가 화마의 엄습까지 봄은 이렇게 걷잡을 수 없는 시련과 위협 속에서 오는가 보다. 나무에는 이미 물이 올랐고 꽃은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으며 새순이 앙증스럽게 돋아나는 파릇함 속에 새들은 지저귀고 온갖 생물은 생명과 성장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겨우내 찬바람을 견디며 이기려고 몸에 힘을 줬다면 이제는 나른함을 이기려고 애를 써야 될 때, 문화의 새바람으로 봄보다 부지런히 심신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곳이 있다.
그곳은 해와 달의 고장 답게 일월의 의미를 되새기며 독특한 문화적인 아이템으로 지역의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일월문화원이다. 전통문화의 전승, 보급의 사회교육과 문화유산 보호활동으로 지역민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2012년 설립된 (사)일월문화원은, 일월문화아카데미와 문화유산답사 등의 다양한 문화강좌와 문화사업 추진으로 현재까지 매년 200여 명의 회원과 수강생이 동참해 역사와 종교, 철학 등에 대한 인문학적인 소양과 의식을 함양한 문화시민을 육성하며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강의나 답사가 아닌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실질적인 문화사업 운영으로 주체적이며 지속가능한 문화발전을 담보하는 의미와 가치가 큰 문화활동이라 할 수 있다. 즉, 고품격 인문학 강의와 문화유산 방문교육·문화재 지킴이 봉사단 운영·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감성계발 문화교실 등 일련의 사업을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기획하고 펼침으로써 문화의 융성과 건실한 내일을 기약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비전과 역량으로 일월문화원은 2019년 제1회 장기유배문화축제를 주도적으로 개최했으며, 재작년에는 삼일문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설립 15주년을 맞은 일월문화원은 올해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포항에 터전을 둔 포항사람임을 부각시키며 일련의 추모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문화이며, 문화예술의 품격이 그 도시의 품격이고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우리 지역 전통문화의 발굴, 보존과 정체성을 탐구, 정립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전승으로 현대화·미래화하는 일들은 중차대한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상에서 문화를 향유하고 융합·전파시키며 문화시민 저변확대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는 일월문화원의 기여와 발돋움이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