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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무에서 실버까지 피우는 묵향

등록일 2025-03-18 18:30 게재일 2025-03-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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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은 듯 비바람과 강원 산간에 ‘봄눈 폭탄’까지 내리니 막바지 동장군의 심술(?)이 만만찮은 것 같다. 더욱이 이번 주부터는 영하권의 꽃샘추위로 남도에 피기 시작한 산수유나 홍매화가 화들짝 놀라며 가녀린 꽃잎을 짐짓 다물지 않을까 싶다. 한창 망울이 부풀어가던 벚꽃나무 가지가 찬 기온에 필 듯 말 듯 낭창거리며 개화시기를 가늠하고 있어도, 볕 바른 곳엔 이미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며 생동의 새봄을 부추기고 있다.

생동하는 봄날의 리듬을 먼저 타기라도 하듯 고사리 여린 손길에서부터 백발의 주름진 더벅손까지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갈고 붓을 잡는 모습들이 진지하게만 보인다. 사각거리며 먹이 갈리는 소리가 긴 겨울의 움츠림을 걷어내는 손끝의 기지개 같고, 붓에 먹물을 찍어 서툴지만 한 점 한 획 써내려 가는 운필(運筆)은 성글어진 마음의 밭을 일구는 쟁기질 같다. 마치 예전의 서당이나 글방처럼 지필묵(紙筆墨)을 가까이하며 은은하게 묵향을 피워가는 몸짓들이 사뭇 담담하고 새롭기만 하다.

이러한 광경은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 펼치고 있는 ‘함께하는 서예 나눔’의 테마별 재능봉사활동 장면들이다. 즉,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에서는 매월 지역의 아동센터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서예체험학습을 통한 정서순화와 감성계발에 도움을 주는 ‘찾아가는 서예교실’을 운영하는가 하면, 고령화사회를 맞아 노년기의 인지력ㆍ기억력 개선과 치매 예방 및 어르신들의 활력증진을 도모하는 ‘실버인지 서예치유’ 교육 프로그램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서예 꿈나무들의 육성에서부터 황혼기의 어르신들께 인지학습 소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니, 세대와 공간을 아우르는 활기차고 유익한 서예 재능기부활동이 아닐 수 없다.

포스코 붓글씨봉사단은 2021년 4월에 창단돼 서예재능 나눔으로 관내 취약·소외계층을 배려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재능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찾아가는 서예교실 30여 회, 포항다문화가정·탈북민가족 가훈 써주기, 사회복지시설 방문 부채작품 써주기, 포항문화원 주관 새해 가훈 써주기 등의 서예 나눔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했다. 어르신들의 말벗을 해주며 인지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이색적인 서예치유 프로그램은 올해 3월부터 실시돼 주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서예를 배움은 단지 글씨를 잘 쓰기 위해서만이 아닌, 그에 수반되는 유용한 가치와 활동으로서 심신의 건강과 의지의 단련, 심미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고도의 정신수양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먹을 갈고 먹물의 농도를 조절해서 붓글씨를 순서대로 써내려 가는 과정에는 뇌의 여러 영역이 자극되고 교감해 뇌의 활발한 활동이 이뤄진다. 한글이나 한문 글자의 의미와 필순을 떠올리며 기억력과 표현력이 좋아지고, 글자의 대소강약이나 먹물의 퍼짐, 전체적인 구도를 생각하면서 붓을 움직이면 공감각적인 능력이 살아나는 등의 효능을 기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치료나 미술치료, 웃음치료 못지않게 ‘서예 치유’가 실버세대들의 정신과 마음의 안정, 치매 예방과 건강을 유지하는 신 장르로도 주목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예 꿈나무 학생들이 붓을 잡는 것이 흥미와 설렘의 희망이라면, 실버들에게는 치유와 소일의 활력과 위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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