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문경 봉명산 출렁다리는 언제 어떤 코스로 탐방해야 할까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구간인 문경을 지날 때다. 동쪽으로 문경 시내가 내려다보이더니, 그 우측으로 이색적인 풍광 하나가 눈 안으로 쑥 들어온다. 4층 높이의 망대와 연결된 노란색 출렁다리가 건너편의 작은 봉우리와 이어졌는데, 주변의 경관과 어울린 전경이 너무나 빼어나서다. 근래에 문경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관광지는 어딜까. 아마도 봉명산 출렁다리가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미션이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에게 눈 호강을 선사하고 입소문까지 타면서 이제는 명실공히 문경의 핫플레이스이자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전국 언론 매체와 여행객이 주목한다고, 그것 하나만 보고 가기에는 무언가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이 아닌 봉명산 등산이 목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봉명산 출렁다리를 거쳐 원점회귀로 산행한다면, 약 8.5㎞의 거리에 소요 시간만 3시간 30분이 넘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자를 위해 그 대안을 제시할 차례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좋지만, 어떤 코스를 선택하고 언제 다녀오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막연하게 출렁다리만 왕복하기보다는 작은 높이의 봉우리에 축성된 마고산성을 오르고, 봉명산 오름길 첫 번째 데크전망대를 다녀온다면 하루 일정으로는 더없이 좋은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봉명산 출렁다리가 놓인 위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 산 49번지다. 주차는 문경온천이 있는 온천교 주변으로 주차할 공간이 많다. 온천교를 건너면 문경온천 조형물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봉명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나타나면서 좌측으로 오름길 데크계단이 보인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5분 정도면 완만한 지능선이 나타나면서 계단이 끝나고, 야자 매트가 깔린 탐방로가 이어진다. 70미터면 관산정 정자에 도착한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통하면, 북쪽 정면으로 문경의 명산 주흘산이 정자 기둥 사이로 들어와 마치 액자처럼 보인다. 서남쪽과 서쪽으로는 옥녀봉(636.6m), 백화산(1,603.6m), 황학산(912m), 황계산(568.7m), 잣밭산(377.3m)이 시계방향으로 병풍을 치면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척의 잣밭산은 원근감의 척도가 되고, 우측 뒤쪽으로는 멀리 조령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관산정에서 160여 미터 더 위쪽에 있다. 산봉우리에 4층 높이의 망대를 세우고 꼭대기 층에서 건너편 석화산과 동등한 높이로 연결되었다. 망대 속을 층계로 오르면 주변으로 펼쳐지는 조망도 관산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망이 훨씬 더 넓어지면서 광활해진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바라보는 망대 방향의 전경과 조망은 압권이다. 왜 봉명산 출렁다리가 이곳에 세워졌는지를 설명 대신에 풍경으로 대변해 준다. 출렁다리의 망대를 주축 점으로, 좌로부터 옥녀봉 백화산 황학산 잣밭산 등이 부챗살처럼 펼쳐지고 조령산과 주흘산까지 쭉 이어진다. 출렁다리가 놓인 석화산(石花山·274m)은 높이가 낮아서인지 표지석도 없다. 야자 매트와 나무 계단으로 형성된 내림 길을 5분 정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우측은 서울대학교병원 인재원으로 가는 내림 길이고, 직진의 오름길은 마고산성((麻姑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마고산성은 ‘증보문헌비고’에 요성(堯城)으로 나온다. 길이가 약 750m, 높이가 2~4m의 석성으로 옛날 마고할미가 앞치마에 돌을 담아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이어진다.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활용하고, 동·서·남쪽으로 산성을 쌓았다. 오늘날 하늘재로 불리는 계립령과 문경새재, 이화령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실제로는 삼국시대 때 쌓은 산성으로 추정된다. 마고산성의 최고점은 266.5m로 석화산보다 오히려 90여 미터나 더 높다. 모두가 봉명산 출렁다리의 출현을 반기지만, 상대적으로 서운함을 느끼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바로 석화산과 마고산성이다. ‘봉황이 울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봉명산(鳳鳴山·692.1m)이 없었다면, 지금쯤 출렁다리의 이름이 석화산 출렁다리 또는 마고산성 출렁다리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출렁다리가 직접 연결된 봉우리가 석화산이고, 봉명산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운 곳이 마고산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봉명산 출렁다리의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봉명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 출렁다리가 놓여있어서다. 무너진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마고산성 돌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탈출하는 탐방로가 있지만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오름길을 계속 오른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듯한 희미한 등산로를 지나 10분이면 첫 번째 데크전망대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쪽으로 너른 들판과 주흘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조령산이 좌측에 어른거린다. 이곳에서는 잠시 후에 내려가야 할 신북천이 내려다보이는 데, 강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도 조망이 된다. 올라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내려가, 오름길에 보았던 희미한 갈림길에서 우측 신북천으로 내려선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신북천의 원류는 백두대간의 하늘재로, 징검다리는 홍수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2차선 도로인 여우목로에 올라서면 도로 좌측에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길을 왼쪽으로 줄곧 따르면 탐방 시작점이었던 문경온천 주변이다. 지홍석 수필가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은 온통 꽃의 거리로 넘쳐난다. 특히 이곳 주변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언제 봉명산 출렁다리를 찾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탐방의 시작점이자 종료 지점인 문경온천의 온천수는 약간 붉고 끈끈하며 약리 성분이 풍부하다. 국내 최우수 보양 온천으로 관절염, 신경통, 고혈압, 피부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 문경약돌돼지거리가 조성되어 온천과 먹거리, 벚꽃 탐방을 한꺼번에 기획한다면 멋진 하루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걸었던 탐방로를 여유 있게 따르고 벚꽃 구경까지 겸하면, 소요 되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03-04

고군산군도 핫플레이스, 말도·보농도·명도를 가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이름하여 ‘고군산군도’다. 63개 섬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16개가 유인도다. 경관이 빼어난 유명 관광지로, 국가지질공원이기도 하다. 화산암으로 이뤄진 섬 하나하나를 다 소개하기에는 벅차다. 그래서 선별한 섬이 말도, 보농도, 명도다. 지난해 고군산군도 섬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3개의 섬으로, 2025년에도 그 여세를 몰아 가장 뜨겁게 부상되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차를 타고 장자도 선착장으로 가는 길도 화려하다. 새만금 방조대와 야미도, 신시도, 무녀도, 선유도를 거친다. 배에서 조망하는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峯)’은 또 어떤가.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고군산 8경이라 부르는데, 방축도, 명도, 말도의 12개 봉우리가 마치 무사들이 도열 한 것처럼 보여 붙여진 명칭이다. 세계 최초로 다섯 개 섬을, 4개의 순수 인도교로만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1교는 말도~보농도, 제2교는 보농도~명도, 제3교는 명도~광대섬, 제4교는 광대섬~방축도로 총연장 1,278m이다. 이와는 별도로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이들 도서에서, 힐링·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명품 트레킹 코스도 조성 중이다. 현재 미연결 구간은 제3교인 명도와 광대섬을 잇는 477m 뿐이다. 나머지 구간은 다 연결되었지만,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보농도와 명도를 연결한 다리가 준공검사가 끝난 상황에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개통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은, 그곳을 다녀와 수많은 후기를 올렸다. 그곳에는 과연 어떤 경치가 펼쳐지는지,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오전 10시 40분, 장자도항에서 명도와 말도로 가는 1항차 고군산카훼리호를 탔다. 배는 출발하면서부터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선박 우측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펼쳐지는 지척의 대장도 대장봉과 그 뒤쪽의 선유도 망주봉이 탐방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는다. 선상에서 만끽하는 전망치고는 극치에 가깝다고나 할까. 배는 10분이면 ‘관리도’에 닿는다. 해안에 곶이 많아 곶지도(串芝島)였는데, 화살을 꽂아댄다고 ‘꽃지섬’이 되었다가 한자를 음으로 읽어 다시 ‘관리도’가 되었다고 한다. 깃대봉과 투구봉을 연결하는 등산로 주변에는 바다에서 융기한 듯 솟아오른 바위벽과 기암들이 금강산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두 번째 기착지는 방축도, 관리도에서는 배로 10분 정도 걸린다. 정면으로 보이는 방축도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말도와 보농도, 명도와 광대도가 도열하고, 우측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횡경도가 바다 위에서 뱀처럼 꿈틀거린다. 파도가 강한 섬으로 독립문바위와 시루떡바위 등 기암괴석을 구경할 수 있다. 배에서 조망하는 볼거리는 방축도의 랜드마크인 독립문바위다. 장자도 항을 출발한 지 약 30 여분이면 명도다. 말도와 방축도 중간 지점에 자리하는데, 마치 달과 해가 합해져 있는 것같이 물의 맑기가 깨끗하다 하여 명도라 부른다. 선착장을 지나면 좌측으로 화장실 건물과 안내도가 보이고, 마을 안쪽으로 연결된 임도를 따른다. ‘구렁이 전설 전망대’를 지나 봉우리 하나를 더 오르면 철탑과 더불어 데크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보농도와 말도, 그리고 주탑 두 개가 세워져 있는 인도교가 그림처럼 다가와 펼쳐진다. 인도교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해벽들도 절경이다. 다리가 정식으로 개통되지 않았음인지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제외하면 부족함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0여 년 가까이 지체되고 있는 인도교의 전면 개통도 시급하지만, 용역 결과에 따라 케이블 등의 대대적인 정비나 전면 재시공에 대한 검토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무인도인 보농도는 암릉과 숲길로 이루어졌다. 자연 그대로의 등산로도 있지만 오름길과 내림 길의 대부분은 가파른 데크계단이다. 유려한 곡선이 돋보이는 말도로 연결된 제1 인도교는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다. 다리로 내려설 때와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말도로 올라서면서 뒤돌아보는 경치는 이번 탐방 최고의 절경이다. 독수리 모양의 달섬과 천연기념물인 주변의 습곡구조로 이루어진 책갈피 바위도 볼만하지만, 한꺼번에 펼쳐지는 보농도와 명도, 대장도와 선유도의 비경은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가 없다. 말도는 고군산군도의 끝에 위치해 ‘끝섬’으로도 불린다. 30여 가구가 거주하는 섬으로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큰 등대가 들어서 있어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1909년에 세워진 것으로, 등대 불빛을 발하는 등명기는 37km 거리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단도와 등대 사이의 도끼섬은 갈매기의 서식처로, 천년송이 자라고 있어 꼭 한번 가까이에서 살펴볼 만하다. 지홍석 수필가 말도와 명도로 가기 위해서는 배편 예약이 필수다.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배 시간 때문이다.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178명, 이 중에 온라인으로 150명, 현장 발권은 28명에 불과하다. 섬 탐방에 주어지는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다. 1항차로 들어가 명도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하거나, 말도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고 2항차의 말도 배시간(14:20)에 맞춰 여유 있게 빠져나오는 것이다. 명도에서 시작하는 총 트레킹 거리는 약 3.11km로, 2시간 전후가 소요된다. 꼭 섬에 내려서 탐방하지 않더라도 정기 여객선을 타고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워낙 비경이 펼쳐지는지라 충분히 그 가치를 하고도 남는다. 제2 인도교인 명도~보농도 구간은, 케이블 절단 및 뒤틀림 문제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다리의 통행이 불가하다. 2024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음알음 다녀오기도 했지만, 사전에 꼭 확인해 보고 다녀오길 권한다. 말도, 보농도, 명도, 광대도, 방축도를 연결하는 연도교와 트레일은 2025년 6월에 완성될 예정이다. 방축도에서 시작해 다섯 개 섬을 연계한다면 서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될 것은 자명하다. 명품 트레킹 코스를 겸비한 K-관광 섬 육성사업의 주요 관광자원이 되어, 고군산군도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할 수 있음을 의심치 않으며 몇 달 후를 기다린다. /수필가 지홍석

2025-02-25

볼거리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곳, 남원 교룡산성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한때 88고속도로라 불렸다. 그 광대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남원IC 인근에 있는 산으로 남원의 진산인 교룡산과 교룡산성이다. 두 개의 뿔로 형성된 산자락에는 교룡산성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안쪽은 상당히 아늑한 느낌이다. 그 한 가운데에 ‘선국사(善國寺)’라는 절이 위치한다. 교룡산성은 백제가 신라와 대적하려고 쌓았던 삼국시대의 성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고려 말에는 이성계가 왜구를 맞아 전열을 정비한 장소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서산 휴정대사의 제자이면서 호남의 승병을 이끌며 이치대첩, 독산성 전투, 행주대첩 때 맹활약한 뇌묵 처영(雷默 處英)이 교룡산성을 크게 수축(修築)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경주 용담정에서 도를 깨우치고 교룡산성으로 숨어들어 사찰의 방 하나에 8개월 동안 피신 수양하며 동학의 교리를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교룡산성으로 올라선다. 길옆에는 동학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동학성지 남원’이라 쓰인 조형물이 보인다. 가파른 길로 조금 올라서면 이내 교룡산성이다.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여러 개 감싸며 축성한 교룡산성은 그 길이가 무려 3킬로다. 산성이 번성하였을 때 우물이 99개였고, 무기고까지 있었다. 동서남북 4대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문이었던 홍예문만 남아 그 흔적을 대변하고 있다. 그 홍예문 입구 좌측에 ‘김개남 동학농민 주둔지’라는 하얀 나무말뚝이 서 있다. 동학농민군 2차 봉기 때 그는 공주로 진격하는 전봉준을 따르지 않고 청주를 향해 진격하다 패하여, 태인에서 친구 임병찬의 밀고로 체포되어 전주로 이송되었다. 대의를 잃어버린 그의 야욕이 빚은 오판 탓으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공주 우금치전투에서 패하여 2만여 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위민’이란 백성을 위하는 일이다. 평소 사람들의 목숨을 아끼고 양반들과 관리자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랬던 전봉준과는 달리 김개남은 양반들에게 엄청난 원망을 받은 두려움의 대상자였다. 그의 원래 이름은 김영주, 동학의 후천개벽을 알게 되면서 남쪽 세상을 열고 이상 사회를 건설한다는 뜻으로, 김개남(金開南)으로 고쳤다. 결단이 빠르고 과감한 추진력에, 활화산 같은 폭발성은 그의 가장 큰 매력이었으나 그것이 그의 한계이기도 했다. 권위에 대한 강한 애착과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질투와 시기심이 그 원인이었다. 고종의 지시로 내탕금을 전하러 내려온 선전관의 목을 베고, 2차 봉기 후 북상하는 도중에 남원 부사 이용헌과 그의 수행원 2명도 함께 참수했다. 고부군수 양성환은 그에게 붙잡혀 호되게 매질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열 손가락에 대못이 박히고, 소나무 서까래로 빙 둘러서 엮은 달구지 위에 태워졌다. 그러고도 불안했는지 짚둥우리를 서까래 위에 덮어씌웠다. 절대 탈출하지 못하도록 방지한 것이다. 재판 절차도 생략되었다. 붙잡힌 지 이틀 만에 한양으로 압송되던 중 목이 베어졌다. 그의 나이 42세였다. 그에 대한 양반들과 관리자들의 원한과 두려움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교룡산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홍예문은, 기역(ㄱ)자형의 옹성으로 둘러쌓았으며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이다. 외부에서 성문을 보면 외부에 쌓은 작은 옹성(甕城)으로 인해 그 입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측면은 장대석을 3단으로 쌓았고 그 위의 둥근 부분은 아홉 개의 돌을 쌓아 예술과 과학이 숨어 있는 아치형으로 맞추었다. 현재 전북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홍예문을 통과하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직도 교룡산성 안에는 민가가 몇 채가 남아 있다. 선국사로 바로 오르려다가 성의 형태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교룡산성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한다. 교룡산의 두 봉우리인 남쪽의 복덕봉(福德峯)과 주봉인 밀덕봉(密德峯)을 오르기 위해서다. 복덕봉에 오르면 발아래로 대구와 광주를 이어주는 광대고속도로와 남원 시내가 발아래로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정령치와 바래봉, 덕두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과 고남산, 만행산 등도 시원한 조망으로 구분된다. 현재 통신 탑이 세워져 있는 주봉인 밀덕봉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칠백여 미터를 돌거나, 선국사에서 삼백여 미터를 뒤쪽으로 오르면 ‘은적암’ 터다. 일명 ‘덕밀암’ 터로 불리는데 동학에서는 은적암, 불교에서는 덕밀암이라고 한다. 최제우가 수도하면서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을 집필했던 곳으로,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스님이 출가했던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장소의 의미는 어디로 가고, 현재는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작은 팻말 하나만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삼백여 미터를 더 내려서면 선국사다. 평상시는 불법을 수행하는 도량이지만 전시에는 방어진지 역할을 하며 역사의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전략적 요충지다. 지홍석 수필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다. 순조 2년에 다시 지었다는 대웅전에는 2017년 7월 13일 국가지정 보물 제1517호로 지정된 건칠아미타여래좌상(乾漆阿彌陀如來坐像)과 지방민속자료 5호로 지정된 큰 북이 보관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인장인 ‘교룡산성승장동인’은 이번 기행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선국사에서 이백여 미터를 내려서면 처음 탐방을 시작했던 홍예문과 동학공원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탐방을 시작해 시계방향으로 복덕봉과 밀덕봉, 은적암터를 지나 선국사를 두루 돌아보는데 약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남원 교룡산성은 영남지방에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 1만여 명이 산화한 성지로, 최근 만인의총(萬人義塚)을 만들어 성역화 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을 찾아들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지홍석 수필가

2025-02-18

밀양 영산정사 성보박물관, 그리고 세계 최대의 와불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일등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보다는 모든 걸 순위의 결과를 놓고 등수로서 평가하려 한다. 존재의 가치와 참 의미보다도 최초, 최고, 일등이라는 수식어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한 명함으로는 고개를 내밀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밀양 영산정사는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벗어나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발행하는 진기한 세계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에 기재된 사찰로, 세계 최대의 와불과 동종, 성보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부지만 16만7000여 평이고, 전각은 2층으로 지어진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성보박물관, 관음대불, 요사채, 석탑, 포대화상, 십이지신장, 연당, 폭포 등으로 꾸며져 있다.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밀양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영산정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번지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군사들이 훈련했던 절골(불당골)로 불리던 삼적사 자리에, 불국사와 조계사 주지를 지냈던 경우 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밀양의 가장 서쪽인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 사명대사의 힘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는 의미로 무안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자가 많은 가례리 서가정마을을 지나 사찰로 들어가는 농로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그 좌측에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받치고 있는 듯한 거대한 황금색 와불이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면 ‘영축산(靈鷲山) 영산정사(寧山精舍)’라는 표지석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사찰의 테두리 안에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영산정사와 와불은 거리로 400여 미터 떨어져 있어 탐방을 떠나기에 앞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와불 가까이 있는 주차장과 영산정사 주차장을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방문한다면 어느 곳에 주차하든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 군데를 다 돌아보아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뿐더러,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 외형적으로 영산정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대의 황금색 와불상이다. 영산정사 사찰 못미처 높은 언덕 위에 조성되었는데, 와불과 가까운 주차장에서는 약 5분 정도의 오름 길이 이어진다. 흔히 누워있는 불상을 와불이라고 하는데, 불상을 받침 하는 좌대의 길이가 120m, 불상의 길이는 82m, 높이가 21m인 거대한 불상이다. 세계 최대의 와불상답게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가 철근 콘크리트로 된 기단 부분까지 만든 상태에서 2004년경부터 갑자기 방치되었다. 자금난으로 참여한 건설사 간에 소송이 벌어져 공사 진행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2016년 1월에 공사가 재개되어 발목 부분이 건축되었으며, 2018년 3월에 와불상으로 향하는 길이 정비되었다. 2019년 초 불상의 머리와 눈 부분이 추가로 부착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22년 7월에 준공이 되었다. 와불상을 여유롭게 천천히 한바퀴 돌아본다. 내부는 아직도 개발 중으로 미완성인 듯 보인다. 와불상 앞마당에서 북쪽을 응시해 보니 파란 하늘 아래 긴 능선들이 일렁거리며 춤을 추는 듯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738.8m인 영축산이다. 창녕과 밀양의 경계에 위치하며 일명 영취산으로도 불리는데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창녕에서는 바위산, 밀양에서는 순한 육산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 산 앞쪽 자락에 세워진 사찰이 영산정사다. 와불에서 영산정사까지는 느린 걸음걸이로 대략 15분 정도다. 사찰 입구 좌측의 범종루에는 세계평화호국기원대범종이라고 불리는 무게 27톤의 세계 최대 범종이 보이고, 전방으로 보이는 7층 형상의 건물에 가장 많은 눈길이 간다. 다양한 불교 문화재가 소장된 성보박물관으로, 2012년 9월에 정식으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이다. 입구에서 2000원을 내면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 내부는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국사전에는 불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서른여섯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한글 창제에 기여하고 ‘나랏말싸미’란 영화로 제작되어 역사 왜곡이란 논란에 휩싸인 ‘신미대사’를 필두로, 시계방향으로 원효, 의상, 사명대사 등의 영정이 액자로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영정은 죽음으로서 신라 땅에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 이차돈 존자의 영정이었다. 2층에는 세계 각국 2000여 점의 불상이, 3층에는 백만과의 진신사리가, 4층에는 종이 대신 나뭇잎에 쓴 불경인 패엽경이 각각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100만의 진신사리와 팔만대장경의 원본인 ‘10만 패엽경(貝葉經)’은 세계 기네스북에 등록되어 있어 그 의미를 더했다. 영산정사는 요즘 말로 가장 많이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최대, 희귀한 유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불교문화 체험과 확산의 중심지로 거듭 태어나고 있어서다. 200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도 국사전 은밀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한다. 풍만한 얼굴에 당당한 풍채로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다. 이만큼 다 돌아보았으면 하루 일정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도 부족함이 생길 수 있다. 돌아오는 여정에 무안면 고라리를 방문하면 어떨까. 사명대사 생가터와 사명대사 유적지가 있는데, 영산정사에서는 차량으로 겨우 5분 이내의 거리다.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도록 연꽃 모양의 4층짜리 타워형 놀이시설을 만들어 호기심을 더했다. 정자와 포토존, 데크로드를 설치하는 등 산책로를 정비해 놓았다. /지홍석 수필가

2025-01-21

거제의 작은 섬, 씨릉섬과 그 주변 이야기

‘씨릉섬’이라니, 섬의 이름이 독특하다. 그런데 또 제목을 정해 글을 쓰려니 명칭 또한 애매하다. 씨릉섬은 거제도의 섬일까, 칠천도의 섬일까. 경남 남부 해상의 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한국의 섬 도시 중에서 유일한 자치 시로, 73개의 부속 섬을 거느리고 있다. 10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속섬이 바로 칠천도(七川島)다. 칠천도는 거제도의 북쪽 끝 장목면에서 서쪽에 보이는 섬이다. 일곱 개의 하천이 있다고 해서 칠천도지만, 예전에는 옻나무가 많아 이름에 옻 칠(漆) 자를 쓰기도 했다.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지난 뒤 칠천연륙교를 건너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해안 일주도로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과 칠천도 최고봉 옥녀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가 없는데, 옥녀봉 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이 바로 씨릉섬이다. 씨릉섬은 옥황상제의 딸 옥녀의 설화가 깃든 섬이다. ‘거제도 설화 전집’에 의하면 “옛날 옛적,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총명한 공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실수를 저질렀고, 공주를 너무 사랑한 옥황상제도 하늘나라의 규칙을 어길 수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딸을 거제 땅 칠천도로 쫓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딸은 지상으로 내려와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거제도 사람들은 그녀를 ‘옥녀’라고 불렀다. 오로지 하늘나라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던 공주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지쳐버렸고, 결국에는 산이 되고 말았다. 그 산이 바로 칠천도의 최고봉 옥녀봉이라고 한다. 칠천도에 머무르던 옥녀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매일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바다 건너까지 울려 퍼졌고, 그 매혹적인 선율에 용왕신이 바다에서 올라와 그녀의 거문고 반주에 맞춰 북을 쳤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광경이었던지, 옥녀의 거문고 소리에 맞춰 섬도 즐거워서 ‘씨릉씨릉’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 섬이 바로 ‘씨릉섬’이고, 용왕신이 북으로 이용한 섬이 씨릉섬 옆에 있는데, 섬의 모양이 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북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이 칠 때면 씨릉섬과 북섬은 ‘둥둥’ 북소리를 낸다고 한다.” 송포 아랫마을에서 조망하는 수야방도 인도 교와 수야방도 전경. 행정상으로 씨릉섬은 경남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 산 79번지다. 전체 면적은 7만 8985㎡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서’다. ‘무인도서’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만조 시에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땅으로서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곳을 말한다. 그 씨릉섬이 지난 7월부터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섬에 출렁다리가 놓인 것이다. 한갓지던 해변에는 떠들썩함이 하루 이틀 밀려들더니 이제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필자도 진작에 한번 찾아들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드리워지는 여름보다,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가을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처럼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겨울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씨릉섬 출렁다리는 길이 200m, 폭 2m 규모로 조성되었다. 칠천도 칠천량해전공원 해안로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씨릉섬과 연결되었다. 다리의 입구는 두 개로, 데크계단과 무장애 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길은, 교통약자를 위해 별도의 경사로를 조성해 휠체어 이용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출렁다리 넘은 씨릉섬에는, 길이 1,488m의 해안산책로와 5개의 쉼터가 있다. 섬의 입구인 정자목 쉼터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면 봉우리, 물빛, 초록바람 쉼터를 차례로 만나고, 다시 돌아 나오면서는 너울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초록바람 쉼터는 씨릉섬의 정상부를 겸했는데 푸르른 소나무 숲과 더불어 애기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왕복 거리는 3.6km, 산책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로 대부분이 나무 그늘로 조성되어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다. 씨릉섬을 한바퀴 다 돌아 나오는 길, 푸르른 소나무 숲이 돋보이는 너울 쉼터 부근에서 북섬이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애절하게 울어대던 새들의 목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옥녀의 그리움과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한 조선 수군의 아우성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일렁이는 대나무 숲과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먼 길을 달려 거제도까지 갔다면 씨릉섬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지척에 임진왜란 7년의 해전사 중 유일하게 우리 수군이 패배한 전투인 칠천량해전을 기억하기 위한 칠천량해전공원과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수야방도(垂也防島)라는 섬이 있다. 지홍석 수필가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원균의 지휘 아래 조선 수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전함 180척 중 150척이 침몰하면서 1만여 명의 병사가 숨진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을 기록한 공원이고, 수야방도는 대곡리 송포마을 아래 바닷가에 뾰족한 땅끝이 반도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섬이다. 10,036㎡의 무인도로 트레킹 길이 개설되어 있는데 도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2017년 칠천도 본섬 송포 아랫마을과 연결하는 수야방도 인도교가 가설되어, 언제나 부담 없이 다녀올 수가 있다.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 설치된 정자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가능하다. 고성의 구절산과 마산 진동면의 해안 모습, 진해의 장복산과 불모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푸른 숲을 간직한 씨릉섬이다. 오랫동안 거제의 숨은 보석 중 하나로 손꼽힌 섬이기도 하다. 가족과 연인, 어떠한 모임도 만족할 만한 부담 없는 탐방지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의 산책로는 힐링에 제격이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칠천량해전공원과 수야방도 트레킹은 여행의 아쉬운 부분들을 채울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