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일등을 좋아하는 나라가 있을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과정보다는 모든 걸 순위의 결과를 놓고 등수로서 평가하려 한다. 존재의 가치와 참 의미보다도 최초, 최고, 일등이라는 수식어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웬만한 명함으로는 고개를 내밀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밀양 영산정사는 그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벗어나 있는 것일까. 해마다 발행하는 진기한 세계 기록을 모은 기네스북에 기재된 사찰로, 세계 최대의 와불과 동종, 성보박물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찰의 부지만 16만7000여 평이고, 전각은 2층으로 지어진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 성보박물관, 관음대불, 요사채, 석탑, 포대화상, 십이지신장, 연당, 폭포 등으로 꾸며져 있다.
짧은 연혁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밀양의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는 영산정사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가례로 233번지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군사들이 훈련했던 절골(불당골)로 불리던 삼적사 자리에, 불국사와 조계사 주지를 지냈던 경우 스님이 1996년 창건했다. 밀양의 가장 서쪽인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생가터가 있는 곳, 사명대사의 힘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는 의미로 무안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정자가 많은 가례리 서가정마을을 지나 사찰로 들어가는 농로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그 좌측에 작은 산 하나를 통째로 받치고 있는 듯한 거대한 황금색 와불이 보인다. 조금 더 진행하면 ‘영축산(靈鷲山) 영산정사(寧山精舍)’라는 표지석이 나타나면서 비로소 사찰의 테두리 안에 들어섰음을 실감한다. 영산정사와 와불은 거리로 400여 미터 떨어져 있어 탐방을 떠나기에 앞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와불 가까이 있는 주차장과 영산정사 주차장을 선택할 수 있는데, 조금 여유롭게 시간을 두고 방문한다면 어느 곳에 주차하든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두 군데를 다 돌아보아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도 않을뿐더러,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힘이 많이 들지 않는다.
외형적으로 영산정사의 가장 큰 볼거리는 세계 최대의 황금색 와불상이다. 영산정사 사찰 못미처 높은 언덕 위에 조성되었는데, 와불과 가까운 주차장에서는 약 5분 정도의 오름 길이 이어진다. 흔히 누워있는 불상을 와불이라고 하는데, 불상을 받침 하는 좌대의 길이가 120m, 불상의 길이는 82m, 높이가 21m인 거대한 불상이다.
세계 최대의 와불상답게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3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가 철근 콘크리트로 된 기단 부분까지 만든 상태에서 2004년경부터 갑자기 방치되었다. 자금난으로 참여한 건설사 간에 소송이 벌어져 공사 진행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2016년 1월에 공사가 재개되어 발목 부분이 건축되었으며, 2018년 3월에 와불상으로 향하는 길이 정비되었다. 2019년 초 불상의 머리와 눈 부분이 추가로 부착되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2022년 7월에 준공이 되었다. 와불상을 여유롭게 천천히 한바퀴 돌아본다. 내부는 아직도 개발 중으로 미완성인 듯 보인다. 와불상 앞마당에서 북쪽을 응시해 보니 파란 하늘 아래 긴 능선들이 일렁거리며 춤을 추는 듯 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738.8m인 영축산이다. 창녕과 밀양의 경계에 위치하며 일명 영취산으로도 불리는데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창녕에서는 바위산, 밀양에서는 순한 육산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 산 앞쪽 자락에 세워진 사찰이 영산정사다.
와불에서 영산정사까지는 느린 걸음걸이로 대략 15분 정도다. 사찰 입구 좌측의 범종루에는 세계평화호국기원대범종이라고 불리는 무게 27톤의 세계 최대 범종이 보이고, 전방으로 보이는 7층 형상의 건물에 가장 많은 눈길이 간다. 다양한 불교 문화재가 소장된 성보박물관으로, 2012년 9월에 정식으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이다.
입구에서 2000원을 내면 입장할 수 있는 박물관 내부는 4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 국사전에는 불교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서른여섯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한글 창제에 기여하고 ‘나랏말싸미’란 영화로 제작되어 역사 왜곡이란 논란에 휩싸인 ‘신미대사’를 필두로, 시계방향으로 원효, 의상, 사명대사 등의 영정이 액자로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영정은 죽음으로서 신라 땅에 불교를 받아들이게 한 이차돈 존자의 영정이었다. 2층에는 세계 각국 2000여 점의 불상이, 3층에는 백만과의 진신사리가, 4층에는 종이 대신 나뭇잎에 쓴 불경인 패엽경이 각각 전시되어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100만의 진신사리와 팔만대장경의 원본인 ‘10만 패엽경(貝葉經)’은 세계 기네스북에 등록되어 있어 그 의미를 더했다. 영산정사는 요즘 말로 가장 많이 뜨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그 이유는 세계 최고, 최대, 희귀한 유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 불교문화 체험과 확산의 중심지로 거듭 태어나고 있어서다. 200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도 국사전 은밀한 곳에 보관되어 있으니 꼭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한다. 풍만한 얼굴에 당당한 풍채로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왼손에는 약함을 들고 있다.
이만큼 다 돌아보았으면 하루 일정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도 부족함이 생길 수 있다. 돌아오는 여정에 무안면 고라리를 방문하면 어떨까. 사명대사 생가터와 사명대사 유적지가 있는데, 영산정사에서는 차량으로 겨우 5분 이내의 거리다.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이 찾도록 연꽃 모양의 4층짜리 타워형 놀이시설을 만들어 호기심을 더했다. 정자와 포토존, 데크로드를 설치하는 등 산책로를 정비해 놓았다. /지홍석 수필가
2025-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