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릉섬’이라니, 섬의 이름이 독특하다. 그런데 또 제목을 정해 글을 쓰려니 명칭 또한 애매하다. 씨릉섬은 거제도의 섬일까, 칠천도의 섬일까.
경남 남부 해상의 거제도는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한국의 섬 도시 중에서 유일한 자치 시로, 73개의 부속 섬을 거느리고 있다. 10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가장 큰 부속섬이 바로 칠천도(七川島)다.
칠천도는 거제도의 북쪽 끝 장목면에서 서쪽에 보이는 섬이다. 일곱 개의 하천이 있다고 해서 칠천도지만, 예전에는 옻나무가 많아 이름에 옻 칠(漆) 자를 쓰기도 했다.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지난 뒤 칠천연륙교를 건너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해안 일주도로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과 칠천도 최고봉 옥녀봉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가 없는데, 옥녀봉 남쪽 1,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섬이 바로 씨릉섬이다.
씨릉섬은 옥황상제의 딸 옥녀의 설화가 깃든 섬이다. ‘거제도 설화 전집’에 의하면 “옛날 옛적, 하늘나라 옥황상제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아주 아름답고 총명한 공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실수를 저질렀고, 공주를 너무 사랑한 옥황상제도 하늘나라의 규칙을 어길 수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딸을 거제 땅 칠천도로 쫓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딸은 지상으로 내려와 외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거제도 사람들은 그녀를 ‘옥녀’라고 불렀다. 오로지 하늘나라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던 공주는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지쳐버렸고, 결국에는 산이 되고 말았다. 그 산이 바로 칠천도의 최고봉 옥녀봉이라고 한다.
칠천도에 머무르던 옥녀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매일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아름다운 음악 소리는 바다 건너까지 울려 퍼졌고, 그 매혹적인 선율에 용왕신이 바다에서 올라와 그녀의 거문고 반주에 맞춰 북을 쳤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광경이었던지, 옥녀의 거문고 소리에 맞춰 섬도 즐거워서 ‘씨릉씨릉’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 섬이 바로 ‘씨릉섬’이고, 용왕신이 북으로 이용한 섬이 씨릉섬 옆에 있는데, 섬의 모양이 북처럼 생겼다고 해서 ‘북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이 칠 때면 씨릉섬과 북섬은 ‘둥둥’ 북소리를 낸다고 한다.”
행정상으로 씨릉섬은 경남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 산 79번지다. 전체 면적은 7만 8985㎡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서’다. ‘무인도서’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만조 시에 해수면 위로 드러나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땅으로서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곳을 말한다.
그 씨릉섬이 지난 7월부터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섬에 출렁다리가 놓인 것이다. 한갓지던 해변에는 떠들썩함이 하루 이틀 밀려들더니 이제는 일상이 되고 말았다. 필자도 진작에 한번 찾아들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꽃 피는 봄보다, 녹음이 드리워지는 여름보다,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가을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처럼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겨울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씨릉섬 출렁다리는 길이 200m, 폭 2m 규모로 조성되었다. 칠천도 칠천량해전공원 해안로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씨릉섬과 연결되었다. 다리의 입구는 두 개로, 데크계단과 무장애 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길은, 교통약자를 위해 별도의 경사로를 조성해 휠체어 이용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출렁다리 넘은 씨릉섬에는, 길이 1,488m의 해안산책로와 5개의 쉼터가 있다. 섬의 입구인 정자목 쉼터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면 봉우리, 물빛, 초록바람 쉼터를 차례로 만나고, 다시 돌아 나오면서는 너울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초록바람 쉼터는 씨릉섬의 정상부를 겸했는데 푸르른 소나무 숲과 더불어 애기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왕복 거리는 3.6km, 산책 소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로 대부분이 나무 그늘로 조성되어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다.
씨릉섬을 한바퀴 다 돌아 나오는 길, 푸르른 소나무 숲이 돋보이는 너울 쉼터 부근에서 북섬이 보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애절하게 울어대던 새들의 목소리가 잊히질 않는다.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옥녀의 그리움과 칠천량해전에서 참패한 조선 수군의 아우성이 나도 모르게 떠올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일렁이는 대나무 숲과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먼 길을 달려 거제도까지 갔다면 씨릉섬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 지척에 임진왜란 7년의 해전사 중 유일하게 우리 수군이 패배한 전투인 칠천량해전을 기억하기 위한 칠천량해전공원과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수야방도(垂也防島)라는 섬이 있다.
칠천량해전은 1597년 7월 원균의 지휘 아래 조선 수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가 전함 180척 중 150척이 침몰하면서 1만여 명의 병사가 숨진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을 기록한 공원이고, 수야방도는 대곡리 송포마을 아래 바닷가에 뾰족한 땅끝이 반도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섬이다.
10,036㎡의 무인도로 트레킹 길이 개설되어 있는데 도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2017년 칠천도 본섬 송포 아랫마을과 연결하는 수야방도 인도교가 가설되어, 언제나 부담 없이 다녀올 수가 있다.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는 데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 설치된 정자에 오르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가능하다. 고성의 구절산과 마산 진동면의 해안 모습, 진해의 장복산과 불모산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푸른 숲을 간직한 씨릉섬이다. 오랫동안 거제의 숨은 보석 중 하나로 손꼽힌 섬이기도 하다. 가족과 연인, 어떠한 모임도 만족할 만한 부담 없는 탐방지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의 산책로는 힐링에 제격이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칠천량해전공원과 수야방도 트레킹은 여행의 아쉬운 부분들을 채울 수 있는 마지막 퍼즐이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