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석의 한국테마기행
중부내륙고속도로 상행선 구간인 문경을 지날 때다. 동쪽으로 문경 시내가 내려다보이더니, 그 우측으로 이색적인 풍광 하나가 눈 안으로 쑥 들어온다. 4층 높이의 망대와 연결된 노란색 출렁다리가 건너편의 작은 봉우리와 이어졌는데, 주변의 경관과 어울린 전경이 너무나 빼어나서다.
근래에 문경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관광지는 어딜까. 아마도 봉명산 출렁다리가 아닐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미션이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에게 눈 호강을 선사하고 입소문까지 타면서 이제는 명실공히 문경의 핫플레이스이자 랜드마크로 부상되었다.
그러나 전국 언론 매체와 여행객이 주목한다고, 그것 하나만 보고 가기에는 무언가 조금 아쉽다. 그렇지만 여행이 아닌 봉명산 등산이 목적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봉명산 출렁다리를 거쳐 원점회귀로 산행한다면, 약 8.5㎞의 거리에 소요 시간만 3시간 30분이 넘기 때문이다.
이제 여행자를 위해 그 대안을 제시할 차례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좋지만, 어떤 코스를 선택하고 언제 다녀오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막연하게 출렁다리만 왕복하기보다는 작은 높이의 봉우리에 축성된 마고산성을 오르고, 봉명산 오름길 첫 번째 데크전망대를 다녀온다면 하루 일정으로는 더없이 좋은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봉명산 출렁다리가 놓인 위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 마원리 산 49번지다. 주차는 문경온천이 있는 온천교 주변으로 주차할 공간이 많다. 온천교를 건너면 문경온천 조형물이 보이고 그 뒤쪽으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봉명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나타나면서 좌측으로 오름길 데크계단이 보인다. 경사가 조금 있지만, 한걸음 옮길 때마다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5분 정도면 완만한 지능선이 나타나면서 계단이 끝나고, 야자 매트가 깔린 탐방로가 이어진다. 70미터면 관산정 정자에 도착한다. 대리석으로 된 계단을 통하면, 북쪽 정면으로 문경의 명산 주흘산이 정자 기둥 사이로 들어와 마치 액자처럼 보인다. 서남쪽과 서쪽으로는 옥녀봉(636.6m), 백화산(1,603.6m), 황학산(912m), 황계산(568.7m), 잣밭산(377.3m)이 시계방향으로 병풍을 치면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지척의 잣밭산은 원근감의 척도가 되고, 우측 뒤쪽으로는 멀리 조령산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봉명산 출렁다리는 관산정에서 160여 미터 더 위쪽에 있다. 산봉우리에 4층 높이의 망대를 세우고 꼭대기 층에서 건너편 석화산과 동등한 높이로 연결되었다. 망대 속을 층계로 오르면 주변으로 펼쳐지는 조망도 관산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망이 훨씬 더 넓어지면서 광활해진다.
출렁다리를 건너서 바라보는 망대 방향의 전경과 조망은 압권이다. 왜 봉명산 출렁다리가 이곳에 세워졌는지를 설명 대신에 풍경으로 대변해 준다. 출렁다리의 망대를 주축 점으로, 좌로부터 옥녀봉 백화산 황학산 잣밭산 등이 부챗살처럼 펼쳐지고 조령산과 주흘산까지 쭉 이어진다.
출렁다리가 놓인 석화산(石花山·274m)은 높이가 낮아서인지 표지석도 없다. 야자 매트와 나무 계단으로 형성된 내림 길을 5분 정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우측은 서울대학교병원 인재원으로 가는 내림 길이고, 직진의 오름길은 마고산성((麻姑山城)으로 오르는 길이다.
마고산성은 ‘증보문헌비고’에 요성(堯城)으로 나온다. 길이가 약 750m, 높이가 2~4m의 석성으로 옛날 마고할미가 앞치마에 돌을 담아 하룻밤에 쌓았다는 전설이 이어진다. 북쪽은 가파른 절벽을 활용하고, 동·서·남쪽으로 산성을 쌓았다. 오늘날 하늘재로 불리는 계립령과 문경새재, 이화령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실제로는 삼국시대 때 쌓은 산성으로 추정된다. 마고산성의 최고점은 266.5m로 석화산보다 오히려 90여 미터나 더 높다.
모두가 봉명산 출렁다리의 출현을 반기지만, 상대적으로 서운함을 느끼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바로 석화산과 마고산성이다. ‘봉황이 울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봉명산(鳳鳴山·692.1m)이 없었다면, 지금쯤 출렁다리의 이름이 석화산 출렁다리 또는 마고산성 출렁다리로 불렸을지도 모른다. 출렁다리가 직접 연결된 봉우리가 석화산이고, 봉명산보다 지리적으로 훨씬 더 가까운 곳이 마고산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봉명산 출렁다리의 이름이 잘못 지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봉명산으로 가는 등산로 입구에 출렁다리가 놓여있어서다.
무너진 돌무더기처럼 보이는 마고산성 돌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안부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탈출하는 탐방로가 있지만 완만한 능선으로 이어진 오름길을 계속 오른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듯한 희미한 등산로를 지나 10분이면 첫 번째 데크전망대다.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뒤쪽으로 너른 들판과 주흘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조령산이 좌측에 어른거린다. 이곳에서는 잠시 후에 내려가야 할 신북천이 내려다보이는 데, 강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도 조망이 된다.
올라왔던 길을 잠시 되돌아 내려가, 오름길에 보았던 희미한 갈림길에서 우측 신북천으로 내려선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신북천의 원류는 백두대간의 하늘재로, 징검다리는 홍수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2차선 도로인 여우목로에 올라서면 도로 좌측에 데크로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 길을 왼쪽으로 줄곧 따르면 탐방 시작점이었던 문경온천 주변이다.
벚꽃이 만개하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은 온통 꽃의 거리로 넘쳐난다. 특히 이곳 주변은 벚꽃이 터널을 이루어, 언제 봉명산 출렁다리를 찾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탐방의 시작점이자 종료 지점인 문경온천의 온천수는 약간 붉고 끈끈하며 약리 성분이 풍부하다.
국내 최우수 보양 온천으로 관절염, 신경통, 고혈압, 피부병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 문경약돌돼지거리가 조성되어 온천과 먹거리, 벚꽃 탐방을 한꺼번에 기획한다면 멋진 하루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걸었던 탐방로를 여유 있게 따르고 벚꽃 구경까지 겸하면, 소요 되는 시간은 약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지홍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