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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책 읽는 여자

책이 없었다면 여성들의 삶이 어땠을까요? 역사 이래 억눌렸던 여성 삶의 진일보를 그나마 담보할 수 있었던 것은 독서의 힘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가정에 독일 작가 슈테판 볼만이 명쾌한 답을 선사합니다. 작가는 우선, 한 때 여성의 독서가 지극히 위태로운 것으로 취급받던 시대가 있었음을 고찰합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선언한 시대가 있었음을 책 제목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근대 이전의 유럽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 그랬습니다. 세상에 대한 대범한 호기심을 갖는 일, 여성들에게 그것은 심히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고급한’ 사회는 남성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넘쳐나던 시대였지요.작가는 유럽의 명화 속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책 읽는 여자들을 불러냅니다. 동시대 밖으로 여성은 하녀이거나 안주인이거나 후작부인이거나 아주 가끔은 왕비이기도 합니다. 그림 속 여자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지요. 신분에 관계없이, 책을 가까이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들은 불온한 여자의 혐의가 짙었습니다. 남성의 거울로 비추어볼 때 그 시대 여성의 독서는 백해무익한 것이었으니까요. 세상을 지배하고 호령하는 것은 남성 고유의 영역인데, 더 많은 유익한 것을 여성과 공유하는 것은 피곤한 일에 속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책 따위와는 여성이 멀리 있기를 바랐을 테지요.이것을 눈치 챈 여성들은 그들만의 독서 장소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나기를 바라고, 읽을거리만 있다면 전장에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하녀의 책읽기부터 볼까요. 장소라면 볕 잘 드는 다락방이 제격일 것입니다. 감질 나는 중세시대의 로맨스, 그 뒷장을 위해 그녀는 어서 빨리 주인이 집을 비우고 먼 길을 떠나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주인의 실내화도, 씻어야 할 물주전자도 읽어야 할 책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불온한 독서의 자유야말로 달콤한 휴식의 절정이 아니겠어요. 귀부인은 어땠을까요. 침실이 그녀의 독서실이 되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겠지요. 높은 신분과 관계없이 여전히 여성에게 세속적이고도 낭만적인 내용의 책 읽기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방해꾼 없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근육을 한껏 이완한 채 그녀들은 독서가 주는 신세계의 광풍 속으로 빨려들 수 있었습니다. 공간적 은밀함이 책읽기의 나른하고도 무한한 상상에 보탬이 되었겠지요.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소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소수 엘리트 남성들이 지배하는 사회였지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지구촌에 팽배했습니다. 종교 서적을 제외하고는 여자가 독서를 한다는 것은 ‘천성’을 거스르는 행위였습니다. 이런 생각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자신만의 규방으로 내몰린 채, 여성들은 책의 향연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왜 초대받지 못했는지 알 겨를도 없이 그저 다락으로 침실로 창고로 내몰렸던 것이지요. 그곳에서 세상을 읽고 낭만적 유희를 꿈꿨습니다. 남성들이 볼 때 그것은 불온한 자각이었고, 음탕한 유희였지요. 정보를 여성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그들 눈에는 용서하기 힘든 광경이었지요.그 시대로 돌아가 책 읽는 여자들 곁에 머물러 봅니다. 저 불온한 자유주의자들 저마다 가슴 속에 화약고 한 보따리씩을 안고 살았을 것이에요. 여성에게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구와 드넓은 우주 질서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요. 멀리 나갈 것도 없습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 쾌락마저도 공유하지 못한 세상이었다니요.용감하게도 억누를수록 여성들은 유쾌한 고립행위 속으로 빠져들어갔지요. 남성이 전하는 말씀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독서야말로 세상과 소통하는 막힘없는 통풍구라는 것을 안 이상 물러설 수는 없지 않았겠어요. 숨어서 책 읽던 그 여자들이야말로 페미니스트의 원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당연하게도 이제 여성에게 독서는 더 이상 위험한 것이 아닌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책 권하는 사회가 되었지요. 책 때문에 불온해진 만큼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진다면 그 보다 나은 독서의 진가가 어디 있을까요. 덜 불온한 여성일수록 더 상처받습니다. 상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에서 힘과 위안을 얻는다면 이 또한 독서의 효용이 아니겠어요. 과감하고 은밀한 독서일수록 그 파장은 큽니다. 책 읽기 좋은 나날, 과도한 휴머니즘이나 뻔한 교훈서, 오그라드는 미담 수준에서 벗어나 불온한 독서광이 되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상처 입은 영혼들이여, 유쾌한 고립의 여정을 떠납시다. 책 읽는 것이야말로 불온해서 종내는 매혹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니까요.끝

2020-12-30

비춰 보기

아침마다 돈나무 화분을 들여다봅니다. 부자 되라고 집들이 선물로 지인이 놓고 간 것이지요. 덕담 달린 그 나무를 누군들 싫어할까만, 아침마다 돈나무를 관찰하는 건 부자 되라는 그 덕담 때문만은 아닙니다. 하루살이 버섯 때문입니다.어느 날 선잠을 깨 화분에 물을 주려는데 신기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흙더미를 뚫고 작고 흰 버섯 한 송이가 우뚝 솟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독야청청 고매한 소나무처럼 이끼를 뚫고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요. 분명 간밤에는 뵈지 않던 것이었지요. 시쳇말로 하루만에 ‘갑툭튀’한 생명의 신비라니요. 비록 작고 앙증맞은 식물이지만 하룻밤 새 성체로 자라 꽃피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혹 잘못 본 건가 싶어 녀석의 하루를 관찰했습니다. 이른 아침엔 종 모양으로 팽팽하더니 조금 있으니 우산모양으로 제 머리를 부풀렸습니다. 변화무쌍한 그 기개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눈치 채지 못할 사이에 이끼를 뚫고 나와 온 낮을 새침한 원맨쇼로 장식하는 녀석을 보니 호기심 대신 의구심이 싹트지 뭡니까. 독버섯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자신의 별을 위협하는 바오밥나무 어린순을 뽑아야 하는 어린왕자의 심정이 되어 녀석을 퇴치해버려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하지만 돈나무와 공생하는 독버섯 콘셉트도 괜찮아보였습니다. 좀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부자로 키워줄 돈나무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독버섯이란 이름 정도와 더불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한데 웬 일입니까. 볼일을 보고 저녁에 귀가하니 버섯이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낮에 분명히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버섯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뵈질 않던 녀석이, 원래 있던 반대쪽 이끼 위에서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습니다. 잡초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뽑아버렸나 싶어 물었더니 자신은 모르는 일이랍니다.그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새로이 피었다가 사라지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오늘 피어난 버섯이 죽고 나면 그 옆에 새로운 놈이 내일 돋아나는 식이었습니다. 그제야 이 버섯의 생애가 궁금했습니다. 뒤늦게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녀석 생애의 비밀은 그리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살이 개체였습니다. 밤새 이끼 밑에서 뿌리를 만들고 조금씩 몸피를 밀어내, 아침이면 팽팽하게 부풀다가 한낮이 오기 전에 활짝 피어납니다. 해가 강렬해지면 서서히 지다가 저녁이면 저 먼 우주를 향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 버섯이었던 거지요. 물기 많은 화분에 잘 피었다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녀석처럼 하루살이 개체 버섯이 더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분명 예쁜 이름도 있을 터인데 살뜰히 찾아 봤지만 끝내 버섯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망태말뚝버섯의 경우도 그렇다는데 제가 본 버섯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하얗고 소담스런 그 버섯이름을 몰라 제 맘대로 ‘하루살이 버섯’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나절을 살다 저녁이 오기 전에 제 삶을 마감하니 ‘한나절살이’ 버섯이라고 해야 옳을까요.돈나무에 기생하는 하루살이 버섯. 아무 의미 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러 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독버섯이든 이로운 버섯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룻길 사념들로 균형을 잃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의미로 그 작은 생명체가 눈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마다 생기는 허욕, 때때로 얽히는 오해, 시간 단위로 붙는 게으름 등등을 제때 살피라고 은유적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한나절이라는 짧은 생을 마디고 알차게 살다가는 녀석들. 그에 비하자면 영겁에 가까운 인생 주기이니 자신들보다는 느긋하고 차분하게, 인간답게 살다 가라고 깨쳐주기 위해 제 곁에 온 것 같습니다. 즐기되 허비하지 말고, 열정을 가지되 헐레벌떡 쫓기지 말 것이며, 섞이되 아웅다웅 하지 말라고 몸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명랑한 감성으로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라고 녀석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삶의 기본 가치 이를 테면 성실할 것, 최선을 다할 것, 배려할 것 등등에 대해 생각합니다. 제 하루가 근심으로 얼룩지는 건 이런 선(善)의 기준에서 자신을 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가만 보면 오늘 하루도 만족함이 없이 보냈습니다. 늦잠으로 시간을 축냈고, 저녁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도 무너뜨렸습니다. 가족이나 타인에 대한 마음 씀도 부족했습니다. 후회와 번민은 큰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데서 생깁니다. 하루살이 버섯만큼 짧은 생의 주기에도 최선을 다하는데, 사람살이라는 맞춤한 생의 주기가 주어졌는데도 하루살이 버섯보다도 못한 시간을 꾸려서야 될는지. 하루살이 버섯이라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비춰보는 저녁입니다.

2020-12-23

무겁고도 가벼운 삶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 형식을 빌려왔을 뿐 철학 에세이로 봐도 무방합니다. 쿤데라식 소설 문법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는 한없이 꼬리 무는 철학적 연상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스토리텔링에 충실하고, 독자는 그것을 자기 식으로 해석할 때 안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그런 소설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소설 문법과는 다른 그 방식은 지나치게 독자의 사유를 간섭하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과도한 풀이와 친절로 작가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맛에 매혹을 느껴 확고한 독자들이 모여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사비나와 프란츠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인 토마스와 테레사보다 훨씬 공감 가는 캐릭터입니다. 그들 역시 토마스나 테레사 못지않은 각각 가벼움과 무거움의 상징이지요. 제목처럼 이 소설은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무거움’도 그만큼 언급됩니다.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우연과 운명의 소산물로 기능합니다. 서로 동경하거나 파행하는 상호 관계적 성격을 띱니다.엄숙주의를 경멸하는 사비나의 삶은 한없이 가볍습니다. 데모대의 행진 대열에 끼는 삶이 그녀의 현실입니다. 그러면서도 공산주의와 민주화 운동 모두에 냉소적입니다. 반면, 유럽표 샌님인 프란츠는 서재에서 고뇌할 때 가장 현실적이지요. 책상물림 프란츠 눈에는 운동, 혁명, 행진 등 모두가 순수한 열정으로 비칩니다. 모험과는 거리가 먼 그에게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사비나야말로 꿈의 세계이지요. 사비나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때 배반을 택하고 새로운 자유를 찾는 게 사비나식 삶이구요.사심 없이 가벼운 사비나의 눈에는 삶 이면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너무 잘 보입니다. 배반이 어울리는 사비나는 입버릇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투덜거립니다. 사비나가 얻은 결론은 부조리한 키치적 삶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진실하다는 것이지요.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은 그 자체가 우연이며, 영원회귀로의 그 행진이야말로 인간사의 영원한 숙제라고 보는 것이지요.키치(Kitsch)는 한마디로 ‘저속함’을 말합니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 이후 그것은 ‘삶을 바라보는 가짜의 태도’로까지 영역을 확대합니다. 쿤데라 식으로 이해하자면 키치는 싸구려 잣대로 공감대를 유도하는 유치한 놀음이자, 우연하고 당위적인 실체를 위선적인 미적 가치로 환원시키려는 모든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카레닌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습니다. 카레닌은 테레사가 키우는 개입니다. 토마스와 처음 만날 때 들고 있던 책이 안나 카레니나였는데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못 가본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있습니다. 제 경우 그것은 동물을 키우는 것에 관한 것인데,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을 상상하면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는 듯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그야말로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을 돌보기엔 성정이 게으른데다, 비염이니 알레르기 체질이니 하는 핑계마저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평생 함께하지 못할 그들에게 마음만은 함께 할 때가 많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카레닌으로 대표되는 개의 사랑은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애초에 뭔지 모르고 사랑을 합니다. 계산 따위나 기브앤테이크가 없는 절대적 그 무엇이지요. 괴롭히지도 않으며,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기대조차 없습니다. 저울질도 탐색도 없으며 파괴와 집착과도 거리가 멉니다. 거기 그대로 변함없이 있을 뿐이지요. 가변하는 인간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압니다. 그리하여 이 불변하는 개에게 해줄 수 있는 위대한 축복은 안락사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믿음이 보장되지 않는 인간끼리는 할 수 없는 최대의 선물인 카레닌의 안락사. 죽음으로써 시퍼렇게 살아있는 카레닌의 순정을 목도하는 것은 이 소설의 덤이구요.테레사의 사랑은 의심하는 순정이고, 욕망하는 관계이며, 질척이는 무거움입니다. 이 모든 원인 제공자는 바람둥이 남편 토마스이지요. 하지만 그 누군들 무거움의 껍질을 벗고, 세파에 스스로를 가볍게 내던지는 그를 원망할 수 있을까요. 사랑의 과정에 치졸함과 실패가 따르는 건 인간사 가벼움에 어쩔 수 없는 항목 아니던가요. 이 또한 영원 회귀이자 불변진리이지요. 이런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는 상징적 의미로 카레닌을 등장시킨 것 아닐까요. 끝까지 무거움과 가벼움의 숙제로 독자를 고급한 심란 속으로 몰아가지요.거대한 돛 달린, 무거움과 가벼움이 출렁거리는 삶의 요트에 오르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감행해야 할 영원회귀의 목록 중 하나겠지요.

2020-12-16

알바트로스를 읽는 밤

과학사에 코페르니쿠스적 사고 전환이 있었다면 제 개인사엔 ‘알바트로스적’ 사고 전환이 있었습니다. 알바트로스적 사고 전환, 이 말은 제가 지어냈습니다. 스무 살 시절, 어리바리한 저에 비해 독서로 무장한 후배는 통렬한 통찰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였지요. 격조 섞인 시니컬함이 그녀의 무기이자 매력이었지요. 그녀는 랭보와 보들레르와 말라르메 등 프랑스 시인을 좋아했는데, 치기로서의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 그런 시인들의 성향을 좇았습니다. 세속적인 근성과는 먼 보들레르처럼 그녀가 가장 못 견뎌 한 것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일상이었습니다. 대신 고매한 정신력으로 피로한 지적 노동자를 자처했지요.눈치 보지 않고, 주눅 들지 않고 개별자로서 그 어떤 사고로부터 자유롭고자 했습니다. 자신 외에는 무관심하다시피 한 자유로운 행보, 그것은 타자를 먼저 자유케 함으로써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시선을 타자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내 자유를 헌납할 테니, 네 자유도 속박해라,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그녀를 만나기 전 제게 세상은 무조건 아름답고, 선하고, 맑고, 명랑하고, 소박한 것이어야 온당했습니다. 추하고, 악하고, 흐리고, 어둡고, 화려한 것은 경계해야 할 그 무엇인 줄 알았더랬지요. 이유 불문하고, 타자를 의식하는 자로서 지닐 수 있는 당위의 사고틀이었지요. 이런 제 내면의 빈곤과 약점을 포착한 그녀의 눈썰미가 불편하면서도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평범한 학생들에 비해 온 우주를 꿰뚫는 듯한 그 눈빛이 저는 좋았습니다. 세계관의 확장 유무와는 상관없이 어느덧 제 사고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녀와의 교류 덕분이었지요.남다르게 앞서가는 존재는 외롭고 고독하기 마련입니다.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를 읽던 그녀를 떠올립니다. 거대한 알바트로스는 선원들에게 잡힌 신세입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습니다. 성치 못한 몸으로 그 큰 날개를 질질 끌며 선원들의 담뱃불에 부리 지짐을 당하는 수모를 겪습니다. 홀로 우뚝한 영혼인 알바트로스는 평범한 선원들 앞에서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보들레르는 알바트로스적 상황을 엮어 자신의 처지를 시적 은유로 치환했습니다. 천상의 생각을 지닌 영혼들이 지상으로 내몰리면 알아서 개척자가 됩니다. 제 눈에는 알바트로스를 읽는 그녀야말로 보들레르의 화신이었습니다. 우뚝한 새가 평범함의 지상에 유배당했을 때 겪게 되는 가혹함. 그녀는 정말이지 제 정신의 웃자람을 알바트로스 새가 된 것처럼 것처럼 태연히 즐겼습니다. 선원들을 둘러싼 방관자 어디쯤에 위치한, 깜냥도 되지 않은 저는 마냥 그녀가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녀 인생관을 지배한 한 가지 철학은 언제나 단독자로서의 우뚝한 자아에 닿아 있었습니다.위대한 철학자의 큰 업적도 알고 보면 작은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사유는 디테일한 경험의 집적물이지요. 남들 눈에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체험이 한 사람의 인생관을 형성합니다. 좀 더 지난 뒤 그녀의 그런 사유체계가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 인식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철학자들이 존재나 의식 등, 자기 안의 문제들에 몰두했다면 현대철학자 레비나스는 특별하게도 그 관심을 ‘타자’에게로 확장시켰습니다. 집단적이고 전체적인 사유에 반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라면 레비나스 식 타자의 철학에 공감할 것이에요. 그에 따르면 ‘나와 같을 수 없는 절대적인 타자가 있다.’라는 걸 인정하는 것입니다. 타자 존재에 대한 이런 확고한 인정(認定)이자 책임감이 곧 자아 주체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스스로 자유로워지려는 자는 타자부터 자유케 합니다. 획일성이란 성에서 탈출하려면 자신만 족쇄를 자른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타자의 수갑부터 풀어주는 게 우선이지요. 문제가 되는 건 언제나 타자는 그 수갑을 풀 의지나 마음이 없을 때지요. 타자는 결코 내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어떤 영향권 아래 두고 조종하고자 할 때 강요된 이데올로기가 생기는 것이지요. 저만치 나아가는 개인의 뒤꿈치를 당겨 집합적 타원 안으로 밀어 넣는 일, 그 안에서 길들여진 풍요를 예감하는 것만이 온당한 줄 알았던 제게 후배와의 교류는 알바트로스적 사고의 전환을 거쳐 레비나스 식 통찰로 나아가게 한 것이지요. 내 고통은 타인의 고통이며, 내 욕망도 타인의 욕망이며, 내 환희 또한 타인의 그것입니다. 타자의 존재를 대범하게 인정함으로써 타자로부터 자유를 얻고자 하는 희열, 보들레르를 다시 꺼내 읽는 밤, 타자의 고유성을 먼저 알고 끝내 스스로 자유로웠던 그 시절의 그녀가 저 멀리 알바트로스 새가 되어 날갯짓하고 있습니다.

2020-12-09

출근 시간

제게도 출근 시간이 있습니다. 월급을 받는 직장이 있는 것도 내세울만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가 정한 출근 시간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 집안을 후다닥 정리하면 아홉시. 보무도 당당히 컴퓨터가 있는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저만의 유쾌한 출근을 감행하는 것이지요.근무처(?)에서 해야 할 업무는 당연 글쓰기입니다. 일가를 이룬 대작가들처럼 하루에 원고지 열 장 내지 스무 장씩 정해놓고 써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직장인이 사무를 처리하듯 글쓰기도 자연스레 일의 일부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니 의지대로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니터 앞에만 앉으면 미숙한 업무처리로 질책을 앞둔 신입사원처럼 안절부절못합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지요. 대가들을 벤치마킹하겠다던 불타던 의지는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스스로 약속한 원고 매수를 지키는 날보다는 그렇지 못하는 날이 더 많습니다.책상에 앉으면 곧바로 글쓰기 목록파일을 클릭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건만 박약한 의지력은 언제나 포털 사이트부터 접속합니다. 세상사 이런저런 간접 경험이라도 해야 쓸거리가 주어진다는 변명을 진작 준비해놓은 것이지요. 움직이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는 저에게 ‘간접 경험’이라는 핑계는 그럴듯한 방어벽이 되어 주긴 합니다.오랜 딴 짓 끝에 겨우 목적한 원고를 완성합니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헤밍웨이가 한 말입니다. 초고 완결이라는 잠깐의 자부심도 헤밍웨이의 저 일갈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객관적인 눈썰미를 보탤수록 쓴 글은 허섭스레기로 보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 ‘걸레’가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닙니다. 퇴고를 거듭하면 얼추 쓸 만한 면 보자기로 거듭 나기도 합니다. 그걸 믿고 그냥 써나가는 것이지요. 문제는 걸레조차 만들지 않거나 만든 걸레를 방치하는 것이겠지요.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도 초고는 형편없었다지요. 하지만 절박한 궁핍, 절절한 외로움이 그녀의 초고를 천문학적인 재산으로 바꿔놓았겠지요. 이혼과 육아 설상가상으로 실업까지 겹쳐왔지만 끝내 초고의 끈을 버리지 않았기에 성공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걸레를 기워 온전한 조각보로 변모시키려는 에너지만 있다면 글쓰기보다 정직한 노동은 없을 거예요.같이 글쓰기를 시작했어도 오라는 데 많은 재주꾼들은 절실함이 사라져 쓰는 데 전력투구하지 못합니다. 반면, 글재주가 덜한 이들은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아 쓰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습니다. 절치부심, 그저 쓰고 또 쓸 뿐이지요. 그러다 보니 작가가 되어 있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우직하게 쓰는 자 앞에 장사 없습니다. 쓰다 보면 빛이 보이겠지요. 제대로 쓴다는 전제가 붙긴 하겠지만.제대로 쓴다는 건 무엇일까요. 글쓰기에 비결이 있을 리 없습니다. 쓰는 순간이 곧 비법일 뿐입니다. 잘 쓰는 이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는 것도, 옹골찬 자기 확신도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예민한 손끝과 묵직한 엉덩이입니다. 그 두 도구를 활용해 읽고 쓰기만 하면 됩니다.글쓰기는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달리 재능이 덜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재능보다는 열정이지요. 지속적으로 읽고 쓰다보면 자연스레 자신만의 문체와 이야기로 연결되겠지요. 이때도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머리와 가슴이 글을 쓰게 하는 줄 압니다. 단언컨대 글을 오래 쓰게 하는 힘은 엉덩이와 손가락이 먼저입니다.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묻고 더 이상 예민해질 손끝이 없다 할 정도로 온몸으로 쓰면 됩니다. 마음이 아니라 몸으로 쓰는 순간만이 글쓰기의 진정한 과정이자 비결입니다. 자판에 누른 글자가 늘어날수록 쓰는 비법을 터득하는 시간은 짧아집니다.김살로메소설가글 한 번 잘 써보기가 저의 평생 숙제입니다. 하지만 욕망한다고 어디 글이란 게 써지더란 말입니까. 답을 알면서도 제대로 쓰지 못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쉽게 써지지 않는 글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합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쉬 내려놓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숱하게 넘어지고 한없이 작아져도 결국 쓰는 자리에 있을 때만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기에. 돈도 많으면 좋겠고, 좋은 친구도 얻으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이 모든 걸 유예하고서라도 제대로 쓸 수만 있다면 바랄 게 없습니다.끈질기게 쓰는 자는 끝내 이기고, 어영부영 자기검열에 빠진 자는 출근한 일터에서 이런 반성문이나 쓰게 됩니다. 자기 긍정과 자기 확신으로 무장된 스스로를 기대해 봅니다. 어느 작가가 말하는 걸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잘 쓰는 자가 아니라, 오래 쓰는 자가 이긴다.”

2020-12-02

함께 가는 발

무좀이 도졌습니다.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가 찢어져 따끔거립니다. 오래 전부터 각질이 벗겨지는 정도의 무좀증세가 있긴 했지만 온 여름내 멀쩡하던 발이었습니다. 맨발에다 샌들을 신던 여름에는 통풍이 잘 되어 무좀균이 숨어 있었는데, 간절기를 맞아 양말을 신는데다 신발마저 부츠로 바뀌니 그렇게 된 모양입니다. 제 역할을 잊고 있던 무좀균이 환경이 조성되자 저 좋다고 활개를 친 것이지요.무좀만이 발에게 성가신 게 아닙니다. 날씨가 서늘해지니 뒤꿈치까지 말썽입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갈라지다 골이 점점 깊어집니다. 물기 부족한 뒤꿈치는 잎맥처럼 잔금이 서리고 부스스한 가루마저 날립니다. 심한 곳은 골이 푹 파이기도 합니다. 심해져 허벅지나 다른 살에 스치기라도 하면 날카로운 송곳이 지나간 듯 상처가 돋고 각질까지 묻어납니다. 쌀쌀한 날씨가 돌아오면 생기는 불청 현상이지요. 제때 각질을 밀어주고 연화용 화장품만 발라주면 되는데 귀찮다고 방치하면 금세 그렇게 됩니다.젊은 날, 겨울에 대중탕에 가면 둥근 돌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있었는지 개인이 준비해왔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중년의 엄마들은 물에 불린 뒤꿈치의 각질을 면도칼로 도려낸 뒤 그 돌에다 대고 문질렀습니다. 그라인더 역할을 하는 돌 위에서 뒤꿈치를 갈고 나면 일주일은 개운할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각질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번 목욕탕에 갔을 때는 전보다 더한 강도로 뒤꿈치를 문질러대는 분들을 만나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졌지요. 매일매일 각질을 관리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만 못한 것이지요.젊었을 때는 그런 풍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청춘의 뒤꿈치에는 각질이 생기지도, 골이 패지도 않았으니까요. 해서 생업에 전력투구하는 엄마들의 고단한 땀이 모여 당신들 발을 거칠게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동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뒤꿈치가 망가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건 열심히 산 흔적이 아니라 단순한 노화 현상 중의 하나라는 걸 알겠습니다.며칠 무좀약을 바르고 연화제를 문지릅니다. 무좀균은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 삼아도 좋을 위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소소한 일상 자체가 무좀 앓는 발이요, 각질 쌓이는 뒤꿈치 아니던가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시련은 무좀 앓는 발에 비유할 수 없겠지만 웃고, 울고, 떠들고, 마시는 가운데 생겨난, 감당할 만한 모든 고충을 무좀균에 비유하고 싶습니다.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비의는 가지고 삽니다. 아픔이나 상처의 옷을 입은 그것은 평소에는 비활성화 되어 있다가 어떤 계기가 있으면 표면으로 드러나지요. 통풍에 문제가 없을 땐 잠잠하던 무좀균은 바람 쐬어 주지 않고 꼭꼭 싸맬 때 스멀스멀 피어나 발가락 사이를 갉습니다.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에 무좀균이 생깁니다. 그때 위로라는 약을 발라 상처를 달래는데, 금세 낫긴 합니다. 그렇다고 무좀균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딘가에 숨어들었을 뿐인 이때의 무좀균은 발이 발로 단련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경고 장치로 기능합니다. 박멸하지 못할 바에는 그대로 두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그 어떤 약점에도 노출되지 않는 삶이란 없습니다. 산다는 건 환희라는 날개옷을 걸칠 때보다 고통이라는 갑옷을 두를 때가 더 많습니다. 수고로운 갑옷의 시간을 무좀 앓는 발이라 쳐둡시다.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날들을 각질 쌓이고 골이 패는 뒤꿈치라 여깁시다. 성가신 쓰라림이 가슴 한쪽을 지나겠지만 그건 모두 견뎌낼 만한 고민이자, 건널 만한 고충이지요. 따라서 그것들을 야멸차게 박멸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완전히 없애버린 평범한 상처 그 자리에, 감당하지 못할 고통이나 번민이 들어찬다면 그보다 낭패스런 일도 없을 테니까요. 함께 가는 무좀과 같이 하는 각질이 있기에 더한 고통이 들어찰 기회가 없다고 위안해 봅니다.김살로메소설가모든 살아있는 것은 점점 생기를 잃습니다. 푸석해지고 거칠어진 흔적이 내 것이 아닌 건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애써 없애려 하는 것보다 달래서 함께 가는 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려내고 문지르고 바르고 말린다고 근본적으로 내 삶의 군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렵거나 따끔거리거나 까칠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을까요. 찾아오는 그것들을 지우려할수록 더 두꺼운 이물감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발가락 사이마다 무좀약을 바르고, 양 뒤꿈치에는 보습제를 문지릅니다. 발가락이 시원해지고 뒤꿈치는 한결 부들부들해졌습니다. 삶의 자잘한 각질과 균은 잘라내고 없애야 할 쓰레기가 아니라 부드럽게 달래 함께 가야할 동반자라는 것을 두 발이 말해줍니다.

2020-11-25

저마다의 답

시골뜨기인 저는 오학년 때 대구로 이사했습니다. 이층집도 수세식 화장실도 한 번 본 적 없는 깡촌 아이 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도회의 파노라마는 차라리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그 어린나이에 결코 원한 적 없던 묵언수행을 감행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웃지 못 할 시절이었지요. 제 생애에 우울기가 있었다면 그때가 시초였을 거예요.크고 작은 여러 체험을 겪었습니다. 그 중 의아스러웠던 것 중의 하나가 ‘으’와 ‘어’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이에요. ‘이층으로 올라간다’라고 하면 될 것을 ‘이청으로 올라간다’라고 하거나 음악 시간이라고 하면 될 것을 ‘엄악’ 시간이라고 발음하는 것이었지요. 멀쩡하고 예쁜 이름인 이은진도 ‘이언진’이라고 바꿔 불렀습니다. 심지어 ‘언진(은진)이가, 언진이가?’하면서 제가 듣기에는 똑같아 뵈는 발음으로 그들 식의 ‘으, 어’ 발음을 구별하기까지 했습니다. 생경하고도 기이한 일이었습니다.시골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두 음절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철이 들고 난 뒤 그것이 단순한 언어습관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투리가 그렇듯 윗세대가 그렇게 발음하니 아랫세대도 별 뜻 없이 그렇게 배운 것뿐이었지요. 원래 인간은 자기 울타리 안에서 자기 식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존재니까요.오랜만에 전국구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무슨 말 끝에 ‘thanks to’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생스투’라고 제가 발음하자 나머지 친구들이 동시에 웃었습니다. 왜 웃는지 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다시 그 발음을 하게 되었을 때, 친구들이 좀 전보다 더 넘어갔습니다. ‘땡스투’로 말해야지 ‘생스투’라는 말은 너무 어색하답니다. 한 번도 그렇게 말하는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에 적이 당황했습니다. 어차피 영어 발음으로 할 것도 아닌데 생스투나 땡스투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게 이상하다는 거지, 하며 저는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소심한 저는 ‘thanks to’를 우리말 식으로 어떻게 발음하는 것인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검색 상으로는 ‘땡스투’나 ‘생스투’나 그게 그거였습니다. 비슷한 비율로 검색되는 걸로 보아 그 말 자체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땡스투냐 생스투냐의 차이가 아니라, 제 발성법에 문제가 있었겠다 싶었습니다. 경상도식 사투리 발성에서 오는 특이함 때문에 친구들이 웃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마치 어릴 적 ‘으’ 와 ‘어’를 구분하지 않고 -그들 나름으로는 구분을 했겠지만- 발음하던 도회지 아이들을 보면서 제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것처럼 친구들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짐작했습니다.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저로선 이상했듯이,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 제겐 이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역시 그들에겐 이상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지요.북 토크 진행을 한 뒤, 제 음성이 녹음된 파일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염 섞인 어색한 음색에다 사투리 높낮이가 선명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꺼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더 충격적인 면을 발견했습니다. 저 역시 미세하게 으, 어 발음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경상도식 특유의 발성법이 굳어져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히 ‘으, 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지요. 그제야 왜 친구들이 제가 ‘생스투’라고 내뱉었을 때 웃었는지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발성 자체에 사투리 버전이 녹아있으니 표준어를 구사하는 입장에서는 어색하게 들릴 수밖에요.김살로메소설가어떤 이의 말과 행동은 스스로 한 것이되 스스로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발설하는 순간부터는 그것은 상대자의 것, 즉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 되는 것이지요. 당사자는 궁궐을 지어도 상대는 초가를 볼 수 있습니다. 전하는 자는 열매를 전해도 받는 자는 씨앗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전하는 자의 말은 해석하는 자의 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내 의도와 상대의 해석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어떤 배우의 무대 인사가 생각납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 되어도 괜찮다. 관객들이 느끼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것은 순전히 상대에게 달렸습니다. 언행의 전부를 상대가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욕심입니다. 나는 말하고 상대는 해석하는 것, 이것이 세상 이치니까요. 세상엔 수많은 밥이 있고, 그 밥을 먹는 방식은 입맛마다 다릅니다. 오해가 풀리기 전까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한 그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습니다.오늘의 교훈,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도 타자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

2020-11-18

해바라기 스캔들

사람인 이상 시종일관 이성적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더러 흔히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늘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보기보다 허술하고 허당끼 많은 존재이지요. 이성이란 갑옷으로 아무리 무장을 해도 부지불식간에 감정이란 빨간 내복이 삐져나오기 마련입니다.짐승은 본능에 충실하고, 괴물은 본능을 관장합니다. 그러면 그 중간인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는 순간적 능력을 발휘하는 동물일 뿐이지요. 짐승은 번민의 정도가 인간만큼 드러나지 않고, 괴물은 타자로 하여금 번민을 유발하는 존재이지요. 그 도발된 번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지요. 성경에 묘사된 하느님조차도 온전한 이성으로 세상과 인간을 판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절대자답게 당신 기준으로 세상 피조물들의 생사를 관장했습니다. 그 기준이란 것은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완벽히 이성적인 것은 아니었지요. 말하자면 당신 닮은 인간을 창조했다고 말한 당신의 말씀은 너무 인간적이고 온당한 것이지요.어떤 판단을 할 때 이성이 꼭 감정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말하기 위해 이렇게 빙빙 돌아왔네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우리는 흔히 ‘감정 섞지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이성이 항상 실천적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이성적 판단은 결국 감정을 덜 섞는 타협으로 나타날 뿐, 이성 그 자체에 이르지는 못합니다.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착각합니다. 나는 감정적이지 않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고 있다고.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부분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만 확인할 뿐입니다. 행불행을 관장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단어, 감정!둘만 되어도 이성적 판단 앞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안전한 거리 확보 없는 관계는 파국에 이르기 쉽습니다. 평화를 가장한 전쟁, 미소로 위장한 침울, 침묵으로 포장한 폭발이 당신 곁에 맴돈다면 이는 틀림없이 적당한 거리의 법칙이 무시 된 채 감정에 휩싸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정 동물인 인간관계의 법칙에 가장 적절한 예가 예술가들일 것입니다. 예민한 예술혼이라는 짐을 진 대신 ‘제멋대로’라는 면죄부를 얻은 그들의 관계는 더 쉽게 깨지고, 그 파국 또한 처절할 수밖에 없습니다.고흐는 해바라기를 그렸습니다. 고갱도 해바라기를 그렸지요. 고흐의 해바라기는 심연을 후벼 파는 듯 격정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자유분방한 듯 자신만만합니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맘먹고 검색이라도 해봐야 아는 이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고흐의 해바라기가 더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고갱의 해바라기는 덜 아름답고 덜 미학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해바라기로 대표되는 두 예술혼의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지요.고흐는 자신의 예술욕을 채우기 위해 고갱을 아를르로 불러들였습니다. 도도하고 지적이고 권위적인 고갱에 비해 고흐는 격정적이고 소박하고 성실했습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의 매뉴얼을 담당하는 건 인지상정이지요. 둘 사이의 권좌 차지인 고갱은 소박한 의자에 앉아 집착하고 매달리는 고흐가 성가실 뿐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고흐는 광기를 핑계로 자신의 귀를 세상을 향한 격정처럼 고수레하고 말았지요. 그렇게 해야만 상처받은 영혼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터였으니까요.김살로메소설가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혼의 결정체입니다. 고갱의 해바라기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너무 다른 자신만의 해바라기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둘은 만나지 않은 게 더 나을 것이었어요. 하지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요. 각각 신경강박증과 오만방자가 없었더라면 누가 그들이 남긴 해바라기 은유에 대해 이토록 오래도록 기억해줄까요.두 사람의 파국에 책임의 추를 견줘 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고결한 고흐의 신화도 고집불통이었던 고갱의 전설도 감정에 충실한 개성 덕분이었지요. 그 감정선 덕에 그들의 예술혼이 빛날 수 있었으니까요. 자기 연민으로 견뎌내는 고통도 자기 격정으로 발산하는 오만도 예술가에게는 모두 필요한 덕목일 테니까요. 그러하니 오늘밤도 몇 번씩 제 귀를 면도날로 오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당신, 당신이야말로 해바라기 품는 예술가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꿈의 원천은 용서할 만한 이성이 아니라 달떠도 좋을 감성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격정의 드라마 없는 예술혼이 가당키나 할까요. 누군가의 예술혼, 그 출발점은 황금별 송이마다 촘촘 박힌 해바라기 씨앗 같은 감정 하나하나였음을 되새기는 밤.

2020-11-11

청관스러움에 대하여

냉정하면 거리감이 생기고 오지랖이 너무 넓으면 성가십니다. 인간사 적당한 게 좋습니다. 하지만 적당하기가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넘치는 상황끼리 상충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패키지여행 팀에 지인 없이 합류했습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 어떤 것의 영향도 받지 않고 될 수 있으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팀원 중 선희 씨도 혼자였습니다. 수수한 차림만큼이나 털털해 보이는 그녀와 자연스레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고향도 같고 나이도 같았습니다. 통성명이 끝나자마자 선희 씨가 제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말 놓고 편하게 지내자. 우린 친구니까! 움찔 놀란 저는 슬며시 손을 뺐습니다. 만난 지 삼십 분도 되지 않았는데 동향에 동년배라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될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행 콘셉트인 무심함의 미덕이 방해 받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다정다감한 선희 씨는 가는 곳마다 제 손을 잡았습니다. 뭉툭하고 못 생긴 손을 누군가에게 내맡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핑계였을 거예요. 혼자가 편했던 저는 에돌려 선희 씨에게 말했습니다. 손잡는 것 대신 팔짱 끼면 안 될까요? 선희 씨는 친구끼리 땀 좀 섞이면 어떻노? 하면서 손 깎지를 풀어 순순히 제 팔짱을 꼈습니다.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타인과의 이상적인 거리는 육십 센티라는 말을 믿고 싶을 정도로, 대책 없이 밀착해오는 그녀가 불편했습니다.선희 씨는 배려와 관심이 넘쳤습니다. 사진 같이 찍자, 저건 저렇고 이건 이렇지, 화장실 가지 않을래, 등등의 말로 친화력을 자랑했습니다. 악의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받아들이는 제가 불편하다는 게 문제였지요. 언덕마다 오밀조밀하게 내려앉은 집, 이국의 골목에서 풍겨 나오는 야릇한 냄새와 좁은 베란다 밖으로 너울거리는 빨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애련한 가락들, 이런 호사의 순간을 선희 씨가 방해하는 것만 같았습니다.참을만한 친절함이었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차단막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 홀로 힐링’을 구하려는 자와 ‘더불어 힐링’을 외치는 자 사이에 작은 균열이 일었습니다. 물론 그런 예민한 저항감은 저만의 것이었습니다. 사람 좋은 선희 씨는 그럴 기미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선희 씨 입장에서 보면 운이 없는 거였지요.여행 막바지쯤 선희 씨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너무 청관스러운 것 같아. 같은 고향이니 청관스럽다는 말은 들어봤겠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그 말뜻을 유추하느라 남은 일정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선희 씨를 거부한 짓이 있으니, 제 풀에 ‘까다롭다’는 의미로 쓰였을 거라 짐작만 했습니다. 인정머리 없는 속내가 들킨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언니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저보다는 고향에 오래 살았기에 언니는 ‘청관스럽다’는 말을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언니는 옛날을 더듬어 그 말의 쓰임새까지 친절하게 예로 들어줬습니다. 어릴 때, 밥술을 겨우 뜨는 형편의 서촌댁이 마실을 나오고, 밥 같이 먹자고 엄마가 숟가락을 건네면 방금 먹고 와서 배부르다며 도리질을 한 채 배를 쓰다듬곤 했습니다. 그럴 때 엄마는 “에구, 청관스럽기는!”하고 말했답니다. 또한 오일장 나들이에 나선 방산 할배가 빳빳하게 풀 먹인 모시적삼 차림으로 미루나무 신작로를 꼿꼿이 지나갈 때 “그 어른, 참 청관스럽다.”라고 했다나요.짐작하건대 청관스럽다는 말은 타인이 주는 물질적·정신적 호의를 사양하거나, 정갈한 품새로 흐트러짐이 없을 때를 표현하는 말 같았습니다. 경북 북부지방에 널리 퍼진 행동 양식인 ‘염치’ 개념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인데, 그곳 사람들에게 염치는 곧 자존감을 의미했습니다. 선희 씨의 오지랖이 넓을수록 저는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다지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피해를 주지 않겠으니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일종의 개인주의적 자기방어였지요.남에게 구하려 하지 않는 자는 남을 들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염치와 분수를 차린다는 명분 뒤에 숨은 제 거북한 마음을 그녀는 읽었던 것이지요. 그걸 청관스럽다는 말로 좋게 포장해준 것 같았습니다.청관스러움도 지나치면 청맹과니가 됩니다. 털털하고 담백할 때 세상도 그렇게 보입니다. 마음이란 건 덥석 주고받아도 오줄없지만 넌지시 거절하는 건 더 상그럽습니다.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 편하자고 남의 호의를 들이지 않는 건 소견이 좁은 짓이지요. 움찔 밀어내고 슬쩍 털어내는 건 청관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훼방꾼은 타인이 아니라 언제나 제 안에 있습니다. 인정에 호소하지 않는 염치가 무슨 소용이며,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청관스러움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요.

2020-11-04

타자기를 추억함

노트북 키보드가 흠집투성이입니다. 자주 누른 글쇠는 보호막 비닐이 너덜거리는데다 글자 표식마저 벗겨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닳은 정도에 따라 어떤 글쇠가 혹사를 당했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각각 왼손 검지와 중지가 맞닿은 ‘ㄹ’과 ‘ㅇ’의 윗면은 허옇게 까졌고, 오른손 중지가 관장하는 ‘ㅏ’ 글쇠자리는 영어 자판 ‘K’ 안내 글자가 사라지고 없을 지경입니다.오래된 노트북도 아닌데 키보드가 이렇게 너저분하게 된 것은 오래된 습관 때문입니다. 저는 손바닥을 키 판에 대지 않고 허공에 띄운 채, 손가락을 세워 자판을 내리찍는 편입니다. 자연스럽지 못한 이런 타격법은 손목에 힘이 들어가 타이핑 소리도 시끄럽습니다. 손톱에도 힘이 실려 글쇠판이 쉽게 긁힙니다. 이런 방식은 수동식 두벌 타자기를 칠 때 유용합니다.제 이십대의 글자 생활은 두벌 타자기의 나날이었습니다. 대학시절 한때 한글 운동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모임의 취지는 순우리말을 아끼고 퍼뜨리는 데에 있었습니다. 한자어가 칠십 퍼센트 이상인 게 우리 모국어의 현실인데, 순우리말을 고집한다는 것은 코미디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청춘의 열정과 우정으로 그 활동을 즐겼습니다. 지금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 한글 운동의 여러 행동강령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또한 미적 감각을 지닌 문자인가를 기계화를 통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지요.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인 그때 글자 생활의 기계화란, 타자기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도 거창한 슬로건이었지요. 하지만 실제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는 회원은 흔치 않았습니다. 절실하게 와 닿지 않은 면도 있었고, 무엇보다 주머니 사정이 타자기를 구할 만큼 넉넉지 않았지요. 그럴수록 그 모토가 제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차원이라기보다 타자기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댔던 것 같습니다. 이미 서구 작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타자기가 선사하는 경쾌한 터치감의 글 너울을 맘껏 타보고 싶었습니다. 자판 위에 손끝을 올리는 상상만으로도 얽힌 상념들이 흰 종이 위에서 사유의 길을 내는 것만 같았습니다.학교 정보센터 타자 교실에 등록을 했습니다. 수업이 없는 시간마다 들러 자판을 익혔습니다. 낱개였던 자모음이 유의미한 문장이 되어 꼬리를 잇는 게 신기하고 뿌듯했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더듬더듬 자판을 익히는 그 짬 속으로 희망이라는 빛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럴수록 타자기를 갖고 싶다는 열망은 더했습니다. 지금처럼 아르바이트 거리가 쉽게 나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주머니 사정은 늘 빈궁했습니다. 타자기를 산다는 건 제 깜냥으론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읽은 큰오빠가 크로바 두벌식 중고 타자기를 사들고 왔습니다. ‘열심히 써봐라.’ 타자기 케이스를 열어 주던 큰오빠의 무심한 듯 따스한 눈길.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지요. 그렇게 타자기는 제 보물 1호가 됐습니다.종이를 롤러에 끼우고 원하는 자판을 두드립니다. 글자쇠막대가 잉크 묻은 리본 위를 건반처럼 때립니다. 촬촬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만들어내는 해머의 타격감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낭만적입니다. 종성용 자음을 칠 때는 왼쪽 아래에 있는 ‘받침’이란 누름쇠를 누른 뒤 해당 자판을 눌러야 합니다. 초성에 쓰였던 글자가 받침자리로 옮겨져 타이핑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면 받침 글자가 중앙으로 쏠려 묘한 듯 매력적인 두벌식 타자 특유의 서체가 나옵니다. 한 줄 글이 다 써지면 왼쪽에 달린 레버를 밀어 종이 위치를 중앙으로 옮겨 주면 됩니다. 오타가 나면 타자용 흰 물감지우개를 글자 위에다 덧씌우고 다시 타건하곤 했지요. 청아한 쾌감을 지나 숙연한 의지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그 정신적 사치를 꽤 즐겼습니다. 저만의 보물인 크로바 타자기로 우리말을 갈고닦거나(?) 리포트를 작성했으며 단상도 끼적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타자기의 자판을 두드리려면 손가락 각도를 가파르게 한 채 손끝에다 힘을 실어야 했습니다. 지금의 키보드처럼 평면이 아니라 계단식 글쇠판이라 글자를 누르는 동안 손바닥은 항시 허공에 떠있어야 했지요. 오래된 이 습관이 타자기 시대를 접은 지금까지 이어져 키보드에다 생채기를 내는 것이지요.버리기 좋아하는 저는 이사를 핑계로 많은 물건을 버렸습니다. 크로바 타자기도 예외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버린 것에 대해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그것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타자기의 나날과 함께 했던 소박한 열정이라는 연결고리가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그때를 떠올리며 뒤늦은 마음의 자판을 눌러 봅니다. ‘추억추억’하며 글자가 종이에 박히는 동안, 공중에 뜬 두 손바닥 사이로 파노라마처럼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2020-10-28

베테랑일수록 가볍다

이십 대 초반, 동아리 친구들과 지리산을 종주한 적 있습니다. ‘산이라면 지리산’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당시 청춘들에게 지리산행은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 임걸령, 벽소령, 세석산장,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 뒤 하산하는 4박5일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등산다운 등산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험한 골짜기와 긴 능선을 넘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굴곡진 현대사의 현장을 접할 수 있다는 숙연한 설렘만이 가득했습니다.첫날은 그럭저럭 오를 만했습니다. 계곡 물소리와 풀꽃들, 간간이 보이는 하늘과 피곤할 만하면 나타나는 쉼터 등 모든 것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가끔 헬리콥터 소리도 들렸는데 능선을 넘는 산행객들의 무사를 응원하는 것 같아 안심이 되곤 했지요.이틀째였을까요. 임걸령과 화계재 사이 어디쯤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등짝을 뒤에서 당기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허벅지 힘이 마구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습니다. 발바닥이 땅에 붙고 어깻죽지는 내려앉기만 했습니다. 선발대와의 거리는 한참 멀어져 있었고, 하늘과 잇닿아 있다는 드넓은 쉼터는 나타날 기미조차 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급경사 등산로 앞에서 저를 시작으로 몇몇의 여학생이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체력은 바닥인데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짓누르니 설움이 북받쳤던 것이지요. 하지만 강단 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눈썹조차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역까지 배웅 나왔다가 엉겁결에 뾰족 구두 차림으로 합류한 후배조차 의연한 모습이었습니다. 체력 안배를 잘 해, 날다람쥐처럼 날랜 다른 여학생들을 보니 부러워서 서러웠습니다. 시쳇말로 ‘멘탈’을 관리하지 못한 채 스스로 무너지는 그 한계가 부끄러워 더 눈물이 났습니다.저질 체력의 여학생 배낭은 할 수 없이 남학생들에게 인계되었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종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주량도 모른 채 마신 한 잔 소주에 취해, 만 하루가 지나서야 깨어났던 일처럼 창피하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민폐를 끼쳤다는 미안함, 체력이 좋거나 강단 있는 다른 여학생들에 대한 부러움 등으로 한동안 괴로웠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텔레비전 오지 탐험 프로그램을 볼 때, 힘든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여성 출연자를 보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각설하고 그때 지리산 산행의 패착을 떠올려봅니다. 이유는 한 가지, 너무 무거운 짐 때문이었습니다. 자잘하게는 세면도구에서 크게는 홑이불세트까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품을 죄다 배낭에다 쟁여 넣었습니다. 많이 챙겨갈수록 좋은 줄 알고 이것저것 배낭 배를 부풀렸습니다. 자신의 체력도 가늠해보지 않은 채 가방만 무겁게 꾸렸던 것이지요.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짐이라도 가벼웠으면 그토록 고생하지는 않았겠지요. 길 떠나는 자는 자고로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 것이지요. 여행 잡지에서 본 전문가의 충고를 되새깁니다. ‘될 수 있으면 짐을 줄여라. 한 번 줄이고 그 다음날 점검할 때 또 줄여라. 그러다 보면 꼭 필요한 것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당신을 즐겁게 해 줄 최상의 동반자다.’물론 전문 산악인들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습니다. 산행 전문가답게 길눈이 밝은데다 체력까지 감당이 되면 무거운 짐을 챙기는 게 당연히 유리합니다. 텐트에서 우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고 꼼꼼히 챙기는 이타적인 주변인 덕분에 산행이 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이지요.일반적으로 등산을 자주 하고 산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꾸러미는 간소합니다. 베테랑일수록 가볍습니다. 어떤 일에 능숙하면 부차적인 것들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명필일수록 붓 자루 수나 크기에 집착하지 않고, 명강사일수록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이크도 필요치 않은 것과 같지요. 많거나 크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그 덕에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오히려 가벼울수록 일을 추진하는데 유리하거나 부담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날마다 가벼워지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하여 어쩌다 길 떠날 일이 생기면 최대한 간소하게 짐을 꾸립니다. 그 옛날 지리산 종주할 때의 교훈을 떠올리며 줄였던 짐도 한 번 더 줄입니다. 무거운 짐에게 몸과 마음을 저당 잡히는 것보다는 모자란 듯 헐렁한 상태가 훨씬 부담이 덜합니다. 수고한 짐 때문에 영혼이 피폐해질 정도라면 비울수록 낫습니다. 베테랑일수록 가벼움이나 덜어냄과 친구하니까요.

2020-10-21

사랑의 저울추

왜 이렇게 생겨 먹어서 사람들과 충돌만 일삼는 거지? 왜 선생님과 사이는 좋지 못하지? 왜 급우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서먹서먹하기만 하지? 왜 선생님들 하는 짓이 다 우스꽝스럽게만 보이지? 왜 얌전한 모범생이 되지 못하고 시 나부랭이나 끼적이다가 놀림감만 되지?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청소년기는 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의 중편 ‘토니오 크뢰거’는 자전 소설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당황스럽고 내밀한 고백으로 가득합니다. 그 은밀한 고백 밑바탕에는 평범한 시민성과 예술가적 기질 사이의 작가적 고뇌가 숨어 있습니다.토니오는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인데다 깊이 보고 자세히 봅니다. 토니오는 동급생 한스를 사랑합니다. 안타깝게도 한스는 토니오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토니오는 한스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며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소박하고도 가혹한 교훈을 토니오는 열네 살이란 이른 나이에 깨칩니다. 토니오는 그 경험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강단조차 없었지요. 다만, 학교에서 주입하는 지식보다 이런 체험적 교훈이 훨씬 더 중요하고 흥미 있는 것으로 생각할 뿐입니다.토니오는 금발의 잉에를 사랑했지요. 웃고 있는 길쭉한 푸른 두 눈에 빠졌고, 수많은 웃음소리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구별하려고 안간힘을 썼지요. 애석하게도 잉에 역시 토니오를 고려해본 적은 없습니다. 악의 없는 무심함의 우정만을 보여줄 뿐이지요. 그녀는 같은 부류인 한스와 사랑에 빠집니다. 잉에와 한스 같은 안정되고, 평화롭고, 정돈된 치들은 애잔한 단편소설 따위는 읽지 않고, 그런 작품을 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토록 아름답고 무심하고 명랑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역시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패배자이며 괴로움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토니오는 평온하고 건전한 시민을 대표하는 한스나 잉에가, 예술가적 기질로 길 잃은 시민이 되어버린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자각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토니오는 자신의 길이 평범한 시민성을 지닌 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토니오의 슬픔입니다.유행가 가사처럼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던가요. 누가 사랑이 충만으로 가득한 공정한 게임이라고 했던가요. 토마스 만의 일관된 방향처럼 사랑엔 공평한 저울추가 없습니다. 더 사랑해서 패배하거나, 덜 사랑해서 상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만 있을 뿐이지요. 덜 사랑한 자는 무관심해서 상기할 추억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지요. 그래도, 그래도 말이에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건 그 순간만은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지요. 곧장 어리석은 실패자로 돌아오더라도 그렇게 사랑의 감정에 충실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랑받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엔도르핀이 백만 배는 솟구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이 마련한 고약한 매뉴얼대로 인간은 백전백패하면서도 사랑이란 문밖을 서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토마스 만은 사랑의 저울추에 대해 누구보다 독자들을 잘 설득하고 있는 셈이지요.김살로메소설가사랑에도 구별이 있습니다. 덜 사랑하는 자와 더 사랑하는 자. 사랑만큼 저울추가 확실히 기울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당사자들에게 똑 같이 할당되는 것이라면 애초에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입술이 부풀고, 이별 때문에 치통에 시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대상을 객관적·보편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덜 사랑하는 쪽이고, 대상에 주관적·감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사랑에 빠진 쪽이지요. 덜 사랑하는 쪽은 그 순도가 탁하기 때문에 덜 다치고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쪽은 순도 백퍼센트이기 때문에 많이 다치고 감정의 파고에 시달립니다.토마스 만의 이러한 설파에 롤랑 바르트의 전언을 보태봅니다. ‘사랑의 단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배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덜 사랑하는 사람은 철새이고 사라지는 자입니다. 반면 사랑하는 자는 붙박이이자 처분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싱크대 한쪽에 밀려난 더러워진 프라이팬처럼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신세이지요. 부재중이거나 안개처럼 존재하는 그 덜 사랑하는 존재가 사랑인줄 알고 반 쯤 얼빠진 채 열린 창 곁을 서성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갈망하고 기대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속성인 것을. 스스로를 찔러대고 나약했던 그 순간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환상으로 남을 몹쓸 패배의 사랑!

2020-10-14

사랑은 순간

맘대로 되지 않는 감정 중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리석음이요, 유치함이요, 수치요, 절망이요, 나락입니다. 사랑을 일컬어 현명함이요, 세련됨이요, 자긍이요, 희망이요, 천국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사랑이란 감정을 초월했거나 겉보기 사랑을 하거나 그도 아니면 사랑이란 말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랑은 어떻게 올까요. 대개 그것은 찰나의 순간과 맞닥뜨립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첫 3초면 충분하답니다. 3초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판단의 중심 감정 중 하나가 사랑입니다. 감성이 풍부할수록 첫 3초의 편견인 사랑의 마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상대의 마음을 사버린 것을 일컬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계산이 들어찰 여유가 없고, 판단을 유보할 사유가 없는 시간이지요. 사랑을 하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순식간에 사랑의 조명탄을 맞아버리는 일이니까요.봄물 오르는 캠퍼스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던 남학생. 잔디밭에 앉아 여흥을 즐기는 일군의 무리를 발견합니다. 같은 과 친구들인 그들은 한낮의 고스톱을 즐기는 중입니다. 그 중 고스톱 패를 돌리던 한 여학생에게 시쳇말로 필이 꽂힙니다. 모든 빛이 여자 주변만 비추는 듯합니다. 햇빛 받아 반짝이는 머릿결, 화투장을 내리찍는 여자의 긴 손가락 끝에도 햇살이 머뭅니다. 심장이 멎는 듯하고 구름 속을 헤매는 심정입니다. 붕 뜬 허공에서 지상에 발 디디게 해 줄 이는 저 여학생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내적 반응이지요.집에 돌아와도 알 수 없는 감정은 지속됩니다. 수줍은 듯 짓궂은 여학생의 표정, 화투장을 돌리던 희고 긴 손가락이 미끼처럼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덥석 물고 싶을 만큼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집니다. 봄풀처럼 해사한 얼굴도 아니고, 날렵한 몸매로 캠퍼스 이곳저곳을 누비던 여학생도 아닙니다. 어떤 이유도 조건도 없습니다. 그냥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의 상황 앞에 마음의 파고가 일렁인 것이라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3초의 편견이 사랑의 마법이 되는 순간이랄까요.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그 찰나를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불교 용어 중에 돈오(頓悟)와 점오(漸悟)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행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깨치는 것이 돈오이고, 수행의 공을 쌓아 서서히 깨닫는 게 점오입니다. 딱 들어맞진 않지만 사랑에 그 말을 적용해 봅니다. 돈오의 사랑이야말로 순정한 사랑이라 할 만합니다. 점오의 그것은 타협과 조정의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그 시작이 돈오의 사랑만큼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흔히 나이 들도록 사랑 한 번 못해 봤다고 말했을 때, 이는 돈오의 사랑을 못해봤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타협이나 필요에 의한 사랑도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찰나적 사랑만큼 강렬하지는 않습니다.서서히 물드는 쪽이 아니라 찰나적 사랑이 그 염결성에 더 가깝습니다. 흐린 눈이나 달뜬 가슴으로 봐야 첫 3초의 마법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정돈된 상태의 이성적 머리가 세팅되는 순간 즉흥적인 순정이 들어찰 자리는 없는 거지요. 고요한 찻잔 속의 물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잎새라면 그건 사랑일 리 없습니다. 감출 수 없는 어리석은 낯빛과 가라앉힐 수 없는 활화산 같은 심박수 그것이 사랑이지요. 첫눈에 반했다는 말은 거짓일 수가 없지요.김살로메소설가사랑은 무모함입니다. 베이는 줄도 모르고 맨몸으로 칼끝을 향해 돌진하는 무지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실체였는지를 알 때까지 그 사랑은 지속됩니다. 하지만 사랑의 실체를, 그 속성을 자각하는 순간은 기어이 찾아오고 말테지요. 애석하게도 사랑의 환상이 부서지는 그 필패의 시간은 사랑의 덫에 걸린 속도에 반비례해 질척거립니다. 그래도 머잖아 마법은 풀리기 마련이고 칼날 스친 자리엔 아련한 상흔만이 남습니다. 회한조차 희미해질 때쯤이면 그 상처 몽돌이 되어 심지(心志) 하나 키웁니다. 무뎌진 그것은 칼날을 벼리지도 제 심장을 겨누지도 않습니다. 유유자적 세파에 씻기는 평온의 둥근 돌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사랑에 빠질 리 없는, 지속 될 이 평화를 우리는 또 사랑이라 부른다지요.환희의 꽃밭인 줄 알았지만 소금밭을 헤매는 바람. 키질에 남는 열매보다 풍구에 날아가는 쭉정이라야 ‘찐’인 사랑. 오늘도 사랑 때문에 누군가는 핸드폰 문자를 수십 번 확인하고, 울리지 않는 현관 벨 소리에 귀를 당겨 세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속수무책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고 무너질 3초가 아니면 사랑이 아니니까요. 수천 번의 참사를 예감한대도 모순의 통점인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라야 유효하니까요.

2020-10-07

아직 먼 길

이웃분이 이사를 합니다. 집수리까지 마쳤답니다. 한데 깔끔해진 집에, 문짝 내려앉고 손잡이 너덜거리는 장롱뿐 아니라 눈에 띄는 큼직한 세간이라면 허드레라도 다 싸들고 간답니다. 잘 수리된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행보라 다들 눈이 동그래집니다. 몇 십 년 넘은 결혼 생활에 바꿔야 할 세간이 한 둘이겠습니까.시댁의 눈치 때문이랍니다. 시댁 식구들 집들이를 무사히(?) 끝낸 뒤에 새살림으로 교체할 거랍니다. 듣는 이들 모두 한숨을 쉽니다.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손때 묻은 살림살이에 대한 애잔함 때문이 아니라, 잠깐 눈속임을 위해 덩치 큰 세간들을 이삿짐에 실어야 하다니요.이게 현실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물론 시댁과의 관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런 대부분의 집안과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소 당당하고 거칠 것 없는 여성이라도, 시댁 문제에 닿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빚기도 합니다. 새 가구와 최신형 가전제품을 갖춘 집안을 둘러 본 시댁 식구들이 며느리의 헤픈 살림법을 못마땅해 할까봐 미리 방어하는 것이지요. 제 세간 늘린 것과는 반대로 시댁 챙기는 것을 소홀히 했다고 책망 들을까봐 알아서 한 수 접는 것이지요. 시댁에 도리는 다하지 못하면서 제 욕심만 차리는 며느리로 비칠까봐 최대한 소심 모드를 취하는 것이지요. 요모조모 살필 시댁과의 유무언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중의 노동과 비용이라는 비효율을 감수하는 것이지요.우리 현실은 여전히 ‘며느리의 도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위의 경우 시댁과 며느리 사이에는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만큼이나 먼 소통부재의 다리가 놓여 있습니다. 남편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합니다. 시댁과 아내 사이를 조율할만한 근본적인 묘수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속수무책인 채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 마음도 편할 리는 없겠지요. 특별히 별나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곤 하니까요. 시댁이 기대하고 요구하는 며느리상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 집에서는 며느리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합니다. 며느리의 역할을 의무를 다하는 데로만 한정 짓고 싶어 합니다.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며느리의 도리를 미덕이나 지혜로 포장하고 추켜세우기를 좋아합니다. 도리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입니다. 그 말이 며느리에게 오면 ‘입장’도 왜곡되고 ‘바른길’도 변형 됩니다. ‘복종과 인내’ 같은 피동적인 의미로 덮어 버립니다. 그리하여 큰 죄 없는 며느리들에게 불필요한 자책감만 키우는 족쇄로 기능할 때가 많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며느리들, 나아가 여성들로 하여금 피해의식을 조장하는 일은 도처에 나타납니다. 어떤 모임에 신입 회원이 들어옵니다. 나름의 자기 의견을 개진합니다. 가부장적 사고의 틀에 갇힌 이들이 보면 그 모습이 영 달갑지 않습니다. ‘시집을 왔으면 시댁의 가풍에 따라야지. 시집온 첫날부터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는 핀잔을 듣습니다. 아직도 이런 비유가 횡횡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과도한 자기표현을 하지 않을수록 ‘참한 여자’라는 것을 우리 사회는 무의식중에 세뇌하고 여성들은 세뇌 당합니다. 어디쯤에서 나서고 어디쯤에서 물러서야 하는지에 대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불필요한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합니다. 아니, 시달리기를 이 사회가 은근히 강요합니다.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부자연스러워서도 안 됩니다. 지키지 못하면 성격이 이상한 여자, 별난 여자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남성 중심적 사고들이 마련해놓은 ‘괜찮은 여자’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이 사회는 뭉근히 여성들을 억압합니다. 여성들 스스로도 그 사고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질서는 가부장적 권위에 기댑니다. 혼사를 지낸 경우, 아들이 내 것이기 때문에 며느리도 응당 내 집안사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가풍을 잇는다는 명목 하에 며느리를 가르침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설교하려 듭니다.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며느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는 시댁의 요구가 ‘전화 자주해라’ 라는 것이랍니다. 어떤 처가도 사위에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처가도 사위의 도리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그런 의무가 더 할당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땅히 그러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 진심에 의해서 몸과 마음은 움직입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들 스스로의 것일 뿐이지요.추석이 다가옵니다. 오래된 장롱조차 버리지 못할 만큼 눈치 보는 며느리도, 전화 자주하라는 가르침에 소심해진 며느리도 시댁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먼 그 길,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그날들이 가까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0-09-23

책장 정리 단상

책장 정리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책을 지니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어진 책꽂이 안에서만 책이 놀게 하고 덤으로 쌓이지 않게 신경 씁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간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책을 사서만 읽었습니다. 집안은 온통 책 세상 같았습니다. 덜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책 사는 습관도 줄었습니다. 불어난 신간은 중고서점에 팔거나 이웃에 나눔을 합니다. 그래도 책꽂이는 떠나보내기 힘든 책들로 무질서하기만 합니다.오래된 책 한 권에 눈길이 갑니다. ‘도덕교육의 파시즘’. 교육방송에서 그 책에 대해 토론한 걸 시청한 적이 있었지요. 패널이자 저자인 김상봉 교수의 애정 어린 비판. 그는 한국 사회의 일보전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로 도덕교육을 꼽았습니다. 우리의 중고교 도덕 교과서는 낡은 노예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선봉장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참된 자유인을 양성하는 게 아니라, 위계적 노예를 학습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자발성을 묶어놓은 채, 획일화된 질서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 하는 면이 없진 않았지요. 테크놀러지의 첨단을 향유하는 21세기 현대인을 교육하는 방법으론 어울리지 않습니다.저자에 의하면 우리의 예절교육은 약자가 강자에게 바치는 일방적인 헌사를 의미한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절에 관한한 강자의 그 어떤 역할도 약자만큼 구체성과 강제성을 띠지는 않습니다. 공자가 강조하는 예의 본질이 인간 심성의 참된 교류에 있지 결코 위계의 선후를 따지는 치졸함에 있지는 않을 터인데 말입니다. 국가가 관장하는 이러한 지속적이고도 뭉근한 교육 덕(?)에 약자들은 근거 없는 주눅과 스트레스를 원치 않는 선물로 떠안았습니다. 유교문화와 일제 강점기도 모자라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이러한 노예도덕은 더 깊은 뿌리를 내렸지요.우리 유가 사상의 최대 목표는 체제 유지였습니다. 그 정당성을 부여 받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덕목이 충효일 수밖에 없었지요. 자연스레 높은 자를 위한 헌사로써 예의와 도덕은 필요했습니다. 충효의 보조 항목으로서 이 두 덕목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구요. 원래 예절이란, 마음의 진정성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가요. 갑의 위치라 해서 진정성과 형식에 예외가 있진 않을 테지요. ‘인사에 선후 없다’라는 말이 예절의 본류였을 터인데, 실제 상황에서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지요. 체제 유지 하에서는 낮은 자를 위한 배려로써의 예의와 도덕은 언제나 묻히기 일쑤였지요. 그리하여 예절은 그저 강자 앞에서 표하는 약자의 리액션에 머물고 말았습니다.김살로메 소설가예절에서만큼은 지금도 인간 동격 개념을 적용하기엔 무리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체제 유지에 원활한 시민을 기르는 게 우리 도덕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되어버렸다고 김상봉 교수는 우려합니다. 자유와 개인적 가치는 국가와 위계질서 앞에서는 언제나 나쁜 것이 되거나 하위인 개념으로 간주됩니다. 이때 종속의 마땅한 액션으로 예의와 도덕이란 덕목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도덕 교육이야말로 권력자와 집단 -그것이 아무리 부당한 존재라 할지라도- 이 약자와 개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해 줬지요. 물론 무서운 것은, 약자이고 피해자였던 시민들이 집단이 될 때는 어느새 권력자의 위치로 가 있게 된다는 것이겠지만요.도덕 교과서의 이러한 파시즘적인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보는 시각에서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가혹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데도 가부장적인 질서에 익숙해진 우리 여성들 스스로 그 노예교육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십여 년 전 딸이 중학생이었던 시절, 도덕 교과서 예절 편의 서술 방식이 떠오릅니다. 결혼 제도 하의 여성을 대하는 시각이 너무 전근대적으로 묘사된 것에 충격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기혼 여성이 시댁 식구들을 칭하는 모습을 예로 들까요. 아가씨, 도련님, 서방님 등과 같이 불러야 한다고 교과서에 명시 되어 있었습니다. 문득 아직도 그런가 싶어 도덕 선생님인 친구에게 물어 봤습니다. 다행히 호칭과 관련된 부분은 2015년 개정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없어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양성 평등 부분을 강조하고, 가족 간의 질서보다는 갈등 해소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네요. 뒷북이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도덕 교과서가 점점 진화되고 있으니 ‘도덕교육의 파시즘’도 개정판이 나올 때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새 책이 나오면 주저 없이 달려가 앞줄 서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물론 그 책은 중고책으로 팔리기보단 오래오래 책꽂이에 꽂힐 확률도 높겠지요.

2020-09-16

짧은 만남 긴 우정

우리가 만난 세월이 얼만데! 상대와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을 때 흔히 하는 말입니다. 오랜 기간 만나왔으니 그 우정의 깊이는 재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시간과 우정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닙니다. 학창 시절 친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서로 도움 주는 이웃만 못하고, 직장 동료와 종일토록 붙어 있다고 해도 마음 먼저 닿는 먼 친구만 못합니다. 한마디로 때와 장소 등 물리적 요인은 관계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래 알아왔다고 우정이 깊은 것도,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절친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공감보다 나은 친구는 없고 마음보다 앞선 우정은 없을 테니까요. 진심이 통할 때 우정은 지속됩니다.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있습니다. 다섯을 묶은 출발점은 ‘책’입니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의기투합하여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져왔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모이기도 힘들 텐데 다섯 친구들은 운명처럼 전국에 골고루 흩어져 삽니다. 대전, 청주, 광주, 포항, 부산. 각자 뚜렷한 개성을 지녀 한 번만 만나도 어떤 성격인지 알 정도입니다.좋은 날 불쑥 각자 기차를 타고 청주나 부산 또는 경주나 대전 그리고 광주 어디쯤에 모여 점심을 함께 하며 수다를 떱니다. 읽은 책을 화제 삼고 가진 책을 나누며, 잘 쓴 작가를 부러워하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물론 고상한 척 책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자식 걱정이나 자랑도 하고, 남편 흉이나 장점도 나눕니다. 각자의 회한도 돌이켜보고 앞일을 가늠해보기도 합니다. 주어진 하루가 짧다는 걸 알아서일까요. 오래 만나온 사람들이 나누는 것 이상으로 인간사 희로애락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술술 풀어내곤 합니다.이 매혹적인 모임은 한 친구 덕에 가능했습니다. 어떤 방해꾼도 없는 온전한 한나절의 해방구는 그녀의 기획 작품인 셈이지요. 열정과 선함이 몸에 밴 그 친구는 나머지 네 명을 적극적으로 아우르고 배려하고 챙깁니다. 우리는 그녀를 신뢰하고 따릅니다. 그녀가 마련한 멍석 마당에 자유롭게 퍼질러 앉아 수다 떨고 웃기만 하면 됩니다.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녀에게 저는 ‘다정도 병’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습니다. 그토록 다감하고 그토록 솔직하며 그토록 열정적인 친구를 일찍이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그렇게 모임을 이끌던 친구가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LA로 가게 되었지요. 환송회가 있던 날 키 크고 잘생긴데다 착하기까지 한 그녀의 남편 뢉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양손엔 다섯 점의 그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예술을 전공한 뢉이 아내와 그 친구들을 위해 몇날 며칠 이별 선물을 준비한 것이지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깜짝 쇼였습니다. 안타까움으로 허해진 가슴에 훈풍이 깃들었고,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아쉬움과 감동이 교차하던 시간이었습니다.미국에 정착한 그녀는 새로이 간호학에 도전했습니다. 기전공인 패션과는 너무 먼 방향이라 의아했지만 그녀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지요. 공부엔 나이가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몇 년 만에 드디어 학위를 받게 됩니다. 내친 김에 대학원에도 진학해 학계에 남고 싶어 합니다. 긍정적 마인드로 앞을 향해가는 그녀의 성정을 알기에 그것 역시 어려운 고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취미이자 특기인 공부에 매진하는 그녀가 경이롭기만 합니다.바쁜 와중에도 그녀는 친구들의 생일이나 경조사 등을 챙깁니다. 그녀를 알게 된 후, 받는 데만 익숙했지 뭔가를 제대로 줘 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녀보다 한 발 늦습니다. 이번엔 큰 맘 먹고 한 발 앞서보기로 했습니다. 간호사 면허 취득 축하겸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탄탄대로만 남은 그녀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졸업파티에서 입을 한복을 선물할까, 액세서리를 좋아하니 목걸이를 선물할까 이것저것 고민했습니다. 기왕이면 그녀가 받고 싶은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몇 번의 밀당 끝에 제 진심을 안 그녀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청진기를 받고 싶답니다. 미국 간호사는 청진기가 필수랍니다. 선물 받은 청진기로 진료하는 간호사라니, 생각만 해도 멋진 일입니다. 아마존에 접속해 전문 청진기를 검색해봅니다. 그녀가 모델명까지는 끝내 말하지 않으니 화면 앞의 제 눈은 까막눈이 될 뿐입니다. 아쉽지만 차선책으로 송금이란 선물을 택했습니다. 며칠 뒤 청진기에다 제 이름을 새기고 싶다며 그녀가 연락해왔습니다. 쑥스럽지만 고집 피울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러라고 했습니다.작년 미국에서 만나자는 약속도 놓쳤고, 올해 서울에서 재회하자는 통화도 코로나 때문에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만남 유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마음이 있는 한, 우정은 계속되는 것이니까요. 간호사로 멋지게 성장할 그녀를 멀리서나마 응원해봅니다.

2020-09-09

고봉의 사랑

어릴 적 기억 하나. 명절 끝, 큰댁에서 돌아온 엄마의 할머니에 대한 유일한 뒷담화는 ‘밥 많이 퍼라’라는 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엌으로 연결된 안방 쪽문 앞에 자리한 할머니는 큰엄마를 비롯한 며느리들이 밥상을 준비할 때면 매번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밥 많이 퍼라.” 쌀이 귀하던 그 시절 손님을 대하는 안주인의 진심은 고봉밥이 대신 말해주었겠지요. 정 많은 할머니식 그 말씀이 엄마와 큰엄마는 그렇게 듣기 싫었답니다.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인데, 매번 부엌문 앞에 바투 앉아 ‘밥 높이’를 관장하시니 성가신 맘이 없지 않았겠지요. 알고 있는데 자꾸 말하거나 좋은 말도 되풀이 하면 잔소리가 되니까요.며느리였던 엄마의 푸념이 이해가 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할머니의 그 포지션에 더 정감이 가 슬며시 미소 짓곤 합니다.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 밥 인심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안주인의 결연한 의지 같은 게 보인다고나 할까요. 살짝, ‘밥 많이 퍼라’의 그 대상이 누구였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십중팔구는 할머니의 사위들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시집 간 딸을 둔 엄마에게 가장 반갑고 귀한 손님은 사위였을 테니까요. 사위에게 야박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은 친정엄마는 없을 것입니다. 밥심으로 살던 시대였으니 오죽했을까요.이제 밥심이 아니라 다이어트심(?)으로 살아가는 게 더 효율적인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럼에도 귀한 손님에게 고봉밥을 푸는 그 정서는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할머니 연세를 훨씬 넘긴 엄마도 당신 사위들이 오면 밥을 봉두(峯頭)로 푸십니다. 할머니처럼 잔정 깃든 잔소리만 하지 않을 뿐 그 옛날의 할머니가 원했던 것처럼 밥공기 가득 주걱 놀림을 하십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봅니다.아이러니하게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위가 오는 날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집니다. 평소 남편과 아들에게는 바쁘다는 핑계로 라면밥이나 해주고 시중 김밥으로 때울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딸내미 내외가 온다는 소식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끌’해서 없는 솜씨를 발휘합니다. 며느리든 사위든 내 집에 든 귀한 손님이라는 생각에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은 거지요. 보통 때는 그리 즐기지 않던 고기 메뉴에다 밑반찬까지 신경 씁니다. 밥그릇은 기존의 미니 밥공기가 아니라 좀 더 큰 그릇으로 세팅합니다. 당연히 고봉밥을 담습니다. 혹여 체면치레라도 할까봐 처음부터 가득 푸는 거지요.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집니다. 그 옛날 할머니의 ‘밥 많이 퍼라’라는 말씀이 DNA처럼 대물림 되는 것이지요.그렇게 밥을 푸다보면 한쪽에선 또 다른 말씀들이 들립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제발, 밥 좀 적게 퍼라.” 여분의 밥을 옆에 두면 더 깔끔하다나요. 착하고 눈치 빠른 사위는 적당히 배불러도 그 밥을 더 덜어먹겠지만 어쩐지 그건 제 방식은 아닙니다. 아들까지 남편 편입니다. “엄마, 입장 바꿔 생각해보세요. 제가 결혼해서 처가에 가서 밥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면 엄마 맘이 편하시겠어요?” 많으면 덜거나 남기면 되지 그게 고통일 것까지야 싶은 맘에 순간적으로 욱합니다. 하지만 아들 말에 의하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네요. 생각해서 주신 건데 즉각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고통을 당한다? 이 부분에서 심장이 덜컥합니다. 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본 강의 장면 하나. 사랑의 관점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부분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두 공기, 세 공기, 한 됫박, 한 말이 아니랍니다. ‘한 공기’면 충분하답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 넘치는 사랑은 타자에게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요지였지요. 한 됫박이나 한 말의 사랑을 주고 싶은 것은 나의 입장이지 상대의 입장은 아니랍니다. 상대는 소박하게 담은 단 한 공기의 밥이면 족한데, 주는 이는 고봉밥으로 두 공기, 세 공기 아니 한 됫박을 주고 싶어 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만큼을 감지하지 못한 채 오버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나요.김살로메소설가맞는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이후에도 고봉밥을 푸는 마음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밥이라면 고봉밥이어야지요. 밥주걱 든 입장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겁니다. 줄 게 마땅찮으니 밥이라도 따뜻이 먹이고자 하는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지요. 상대도 그 마음을 알고 최선을 다해 밥상 앞에 앉는 거지요.‘밥 많이 퍼라’시며 부뚜막을 내려 보던 할머니도 사랑이고 말없이 밥을 봉두로 푸신 엄마도 사랑입니다. 물론, ‘밥 적게 퍼라’고 말하는 남편과 아들도 사랑이고 그걸 재바르게 접수하지 못하고 앞선 두 여인을 따라하는 제 마음도 사랑입니다. 그것은 상대의 불편까지는 헤아릴 겨를이 없는, 상대가 원할 것만을 짐작하는 ‘찐’ 사랑입니다.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 그 모든 것을 고봉의 사랑이라 명명하겠습니다.

2020-09-02

다래담배집

오래 전, 은사님 개인전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빛바랜 담배 간판이 흰 벽에 걸려 있고, 처마 아래엔 노란 벤치가 놓여 있었지요. 휘돌아선 골목 어디선가 장정 한둘이 담배를 사러 나올 것만 같은 낯익은 풍경이었습니다. 제 어린 날을 상기시키는 담배포가 있는 풍경이었지요.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기억의 이동선이 천천히 뒤로 되감기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아련한 감동과 먹먹함에 오래 그림 앞에 머물렀습니다.시골에 살 때 우리집은 담배포를 했습니다. 담배와 잡화를 파는 구멍가게였지요. 가게는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본채와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다래 담배집. ‘달’이 뜨고 ‘내’가 흐르는 ‘다래’라는 마을 이름을 따라 사람들은 가게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식구들끼리는 살림집인 본채와 구분하기 위해 ‘점빵’이라고 불렀습니다. 전매청에서 허가를 내주는 담배포는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마을 이십 리 안팎에 담배포가 하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담배 가게가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자연스레 다래 담배집은 이웃 동네끼리의 정보 집합소 역할을 했습니다. 웬만한 소식은 다래 담배집에서 퍼졌다가 다시 모이곤 했습니다.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담배포는 그야말로 불이 났습니다. 아직 십 리나 남은 읍내 장터, 신작로를 지나던 장꾼들은 입 동무라도 삼으려고 담배 한 두 갑씩을 사갔습니다. 귀가하는 해거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보루 째 사들고 가곤 했습니다. 새마을, 청자, 태양, 거북선 그리고 엽초.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그 담배 이름들을 사람들은 부지런히도 찾았습니다. 제 눈에는 라면땅, 크라운 산도, 눈깔사탕이 더 맛있어 뵈는데 어른들은 그런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네모난 곽에 스무 개씩 하얀 막대처럼 담긴 담배만을 원했습니다. 어린 제게 그건 불가사의 세계였습니다. 호기심에 골방 장롱에 숨어들어 담뱃불을 붙여 본 것은 담배포집 딸로서 당연히 겪은 에피소드이긴 합니다. 글로 회상할 만큼 극적인 내용이 아닌 게 아쉽다고나 할까요.산골에 추위가 온다는 신호는 담배포 간판 흔들리는 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겨울이 깊어가는 내내 그 소리는 크레센도로 변주되곤 했습니다. 세찬 바람 골을 따라 담배 간판은 쇳소리를 내며 울부짖었습니다. 휘익휘익 피리릭피리릭. 무섭고 떨리는 소리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론 먼 곳의 피리소리 같은 특이한 내음이 묻어나곤 했습니다. 익숙한 공포와 생경한 음색이 만들어내는 그 소리에 한껏 귀가 쏠리곤 했습니다. 어린 귀에 박히는 복잡 미묘하고도 이국적인 그 소리가 싫지는 않았습니다.가을걷이를 끝낸 남정네들은 담배포가 있는 가겟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좁았을 그 공간이 사랑방 구실을 했습니다. 무료한 겨울이 어서 빨리 지나기를 바라면서 장정들은 화투장을 두드리고, 장기알을 주고받곤 했습니다. 제 귀는 어른들의 그런 소요보다 담배간판 흔들리는 소리에 고정되곤 했습니다. 공포와 매혹이 공존하는 칼바람 연주 속에서 지금으로 치자면 얼음 왕국 같은 조금은 차갑고 엉뚱한 동화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지요. 아버지 등 곁에 꼽사리로 끼어 담배 간판 소리에 귀를 열어놓고 있다 보면 어느 새 가겟방은 자욱한 담배연기로 차오르곤 했습니다.마을은 댐으로 수몰될 예정이었고, 너무 이른 나이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시에 버려진 저는 한동안 우리집 담배포가 몹시 그리웠습니다. 그 겨울, 담배 연기 가득했던 점빵의 번잡스러움도, 빈둥거리거나 바지런했던 마을 장정들의 거친 숨소리도 모두 떠올랐습니다. 북풍이 지날 때마다 쇳소리를 내며 울부짖다 이내 피리 소리로 바뀌던 간판 소리는 그 리듬까지 기억날 정도였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옛날 물건들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만납니다. 그곳에서 추억 서린 청자, 새마을, 거북선 같은 담배를 만나면 슬그머니 미소가 그려집니다. 드물게 70년대 풍 붉은 담배포 간판이라도 눈에 띄면 옛친구를 만난 것 같은 아련함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곤 합니다. 이 글을 정리하다 말고 담배포가 있던 신작로 풍경이 궁금했습니다.오랜만에 고향마을에 들렀습니다. 옛사람 떠난 자리에 댐 물만 가득합니다. 댐 어귀를 서성입니다. 선착장 오른쪽으로 집터 위치를 가늠해 봅니다. 늪으로 변한 저 땅 어디쯤에 신작로와 담배포와 살림집이 있었지요. 만수위가 되면 그 늪조차 물속에 잠겨들곤 한다지요. 먼발치로 옛집을 떠올리며 그 겨울 담배 간판의 시간으로 다시 연결합니다. 뒷산을 넘어온 황소바람이 담벼락을 휘돌아 간판을 깨웁니다. 이내 담배, 라는 빨간 글씨가 겹쳐지며 쇠 간판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공포와 매혹이 연주하던 그 유년의 무대로 서서히 빠져듭니다.

2020-08-26

때론 혼자의 시간

때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피치 못해 사회적 관계망에 부대껴야 하는 현대인들. 무리에 섞인 단독자의 자아는 덜컹거리고 욱신거립니다. 한시 바삐 정돈된 자기만의 시공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오롯한 혼자를 느낄 때의 해방감과 안온함이란! 다수의 무관심이라는 횡포에 방치된 자아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말한다면 무리에서 탈출해 자발적 유폐를 지향하는 자아를 ‘군중 밖의 희열’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요.우양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본 그림 한 점을 떠올립니다. 독일작가 요르그 임멘도르프의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Dinner with friends)’. 별 생각 없이 전시작들을 둘러보다가 그 그림 앞에서 발길이 멈춘 적이 있습니다. 가로 5미터가 넘는 유화 작품은 카툰의 성격이라기엔 어딘가 무거워 보이고 일러스트라기엔 풍부한 얘기가 들어있었습니다.어두운 초록빛 배경 속, 긴 식탁을 중심으로 아홉 명의 친구들이 앉아 있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이를 테면 정치가, 사업가, 협잡꾼, 기자 등등의 타이틀을 단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견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모임인지라 만찬 테이블이 화려합니다. 재떨이, 꽃병 등 소품 하나하나까지도 신경 쓴 흔적이 보입니다. 고급한 음식과 포도주 위로 정치적 찌라시들이 날아다닙니다. 그래서일까요. 만찬 자리가 그리 편하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자세히 보니 노동자 차림의 붉은 모자를 쓴 사내도 보입니다. 유일한 불청객일까요? 둘 곳 없는 시선을 제 앞의 음식에만 가두고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옆 사람들은 붉은 모자에게는 말조차 건네지 않습니다. 저 건너편,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의 논쟁에 귀를 열어 두느라 손에 든 담배조차 잊을 지경입니다. 그 둘은 그들만의 이슈에 빠져 나머지 친구들에게 눈길을 줄 여력이 없습니다.정치인 친구의 속절없는 야심을 보면서 사업가 친구는 줄을 댈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허풍과 위선을 일삼아 온 고급 룸펜은 정치인 친구에게 맞장구를 칩니다. 모두들 눈동자 굴리기에 바쁩니다. 친구들과의 저녁식탁은 하염없이 겉돌 뿐입니다. 포크와 나이프는 어디에 있는지, 포도주 맛은 신지 쓴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상이몽이란 사자성어를 배운 임멘도르프가 회화적 기법으로 그 뜻을 알리려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여기서 그치면 클라이맥스 없는 스토리가 되겠지요. 하단 오른쪽, 관람자를 응시하는 듯한 표정의 화가 자화상이 보입니다. 그림의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현장성을 증명하기 위한 작가의 의지로 읽힙니다. 입을 벌린 채 의자를 뒤로 빼서 앉은 화가는 이 만찬의 내레이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화가는 저녁식사 자리의 처음과 끝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마다 낀 금반지와 과장된 당나귀 귀로 자신을 희화화해 만찬 자체가 우스꽝스런 퍼포먼스임을 암시합니다.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의 환상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는 것이지요. 그림 속 화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니들 알아? 관계는 때로 피로하다고. 손가락에 낀 화려한 반지만큼이나 불편하다고.이 작품에서 자화상은 낭만적 방관자가 아닌 위트 있는 고발자로서 기능합니다. 붓 터치의 적나라한 은유를 통해 사회적 얼개의 위선과 부질없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무리 속의 자아가 겪는, 어찌할 수 없는 혼돈에 대한 알레고리와 풍자로 이만한 그림이 있을까요. 2차 세계대전 전후 작가가 겪은 개인적 트라우마나 사회적 경험이 이런 통렬한 비판 의식을 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김살로메소설가원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림 속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같은 상황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초록실 밀실로 표현된 그 공간은 현대인의 낭만적 관계 부재를 안타까워하는 매개물로 보입니다. 예민한 눈썰미로 세세한 것까지 포착해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작가는 어쩌면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민 서린 그 녹색 분위기를 통해 깊은 성찰로써 관계망 속에서의 스스로를 재조명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덜컹거리고 욱신거리는 찌꺼기가 남는다면 그것을 끊어낼 배짱이라도 발휘하라고 조언하는 것 같습니다.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친구들과의 저녁 식탁에 초대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의미한 자리라면 그 사람은 애꿎게도 핸드폰 화면을 터치하거나 진주 귀걸이가 달린 귓밥이나 문지르고 있겠지요. 일부러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채 위악을 떠는 임멘도르프의 통찰을 흉내 낼 수 없거나, 그 자리를 스스로 성찰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그 자리를 벗어나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도 좋겠지요. 가까운 숲 모퉁이를 돌아들면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를 해설하는 임멘도르프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0-08-19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이어집니다. 물난리로 전국이 혼란스럽습니다. 7월 장마, 8월 무더위라는 기상 패턴이 무색할 정도로 안타까운 날들입니다. 위험 수위를 넘은 물길은 아량을 모릅니다. 교각을 삼키고 제방을 무너뜨리더니, 순식간에 들판의 경계를 없애고 집들을 고립시킵니다.그나마 이곳은 장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습니다. 점심 약속을 위해 길을 나섭니다. 비 그친 하늘이 가을날을 앞당겨 놓은 것 같습니다. 좀 전까지 떠올린 ‘위험수위’에 대한 단상이 지워질 정도로 산뜻한 풍광입니다. 갓길에 차를 세워 가없이 푸르고 높은 하늘빛을 맘껏 담는 여유도 부려봅니다.주유소에 들릅니다. 세차 먼저 하고 주유해도 되나요? 잠깐 갠 날씨 덕에 목소리 톤이 눈치 없이 높았나봅니다. 기름 넣어도 세차 할인은 안 됩니다. 심드렁한 직원의 대답에는 ‘나 귀찮으니 건드리지 마시오’하는 기색이 묻어납니다. 고객에게 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했을 터이니 그 정도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청명해졌다지만 여전한 고습도 날씨 앞에서 한결같은 친절 모드를 유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다음이 문젭니다. 단 몇 초 사이, 차창문을 닫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직원은 냅다 차에다 물을 뿌리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전 제스처도 경고도 없는 돌발행동입니다. 쌓인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고객에게 푸는 모양입니다. 급히 창문을 올려 물세례는 면했지만 썩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사소한 지점에서 손상 받는 거니까요. 무시당한 게 분명한데 화를 내기엔 미묘한 순간이랄까요.세차기가 돌아가는 동안 크게 쉼 호흡을 합니다. 이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몇 번 되뇝니다. 십 음절로 된 그 말을 되풀이하다보면 달아오른 얼굴빛이 가라앉고 벌렁거리던 심장도 누그러집니다. 마법의 주문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찾는 일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을 건너야 할 때 활용하는 저만의 방법입니다.점심 장소인 일식집에 도착합니다. 위로 둥근 손잡이가 달린 육수 냄비를 양손에 든 점원이 테이블로 다가옵니다. 얼마나 조심성 없게 들고 오는지 뜨거운 국물이 넘치는 게 다 보입니다. 어이쿠, 어이쿠 조심하라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기어이 가까이 앉은 제게 육수를 쏟고 맙니다. 뜨거운 물기가 스치자 놀란 개구리처럼 몸이 절로 솟구칩니다.국물이 원피스 허리춤을 타고 허벅지로 흘러내립니다. 일행들도 놀라 휴지와 행주를 들고 모여듭니다. 한데 아르바이트생인 듯한 점원은 남 일 보듯 “괜찮아요”라는 한 마디가 끝입니다.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게 일어난다는 듯 테이블 세팅에만 손길을 놀립니다. 맘에 없더라도 미안함이나 겸연쩍음 정도의 액션을 취하는 게 당연한 순서일 텐데 그럴 기미조차 없습니다. 애써 무시하는 품새에서 무례함만 도드라집니다.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서운함을 내비치거나 클레임을 건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달라질 마음이 없는 자 앞에서 정당한 한 말씀보다 나쁜 충고는 없습니다.차라리 주인이 그렇게 응대했다면 속 시원히 뭔가를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힘없고 스트레스만 많을 ‘을’을 상대해봤자 찜찜함만 남겠지요. 어찌할 수 없는 소심함으로 소탈한 척(실은 허탈하게) 웃었을 뿐입니다. 속절없이 예의 무궁화꽃송이만 피웁니다.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그렇게 가라앉히다보니 덴 피부의 열감도 숙지고 속도 편안해집니다. 주유소 직원이든, 일식집 점원이든 그들이 보기에 상대가 긴장할 만한 대상이었다면 그토록 투박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위압적인 느낌을 주거나 사회적 지위가 검증된 이들 앞이었다면 한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을 테고, 손님 입장에서 불쾌한 상황으로 이어지지도 않았겠지요. 혹여 실수로 그런 그림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금세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함을 표현했겠지요.김살로메소설가큰 것 앞에 작아지고 작은 것 앞에 커지며, 큰 것에 분노하는 일보다 작은 일에 흥분하기 쉬운 게 인간입니다. 들고 일어설 때는 물러나고, 물러서도 좋을 때 일어나는 게 인간의 속성이구요. 삶은 달콤함 못지않은 위험수위의 연속입니다. 을의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위험수위 근처에 다다른 을의 스트레스가 갑에게 맞닿기보다 엇비슷한 다른 을에게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씁쓸한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작은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마음을 다칩니다. 그것이 곧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습하고 연습하는 이유가 될 테지만요.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스스로 하는 무궁화꽃 술래놀이의 필요충분조건은 누가 뭐래도 작고 사소한 세계에 한합니다. 사무치도록 화가 쌓인 경우, 이를 테면 그것이 갑을 향한 것이라면 정공법을 택해야겠지요. 그땐 맞서고 부딪치는 일만이 온당할까요. 날씨 탓이든 상황 탓이든 이 세상 모든 을들이 스트레스 덜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위가 낮아지듯 무궁화꽃 주문을 되뇌는 날도 줄어들겠지요.

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