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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문읽기를 너머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오래된 습관이다. 신문을 읽고 스크랩하는 일이.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 습관이 삼십여 년 계속되고 있다. 이른 새벽, 배달되는 두 신문을 비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신문읽기는 나를 변화시킨 혁명이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신문을 통해 해결하였고 문제의식도 신문을 통해 키우게 되었다. 공적 권위를 지닌 신문에 기사화된 사실 이면에 무엇이 과연 진실인지, 동일한 사건조차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질문했다. 신문읽기 습관은 ‘왜’ 공부를 하려고 하고 어떤 공부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대학에서 ‘글쓰기’와 ‘토론’과목을 가르치며 신문을 활용한 교육을 하고 있다. 수업 주제와 관련해 스크랩했던 칼럼을 함께 살펴보거나 그날의 중요 이슈로 논의를 시작하곤 한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매일 읽기를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습관이 신문읽기임을 강조한다. 토론을 하려면 ‘지금 여기’ 뜨거운 이슈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또 쟁점을 잘 이해하려면 성격이 확연히 다른 신문들을 비교해 읽으면 도움이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한다.신문은 ‘모자이크적이며 참여적’이다. 먀셜 맥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신문이 “공공의 참여를 제공하는 집단적 고백의 형태”라고 하였다. 사설만 보더라도 주제나 방향이 회의를 거쳐 결정되고 기사는 기자들이 발로 뛰며 취재한 공동 작업이기도 하다. 신문의 각종 지면은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매일 시끄럽게 쏟아낸다. 결국 신문을 읽는 일은 외부세계를 자신의 삶으로 옮겨놓는 과정이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일이자 공동체의 문제라는 점을 신문읽기를 통해 인식하게 되는 일이다.신문의 활자를 ‘읽는’ 일은 스크린을 ‘보는’ 것과 다른 맥락에 있다. 신문읽기는 행간을 파악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한다. 신문이 사실상 정치권력과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신문이 어떻게 편집되고 유통되고 있는지 꿰뚫어보는 독자의 시선은 중요하다. 따라서 사회 현실을 통찰력 있게 바라보는 깨어 있는 시민은 유튜브 소비자가 아니라 지금도 신문을 읽는 독자다. 그들은 날마다 신문을 통해 문제의식을 새롭게 갖고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한 비판적 시선을 내려놓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경북매일신문과의 인연을 생각해 본다. 독자로서 신문을 읽는 것을 너머 신문에 칼럼을 쓰는 저자로서의 기쁨을 누렸다. 종이신문을 꼼꼼히 읽는 습관 덕분에 신문이라는 매체에 글을 쓰는 부담은 덜했지만,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두려움도 있었다. “성장하는 영혼이 세상을 성장시킨다”‘청파서재’ 코너의 문을 닫으며 다시 마음에 새기는 말이다.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게 하는데 쓰임이 되고 싶다는 바람, 나를 통과한 말과 글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다가갔으면 하는 소망이, 여전히 있다. 신문을 읽으면서 또 신문에 글을 쓰면서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생각을 나누는 길에 함께 해주신 경북매일신문의 독자들에게 굿바이 인사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0-02-17

코로나 바이러스의 폭주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매개변수이자 결정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윌리엄 맥닐은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감염성 병원균의 돌연변이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도 안정된 생태계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있다. 마스크 품귀현상이 나올 만큼 우리 사회를 무력하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생태적 위기는 모두에게 무차별적인 듯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상당한 복잡성과 이질성,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신종 바이러스인 ‘코로나’는 ‘메르스’와 ‘에볼라’ 사태처럼 사실상 누구든 위험대상으로 만들 만큼 강력하다.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중국으로의 출입국 제한조치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 ‘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분석할 때 ‘위험’이라는 개념을 추가하였다. 테러, 사건 사고의 불확실성, 재난의 국제화에서 볼 수 있듯이 각종 요인이 연계되어 작용하는 ‘위험사회(Risk Society)’가 되었다. 생태 위기로 인한 질병목록이 증가되고 수많은 위험 요소들이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시대가 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 위기는 국가 단위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다. 불가예측적인 위험의 속도로 한 국가의 권능에 의탁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위험사회에서 특히 ‘위험’이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을 분리하고 분열시킨다는 점이다. 우한지역에 사는 교민들을 전세기편으로 입국시키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련의 사태가 그것이다. 감염자는 사회로부터 격리조치 당하고 각자의 안전을 위해 서로를 불신하는 징후가 곳곳에 잠복되어 있다. 이에 정부에게만 기대거나 정부 주도의 하향식 거버먼트(government)로는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시민들도 문제해결과정의 주체가 되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중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을 바라보거나 방관하지 않고, 공익 차원에서 적극 협력하는 ‘아래로부터의’ 자율적 연대가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다.시민사회 안전을 위해 종합적인 전략과 대안이 요청된다.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마다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씻기, 옷소매로 가리고 기침하기”와 같은 예방수칙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위생문제로 단순 치환하기보다 예방과 관리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기반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요청된다. 잠재적 위험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계층에 대해 ‘우리’ 문제라는 인식하에 마음을 모아야 한다. 위기 상황은 정부 권력이나 영웅적인 지도자가 해결할 수 없다. 위기가 위험으로 빠지지 않고 문제해결의 기회가 되려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2020-02-03

청소년 유권자가 온다

“선거는 드러나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제도다.”데이비드 트루만은 말했다. 선거는 시민들이 정치의 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통로다. 이제 18세 청소년들이 선거권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의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최소한의 정치참여로서 선거권이 주어졌다. 2005년 만19세로 내려진 선거 연령이 다시 14년만에 만18세로 낮아져 21대 총선에서 53만명의 청소년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1.2%에 불과하지만 청소년 유권자들이 2020년 한국정치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현재 한국사회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정당정치의 부실이다. 정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하건만, 극한적인 여야 대립으로 투쟁 일변도의 거리정치가 일상이 되었다. 뒤베르제는 정치는 투쟁과 통합이 공존하는 야누스의 얼굴과 같다고 하였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고 대립하는 이면에 구성원들이 안정을 도모하면서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상황은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기는커녕 소용돌이 정치의 근원이 되고 있다. 상식을 벗어난 정당의 꼼수도 한몫하고 있다.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그것이다. 지난 해 말 통과된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기도 전에 선거 결과가 가져올 유불리를 계산하여 비례자유한국당, 비례민주당 등 총선용 정당이 거론되고 보수, 진보세력이 헤쳐모이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의 혼란으로 정치적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고 유사명칭 창당을 불허했지만 들은체 만체다. 계속 거대 정당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당의 간판을 바꾸는 일은 문제가 아닌듯하다. 선거 때만 되면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과 후보자들로 정치판이 북새통이다. 공당으로서의 책임의식은 고사하고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행태에 정치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고 있다.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정치참여에 기반한다. 더 이상 정치를 구경거리나 사각지대에 두어서는 곤란하겠다. 유권자로서 ‘제대로’ 된 정당을 선택하는 일은 민주주의를 살리는 일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자격을 가진 다수의 시민들의 의지가 투표로 결집되어 그것에 따라 지배되는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했던 제임스 브라이스의 언급처럼, 민주주의를 유지시키는 힘은 유권자의 수준이다.선거권은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입장권이다. 시민권의 획득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투표권 행사는 중요하다. 새로운 유권자로 진입한 청소년들이 기존에 무력했던 정치의 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순한 선거교육을 넘어서 주체적으로 사회문제를 인식하도록 이끄는 비판적 사고와 토론교육이 요청된다. 민주시민의 탄생을 위한 청소년 유권자교육이 교실 안팎에서 시작되어야 할 때다.

2020-01-20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월든’이 묻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나의 하루하루는 24시간으로 쪼개져 시계의 재깍재깍하는 소리에 먹혀들어가는 그런 하루가 아니었다.”‘월든’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호화로운 가구, 맛있는 요리,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월든 호숫가 근처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소로우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라며, 자신이 숲으로 들어간 이유도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자신이 헛된 삶을 살았구나 깨닫지 않도록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소로우가 ‘월든’에서 던진 질문을 통해 2019년을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본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소로우는 ‘지금 여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시간에 쫓기듯이 분주하게 사는 삶은 결국 우리의 생을 낭비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만 하고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병들 때를 대비해 돈을 벌려고 애쓴 나머지 무리한 결과로 결국 병이 들고 마는 우리의 현실을 꼬집는다. 그는 ‘운명을 개선해보려는 노력은 보류한 채 가난하게 타고난 자신의 신세만을 한탄하는 사람들과, 찌꺼기 같은 부를 축적하여 겉으로는 부유하지만 스스로 금과 은으로 된 족쇄를 찬 사람들’을 향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월든에서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그 어느 시대도 ‘지금’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다”며 깨어 있는 삶을 강조한다. 인간의 영혼과 오늘이라는 시점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임을 보여준다.소로우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거리의 천박함을 넘어서서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주는” 고전 독서의 가치를 강조한다. 심심풀이로 하는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는 독서는 참다운 독서가 아니라고 하며,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가 진정한 의미의 독서라고 하였다. 독서는 그가 머물었던 콩코드 지역의 인물들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며 그들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자, 고대의 위인들만큼 훌륭해지려면 그들이 얼마나 훌륭했던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였다. 생계를 유지하는데 바빠 책읽기를 등한시해 왔던 성인들을 위해 마을 하나하나가 대학이 되어야 한다며, 배움은 평생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였다.소로우는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고 역설하였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만들어가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삶을 표현하기를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이렇듯 2019년에 다시 읽은 소로우의 ‘월든’은 여전히 빛나는 구절들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1845년 소로우가 던진 질문은 2020년을 맞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그 화두로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시작할 일이다.

2020-01-06

당신의 귀인(貴人)은 누구인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운칠기삼(運七氣三)’, ‘운구복일(運九福一)’이라고 한다. 똑같이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누군가는 승승장구 앞으로 나아가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하기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며 하는 말이다. 사회적 성공은 자신이 가진 능력이나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로버트 H. 프랭크는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행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생의 중대한 성취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 대부분이 행운아”라며 ‘실력주의’라는 신화에 도전한다. 이제 인사평가가 끝나고 인사이동이 시작될 시기다. ‘누군가’의 평가가 앞으로 자신의 삶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12월에 생각해 보는 질문, 당신의 삶에 도움을 준 귀인은 누구인가?성공과 실패는 한 개인의 노력과 능력 여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평소 맺어온 관계와 네트워크의 질이 성공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경쟁의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결정적인 누군가가 있다면 동일한 조건의 다른 이들보다 더 쉽게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삶은 혼자 힘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힘은 결국 네트워크 효과다. 등 뒤에서 기분 좋게 밀어주는 순풍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속도를 더해 줄 수 있으나, 강한 역풍은 앞으로 한 발짝 전진하는 것조차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그런 점에서 자신이 이룬 그 어떤 성공에도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능력이 있어 그 자리까지 오른 게 아니라 누군가가 이끌어준 덕분에 거기까지 갔고 그만큼 이룬 것이라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하다. 이전투구의 현실에서도 ‘밑지고 사는 게 밑지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믿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삶의 끝은 명확하다. 베풀어준 것이 없으니 받을 것도 없고 먼저 배려하지 않았으니 누군가의 마음에 따스한 존재로 기억될 리 없다. 유불리만 따져 당장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사람은 묵묵히 헌신하고 겸손하게 행동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평판은 그 사람이 만난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서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도 우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더 특별하게 자리하였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궁극적으로 관계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지,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행복은 ‘아는 사람이 많다’는 숫자에 있지 않다.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고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과의 깊은 만남에 깃들어 있다. 좋은 관계망이 좋은 삶을 만들어주기에 자신의 주변과 지금까지의 네트워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신 곁을 묵묵히 지켜준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귀인이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과, 당신 자신이 누군가의 삶을 이끌어주는 귀인이 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 필요한 때다.

2019-12-16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구해줘 홈즈!’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25평 기준으로 4억원 상승했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서울 25평 아파트가 평균 12억6천만원으로 지난 2년 반 동안 32%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 1.3%와 비교해 볼 때 아파트 가격이 12배나 뛰었다. 중산층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도 쉽게 마련하기 어려운 아파트 가격이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고 하였다.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좌절하고 있는 서민들의 체감과는 거리가 있는 답변이었다. 진보정권이기에 ‘혹시나’ 했던 기대가 부동산 문제에서 ‘역시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부동산 공화국에서 서울은 모순의 현장이다. 다주택자와 무주택자, 건물주와 세입자의 간극이 불평등 현상을 보여준다.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과 집 없이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출발부터 다르다. 부동산으로 매년 수억원의 불로소득을 버는 소수와, 허리띠를 졸라매도 서울에서 집 한 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대다수 서민이 존재한다. 강준만은 바벨탑공화국에서 ‘욕망이 들끓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발한다. 공동체는 없고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는 바벨탑 멘탈리티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온통 돈 버는 일과 소비하는 일로 시끌벅적한 욕망의 도시”인 서울로 집중화된 탐욕의 문화구조를 분석한다.부동산 불패 신화는 사실상 전국을 투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말을 믿는 것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 지 오래다. 부자들은 정권마다 달라지는 부동산 정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2019 전국민중대회’ 참가자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유례없이 심화되고 있는데 사회정의를 확립하려는 노력은 실종 상태에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통계청의 ‘2019 사회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다섯 명 중에 한 명만이 “일생동안 노력한다면 본인 세대에서 개인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자식 세대에서는 계층 상승의 가능성이 더 희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부와 권력이 부동산을 통해 대물림되면서 사실상 계급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일요일 밤에 하는 MBC 구해줘! 홈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다. 의뢰인들이 제시하는 비용 안에서 최고의 효용과 만족을 주는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뜨는 이유는 집에 대한 기대와 욕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내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 평생의 바람이다. 그러나 서울의 아파트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억 단위로 뛰고 있다. 삶의 질은 어디에 사는가 공간의 영향을 받는데, 정부의 주택 정책이 서민들의 팍팍한 삶에 단비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가 되지 않도록 서민의 현실 속에 발을 디딘 부동산 정책을 기대한다.

2019-12-02

늦가을에 배우는 인생 수업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뇌는 죽음을 다른 사람의 일로 생각하게 만든다.”‘뉴스위크’에 실린 이스라엘 바르일란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죽음이라는 정보를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으로 분류함으로써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도록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보편적인 죽음의 문제를 자신만큼은 예외로 인식하는 뇌의 방어기제로, 부고 소식을 접해도 남의 일로 여겨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린 모두 죽는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는 없다. 문득 죽음의 문제를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해보면 성공과 성취만을 좇아온 삶을 리셋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괴테는 말한다. “모든 사람은 성공하려고만 할 뿐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성장하지 않는 삶이 어찌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속적 욕망에 따라 남보다 앞서기 위해 질주했던 삶이라면 내적 성장의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재물과 권력을 성공의 잣대로 여기는 사회에서 성장의 가치는 소홀히 취급된다. 그러나 성장이 멈춘 성공은 허물어지기 쉽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을 성장시켜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자기 존재적 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하버드대 교수들이 들려주는 인생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은 ‘하버드 인생 특강’에서 앤서니 사이치는 “인간의 성장은 생각과 행동이 모두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런 점에서 ‘성장’에는 ‘성숙’이 포함된다.해마다 나이테를 남기며 나무가 성장하듯 시간이 지난다고 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로 성숙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자신의 경계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을 생각하고 공동체 문제에 따스한 관심을 갖는데서 성숙은 자리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유의 지평이자 내면의 깊이가 성숙함의 본질이다. 존중과 감사, 위로와 공감, 배려와 용서는 성숙함을 보여주는 미덕이다. 자신의 존재만큼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성숙함이다. 그런 점에서 성숙함을 지닌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더불어 살 수 있는 공동체가 된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먼저이고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성장과 성숙과 거리가 먼 삶이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시작되는 시가 있다. 시 구절을 따라 음미하다 보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지난 봄과 여름에 자신이 뿌리고 땀 흘려 가꾼 것들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 거두는 가을이기에, 이 계절은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우리의 뇌가 자신의 죽음을 곱씹지 않도록 프로그램이 되었다 해도, 부인할 수 없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마지막 문이 죽음이라는 점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삶의 모습은 차이가 있다. 결국 우리 자신의 몫이다. 저물어가는 11월, 가을과 겨울의 접점에서 죽음이 던져주는 묵직한 지혜를 듣는다. 늦가을에 배우는 인생 수업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2019-11-18

맞서고 지지하는 글쓰기로 나아가길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글쓰기를 ‘위한’ 교육? 글쓰기를 ‘통한’ 교육?”국립한밭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사고와표현학회 전국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박정하 교수가 ‘전환기의 사고와 표현교육’이라는 주제를 풀어가며 던진 질문이다.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회 선생님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글쓰기 교육을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앞으로의 사고와 표현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도록 화두를 준 셈이다. 글을 쓰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대학글쓰기 교육은 글을 잘 쓰기 위한 기술과 요령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한 학기 수업만으로 향상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이끄는 일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고 글을 쓰는 궁극의 의미가 있다. 미국 대학의 글쓰기 교육은 ‘비판적 문화연구’가 주류라고 한다. 학생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지배 담론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하며 사유하는 힘을 키워가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어떤 주제나 쟁점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자신이 생각한 메시지를 소통하는 방법으로 글쓰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정치적 행동이었음을 말한다. 글을 쓰게 된 출발점이 불의를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글은 전체주의에 ‘맞서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었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된다”는 오웰의 말처럼 글쓰기는 자연스레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성찰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글쓰기 교육은 더욱 중요한 사명을 갖는다. 남들보다 더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치고받는 경쟁 논리가 개인의 불안을 낳고 공동체의 가치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깊은 숙고를 전제로 하는 일이다. 따라서 글쓰기는 변혁 기제다.이제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곧바로 이어지는 논술전형 시험을 통해 누군가는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대입논술이지만 그나마 논술시험 덕분에 학생들이 글쓰기 경험을 하며 뭔가 배우고 있지 않을까? 대학에 들어와 글쓰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경계 너머 타인도 돌아보며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의에 맞서고 공동체의 가치를 지지하는 시민의식은 글쓰기 교육을 통해 형성되지 않을까?라는 꿈을 꾸어본다. 여러 대학에서 글쓰기교육을 하고 있는 선후배 동료 교수들과 연대와 우정을 느끼며 글쓰기 교육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았던 학술대회였다. 대전 유성구의 국화축제와 동학사 가을 풍경의 여운까지 덤으로.

2019-11-04

누가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계급 아파르트헤이트가 생겨나고 있다”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로버트 퍼트넘의 지적이다. 한국 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들의 재력과 학력, 사회적 네트워크가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면서 계급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교육부 특별감사로 적발된 대학 교수들이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건만 봐도 단순히 연구윤리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논문 공저자로 등재된 이들 자녀 다수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갔거나 해외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부모의 인맥과 연줄, 특권이 편입학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학벌이 세습되고 계층이 대물림 되는데 대학 사회가 진앙지가 되고 있다.공평과 공정의 가치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 과거 교육은 계층의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다리였으나 이제 “고등교육은 오히려 불평등을 일구는 기제”가 되고 있다. 출신 성분과 관계없이 자신의 노력만으로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더 높은 학력과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갖고 있는 부모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경쟁의 장을 왜곡하고 있다. 리처드 리브스는 20 VS 80의 사회에서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위 20%가 기회를 ‘사재기’하기에 다른 아이들은 공정한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사실상 전설이 되어버린 셈이다.현재 한국 사회의 불편한 문제의 본질은 ‘불평등’이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고 있어 더 큰 문제다. 공평성의 측면을 고려해 만든 수시제도가 기회균등과 지역균형, 공교육 정상화라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운영되고 있음이 극명한 예다. 학생 개인의 노력보다 학부모의 재력과 관심, 교사의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학생부종합전형을 ‘금수저’ 전형으로 부르고 있겠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자녀들의 미래 학교를 결정하고 부모의 욕망이 자식으로 전이되는 이행기다. ‘억울하면 부모 탓을 해라’는 식의 부박한 논리가 교육 현실을 잠식하고 있다. 소수의 최상위권 학생에게만 모든 것이 집중된 나머지 학생들은 차별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누가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가? SKY 대학을 정점으로 사회적 특권이 평생 카스트처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묻는다. 대학이 계급격차를 해소하기는커녕 신분과 위계를 더욱 견고히 만들고 있다. 집안이 좋으면 무임승차가 가능한 밀실문화,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을 몰아주는 성적지상주의 구조가 문제다. 오는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주관으로 고등교육의 불평등 문제를 논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캐슬의 구조와 캐슬 밖의 목소리’를 주제로 대학의 공공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며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일 터다. 승자독식의 피라미드 구조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을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혁명이 필요하다.

2019-10-21

“잠+재력을 달라”는 학생들의 외침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잠재력은 1도 없으니 ‘잠’과 ‘재력’을 따로 달라.”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우스개 소리다. 잠재력 개발을 강조하지만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에 죽비와 같은 말이다.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하느라 언제나 잠이 부족하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인 한국에서 학생들은 건물주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다.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이 교육의 목적일터인데 실상은 거리가 멀다. 남보다 앞서야 한다며 선행학습으로 몰아치고,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지배하는 문화에서 학생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과연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있는가?한국의 ‘교육열’은 학생들의 과도한 학습노동으로 드러난다. 학생들은 옆을 돌아볼 여지도 없이 주어진 트랙 안에서 전방 질주해야 한다. 집에서 가장 먼저 나가고 가장 늦게 들어오는 이도 학생들이다. 학원을 다니며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생기부용 수행평가와 봉사활동으로 주말조차 쉴 시간이 없다. 돈과 권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부모가 대신해주거나 그도 아닌 경우 학생이 그 많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 제안한 ‘학원일요휴무제’도 지쳐가는 학생들에게 쉴 기회를 주자는 문제의식의 발로지만, 실제 학생들의 휴식권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경쟁을 조장하는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은 시들어간다.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가 쓴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는 신뢰, 공감, 진솔함, 용기, 휘게(hygge)의 가치를 강조하는 덴마크 학교 현장을 보고한다. ‘트리브젤 테스트(trivsel test)’는 ‘좋은 삶’을 체크하고 평가하는 시험으로 학교에도 적용된다. ‘식물’과 관련된 북유럽 고어인 ‘트리브젤’이 상징하듯, 인간을 기계가 아닌 식물과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 그들은 교육환경에서 “학생들이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는지, 학생들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있는지, 학생들의 사회, 정서적 발달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성적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고 강요하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는 이유를 깨달으며 질문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배우도록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며 보여주기식 교육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준다.아프리카 물소떼는 물가에 도착하려고 단체로 질주하다가 아비규환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남보다 먼저 물을 먹으려는 욕심과 속도 경쟁이 결국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결과를 낳는다. 학생들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수업시간에 졸거나 엎드려 자는 교실 풍경이 낯설지 않다. 휴일에 놀 시간은 고사하고 휴식 시간조차 없이 대학입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가는 형국이다. 남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올바른 방향을 잡아 자신의 보폭대로 나아가도록 하는 교육은 불가능한가? 학생들의 질문으로 생기가 넘치는 교실, 학생들이 각자의 잠재력이 꽃 피울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교육이 그리 어려운 일인가?

2019-09-23

“꼭 청출어람 하겠습니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선생님이 안계셨으면 이 책도 없었습니다.”개강 첫 주 학교를 찾아온 경욱군이 자신이 쓴 책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를 건네주며 속표지에 이렇게 적었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고향인 군산으로 내려가 마트를 창업한 경욱군이 카카오 브런치에 썼던 글이다. 365일 문을 닫지 않는 마트에서 바쁜 일상 틈틈이 책을 읽고 고민했던 청춘의 시간이 진솔한 문장에 담겨 있었다. 경욱군은 “글쓰기를 통해 나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주제에 대한 내 의견이 무엇인지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끊임없이 찾아나갔다.”고 했다.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다 보니, 자신의 책을 낸 제자의 모습을 보며 대학 교양교육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한 학기 수업만으로 끝나지 않는 인연이 있다. 경욱군은 2011년 ‘리더십과 의사소통’ 수업에서 만난 서강대 학생이었다. 타 대학 교양 수업이었음에도 지금까지 당시에 만났던 학생들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말한다.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었고 서로 생각을 나누며 함께 만들어갔던 즐거운 수업이었다고. 학생들은 스스로 주제를 잡아 탐색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면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교수자로서 했던 역할은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공유하고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며 질문하고 피드백하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통과한 이 시간을 기억하였다.“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단지 도울 뿐이다.” 미국 세인트 존스 대학 총장은 말한다. 대학 4년 동안 전공교육은 없다. 대신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교양교육을 통해 인재를 육성한다. 카넬로스 총장은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교육 목표라고 강조한다. ‘교수’가 없고 ‘강의’가 없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해 가는‘튜터’가 있을 뿐이다. 강의실 안팎에서 새로운 배움에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도록 자극하고,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교수는 학생의 잠재력을 믿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선배이자 코치인 것이다.경욱군은 자신의 꿈을 말한다. “단순히 돈 많은 사람보다 돈으로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미 ‘십시일반 프로젝트’, ‘고사리 희망장터’를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건네고 있음에도 그의 마음은 세상 속에 더 의미있는 실천을 꿈꾼다. 대학에서 한 학기 수업이 학생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경험적으로 믿게 된 진실이 있다. 당장의 결과로는 알 수 없는 의미 있는 성장이 그 시간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힘은 결국 글쓰기와 토론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이제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고 이들과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가 된다. “꼭 청출어람 하겠습니다”고 한 경욱군의 다짐이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이듯이.

2019-09-09

공간은 삶의 실체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학내 청소노동자도 엄연한 학교의 구성원이다.”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보도되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 구석에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에 창문도 없는 벽에 선풍기 한 대만 매달려 있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손 선풍기를 목에 걸고 폭염을 견디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 환경은 서울대학교만의 일은 아니다. 캠퍼스 곳곳에서 수고로운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청소노동자들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공간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보여준다. 로널드 아들러는 우리가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은 힘과 계급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일터, 방, 집, 우리가 권리를 갖는 물리적 공간은 모두 우리의 영역이다. 영역은 고정되어 있다.” 권력이 클수록 공간은 넓어지고 성역화된다. 군대만 보더라도 일반 병사는 한 막사에서 자고, 장교는 개인 방을 갖고, 장군은 정부가 제공하는 집을 배정받는다. 이처럼 더 큰 영역과 사생활을 허용하는 공간은 위상에 비례한다. 공간을 통해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고 구분짓는다.대학 캠퍼스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 내 위계구조에 따라 공간 격차는 당연시된다. 교수 연구실조차 정년과 비정년에 따라 다르다. 학생들을 더 많이 만나는 교육교수지만 비정년인 경우 공동연구실을 배정받는다. 학생들이 오면 장소를 찾아 이동해야 하고, 방학에는 상담실이 비어도 공동으로 비좁은 연구실을 감수해야 한다. 대학내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구분 짓기’에 따라 공간이 있어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쪽방 같았던 청소노동자들의 쉼터는 이러한 구조를 반영한 것이다.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대학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 학교 본부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투명인간처럼 존재한다. 어디에 이들의 휴게실이 있는지 대부분의 대학 구성원들은 알지 못한다. 문패도 없는 허접하고 불편한 공간에 잠시 몸을 내려놓을 뿐이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노회찬의 연설이 떠오르는 이유다.“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다.” 스테판 에셀은 최상위와 극빈층 사이의 커져가는 격차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일들에 ‘분노하라’고 외친다. 이번 서울대 사태를 계기로 대학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데 관심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새벽부터 일터로 나와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잠시나마 쉴 수 있게 제대로 된 휴게실부터 마련해 주어야 한다. 청소노동자를 지하 휴게실 폭염에 노출되도록 방치한 것은 우리의 무관심이 낳은 폭력이다. 미화노동자를 비롯해 대학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따스한 관심은, 공간 변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공간은 우리 삶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2019-08-26

진정한 ‘광복(光復)’은 지금부터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연일 폭염특보가 발령되고 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는 데도 기세가 여전하다. 최고 기온이 39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전국 곳곳에서 ‘반(反)아베’ 시위가 확대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극장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복동’과, ‘봉오동전투’가 항일영화로 받아들여져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영화 ‘김복동’은 본다”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못 보는 경우 표를 예매하는 ‘영혼보내기’가 진행되고 있다. ‘봉오동전투’는 개봉 4일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전체 예매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일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어느덧 1400회가 되며 맞이하는 제74차 8·15 광복절의 의미가 그래서 더 각별하다.‘광복(光復)’은 일본의 식민통치의 속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주권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백가쟁명 시대라고 하더라도 최근 언론에 보도된 극우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우리 안의 식민성을 돌아보게 한다. 지만원은 유튜브 방송에서 ‘반일 나선 개돼지들’이라는 제목 하에 “위안부가 창피하다”고 말한다. 엄마부대 대표 주옥순은 위안부 소녀상 옆에서 “한일동맹을 고의적으로 파탄 낸 문재인은 하야하라”고 주장하며 “아베 총리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속에 편 가르기를 하며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어려운 시국에 함께 뜻을 모으기는커녕 역사의식의 부재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우선적인 기준이다.우리들은 사회에서 태어나고 역사를 통해 성장한다. 지금의 한일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 내부가 먼저 단합하고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갈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적폐청산’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만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안의 부끄러운 모습과 모순들을 해결해가야 한다. 일본산 제품의 불매운동을 넘어서 차제에 독자적으로 경제기술을 개발하고 자력으로 설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야 한다.일본 아베정권이 경제적 압박이 시작되었다.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려면 구한말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은 무엇인지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또 다시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으려면 구호만이 아닌 구체적인 전략과 실천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친일(親日)’, ‘반일(反日)’이라는 프레임 논쟁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극일(克日)’을 하려면 ‘지일(知日)’과 ‘용일(用日)’의 마인드가 요청된다. 미 국무성이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를 활용하여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문화적 특성을 파악해 전후 관리를 구상하고 도모했던 것처럼, 일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일본에 대한 격앙된 감정과 우리 내부의 소모적 논쟁을 극복하고, 일본의 ‘혼네’를 정확히 파악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지난 주 한국사고와표현학회 동학들과 인제 만해마을로 하계 워크숍을 다녀온 덕분에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의 행적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조선인은 조선 것으로’ 라는 물산장려운동과 국산품 애용운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자주자립 운동을 이끈 한용운 선생은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라고 강조하였다. “개인은 개인의 자존심이 있고 국가는 국가의 자존심이 있나니 자존심이 있는 민족은 남의 나라의 간섭을 절대로 받지 아니한다”며 재판정에서 열변을 토하는 만해 소식을 보도한 오래된 신문의 글이 마음에 남았다. 폭염과 열대야로 힘든 여름을 보내면서 더욱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한일갈등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대립되는 시선이다. 우리의 앞날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열망하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한’광복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겠는가?

2019-08-12

촛불 시민이 만들어가는 ‘준비시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엔 동참한다” 아베정권에 반대하며 일본 제품을사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상품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7월에 개설된 ‘노노재팬’은 대체재를 제안하는 참여형 사이트다. 일본산을 보이콧하고 일본 여행마저 반납하는 등 ‘안사고 안가는’ 항일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한 사죄가 없는 상황에서 2019년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제재는 경제침략으로 인식되어 시민들은 ‘NO아베’를 외치고 있다. 한일관계의 갈등의 고리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한일관계가 위기에 처한 배경에는 아베정권의 반역사적 태도에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화하면서 야기했던 ‘위안부’와 강제징용에 대해 한번도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1965년 한일협정,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강변하였다. 아베정권은 참의원 선거에서 이기면서 우경화 분위기를 가속화하며 한국에 대해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규제를 시작으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한국 때리기’를 노골화하고 있다. 한일 무역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전쟁의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대외적으로 위중한 시기에 우리의 내분된 모습도 심각성을 더한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SNS에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하여 “일본의 궤변을 반박하기는커녕, 노골적 또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며 대법원과 문재인 정부를 매도”하고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일부 보수 언론은 “값싼 관제 민족주의가 강변의 핵심”이라며 “중학생 수준의 B급 어법”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문재인 정권의 무능, 무책임, 그리고 권위주의 정치를 온몸으로 상징”한다며,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현정부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정략적 접근의 발언으로 인해 새삼 ‘친일파’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일본 우익세력을 등에 업은 후안무치의 아베정권보다 문재인 정부를 탓하고 있는 상황이 심히 안타깝다. 3·1 독립선언을 주도했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손병희 선생은 1905년에 쓴 ‘준비시대’에서 “오늘날의 급한 일은 진실로 국민의 단결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국내외 정세를 고려하여 미래 세계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남보다 먼저 여러 분야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하며 모든 일에는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우선이라고 하였다. 문재인 정부를 세웠던 시민들이 일본 대사관과 광화문 광장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촛불시위를 펼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현재의 복잡다난한 관계 속에서 외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일본과의 갈등을 풀어가려면 우리의 단결된 모습이 요구된다. 지금의 위기가 기회가 되도록 우리의 자생력을 키우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다양한 준비를 해야 한다.매년 ‘겨레얼 살리기 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고 있는 ‘전국대학생독서토론대회’에서 오는 10월 9일 손병희 선생의 ‘준비시대’를 읽고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한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올해 3·1독립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한 의암의 책을 통해 반성과 사과가 없는 아베정권의 행태와 ‘친일파’ 논쟁의 면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손병희 선생은 “여러 나라가 대치하여 노리는 틈새에 위치하면서 그 나라를 보전하는 방법이 강력하지 않거나 부강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나니, 부강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 것도 없이 앉아서 담소 중에 찾아지지 않고, 국민이 분발하고 진취적인 하나의 마음을 가져야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지금,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2019-07-29

글로벌탐방단이 만난 스페인 MTA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서 결정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여행의 기술’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스페인 ‘몬드라곤 팀 아카데미(Mondragon Team Academy)’에 주목하게 된 것은 학생들과 다녀온 글로벌탐방단 덕분이다. 7월 1일 출발해 10박 11일동안 ‘플랫폼 협동조합’을 주제로 빌바오와 바르셀로나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사회적경제의 상징인 몬드라곤 지역은 빌바오에서도 한 참 떨어진 작은 소도시였지만 협동조합의 성공을 통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는 곳이었다.몬드라곤 대학은 스페인 내전 이후 피폐해진 바스크 지방을 살리기 위해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세운 기술학교로 시작되었다. 현장에서 쓰임새가 있는 실질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몬드라곤 대학의 MTA 졸업생들이 설립한 협동조합 TZBZ은 바스크어로 “Why not?”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여러 스타트업이 실험하며 공존하고 있는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LEINN(Leadership, Entrepreneurship and Innovation)의 팀 코치들과의 대화는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교수와 학생, 수업과 시험이 없는 교육, 팀코치가 유럽 학사학위과정으로 인정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Talk, Do, Connect’라는 슬로건 하에 혁신적인 창업을 하는 글로벌 리더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MTA는 사회적 경제를 인큐베이팅하는 랩이다. 협업을 위한 열린 공간에서 다양한 만남과 아이디어를 논의하며 창업을 시도하는 젊은 기업가들을 키우고 있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관심을 나누며 유럽, 미국, 중국 등 전세계를 다니면서 창업 프로세스를 익히고 경영관리기법을 배우는 실제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LEINN은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협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혁신적인 사업가로 육성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우리가 MTA 랩에서 만난 세 명의 젊은 여성 팀코치들의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교육에 대해 말한다. “학교는 기술적 기량의 교육 비중을 낮추고 종합적인 목적의 삶의 기술을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앞으로 AI가 인간보다 더 잘하는 기능적인 교육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을 키우는 4C교육으로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MTA는 학습자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창업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히며 융합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해 가는 모델이었다. 실제 비즈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세계시민의식도 키우고 공동체 정신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교육적 의미가 있었다.이번 글로벌탐방단 일정을 함께 하며 ‘모든 길은 구글로 통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앱 네이티브(App Native) 세대답게 학생들은 구글 맵으로 약속된 장소의 주소를 입력하여 익숙하게 찾아다녔다. 스마트폰과 구글로 장착한 신세대들은 거침이 없었다. 구글로 관련 정보를 입수하고 구글맵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며 낯선 곳에서의 여러 일정들을 소화했다. 7명의 학생들이 한 팀을 이루어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기획서를 작성하며 주도적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던만큼, 직접 스페인에 와서 현지 담당자를 만나 질문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공부로 이어졌다. 강의실 밖에서 이러한 구체적인 배움의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온 몸으로 현장 분위기까지 기억하며 체험을 내재화하기 때문이다.

2019-07-15

가치 있는 삶의 공통분모는?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재산을 잘 쓸 줄 알아야 진정한 부자다. 부자가 되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안다는 의미였다.”시어도어 젤딘은 ‘우리 삶을 가치 있고 위대하게 만드는 28가지 질문’이라는 부제가 달린 ‘인생의 발견’에서 “돈이 인간을 선한 삶으로 이끌어주지 않으면 무가치하다”는 크세노폰의 말을 인용한다.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현 시대에 어떻게 돈을 의미 있게 쓰는지를 보여준 두 분이 있다. 세계 1위 참치기업을 만든 김재철 동원그룹 전회장과 파주출판도시를 만든 이기웅 열화당 대표가 그들이다.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첫 원양어선을 이끈 김재철 전회장은 독서가 생활화된 분으로 유명하다. 1961년 1월 25일 그의 일기는 이렇게 쓰여졌다. “선원들은 갑판 위에 차양막을 쳐놓고 바둑, 장기에 열중이다. 나는 출항 이래 독서에 취미를 붙여 일본에서 구입한 책들을 읽는데 시간을 보냈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으로 그는 “사업을 체계화하거나 체계적으로 사고하고 좀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창업 10주년이 되던 1979년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인재육성을 실천해 온 그는 ‘라이프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학생들의 전인교육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있다.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할아버지께서 지은 선교장 사랑채 ‘열화당’의 이름을 따서 1971년 출판사를 설립했다. 책은 ‘영혼의 지도’라고 생각하며 출판인으로서의 소명을 묵묵히 실천해 왔다. 미술, 사진, 전통문화 등 문화예술 관련 출판을 하며 대중의 입맛에 맞는 시장성에 코드를 맞추기보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다운 책’을 만드는 일에 주력하였다. 출판사옆에 책박물관을 만들고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고서와 양서를 공유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 “열화당은 전인적 인간상에 주목하는 인문주의적 예술출판”의 외길을 걸어왔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또한 ‘선량한 책, 값어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출판인들의 환경 개선이 필요는 생각을 갖고 파주출판도시 계획을 추진하였다. ‘세계 유일의 책문화도시’를 표방할 만큼 매년 파주북페스티벌이 열리고, 독특하고 멋진 출판사 건물들 사이로 자연 풍경을 느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다.“우리 시대의 위대한 모험은 지상에 사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시어도어 젤딘은 ‘인생의 발견’에서 어떤 개인을 ‘평균적인 인간’과 구별해주는 것은 고유한 경험과 미세한 태도의 차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삶의 본질이자 그 자신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재철, 이기웅 두 분은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난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며 성장했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다. 파주출판단지로 떠났던 ‘숙명라이프아카데미’ 여름캠프 덕분에 두 분을 통해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지난 주는 ‘서울국제도서전 2019’이 열렸다. 매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최로 개최되고 있는 큰 행사로 어느새 25회가 되었다. ‘다가올 책의 미래,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게 될 책 너머의 세계’를 주제로 올해는 41개국, 431개 출판사가 참여하였다. 대규모 도서축제가 된 이유가 국내외 출판사들이 만든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는 자리인 점도 있겠지만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기와 책을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결국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제대로 된 사람이 된다. 다가오는 여름, 책과 함께 당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기억되길 기대한다.

2019-07-02

“냄새가 선을 넘는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반지하’ 냄새야, 이사 가야 없어져.” 영화 ‘기생충’에서 주목한 말이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계급을 상징하는 장치들로 넘친다. 그 중에 하나가 ‘냄새’다. ‘기생충’은 와이파이도 잘 안터지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기우네가 고액 과외를 시작으로 박사장네 저택에 미술치료사, 기사, 가사도우미로 합류하며 펼쳐지는 계층간의 대비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냄새’는 불평등한 계층구조의 단면을 암시한다. ‘향기’가 아니라 ‘냄새’의 발신자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반지하 방에 잠깐 들어오는 한 줌 햇살에 양말을 말리는 생활에 배인 냄새다. 이러한 선을 넘는 ‘냄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선을 넘는 사람들, 내가 제일 싫어하는데.” IT회사 젊은 CEO 박 사장은 말한다. ‘대지 600평에 1층만 200평’인 대저택, 한눈에 정원이 보이는 통유리로 된 거실이 있는 곳에서 사는 박 사장에게 젖은 행주에서 나는 듯한 퀴퀴한 냄새는 불쾌하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과 구분지으며 이질적인 냄새에 대한 불편함을 얘기한다. 마크 냅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에서 “냄새 효과는 본질적으로 의식적이 아닐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은 숨 쉬는 공간에서 떠다니는 냄새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주위의 냄새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줄리아 우드는 “권력이 있는 사람은 권력이 더 적거나 권력이 없는 사람보다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여러 ‘공간’은 사회경제적 위치를 반영한다. 차를 여러 대 갖고 있는 상류층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필요가 거의 없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서민들이다. 폐기물 처리장이나 유해한 시설은 대체로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 배치된다. 권력과 영향력을 가진 상류층은 안전지대에, 가장 취약한 계층은 일상의 위험에 불균형적으로 노출된다. 국토교통부의 ‘2018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38만 가구가 반지하에 살고 있다. 전체 아동 10명 중 1명은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여 있다. ‘기생충’에서 대주택과 반지하, 숨겨진 지하공간이 대비되듯이 집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문제는 살고 있는 집에 따라 ‘구분짓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크고 높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작고 낮은 임대’에 사는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놀지 않는다. 이질적인 주거환경이 인간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일반가구 아동이 36.2%였던 것에 비해, 주거 빈곤 계층의 아이들은 66.9%나 되었다. 취약한 주거환경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난한 사람들’에서 말했던 것처럼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은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쓰게 된다.” 주거 빈곤의 고착화는 공동체 의식마저 약화시키고 있다.냄새가 선을 넘어야 한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이 서로 만날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정치는 시민들의 삶에 기반이 되는 시설들의 재건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 아이를 보내고 싶은 공립학교, 상류층 통근자를 끌어들일 대중교통, 민주시민이 공유하는 장소로 모이게 하는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군가에게 ‘기생’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공원, 체육관, 복지관, 도서관, 박물관에서 서로의 냄새들이 어우러지고,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일상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019-06-17

대학 교양교육과 ‘코딩’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21세기 문맹자는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학습(learn)하지 않고 폐기(un-learn)하지 않고 재학습(re-learn)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이다. 그는 한국교육에 대해 경고했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을 배우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I(IoT), C(Cloud), B(Big Data), M(Mobile)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지식을 주입하고 정답을 암기하게 하는 현실이다. 이처럼 입시공부에 매달리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가?‘교육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교육의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산학공동연구, 캡스톤, 디자인싱킹이 강조되고 창의융합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소프트웨어(SW) 중심대학’을 선정하면서 대학의 질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각 대학은 ‘SW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코딩 관련 교과목을 확대하고 있다.코딩교육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대학 교양교육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코딩을 반드시 배워야 하고 컴퓨팅적 사고를 키워야 한다는 가정하에 교양필수 교과가 개편되고 있다. 대학의 헤게모니는 전공에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와 시장의 요구에 먼저 반응하게 되는 영역은 교양교육 분야다. 특정 교과가 교양 필수로 강조되기도 하고 또 가장 먼저 폐기되기도 한다. 강사법이 시행되어 대학 재정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코딩교육 필수화는 다른 교양교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쓰기, 토론 등 기존의 교양필수 교과가 교육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밀리거나 ‘창의융합설계’와 같은 과목으로 바뀌고 있다.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에서 매년 개최하고 있는 토론대회 올해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코딩교육을 생각한다’였다. 학생들은 찬반토론을 하며 ‘코딩교육, 대학 교양필수 교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제를 두고 생각을 나누었다.찬성측은 코딩은 이제 세계 공통의 언어로 전공과 관계없이 알아야 하는 필수요소이고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코딩교육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반대측은 학생들의 관심과 필요가 다르기에 코딩을 의무화하는 것은 교육적 효과가 없으며 선택교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토론과정을 통해 시대의 변화와 대학 교양교육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자리였다.존 카우치는 ‘공부의 미래’에서 “21세기 학습 ABC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코딩”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시대, 교육의 회로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영어를 필수로 배웠듯이 디지털 리터러시의 기초인 코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코딩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접근권을 강화하는 교육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그러나 이로 인해 대학 교양교육의 근본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학생들에게도 사고와 표현교육은 여전히 중요하다.4차 산업혁명은 창의적 사고를 지닌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는 의사소통교육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입시에 찌들어 교육다운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배우는 교양필수 교과로 글쓰기와 토론 수업은 교육적 의미가 크다. 학습의 주체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하는 자세를 익히기 때문이다.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대학 교육의 근본은 교양교육이고 교양교육이 본질에 충실할 때 대학 사회가 바로 설 수 있다. ICBM 시대 코딩공부는 필요하다. 동시에 대학 교양핵심인 사고와 표현교육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2019-06-03

5·18과 공감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같은 시대, 같은 아픔을 겪었다면, 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을 함께 품고 살아왔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019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 연설의 한 대목이다.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는 말부터 “종북좌파들이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며 사실을 왜곡하고 희생자를 모독하는 발언이 쏟아지는 가운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반쪽짜리 기념식을 본 듯해 씁쓸하다”고 했다. 1980년 5·18 광주를 떠올리며 드는 생각, 39년의 세월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성숙해졌을까?1980년 광주는 고립무원이었다. 당시 광주는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되고 봉쇄되었다. 유언비어가 난무했고 언론은 침묵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공수부대의 곤봉에 의해 거리에서 죽고 다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계엄군에 의해 인권이 유린되었던 5월 광주의 진상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회 차원의 5·18 진상규명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다. 39년이 시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것은 일부 정치인의 빈약한 역사의식에도 기인한다.“5·18문제 만큼은 우파가 절대 물러서면 안된다”고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나섰던 이는 말한다. 극우 보수층 지지를 위해 당리당략적으로 광주에 접근한다. 호남이라는 지역과 종북좌파 프레임을 엮어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며 선동한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시위와 투쟁을 ‘군화발로’ 짓밟으며 ‘광주사태’로 불렀던 군부정권을 지나 1997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고 ‘5·18민주화운동’으로 불려지지만, 2019년 가짜뉴스와 망언들이 난무한다. 그런 점에서 40주년이 되는 내년이 아니라 올해 기념식에 참석하여 “5·18의 진실은 보수, 진보로 나뉠 수 없다”고 천명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의미가 깊다.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평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유일한 인간적 표현”이라고 하였다.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과 감정적으로 같은 지평 위에 있지 않으면 진정한 공감은 불가능하다. 공감은 같은 영혼이라는 공동의식이며, 그것은 사회적 신분의 구별을 초월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만 보더라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만 읽더라도, 1980년 광주에서 스러진 망월동의 비명만 봐도, 아픔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5·18 광주라는 공간의 역사를 가벼운 말로는 다할 수 없다.내년이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된다. 40세의 성숙한 중년처럼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로, 우리가 만들어온 역사와 만들어가야 할 미래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저절로 익어가지 않는다. 성찰하고 반성하며 올바른 선택과 행동을 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이다. “성공과 성장 사이, 사람의 그릇을 키울 수 있는 삶의 무기는 무엇인가?” 존 헤네시는 ‘어른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통해 우리에게 역설한다. 타인과 공동체 문제에 진정성을 갖고 고민하고 머리와 가슴이 함께 하는 공감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우리 사회 리더로 불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겸손과 진정성, 공감적 감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에서 한강은 빛고을 5·18 광주항쟁의 의미를 우리에게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입을 빌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한다. 광주 시민들이 온 몸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39주년 기념사에서 대통령께서 강조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던 5·18 광주가 정략적 의도에 의해 더 이상 폄훼돼서는 안된다.‘공감’이 더욱 아쉬운 시대다.

2019-05-20

전쟁터 대신 토론마당에 나서라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자유한국당이 장외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염치없고 뻔뻔한 정부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전국 투어에 나섰다. ‘독재 타도’와 ‘헌법 수호’를 외치며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삭발하고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열변을 토한다.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인 패스트트랙으로 선거법을 지정하며 벌어진 여야대결 정국이 점입가경이다. “다이너마이트로 청와대를 폭파시키자”는 주장마저 등장한 상황이다. 현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은 야당 시절 민주당이 했었던 말들이다. “규탄의 언어는 유사해도 해결책의 언어에서 차이가 발생한다”고 했던가. 공격과 수비, 서로의 입장이 바뀌니 자유한국당이 ‘독재정치’ 종식을 외치고 있다. 이처럼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정치판에서 유일한 보상은 권력이다. 권력을 내가 잡지 않으면 빼앗기는 것이므로 제로섬 게임이다. 이기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경쟁자를 헐뜯어도 시장의 규모가 줄어들 위험이 없다. 이런 조건에서라면 네거티브 광고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기다” 앤드류 포터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서 이같이 말한다. “가짜인 것, 포장된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터무니없는 광고나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을 피할 길이 없다” 정치인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더구나 대화와 토론이 실종되면서 극단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국민’을 앞세우지만 지금의 정치는 민생과 거리가 멀다.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하였지만 “내 말은 진실이고 남의 말은 진실일 수 없다”는 입장에서 서로를 공격할 뿐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정당 해산을 촉구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해산시켜서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기를 간곡히 청원한다”는 국민 청원 글은 어느새 177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과거 청와대가 나서서 통진당을 해산했던 전례를 언급하며 자유한국당을 해산시켜 달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소박한 바람일 수 있으나, 행정 권력이 의회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훼손이다. 청와대가 정당 해산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정당의 목적은 권력 쟁취에 있다. 그러나 그 권력은 어디까지나 국민을 위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들만의 이해 다툼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에 국민들은 염증을 느낀다. 내우외환의 상황에서도 밥그릇 싸움에 골몰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북한 핵과 주변 4강국과의 복잡한 외교문제로 힘들고, 지난 1·4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렇듯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 과연 국회의 역할인지 묻고 싶다. 정권쟁취를 위한 집단이익에 함몰되어 있는 정당들의 이해타산적 계산방식이 개탄스럽다. 정치에는 항상 상대방이 있다. 이를 인정해야 정치 발전이 가능한 것이다. 자신은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비난하는 비방의 메시지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상생과 협치의 측면에서 갈등 국면을 풀어가는 정치력이 요청된다.“정치는 양심과 권력이 만나는 영역”이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집단적 이기심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만약 한 집단의 이기심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될 경우에는 다른 집단이 이를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정치적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실들(facts)을 주도면밀하게 다루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회적 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분석만이 가식을 벗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설득과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도록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경쟁하는 세력들이 ‘전쟁터 보다는 토론의 마당’을 사용할 것”을 국민의 이름으로 촉구한다.

2019-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