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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 눈에 똥

조현태 수필가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뜻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있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에도 이런 현상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필자가 학생 시절에 만원버스를 타면 학생들은 학교생활과 학업에 관한 이야기로 집중되었다. 막노동하는 사람들은 노동 현장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장사꾼은 물건 사고파는 이야기를, 농부는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지하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도 그 휴대폰에는 그 주인의 최대 관심사가 검색되어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터이다.한 가지 일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킨 경우를 꼽으라면 2002년 월드컵 경기 때가 아닌가 한다. 그 당시의 축구 응원은 대한민국 전체를 넘어서 온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생각해보면 개의 눈이라서 똥만 보였다기보다 똥만 보였기 때문에 개의 눈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한마음 한 뜻으로 뭉쳤던 대한민국 국민의 결집력이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다.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중심으로 말하고 듣는다. 한발 더 나아가보면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나 확신하고 있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월드컵 게임의 경우 처음에는 자기중심에서 우러나는 응원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한국 팀을 응원하니까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덩달아 응원했다. 군중심리가 작동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보니까 어느덧 축구 경기에 몰입하게 되고 저절로 한국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내가 볼 때 남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 나도 슬퍼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것은 남에게서 자신의 모습이 반영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내가 슬프기 때문에 남도 슬퍼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논리에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남이나 사회에 그 탓을 돌리게 된다. 그러므로 남을 탓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다 ‘옳다’고 우기면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내가 믿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다 ‘틀려’도 매우 어리석은 판단이다.정치는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해야 한다. 국민의 살림살이를 맡은 정치에도 연예인과 같은 좋고 싫음의 잣대를 대는 것 역시 잘못된 짓이다.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여 건설한 후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때 이성계가 농담 삼아 무학대사에게 말했다. 오늘 무학대사가 돼지 같아 보인다고 말하자 무학대사는 태연하게 전하께서는 부처님처럼 보인다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예리한 꼬집음을 일컫는다.비슷한 뜻으로 채근담에도 ‘자신이 성실하기 때문에 남도 성실히 보아서 그 사람을 믿게 되고, 자신이 남을 속이기 때문에 남을 의심하게 되어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작금의 세태에는 차라리 월드컵 군중심리라도 좋으니 국민 전체가 부처님 눈이기를 빌어본다.

2022-12-20

쟁취와 탈취

조현태 수필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지만 나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필자도 속한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 대 브라질 월드컵 축구 중계방송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 묘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16강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감동인데 브라질 팀과의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으니 말이다.FIFA 랭킹 28위가 1위를 이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했을 터이다. 그런데, 막상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을 향해 응원하는 마음은 ‘이길 수 있다’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카타르까지 출장응원을 왜 했겠는가. 아마도 월드컵 축구경기 중계방송을 보는 한국 사람이면 거의가 붉은악마와 같은 생각으로 응원했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손흥민 선수가 얼굴을 다쳐서 마스크로 가리고 출전한 모습을 보고 그 투지력을 매우 듬직하게 여겼다. 또한 벤투 감독이 레드카드를 받아 선수들을 지휘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극복하고 포르투갈 팀을 이겼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때 혼자 중얼거렸다. 역시 대한민국은 극한상황을 참아내며 잘 극복하는 특질이 있는 나라라고 말이다. 경기 시작 5분경에 한 골을 내주면서 대단히 어려운 경기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높은 벽을 무너뜨렸을 때 저절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된다. 따라서 브라질과의 경기도 이러한 성적을 기대하면서 힘겨운 도전을 응원하게 된다. 무려 4골을 허용하고도 기어이 한 골을 만회하는 한국 축구선수들이 장하게만 보였다. 여러 측면에서 브라질 팀에 밀리는 것이 사실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노력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추진력이 아닐까 한다. ‘쟁취’라는 어휘가 딱 어울리는 경기였다.어찌 한국 축구가 하루아침에 16강에 진출했으랴. 눈물겨운 노력과 훈련이, 그리고 할 수 있다는 긍정과 투지력이 있어야 가능했으리라. 거기다가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그 저력도 무시할 수 없다.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키워온 경제력, 문화력, 첨단기술력은 참으로 대단한 자본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치력도 엄청난 성장을 했다. 갑자기 브라질을 이길 수 없듯이 영국이나 미국의 정치력을 능가하지는 못해도 좋다. 축구가 브라질에 도전하는 그 정신으로 정치선진국을 따라잡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서두에서 언급한 ‘인간의 욕심’이란 돈이나 권력을 끝없이 탐하는 욕심을 뜻한다. 이 욕심은 상대를 긁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형식이다. 탈취에 불과하다. 그러나 월드컵은 상대보다 더 잘 해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쟁취가 아니겠는가.이제는 명예나 자존심에 욕심을 부려야 할 때다. 특별히 이쪽은 탈취에 빠지기 쉽다. 적어도 한국 역사에는 약탈도 당해봤고 서러움도, 업신여김도 당해봤다. 빈약한 자원에 허덕이며 역수출까지 했다. 이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게 된 과정이 쟁취이고 승리다. 바라건대 정치 분야도 노동 분야도 탈취보다는 온 국민이 응원하는 가운데 쟁취하기를 바란다.

2022-12-13

너도 콩이다

조현태수필가 필자에게는 유휴지를 이용한 칠십 평가량의 밭이 있다. 옛날에는 논이었다는데 경작하지 않고 너무 오래 방치해 둔 땅이라 잡목과 풀만 가득했다. 어느 날 트랙터를 빌려서 나무는 뽑아내고 밭으로 일구었다. 비록 내 소유의 땅은 아니지만 누군지도 모를 주인이 나타나면 그냥 돌려주면 될 일이었다. 하여, 유실수나 약초처럼 재배기간이 긴 작물은 심지 않고 당년에 수확하는 콩이나 들깨, 고추 정도만 재배했다. 그 땅을 경작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넘었다.올해는 검정콩(서리태)을 심었다. 11월 중순에야 콩대를 잘라놨다가 그저께 마당으로 옮겨 털었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지라 땅 면적 대비 수확량은 많이 떨어지지만 몇몇 지인들과 나눠먹는 결실은 충분히 된다. 흐뭇한 기분으로 항아리에 쏟아 부으면서 잠시 생각이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마른콩대를 차에 싣고 나니 땅에 떨어진 콩이 눈에 들어온다. 검정색이라 유난히 눈에 띄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꼬투리에서 터져 나온 콩알이라 더욱 굵게 보인다. 그거 다 주워 모아도 일 리터가 될까 말까하지만 그냥 돌아설 수가 없다. 거의 한 시간을 소비하고 ‘끙’하며 일어서야 할 판에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마당에서 막대기로 두드려 털고 바람에 날려서 알곡을 가릴 때였다. 빈껍데기야 당연히 선풍기 바람에 날려 나가지만 아직 덜 영근 콩알이나 그것이 들어있는 꼬투리는 반쯤 날아가다 어정쩡하게 떨어진다. 그러니 곡식도 아니요 죽정이도 아니다. 버리기는 미안하고 거두기는 찜찜하다. 그러다 결국은 어중간한 놈들을 따로 쓸어 담는다. 저녁에 심심풀이로 손질해 볼 요량으로.이틀 저녁 동안 그 콩을 마무리하고 보니 제법 한 되는 되어 보인다. 품질이 떨어지는 곡식이라 남에게 주지는 못해도 내가 먹을 수는 있다. 밥 지을 때 섞어보니 그다지 나쁜 콩이라 여겨지지도 않는다. 평소에도 땅콩이랑 밤이랑 은행 따위를 섞어 밥을 짓는데 검정콩이 보태지니 훨씬 더 잡곡밥으로 보인다. 그래서 했던 말이 ‘그래 너도 콩이다’했다. 충실하게 영글어 저절로 터지는 콩만 콩인가 생각하니 관자놀이가 뜨듯해진다. 사람으로 치면 꼴찌도 사람이니까 말이다.재건중학교와 고등기술학교는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초등학교졸업 학력으로 사회생활을 했던 청년 시절. ○○대학교 정문 앞에서 장사하며 대학생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대학생들이 가게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종일 바둑 두며 떠들어대도 좋게만 보였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대학생이 될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 육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이라도 공부하려고 등록했다가 한 달 만에 등록취소 당했다. 그때야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만 사 년 만에 나도 대학교 졸업생이 될 수 있었다.반세기 동안 묵었던 땅도 갈아엎으면 밭이 될 수 있었다. 그냥 두었다면 묵지일 뿐이요 거들떠보지도 않는 땅인데 일구어 밭을 만들면 농지다. 깨를 심으면 깨밭이요 콩을 심으면 콩밭으로 일컬어진다. 비록 잡초에 부대껴 자라면서 반쯤 영글다가 뽑히고 마는 어설픈 콩이더라도 콩은 콩이 아니던가.

2022-12-06

마음의 상처

조현태수필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폐품을 모아 힘겹게 생활하는 중에 치매를 앓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그 남자에게 남은 가족이 있다면 칠 년여를 함께 살아온 ‘똘이’라는 개 한 마리. 그 개에게도 남자가 유일한 가족이지만 갑자기 사라졌다. 왜냐면 어느 날 그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집이 다 타버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크게 화상을 입어 119구급차로 이송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똘이 역시 화상으로 다리를 절룩거렸지만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직 주인 남자가 없다는 것만이 관심이었다. 전소된 집터에 널브러진 남자의 바지 하나와 평소에 똘이가 누웠던 자리만 보면 애타게 주인을 찾는 소리를 질렀다. 바지에서 맡아지는 익숙한 주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길게 우짖는 소리. 집 앞을 지나다니는 차량을 유심히 살피는 눈길. 갑자기 혼자만 남겨두고 왜 주인도 사라지고 집도 없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똘이의 표정은 불안하고 어둡기만 했다.한편 남자는 매우 아픈 화상치료에 정신이 팔려 똘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알고 보니 똘이도 화상을 입은 채 절룩거리면서도 자기를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이 넘어가는데 똘이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자신을 탓하며 울먹인다. 그렇다고 개를 병원으로 데려올 수도 없으며 만나러 나가는 외출도 허용되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웃이 나섰다. 개를 붙잡아 치료도 하고 먹이도 제공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불안한 눈만 굴리고 있었다. 갑자기 당한 생이별이 얼마나 큰 간극을 벌려놨는지 훤히 보이는 장면이었다. 동물병원 수의사가 말했다. 육체에 생긴 상처로 아프고 쓰라린 고통은 별거 아니지만 생이별하게 된 마음의 상처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고통을 남긴다고 했다. 둘 사이에 생이별을 해결해 줄 방법은 다시 만나게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선 주인의 영상을 보여주고 ‘어서 와, 밥 먹어’라는 녹음된 음성도 듣게 했다. 익숙한 목소리에 관심을 갖는 듯 하다가 주인의 모자와 지갑을 먹이 곁에 놓아주고서야 똘이가 경계를 풀고 먹이를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특별히 배려하여 똘이를 병원 뒷마당까지 데려와도 된다고 허용했다. 이제는 영상이 아니라 직접 만나는 기쁨까지 누리게 해 주었다. 미리 뒷마당에 나와 똘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의 감정과 멋모르고 실려와 ‘똘이야’부르는 정겨운 소리를 얼른 알아차리고 뛰어가서 안기고 핥아주는 감정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단 둘만 남은 가족인데 재활치료가 끝나면 다시 한 집에서 더욱 사랑하며 살 것만 같았다.이러한 형편을 알게 된 이웃들이 힘을 합하여 불타버린 집도 새로 마련하고 세간과 똘이 집까지 마련하여 주었다. 텔레비전에서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콧날이 찡 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이 처처에 있다. 그나마 상처 준 잘못을 깨달으면 똘이처럼 치유가 되겠지만 상처를 주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아! 똘이보다 못한…. 필자는 희망을 갖는다. 우리에게는 선하고 아름다운 이웃이 있다는 것을.

2022-11-22

발달과 진화

조현태 수필가 소리 즉 진동을 공기 중에서 감지하는 방법은 귀의 고막을 통해 파악한다.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발생한 소리도 진동(파장)으로 감지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따라서 물고기도 귀가 있는 것처럼 소리를 감지한다고 한다.물고기는 귀가 없어도 소리를 감지한다는데 어떤 형태로든 물에 의해 전달되는 파장을 알아차리는 기관이 발달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물속에서의 진동은 공기 중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전달된다니 놀랍다.한편 공기로 호흡하는 사람이나 짐승들은 공기 중에서 전달되는 소리를 귀로 듣는다. ‘귀’라는 기관은 너무 먼 곳에서 발생한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만약에 매우 미세한 소리나 아주 먼 곳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면 대단히 불편할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끄럽고 온갖 소리가 겹쳐서 분간하기 어려울까 싶다.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도 역시 자연 속에 살아가는 가장 적절한 삶의 감각기관이 아닐까 한다.이렇게 지구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각자의 삶에 가장 적절한 감각기관을 운용하며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종이 다른 동물 사이에는 색다른 차이가 있겠지만 같은 종에서도 각각에 따라 반드시 차이가 있을 터이다. 그것을 다른 표현으로 개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각자 살기에 편리하도록 기관과 감각이 발달해 있다. 사람에게로 개성을 살펴보자.어느 날 어느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때 필자는 BBC earth 채널 방송을 보고 있었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말은 대부분 일상적인 수다였고 끝도 없이 주절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그리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크게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왜냐면 지구 환경에 관한 방송에 집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갑자기 ‘질문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무슨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내 말에 쨍그랑 접시 깨지는 소리를 했다. 여태껏 전화로 한 말은 안 듣고 뭐하느냐고 대거리를 했다. 나는 대단히 머쓱해졌다. 미안한 마음으로 BBC 방송에 정신이 팔려 잘 못 들었다고 사과했더니 발칵 화를 냈다. 어찌하여 친구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돈단무심이냐고 언성을 높였다. 성의가 없다는 둥, 관심도 없다는 둥, 여자 친구를 무시한다는 둥. 처음에는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으나 금세 진실로 화가 났구나 싶었다. 덩달아 나도 같이 화난 소리를 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면 넘어가도 될 일이지 무슨 까닭으로 전화에 대고 이토록 호통을 치느냐고 했다.내가 관심 깊은 방송을 보는 중에 전화가 왔고 30분씩이나 조잘대고 있으니 건성으로 들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냐고. 자기 전화에 남의 관심사를 묻어버리려는 태도는 더 나쁘지 않느냐고 했다. 각자 삶의 방향이 다를 때 관심이나 감각도 자기를 중심으로 발달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개성도 없지 싶다. 그래야 진화도 있을 터이다.대체적으로 이렇게 각자의 상황이 상대에게도 적합한 줄로 오해하는 것에서 잡음이 생기고 다툼으로 번지며 심하면 싸움까지 한다.

2022-11-15

핼로윈 문화

조현태수필가 핼로윈 문화는 까마득한 옛날에 아일랜드 켈트족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일종의 종교적 의식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에 대응하는 풍속이 핼로윈데이로 정착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 무렵 미국에 아일랜드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미국에서 핼로윈 축제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근래에 와서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삼겹살데이, 밸런타인데이 같은 신종 문화가 한국에도 유행하여 축제 행사처럼 열리고 있다.이렇게 외국 문화가 한국에 들어오듯 한국 문화도 외국으로 많이 전파되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국가라기보다 세계 모든 국가와 사람이 점차 어우러져 통합되어가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핼로윈 문화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적인 핼로윈으로 즐기면 될 일이다.2022년의 핼로윈은 대단한 충격과 슬픔을 남긴 축제로 기록될 것이다. 과밀한 인파에서 발생한 압사사건으로 무려 343명이나 되는 사상자를 냈기 때문이다.방송사나 신문사의 발표를 보면 원인을 규명하고 처벌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도하고 있다. 경찰의 대응이 늦었다는 둥, 골목에 무단점유물이 문제라는 둥, 좁은 길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렸다는 둥….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엇이 잘못된 일인지 딱 꼬집어 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자성하라는 큼직한 꾸중이 아닌가 싶다.이번 이태원 참사의 특징은 뚜렷하다. 첫째, 외국 문화가 물밀듯 밀려와도 거절할 수 없는 지구촌 시대이다. 특히 젊은 층이 향유하는 축제 분위기는 저지 억제한다고 수그러들지 않는다. 둘째, 한국 사회가 저질러 온 무분별한 행동에도 문제가 있다. 긴급전화 112 혹은 119에 재미삼아 전화하여 장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래서 경찰이 전화를 받아도 어디냐고 자꾸 따지고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참에 긴급전화만큼은 발신자 위치와 번호를 자동으로 체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면 어떨까. 그래서 장난전화에 대한 처벌도 따라야 할 터이다. 셋째,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억눌렸던 감정이 축제 분위기와 겹치면서 과밀한 군중이 참여함으로 통제가 어려웠다.이태원 참사 중에 경찰이 적극 개입했다면 사망자 수를 훨씬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판단으로 조사 중이라고 한다. ‘경찰이 다 잘 했다고는 할 수 없듯이 참여한 군중이나 현장 사정은 전혀 문제가 없는가? 외국 문화에 거침없이 반응하는 지금 시대는 다 잘 했는가?’라고 질문해 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이미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고 또 이러한 변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건을 바탕으로 사회의 질서나 신뢰가 더욱 발전하여 아름다운 사회로 거듭나기를 바랄 뿐이다. 황망한 슬픔에 빠진 유족에 진심어린 위로와 사랑을 전한다. 마음이 많이 상하겠지만 처벌과 보상만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다. 온 국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아울러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로의 기틀을 잡게 하는 긍정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22-11-08

공정하다는 착각

조현태수필가 마이클 샌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카지노 업계의 대부인 억만장자 셀던 에이들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세계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간호사나 의사보다 수천 배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카지노 시장과 보건 시장이 모두 완전경쟁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그 시장 가치가 그들의 사회 기여도를 나타내는 진실한 척도라고 볼 까닭은 없다. 그들이 소비자 수요에 얼마나 부응하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의 도덕적 가치에 기여도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슬롯머신을 즐기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보다 더 큰 도덕적 중요성을 갖는다.(‘공정하다는 착각’p.223)운수와 선택을 비교하자면 능력과 자격의 판단이 불가피해진다. 도박에서 져야 마땅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질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도박사는 졌을 때 사회에 그의 판돈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의 불운은 자업자득이다.물론 어떤 경우는 과연 무엇을 ‘선택’으로 볼 것인지 모호해진다. 어떤 도박사들은 도박중독에 빠져있다. 슬롯머신은 도박사들이 노름을 끊지 못할 만큼씩만 이기도록 승률이 조작되어 있다. 이런 경우 도박은 선택이라기보다 약자를 이용해 먹는 강압의 결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런 리스크를 걸머지는 한, 행운 평등주의자들은 그들이 결과에 책임져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책임져야 마땅하다. 적어도 그런 일에 아무도 그에게 도움을 줘야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무엇이 진정 자발적인 선택인가에 대한 친숙한 논쟁을 넘어서, 운수와 선택의 구분은 또 다른 고려 때문에 모호해진다. 보험의 가능성이다. 만약 내 집이 불타버렸다면 분명 그것은 운이 나쁜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화재보험을 들 수도 있었는데 들지 않았다면 ‘설마 불이 나겠어’라는 생각을 하며 매년 쓸데없이 보험금 내기를 아까워했다면? 화재 자체는 ‘눈먼 운’이라도, 보험을 들지 않은 나의 선택은 나의 불운을 ‘선택 운’으로 바꿔 놓는다. 보험에 들지 않기로 선택함으로써 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납세자들에게 내 집의 손상을 보상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다.(p.237)도박에서 잃은 판돈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나, 화재보험에 들지 않고 불탄 손해를 보상해 달라는 요구는 마땅히 거부당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약에 중독된 자가 마약을 구하지 못하면 곧 죽을 지경이어도 구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한 것을 불법이라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공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방편임을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그렇듯이 일부 고위층이 직위나 욕심을 보전하기 위해 사회적 물의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그런 사람일수록 공정한 고유 업무에 충실한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떡고물이라도 얻으려고 그 주변을 맴돌며 열띤 응원까지 하는 모습도 보인다.이 현실을 두고 누가 책임질 것이며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끝판 왕 보험사는 없을까.

2022-11-01

시간도 투자다

조현태 수필가 죽도어시장에서 싱싱한 고등어를 샀다. 제법 큰 놈으로 세 마리나 샀으니 한꺼번에 모두 먹어치울 재간이 없다. 한 마리만 구워도 실컷 먹을 분량이라 나머지 두 마리는 바로 냉동보관을 했다.그리고 한 주간쯤 지나 바짝 냉동된 생선을 전자레인지로 해동시켜 구웠다. 어째 냉동시키지 않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모양도 맛도 엉망이었다. 그렇다고 냉동된 상태로 바로 구울 수는 없지 않은가. 누가 가르쳐주기를 그러지 말고 냉장실에 옮겨 하루를 두었다가 구우라고 했다. 하여 남은 한 마리는 하루 동안 천천히 해동시켜 구웠는데 급하게 해동시킨 경우보다는 훨씬 좋았다.또 어떤 이가 해동 방법을 일러주었다. 소금과 식초를 미지근한 물에 풀어놓고 냉동생선을 담가 십여 분 지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소금과 식초의 역할을 이용하면 빠른 해동에도 육질 손상이 덜 된다는 설명이었다. 소금은 바닷물과 비슷한 염도로 해동하므로 육즙 보호와 생선의 불순물 제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초는 생선살이 허물어지지 않게 하고 살균 효과도 있단다. 이 방법도 레인지 해동보다는 느리지만 상온해동보다는 매우 빠른 해동방법이다.어차피 어시장에서 소매하는 생선은 한 번 냉동했던 물건이다. 최대한의 선도를 유지하는 범위에서 해동하여 판매하는 것을 소비자가 또다시 냉동시킨 격이다. 이미 육질이 떨어진 생선에 전자파를 이용한 강제해동이 육질을 더욱 흔들어 놓은 상태가 아니겠는가. 상온에서 천천히 녹이면 육질이야 덜 상하겠지만 해동되는 과정에서 자칫 세균이 발생하는 우려도 있단다.어쨌거나 생선해동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너무 서두르는 일이 좋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빨리 해동하는 방법은 맛이 덜하고 느리게 녹이면 세균과 시간적 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전문가가 연구한 방법이 소금과 식초를 이용하라는 것이리라. 어쩌면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적 방법에 접근하는 연구인지도 모른다.중요한 것은 활어가 아닌데 활어만큼의 품질을 바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든 투자한 만큼의 가치가 있을 터이다. 투자를 시간으로 하든지 소금과 식초 같은 물질로 하든지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로 하든지.필자는 전문 요리사가 아니므로 가치가 떨어진 생선을 먹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다만 더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은 해당 분야에 전문가나 할 일이다. 만약에 필자가 전문 요리사였다면 뭉그러지고 비릿한 생선구이를 먹었겠는가.작금에 여러 분야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비전문인은 없는 듯하다. 모두가 다 정치가요, 누구나 다 지도자요, 아무나 다 평론가요, 맞닥뜨리면 다 자신이 최고라고 으쓱거린다.요리사라면 최소한 소금과 식초의 역할 정도는 분명히 알고 있듯이 수많은 전문가들이 해당 분야의 세부사항 정도는 알고 전문가라고 하면 좋겠다. 그럴 능력이 없거든 비리고 뭉그러진 생선이나 먹어야지 않겠는가.

2022-10-18

맹인이 사는 방법

조현태수필가 조금씩 시력이 나빠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빛을 감지하지 못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 어둔하고 느리지만 별 지장을 느끼지 않고 살았다. 왜냐면 지금껏 살면서 세상의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꾸준히 연습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으로 보이는 것만 없을 뿐 신체의 다른 기능은 여전하여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크게 없는 듯 했다. 다만 조심스럽고 느릴 정도였다.1급 시각장애 때문에 결혼은 포기하고 혼자 살기로 작정했는데 어느 날 좋은 남자를 만났다. 장님 아가씨의 눈이 되어줄 요량으로 결혼을 제안한 남자가 있었다. 여자 쪽에서야 평생을 도움만 받고 살아야 할 상태라서 많이 망설였다. 한 남자의 장래에 자신이 끼칠 피해가 어떨지 손바닥 보듯 했겠지. 하지만 남자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남편 입장으로는 항상 아내와 함께 행동하며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불안하여 매우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함께 생활해 보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될 듯 했다. 외출이든 집안 청소든 아니면 음식을 조리하든 아내 혼자 거침없이 해냈다. 이를테면 시장 갈 때 지팡이 하나만 들면 해결되었고 식재료를 구입하여 냉장고에 보관하여도 어떤 것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무슨 요리를 하면 어떤 재료가 있어야 하고 어디에 두었는지 훤하게 알고 있는 터라 조금도 어색하거나 실수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도록 부단하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제 남편은 직장에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었고 아내 혼자 외출을 해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당연히 아내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며 두터운 믿음으로 용기가 되어주었다.아내가 이렇게 된 연유는 간단했다. 혼자서도 살 수 있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야채 썰기, 갖은 양념하기, 끓이기, 그릇에 덜어 상차리기, 그리고 남편과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하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척척 잘 해야 하는 것이 목표인지라 눈물겨운 연습과 훈련을 거듭했다. 더러는 실수하여 부엌칼에 손을 다치기도 했고 손에 화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이를 악물고 다시 도전하여 끝내 성공하기를 반복하고 또 했다. 그 결과 나중에는 두 눈이 멀쩡한 사람에 버금가는 전업주부의 고유한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길에 사랑하는 빛이 반짝반짝 했다. 이러한 사연에 필자도 그 남편에 못지않은 응원과 격려가 쏟아졌다.남다른 연습과 훈련으로 없어진 눈도 있게 하는 상황에 최근의 정치가 겹쳐진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해당 학위도 취득하여 수십 년 동안 정치 현장에 몰두한 사람이 아닌가. 장님도 귀머거리도 아니요, 사지가 멀쩡하고 명석한 두뇌까지 갖추었으면 그 많은 훈련과 경험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조금도 전문 정치가로 여겨지지 않는 까닭은 뭔가. 전혀 정치를 모르는 농부나 어부보다 더 어설프고 교활하게 보이니 이게 웬일인가.필자는 외치고 싶다. 장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심혈을 기울여 관찰하고 배울 용의는 없느냐고.

2022-10-11

정치는 썩어도

조현태 수필가 필자 카톡에 올라온 아름다운 글이 있다. 좀 더 널리 공개하고픈 욕심이 발동한다. 지금 그 내용을 지면에 소개하려 한다.인터넷과 SNS를 통해 컴퓨터를 판매하고 있는 사장님이 경험한 이야기다.며칠 전 사장님이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서울에서 할머니 보호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단다. 전화를 건 아주머니는 지방에서 따로 생활하는 중이지만 어린 딸에게 중고 컴퓨터라도 구입해 주고 싶어서 전화했단다. 열흘쯤 지나서 쓸 만한 컴퓨터가 나타났다. 아이가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서울 주소로 컴퓨터를 싣고 갔다. 다세대 건물 단칸방에 부업 일거리를 잔뜩 쌓아놓은 걸로 봐서 구차한 형편인가 보았다. 컴퓨터를 조립하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보고 환호하며 춤추듯 좋아했다. 할머니는 손녀 어깨를 토닥이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네 엄마가 사 준 컴퓨터라고 설명했다.사장님이 설치를 마치고 큰길에 나오니 정류소에 그 아이가 학원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슴없이 학원까지 태워다 주기로 했고 학원 방향으로 십분 쯤 갔을 때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화장실이 있을 법한 가게 앞에 차를 세워주자 사장님더러 그냥 가라면서 황급히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무심코 아이가 앉았던 자리를 보는 순간 검붉은 핏자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첫 생리인 듯했다. 아마 속옷과 바지까지 버렸을 것이다. 당황하며 급하게 뛰어내린 아이 얼굴이 겹쳤다. 당장 화장실에 혼자 가서 어떻게 할까. 아이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첫 생리를 엄마 없이 겪어야 하는 아이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사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울상 짓고 있을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급해졌다. 속옷과 생리대라도 구입하기 위해 멀리까지 찾아다녔으나 사장님이 해결할 사안이 아니었다. 바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즉시 택시 타고 오면서 전화하라고 일렀다. 아내는 위급한 상황을 짐작하고 택시 안에서 사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어떤 물품들을 구해야 하는지 남편에게 차분하게 지휘했다. 드디어 도착한 아내가 남편이 구입한 물품들을 가지고 그 화장실로 갔다. 잠겨있는 화장실 앞에서 “얘야 컴퓨터 아저씨네 아줌마다. 안에 있니?” 울먹이며 겨우 대답하는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가 잘 처리해주었다. 평범한 가정이라면 축하와 함께 조촐한 파티라도 벌였을 터인데 낯선 화장실에서 혼자 얼마나 곤란하고 무서웠을까 콧날이 시큰해진다. 다시 남편에게 꽃도 한 다발 사라고 전화한다. 눈이 부어서 머쓱해있는 아이에게 꽃다발을 안겨 보내고 돌아오다가 아내가 말했다. 컴퓨터 값 22만원을 되돌려주고 싶지만 중고 컴퓨터 값이 내렸다고 둘러대고 10만원이라도 할머니께 갖다 주자는 통 큰 제안을 했다. 그날 밤 늦은 시각에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중고 컴퓨터 구입한…”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매여 울먹이는 소리만 들렸다. 사장님도 아내도 아무 말 못하고 충혈된 눈에서 따뜻하고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정치는 썩어도 우리 사회가 아직은 괜찮다는 카톡 메시지다.

2022-09-20

나만 괜찮아

조현태 수필가 추석을 턱 앞에 두고 11호 태풍 ‘힌남노’가 몰려와 엄청난 피해를 남기고 사라졌다. 먼저 소중한 생명을 잃고 침수로 재난을 당한 모든 분께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더구나 민속명절 한가위를 맞아 얼마나 상심이 크겠으며 추석인들 명절로 느껴질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디 용기 잃지 마시고 이 재난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태풍 상륙 며칠 전부터 역대급 태풍으로 ‘사라’에 버금가는 진로방향과 위력이라고 모든 방송이 재난대비를 반복하여 알렸다. 필자는 태풍이 닥치기 전날(9월 5일) 감포 어느 바닷가에 갔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전촌항 주변에 횟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모든 횟집이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출입문을 제외한 모든 유리창문은 전부 두꺼운 합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찾아온 손님도 돌려보내며 영업을 중단하고 있었다. 잠시 동안 여러 팀이 횟집에 왔다가 아쉬운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영업이익을 목적으로 횟집을 운영하는데 많은 팀을 돌려보내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영업에 박수를 보냈다. 충분히 그럴 법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각종 선박을 도로 위로 끌어올려 단단히 결박해 놓았다. 재난대비 방송을 듣고 충분히 이해한 대책으로 보였다.그런데 막상 태풍이 지나고 보니 예상 외로 피해를 입은 곳이 많다는 보도다. 재난대비 방송을 듣지 않거나 무시했을까. 아니면 ‘나는 괜찮아’로 뭉그적거리고 있었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자연의 위력보다 자신이 더 세다는 자기우월주의에 빠졌을까. 모르긴 해도 나름대로 최선의 대비는 했으리라 여긴다. 만조와 폭우가 겹치면 어떤 상황일거라는 예상을 방송사마다 종일 외쳤으니까. 정보에 가장 민감하게 살아가는 현시대에 재난방송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사건이다.그날 양동마을에는 자동화재경보기가 작동했다. 억수같이 비가 퍼붓는 가운데 하룻밤에 세 차례나 소방차가 출동을 했다. 결국 화재경보가 울린 것은 습기로 인한 오작동이라는 설명이었고 경비원이나 소방대원이 완전 밤샘을 했다.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세 번씩이나 출동하였건만 소방대원은 전혀 귀찮아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화재감지 센서가 워낙 예민해 화재가 아닌 습기에도 작동했다면 예방효과는 확실하다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하룻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웠더라도 불이 나거나 큰 사고가 난 것 보다야 훨씬 다행이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횟집에서 문과 선박을 단속하고 손님을 돌려보내더라도 태풍 피해를 덜 입는 쪽을 택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지 않은가. 태풍 때문이라면,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는 상황과 바닷가 월파 상황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얼마만큼 예방에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겠는가.아직도 12호 태풍 ‘무이파’가 활동 중에 있다고 한다. 꼭 태풍만 아니더라도 살면서 위험하거나 불가항력이 닥칠 때를 미리 대비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잊지 않기만 바랄 따름이다.

2022-09-13

남의 기준

조현태수필가 선천성 일안실명이란 의학용어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눈을 실명했다는 말이다. 필자가 그런 예에 속한다. 그러나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처음부터 한쪽 눈은 멀쩡했으므로 무엇이든지 볼 수 있고 크기와 색깔 구분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무슨 까닭인지도 모르면서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글 읽기였다. 동화책을 비롯하여 만화, 소설 등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편했다.단 한 가지, 어떤 물체와의 거리감을 식별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은 중학교 시절에서야 느꼈다. 친구들과 유료탁구장에 갔는데 탁구 게임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탁구공이 내 쪽으로 얼마만큼 날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똑바로 보면서 공을 받으려 해도 자꾸 라켓을 허투루 휘둘렀다. 거의 울면서 이를 앙다물고 연습해도 별 진전이 없었다. 축구이든 탁구이든 왜 그토록 공을 맞히지 못하는지는 더 커서야 알았다. 동물의 눈이 둘인 것은 바로 이 거리감 식별 때문이란 것을. 그래서 일안실명인 사람은 군대도 면제요 운전면허도 제한을 받으며 굴삭기 같은 중장비면허도 자격미달이다.성인이 되어서는 애꾸라는 이유로 연애도 취업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한쪽 눈이 없다는 사실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1998년, 어느 대학병원 안과에서 의안 수술을 했다. 그리고는 양쪽 눈이 다 있는 것처럼 이력서를 제출하여 용접공으로 취업했다. 겨우 일 년 남짓 용접공 월급을 받다가 자영업을 택하고 말았다.오늘 필자가 하려는 말은 개인의 일생 소개가 아니다. 피트니스 선수였다는 여인이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끝내 왼팔을 절단하고 일 년 넘게 입원치료를 했단다. 여러 차례 수술과 재활치료를 거듭하여 겨우 퇴원하고 수 년 동안 걷기 같은 일상생활 훈련을 거쳐 텔레비전에 강사로 나타나기까지 과정을 들었다. 그 사고로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었으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 그녀가 전하고 싶은 말은 ‘감사함’이라고 했다. 오른손잡이였는데 왼팔만 없어졌음에 감사하다는 마음가짐. 수없이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여기에 나열하기보다 한 가지 핵심적인 말을 듣고 감동하였기에 이 글을 쓴다.그녀도 없어진 왼팔을 대신하여 의수를 했단다. 그러나 화면에는 없는 팔 그대로 연설했다. 온 국민이 보는 텔레비전에서 의수를 집에다 두고 외팔로 출연한 까닭이 있단다. 모든 것에 감사하다면서도 의수를 주문하게 된 원인은 자기기준을 무시했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하면 남의 기준에 맞추려는 태도란다.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렇구나. 나도 마찬가지다’하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녀의 없어진 팔이나 원래 없는 필자의 눈을 있는 것처럼 가짜로 만들어 착용하는 것은 남의 기준에 따르기 위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남이 보기에 진짜처럼 보여도 기실 진짜가 아님은 본인이 가장 확실하게 알지 않는가.자기 기준이 명확하면 불평불만이 사라진다. 온통 아귀다툼으로 뉴스가 종일 시끌벅적한데 남의 기준에 너무 민감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2022-09-06

생각하기 나름

조현태수필가 길과 하천이 나란히 양동마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과 관광객들은 이 길을 걸으며 하천에 눈길을 보낸다. 하천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생식물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물옥잠을 비롯하여 개구리밥, 수련, 창포와 부들, 물달개비, 부레옥잠 등이 뒤섞여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정겹고 평화로워 보인다.그런데 며칠 전, 이 하천 준설작업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안전경비원들은 준설작업에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혹시 쓰레기라도 나오면 수거하라는 지침이 있었다. 필자는 속으로 ‘범람할 하천도 아닌데 바닥을 중장비로 긁어 버리면 저 수생식물들과 하천 경관은 어쩌지’하고 걱정을 했다. 사실 이 하천은 마을에 내린 빗물이나 폐수만 흐르는 작은 도랑이지만 보기에 좋고 안전한 하천으로 과대하게 정비한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이러한 염려는 관광객들도 같았던 모양이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하나같이 물었다. 퇴적물도 없는데 잘 살고 있는 물풀은 왜 걷어내느냐고 말이다. 나를 시행기관이나 공사업자 측과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 잘못 알고 내게 질문하는 것 같았다. 대답이 궁색했다. 글쎄요, 나도 같은 생각인데 관계기관에서 시행하는 공사라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여기서 생각해보면 입장이 모두 다르다. 준설업자는 보유하고 있는 중장비로 기관이 원하는 만큼만 작업하고 그 대금을 받는 사업가다. 그러므로 왜 준설을 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탈 없이 작업을 마치면 된다. 그래서 제방 둑으로 쌓은 돌 축대가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지나는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굴삭기가 비켜주는 상황이 수시로 이어졌다.시행기관은 오직 경관이 좋아야 한다. 범람에 대한 대책은 애초에 과대정비로 해결했으니까. 그리고 관광객에 대한 안전은 준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이 더 깊어지거나, 추락할 위험요인을 더 추가하지도 않으면서 살짝 긁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관광객은 멀겋게 바닥을 헤집어놓은 것보다 풀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는 모습이 더 평화롭게 보이고, 갖가지 꽃들이 싱싱하게 피고 있으니 더 아름다워 보였을 게다. 그런데 왜 비싼 용역비를 지불해가며 볼거리를 없애는지 알 수가 없을 터이다.한편, 필자의 입장에서는 최저임금으로 채용된 6개월짜리 임시직으로 윗선에서 시키는 일을 충실하게 할 따름이다. 경관이 어떻고 비용이나 결과가 어떻다고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 준설한다는 결정은 이미 했고 안전하고 깨끗하게 작업하도록 살펴보라는 지시만 받았을 뿐이다.어느 입장에서 보더라도 각각 나무랄 사항이 아니다. 나름대로 생각하는 기준이 따로 있고 진행하는 과정도 다를 수 있다. 대부분의 수생식물들은 걷어낼 때 무자비하게 보이지만 드문드문 빠트린 뿌리만으로도 다시 활착하여 살아난다는 것을 나도 관광객도 몰랐다. 준설을 마치고 사흘이 지난 지금 왜 준설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양동마을은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축소판이다.

2022-08-23

하물며

조현태수필가 어느 농장 마구간에서 소가 크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주인은 벌써 발정기간인가 하고 수정일정을 살핀다. 수정 기록을 보면 발정이 오기에는 아직 기간이 남아있다. 보통은 소가 저렇게 울면 발정이거나 몹시 아픈 경우가 많은 줄 알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혹시 다치기라도 했나 싶어 몸 상태를 살펴봐도 소리를 지를 만한 이상 현상은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발정에 약간의 시간차가 있기도 하니까 조금 일찍 발정이 온 걸로 생각한다.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으로 수정사에게 전화한다. 아직 발정기에 들려면 며칠 남았는데 소가 자꾸 소리를 지른다고 전한다. 그러자 수정사가 말하기를, 소의 꽁무니를 잘 살피고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 보아서 다시 전화 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다. 어찌된 영문인지 소가 애절하게 우짖는 소리는 더욱 잦아진다. 건초와 사료도 넉넉하게 주는데 무슨 불만이냐고 핀잔을 하는 중에 어느덧 삼 일을 넘어가고 있다.행여나 먹이통에 사료가 없나 하고 살피러 가다가 물통이 바싹 말라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주인의 머리를 번뜩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에 주인이 우사 자동급수장치를 수리했던 일이다. 전문 수리사가 아니어도 철물점에서 플로팅밸브를 사다가 교체하면 되는 일이었다. 전에도 이런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수리를 했었다. 그때 고장 난 플로팅밸브를 교체한 후 메인밸브 열어주는 과정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잘 했다고 흐뭇해하다가 가장 중요한 밸브 열기를 놓친 것이다.그러니까 삼 일 동안 물을 먹지 못해 갈증을 호소하는 고함소리였으리라. 깜빡 잊어버린 그것이 소에게는 생명을 다투는 일이다. 아차! 하고는 재빨리 밸브를 열자 물통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소가 허겁지겁 물을 마셔댄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목이 말라 그렇게 고함을 질러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원망했느냐. 하염없이 물을 마셔대는 소를 어루만지며 주인은 연거푸 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긴다. 아니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 하겠다. ‘목말라 죽겠으니 물을 주세요’라고 말했으면 금방 해결해 주었을 터이다. 한편, 소는 물을 달라고 목이 터지게 외쳐도 발정인가 하는 주인에게 문제가 있다고도 하겠다. 소나 사람이나 서로 깊은 관심과 애착이 있으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것은 느낌이다. 감정이다.필자는 어쩐지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형국이 있어 보인다. 목청을 돋우며 끊임없이 말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한다. 또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들어야 할 사람만 귀를 틀어막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너 아침부터 신문 읽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문구점에 고등어 사러 갔는데 없었으니 수입해야 한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수리한 물통에 물을 공급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2022-08-16

억지관객

조현태수필가 얼마전 양동민속마을에 국악공연이 있었다. 오후 7시에 공연을 시작하는데 4시 경에 도착하여 장비와 소품들, 음향에서 조명까지 부산하게 움직였다. 체험관 마당이 제법 넓은데 마당에 의자를 가득 늘어놓았다. 오후 7시면 관광객은 거의 없고 양동 마을사람들뿐인데 관객이 얼마나 될까 걱정스러웠다.필자는 관람료를 지불해가며 공연을 찾아다니기도 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무료공연을 한다니 놓칠 수가 없었다. 각종 장비와 시설을 배치한 후 최종 리허설을 하면서부터 필자는 휴대폰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대단히 기대를 하며 앞자리에 앉아 본 공연을 기다렸다.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모여서 빈 의자가 없었다. 알고 보니 마을 이장이 미리 공연한다는 방송을 했는가 보았다. 이런 공연이 자주 있는 마을이라 웬만하면 주민들이 거의 다 참여하는 모양이다. 드디어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필자는 이때부터 실망하기 시작하여 마칠 때까지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선 공연 시각부터 관광객이 아무도 없는 저녁시간이다. 이왕이면 관광객도 함께 공연을 보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양동마을 심수정에서 잠깐 국악공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공연과 별 차이가 없었다. 똑같은 내용으로 한 마을에서 다섯 차례나 공연한다면 그 공연의 가치가 기립박수를 받을만한 공연인가 하는 생각이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마을에서 행해지는 행사라서 마을 주민들이 마지못해 참여하는 인상을 강하게 느꼈다. 더구나 사회자는 틀에 박힌 듯한 강요를 연거푸 했다. 제청을 해야 한다는 둥, 추임새를 큰 소리로 넣어달라는 둥, 주민들이 외치는 추임새나 박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둥, 그러면서 연습 삼아 ‘얼쑤’, ‘좋다’ 등을 따라하게 한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공연을 잘 하면 저절로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나오지 않던가. 추임새나 박수를 강요하고 연습한다고 공연의 질이 좋아지는가 하는 질문을 하고 싶다.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공연자들은 국악 분야 예술인이다. 그런데 6월 18일부터 10월 22일까지 기간에 14차례나 공연한다는 프로그램 일정이다. 이 예술인들이 공연비 한 푼도 받지 않고 그 많은 일정을 즐겁게 소화할 수 있을까? 이러고도 공공기관은 문화도시, 예술의 고장으로 경주를 자랑할 것인가. 짐작컨대 관에서 적당한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가능하다고 본다. ‘사랑이로구나’하는 타이틀의 경주국악여행 프로그램은 허울뿐이고 유명무실한 이벤트에 불과하지는 않는지 고민해볼 일이다. 어쩌면 마을 주민뿐인 관객이기 다행이지 예술에 관심 많은 관광객이 이러한 공연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다.어차피 공공재원을 들여 이벤트를 하려면 차라리 관광객이 붐비는 낮 시간대에 관객과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하회마을의 탈춤처럼 사물놀이나 농악 같은 프로그램으로 관객도 참여하여 어우러지면 더 문화적이지 않을까. 관객의 자세를 강요하고 가르치지 않아도 재미있고 신이 나면 칭찬하고픈 마음이 자동적으로 생기지 않을까 한다.

2022-08-09

‘선물(present)’

조현태 수필가 스펜서 존슨이 저술한 ‘선물’이라는 책이 있다.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세상에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술된 책이다. 독자로 하여금 그 여정을 따라가며 감정을 함께 공유하게 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그 선물이라는 것은 노인이 들려주는 신비스러운 이야기다. 노인은 그야말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얘기하면서 소년에게 궁금증과 기대를 한껏 심어준다. 그러나 소년은 매번 현실에서 장애물에 부딪친다. 그럴 때마다 다시 노인을 찾아가 선물을 찾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그 선물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란다.”소년은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어간다. 그래도 여전히 선물의 정체는 모호하다. 일터와 가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끈질긴 탐색을 마치고 나서야 소년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마침내 소중한 선물을 발견한다.소년의 삶에 안내자 역할을 했던 노인은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노인의 일생과 죽음은 이제 장년이 된 소년에게 마지막 깨달음을 남기게 된다. 어느덧 소년은 그렇게 의지했던 노인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위의 다른 이들을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으로 안내하게 된다.스펜서 존슨은 다음과 같이 현재의 중요성을 정의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바로 현재 이 순간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현재 이 순간을 옳은 쪽으로 집중하라. 그러면 활력과 자신감을 얻어 그른 것도 처리할 수 있다.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잡념을 없앤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쏟는가에 따라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관심을 쏟으라.”present라는 단어는 선물이라는 뜻이지만 현재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다. 현재야 말로 가장 큰 선물이며 가장 소중하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그러기에 오늘을 의미 있게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와 미래 모두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탈무드’에 보면 인간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이 나온다. 히브리어로 키소(ciso)와 코소(coso), 그리고 카소(caso)이다. 키소란 ‘돈 주머니’란 뜻으로 돈을 어디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코소란 ‘술잔’이란 뜻이다. 인생의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카소란 ‘노여움’이란 뜻인데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제력을 말한다. 어떤 일을 보고 얼마나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된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키소, 코소, 카소는 어떠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앞에 나열한 세 가지 기준에 공통된 평가시점 역시 현재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너 지금 박사라는 것은 엉터리 박사야. 왜냐면 옛날에 너는 멍텅구리였으니까.”이런 형식의 평가방법이야말로 순엉터리다.

2022-08-02

정리정돈이 중요하다

조현태 수필가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는 중에 ‘부자가 되는 방법’이 화제가 되었다. 한 선배가 조금은 엉뚱하다 싶은 방법을 제시했다. ‘부자가 되려면 정리정돈을 잘 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니까 돈을 많이 모으려면 돈이 차곡차곡 쌓여있어야 한단다. 즉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돈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그것이 현금이든 주식이든 또는 사업이든 직장 업무이든.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현금이나 주식은 적재적소에 명료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개인사업은 빈틈없는 설계와 함께 야무지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정돈할 필요가 있다. 직장 업무도 마찬가지다. 한 직원이 맡은 일이 까다롭고 복잡할수록 순서와 절차가 반드시 필요할 터이다. 그래야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될 것이요, 업무처리가 완벽할수록 능력이 인정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면 명예나 권력이나 예술에 이르기까지 정리정돈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명예’가 포함되는 문구를 보면 명예를 높이다, - 더럽히다, - 되찾다, - 실추시키다, - 얻다, - 지키다, - 훼손하다, - 걸다, - 빛내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사형으로 표현되는 주체가 ‘명예’라고 보면 어떤 행동 여하에 따라 모두 달라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돈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주어의 가치가 결정된다 하겠다.권력이 무엇인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권력’이라 한다.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지닌 강제력이기도 하다. 이 또한 정돈되지 아니한 국민에게는 그 가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민중이 권력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면 정리정돈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에 따라 권력을 인정한다.마찬가지로 스포츠니 문화니 예술 등도 예외는 아닐 성 싶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이 예술이다. 작품에 대하여 훌륭하다며 감동하고 칭찬한들 정돈되지 아니한 수용 앞에는 별 가치가 없다. 감동과 칭찬이 뒤죽박죽이라면 온전한 예술이라 할 수 없지 않은가.돈도 명예도 권력도 백사장에 묻힌 동전만큼 찾기가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고 유지하기도 얻기만큼 힘들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못하고 깡그리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는 것은 왜인가. 당사자 스스로 정돈된 상태라고 착각하는 순간, 주변도 함께 정리된 줄로 한 번 더 착각하기 때문이다. 주변과 자신 사이에 정리정돈이 되지 못한 탓이다.예컨대 이인삼각 경주를 생각해보자.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되어야 올바른 달리기를 할 수 있다. 제각기 판단하여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하면 반드시 함께 넘어진다. 그러므로 구경꾼도 경주자와 일치하게 구령을 외쳐주고 다함께 뛰는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래야 목표점까지 완주할 수 있다. 발목을 묶은 두 선수는 물론이요 응원하고 진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맡은 바를 잘 수행하는 그것도 정리정돈이라 할 수 있다.개인이든 국가든 지구촌이든 올바르고 아름답게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리정돈을 잘 하자고 권하고 싶다.

2022-07-12

흐름도 역사다

조현태수필가 남극에서 빙하를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바다에 떠 있던 얼음 조각들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떠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바람에 밀려가는 방향에 반대로 거슬러 움직이는 얼음 덩어리가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여 조사해 보았다. 어렵지 않게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을 거슬러 거꾸로 움직인 것은 빙산이었던 것이다. 빙산은 수면위로 드러난 부분이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물속에는 엄청난 크기의 얼음산이 있기 때문이었다. 비교적 덩어리가 작은 얼음조각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떠밀려가지만 바다 속에 엄청난 크기를 가진 빙산은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닷물의 조류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바람도 조류도 따지고 보면 위치가 이동하는 현상이다. 그 위치의 이동 방향이 일치하지 않은 곳에 부유물이 있다면 당연히 이동에너지가 큰 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여기서 얼음조각이든 빙산이든 바다에서는 부유물이다. 결국은 부유물 자체의 이동에너지가 바람이나 조류를 감당할 만큼 크다면 이미 부유물이 아니다.우리는 바람과 조류가 공존하는 세상에 떠있는 부유물이기도 하다. 왜냐면 세상의 흐름에 역행할 수도 없거니와 자신이 엄청나게 크고 돌같이 단단하다 싶지만 세상 속에서 티끌일 뿐이기 때문이다.이럴 때는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코스모스’가 또 떠오른다. 우주 속에 태양계가 얼마나 작으며 태양계에서 지구가 얼마나 보잘 것 없으며 지구에서 한 사람이 얼마나 미약한지 절실히 느끼게 했던 책이다.전자공학 교과서에 광속(전파 속도)을 1초당 30만km씩 날아가는 속도라고 했다. 흔히들 1초에 지구 일곱 바퀴 반을 도는 속도라고 한다. 그 속도로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8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대충 계산해도 1억4천400만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지구 위에 ‘나’란 존재는 마치 수박에 앉은 먼지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항간에는 자신이 빙산처럼 방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래서 웬만한 바람이나 촐랑거리는 물결에는 휩쓸리지 않고 꿋꿋하게 버틴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의 요동치는 역사가 그를 송두리째 이끌고 간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궁금하다. 전쟁하여 이기면 되고, 자원쟁취가 전쟁의 원인이고, 자원이 곧 빙산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우리는 어떤 흐름에 따라 살아야 할까? 누리호 2차 발사에 성공하여 온 국민의 감격과 칭찬이 조류만큼이나 한결같았다. 더욱 자랑스러운 모습은 연구원들과 기술자들이 모두 자신보다 주변 사람에게 ‘고생했다, 축하한다, 감사하다’며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는 인사였다.전쟁과 분단의 참혹한 환경에서 세계 7대 우주강국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는 감동스러운 조류가 흐른다. 누리호에 쏟은 연구와 기술이 작은 얼음조각이면 어떻고 빙산이면 어떠랴.

2022-07-05

원래의 모습

조현태수필가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했다. 한 때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기계를 고치러 다니는 일도 했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사과를 팔기도 했으며, 산동네 판자촌을 돌아다니며 양말을 팔기도 했다.그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림을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마로니에 공원과 도서관 앞에 그림을 펼쳐 놓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가져 주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다.그는 그림 다음으로 글쓰기를 좋아했다.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7년에 걸쳐 글을 썼다. 나중에 책이 출간되면 절반은 가정을 돕고 절반은 가난한 이웃에게 선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 기도하면서 썼다.원고 뭉치를 들고 출판사를 돌아다녔지만 그의 글을 사 주는 곳이 없었다. 다섯 번이나 거절을 당했지만 주저앉지 않았다. 그가 낙심하지 않은 이유는 어딘가 자신의 글을 알아 줄 출판사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찾아간 출판사에서 그의 글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베스트셀러 ‘연탄길’이 출간되었다.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지만 ‘아픔’이 스며있는 책. 그 ‘연탄길’에 그가 그린 그림이 실려 있다. 이철환 작가의 이야기다.그는 ‘곰보빵’에서 낙심하지 않은 이유를 고백한다. “기름때 찌든 작업복을 입고 있을 때도 나는 프란츠 카프카를 읽었고 아무도 사지 않는 그림 옆에서 고개를 들 수 없을 때도 나는 알프레드 까뮈를 읽었다. 도스토엡스키와 말라르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헤르만 헤세가 있어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사람을 꿈꾸게 하는 것은 기쁨이 아니었다. 아픔이었다. 나는 지금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평화롭고 행복하다. 아름다움의 원래 모습은 아픔이었다.”그는 이런 일도 고백하고 있다. 어느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화장실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남자들만 사용하는 소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리둥절 하는 순간 여자 화장실로 잘못 들어간 것을 깨달았다. 깜짝 놀라 화장실을 급히 빠져나가려는데 공교롭게도 한 여성과 입구에서 마주쳤다. 그 여자 분도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죄송하다’는 말을 강조하며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버렸다. 남자화장실로 잘못 들어간 그 여자를 향해 ‘죄송합니다. 거긴 남자 화장실입니다’ 라고 소리치고는 도망쳤다고 한다.그의 실수 때문에 그 여자 분만 애꿎게 봉변을 당하게 되었으니 몹시 죄송했으리라. 물론 앞 사람의 잘못된 선택이 뒷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아픔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는 있어도 실수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되돌리지는 못한다. 다만 실수로 인한 아픔이 클수록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누구인들 낙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실수가 없을 수야 있겠냐만 절망하지 않는 아픔과 도망치지 않는 아픔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이런 원래의 모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22-06-21

깔끔하게 물러나자

조현태수필가 며칠 전, 아홉산 숲에 다녀왔다. 규모가 약 오십삼만 평방미터에 달한다고 하니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아홉 봉우리’에서 이름 지어진 이 독특한 숲에는 적송, 편백나무, 삼나무, 서어나무, 맹종죽 등이 무리지어 있다. 개인명의(남평문씨)로 조성되고 가꾸어 왔는데 현재는 ‘아홉산 숲 사랑 시민 모임’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가장 인상적이고 대표되는 수종이 대나무였다. 대나무는 땅속줄기(뿌리 줄기)에 마디마다 뿌리와 싹을 갖추고 있다가 삼사 년이 지나면 싹이 자라나온다. 성장 속도는 점차 가속된다는데 땅 밖으로 나타날 무렵에는 하루에 몇 센티미터 정도이다가 최적의 성장환경이 되면 일 미터를 넘게 자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죽순에 모자를 걸어놓고 이틀만 지나도 그것을 내릴 수 없는 높이로 올라가 있다고 한다. 대나무는 외떡잎식물로 관다발은 있으나 부름켜가 없어서 몇 년을 자라도 굵기와 높이는 성장하지 않고 단단히 굳어지기만 하기 때문에 나이테가 없다. 보통 나무들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죽순은 약간의 독성이 있다는데 종족번식을 위한 자신의 방어기전일 수도 있겠다. 죽순과 껍질에는 니아신, 나트륨, 레티놀, 베타카로틴, 단백질, 각종 비타민과 식이섬유 등이 함유되어 있어 훌륭한 식재료 중의 하나다. ‘죽순껍질 차’도 있다는데 구입해 마셔보고 싶다.오늘은 대나무 예찬보다 죽순껍질을 말하려고 한다. 대나무가 두어 달 자라면 성장을 멈추고 껍질을 떨어뜨린다. 죽순에는 줄기 자체에 보다 껍질에 더 많은 생장호르몬이 들어 있다. 생장호르몬이란 세포를 분열시키고 분열 된 세포를 크게 자라도록 하는 물질이므로 죽순에서 껍질을 제거해 버리면 자라지 못하여 난쟁이 대나무가 된다. 또 죽순 겉을 싸고 있는 껍질은 연한 본체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인간에게 ‘부모’란 죽순의 껍질과 같아야 한다. 좋은 가르침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자식이 다치거나 어긋나지 않도록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어릴 때일수록 밀착하여서 보호막 역할을 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식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면 족하다. 그 시기는 이십대 초반쯤이 아닐까 한다. 어느 부모인들 자식 귀한 줄 모르겠냐만 소중할수록 스스로 터득하고 단단해지도록 그 길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다들 그렇게 알고 있는 듯하다. 과잉보호나 도를 넘는 간섭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도 자신의 자식만은 예외인 듯 놓아주지 못하는 전형적 내로남불 형식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다.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자식은 왠지 서툴러 보이고 힘겨워 보인다. 왜냐면 성장기를 거쳐 온 사람과 이제 성장기에 다다른 사람의 차이니까. 결론은 부모와 자식 간에 차이가 나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냥 지켜보지 못하는 애착심이 발동하면 자식이 부모의 궤도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이 희석된다.대나무 껍질이 떨어지지 않고 마디마디 달라붙어서 감싸고 있으면 이미 대나무 모습이 아니다. 매우 볼썽사납고 거추장스럽다. 깔끔하게 물러나자.

2022-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