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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등록일 2022-08-16 18:02 게재일 2022-08-1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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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태수필가
조현태수필가

어느 농장 마구간에서 소가 크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주인은 벌써 발정기간인가 하고 수정일정을 살핀다. 수정 기록을 보면 발정이 오기에는 아직 기간이 남아있다. 보통은 소가 저렇게 울면 발정이거나 몹시 아픈 경우가 많은 줄 알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혹시 다치기라도 했나 싶어 몸 상태를 살펴봐도 소리를 지를 만한 이상 현상은 발견하지 못한다. 그래서 발정에 약간의 시간차가 있기도 하니까 조금 일찍 발정이 온 걸로 생각한다.

주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으로 수정사에게 전화한다. 아직 발정기에 들려면 며칠 남았는데 소가 자꾸 소리를 지른다고 전한다. 그러자 수정사가 말하기를, 소의 꽁무니를 잘 살피고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 보아서 다시 전화 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다. 어찌된 영문인지 소가 애절하게 우짖는 소리는 더욱 잦아진다. 건초와 사료도 넉넉하게 주는데 무슨 불만이냐고 핀잔을 하는 중에 어느덧 삼 일을 넘어가고 있다.

행여나 먹이통에 사료가 없나 하고 살피러 가다가 물통이 바싹 말라있는 것을 보았다. 그제야 주인의 머리를 번뜩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며칠 전에 주인이 우사 자동급수장치를 수리했던 일이다. 전문 수리사가 아니어도 철물점에서 플로팅밸브를 사다가 교체하면 되는 일이었다. 전에도 이런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수리를 했었다. 그때 고장 난 플로팅밸브를 교체한 후 메인밸브 열어주는 과정을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잘 했다고 흐뭇해하다가 가장 중요한 밸브 열기를 놓친 것이다.

그러니까 삼 일 동안 물을 먹지 못해 갈증을 호소하는 고함소리였으리라. 깜빡 잊어버린 그것이 소에게는 생명을 다투는 일이다. 아차! 하고는 재빨리 밸브를 열자 물통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는데 소가 허겁지겁 물을 마셔댄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목이 말라 그렇게 고함을 질러대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원망했느냐. 하염없이 물을 마셔대는 소를 어루만지며 주인은 연거푸 소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런 기막힌 일이 생긴다. 아니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 하겠다. ‘목말라 죽겠으니 물을 주세요’라고 말했으면 금방 해결해 주었을 터이다. 한편, 소는 물을 달라고 목이 터지게 외쳐도 발정인가 하는 주인에게 문제가 있다고도 하겠다. 소나 사람이나 서로 깊은 관심과 애착이 있으면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해결이 가능하다. 그것은 느낌이다. 감정이다.

필자는 어쩐지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형국이 있어 보인다. 목청을 돋우며 끊임없이 말하는데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한다. 또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들어야 할 사람만 귀를 틀어막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너 아침부터 신문 읽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문구점에 고등어 사러 갔는데 없었으니 수입해야 한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

수리한 물통에 물을 공급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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