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세상 모습이 변하고 있다. 매년 경험하는 것이지만 이맘때 보는 자연의 변화는 경이로운 마법 그 자체다. 자연의 마법은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에겐 효과가 탁월한 처방전이다. 그 처방전을 받기 위해 전국 산하에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은 거대한 파도 같다.11월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바람이다. 굳이 큰 바람까지 필요 없다. 작은 바람이면 된다. 나무에게 있어 작은 바람은 위로다. 작은 바람 한 번이면 나무는 지난 계절 동안 지켜온 시간을 흔쾌히 놓는다. 그 모습에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망설임 따위는 전혀 없다.자유로운 것이 무엇인지, 또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 가까이에 그 방법이 있다. 무조건 부정부터 하는 억지 마음을 내려놓고 도로의 배경으로 묵묵히 서 있는 가로수를 보라. 그러면 나무가 내는 길과 저마다의 춤사위로 자유의 춤을 추며 기꺼이 길을 나서는 나뭇잎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마음의 눈을 크게 뜨면 신명에 겨운 나뭇잎의 표정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겸허한 마음까지 마음에 담을 수 있다.나뭇잎의 표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알지 못함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애써 찾자면 “초월(超越)”이 아닐까! 가지를 떠난 다음의 일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이 나뭇가지와의 시간을 놓을 수 있는 것은 떠난다는 사실조차 넘어섰기 때문이 아닐까!그 마음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안다면 세상은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이런 것을 학생들에게 찾도록 하는 교육을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시험 문제로 낸다면 어떨까? 정말 이런 교육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교육일까?자연이 한결같은 이유는 인정(認定)함을 알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부정(否定)이 없다. 상황이 변하더라도 자연은 그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결과를 겸허히 기다린다. 결과를 바꾸기 위한 편법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자연에는 실패가 없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순리요, 자연의 섭리이다.11월은 학교 교육에 있어 가장 큰 결실이 있는 달이다. 입시(入試)! 학생 수가 줄어 곧 문 닫을 학교(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들이 속출할 거라고 하지만 이 나라에는 지옥 같은 입시판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입시판에서 죽을 힘을 다하는 학생에게 나뭇잎 표정을 운운하는 것이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인지도 모른다.그래도 필자는 나무들이 나뭇잎을 다 털고 동안거에 들기 전에 꼭 학생과 선생님이 교실과 교과서의 사각 틀에서 벗어나 나이테를 키우는 나무 앞에 서기를 바란다. 그래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한 해 동안 최선을 다한 나뭇잎의 표정을 꼭 보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표정을 닮으려는 마음을 들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필자가 이토록 강하게 원하는 이유는 만약 코로나 이후에도 이 나라 교육이 지금과 같다면 이 나라 교육에는 희망은 없기 때문이다.
2021-11-10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포항시가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어 국비지원의 문화도시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오랜 세월동안 철강생산 중심의 산업도시로 문화의 불모지라 인식되어 온 포항이 국가에서 법으로 인정하는 문화도시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시행 1기에, 더구나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됐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기 지정을 앞두고 있는 올해에 그 문턱을 넘기 위해 진력(盡力)하고 있는 도시들의 면면을 보면 경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순천만국가정원의 생태문화도시 순천과 도시 자체가 예술인 통영 등 16개 시군이 총력을 기울여 경합중이며 그 중에서 6개의 도시가 지정된다고 하니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 가능한 일이다.포항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문화도시 사업의 중 예총이 주관하는 것으로 ‘포항에서 한 달 살기-받아쓰기? 바다쓰기!’라는 프로젝트가 지난 주말 마지막 평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사업은 타 지역 예술가들이 한 달간 포항에 머물면서 지역문화를 체험하며 지역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본인들의 작품 제작을 위한 영감을 얻기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지역과 타지역의 예술 활동이 연결되도록 하는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과연 타인의 눈으로 보는 포항의 느낌은 어떤지, 포항의 예술적 자산은 무엇이며 문화도시로 정착 발전 가능성은 어떠한지를 진단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예술가를 환대하는 도시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고, 타 지역 예술가들의 눈과 입과 영감을 통하여 포항의 문화적 가치를 진단하고 예술가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데 활용하려는 전략이다.초대된 작가들은 구미에서 온 동화작가와 시각디자이너, 대구에서 온 패션그래픽 작가, 그리고 내년도 문화도시 예비지정을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고흥에서 영호남의 경계를 넘어 참가한 화가 등이다. 그들은 구룡포의 ‘아라예술촌’과 송라의 전원주택 작업실 등에 거주하면서 한 달 동안 오감을 활짝 열고 포항의 곳곳을 누볐다. 해양문화에 관한 워크숍을 열었고, 바다가 전해주는 말을 받아 적기도 하였고, 내연산 등 명소를 탐방하였고, 축제, 공연, 전시 등 문화행사를 체험하며 포항을 느끼고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초대 작가들의 공통적인 감동 포인트는 바다와 산, 그리고 도시가 잘 어우러져 예술적 아우라가 풍부한 고장이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포항의 색깔에 반했고 이를 본인들의 작품에 표현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들은 완성작품을 제출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하였다. 바다 테마의 동화를 쓸 것이라 했고, 바다 이미지를 패턴화한 굿즈 제작, 해양 일러스트, 포항 인상의 회화작품과 시화 등으로 전시회를 열자하였다.고흥에서 초대된 화가는 필자의 대학동기생이다. 그는 포항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며 대학동기 4명을 구룡포 ‘아라예술촌’으로 불렀다. 40년 세월을 넘어 초로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만난 그들은 ‘포항으로의 일탈’이라며 유쾌하게 웃었고, 곳곳을 돌아보며 매력적인 도시 포항에 탄복하여 1970년대 윤정희 주연의 영화 ‘화려한 외출’을 소환하였다. 밖에서 본 포항은 불황의 도시도 삭막함도 아닌 문화가 넘치는 도시였다.
2021-11-09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이 되면 들녘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고 땀방울을 흘리며 추수하는 농부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부터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고 서로 가진 것을 사고팔기 시작했을까? 아마도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농사기술이 발전하여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수확량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남는 곡식을 저장하고 다른 필요한 물건들을 서로 물물교환하면서 많은 저장과 이동이 동반되었고 유통(流通)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을 것이다.유통은 생산과 소비 사이에 존재하며 양자를 연결하는 것을 말한다.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장소, 시간, 사람 간의 이격이 존재한다. 예컨대 식탁에 오르는 생선은 근해나 원양에서 오는 것으로 이렇게 생산과 소비 사이에는 장소적인 이격이 존재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운송기능’이다. 또 쌀은 가을에만 수확하여 연중 소비가 발생하므로 생산과 소비 사이에 시간적 이격이 존재하며 이를 연결하는 것이 ‘보관기능’이다. 그리고 쌀을 생산한 사람은 본인이 필요한 양을 제외하고 쌀을 사려는 사람에게 팔아 현금화하여 다른 필요한 물건을 사고 싶어 하므로 이를 연결하는 것이 ‘판매기능’인 것이다.이처럼 장소, 시간의 이격을 매워주는 것을 우리는 물적유통(物的流通) 즉 ‘물류’라고 하며, 사람 간의 이격을 매워주는 것을 상적유통(商的流通) 즉 ‘상류’라고 한다. 그 중 제조현장은 물류의 개선이 중요하며 핵심은 장소와 시간적 이격을 줄여 생산하는 물건이 낭비 없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산현장을 보면 종종 물류의 핵심 개선 포인트를 잊어버리고 필요 이상으로 저장공간을 많이 두거나, 시간적 이격으로 인해 재공, 재고가 늘어 제품 회전이 늦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필자가 지도한 회사 중에 1천종류 이상의 내화물을 생산하는 공정이 있었는데, 가열로에서 나온 내화물을 종류와 사이즈 별로 팔레트에 적재 후 별도의 저장공간에 하나의 통로를 통해 저장 후 다시 꺼내어 포장공정에서 포장하여 최종 제품을 공급하는 생산라인이 있었다.내화물의 종류가 많다 보니 넓은 저장공간이 필요하였고 하나의 통로를 통해 입, 출고를 하고 있어 역물류 발생과 포장할 제품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이를 제품 종류별 생산 로트(Lot) 크기를 줄여 재고량을 줄이고, 입고와 출고 통로를 별도로 구분하여 물건이 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개선하여 하루에도 수백번씩 발생하던 역물류와 시간을 줄인 예가 있다.물류는 ‘사물(物)이 흐른다(流)’를 의미한다. 즉 생산하는 제품의 행선지와 두는 곳을 정하고 시간과 수량을 정해 최적으로 흐르도록 물품에 일종의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적지와 시간이 없는 것은 죽은 물건이 되는 것이다. 제조현장의 모든 생산품에 대하여 생명을 불어넣고 장소, 시간의 이격을 줄이는 노력을 지속한다면, 직원은 낭비를 발굴하는 역량이 향상되고 회사는 제품의 빠른 회전을 통해 경쟁력이 한층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2021-11-08
조현태수필가 그저께는 잡채와 닭죽을 얻어와 이틀이나 맛나게 먹었다.빈 그릇을 돌려주기보다 뭔가를 채워 줘야지 싶었다. 여름에 수확하여 빻아놓은 고춧가루를 통에 가득 채웠다. 역시 얻어오는 고마움보다 나눠주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평범한 이치를 또 한 번 느끼며.맛있게 잘 먹었노라고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적고 있는데 김씨가 도착했다. 그의 작품을 논의하기 위해서 미리 연락하고 왔다. 반갑게 인사하는 중에 한 아름 가져온 물건을 불쑥 내밀었다. 호박죽 한 통과 음료수 한 박스. 뭘 또 이렇게 가져오시나 하고 받으려니 도서관 이씨 심부름이나 하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게 김씨의 심부름을 하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씨가 호박죽을 참 좋아하지’했다.심부름이야 조금 후에 해도 되니 일단 호박죽은 냉장고에 보관했다. 나는 음료수라도 하나씩 마시고 논의하자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방금 점심 먹었으니 끝내고 커피나 한 잔씩 마시자고 했다. 서로 바쁘게 살고 있으니 얼른 마치고 가야하나보다 생각했다. 작품은 이메일로 받았고 미리 출력해 검토했으니 일사천리로 논의를 마쳤다.약간의 환담 후에 일어서는 김씨를 전송하고는 곧바로 자전거를 준비했다. 어차피 지금은 자전거 운동을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자전거 코스가 남쪽이지만 오늘은 북쪽으로 가도 운동은 마찬가지 아닌가. 후다닥 냉장고에 두었던 호박죽을 자전거에 싣고 바로 페달을 밟았다.이씨를 본 지도 오래고 가을 날씨까지 무척이나 상쾌해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신나게 달려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호박죽을 책상 위에 놓고는 전화를 했다. 이씨가 남편의 일터에 나가 있다는 대답이었다. 김씨가 가져온 호박죽을 전해주러 왔는데 아무도 없어 책상 위에 두고 간다고 했다. 오랜만에 얼굴 보면 좋으련만 아쉽다는 인사를 교환하며 돌아온 것까지는 괜찮았다.몇 시간 지난 후 이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호박죽과 음료수는 이씨가 나 먹으라고 김씨에게 들려 보낸 건데 왜 도로 가져왔느냐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했다. 김씨가 갖다 주라고 했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면 김씨가 농담했나?또 한참 후에 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니까 김씨는 먼저 이씨 집으로 가서 호박죽을 먹고 내게도 갖다 주라는 이씨의 부탁을 김씨가 심부름했던 것이다. 문우의 설명을 듣고 머리가 띵해졌다. 김씨가 음료수와 호박죽을 가져와 음료수는 내가 마시고 호박죽은 이씨에게 갖다 주라는 심부름으로 들었으니 말이다. 할 말이 없었다.다시 이씨에게 가서 호박죽을 가져와야 했다. 말을 잘못 이해하면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니까 내가 감당해야 할 당연한 수고다.상대의 말을 중간에 잘라먹거나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는 사람. 자신에게 필요한 말만 골라서 듣는 사람. 자신의 생각은 틀려도 옳고 상대의 생각은 옳아도 틀리다고 억지 부리는 사람.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말에 일관성이 없는 사람. 남의 말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지 않는 사람. 이미 뱉은 말에 책임지지 않으려 드는 사람….우리가 살면서 말만 정확하게 소통해도 훨씬 더 경제적이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터이다. 오랜 옛날부터 세 치 혀를 강조해오지 않았던가.
2021-11-07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쉿, 동물이 지나가고 있어요!”체험학습 사전 답사를 위해 고속도로를 가다가 본 문장이다. 출퇴근 길에도 자주 본 글이지만, 이 문장이 그날따라 유독 더 선명하고 크게 마음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화창한 가을 날씨, 형형색색의 단풍 등 많은 것을 떠올려 보았지만, 모두 아니었다.그러다 산 전체가 없어지는 공사 현장을 지나면서 필자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았다. 어떤 공사인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분명 큰 산 하나가 없어지고 있었다. 이미 벌목 작업은 끝났고, 산을 해체하면서 나오는 흙을 운반하기 위해 늘어선 차량의 길이는 끝을 알 수 없었다.환경과 우리 삶은 한 몸이다. 굳이 우위를 가리자면 이제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환경이 좋지 않으면 우리도 좋지 않다. 반대로 우리가 좋지 않으면 우리는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난다. 그래서 세계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하지만 아직 무분별한 개발은 진행 중이다. 그 결과 환경은 복원이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었다. 환경 파괴는 곧 우리 삶의 파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지만, 사람들은 개발주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그래도 환경에 대한 양심은 있어 만든 것이 생태 통로이다.생태 통로를 보면서 필자는 교육 통로가 떠올랐다. 환경 파괴와 교육 파괴가 다른 것은 환경 파괴 현장에는 생태 통로라도 있지만, 파괴된 교육 현장에는 교육 통로가 부재하다는 것이다.평생을 제자 교육을 위해 헌신한 김만수 시인은 시 ‘목련꽃 목댕기’에서 말한다.“(….) 정직과 용기를 가르치며/서른여덟 해를 바다 언덕길 걸어왔습니다 // 그러나 아버지/교실은 비고 아이들은 아스라이 멀어지며 선생님들이 뺨을 맞는/스승의 자존이 무너지고 숭고한 정신이 훼절되어/깊은 상처가 번지는 날들이 늘어갔습니다 (….)”이 시는 교육 파괴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중 스승이라는 말이 너무 아프다. 스승이라는 말은 이제 학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필자는 “그래도”라는 말을 여기서 꼭 쓰고 싶다. 비록 학교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아직 학교는 희망 제작소다. 그 희망을 만드는 이가 교사요, 그들이 곧 스승이다. 김만수 시인은 이 나라 교사들이 스승인 이유를 같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아버지/이 땅의 스승들은 (….) 불의에 맞서는 정신과/정직과 용기의 가치를/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와/새로움을 열어가는 길을 가르치며/새벽을 열어갔습니다 (….)”비상구조차 보이지 않은 교육 현장에서 필자는 대선배 교사의 시에서 교육 통로를 찾았다.“(….) 너무도 그리운 아버지/설머리 붉은 해는 떠오르고/오직 한마음 곧은 정성으로/팍팍한 언덕길 다시 오르는/이 땅의 스승들 있어 희망이 있습니다 (….)”교육 대로(大路)를 재건할 사람은 교사다. 교사가 살아야 교육도 산다. 교사를 살리는 11월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1-11-03
오낙률시인·국악인 “다 같이 나뭇가지에 내린 물인 것을, 어느 것은 물이라 하고 어느 것은 서리라 하고, 어느 것은 눈이라 하고 또 어느 것은 이슬이라 하고, 또 어느 것은 꽃이라 하더이다. 올 한해는 서리라기보다 눈이라 불리고 싶고, 눈이라기보다 꽃이라 불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고, 임께서도 그러하시길 소망합니다. 올해도 저에게 꽃을 피우는 온화한 기운이 되어주실 것도 소망합니다”어느 새해 벽두에 카카오톡으로 나눈 지인과의 새해 인사에서 필자가 보낸 인사 문구인데 생각이 나서 이 글에 인용해 보았다.나이 들면서 가능하면 아름다운 생각과 아름다운 언어와 아름다운 눈과 아름다운 표정으로 살고 싶다. 뉜들 그게 꿈 아닐까 해도 사람 살이 하면서 그게 그리 쉬울까 해도, 이제 내 남은 생애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것이고 싶다.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가족과 아름다운 이웃하며, 가을이면 투정하듯 붉게 물드는 단풍과 그리고 때론, 내 어여쁜 아기 손주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다.흔히 꽃과 나무와 온갖 새들이 살아가는 이 지구를 낙원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저 꽃과 나무와 새들의 입장에서 봐도 인간과 더불어 살아감이 낙원처럼 느껴질까?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지상에 튼실하게 뿌리를 박으며 살고 있는 갖가지 식물들이 지구의 주인이다. 지구는 온갖 식물들이 살아가는 낙원이고 인간은 지구를 탐하며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는 침입자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인간은 굳이 물구나무를 서지 않고서도 문어나 오징어처럼 여러 개의 발로 지구를 어루만지며, 지구에서 자라는 갖가지 식물들을 마치 소가 풀을 뜯듯 하며 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라는 허공에 부유물처럼 떠있는 존재로서 지구의 표면에 최대한 달라붙어 끝없이 지구를 탐하고 있는 셈이다.인간은 밤이면 등을 지구에 대고 중력을 잃은듯 네 발을 버둥거리며 허공에 떠 있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하곤 한다. 잠자는 모습이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가급적 지구로부터 멀리 이탈하지 않으려고 집이라는 건물을 짓고 방이라는 좁은 공간에 몸을 의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지구를 가지려 해도 결국엔 지구의 표면을 배회하는 지구의 주변에 불과할 뿐, 가끔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묘지에 들어가서 지구에 안착하기도 한다. 요즘의 장례식 문화는 화장 문화가 주류를 이루는 탓에 그마저도 성공률이 희박한 실정이다.소나 돼지 닭, 또는 물고기…. 인간들은 날마다 혹은 자주 그들의 장례를 치르며 그들의 빈소에서 허기를 채우고 있다. 자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명이 사는 지구를 탐하다 희생당한 동물들의 장례식을 치르는 것이다. 잘 손질된 야크의 사체를 등짐으로 지고 땀을 흘리며 언덕길을 내려가는 저 높은 곳의 족속, 네팔 사내들의 진지함 쯤은 되어야 내가 아는 최소한의 약식 장례식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한 접시의 고기요리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지금, 지구의 정복을 위해 인간과 연대하여 싸우다가 장렬히 최후를 마친 그들의 장례식을 너무 경박하게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2021-11-02
강길수 수필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모임이다. 먼저 온 분들이 몇 분 앉아있고. 소속 단체들의 팻말이 통로 좌우 탁자에 놓여 있었다. 뒤에서 얼핏 보니, 앞에서 세 번째 탁자에 내 소속 단체 팻말이 있었다.볼 것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뒷자리에 앉은 분이, “그 자리가 아닌데요….”하기에 다시 팻말을 보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조금 전 우리 단체 팻말로 보았는데, 새로 본 팻말은 다른 단체의 것이었다.“어?”하고 일어나 제자리에 가는 잠깐 사이, 뒷머리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팻말의 글씨가 작지도 않은데, 왜 착시로 보였을까. 물론, 뒷문을 들어서며 전처럼 얼핏 보았지 하나하나 제대로 보지는 않았다. 웬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나중에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우리 단체는 ‘평화의 모후’이고, 내가 앉은 단체는 ‘일치의 모후’였다. 글자 모양이나 내용이 오인하거나 착각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안이었다. 무얼 골똘히 생각하며 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 치매 증상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요인이 착시를 일으켰을까.저녁에 낮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회의실에 들어가며 내 잠재의식은 ‘오늘이 마지막 참석’이란 사실을 품고 있었나 보다. 이사 갔거나 다음 달 타지방으로 갈 단원들에게 ‘상급 회의에 오늘 마지막 참석하겠다’라고 사전 연락을 한 상태였다. 회의록이나 장부도 다 마감했다. 그래서 담담한 마음으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팻말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실을 보면 속마음은 겉과 달랐던 게 아닐까.기억력이 젊은 때 보다 떨어지고 있다. 기억 재생능력이라 해야 더 맞을지 모르겠다. 말을 하다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화장실 사용 후 전등을 끄지 않는 일 등도 종종 있으니까. 두 살과 네 살짜리 손주들의 기억력을 곁에서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사람의 두뇌를 생체컴퓨터로 본다면 내 기억 재생능력은 개인 컴퓨터이고, 손주들의 그것은 가히 슈퍼컴퓨터다.아무튼, 상황 인지능력도 기억력과 함께 감퇴 되고 있다는 심증이 간다. 뉘라서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있으랴.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자연의 순환법칙에 순응하며 사는 법을, 나이 들면서 시나브로 배우고 익혀가야 한다. 구원도, 성불도, 진정한 이룸도, 생·노·병·사의 순환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얻어낼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다가오는 노쇠현상 앞에 겸손해야겠다.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대선정국이 달아오른다. 여당 후보는 뽑혔고, 제1야당 후보도 곧 뽑힐 것이다.선거 과정에서 유권자가 어떤 착시현상에 빠졌거나,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장동 개발 의혹 논란에다, 소시오패스라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새로 나올 대통령은 정치로 생긴 적폐, 거짓, 부정, 조작, 비리, 편 가르기 등을 없애고 나라를 하나로 모으면 좋겠다.불안한 국민의 살림 걱정을 덜어주며, 튼튼한 국방, 국익 높이는 외교로 나라에 새 희망을 안겨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1-11-01
조현태수필가 교통신호등 체계에서 황색등이 켜지는 것은 곧 적색신호가 온다는 예고 신호이다. 그러므로 신호대를 향해 진행하던 차량들은 황색등을 보면 반드시 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적색등이 켜질 때 정지하기 쉬워진다. 항간에 어떤 사람이 농담 삼아 말하기를 황색등은 얼른 지나가라는 신호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얼른 지나가야 할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게 원칙은 아닐 터이다.
2021-10-31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극과 극인 계절을 경험하는 10월이다. 30℃를 훌쩍 넘는 가을 폭염(暴炎)에서 도로 결빙 주의를 알리는 가을 한파주의보까지! 폭염에서 한파까지는 단지 며칠에 불과했다. 2021년 10월을 경험한 사람에게 여름과 겨울 사이의 시간을 묻는다면, 그들은 며칠이라고 말할 것이다.가을 장마, 가을 폭염, 가을 한파! 어느 것 하나 자연스러운 것이 없다. 사람 사는 사회가 혼돈의 극치일 때도 자연만큼은 철을 지켰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 않다. 분명 자연은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지구, 자연, 생태, 환경, 사람, 공생, 나눔, 배려” 등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기만 할 뿐 실천은 늘 남의 일이다.그래도 이 사회가 유지되는 이유는 자연의 메시지를 실천하는 자연의 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과 코로나로 흉흉한 학교와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주 ‘기계면 현내2리’에서 있었던 살아있는 교과서 밖 위인(偉人)의 선행 실천기를 전한다.주인공은 마을 경로당이 낡은 것을 보고 기꺼이 큰 기부를 한 파독 간호사 1세대 ‘도자야’여사다. 다음은 1965년 2월에 독일로 건너간 도자야 여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독일에 간 이유?) 당시 한국 경제와 집안 사정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파독 간호사 모집에 주저하지 않고 지원했습니다. 외화를 벌어오면 나라와 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독일 생활에서 힘들었던 점은?) 외국이다 보니 너무 생소했습니다. 일단 언어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장 지독한 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먼저 생활이 맞지 않았고, 문화도 생소해서 적응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외국인이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독일이 제2의 고향이지만, 그 당시는 몇 번이나 집에 오고 싶었고 울며불며 가족을 생각해서 버틴 게 벌써 56년입니다.”“(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항상 독일에서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2년 전 기계에 와서 경로당을 봤을 때 시설이 많이 노후가 된 것을 보았습니다. 기계는 부모님이 저에게 주신 고향입니다.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에서 노후를 보내면 어떨지, 편하게 지내실 곳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기부금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기부를 했습니다.”“(일반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지금 코로나 시대에 다들 힘들지만 조금만 더 힘내고 주변도 돌아보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아서 조급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천천히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은 취업난에 너무 고생이 심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도 희망을 항시 포기하지 말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고생고생하면서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노력과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삶의 지혜란 이런 것이 아닐까!
2021-10-27
장광일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가을하면 단풍이라 했던가!
2021-10-25
조현태수필가 유럽 어느 목장에 종자가 좋은 말이 있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그 말 네 마리를 구입하였다. 그는 이 네 마리의 말들은 나란히 매어 마차를 끌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멀쩡해 보이는 말들이 농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말들이 만나기만 하면 사납게 날뛰고 서로 싸우며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런 말들을 나란히 매어 마차를 몰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말들이 따로 흩어져 있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함께 모이기만 하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먹이를 주며 달래보기도 하고 채찍으로 벌을 주기도 해 봤으나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농부는 고민에 빠졌다.오랜 고심 끝에 수의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그 말들을 잘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달라고 했다. 수의사도 농부의 설명을 듣고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수의사는 네 마리의 말들을 마구간에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한 마리씩 따로 있도록 칸을 질렀다. 말들은 여전히 옆 칸에 있는 말을 의식하며 소란스럽게 으르렁거렸다. 수의사는 칸막이에 적당한 창을 뚫었다. 그리고 창마다 몇 가지 놀이 기구를 매달아 두었다. 말들이 머리로 툭툭 받아치며 돌릴 수 있는 바퀴모양의 장난감, 발굽으로 쳐서 한 쪽에서 다른 칸으로 넘길 수 있는 공, 끈에 매달아 흔들리도록 만든 알록달록한 인형 등의 놀이 기구였다.말들은 이런 장난감에 많은 흥미를 보였다. 말들이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자 수의사는 한 주간에 한 번씩 말들의 자리를 교대로 바꾸었다. 놀이기구를 통해 서로 호감을 조금씩 나타내며 장난감을 함께 갖고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마리의 말들은 차츰 차츰 서로간의 적대감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네 마리의 말들은 매우 친한 사이로 변했다. 드디어 네 마리 말을 한 마차에 나란히 매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서로 머리를 부비고 핥아주며 친해졌다. 네 마리 말들은 마차를 놀이기구 다루듯 주거니 받거니 재미있고 신나게 몰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혁명’중.사람들이 사는 사회에도 여러 가지 공동체가 있다. 가정, 학교, 직장, 종교, 각종 단체 이를테면 체육, 음악, 미술, 문학, 과학, 농업, 상업, 공업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저항감과 반발심, 적대감이 있을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미워하여 지나치게 거북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공동체나 개인이 그 수의사와 같은 처방을 받을 수야 없지만 적어도 적개심은 없어야 동행이 가능하다.어떤 형태로든 같은 방향으로 달리거나 행동해야 공동체 또는 전문인이 아니겠는가. 동행하지 않으면 위의 책에서 말하는 말들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 대한민국이 넘어야 할 고지가 바로 코앞이다. 누리호 발사를 온 국민이 지켜보며 필시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같은 생각이 곧 동행이다. 함께 뭉치지 않으면 경제적, 정치적 식민화가 닥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2021-10-24
강길수 수필가 젊은 날, 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란 소공동체 활동을 시작했었다. 창단 단원으로 출발하여 오늘 해단할 때까지, 오랜 기간 참여했다. 해단 사유는 단원들의 수가 줄어, 더는 소공동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단원이 줄어든 원인은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다른 지역 전출이 주된 요인이었다. 전출은 타 시도로 가는 경우와, 같은 지자체에 살면서도 주거지 이동으로 거리가 멀어져 떠나는 경우의 두 가지로 대별 되었다. 우리 성당이 기존 시가지에 있어서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많은 요즈음의 사회 여건도 작용했다.새 교우 영입, 혼성체제 도입, 상위 단체 지원요청 등 자구책을 쓰면서 버티어 왔다. 40주년을 반년 남짓 앞두고, 남은 단원이 한 명밖에 안 되었다. 결국, 해단하기로 했다.젊을 땐 인구가 유입되며 선교가 잘 되어, 분가(分家)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간부 맡을 이가 모자라서다. 하지만, 반세기도 안 된 해단 앞에서 ‘긴 세월 동안 함께해 고마웠고, 행복했다’라고 카톡 인사를 보냈다. 격세지감과 회한, 어떤 슬픔도 가슴에 여울져 왔다.알파와 오메가란 말이 있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 알파(α)와 끝 자 오메가(ω)를 말한다. 주로 그리스도교에서 신앙대상의 영원한 존재성을 말할 때 많이 사용해 오다가, 요즈음은 일반적으로도 많이 쓰고 있다. 일반적 뜻은 처음과 끝 혹은, 어떤 무엇의 전부를 뜻하는 말이리라.무릇 만사는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이 있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는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살다가 죽는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먼지 한 알부터 흙, 돌, 바위, 지구 등 자연은 물론, 나아가 원자에서 태양계, 우주에 이르는 물질계도 같다. 바로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체와 물질계의 존재 양태는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 안에 있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당연히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는 ‘시간’이란 야릇한 존재, 변수 또는 개념이 그 몸이다. 시간은 물리학이나 철학에서 끊임없이 다루어 왔지만, 명쾌한 답은 아직도 못 얻고 있는 듯하다. 사람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살면서, 거부할 수 없이 처절하게 당하며 겪어내야 할 괴물이 시간이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한다’라든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란 속담만 보아도 그렇다. 시간의 절대 폭력 앞에 던져진 것이 모든 존재이다. ‘유종의 미’란 말도 있다. 목표를 끝까지 잘 이루어 내는 일이리라. 그렇다면 앞 소공동체 활동은 유종의 미를 거둔 것일까.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에서 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이 출발한 다른 단체는 계속되므로 그렇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결국, 만사는 꿈보다 해몽이란 말인가.오래 활동한 성당 소공동체의 알파와 오메가 법칙 결과가 이럴진데, 사회와 국가의 그것은 어떠해야 할까. 정권이 나라를 한 번도 겪지 못한 길로 막무가내 끌고 가는 우리 사회…. 그 알파와 오메가의 법칙이, 주권자 국민인 내게 실망을 주고 있다.
2021-10-18
조현태수필가 요즘 점심을 도시락으로 먹을 때도 있지만 가끔은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서 먹기도 한다. 자장면은 좀 싱거운 맛이라 간장이라도 좀 곁들이면 좋을 듯하고, 짬뽕은 너무 매워서 땀을 줄줄 흘리면서 먹는다.
2021-10-17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퇴근하는 필자의 귀를 의심케 하는 요란한 소리가 아파트 놀이터에서 들렸다. 필자는 처음에는 필자의 귀를 의심했고, 그다음에는 자정이라는 시간을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분명 자정을 몇 분 남기지 않은 시간이었다.
2021-10-13
오낙률시인·국악인 나무에 생겨난 상처의 흔적을 옹이라 하지만 인간에게도 옹이가 있다. 육신이나 마음에 남은 상처는 한번 생기고 나면 옹이처럼 돼 버리며,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옹이 몇쯤은 지니며 산다.무언가의 떠남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며 세월이 지나면 잊어질 것을 기대하지만, 사실 그 상처는 옹이가 되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외부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쩌면 상처받지 않고 살다 가는 인생, 그것이 삶의 목표일지도 모른다.어느 날 산책길에서 재선충에 당했는지 푸석푸석하게 썩어가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보았다. 이미 푸석하게 썩어서 흙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소나무 마디마디에 있는 옹이들은 썩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백년은 족히 살았을 저 소나무가 나무꾼들에 의해 가지가 잘려나갈 때 얼마나 아팠으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처부위를 호호 불고 살았으면 저렇게 단단히 옹이 져서 아직도 썩지 못하고 있는 걸까?사실 소나무의 옹이란 것은, 소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상처가 나거나 가지가 부러졌을 때 소나무 자체의 치유본능에 의하여 상처 난 자리에 송진이 몰리게 되고, 그렇게 몰려든 송진이 상처부위를 도포하듯 감싸서 그 부위가 마치 송진에 절여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상처부위가 송진덩어리처럼 돼있기 때문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다 썩어 가도록 옹이부분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살아있는 소나무의 송진은 상처가 발생하지 않으면 절대로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들의 민족성 같다.이를테면 아주 미미한 농도로 가지와 이파리에까지 분포하다가 어느 한 부위에 상처가 생기면 일제히 모여들어 상처치유에 나서곤 한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이 모여든다. 그래서 그 부위는 예전보다 더 단단하게 옹이가 되고 오래도록 썩지 않는 부위가 되는 것이다.가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사 주변에 아름드리가 넘는 소나무의 허리춤에서 수도 없이 도끼질을 당한 흉물스러운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는 이러한 소나무의 특성을 이용해서 일제가 군사용 송진을 수탈해간 흔적인데 그 소나무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썩을 때 그 상처부위만 옹이로 남아서 두고두고 수탈자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하물며 소나무에 생긴 옹이도 그러할진대, 사람에게 생긴 옹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돈 몇 푼 쥐어주며 그것으로 옹이를 지워 달라 하고 정부와 정부가 합의했다고 그 상처 잊어 달란다. 머지않은 세월, 위안부 피해를 입으신 할머니들이 모두 다 돌아가신다 해도, 절대로 잊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상처로 남게 될 옹이, 그 할머니들의 영혼에, 또 그 자손과 민족의 자존심에 생긴 커다란 옹이를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싶다.불에 태워도 시커먼 연기만 내 뿜으며 쉬 지워지지 않을 민족의 옹이를 진정 어찌해야 좋을까 싶다.
2021-10-12
조현태수필가 낙타 17마리를 전 재산으로 가진 노인이 있었다. 그는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유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부터 자신의 수한이 차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자녀들에게 재산분배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깔끔한 방법보다는 자식들이 우애를 잘 지키면서도 흡족하게 분배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드디어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노인은 자식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맏아들에게 낙타 수의 1/2을, 차남은 1/3을, 그리고 딸은 1/9을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했다.자식들이 함께 논의했다. 장남은 8마리를 가지자니 남는 1마리에 자신의 욕심이 드러날 것 같았고, 9마리를 가지려니 동생들의 욕심이 끼어들 것 같았다. 차남도 5마리를 가진다면 두 마리가 남는다. 형과 동생에게 한 마리씩 더 주어도 되겠으나 1/2과 1/9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6마리 가진다는 것도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딸도 마찬가지로 한 마리는 억울하고 두 마리는 오빠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 같았다.머리를 맞대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의 계산법에 정직하게 따를 수가 없었다. 고민 고민 끝에 평소에 친분이 두텁던 아버지 친구 분을 찾아가 상의해 보자고 했다. 여차저차 하니 아버지께서 원하신 대로 유산을 나눌 수 있도록 묘안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 친구 분이 이들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낙타 한 마리를 너희들에게 주겠다. 한 마리 더 늘어난 18마리라면 너희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상속받을 수 있을게다.”그 말씀을 듣고 보니 세 명 모두 아버지의 계산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장남은 18/2니까 9마리, 차남은 18/3이니까 6마리, 그리고 딸은 18/9이므로 2마리씩 가지는 계산이다. 이렇게 명쾌한 해답을 얻게 된 것은 낙타 한 마리를 더 보탠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배분법대로 준행하고도 1마리가 남는다. 아버지 친구께서 보태준 낙타를 돌려주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출처:과목별학습백과 퀴즈초등)집으로 돌아온 자녀들이 아버지 앞에서 그 방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노인이 자식들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이 세상사는 방법을 내 친구처럼 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자신의 것을 공짜로 내주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공평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연히 그 자녀들은 아버지 유언대로 훌륭한 공무원이 되어 많은 칭송을 받으며 살았다.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러한 분위기로 흘러가면 좋겠다. 남의 것을 탐하기보다, 내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으면 누구를 탓할 것도 없게 된다. 내가 먼저 더 유리한 조건의 재물에 욕심내는 것은 9:7:2를 주장하게 되고 서로 부당하다고 논쟁할 것이 뻔하다. 보태진 가상의 숫자 하나가 완벽한 배분을 하게 했고 여전히 남아있는 하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한 여유감이 아닐까 한다.노인이 고민했던 내용을 친구와 상의하였고 친구가 노인의 자녀에게 가르쳐준 방법도 노인이 고안한 것이었다면 현 정치에 적용할 부분은 없을까 싶다.
2021-10-11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 “질문이 곧 공부야 이놈아.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이 나라를 망쳤어.”필자는 영화를 즐겨 보는 것도, 또 특별한 영화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기회가 되면 대사에 좀 더 집중해서 영화를 본다. 글머리에 인용한 대사는 영화 ‘자산어보’에 나오는 말이다. 영화 속 대사 중에 필자의 마음에 오래 남은 말이 많지만, 이 말은 그중 유독 크게 남아 있는 말이다. 왜냐면 이 말만큼 우리 교육계의 아픔을 정확하게 분석한 말은 없기 때문이다.공부에 있어 암기(暗記)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암기하면서 얻어지는 긍정적인 기능도 많다. 물론 이때 말하는 암기는 이해를 바탕에 둔 제대로 된 암기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에 있어 암기는 너무 맹목적이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시험을 위해 학생들은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교과 지식을 무조건 외운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순간 모두 잊어버린다. 물론 모든 학생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학생이 시험을 위한 맹목적인 암기의 덫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나라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교육이 본연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학생이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교육과정이며, 이미 여러 차례 새로운 교육과정이 나왔다. 다음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개정 배경 중 일부이다.“미래 사회에는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보다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 선택, 조정, 통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할 수 있는 창의융합형 인재가 필요합니다.”늘 말하지만, 우리 교육이 이것을 해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늘 이론과 거리가 멀다. 모든 혼돈은 그 거리 차이에서 온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혼돈도 크다. 지금 우리 교육계가 큰 어려움에 빠진 것도 교육 이론과 교육 현장 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분명 교육과정에서는 지식의 습득보다 지식의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 현실은 어떤가? 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생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학교 현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안타깝게도 또 많은 학교가 시험 기간이다. 독서실은 이미 만원이다. 학생들은 시험을 저주하며 또 시험용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암기에 이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시험 위에서 선 위태로운 학생들을 보면서 필자는 영화 속 정약전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질문이 곧 공부야 이놈아. 외울 줄밖에 모르는 공부가 이 나라를 망쳤어.”그리고 공자의 말을 생각한다.“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하고,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니라.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학생들을 창의융합형 인재로 이끌 교육은 언제 가능할까!
2021-10-06
엄주선포스코 인재창조원 교수·컨설턴트 기업활동에서는 생산의 본질(本質)이라는 한자를 자주 사용한다. ‘본질(本質)’의 어원은 농경시대에 많이 사용하던 도구인 ‘도끼(斤)를 이용하여 돈(貝, 조개)을 버는 근본(本)이 되는 것’에서 연유한다. 기업에서는 이를 ‘본원경쟁력’이라고도 하며 ‘좋은 제품을 남보다 싸게 만들어 고객이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의 성장이 중요한데, 눈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여 잘 보이지 않는 인재양성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기업의 개선활동 측면에서 인재라 함은 ‘현장의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인재와 인재육성의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신(Mind)이며 개선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행동으로 매일 낭비를 발굴하고 개선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방법적으로 어느 사업장에서도 통하는 보편적인 개선 도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제도적으로 개선활동을 경영진이 지원하고 결과에 대한 보상으로 직원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필자가 지도하는 P사도 이러한 체계가 잘 구축되어 있지만, 개선이 생산과 하나의 방식으로 잘 구축돼 있는 회사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이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내 자신을 수양하는 데 도움이 되듯이(他山之石), 벤치마킹으로 선도기업의 장·단점을 분석해 자사의 새로운 혁신모델을 지향하는 것은 본원경쟁력과 인재양성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도요타자동차의 특장점을 공유,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인 무장이나 행동적인 자세에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이를 테면 도요타의 직원들은 ‘고객이 필요한 물건을 필요할 때 필요한 양만큼 생산’한다는 JIT(Just In Time)사상을 모두가 잘 공유하고 있다는 점, 가치 있는 움직임만을 위해 고객이 요구한 생산량으로 정한 표준시간과 순서로 작업을 하고, 제조공정이 정체없이 흐름화하여 제품의 준비교체시간을 줄이면서 앞 공정은 후공정인수 방식으로 생산하도록 하며, 직원의 역량을 5단계의 테크니션 레벨로 구분해 레벨이 올라갈수록 자동차 전체를 조립할 수 있는 장인으로 성장하는 체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점 등이 주목된다. 이렇다 보니 도요타를 퇴직한 후에도 대다수의 임직원들은 각 대학, 정부기관에서 서로 추천 제의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으며, 실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인재양성은 기업의 개선활동이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시작 단계이며 정신(Mind), 행동, 방법, 제도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체계화돼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개선과 혁신은 전직원의 기본 업무이며 일을 통해 사람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인간존중 사상이 기반이 돼야 회사와 개인 모두 지속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혁신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인재양성은 결국 기업의 가치와 미래에 대한 투자이고 포석(布石)이며, 지속가능한 창의융합의 청사진이다. 일련의 기업경영이나 인재 창조의 안목과 비전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되고 사람이 마무리하게 된다.
2021-10-05
조현태수필가 나침반은 바늘이 항상 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특성이 있다. 둥근 지구의 어느 곳에 있든지 극 지점의 자력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만 고정되어있는 물리적 특성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본 감정나침반 이야기가 있다.나침반 바늘 끝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미세하게 떨고 있단다. 나침반의 바늘이 그렇게 떨고 있는 한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옳다고 믿어도 좋단다. 여윈 바늘 끝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면서. 만일 그 바늘 끝이 떨림을 멈춘 채 어느 한 쪽만을 가리키며 고정되어 있다면 이미 나침반 기능이 아니라고 한다.그러면서 사람의 현상에 비추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한다고 한다.‘나무야 나무야’의 저자 신용복은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자 내용’이라고 덧붙인다. 나아가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에 ‘편안함’도 경계해야 한단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이어서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흐르는 강은 추억의 물이며 뭔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이라고 한다.나침반의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특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임무와 사명감이 나침반만큼이나 우직하면 좋겠다. 이러쿵저러쿵 살면서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할 수 있는 삶이지만 그럴 때마다 갈등하며 불편하게만 여기면 멈춤으로 이어질까 두렵다.우리는 언제나 편함과 불편함을 함께 지니며 살고 있다. 그렇건만 불편함만 없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미세하게 떨고 있는 망설임이 곧 불편한 것일 수 있으나 종국에는 고유임무를 지켜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흔하게 사용하는 어휘에 ‘갈등’이 떨고 있는 바늘의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칡과 등나무가 생장하는 양상이 서로 반대방향이라 하더라도 그 방향 때문에 성장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참나무에 같이 감아 오르는 칡과 등나무가 있다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을 뿐 참나무를 오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이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감을 수도 있다.그러나 칡과 등나무가 서로 감으려고 한다면 상당한 실패와 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둘 다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어떤 형태로든 조금은 엮이면서 상대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들에게도 불편함과 편안함이 있겠지만 어느 쪽을 택하기보다는 처음 목표를 둔 것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칡은 칡의 방식으로, 등나무는 등나무의 방식으로 꼬아야 할 일이다. 어느 한 쪽이 자신의 방향에서 상대의 방향으로 따라하면 새끼처럼 잘 꼬일 수는 있어도 방향을 바꾼 쪽은 이미 자기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불편하게 떨다가 정지해버린 나침반처럼 말이다.
2021-10-04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좋은 계절에 긴 휴일이 이어져 마음까지 넉넉했던 추석연휴가 조용히 지나갔다. 시간 맞춰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휴일이라고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평일보다 휴일이 편한 까닭은 아무래도 오랜 관념 탓인 듯하다.
2021-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