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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착시현상

등록일 2021-11-01 19:11 게재일 2021-11-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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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수 수필가
강길수 수필가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실 뒷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모임이다. 먼저 온 분들이 몇 분 앉아있고. 소속 단체들의 팻말이 통로 좌우 탁자에 놓여 있었다. 뒤에서 얼핏 보니, 앞에서 세 번째 탁자에 내 소속 단체 팻말이 있었다.

볼 것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때 뒷자리에 앉은 분이, “그 자리가 아닌데요….”하기에 다시 팻말을 보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 조금 전 우리 단체 팻말로 보았는데, 새로 본 팻말은 다른 단체의 것이었다.

“어?”하고 일어나 제자리에 가는 잠깐 사이, 뒷머리에 망치라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팻말의 글씨가 작지도 않은데, 왜 착시로 보였을까. 물론, 뒷문을 들어서며 전처럼 얼핏 보았지 하나하나 제대로 보지는 않았다. 웬일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우리 단체는 ‘평화의 모후’이고, 내가 앉은 단체는 ‘일치의 모후’였다. 글자 모양이나 내용이 오인하거나 착각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안이었다. 무얼 골똘히 생각하며 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 치매 증상이 드러난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요인이 착시를 일으켰을까.

저녁에 낮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회의실에 들어가며 내 잠재의식은 ‘오늘이 마지막 참석’이란 사실을 품고 있었나 보다. 이사 갔거나 다음 달 타지방으로 갈 단원들에게 ‘상급 회의에 오늘 마지막 참석하겠다’라고 사전 연락을 한 상태였다. 회의록이나 장부도 다 마감했다. 그래서 담담한 마음으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팻말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실을 보면 속마음은 겉과 달랐던 게 아닐까.

기억력이 젊은 때 보다 떨어지고 있다. 기억 재생능력이라 해야 더 맞을지 모르겠다. 말을 하다가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화장실 사용 후 전등을 끄지 않는 일 등도 종종 있으니까. 두 살과 네 살짜리 손주들의 기억력을 곁에서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사람의 두뇌를 생체컴퓨터로 본다면 내 기억 재생능력은 개인 컴퓨터이고, 손주들의 그것은 가히 슈퍼컴퓨터다.

아무튼, 상황 인지능력도 기억력과 함께 감퇴 되고 있다는 심증이 간다. 뉘라서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있으랴.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자연의 순환법칙에 순응하며 사는 법을, 나이 들면서 시나브로 배우고 익혀가야 한다. 구원도, 성불도, 진정한 이룸도, 생·노·병·사의 순환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얻어낼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다가오는 노쇠현상 앞에 겸손해야겠다.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대선정국이 달아오른다. 여당 후보는 뽑혔고, 제1야당 후보도 곧 뽑힐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가 어떤 착시현상에 빠졌거나,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장동 개발 의혹 논란에다, 소시오패스라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새로 나올 대통령은 정치로 생긴 적폐, 거짓, 부정, 조작, 비리, 편 가르기 등을 없애고 나라를 하나로 모으면 좋겠다.

불안한 국민의 살림 걱정을 덜어주며, 튼튼한 국방, 국익 높이는 외교로 나라에 새 희망을 안겨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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