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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 이야기

등록일 2021-10-04 19:45 게재일 2021-10-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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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태수필가
조현태​​​​​​​수필가

나침반은 바늘이 항상 남,북 방향을 가리키는 특성이 있다. 둥근 지구의 어느 곳에 있든지 극 지점의 자력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만 고정되어있는 물리적 특성이지만 사람의 눈으로 본 감정나침반 이야기가 있다.

나침반 바늘 끝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미세하게 떨고 있단다. 나침반의 바늘이 그렇게 떨고 있는 한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옳다고 믿어도 좋단다. 여윈 바늘 끝에 맡겨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살아 있기 때문이라면서. 만일 그 바늘 끝이 떨림을 멈춘 채 어느 한 쪽만을 가리키며 고정되어 있다면 이미 나침반 기능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의 현상에 비추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이며,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한다고 한다.

‘나무야 나무야’의 저자 신용복은 ‘어리석음! 그것이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자 내용’이라고 덧붙인다. 나아가 ‘편안함’은 흐르지 않는 강이기 때문에 ‘편안함’도 경계해야 한단다. 반면에 ‘불편함’은 흐르는 강물이어서 수많은 소리와 풍경을 그 속에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흐르는 강은 추억의 물이며 뭔가를 희망하는 잠들지 않는 물이라고 한다.

나침반의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특성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임무와 사명감이 나침반만큼이나 우직하면 좋겠다. 이러쿵저러쿵 살면서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할 수 있는 삶이지만 그럴 때마다 갈등하며 불편하게만 여기면 멈춤으로 이어질까 두렵다.

우리는 언제나 편함과 불편함을 함께 지니며 살고 있다. 그렇건만 불편함만 없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미세하게 떨고 있는 망설임이 곧 불편한 것일 수 있으나 종국에는 고유임무를 지켜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흔하게 사용하는 어휘에 ‘갈등’이 떨고 있는 바늘의 현상이기도 할 것이다.

칡과 등나무가 생장하는 양상이 서로 반대방향이라 하더라도 그 방향 때문에 성장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만약 참나무에 같이 감아 오르는 칡과 등나무가 있다면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감을 뿐 참나무를 오르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이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칡과 등나무가 서로 감으려고 한다면 상당한 실패와 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둘 다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어떤 형태로든 조금은 엮이면서 상대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들에게도 불편함과 편안함이 있겠지만 어느 쪽을 택하기보다는 처음 목표를 둔 것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칡은 칡의 방식으로, 등나무는 등나무의 방식으로 꼬아야 할 일이다. 어느 한 쪽이 자신의 방향에서 상대의 방향으로 따라하면 새끼처럼 잘 꼬일 수는 있어도 방향을 바꾼 쪽은 이미 자기정체성을 잃은 것이다. 불편하게 떨다가 정지해버린 나침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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