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생겨난 상처의 흔적을 옹이라 하지만 인간에게도 옹이가 있다. 육신이나 마음에 남은 상처는 한번 생기고 나면 옹이처럼 돼 버리며,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옹이 몇쯤은 지니며 산다.
무언가의 떠남에 대하여 가슴 아파하며 세월이 지나면 잊어질 것을 기대하지만, 사실 그 상처는 옹이가 되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살면서 외부로부터 상처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쩌면 상처받지 않고 살다 가는 인생, 그것이 삶의 목표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재선충에 당했는지 푸석푸석하게 썩어가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보았다. 이미 푸석하게 썩어서 흙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 소나무 마디마디에 있는 옹이들은 썩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백년은 족히 살았을 저 소나무가 나무꾼들에 의해 가지가 잘려나갈 때 얼마나 아팠으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상처부위를 호호 불고 살았으면 저렇게 단단히 옹이 져서 아직도 썩지 못하고 있는 걸까?
사실 소나무의 옹이란 것은, 소나무가 자라는 과정에서 상처가 나거나 가지가 부러졌을 때 소나무 자체의 치유본능에 의하여 상처 난 자리에 송진이 몰리게 되고, 그렇게 몰려든 송진이 상처부위를 도포하듯 감싸서 그 부위가 마치 송진에 절여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상처부위가 송진덩어리처럼 돼있기 때문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다 썩어 가도록 옹이부분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소나무의 송진은 상처가 발생하지 않으면 절대로 한곳에 모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들의 민족성 같다.
이를테면 아주 미미한 농도로 가지와 이파리에까지 분포하다가 어느 한 부위에 상처가 생기면 일제히 모여들어 상처치유에 나서곤 한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이 모여든다. 그래서 그 부위는 예전보다 더 단단하게 옹이가 되고 오래도록 썩지 않는 부위가 되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사 주변에 아름드리가 넘는 소나무의 허리춤에서 수도 없이 도끼질을 당한 흉물스러운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는 이러한 소나무의 특성을 이용해서 일제가 군사용 송진을 수탈해간 흔적인데 그 소나무들도 언젠가는 죽어서 썩을 때 그 상처부위만 옹이로 남아서 두고두고 수탈자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하물며 소나무에 생긴 옹이도 그러할진대, 사람에게 생긴 옹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돈 몇 푼 쥐어주며 그것으로 옹이를 지워 달라 하고 정부와 정부가 합의했다고 그 상처 잊어 달란다. 머지않은 세월, 위안부 피해를 입으신 할머니들이 모두 다 돌아가신다 해도, 절대로 잊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상처로 남게 될 옹이, 그 할머니들의 영혼에, 또 그 자손과 민족의 자존심에 생긴 커다란 옹이를 대체 어찌하면 좋을까 싶다.
불에 태워도 시커먼 연기만 내 뿜으며 쉬 지워지지 않을 민족의 옹이를 진정 어찌해야 좋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