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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멈추게 한 힘

스칸디나비아반도나그네쥐 레밍은 개체 수가 급증하는 경우 집단적으로 질주하기 시작합니다.맨 앞 쥐들이 뛰기 시작하면 따르는 쥐들이 덩달아 뛰기 시작합니다. 뛰다 보면 왜 뛰는지 이유를 더 이상 묻지 않고 뛰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맨 끝에 절벽이 있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리다 모두 죽습니다.디즈니에서 만든 하얀 광야(white wilderness)라는 다큐멘터리는 1958년 아카데미상을 받습니다. 레밍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포착해 화제가 되었지요.우리 사회는 유독 이런 쏠림 현상이 심합니다. 어떤 업종이 잘 된다고 하면 너도나도 뛰어드는 일이 흔합니다.98년에는 조개구이, 2001년에는 찜닭 열풍이, 연이어 저가형 참치 전문점, 시들해지면 닭강정이 유행합니다. 2010년 불어닥친 카페 열풍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에만 6만 개의 카페가 영업 중입니다.먼저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질주하는 인생. 기득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는 대중들의 모습입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가슴 설레는 진짜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누리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는 질주의 끝은 허무하고 황당한 결말인 경우가 많습니다.시인 반칠환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 나를 멈추게 한다 (중략) / 나는 언제나 /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 다시 걷는다.”질주하는 삶에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시인은 일침을 가합니다. 디테일은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코로나로 전 인류적인 브레이크를 경험한 2020년,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밝은 면도 없지 않았으면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7

눈물의 산악인 (2)

라인홀트메스너는 산을 오르며 사색한 생각들을 정리해 책을 씁니다. 이미 20권 이상의 책을 쓴 문필가입니다.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의 일부입니다.“가파른 암벽을 오른다. 숨이 가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온몸이 마비된 듯하다. 싸늘한 텐트 속인 데도 몸에서 땀이 난다. 머리 위로 보이는 엷은 텐트 천에 서리가 엉겨 있다. 혼잣소리를 질러 보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공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무서움 때문에 계속 소리를 지르고 싶다.”저는 한때 히말라야 등반하는 산악인들을 보면서 측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굳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그곳에 올라가야 하는가? 좀 더 쉬운 방법은 없을까?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가면 간단할 것을 왜 그리 몸으로 기어올라가야 하는가?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답은 간단하게 나오더군요. 몸이 견디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헬기를 타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은 기상 조건만 허락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정상에 내리는 순간 기압 차이 때문에 이내 허파에 물이 차올라 죽는다고 합니다. 자연은 손쉽게 얻고자 하는 이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 법입니다. 메스너는 고백하지요.“인간이 살지 않는 지구 위의 별천지! 이 오지에는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숲과 야생화와 초원의 천국이다. 정상이란 산의 꼭대기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종점, 모든 선이 모여드는 곳, 만물이 생성하고 그 모습을 바꾸는 지점. 모든 것이 완결되는 끝이며 이곳은 자력처럼 나를 끌어당긴다.”“나는 지금 어떤 산을 오르려 하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늘 만만한 동네 뒷산에 만족하며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계를 긋는 나에게, 마땅히 올라야 할 미지의 최고봉은 어디일지 캐물어 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6

눈물의 산악인 (1)

평생 산에서 살다시피 한 베테랑이 새로운 등정을 위해 배낭을 꾸릴 때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왜냐고요? 무섭기 때문입니다. 공포감에 장비를 풀고, 다시 눈물 흘리며 장비를 꾸리는 일을 반복합니다.라인홀트메스너. 오스트리아 출신 산악인입니다. 그는 단지 산을 정복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철학자며 예술가입니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랑 삼아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산이 좋아서, 산을 오르면서 벅차오르는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 정상에 올랐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감격이 기뻐서 산을 오르지요.메스너는 최소한의 장비로 셰르파의 도움 없이, 무엇보다 스폰서도 없이 오직 순수한 등반 자체만을 목적으로 스스로 비용을 감당하며 산에 오릅니다. 게다가 히말라야에서 8천 미터가 넘는 14개의 정상을 모두 등정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혼자 몸으로, 무산소 등정으로 14좌를 완등합니다. 산악인들이 정상을 정복하면 기념 촬영을 하죠. 스폰서 로고와 국기를 펄럭이며 사진 찍습니다. 이때 메스너는 오직 손수건 한 장을 흔들며 사진을 찍지요. “나의 국기는 손수건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산을 오르는 데 무슨 국가 간 경쟁이 필요하냐는 일침입니다.1970년, 메스너는 동생 퀸터와 함께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바트 정상을 밟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눈사태로 동생을 잃고 자신도 굶주림과 악천후 속에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집니다. 이때 얻은 심한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 6개를 절단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동생을 희생시켰다.’라는 비난과 오해를 오랫동안 견뎌야 했습니다. 7년 후 그는 낭가파르바트로 떠나기로 하며 말합니다. “이 고독감을 그곳에 묻어 버리든지 아니면 고독감이 나를 쓰러뜨리든지 둘 중 하나!”/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3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잰더(2)

“20년 동안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리더십이란 연주자들에게 내 아이디어와 음악적 해석을 따라오게 강요하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어느 날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에요. 지휘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소리는 연주자들이 만드는 거죠. 그러면 내 뜻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힘과 열정, 사랑을 끌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잰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리더십의 실현은 측정의 세계에서 가능성의 세계로 이동할 때 가능합니다.” 측정의 세계란 사람들을 경쟁시키고 등급을 매겨 이긴 자들에게 자원을 제공한다는 논리이죠.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이 틀을 깨부수어야 합니다. 가능성의 세계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족하지 않은 세상입니다. 경쟁이 필요 없고 모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원하는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지요.“리더는 구성원들을 측정의 세계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세계로 인도해야 합니다.”벤저민 잰더는 대학생들에게 생애 최초로 가능성의 세계를 체험하게 합니다.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종이 한 장씩 나눠줍니다. “모두에게 A 학점을 줄 것입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 나눠 드린 종이에 저에게 편지 한 통을 쓰는 겁니다.”학생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학기 말에 여러분이 자신의 노력으로 A 학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는 겁니다. 내가 A를 받은 이유를 저에게 편지로 써 보세요.”경쟁할 필요가 없게 되자 학생들은 서로 협력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니 대담하게 사고를 확장합니다. 등수를 매기는 방식으로부터 해방을 경험한 학생들은 잠재력을 극대화하지요. 측정의 세계에 길든 우리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리더와 조직들이 하나씩 늘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2

아인슈타인과 벤저민 잰더(1)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공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광양자설, 브라운 운동 이론,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해 당시까지 지배적이었던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뒤흔들었고 종래의 시간, 공간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습니다. 철학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묻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적 업적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아인슈타인은 생각에 잠기더니 컵에 손가락을 살짝 담갔다가 꺼냅니다. 물 한 방울이 책상 위에 또르르 굴러 떨어집니다. “내 학문은 바로 이 물 한 방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제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셨나요?” 아인슈타인은 칠판으로 걸어가더니 큰 글씨로 공식 하나를 씁니다. A = X + Y + Z“A는 학문적 성과다. X는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는 것. Y는 생활을 즐겁게 하는 것. Z는 한가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농담처럼 들리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말과 정반대로 행동해야 성공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첫째,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화려한 언변이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비록 즐겁지 않더라도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셋째, 한가한 시간이라고요? 24시간도 모자라 잠을 포기하면서 일해야 성공하는 것 아닌가요? 아인슈타인은 누구나 상식으로 여기는 것을 뒤집어버립니다.지휘자 벤저민 잰더(Benjamin Zander)는 지금도 현역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리더십 강연도 활발하게 합니다. TED영상은 인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조직이 오케스트라입니다. 단원들이 지휘자에게 말을 걸거나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벤저민 젠더는 20년 넘는 지휘자 생활을 하면서 문득 아인슈타인다운 발상을 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1

천 명의 천사와 동행하는 사나이(2)

즐겁게 한 편을 외우고, 신나서 또 한 편을 외우고 이렇게 꾸준히 시를 읊조리다 보니 어느새 50편, 100편을 암송합니다. 400편을 암송하자 시를 외우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무료할 시간이 없습니다. 불면증도 사라집니다. 침대에 누워 시를 외우다 보면 스르르 잠들곤 하지요. 화가 나고 감정의 기복으로 힘들 때도 시를 따라 평화로운 별을 산책하노라면 어느새 마음의 평화를 누립니다. 그의 이름은 문길섭. 광주에서 소공연장을 운영하는 문화인입니다. 시를 외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력인지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하늘이 짙푸르고 구름은 눈부시게 하얗습니다. 시가 내 육체 안으로 흘러 나를 적시고 내 몸통을 울리고 내 성대를 거쳐 입 밖으로 음파가 되어 허공을 울리는 경험을 해 보면 어떨까요? 천 편의 시를 외우는 사내, 그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지 짐작이 갑니다. 그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1천명의 천사들이 부럽습니다. 400편을 넘기며 시를 외우고 읊조리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는 고백을 하는 그의 설렘과 떨리는 입술이 부럽습니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이 시구를 읊조리다 보면 어느새 내 발걸음은 숲에 가 있겠지요.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 몸의 세포와 혈관에 흐르는 피를 격동하며 춤추게 하는 순간을 경험하겠지요.우리도 숲 속 길로 들어갑니다. 세상에 물든 때 숲속 맑은 공기로 씻어내고 시인의 언어가 천사 되어 내 삶에 흘러들도록 숲 속 길로 들어갑니다. 우리 안에도 천사가 하나 둘, 늘어나는 기적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자크 데리다는 말합니다.“은유(metaphor)가 모든 창의성의 근간이자 핵심이다. 은유 없이는 우리의 사고, 언어, 예술, 학문 자체가 불가능하다.”시적 은유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은 삶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조신영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20

천 명의 천사와 동행하는 사나이(1)

오솔길을 걸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숲 속 향긋한 바람이 귀를 스칩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봅니다.“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그렇군요. 이 남자는 시를 읊조리며 걷는 중입니다.“저는 마음이 산란할 때면 숲길을 찾습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시를 읊조리지요. 물론 외우고 있는 시입니다. 걷지만, 시를 외우는 동안 가슴엔 바람이 불고 시냇물이 졸졸 흐릅니다. 여름이면 더위를 사라지게 하고 겨울이면 시 한 편이 모닥불을 지펴주지요. 슬플 때는 한없는 위로가 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괴로운 날은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하고 낙원으로 저를 이끌어주는 천사랍니다.”이 남자,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10시간쯤은 꼬박 새우며 시를 외우고 세상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그의 곁에는 늘 1천명의 천사가 동행한다지요.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김소월의 ‘초혼’을 단숨에 외우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울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멋질 수 없었지요. 고등학교 때 저수지 둑에서 빛나는 별을 보며 친구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을 암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를 들으며 사내의 가슴에도 하늘의 별이 콕콕 박히는 경험을 합니다.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이 남자, 프랑스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철학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지요. 프랑스에서는 초등학생 숙제에 시 한 편 암송하기가 있습니다. 프랑스 아이들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모두 100편의 시를 외웁니다. 그는 이것이 프랑스의 문화적 힘이라는 것을 직감합니다.자신에게 질문하지요. 나도 시를 외워 보면 어떨까?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외우면 잊어버리고 또 외워도 머리에서 감쪽같이 언어가 사라져버리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9

노련한 사냥꾼 방식(2)

잠자리에 들 때 심심하다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이불에 나란히 누워있는 4남매에게 엄마는 매일 이야기를 지어 들려줍니다. 방귀 공주, 코피 공주 등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에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갑니다.“자연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터전이다.” 아이가 노트에 적은 글귀입니다.아이의 이름은 전이수. 이미 그림책을 세 권이나 쓴 꼬마 작가입니다. 제주의 자연을 만나면서 이수의 감성은 날마다 꽃피우고 있지요. 철학적인 사고, 뛰어난 감수성, 문학적 구성 능력 등 이수는 끝없는 잠재력으로 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아이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니까 책을 많이 읽혔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우리 집엔 책이 거의 없어요.” 이수 엄마는 말합니다. 아빠가 사 준 중고 전집 한 세트가 전부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는 부모들과 다른 철학을 가진 부모입니다.“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라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선택이다”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피에르상소의 말입니다. 무엇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애쓰는 보통의 부모에게 낯선 개념이지요. 엄마가 더 잘 해보려는 의욕으로 가득한 두 손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아이들이 마음껏 성장합니다.텅 빈 공관을 아이들에게 허락해야 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책은 몇 권 없지만, 이수 엄마는 텅 빈 캔버스를 마련해 이수가 마음껏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집안이 엉망 되어도 밀가루를 거실 바닥에 뿌려 놓고 물감을 풀어 온 가족이 뒹굴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공간을 만들어 주고 아이가 무심히 그 안에 머물 수만 있다면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천재성을 마음껏 뿜어낼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6

노련한 사냥꾼 방식(1)

노련한 사냥꾼은 사냥감을 찾아 헤매지 않습니다. 인내하며 사냥감이 스스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지요. 소리치며 뛰어다닌다고 사냥감이 나타날 일은 없습니다.우리 내면도,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한 주도적 선택을 할 때 내면의 진정한 보석들이 두 눈에 반짝이기 시작하고 귀에 천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법입니다.한 꼬마가 있습니다. 도시 생활이 아이들에게 금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엄마 아빠는 제주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지요.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고 놀고 소리칠 수 있게 된 아이. 제주의 오름을 보고 반짝이는 영감을 받습니다. 짧은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사람들은 원래 발이 있어서 걸어다녀야 하잖아요? 일은 안 하고 대신 로봇한테만 시키니까 점점 힘이 없어지고 살만 쪘어요. 그래서 몸은 커지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사람을 산 (山)이라고 하면 너무 크니깐 이렇게 오름이 되어 버린 거예요.”레미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엄마와 대화를 나눕니다.“엄마, 레미콘은 왜 계속 빙글빙글 돌아가는 거예요?” “시멘트가 굳지 말라고 돌아가는 거지.” “엄마. 지구도 사람이 굳지 말라고 계속 돌아가는 거예요?”아이의 철학적인 질문을 엄마는 마음에 간직합니다. 제주 한적한 마을 모퉁이에 자리한 아이 가족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느리고 충만한 삶을 만끽합니다. “도시에 있을 때는 하면 안 되는 것, 차단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아니야. 거긴 안 돼, 그만!’ 소리가 입에 붙어 있었죠. 제주에 온 이후로는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상관없어요. 그야말로 마음껏 발산하고 내지르죠.”TV도 없고 놀이터도 없고 덩그러니 집 한 채만 있었지만, 제주는 가족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5

글을 잘 쓰는 방법(3)

할머니 시집은 100만 부가 넘겨 팔립니다.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 문을 열어 주었지 / 그랬더니 햇살까지 따라와 / 셋이서 수다를 떠네 / 할머니 / 혼자서 외롭지 않아? /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 사람은 어차피 다 혼자야 / 나는 대답했네 / 그만 고집부리고 / 편히 가자는 말에 / 다 같이 웃었던 오후책은 생각을 깊게 만듭니다. 위대한 책은 생각을 넓게 확장시키지요. 글을 쓸 때는 오히려 생각이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첫 관문은 생각의 검열관 죽이기입니다. 말이 말하게, 글이 글을 불러오게 해야 합니다.라틴어의 유명한 경구가 있습니다. Veritas Veritatum이지요. 베리타스베리타툼, 진실이 진실을 낳는다는 것과 글쓰기는 비슷합니다. 글은 생각으로 불러와지지 않습니다. 글을 오직 글로서만 불러낼 수 있습니다.오직 글로 기록한 것들만 역사로 남습니다. 읽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써야 합니다. 생각은 흔적도 없이 공중으로 사라져 버리지만 쓰기의 결과물은 우리 곁에 남습니다. 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100세 일본 할머니가 우리를 재촉합니다. “이봐요. 나는 92세에 시작했다우. 당신은 나보단 젊잖아? 시작해 봐요. 노트에 몇 글자 끼적이면 되는 거예요. 그 몇 글자가 기적을 불러와요. 단어가 단어를 불러오고 문장이 문장을 불러온다니까요. 생각을 멈춰요. 그냥 써봐요.”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누에는 입에서 나오는 실로 고치를 만들고, 사람은 말과 글을 통해 언어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갑니다. 이제 나만의 글쓰기를 통해 내 존재가 한층 더 성장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위를 둘러보면 글쓰기에 도움을 얻을 만한 책과 영상, 강의 등이 널려 있습니다. 선택은 내 몫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4

글을 잘 쓰는 방법(2)

“자말, 글은 머리(head)로 쓰는 게 아니란다. 마음(heart)으로 쓰는 거지. 먼저 그냥 키보드를 두드려.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이 아니야. 글이 글을 쓰게 하는 거라고. 생각은 나중에 글을 고칠 때(rewrite) 하는 거란다.”짧지만 강렬한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3분쯤 보여주고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죠. 저 역시 작가로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할 때, 자말과 포레스터의 이 대화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 대목을 강조합니다.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을 잘 정리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렇게 글을 쓰면 발전하기 어렵습니다.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 멋진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 많이 쓰는 것입니다.몇 글자라도 글을 쓰기 시작하면, 종이에 적힌 글씨를 보면서 그때부터 생각이란 녀석이 자기 본연의 역할을 시작합니다. 즉, 생각이 글을 낳는 것이 아니라 내가 쓴 글이 글을 낳게 하는 겁니다.그 최초의 글 몇 자가 생각을 불러오고, 생각이 다시 글을 낳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거죠. 글쓰기에서 중요한 원리입니다.시인 이성복은 이렇게 말합니다.“시인은 철학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철학은 철학자가 하게 내버려 두고, 시인은 언어로 언어를 만들어 내야 한다. 철학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로 시를 써야 하는 것이다.”일본에서 ‘약해지지 마’ 라는 시집으로 돌풍을 일으킨 여류 시인이 있습니다. 일본 열도가 그녀의 시에 열광합니다. 시바타 도요 시인은 아들 권유로 92세에 첫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100세 할머니입니다. 틈틈이 끼적인 시들을 차곡차곡 모아 장례 비용으로 준비한 100만 엔을 털어 첫 시집 ‘약해지지 마’을 출판합니다. 일본 출판계가 깜짝 놀랍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3

글을 잘 쓰는 방법(1)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거예요. 생각을 정리한 다음 글을 쓰려 하지 말고 글이 글을 쓰게 해 보세요.”생각학교 ASK에서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할 때는 늘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말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잠깐 화면을 켜고 비디오 클립을 보여줍니다. 숀 코너리 주연의 영화 ‘파인딩포레스터’ 한 장면입니다.뉴욕의 한 건물에 은둔해 사는 대 작가 윌리엄 포레스터가 동네에 사는 흑인 소년 자말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농구 장학생으로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말이 우연한 기회에 포레스터를 만납니다. 친구들과 허세를 부리며 내기를 하던 중 자말이포레스터의 집에 무단 침입을 합니다. 발각되자 놀라 꽁무니를 빼면서 가방을 깜빡하지요. 자말의 노트를 본 포레스터는 아이의 글 솜씨를 알아보고 자연스레 우정을 쌓는 관계로 발전해 나갑니다. 자말이 한 번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는 노인이 작가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지요.“아저씨는 혹시 글쓰기 대회에서 상 같은 것 타 본 적이 있어요?”“그게 네가 묻는 정확한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상을 타 본 적이 있긴 하지.”“오! 정말요? 대회에서 일등 하셨어요?”“글쎄다, 남들은 그걸 퓰리처상이라고 하더구나.”자말에게 본격적인 쓰기를 가르치면서 은둔 작가 포레스터는 타자기를 갖다주고 뭐든 써 보라 합니다. 자말은 생각에 잠기죠. 포레스터는 한참 동안 멍하니 타자기를 바라보는 자말에게 말합니다.“자말, 내가 하는 것을 잘 보렴.” 타자기 앞으로 가서 앉더니 피아노 연주자가 건반을 두드리듯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탁탁. 타타.. 탁. 타타탁. 탁. 타타탁. 탁….”경쾌한 리듬을 타며 타이핑하던 포레스터는 마침표를 꾹, 찍고 종이를 뽑아 자말에게 건네며 말합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12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3

권정생의 글은 미사여구로 치장한 동화가 아닙니다. 강아지 똥처럼 낮고 비천한 삶이지만 씨앗을 품고 온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닌 민들레 홀씨 같은 글입니다. 권정생은 글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경험합니다.미국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나 랄프 왈도 에머슨이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에는 권정생, 이오덕 두 분 아름다운 선생이 있습니다.2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예언은 보기 좋게 틀렸습니다. 2007년까지 70년을 글과 함께 살아온 권정생은 90편의 작품을 남깁니다. 그의 장례식에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명사가 몰려오자 동네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경북 안동의 작은 마을 일직면 조탑리 동네 사람은 가난한 종지기로만 알았던 권정생이 그렇게 유명한 동화작가인 것을 아무도 몰랐다고 하지요.‘몽실언니’, ‘강아지 똥’, ‘사과나무 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무명저고리와 엄마’ 등 그의 작품은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동포들에 대한 사랑,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져 가는 똘배, 강아지 똥처럼 힘이 없고 약한 주인공을 한결같이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이고 남을 살려냄으로서 자신이 결국 영원히 사는 삶을 선택하지요.연간 1억이 넘게 들어오는 인세와 10억의 잔고가 남은 통장을 모두 어린이를 위해 써 달라는 유언과 함께 권정생은 고단한 생애를 마감합니다. 가능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위해서도 이 기금이 쓰임 받기를 원하면서요. 그의 이름 두 글자. 정생(正生) 조용히 발음해 봅니다. 바른 삶입니다. 올바르고 정의로우며 향기로운 삶입니다.권정생 선생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니 소크라테스와 많이 닮았습니다. 오늘도 두 분은 먹구름 너머 눈부신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힘내라, 정의롭고 향기롭게 살아라 격려하지 않을까요?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9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2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이 조금 회복한 사내는 무언가 하고 싶어집니다.어린 시절 주일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눈빛 맑은 청년을 기억합니다.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동화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틉니다.글쓰기라고는 배워 본 적 없습니다. 그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아픈 몸을 달래 가며 한 줄 한 줄 씁니다.작품을 완성하면 신춘문예에 응모합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탈락 후 전달해 주는 심사평을 스승 삼아 자신의 글을 다듬습니다. 그런 숱한 노력 끝에 죽음과 싸워가며 쓴 이 남자의 동화 한 토막, 결말 부분에 이런 문장이 등장합니다.“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 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 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강아지 똥’을 쓴 권정생 선생 이야기입니다.1973년 1월 권정생의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신춘문예에서 상을 받아 동화작가 반열에 오릅니다. 한 남자가 권정생의 글에 흠뻑 취합니다. 그가 풀어내는 아름다운 우리말에 반해 권정생을 찾아갑니다.이 남자는 권정생이 일본에서 귀국한 후 잠시 머물던 마을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그가 바로 이오덕 선생입니다. 두 사람은 이후 평생을 서로 응원하고 격려합니다.이오덕 선생과의 만남 이후 권정생의 삶은 빛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시골 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일하는 비천한 신세였지만 글을 쓰면서 완전한 자유를 누립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8

바른(正) 삶(生)에 대한 짧은 생각 1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의 기초는 ‘올바름’입니다. 요즘 생각학교 ASK에서는 플라톤의 ‘국가’를 토론 중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올바름’에 대해 설명합니다. ‘국가’를 정치학에 관한 책으로 오해하지만 실은 개인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아 ‘올바름’에 기초해야 한다는 고찰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정체(politeia)를 비유로 설명합니다.1937년 일본 도쿄.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습니다. 빈민가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자랍니다. 해방이 되자 먹고살 길을 찾아 귀국합니다.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 머물며 동네 교회에서 눈빛이 살아있는 청년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인연도 잠시뿐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합니다. 생계를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 팔고, 고구마 장수, 날품팔이 등으로 연명합니다. 다시 안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깁니다.열아홉 나이에 폐결핵이 악화하여 신장 결핵, 방광결핵으로 온몸이 망가집니다. 수술을 해 준 의사는 잘 관리하면 2년쯤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평생 오줌통을 몸에 차고 살아야 했습니다. 나이 서른살이 되도록 누워서 앓는 것이 일과였던 그는 함께 살던 남동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결혼시켜 내보내고 일자리 하나를 구합니다. 경북 안동의 일직면 조탑교회에서 평생을 종지기로 살아가지요. 월급 한 푼 없고 단지 방 한 칸 얻어 살며 종을 쳐 주는 조건입니다.여름이면 소나기에 뚫린 창호지 문 구멍으로 개구리가 들어와 방에서 개굴개굴 웁니다. 겨울이면 생쥐들이 들어와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지요. 심지어 추위를 피해 옷 속을 비집고 들어와 겨드랑이까지 파고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생쥐와 친해져 먹이를 준비해 놓고 기다릴 만큼 서로 정이 듭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7

장수 비결

조선 11대 왕 중종은 몸이 약했습니다. 왕의 건강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던 왕실은 순창 지역에 122세의 장수 노인이 있다는 소식이 궁중까지 올라옵니다. 왕실은 예조에서 똑똑하다고 알려진 김시원을 뽑아 순창으로 내려 보냈지요. 노인의 아들 마행곤(馬行坤)은 세 가지 수수께끼를 풀면 장수 비결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합니다.첫째 할머니가 아침에 가장 먼저 드시는 것은? 둘째 할머니가 육종(암)에 걸린 적이 있는데 이를 치료한 약은? 셋째 가족들이 매일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는 것은?천재 김시원은 1, 2번 문제를 쉽게 풀어냅니다. 가장 먼저 먹는 것은 맑은 물 한잔. 암 치료제는 지역 발효 식품과 소식(小食)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제가 어렵습니다. 며느리는 떡을, 둘째 아들은 비녀를 갖다 드립니다. 손자는 천자문을 읽어 드리지요. 가족들이 할머니에게 주는 것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김시원은 혼란에 빠집니다.며칠 동안 가족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던 김시원은 어느 날 증손자가 아무것도 갖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방에서 계속 들리는 것을 발견합니다.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김시원은 마행곤을 찾아갑니다. “세 번째 비밀은 효(孝)입니다.” 마행곤의 표정이 밝아집니다. “아무리 귀하고 몸에 좋은 선물이 있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효를 다해 부모가 걱정 없다면 어찌 천수를 못 누리겠습니까!”조씨 할머니 장수 비결은 맑은 물을 마시고 발효 식품으로 소식(小食)하고 사랑을 바탕으로 효(孝)를 행하는 것으로 김시원이 밝혀냅니다. 중종은 할머니와 일가족에게 상과 음식을 내렸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유전공학 발달로 점점 수명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늘어난 노년을 더 깊고 풍요롭게 가꾸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6

사라진 비둘기처럼

쥐스킨트의 단편 ‘비둘기’는 주인공 조나단 노엘이 30년 넘도록 단순한 삶을 반복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매일 정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8시 15분까지 출근하죠. 은행 경비원입니다. 중요한 업무는 출근하는 지점장 뢰델씨에게 인사하는 일입니다. 노엘은 단조로움 그 자체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깁니다. 메마른 삶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며 지속하는 것이 노엘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 루틴이 깨지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조나단 노엘은 어느 날 출근하려 집을 나섰는데 복도에 비둘기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도저히 비둘기가 있는 복도를 지나 출근을 할 엄두가 나지 않죠.“어떤 광채나 희미한 빛조차도 그 눈에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살아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우산을 펴서 비둘기의 시선을 가로막은 채 필사의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날 하루 그의 삶은 엉망진창입니다. 삶이 궤도를 이탈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불안과 공포로 노엘을 이끌지요. 지점장에게 인사하는 일조차 구멍 내고 맙니다. 하루가 송두리째 엎어집니다. 비둘기가 무서워 집을 떠나 호텔 신세를 진 그는 불안 끝에 자살하기로 결론을 내립니다.우여곡절 끝에 노엘은 안정을 찾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비둘기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공포는 착각이었지요. 비둘기는 사라졌습니다. 노엘은 다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으로 돌아갑니다.코로나19 사태로 무너져내린 우리 일상도 세상을 뒤덮은 공포의 그림자도, 비둘기 사라지듯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비록 우리 일상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무엇이라 해도, 그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이번에 체험했기에./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5

뇌는 쉽게 변한다

뇌가 굳어 있지 않고 쉽게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가 뇌의 가소성(可塑性)입니다. 후천적 사고로 인해 시력을 잃은 장애인의 경우에는 시력을 잃은 즉시 청력이나 후각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뇌 가소성 증거로 특히 많이 알려진 내용은 해마의 크기 변화입니다. 런던은 도로가 복잡하기로 유명하지요.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버스 운전사들보다 뇌 기억 저장소인 해마가 월등하게 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일정 구간을 반복적으로 운행하는 버스 기사와, 손님이 탈 때마다 가장 빠른 길을 머릿속으로 활발하게 뇌를 사용해 순식간에 노선을 구상하는 택시기사의 뇌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 겁니다. 위 연구는 내비게이션 발명 전에 나온 결과입니다.사람의 뇌는 적절한 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뇌 가소성 때문입니다. 다음 숫자를 10초 동안 들여다본 후 신문을 덮고 숫자를 한 번 외워 보실 수 있겠습니까? 949874231032292849274124112390231562739064793882921897675452177650902121210873231총 80자리 숫자입니다. 대부분 참여자가 6-7자리를 외우는 한계를 보입니다. 그런데 참여자들에게 숫자 암기법을 30분 정도 훈련시키면 피실험자가 대부분 80자리 숫자를 거의 외울 수 있다고 합니다.고전을 읽을 때 난해한 문장, 철학적 대화 등 두뇌를 지끈지끈 아프게 만드는 내용과 씨름합니다. 무턱대고 고전읽기에 도전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보고 포기하는 이유는 제대로 훈련받지 않고 덤볐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 없이 덤빌 수 없는 원리와 비슷합니다.뇌가 가소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굳어버린 두뇌를 함께 유연하게 풀어가는 고전읽기 동지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2

해리리버맨의 새 출발

해리리버맨은 폴란드 사람으로 27세에 미국을 밟았습니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으며 가진 것은 6달러와 조그만 손가방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덕분에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습니다. 70세가 넘어서야 그는 해 오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매일 노인 학교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거나 체스를 두었습니다.어느 날 해리는 노인 학교에 나갔으나 마침 체스 상대자가 병이 나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리는 그냥 멍하니 햇볕을 쬐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한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해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어르신 그냥 앉아 계시지 말고 그림이나 그리는 게 어떠세요?” “내가 그림을? 나는 붓 잡을 줄도 모르는데….”70살이 넘은 나이에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미술실을 찾아갔습니다. 등은 굽고 붓을 잡은 손은 떨렸지만, 해리는 매일 거르지 않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해리가 처음 전시회를 열었을 때 평론가들은 그를 가리켜 ‘미국의 샤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해리는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칭찬으로 죽을 때까지 수많은 그림을 그렸으며 그가 스물두 번째 전시회를 열었을 때 나이는 백 한 살이었습니다.평균 수명이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재수 없으면 2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유튜브 영상도 떠돌고 있는 시대입니다. 인구 중 노년층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초 고령사회에 접어들었습니다. 다행히 충분히 교육받은 노년층이 앞으로 많이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들이 스스로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영역은 무궁무진합니다. 후세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노년이 아닌, 날마다 새롭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위해 새롭게 결단하고 출발하는 실천의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4-01

외모에 대해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이 되자 내각 구성을 위해 각료들을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비서관에게서 한 사람을 추천받았습니다. 그 사람 이름을 듣자 링컨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링컨이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소.”비서관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책임이 없지 않습니까? 얼굴이야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요?”링컨이 말했습니다. “아니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든 얼굴이지만 그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겁니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서울 강남에만 3천개가 넘는 성형외과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가 링컨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은 탓일까요? “부모님 날 낳으시고 원장님 날 만드셨네.” 어느 성형외과 현수막 광고가 한때 우리에게 웃음을 유발한 적도 있습니다. 나이 마흔 넘어 얼굴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것은 고스란히 인격의 문제일 텐데, 사람들은 지름길을 원합니다. 쉽게 수술로 해결해 버리고픈 욕망을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세금제도를 논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미남세’ 잘 생긴 남자는 소득세를 2배로 물리자는 의견이었답니다.2012년 일본 유명 경제 평론가인 모리나가 다쿠로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제안했습니다. 외모가 뛰어난 남성에게 세금을 중하게 물리고, 외모가 딸리는 남자들은 세금을 감면해 주면 못생긴 남성이 연애하기 쉬워져 결혼과 출산이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지요? 5명의 여성 배심원단에게 심사를 맡겨 1등급은 소득세를 2배, 이하 등급에 따라 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세금제도는 탁상공론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하는군요. 기발한 상상에 박수를 쳐야 할지 웃어야 할지./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