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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

‘꿈을 종이에 쓰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쓰기’만 하면 마법처럼 절로 꿈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꿈을 써 보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방향을 볼 수 있고,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지요.당연히 꿈을 이룰 확률 또한 높아집니다.1944년 어느 비 내리는 오후, 열일곱 살 소년 존 고다드는 식탁에 앉아 노란색 종이 위에 ‘내 인생 목표’라는 제목을 쓰고 하나하나 써 내려가 모두 127가지를 적었습니다.‘탐험할 강’, ‘원시 문화 답사’, ‘등반할 산’, ‘배워야 할 것들’, ‘사진 촬영’, ‘바닷속 탐험’, ‘여행할 장소’, ‘수영해 볼 장소’, ‘해낼 일’ 등으로 그 꿈의 목록은 영역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이후 존 고다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47세가 되던 1972년 ‘라이프’ 지에 그의 기사가 등장합니다.제목은 ‘한 남자의 후회 없는 삶’이었지요. 첫 꿈을 기록한 지 64년이 흐른 2008년에는 127가지의 목표 중 109가지를 이루었습니다.존 고다드가 그런 목표를 세운 계기가 있습니다.할머니와 숙모가 나누던 대화 중에 “이것을 내가 젊었을 때 했더라면…”이라는 푸념을 두 사람이 남발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나는 커서 무엇을 했더라면… 이라는 후회는 말아야지!” 소년 존 고다드는 결심했고 끝내 지켜냈습니다.존은 60세 되던 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싶지 않으며 끊임없이 나 자신의 한계에 대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127개 항목을 모두 다 이루려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렇게 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그는 목표 세우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충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별을 품고 있습니다. 미루지 말고 즉각 목표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세요.”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20-01-01

관점을 바꾸는 일 (3)

서로 짝을 지어 친구가 친구에게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서로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이 방식을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상대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탈무드를 해석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도록 요구합니다.한 시간의 탈무드 공부를 위해 2∼3시간 동안 본문을 연구해 옵니다.그리고 둘이 끝장 토론하듯 상대에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 거죠. 이런 방식의 질문과 토론을 매일 반복한다니 소름 돋습니다.왜 그들이 미국의 ‘법조계’를 장악하고 있는지, ‘언어’를 다루는 언론, 출판, 방송, 영화 등을 독점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소크라테스는 삶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훌륭한 삶을 누리기 위해 캐묻는 삶을 강조했고, 절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도달하도록 상대를 다그쳤습니다. 100명의 사람을 찾아가면 오직 한 가지 ‘진리’에 도달하도록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았지요. 즉 100대 1의 원리입니다.유대인들의 접근 방식은 소크라테스와 반대입니다. 한 가지 정답을 캐내고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100명이 모이면 100가지 다른 다양한 관점들을 꺼낼 수 있도록 자극하고 거세게 몰아붙이는 겁니다. 100대 100의 원리인 셈이지요. 유대인 랍비들이 제자들을 자극하는 가장 치욕적인 말이 있습니다. “마따호쉐프!”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얘야. 너는 왜 ‘네 생각’이 없느냐!”정현종 시인이 파블로 네루다 시집 ‘질문의 책’을 번역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끝없는 시작’ 속에 있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삶에 대한 다양한 질문으로 2019년을 마무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밝아오는 2020년을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30

관점을 바꾸는 일 (2)

일본의 석학 다치바나 다카시는 ‘사색기행’이라는 책에서 유대인 성공 비결을 관점의 탁월함으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0.2% 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의 70%를 좌우하고 노벨상의 22%를 독점하며 미국의 언론과 영화계, 예술계, 법조계를 지배하는가, 어떻게 전 세계 초우량 기업은 대부분 유대인이 장악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유일신을 섬기고 있다. 그 유일신은 자신의 형상을 어떤 형태로도 만들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계율이다.”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보이지 않는 무형의 신입니다. 그리스나 동양 종교만 해도 신의 형상을 온갖 형태로 만들어 사당이나 신전을 만들어 장식하고, 눈에 보이는 신(神)으로 숭배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삶을 온통 지배하는 신의 모습을 오로지 ‘상상력’에 의지해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자리 잡도록 했습니다. 이런 관습이 유대 민족 전체의 상상하는 힘을 자연스럽게 길러주었다는 거죠.“둘째 거의 2천년에 걸친 핍박으로 유대인들은 항상 방랑할 수밖에 없었다. 방랑은 말 그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고 이는 숱한 이동 즉 여행을 수반한다.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움직이는 삶은 자연스럽게 ‘관점’을 다양하게 가질 수 있는 유연함을 길러준다.”끊임없이 상상하는 일, 익숙한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을 움직여 유연한 관점을 갖도록 하는 것. 이 두가지 능력은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호기심은 결국 ‘질문하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은 핍박을 많이 받아서, 다음 세대를 가르칠 교사들이 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교육 방식이 있습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9

관점을 바꾸는 일 (1)

뉴욕의 중심가에 시각 장애인이 처량한 모습으로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계단에 주저앉아 행인들이 적선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가 종이에 써 들고 있는 문구입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I’m blind please help!)”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는 한 여성이 물끄러미 이 광경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바삐 계단을 오르내릴 뿐, 이 시각 장애인에게 동전 한 닢 던져 주지를 않습니다. 한참 지켜보던 그녀는 시각 장애인에게 다가갑니다. 한 푼 적선을 요청하는 낡은 하드보드지를 뒤집어 무어라 끼적입니다. 새로운 문구를 완성한 여인은 깡통에 지폐 한 장을 넣어 주고는 총총 떠나지요.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무심코 맹인 앞을 지나치던 행인들이 하나씩 둘씩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깡통에 동전을 넣기도 하고 지폐를 두고 가기도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깡통은 사랑의 손길로 가득해지지요. 대체 그 여인은 어떤 마법을 부렸던 것일까요?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 광경을 볼 수 없답니다. (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보드에 쓴 단어가 4개에서 8개로 늘어났고 알파벳 철자가 몇 개 바뀌었을 뿐입니다. 도움을 호소하는 말조차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행인들이 시각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살짝 바꿔주었을 뿐이지요.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언어는 이처럼 강력한 것이지요. 언어 배후에 있는 생각, 즉 관점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 삶의 질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관점을 바꾸는 일. 틀에 박힌 낡은 고정관념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으로 신선하게 상황과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는 힘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6

한 여인이 책을 쓴 이야기 (3)

사장은 트렁크에 눈길 한번 던지고 메모와 전보를 번갈아 쳐다봤을 뿐, 이내 관심을 꺼버립니다.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 차장이 다시 똑같은 내용이 담긴 새로운 한 통의 전보를 가져옵니다. 사장은 잠시 놀라지만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세 번째 정차 역에서 또 한통 전보를 받자, 그녀의 끈질김에 레이슨 사장은 트렁크 뚜껑을 엽니다. 트렁크 안에 가득한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보고 사장은 기가 막힙니다.무료했던 여행길에 생각 없이 집어든 원고의 첫 페이지를 읽는 사장의 눈동자가 점점 커집니다.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원고를 끝까지 다 읽습니다. 감동한 사장은 손님들이 모두 하차했음에도 원고를 붙든 채 내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사장은 즉시 출판을 지시했고 10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던 원고는 미국 전역을 뒤집어 놓습니다. 마가렛 미첼 여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출간에 얽힌 이야기입니다.이 소설은 곧 27개 언어로 번역,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약 3천만 이상 팔렸습니다.지금도 해마다 25만 부가 계속 팔려나가고 있는 중이지요. 오늘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읽고 있는 그대 안에 잠든 ‘작가 본능’을 깨워 보는 것은 어떨까요?책을 읽고 감동하며 영감을 받는 일도 필요한 일이지만, 세상에는 그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지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그도 하고 그녀도 하는데 나라고 왜?)” 내 안에 이미 싹트고 영글어 가는 멋진 컨텐츠를 글로 꺼내 세상과 나누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부름이자 요청입니다.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은 가장 멋진 배움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마가렛 미첼의 스토리가 그대와 나의 이야기로 흘러들기를 바라며 2020년을 준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5

한 여인이 책을 쓴 이야기 (2)

다시 힘을 낸 그녀는 옷장에서 원고 뭉치를 꺼냅니다. 1년 동안 타자기 앞에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합니다. 마침내 1929년 원고를 완성합니다.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지만, 무명 신인의 원고를, 그것도 트렁크에 가득한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읽어보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없습니다.하나 둘 거절당하던 그녀는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13번째 출판사에서 거절 통보를 받은 후 미첼은 포기합니다. 원고는 다시 옷장 속에 틀어박혀 7년이 흐릅니다.미첼은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지요. 1935년 4월, 뉴욕 최대의 출판사인 맥밀란의 편집자 헤럴드 레이텀이 애틀란타를 방문합니다.조지아 출신 캐롤라인 밀러 여사가 퓰리처상을 수상했기에 맥밀란에서는 남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지요. 조지아 주의 저명한 작가와 언론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레이텀은 미첼에게도 좋은 원고가 있느냐 물었습니다.미첼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면서도 딱 잘라 말하죠. “그런 것 없어요!” 그때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농담을 던집니다. “미첼은 소설을 쓸 만큼 진지하지 않아요!” 미첼은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결심하지요. 자신의 원고를 반드시 출판하고 말 거라고요.얼마 후 맥밀란 출판사의 레이슨 사장이 애틀란타를 방문하고 몇 시 기차로 뉴욕에 돌아간다는 짧은 소식이 애틀랜타 신문에 실립니다.미첼은 옷장 속에 있던 원고 뭉치를 커다란 트렁크에 담아 역으로 향합니다. 맥밀란 사장이 예약한 객실 좌석 아래 트렁크를 넣어 두고 메모를 써 붙입니다. “뉴욕까지 먼 여행길, 이 원고를 꼭 읽어 주세요.”기차가 출발하는 모습을 본 그녀는 곧장 우체국으로 달려가 전보를 칩니다. 다음 역에 기차가 정차할 때 전보를 차장이 레이슨 사장에게 전달합니다. “사장님. 트렁크에 넣어 둔 제 원고를 읽기 시작하셨나요?”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3

한 여인이 책을 쓴 이야기 (1)

애틀랜타 저널의 젊은 여기자 미첼은 일요일 판 ‘선데이 매거진’에 인터뷰, 라이프 스케치, 칼럼 등을 썼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루는 말에서 떨어져 발목이 부러집니다. 오랜 치료를 받느라 결국 기자 생활을 내려놓게 되지요.남편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미첼에게 읽을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치웁니다. 어느 날 남편이 책 한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말합니다. “이제 도서관에는 따분한 과학 책 외에 빌릴 책이 없어요. 읽을 책이 더 필요하다면 당신이 직접 책을 쓰는 수밖에 없겠는걸.”큰 용기를 얻은 미첼은 타자기 앞에 앉습니다. 1926년부터 2년 동안 타자기 앞을 떠나지 않고 소설을 씁니다. 그녀의 타자기는 매일 글을 뿜어내지요. 70개 챕터, 1천100페이지에 가까운 대작을 완성합니다.소설이 절정을 치닫던 어느 날, 소포가 날아옵니다. 기자 시절 친구 스티븐 베넷이 쓴 ‘존 브라운의 시신’ 초판본이었지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의 운율과 어휘, 감동적인 시구에 전율하지요. 2년간 써 오던 자신의 원고가 갑자기 쓰레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따위 알량한 소설을 누가 읽기나 하겠어? 차라리 시작하지 말아야 했어!’원고 뭉치를 불태워 버릴 생각을 합니다. 남편의 만류로 태우지는 않았지만, 옷장에 처박아 버리고 기나긴 고통과 침묵의 시간을 갖습니다. 활활 타오르던 창작의 불꽃은 이내 싸늘하게 식고 무기력과 좌절감이 그녀를 덮칩니다.6개월 동안 열등감에 시달리며 한 글자도 써내려가지 못하던 미첼은 어느 날 사교 모임에 나갔다가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람은 남과 비교하기 때문에 불행에 빠집니다. 행복은 비교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최대한 발휘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비교 따위는 잊어버리세요.”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22

몽롱한 글쓰기 (3)

문장이 꼭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마치 배설하듯, 내면에서 들리는 그 어떤 소리라도 마구 종이에 토해 내는 거죠. 재밌습니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후에는 가급적이면 그 페이지를 밀봉합니다.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거죠.몽롱 쓰기는 암묵지, 즉 내 무의식 안에 스며 있는 경험과 정보, 느낌의 보물 창고를 활짝 열어줍니다.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외부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 있는 보물이 얼마나 많은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고약한 이성의 검열관에 가로막혀 발현되지 않던 내 안의 빛나는 보석과 맑은 샘물이 조금씩 밖으로 꺼내지는 경험을 선사하죠.이렇게 쓴 글은 8주 동안 읽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습니다. 두 달 묵힌 후에 봉인을 해제할 수 있지요. 깜짝 놀랄 만한 내용들이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맑은 샘물은 퍼내면 퍼낼수록 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게 마련이지요. 누구나 자신만의 암묵지 안에는 어마어마하게 맑고 시원한 수맥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길어 올릴 생각을 못하거나, 방법을 모를 뿐이지요.아침에 눈 뜨자마자 15분. 몽롱한 상태로 노트 한 페이지 정도를 채우는 분량의 무의식 쓰기 방법은 우리 안에 딱딱하게 잠자고 있는 창조성을 깨워주는 강력한 도구입니다.수많은 점으로 가득한 우리의 내면. 그 안에 보석이 가득합니다. 독서를 통해 우리 내면을 비옥하게 만드는 행위만으로는 창조적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쌓인 점들을 하나씩 둘씩 이어 나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내 안의 소중한 콘텐츠를 꺼내 타인과 나눌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막 그대 안에서 꿈틀거리며 솟구치는 배움에의 욕구가 있으신가요?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상의 쳇바퀴에 가로막혀 내 안의 창조성이 억눌려 있지는 않은지 멈추어 생각할 때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9

몽롱한 글쓰기 (2)

줄리아 카메론은 일상에서 창조성이 필요한 디자이너, 작가, 미술가, 음악가, 안무가들, 영화인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매일 글을 써야 하는 저는 이 방법을 읽었을 때 깊이 공감했습니다.저도 새벽에 일어나 첫 작업으로 무조건 한 페이지 쓰는 행위를 일종의 의식처럼 해 오고 있었거든요.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빠지지 않고 해왔습니다.글을 잘 쓰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많이 써 보기지요. 대부분 많이 쓰는 일 자체를 못하기 때문에 궤도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이 써 봤기 때문에 잘 쓰는 것이고, 글을 못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글을 많이 써볼 기회를 갖기 못했기 때문에 못쓰게 되는 원리입니다.”빈익빈, 부익부와 같지요? 글을 많이 쓰는데 결정적인 장애물이 바로 ‘자기 검열’입니다.이 글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무엇이라고 평가할 것인가? 다른 사람의 글과 자신을 비교하며 위축되면서 온갖 장애물들이 글을 쓰는 동안 우리의 뇌에 갖가지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 검열관을 죽여버릴 수 있어야 글쓰기의 날개를 달 수 있습니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눈뜨자 마자 마구 마구 글을 써 대는 겁니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 훈련을 저는 ‘몽롱 쓰기’라고 표현합니다.전날 밤에 잠들기 전에 노트와 연필을 준비합니다. 아침에 눈뜨자 마자 책상에 앉아 ‘의식의 검열관’이 깨어나 찾아오기 전에 몽롱한 상태에서 무조건 쓰기 시작하는 거죠. 내용은 그 무엇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무의식 가운데 떠오르는 대로 일필휘지로 씁니다.간단한 규칙이 있습니다. 몽롱 쓰기를 할 때는 절대로 이미 썼던 내용을 되돌아가 다시 읽지 않습니다. 말이 되든 안되든, 논리적이든 논리적 비약이 있든 그냥 마음 속에 떠오르는 내용을 줄줄 써 내려가면 그만입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8

몽롱한 글쓰기 (1)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감독을 남편으로 둔 시나리오 작가가 있습니다. 삶은 찬란했습니다. 남편은 택시 드라이버, 휴고 등 대표작을 내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등과 함께 일하는 거장입니다.부부가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외도를 합니다. 딸 하나를 낳고 달콤하게 살던 이 여인의 삶은 그대로 추락하지요. 술이 없이는 하루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작가로서의 경력 또한 올 스톱. 삶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고역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혼 후 우울증이 그녀를 덮칩니다. 알코올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이렇게 살 수 없다 생각한 그녀는 산책하며 몸을 움직이기로 결심합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집 앞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하지요. 고양이와 조금씩 가까워진 그녀. 일주일 후에는 고양이와 오랜 이야기를 나눕니다.“고양이와 대화하면서, 주위에 관심을 기울이는 연습을 시작했어요. 그동안 내 문제에만 함몰되어 주위를 돌아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었죠. 내가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탈출구였어요.”우울감과 무기력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회복한 그녀는 이후의 삶을 ‘창조성 회복의 전도사’로 살아갑니다. 이혼, 우울증, 알콜 중독을 이겨낸 시나리오 작가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 1948∼) 이야기입니다. 카메론은 창조성을 회복하기 위해 두 가지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하나는 아침에 눈 뜨자 마자 일어나 무조건 한 페이지를 쓰는 ‘모닝 페이지’입니다. 두 번째는 일주일에 2시간을 자신만을 위한 창조성 회복에 투자하는 일입니다. 공연을 보거나, 박물관을 찾아가거나, 해변을 산책하는 등,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경험을 매주 한 차례 2시간 정도 의식처럼 수행하라는 것이지요.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7

기적의 사과 (5)

이후 몇 년을 기무라는 지력 회복에 모든 초점을 맞춥니다.벌레 잡는 일을 그만두고 산속의 생명력 넘치는 흙을 과수원에 구현하려 애씁니다. 콩을 뿌리고 잡초를 기르고 식초를 뿌리고, 생명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밭에 생태계를 이루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요.“10년째 처음으로 사과꽃 일곱 송이가 피었어요. 온 가족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듬해 6만평 전체에 사과꽃이 피었습니다. 수확은 보잘 것 없었어요. 탁구공 만한 사과가 열렸으니까요. 그러나 정말 맛있었지요.11년 동안의 사투 끝에 그는 마침내 6만평의 사과 밭에서 기적의 사과를 수확합니다. 그 밭은 잡초와 온갖 생물로 가득합니다.연구 결과 약 2천종의 생명이 이 밭에 공생한다고 합니다. 완벽한 생태계의 평형을 이룬 거지요.이제 벌레가 전혀 없습니다. 농약 한 방울 치지 않는데 말이지요. 벌레를 잡아먹는 포식자들이 있고 나무 자체가 저항력이 생겨 스스로 자가 치유를 합니다. 비밀은 뿌리에 있습니다. 토양이 미생물로 가득한 풍요로운 흙이 되자, 뿌리는 더 깊게 자랍니다.일반적으로 사과 뿌리가 1∼2m인데 기무라의 뿌리는 최소 10m, 긴 것은 20m가 넘도록 깊습니다. 기적은 땅속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겁니다.이 기적의 사과는 1년에 2천명만 맛볼 수 있습니다. 응모기간에는 순식간에 신청이 마감되지요. 그의 사과로 만든 사과 수프를 판매하는 도쿄의 레스토랑은 6개월 예약이 꽉 차있는 상태입니다.한 입 베어 물면 그 향기로운 맛에 누구라도 눈물을 흘린다는 기적의 사과입니다. 천재라고 칭송하는 말에 기무라씨는 대꾸합니다. “아니야, 난 바보야. 바보니까 이런 일을 하는 거지. 힘을 내 준건 나무들이야. 나무들이 힘을 내 주지 않았으면 절대 이 일은 성공할 수 없었어.”/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6

기적의 사과 (4)

어스름한 새벽이라 뭔가를 잘못 봤나 싶어서 나무 가지를 타고 올라 자세히 관찰합니다. 주렁주렁 매달린 것은 사과가 아니고 도토리였습니다. 6년 동안 사과에 집착한 나머지 도토리를 사과로 착각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도토리는 크기도 엄청나고 더할 나위없이 건강해 보입니다. 집념의 기무라 아키노리, 이 상황에서 생각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지금 자살하러 갔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왜, 깊은 산속의 도토리는 이토록 건강한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합니다.하늘에서 무슨 계시라도 받은 듯한 깨달음이 머리를 때립니다. 미친 듯이 도토리 나무의 밑둥치 아래 흙을 두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하지요. 손톱에 피가 나도록 산속 도토리 나무 아래 땅을 파 들어갑니다. 마침내 그의 두 손에는 도토리 나무 뿌리가 닿아 있는 흙이 담깁니다. 그는 흙 냄새를 맡아봅니다. 형언할 수 없는 향기로움이 가득하지요. 온갖 미생물이 살아 숨쉬는 자연 그대로의 흙을 온 몸으로 느끼며 벼락에 맞은 듯한 전율을 느낍니다.“바로 이거다!” 그는 자살하려던 밧줄을 산 속에 버려둔 채, 정신없이 뛰어 내리막길을 달립니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웃다가 울다가 미친 사람처럼 킬킬거리며 한 밤 중의 산을 달려 초토화된 사과 밭에 도착하지요. 산에서 했던 것처럼 사과 나무 밑둥 아래 흙을 파헤칩니다. “역시, 완전히 다르구나”예상은 적중합니다. 산속 도토리 나무가 심겨 있는 토양의 흙 냄새와 사과 밭 흙 냄새는 생명의 향기로움과 죽음의 악취처럼 달랐습니다. 지난 6년의 실패는 눈에 보이는 것, 줄기와 가지와 이파리의 벌레만 바라보고 그것을 없애려는 노력에 집착했음을 깨닫습니다. 기무라에게 다시 희망이 싹트자 그는 놀라운 의욕으로 다시 작업에 착수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 밭 토양을 완전히 갈아 엎는 일에 착수합니다. (계속)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5

기적의 사과 (3)

무농약 재배를 시작한 첫 여름 95% 사과 잎이 벌레에게 초토화되어 떨어집니다. 기무라와 가족들은 망연자실합니다. 다음해에는 6만평 사과 밭에 단 한 그루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수확량은 제로로 떨어집니다. 수천만원 이익을 남기던 과수원 수입이 0으로 떨어집니다. 건강보험료, 아이들의 학비, 생활비가 사라집니다. 아이 지우개를 3개로 잘라 써야 할 정도로 궁핍합니다.주위에서는 다시 농약을 뿌리라고, 무슨 정신 나간 실험이냐고 책망합니다. 기무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마을의 캬바레에 가서 호객꾼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때 조폭들에게 두드려 맞아 앞니가 왕창 빠집니다. 기무라의 사진을 보면 앞니가 없어서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보이는 인상입니다. 궁핍한 시절의 아픈 기억이지요.벌레와 사투를 벌인 게 6년입니다. 정말 미친 사람이 아닐까요?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기무라 아키노리 나이 서른다섯. 6년의 시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농약을 쓰지 않고 벌레를 퇴치할 방법을 연구합니다.모든 수입이 다 끊어지고 가족들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사과 밭 모든 나무마다 빨간 딱지가 붙었습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겁니다.“포기하느니 죽고 말겠다!” 서른다섯 기무라 아키노리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밧줄 세 가닥을 엮어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무 탈출구가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농약을 치면 6만평의 밭을 살릴 수는 있습니다. 사과나무가 죽은 것은 아니니까요. 벌레들에게 착취당하고 수탈당하고 있을 뿐이지 사과나무는 아직까지는 살아있으니까요.자살하려 새벽에 산 중턱에 올라 체중을 버텨줄 큰 나무를 고릅니다. 밧줄을 가지에 던지려 하는 순간, 기무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분명 깊은 산 속인데 나무에 주먹 만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겁니다. ‘저게 뭐지?’(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2

기적의 사과 (2)

서점을 아무리 뒤져도 농약을 치지 않고 성공했다는 정보는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정보만 찾아냅니다. “무농약 사과 재배에 도전하면 1년 만에 95%의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당장 죽지는 않지만,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2년차에는 수확량이 정확히 제로로 떨어집니다.”그만큼 사과 농사는 농약에 길들여져 있었던 거지요.청년이 서가에서 책을 뒤지던 중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손이 닿지 않는 맨 위 칸에 있던 책 한 권이 툭, 하고 머리에 떨어집니다. ‘자연농법’이란 책이었지요. 사과 농사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작물을 재배하는 일반적인 방법에 대한 책이지요. 청년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피어납니다. 어쩌면 이 방법을 사과 농사에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싹트지요.장인어른과 식구들을 설득합니다. 가족들은 이 청년의 집념을 잘 압니다.한 번은 영국의 제조사에 직접 주문해 트랙터를 수입한 적이 있는데, 고장이 나자 트랙터 전체를 다 해체하고 뜯어 구조를 완전히 파악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습니다.한 번 마음먹은 일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승낙이 얼마나 큰 재앙을 몰고 올지, 그 당시는 결코 알 수 없었겠지요. 이 청년의 이름은 기무라 아키노리입니다.이듬해부터 농약을 중단합니다. 한 그루 한 그루에 붙은 벌레들을 떼기 시작합니다. 농약을 멈추자 벌레들은 신났습니다. 달고 향기로운 사과 이파리에 들러붙어 마음껏 식사할 수 있으니, 이 과수원은 벌레들의 천국입니다.“벌레들이 어린 새 잎이 붙은 가지 끝까지 바글바글 몰려들어서는 만원 지하철처럼 야단법석을 떨었어요. 벌레 때문에 사과 가지가 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를 회상하던 기무라씨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1

기적의 사과 (1)

어릴 적 홍옥이라는 예쁜 이름의 사과가 있었습니다. 잘 닦으면 붉은색이 반짝반짝했지요. 중학생쯤 달콤하고 사각사각 식감이 뛰어났던 사과를 처음 맛보았습니다. 어른들은 그 사과를 ‘부사’라고 불렀습니다. 알이 큼직하고 홍옥의 시큼한 맛 없이 입에서 살살 녹았습니다.부사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1962년 처음 생산한 사과계의 혁명입니다. 달고 상큼한 맛은 전 세계를 석권합니다. 1911년 꽃 썩음 병과 갈색 무늬 병이 사과 재배 농가를 강타했을 때 아오모리 현에 최초로 농약이 살포됩니다. 이 농약 덕분에 아오모리 사과 농사는 멸망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합니다. 한 번 농약의 효험을 몸으로 느껴본 아오모리 농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약을 개발하기 시작하지요.더 달고 더 크고 더 맛있는 사과를 재배하려는 실험이 농약 개발과 더불어 진행되었음을 이 청년은 깨닫습니다. 더 달콤한 사과를 만들어 내려면, 그만큼 더 많은 벌레들이 달려든다는 뜻이고 점점 더 독성이 강한 농약이 개발되어야 사과밭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겁니다. 부사는 결국 51년 동안의 품종개량과 농약개발의 열매였습니다.1978년. 아오모리 현에 이상한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나이는 스물아홉. 그의 사과 밭은 약 6만 평입니다. 이 밭에서 풍요로운 사과를 수확하려면 연간 13번 정도의 농약을 밭 전체에 뿌려주어야 합니다. 지역 농업지도소에서 알려주는 대로 때에 맞추어 아오모리 현의 모든 사과재배자들이 함께 농약을 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농약을 한 번 제대로 뿌리고 나면, 아내가 며칠을 앓아눕는 겁니다.청년은 결심합니다. 아내를 위해 농약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아예 뿌리지 않고 사과를 재배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평소 습관대로 곧장 서점으로 달려갑니다. 그의 눈에는 실망스러운 정보들만 가득합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10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2)

벨라가 죽은 후 오랜 슬럼프에 빠졌다가 겨우 몸을 일으킨 샤갈, 이후의 작품에는 주로 푸른 빛이 등장합니다.이 시기를 샤갈의 푸른색(Chagall’s blues)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샤갈이 태어났을 때 고향 마을은 큰 불이 났습니다.샤갈이 태어난 마을 전체가 한 시간 만에 불길에 휩싸입니다.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안전한 곳을 찾아 거리 여기저기로 요람을 들고 다녔지요. “어쩌면 이 때문에 항상 불안을 느끼며 방랑벽을 겪고 있는지 모릅니다.” 샤갈의 고백입니다. 평생 세상의 불길과 화염을 피해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피해다닌 노마드의 삶이었기에 샤갈은 더욱 본향을 그리워했습니다.“만일 우리들이 부끄럼 없이 사랑이란 말을 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참다운 정신은 사랑에 있다”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 유대인으로 늘 직면했던 살해위협,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잔혹한 인간성 상실의 시대를 살았던 샤갈. 암울한 시대에 색채를 무기로 싸운 사랑의 투사였습니다. 샤갈의 언어 중 제 가슴을 찌른 말입니다.“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시대는 밤이었습니다. 대규모 학살이 버젓이 자행되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파리 죽이는 것보다 쉬웠던 시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 전혀 소망이 없을 듯한 암울한 세상을 살면서도 샤갈은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 짙은 밤처럼 어두운 시대,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색채에 물들어 자신의 태양을 빛내고 밝힌 등대였습니다.누구는 총과 칼로 또 다른 누구는 지성으로, 그리고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혁명을 꿈꾸지만 여기 사랑으로 인류의 내면에 불꽃을 피운 진정한 혁명가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를만한 사랑의 깃발이 펄럭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9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1)

샤갈은 피카소와 어깨를 견주는 거장입니다. 화려한 색깔을 절묘하게 구사해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공산 혁명과 나치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세계를 떠돌며 노마드로서 살아간 유대인이지요. 샤갈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벨라와의 사랑입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사랑이 한가득 색채에 녹아 있습니다.붓을 놀릴 때마다 캔버스가 그의 밑에서 떨렸다. 붉은색, 푸른색, 흰색… 그는 나를 색채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이더니 갑자기 바닥에서 떠오르게 했고, 그의 작은 방이 너무 비좁게 느껴졌는지 자신도 같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몸을 길게 늘이고는 천장에서 떠다니는 것이었다. 고개를 뒤로 젖혔고 내 고개도 뒤로 젖혔다. 그리고 내 귀에 키스하며 속삭였다. “그림이 맘에 드오?” ‘첫 만남’- 벨라 로젠필드벨라와 샤갈의 만남은 신분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샤갈의 외가는 도살업을 했고 아버지는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벨라의 집안은 보석 가게를 3개나 운영하는 명문 가문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벨라 역시 역사, 문학, 철학을 공부하고 배우를 꿈꾸는 대단한 인재였으니 부모의 반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샤갈의 그림은 벨라를 만나면서 더 빛나고 아름답고 화려하게 무르익어갑니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색깔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사랑의 색이다.”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15년 둘은 마침내 결혼을 합니다. 샤갈은 평생 자신의 그림에 벨라를 녹여냈습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절로 공중에 두둥실 떠오를 만큼 행복했던 샤갈. 하지만, 1944년 벨라는 감염에 의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샤갈은 벨라의 죽음 이후 9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잠을 잘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없는 상태에 빠집니다. (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8

우연을 가장한 행운

옛날 구종직이라는 말단 관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경회루의 경치가 아름다워 몰래 궁중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임금의 거동이 있었습니다. 구종직은 급히 도망치려 했지만 담을 뛰어넘어야 할 형편이어서 어쩔 수 없이 길을 비켜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금이 묻습니다.“누구이기에 여기까지 들어왔느냐?”구종직이 우물쭈물하자, 임금이 갑자기 질문합니다.“여차여차한 문장을 아느냐?”“네. 알고 있는 줄 아뢰오.”“그럼 한 번 들어보자.”구종직은 평소에 글 읽기를 좋아하는지라 문장이 술술 나왔습니다. 가상히 여긴 임금은 정9품 말단 관리였던 그에게 종5품 벼슬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구종직이 순식간에 벼슬에 오른 이 사건을 안 신하들은 불평이 많았습니다. 임금은 신하들을 불러 구종직에게 물었던 그 문장을 외게 했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구종직을 발탁해 벼슬로 임용한 임금은 세종대왕입니다. 세종이 물었던 질문은 ‘춘추’였고 구종직은 세종 앞에서 춘추 한 권을 모조리 암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늘 인재에 목말라했던 세종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언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는 중에도 부지런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구종직의 태도도 놀랍습니다. 그 후 구종직은 세조,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배움을 마음껏 발휘해 국가를 위해 봉사합니다. 1466년에는 공조참판에 이르고 자헌대부까지 올랐습니다. 문장이 뛰어나고 역학, 경학에 밝았지요.엘빈 토플러는 말합니다. “21세기 문맹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더 이상 배우기를 멈춘 사람이다.” 인공지능이전방위적으로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배움에 열려 있는 누군가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2020년에는 어떤 배움의 즐거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5

온유에 대하여 2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에 나오는 네 마리 백마가 아라비아 명마입니다. 아라비아 말은 세계 최고 브랜드입니다. 그 배경에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옛날 아라비아에 말에 유독 관심이 많은 왕이 있었습니다. 온 천하를 다 뒤져 가장 뛰어난 준마(駿馬) 100필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구해 오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신하들은 정성껏 100필의 말을 구해왔지요. 왕은 뛰어난 조련사를 시켜 이 말들을 훈련시킵니다. 호각을 한 번 불면 달리기 시작하고 두 번 불면 어떤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서 멈추게 했습니다.훈련이 다 되었을 때 왕은 특별한 시험을 시작합니다. 말들을 모두 마굿간에 넣은 뒤 사흘 동안 물을 주지 않습니다. 건초와 먹이는 주었지만, 물을 금지시킨 것이지요. 말들은 갈증에 시달리며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4일째 되는 날, 마굿간을 개방합니다. 100마리의 말들은 미친 듯이 개울가를 향해 초원을 달립니다. 그때 조련사가 호각을 두 번 불지요.이성을 잃은 말들은 조련사의 신호를 무시하고 거의 대부분의 말이 개울에서 허겁지겁 물을 먹기 바쁩니다. 그런데 딱 4마리의 말들이 브레이크를 잡았습니다. 호각 소리를 듣고 제자리에서 멈춥니다. 주인과의 약속을 무시하지 않은 것이지요. 왕은 나머지 96마리의 말을 처분하고 이 네 마리 말로 새로운 명마의 세계를 열어갑니다. 그 후손이 오늘날 아라비아 명마가 되었습니다.프라우스(온유)는 자신의 욕망, 추구, 의지를 내려놓고 겸손히 절대 선에 복종하는 태도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진리에 자신을 길들여가는 태도. 이것이 온유(meekness)함의 본래 뜻입니다.강철 같은 힘이 있으나, 그 힘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오직 선과 올바른 일에 절제하며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온유함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선물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4

온유에 대하여 1

온유(溫柔)의 한자어를 풀어보면 따뜻할 온(溫), 부드러울 유(柔)입니다. 영어로는 meekness죠.어감으로 느껴지는 온유는 부드럽고 나약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약함을 뜻하는 weakness와 어감도 비슷해서 더욱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일까요?온유의 진정한 의미를 파헤치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집니다. 용기, 절제, 지혜, 경건 등과 더불어 온유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철학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였지요.희랍 원어로 온유는 프라우스(πραν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의 미덕을 힘(power)이 있을 때 그 힘을 잘 조절하는 능력으로 표현합니다. 희랍어 학자 윌리엄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프라우스에는 부드러움이 있으나 배후에는 강철과 같은 힘이 있다.”프라우스의 원래 뜻은, 야생 동물이 주인에게 잘 길들여져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구 상에서 거래되는 동물 중에 가장 비싼 종이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 써러브렛(Thoroughbred)이라는 종마는 실전에서 뛰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단지 종자만으로 최소 150억원 정도에 거래가 이뤄진다고 합니다.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비싼 말은 Sunday Silence 즉 일요일의 침묵이라는 이름의 수컷 종마인데요. 일본의 한 갑부가 이 종마를 구매하려고 1억달러(약 1천200억원)의 금액을 제시했다가 단번에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왜냐구요? 이 종마의 씨를 받기 위해 전 세계 각국에서 암컷 명마들이 줄을 지어 섰기 때문이지요.수익이 대단합니다. 1회 교배에 받는 비용이 5억원이라나요? 1년에 줄잡아 100번 정도 교배가 성사된다 하니, 바보가 아닌 한 연매출 500억을 거뜬히 올리는 종마를 1천200억에 팔아 치울 리가 없겠습니다. 참으로 오묘한 말(馬)들의 세상입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