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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 핸즈(Two Hands) 2

2년의 방황 끝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두 손으로 연주할 수 있느냐보다 음악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돌아온 레온 플라이셔는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지휘를 시작하는 한편, 왼손으로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그가 도전한 왼손을 위한 솔로 작품과 라벨, 프로코피에프 협주곡을 녹음한 소니 클래식 레코드는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되기에 이르는 호평을 받습니다.왼손으로 연주회를 거듭 하면서, 레온 플라이셔는 결코 오른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수술에 실패했지만, 끝까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내려놓지 않지요. 오른손을 위해서라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입니다.1990년 정확한 진단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국소적 근육긴장이상증(focal task-specific dystonia) FTSD라는 것을 알아낸 겁니다.뒤틀린 넷째 다섯째 손가락에 보톡스를 주사하는 요법으로 치료합니다. 롤핑을 병행하면서 경직된 근육이 한결 유연해집니다.30년 만에 레온 플라이셔는 다시 두 손의 피아니스트로 돌아옵니다. 10년 활동 끝에 2004년, 새 음반 ‘투 핸즈 Two Hands’를 세상에 내 놓습니다.바흐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 쇼팽의 녹턴,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이런 주옥같은 곡들을 담은 이 앨범은 젊은 날 당당한 터치 대신 깊은 연륜과 예술 혼으로 악보 행간에 숨어 있던 작곡가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냅니다.안젤라 데이비스는 말합니다. “벽을 밀치면 문(door)이 되고 벽을 눕히면 다리(bridge)가 된다.” 벽을 밀쳐 문을 만들어 내고, 장벽을 눕혀 다리를 건넌 레온 플라이셔의 삶. 그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2

투 핸즈(Two Hands) 1

네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여섯 살 때 공개 연주회를 할 정도로 신동 소리를 듣는 천재가 있습니다. 열 살에 유럽으로 건너가 아르투르 슈나벨(Artur Schnabel)에게 사사합니다.스승은 콧대 높기로 유명한 지휘자 조지 셀(George Szell)을 이탈리아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그는 솔로 연주자들과 협연을 절대 하지 않고 오직 오케스트라 음악만 지휘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스승은 제자에게 슬쩍 연주를 한번 해 보라고 말합니다. 소년의 신들린 듯한 연주 솜씨를 한눈에 알아본 조지 셀은 자존심 다 내려놓고 이 소년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자고 제안하지요.소년의 이름은 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 1928∼)입니다. 열여섯 살 레온 플라이셔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메이저 무대로 등극합니다. 열여덟 살이 되기 전 카네기 홀에서 두 번이나 공연을 하는 기염을 토하지요. 1952년에는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미국인 최초로 우승하는 영예를 얻기도 합니다. 미국 클래식 연주자가 국제 콩쿠르 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한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플라이셔는 31세의 나이로 피바디 음악원의 교수가 됩니다. 그는 미국의 자랑이자 세계를 뒤흔드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우뚝 섭니다.문제가 발생합니다. 34세 레온 플라이셔는 연주 도중 오른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넷째와 다섯째 손가락에 힘이 전달되지 않지요. 증상은 점점 악화돼 두 손가락이 말려들기 시작합니다. 결국, 피눈물을 뿌리며 그토록 사랑하던 무대를 떠나게 됩니다.음악이 삶 전부였던 그는 깊은 좌절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결국, 아내까지 그의 곁을 떠나 이혼하게 되죠. 한 줄기 빛도 없이 캄캄한 흑암 속으로 인생이 순식간에 굴러 떨어집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2-01

21세기 판 잭과 콩나무 2

2018년 9월 23일. 우주 엘리베이터 개발을 위한 실험을 시작합니다. 시즈오카대 연구팀이 작은 위성 두 대를 우주공간에 보내고 길이 10m의 강철 케이블 위에서 미니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소꿉장난 같은 실험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술 자문을 맡은 오바야시 구미는 2050년까지 우주 엘리베이터를 공급할 것이라는 구상을 발표했지요.이런 환상적인 아이디어에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난관은 우주의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밧줄’을 만드는 겁니다. 탄소 나노 튜브가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지만 낙관할 수 없는 기술적 장애가 있습니다. 전기를 공급하는 문제, 운석과의 충돌 등을 피할 안전 대책 등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꿈은 저 멀리 하늘 궁궐에 있는데 내게는 콩 다섯 알도 없고, 금 동아줄도 내려오지 않고 있는 상황인가요? 동화나 신화에서는 오직 행운이라는 변수만이 우리에게 해결책을 제공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우리에게 하늘 궁궐을 향해 올라갈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할 것입니다.액션페이커(Action Faker)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꿈만 꾸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 달달한 꿈에 취해 현실을 부정하며 스스로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우주 엘리베이터라는 달콤한 꿈을 오래전 누군가 꾸었지만, 누군가는 가로세로 10㎝의 초미니 위성을 만들어 10m까지 케이블을 연결해 우주 공간에서 실험을 시작합니다.액션 페이커는 동화와 신화에 머물러 자기를 위안하지만, 진정한 행동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거센 반대와 저항을 물리치고 첫 번째 행동을 시작합니다.오늘 그 꿋꿋한 걸음을 다시 한 발짝 내딛으실 그대를 위해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하늘에서 금 동아줄이 내려오는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실 겁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8

21세기 판 잭과 콩나무

‘잭과 콩나무’는 1500년대 무렵부터 구전되는 이야기입니다.이 멋진 동화는 전 세계 어린이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습니다. 1895년 러시아 과학자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는 동화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를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로켓을 만들면 인류가 꿈꾸던 저 하늘 위의 궁궐, 우주에 올라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인류 최초로 말합니다.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처음 띄운 것이 1903년이었으니, 치올콥스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 가시지요? 치올콥스키는 로켓 이야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우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적은 비용으로 우주로 나갈 수 있다는 원리를 상세하게 밝히지요.120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 사이 인류는 로켓을 만들어 달에도 다녀오고 지구 궤도에 온갖 위성을 쏘며 차근차근 우주로 나가는 길을 텄습니다.치올콥스키의 초기 이론이 대단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예견대로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일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잭이 콩나무에 올라타고 하늘 궁궐로 쭉 올라가듯, 지구 궤도 밖 3만 6천㎞ 지점에 설치한 정거장에서 지구로 늘어뜨린 콩나무 가지, 즉 강철보다 100배 강한 소재에 달린 엘리베이터가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지구에서 우주 정거장까지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른다는 개념이지요.로켓의 한계는 막대한 비용입니다. 1㎏ 물건을 대기권 밖으로 올리려면 2천400만원이 듭니다. 로켓으로 70㎏ 성인을 대기권 밖으로 올려 보내려면 16억 8천만원이 듭니다.승용차 한 대를 옮기면 120억원.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에 성공하면 비용은 100분의 1로 줍니다.저렴한 비용에 물자와 사람을 실어나를 수 있어 3D프린팅으로 우주 정거장에서 이후 우주 개발에 필요한 온갖 부품을 제작, 조립할 수 있다면 우주 개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7

세상을 변화시키는 특이점(Singularity) 3

유전자 가위질 기술은 인간 편집(human editing) 단계로 발전하리라 예측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 열풍은 이 기술 하나로 순식간에 잠잠해질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크리스퍼(CRISPR)를 통해 완벽한 시력, 절대음감을 지닌 청력, 불치병 요소를 완벽히 제거한 태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사인 볼트 수준의 빠른 다리, 최상의 아이큐, 심지어 대머리 유전자를 삭제해 디자인한 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요. 기술적 문제가 아닌 윤리적 문제만 남겨 둔 상태입니다.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까요? 유전자 가위질 기술은 불과 3만∼4만원 (30달러)정도면 시술이 가능합니다. 내 유전자가 혹시라도 불치병의 확률이 있는지를 체크해 볼 수 있는 유전자 해독 방법 역시 무척 저렴합니다. 200달러(25만원)에서 300달러(40만원) 내외만 지불하면 어떤 유전자적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 금새 판정해 휴대폰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미국에서는 이미 시행 중입니다.“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인간 수명 150세, 200세가 코앞 현실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노동에서 해방된 미래는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이런 시대에 우리의 삶은 과연 무엇으로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요? 유전자편집이나 인공지능, 로보트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징, 그것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면의 풍요입니다.성찰 능력, 직관, 따스한 감성. 오직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움을 키워 가는 것. 따스한 손을 서로 잡고 격려하는 일. 이런 능력을 갖추려 애쓰는 일은 슬기로운 이들의 표지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6

세상을 변화시키는 특이점(Singularity)

특별한 재주나 지혜가 있는 이들을 초청해 들어보고 마음에 드는 만큼 상을 베푸는 왕이 있었습니다. 한 발명가는 체스 게임을 발명해 왕 앞에서 몇 게임을 시연합니다. 왕은 체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지요. 발명가에게 어떤 상을 받고 싶은지를 묻습니다. 발명가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소원을 말합니다.“임금님. 제가 받고 싶은 상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 체스판의 첫째 칸에는 쌀 한 톨을 주시고, 둘째 칸에는 두 톨만, 셋째 칸에는 네 톨. 이렇게 한 칸을 지나갈 때마다 앞칸의 2배씩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왕은 순수해 보이는 발명가의 요청에 흔쾌히 그렇게 하겠노라 답을 하고 쌀을 준비해 당장 선물로 보내라고 지시합니다.잠시 후 얼굴이 하얗게 변한 신하가 왕에게 헐레벌떡 달려옵니다. 체스 칸의 절반을 채우면 논 한 마지기의 쌀이 필요했고, 쌀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왕이 가진 모든 재산과 영토를 다 합해도 상을 줄 수 없을 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맙니다. 64칸을 다 채울 경우 필요한 쌀의 양은 922경 3천372조 톨입니다. 문화마다 결말은 다릅니다. 왕이 발명가를 죽이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기도 하고, 왕이 모든 재산을 발명가에게 빼앗긴다는 결말이 있기도 합니다.임계점을 넘을 때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지점을 싱귤레러티(Singularity), 우리말로는 특이점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발전 속도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발전하더니 어느 순간 기하급수적으로 속도와 용량이 급증하죠. 휴대폰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이 정도의 기능을 갖추려면 약 90억원 정도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특이점이 온 덕분에 지금은 누구나 90억짜리 물건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앞으로 양자 컴퓨터가 펼칠 세상은 아찔하지요.(계속)/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4

비둘기에 관한 생각

TIME이 선정한 최악의 올림픽 개회식이 있습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그 주인공으로 뽑혔다고 하지요. 올림픽 깃발을 게양하면서 비둘기를 날리는 순서가 있었는데 이때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않은 비둘기 몇 마리가 성화대 위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온 인류가 TV 화면에 눈을 고정하고 지켜보는 중입니다. 비둘기들은 성화가 점화되는 순간 푸드득 날아오릅니다. 하지만, 거센 불길에 미처 날아오르지 못한 비둘기들이 그대로 통구이가 되어 버리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힙니다. 정부는 국제적으로는 커다란 이슈가 된 이 사건을 절대 보도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하지요.2018년 8월 통일연구원이 발표한 ‘평화를 위한 심리학’ 자료를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인 1천명을 대상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단어 3개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검사를 했습니다. 응답자의 21.1%가 비둘기를 떠올립니다. 다음이 17.5%로 통일이었다고 합니다. 나이, 성별, 이념에 따른 차이는 없었습니다.2011년 서구인 8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평화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단어 중 비둘기는 불과 1%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행복을 가장 많이 떠올렸지요.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교육의 힘이지 않을까요? 서구인보다 24배쯤 더 많이, 더 자주 우리 뇌는 이런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던 셈입니다.뇌는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덫처럼 곳곳에 누군가 설치한 언어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영혼에 스며듭니다. 어떤 이미지가 구축되면 꼼짝없이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자극-반응의 프레임에 갇혀 버리게 되지요. 깨어있지 않으면 자석에 쇳가루 끌리듯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가진 쪽의 의도대로 휘둘리고 말지요. 영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쓸 일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1

분노하라

고전 중 가장 오래된 책.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분노’ 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려 드는 아가멤논 왕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대서사시는 시작하지요.스테판 에셀은 2차 대전 중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겨우 탈출, 목숨을 건지고 나치즘에 저항하며 살아갑니다.평생 우리의 자유를 옥죄는 거대 시스템에 저항하는 삶을 일구신 분이지요. 그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외치는 노구의 목소리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무언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이 강물은 더 큰 정의, 더 큰 자유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동물과 사람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동물에게도 물론 생각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본능에 따른 반응 일부일 뿐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고유한 능력은 ‘생각을 생각하는 힘’입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나 스스로를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할 수 있는 메타 인지 능력 즉 메타노이아입니다.이 능력을 발휘할 때만 사람은 동물과 구분될 수 있습니다.생각을 생각하는 힘 기르기. 자유를 앗아가려는 교묘한 술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요?글을 쓰는 작업이 유일한 훈련 방법입니다. 내 생각을 텍스트로 쏟아내고, 텍스트로 문자화된 내용을 보면서 내 생각을 한 걸음 떼어 놓고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이 힘이 싹트기 시작하는 삶은 진정한 자유를 항해 마침내 위대한 첫 걸음을 떼는 삶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20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사람들(2)

생각학교에서 읽기는 3개월 단위로 강조 분야가 다릅니다.1쿼터 고전 공부법. 수평, 수직 독서법, 읽기, 쓰기, 토론의 기술, 독서 루틴 등을 다룹니다. 2쿼터 문학과 예술입니다. 고전문학, 근대문학, 영미소설, 르네상스 예술사, 음악의 이해 등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지요. 3쿼터 역사는 고대로마사, 1885년 이전의 미국역사, 19세기 유럽 지성사, 과학의 역사 등 지성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릅니다. 4쿼터 철학. 고대철학입문, 근대철학입문, 근대정치사상, 법과 경제사상사를 다룬 책들을 함께 읽고 생각의 역사를 훑어봅니다.토론은 내 좁은 시야를 넓혀주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독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래서 책을 쓰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오류를 바로잡는 방법이 텍스트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방식이지요.워크숍 시간에 고전 토론을 진행합니다. 그동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문학적 건망증’, 조지 오웰의 ‘스파이크’, 프란츠 카프카 ‘단편’,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토론했습니다. 11월에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뤼시스’를 토론합니다.인류 역사를 뒤흔든 깊은 내용, 고전 저자들의 위대한 문장들이 우리의 생각을 자주 멈추고 책을 뒤적이게 합니다. 학위를 주는 것도, 취업이 되는 것도, 유명해지는 것도, 내 몸값이 높아져 더 좋은 곳으로 삶이 상승하는 것도 아닙니다.각자 우물의 깊이가 더 아래로 내려가 맑은 물을 길어 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노력합니다. 구름 아래 떠돌던 삶이 위로 치솟아 밝고 환한 태양 아래 빛나는 삶으로 가득하기를 기대합니다. 숨겨진 가능성을 찾고 그 보물들이 반짝이며 나답게 하는 순간을 만나고 싶은 열망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9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사람들(1)

조지 오웰이 말합니다. “기만이 가득한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인 행동이다.” 거짓이 판치고 기득권이 대중을 후려치는 험준한 땅에서 진실을 글로 외칠 수 있는 용기있는 이들이 하나 둘 모일 때 진정한 변화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지난 2018년 9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캐묻는 사람들의 ‘생각학교ASK’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생각학교’에서 기르고 싶은 힘이 바로 고결함에 이르는 엘리베이션 파워입니다.이 학교에는 세 가지 전공과목이 있습니다. 읽기, 쓰기, 토론하기.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의 세 가지 도구입니다. 가장 강조점을 두는 포인트는 쓰기입니다.이오덕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글을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이 있는지를 나는 모릅니다.”생각학교 학생들은 매일 씁니다. 매일 한 개씩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한 달에 30개의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을 스스로 써내려 갑니다.20개의 질문은 생각학교에서 미리 준비해 제공하고, 10개의 질문은 스스로 만들고 답합니다.진짜 나를 알아가기 위해, 내 안의 암묵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보물들을 캐 내기 위해 질문하고 또 질문합니다. 생각학교는 5년 과정입니다.이 5년 동안 1천800개의 질문을 던지고 꾸준히 보물찾기 하듯 글을 씁니다. 구름 아래에서 좌충우돌하고 낙심하고 슬퍼하고 우울하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한 발짝 떨어져 나를 객관화하고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엘리베이션 파워를 키워갑니다.생각학교는 끊임없이 에세이를 씁니다. 질문에 묻고 답하면서 스스로 발견한 것들, 정리해 보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 정제된 언어로 글을 써 봅니다.모임에서는 그 글을 미리 인쇄해 배포하고 서로 발표합니다. 격려와 피드백으로 서로를 세워나갑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8

마음의 쿠션

“돌멩이 하나를 던져보면 압니다. 돌이 물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때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우물의 깊이와 양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내 마음의 깊이는 다른 사람이 던지는 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깊으면 그 말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깊은 울림과 여운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흥분하고 흔들린다면 아직도 내 마음이 얕기 때문입니다.마음이 깊고 풍성하면 좋습니다. 이런 마음의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갈증이 해소되며 새 기운을 얻습니다. 비난이나 경멸의 말에 내 우물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내 마음의 우물은 얼마만큼 깊고 넓을까요?” - 조신영의 ‘쿠션’ 중에서.‘쿠션’은 ‘경청’에 이어 쓴 제 대표작입니다. 쿠션이 없는 딱딱한 바닥에 오래 앉아 있으면 혈액 순환도 안 되고 몸이 금세 고달파집니다. 인간의 몸이 닿는 곳에는 어떤 형태로든 쿠션이 존재하지요. 우리 마음은 어떨까요? 마음에도 쿠션이 존재한다면? 마음 쿠션의 품질이 우리 삶의 질입니다. 마음이 늘 팍팍하고 고단해서 쿠션이 없으면 메마른 영혼, 황폐한 삶입니다. 조그마한 자극에도 예민하고 거친 반응이 튀어나옵니다.어떻게 하면 마음 쿠션을 키울 수 있을까요? 마음 우물 깊이를 어떻게 더 깊고 풍성하게 울림 가득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먹구름을 뚫고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자극에 즉각 반응하는 구름 아래의 삶을 성찰하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우리의 영혼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엘리베이션파워, 고결함에 이르는 힘입니다. 구름 아래에는 천둥, 번개, 비, 바람, 강풍 등이 늘 존재합니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합니다. 고요함. 밝은 태양. 푸른 하늘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구름 아래 세상의 요란한 일들이 우리 마음을 흔들 이유가 없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7

직업 선택 십계명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교장이 제시한 직업 선택 십계명이 있습니다.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길, 위대한 가치는 이렇게 세상과 정 반대로 걷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법입니다.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 환자가 있다 해 봅시다. 어느 시골 청년이 암 치료제를 완성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옵니다. 학교 문턱도 가보지 못한 아이가 개발한 약입니다. 완치율 100%. 임상 실험도 끝났고 미국 FDA에서 승인을 했습니다.완치하는 데까지 투약하는 비용이 9백만원이랍니다.카드결제도 안 됩니다. 오직 현금으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택배로 보내주지도 않습니다. 그가 이런 조건에 불평할 수 있을까요?위대한 가치란 그런 것입니다.자질구레한 부대조건은 일고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 이런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인물들은 적당한 교육, 적당한 철학으로 길러지지 않습니다. 위대한 가치는 지식의 주입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생각으로부터 탄생합니다.위대한 생각은 위대한 사람을 만나는 일로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모쪼록 직업선택 십계명 교훈처럼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나길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4

긍정의 기대를 심으면

잭 웰치 GE 전 회장은 어린 시절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습니다. 어머니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생각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이야. 너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2차 세계대전 말, 헝가리군 소속 부대가 알프스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고립되어 길을 잃었습니다. 기온은 떨어지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이들은 모두가 얼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필사적으로 탈출 방안을 찾던 중 누군가 고함을 지릅니다. “제 배낭에 지도가 있습니다!”지도를 보며 탈출 경로를 의논했고 마침내 탈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부대 복귀 후 상관은 그들이 탈출할 때 사용한 지도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이 지도는 알프스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 지도로구만!”수백 ㎞ 떨어진 피레네 산맥 지도를 알프스 지도로 착각하고 필사적으로 지도 하나 붙들고 탈출을 시도하고 결국 성공해낸 것은 긍정적 기대감이 우리 행동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오래 전, 강화도에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 한 참여자가 나눈 이야기입니다.“아들이 이번에 성적이 많이 올랐어요. 이유가 있어요. 학교 선생님이 한마디 해 주신 것 때문입니다. 아이가 2학년 때는 반에서 최하위권이었어요. 3학년에 올라와 새로 온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대요. ‘지훈아. 얼마 전에 보니까 입술에 뾰루지 났던데 이제 다 나았네?’ 아들은 선생님이 자기 입술에 났던 뾰루지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 거에요. 그날부터 우리 아들, 노트에 쓰는 글씨체가 달라졌어요. 학교 가는 걸 즐거워하고 숙제를 척척 해내더니 마침내 이번 시험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오늘 하루, 내 주위 사람들에게 긍정의 눈빛과 표정, 말투, 언어와 몸짓으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멋진 긍정의 날이시길!/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3

쯔빙글리와 염소

험준한 산악으로 둘러싸인 알프스 출신의 신학자요 종교개혁가인 쯔빙글리의 어릴 적 이야기입니다. 알프스의 한 산자락을 산보하고 있던 쯔빙글리는 낭떠러지 위의 좁은 비탈길에 염소 두 마리가 대립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 합니다. 워낙 좁은 길이라 서로 비켜 갈 수 없었는데 이 둘은 뿔로 상대방 염소를 받아 밀어내고 자기가 먼저 지나가려 다툽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염소는 모두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져 죽고 말았지요.얼마 후 쯔빙글리는 산보를 하다가 또 그 장소에서 염소 두 마리가 마주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번에도 둘이 싸우다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하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한 염소가 좁은 비탈길에 엎드리고 고개를 숙입니다. 다른 염소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가지요. 그러자 엎드렸던 염소가 일어나 산 위로 올라갑니다. 쯔빙글리는 이 염소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나도 저렇게 남에게 양보하자!”이후 평생을 남에게 양보하며 살아간 쯔빙글리는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위대한 사상가로 명성을 떨칩니다.자신의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세 명의 사위 후보자들에게 손거울을 선물한 임금을 기억하시나요? 3년 여행 기간 동안 세 번째 후보자는 그 거울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지혜임을 깨닫지요. 임금의 테스트에 멋지게 통과합니다.우리에게는 손거울 대신 연필 한 자루와 노트가 필요합니다.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거울입니다. 질문을 쓰고 찬찬히 답을 정리하며 캐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쯔빙글리가 염소의 양보를 보면서 인생의 의미를 터득했듯 내 노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삶의 비밀을 깨닫는 순간이 차고 넘치는 하루이기를 소망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2

불평 없이 사는 지혜 (2)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 넓은 집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한 젊은이는 암소를 방안으로 끌고 들어와 여물을 주기 시작합니다. 좁은 방은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입니다. 음메 음메 울어대는 암소, 자꾸만 수탉을 쫓아 뿔을 들이미는 염소, 방안을 푸덕거리며 깃털을 날리는 수탉.녹초가 된 젊은이는 울면서 랍비를 찾아가지요. “시키는 대로 다 했지만, 저는 이제 완전히 미칠 지경입니다.” 랍비가 말합니다. “아주 잘했네. 그럼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동물들을 모두 방 바깥으로 끌어내게. ”젊은이는 집에 돌아와 닭장을 만들어 수탉을 넣고 염소와 암소를 마당 말뚝에 매어 놓은 다음 엉망진창이 된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없이 좁고 불편했던 집안이 이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안락하고 넓은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젊은이는 더 이상 자기 집이 좁고 낡았다고 불평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버트런드 러셀은 말합니다. “행복의 비결은 간단하다. 불평불만에 스스로 속지 않으면 된다.”사람은 울면서 태어나 불평하며 살다가 실망하며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구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기막히게 잘하는 것을 꼽으라면 아마도 ‘불평’일 것입니다. 기름값이 비싸다고 불평하는 것은 당신이 자동차를 가진 덕분이고, 출근시간에 교통 체증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직장이 있는 덕분입니다. 바라보는 눈이 바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고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 우리의 삶은 바뀌는 거지요.불평을 멈추는 변화는 4단계를 거치며 이뤄집니다. 무의식 가운데 불평하는 1단계. 의식하면서 불평하는 2단계. 의식하면서 불평을 억제하는 3단계. 무의식 가운데 불평하지 않는 4단계. 나만의 체크 방식으로 불평할 때마다 인식하게 장치를 만들면 만성불평증후군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지혜를 모아 보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1

불평 없이 사는 지혜 (1)

유럽 농촌 마을에 사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항상 불평불만을 달고 사는 청년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불만은 자기가 사는 집이 너무 좁고 낡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그가 유난히 불평을 심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이웃 어르신이 가서 마을 랍비를 만나라고 조언합니다. 젊은이는 지긋지긋한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랍비를 찾아가 조언을 청합니다.“수탉 한 마리를 사서, 방 안에 풀어놓으시오. 이 수탉을 절대 방 밖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되오. 당신이 좁고 낡은 집의 불행에서 벗어나는 비결이니 꼭 명심하시오.”젊은이는 신이 나서 수탉 한 마리를 방에 두고 지내기 시작합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방은 닭 깃털로 가득하고 닭의 똥과 모이가 흩어져 엉망이 되었습니다. 집안은 더 좁고 더럽고 악취로 가득했습니다.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다시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이상하군.” 랍비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지침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염소를 한 마리 사서, 수탉 옆에 두고 키워 볼 수 있겠나? 틀림없이 자네는 이 끔찍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네. 장담하네. 일주일만 버텨보게.”젊은이는 다시 희망에 부풀어 올라 염소에 돈을 투자하기로 합니다. 염소 한 마리를 사서 크고 넓은 집을 얻을 수 있다면 현명한 투자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일주일을 견디는 동안 젊은이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염소가 닭을 계속 쫓아다니는 바람에 가뜩이나 좁은 집안은 더 비좁고 악취가 진동하며 숨조차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지요. 일주일을 견뎌낸 젊은이는 랍비에게 달려갑니다.“이제 마지막 관문이네. 소 한 마리를 방 안으로 들여 일주일 동안 키워 보게. 그렇게 하면 자네는 틀림없이 고민을 깨끗이 해결할 수 있을 걸세.” (다음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10

베스트셀러 이야기(2)

책이 서점에 깔리기까지 아무도 책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팀장은 출시 첫날 G문고 반응을 살피더군요.“광화문 점에서만 12권 팔렸습니다!” 팀장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며 외친 말입니다. 1쇄 3천로 감당이 안되어 즉시 2쇄에 들어가야하는 상황입니다. 일주일에 만 권 이상 몇 달을 멈추지 않고 팔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에 무관심했구나, 사람들의 마음이 참 힘들었구나,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던 경험입니다.‘경청’은 발간 1년만에 50만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시대 흐름에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훨씬 더 좋은 작품도 1천부도 안 팔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대의 필요에 너무 앞서 가거나 조금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정말 운이 따랐던 거지요.경청을 쓰면서 내내 한 가지 죄책감 같은 것이 괴롭혔습니다. “나는 경청을 잘 못하는데, 경청을 쓰는 것이 옳은가?” 그때마다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쓰면서 배우고 쓰고 난 후에 잘 하자!”정말이지 경청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온갖 논문과 기사들, 책들을 두루 섭렵합니다. 조사의 결론은 딱 한가지였습니다.“경청의 핵심은 나를 비우는 것.” 이 결론에 도달하는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스토리의 소재를 내부가 텅 빈 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선택했습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소재가 결정되자 스토리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가지를 뻗기 시작합니다. 작업에 일사천리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나를 텅 비우는 것. 잘 하고 계신가요? 비운다는 것은 내 이성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의 말이 내 텅 빈 마음에 스며들도록 먼저 열어두고 상대가 충분히 자신의 뜻을 전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내 뜻을 전하자는 우선순위 정하기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7

베스트셀러 이야기(1)

2006년 늦여름의 일입니다. 사오정 시리즈가 대유행하는 것을 보고 대중의 심리 기저에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의 결핍을 출판사 기획자가 알아챕니다. ‘경청’ 관련 책이 시중에 어떤 것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주로 상담을 공부하는 분들이 읽어야 하는 교재들입니다.대중을 위한 경청 서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결정하지요. “2007년 상반기에는 ‘경청’에 관한 기획서를 출간한다.” 담당 팀을 결정하고, 팀장은 어떤 저자가 이 기획에 어울릴지 고민합니다.“따르르릉” 제 핸드폰 벨이 울립니다. 2006년 8월이 막 저물어갈 무렵입니다. ‘경청’ 집필에 관한 제안을 받았을 때 놀랐습니다. 왜 하필 나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과연 그 작업을 해 낼 수 있을까? 그동안 펴낸 세 권의 책 중 하나가 팀장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당시 저는 힘든 일이 겹쳐 완전히 번 아웃 상태였습니다.“죄송하지만.” 거절하려 했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 마음속에서 울컥하는 게 있었습니다.거절의 말 대신에 이런 말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갑니다. “하루만 제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 인생 전환점이었습니다. 하루를 지내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 도전해 보자는 의욕이 삐죽 고개를 내밉니다.출판사 팀장과 식사를 나누면서 베스트 셀러가 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들었습니다. 첫째, 기본적으로 작품이 좋아야 한다. 둘째, 출판사가 그 작품을 전적으로 밀어야 한다. 셋째, 시대의 흐름에 맞아야 한다.이 세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베스트 셀러가 되기 어렵다는 겁니다. 1, 2번은 우리가 어찌해 볼 수 있지만 3번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오직 운에 달려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6

가장 쓰기 어려운 글 (2)

읽기 쉬운 글이 가장 쓰기 어려운 글입니다. 헤밍웨이 친구들이 단어 6개만 사용해서 자신들을 울릴 만한 소설을 써 볼 수 있느냐고 장난삼아 내기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헤밍웨이는 타자기를 두드립니다. 1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아기 신발 팝니다.)이 여섯 단어 소설은 독자들의 두뇌에 상상을 모락모락 피어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여자 아이가 태어납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뽀얀 피부, 귀여운 옹알이를 하며 건강하게 자랍니다. 남편은 야간 근무도 자청합니다. 엄마는 젖을 물리고 눈을 마주칠 때마다 꿈을 꾸는 듯합니다. 하루는 수당을 듬뿍 받은 남편이 예쁜 신발을 사옵니다. 부부는 아기가 어서 자라 신발을 신고 공원에 함께 산책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아이가 이상합니다.”독자는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여섯 단어입니다. 헤밍웨이는 말합니다.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독자는 그것들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렬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빙산의 위엄은 오직 팔 분의 일에 해당하는 부분만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데 있다.”헤밍웨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빙산이론(Iceberg theory)입니다. 그는 팔분의 일, 즉 물 위에 노출되어 있는 부분만을 간결하게 서술합니다. 팔분의 칠은 물속에 감춥니다. 행간에서 독자들이 읽어내야 합니다. 헤밍웨이 단편은 빛나는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짧지만 울림이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느끼려면 함께 토론하면서 그 맛을 느껴야 합니다. 팔분의 칠을 행간에서 각자 찾아오고 이 퍼즐을 서로 맞춰 가며 전체 그림을 그리면 여섯 글자 소설의 슬픔처럼, 헤밍웨이 작품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5

가장 쓰기 어려운 글 (1)

1899년 7월 21일. 부유한 가정에 남자아이가 태어납니다. 엄마는 음악가 출신으로 진취적이고 호방한 성격이지요. 의사였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거침없습니다. 딸을 갖고 싶었던 엄마는 아들에게 자꾸만 여자아이 옷을 입힙니다.아들은 엄마와 담을 쌓기 시작합니다. 남성적인 아빠에게 빠져들고 아빠를 평생의 롤 모델로 삼습니다.가정의 주도권은 엄마가 쥐고 있었고 아빠는 사냥, 낚시 등을 하며 집 밖으로 나돌았지요. 미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소설가 헤밍웨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입니다.헤밍웨이와 어머니의 악연은 끈질깁니다. 한 번은 헤밍웨이 생일에 어머니가 선물을 보냈는데, 권총 한 자루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살할 때 사용한 총입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헤밍웨이는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지만, 어머니가 죽었을 때는 “난 글을 마저 써야 한다. 돈을 부치면 가족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했습니다. 슬픈 가족의 이야기입니다.헤밍웨이의 문체를 하드보일드(Hard-Boiled Style)라고 합니다. 잡다한 수식이 없고 간결합니다. 관찰자 시점으로 무덤덤하게 감정의 개입이 없이 나열합니다. 예컨대 이렇습니다.“캐서린은 계속해서 출혈을 하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그것을 멎게 하지 못했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캐서린이 죽을 때까지 같이 있었다. 캐서린은 줄곧 의식이 없었고, 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헤밍웨이의 문장들은 쉽고 간결해서 읽기 편안합니다. 왜 대 작가가 이렇게 간결한 문장을 사용한 것일까요? 윌리엄 포크너가 한 번은 헤밍웨이의 문체를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그의 책에는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나오질 않지요.”헤밍웨이는 반박합니다. “어려운 단어를 써야만 감동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언어와 절제된 묘사만으로도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