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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친구의 친구가 금연할 때

특정 감정 상태가 전염병처럼 퍼지는 사례는 수백 년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14세기 독일 아헨에서 갑자기 지역 주민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무도병(Dancing Plague)이라는 독특한 병명까지 생긴 현상입니다. 무도병은 중세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에서도 자주 목격되었습니다.웃음이나 춤이 일으키는 격렬한 감정은 사람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하버드 대학의 니콜라스 리스태키스(Nicolas Christakis) 박사는 사람의 감정과 정서가 어떻게 주위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10년에 걸친 장기 연구를 시작합니다.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2천67명을 추적, 연구합니다. 수학과 의학, 과학으로 인간관계의 비밀을 입증합니다.흔히 행복 바이러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게 문학적 수사가 아닌 실제 과학적으로 입증한 겁니다. 행복은 전염된다는 것이지요.저자는 이 연구 결과를 2011년 컨넥티드라는 책으로 펴냅니다. 한국어 번역본은 ‘행복은 전염된다’. 동료 하버드 교수 제임스 파울러와 사회적 네트워크가 개인의 생활과 건강, 정서, 정치, 종교, 문화,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탐구하지요. 연구 대상은 3천명, 3만명 나아가 300만명에 이르는 규모였습니다.이 연구를 통해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금연을 할 경우 나도 금연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친구의 친구가 또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비만일 경우 나도 비만으로 변할 확률이 수치상으로 명백하게 높아진 연구 결과도 얻습니다.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경우, 나도 행복해질 확률이 6%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지요. 행복하고 훌륭한 삶을 위해서는 고립을 피하고 분투와 격려가 넘치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1-03

관포지교(管鮑之交)(2)

관중이 임종할 즈음, 환공이 찾아와 관중의 후계자, 즉 재상 자리를 의논합니다. 환공은 포숙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관중은 뜻밖의 답을 내놓습니다. “아니 됩니다. 포숙은 강직하고 괴팍하며 사나운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으며 사나우면 백성들이 일할 용기를 잃고 맙니다. 두려운 것을 모르는 포숙은 환공 보좌역으로 마땅치 아니합니다.”환공은 포숙 대신 수조, 개방, 역아 세 사람을 중용합니다. 아부하며 권력을 잡았던 문고리 3인방이었지요. 관중은 그들의 임명을 반대했지만 환공은 결국 그들의 아부를 이기지 못하고 최고 권력을 허락합니다.제나라는 세 간신 때문에 극심한 위기에 처합니다. 환공이 죽은 후 67일 동안 시신을 방치할 정도로 잔혹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집권한 기간에 포숙은 제나라 명문 대부로 인정받고 이후 10대에 걸쳐 명성을 떨칩니다.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요?관중은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을 것이 눈에 보이고 만약 그 상황에서 포숙이 재상 자리에 있으면 권력 다툼에 밀려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으로 예견한 겁니다.겉으로는 관중이 포숙을 해코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친구를 사랑하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오해를 불사하고 친구 미래를 위해 험담까지 서슴지 않았던 관중의 속 깊은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누구나 수없이 많은 친구 명단을 갖고 있는 시대입니다. 수백 명 수천 명 친구 가운데 과연 나의 포숙과 관중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나를 부끄럽게 해 줄 돌직구 날리는 친구. 언제나 내 곁에 있어 내가 펼쳐 주기를 바라는 친구. 변함없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친구. 사람에게 실망하고 세상이 우리를 좌절하게 할 때, 우리 곁에는 변치 않는 친구 ‘책’이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31

관포지교(管鮑之交)(1)

제나라 임금 양공(襄公)이 죽자 노나라에 망명 중인 첫째 동생 규(糾)와 거나라에 체류하던 둘째 동생 소백(小白)이 왕위 계승 후보에 오릅니다.두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제나라에 도착해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지요.관중은 첫째 동생 규를 모시고 있었고 포숙은 둘째 동생 소백을 보필하던 중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관중이 꾀를 냅니다. 경쟁자인 소백 일행을 노상에서 처치하고 왕위를 홀가분하게 차지하자고 제안합니다.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소백 일행이 나타나자 관중이 화살을 날리지요. 소백은 정통으로 화살에 맞아 쓰러집니다.관중은 유일한 경쟁자를 제거했으니 제나라 왕 규를 모시고 느긋하게 수도로 향합니다. 소백은 죽지 않았습니다. 화살이 허리띠에 꽂히는 바람에 목숨을 건집니다. 소백 일행은 전속력으로 제나라에 도착해 수도를 점거하고 왕위를 획득합니다. 소백이 제나라 환공(桓公)입니다. 천하에 명성을 떨친 임금이죠. 뒤늦게 도착한 규와 관중은 노나라로 재빨리 도망칩니다. 환공은 그들을 보호하는 노나라에 통보하지요.“규는 형제이므로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 노나라에서 처단해 주기 바란다. 관중을 죽여 소금에 절이지 않는다면 내 직성이 풀리지 않으니 신병을 인도해 달라. 거부하면 전쟁도 불사한다.”제나라의 통보에 약소국 노나라는 어쩔 수 없이 규를 처형합니다.관중은 자기 발로 제나라로 향합니다. 이때 관중을 구출한 것이 포숙입니다. 환공은 포숙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습니다.결국,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관중을 품는 배포를 보입니다.여기까지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로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관중이 생명의 은인 포숙을 배반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30

기대치를 낮추면

기대치 위반 효과(Expectancy violations theory)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들어 놓고,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더 큰 실망과 분노로 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인간관계는 상대방이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심리적 계약을 맺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이지만 이런 기대치가 충족이 되지 못할 때 실망감이 형성되고 관계는 더 이상 발전되지 않습니다. 능력에 벗어나는 일을 장담하거나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함부로 꺼내지 말아야 하겠지요.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을 때 애매모호한 태도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도 지혜롭지 못합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관계가 악화되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실망하거나 내가 상대에게 실망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원인은 각자의 기대치에 서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맑은 미소를 떠올려 보세요. 왜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 모습에서 즐거운 감정을 느낄까요? 당장 이 아이가 어떤 훌륭한 행동으로 나를 만족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서로 행복한 거지요. 아기도 웃고 나도 방긋 웃으며 화답합니다.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욕심이 끼어들지요.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온갖 기대치가 매일 마음을 파고듭니다. 잔소리를 하게 되고 맑은 미소와 행복감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합니다.무언가 베풀고 있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상대 반응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게 마련이고 실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기대치를 낮추면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감사를 느끼며 좋은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눈빛 하나에도 기쁨이 오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아낌없이 베풀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깨끗한 마음이 관계의 지혜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9

미소(2)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미소를 지은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 또한 그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그가 단순히 한 사람의 간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도 새로운 차원이 깃들어 있었다.문득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도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구말구요.” 나는 얼른 지갑에서 나의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그 사람 역시 자기의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같은 것을 얘기했다.내 눈은 눈물로 가득해졌다. 나는 다시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했다.내 자식들이 성장해 가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는 것이 두렵다고. 이윽고 그의 눈에도 눈물이 어른거렸다.갑자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나를 조용히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소리 없이 감옥을 빠져나가 뒷길로 해서 마을 밖까지 나를 안내했다. 마을 끝에 이르러 그는 나를 풀어주었다. 그런 다음 한마디 말도 없이 뒤돌아서서 마을로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작가 생텍쥐페리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 미소의 기적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어린왕자’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엘라 휠러 윌콕스는 말합니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도 그대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그대 혼자 울게 된다.” 우리 안면 근육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굳어지게 마련입니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깔깔거리며 웃고 말았던 어린 시절의 감성을 살려낼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밝은 웃음은 주변을 맑히고 빛내며 타인의 마음속에도 작은 행복의 씨앗을 심어주는 가장 큰 사회 공헌입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멋진 일을 시작해 볼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8

미소(1)

생텍쥐페리(Antoine Marie-Roger de Saint-Exupery)는 어린 왕자로 인류의 가슴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입니다. 원래 직업은 전투 비행사였습니다.2차 대전 중에 전투기를 몰고 나갔다가 실종되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영웅이기도 합니다.생텍쥐페리는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 스페인 내란에 참전해 파시스트들과 싸운 경험도 있습니다. 그때 자신이 겪었던 체험을 단편소설로 써서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작품 제목은 미소(Le Sourire)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지요.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으며 고통을 참을 길이 없었다.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졌다. 몸 수색 때 발각되지 않은 게 어디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손이 떨려서 그것을 입까지 가져가는 데도 힘이 들었다.하지만, 성냥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빼앗아버린 것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간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눈과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자와 누가 눈을 마주치려 할 것인가?나는 그를 불러서 물었다. “혹시 불이 있으면 좀 빌려주겠소?”간수는 나를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기 위해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성냥을 켜는 사이, 무심결에 그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바로 그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신경이 곤두서서 그랬을 수도 있고, 어쩌면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아무튼,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가슴속에, 두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나는 그가 그런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의 미소는 창살을 넘어가 그의 입술에도 미소가 피어나게 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7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

2017년 12월 캠브리지 대학에서 진행한 ‘눈 맞춤’ 연구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어린 아기와 성인의 눈 맞춤이 서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아기와 성인 머리에 전기자극을 측정하는 모자를 씌우고 두 가지 실험을 진행합니다.첫 번째는 비디오 시청. 자장가를 부르는 연구원이 다양한 각도에서 아기를 바라보는 장면을 화면에 담아 8개월 된 신생아 17명에게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 줍니다. 비록 영상으로 본 것이지만 아기들은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눈을 맞췄는지 아닌지에 따라 뇌파에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두 번째 실험은 19명의 신생아를 실제로 마주 보고 연구원이 자장가를 부르며 여러 동작을 수행합니다. 아이들은 연구원이 자신에게 눈을 맞추어 줄 때 뇌파가 동기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눈을 맞출 때 아기들은 더 자주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입증합니다.이때 아기들이 낸 목소리가 연구원에게도 영향을 끼쳐 아이와 뇌파 동기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실험을 진행한 빅토리아 레옹(Victoria Leong)교수는 말합니다. “성인과 아기가 이야기를 나누며 눈이 마주칠 때 서로 간의 소통 의사를 교환합니다. 동일한 파장의 뇌파가 오고 간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공동연구자인 워스 박사는 말합니다. “눈 맞춤이 상호 뇌파 패턴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아기를 상대할 때 부모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더 다정하게 아기를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대화 중 평균 4초 내외 상대방의 눈을 한 번씩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로 호감을 가진 경우 눈 맞춤 시간 평균이 8.2초라고 합니다. 의지적으로 우리가 서로의 눈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눈을 마주 보며 우리 딱딱한 마음이 풀어지고, 얼었던 마음이 녹아질 수 있다면 일상은 기적이 아닐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4

외로움에 대하여

키가 152㎝ 밖에 안 되는 남자. 안경을 벗으면 장님과 다름이 없어 형편없는 시력의 소유자. 등은 곱추처럼 구부정하고 매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외모. 몇몇 여인들을 사랑했지만, 부모의 반대, 신분의 차이 등으로 번번이 열렬한 사랑은 차가운 냉대와 거절로 끝나버립니다.그리고 그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날마다 곡을 쓰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창작의 충동을 느낍니다. 오선지를 살 돈이 부족해 늘 전전긍긍하죠. 수시로 떠오르는 악상을 옮겨야 하는데, 노트를 살 돈이 부족한 청년. 돈이 떨어지면 물로 배를 채우기 일쑤입니다. 길게는 28일 동안 물만 마시며 굶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견디다 못하면 부디 돈을 좀 빌려 달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구차하고 궁핍한 삶.그래도 이 남자는 미친 듯이 곡을 씁니다. 무려 700편 가까운 가곡을 쓰고 13편의 교향곡, 헤아릴 수도 없는 피아노 소나타, 오페라 등을 작곡합니다.프란츠 슈베르트. 오스트리아가 낳은 불멸의 작곡가. 가곡의 왕입니다.외롭고 불행했던 이 남자. 프란츠 슈베르트. 그에게 있어서 구원은 곡을 쓰고 또 쓰는 것이었습니다.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아무도 자신의 가치를 몰라줘도, 존경해 마지 않는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고 깎아내려도, 음악이 팔리지 않고 연주회는 흥행에 실패해도.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작품을 꿋꿋이 써 내려갑니다.고독과 슬픔 가운데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베토벤은 말합니다. “음악이란 흙과 같다. 그 안에서 영혼과 생명이 창조된다.”슈베르트의 삶은 고독과 슬픔이었지만, 그의 음악은 불멸로 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마음의 흙 밭에 스며듭니다. 마음의 토양이 점점 비옥해집니다. 새로운 영혼의 힘을 느끼게 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태동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3

듣는 법을 가르치는 청각 장애인

에벌린 글레니는 맨발의 연주자입니다. 세계 최고의 퍼커셔니스트입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1천명의 타악기 연주자들을 총지휘하는 독주자로 활약했고 그래미상을 두 번 수상한 경력도 있습니다.어릴 적 앓은 후유증으로 두 귀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여인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온몸으로 사람들의 목소리와 세상의 모든 음을 다 흡수하는 법을 터득하지요. 맨발로 무대에 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그래미상 수상 직후 희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합니다.“듣는 것을 가르치는 센터를 세우고 싶습니다. 단지 듣는 법(how to listen)이 아니라 듣는 것 그 자체를 가르치는 곳이지요. 제대로 듣는 일은 절대로 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듣는다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입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시계 따위에 관심을 뺏기지 않는 거지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당신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거지요.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귀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역설이죠. 당신의 말은 내가 잘 들리는 두 귀로 모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의도로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주장을 들려주기 위해, 그 목적으로 듣기 일쑤입니다.CNN 래리킹 쇼를 수십 년 진행하며 세계 최고의 달변가로 알려진 래리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말하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귀 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배운다.”내 청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상상으로 상대방 입술 모양과 눈빛에 온전히 집중하며 듣는 연습을 해보고 싶습니다. 평소 들으려 노력하지 않은 심장 소리,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순간을 만나보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2

평화의 도구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성 프란체스코가 쓴 평화의 도구라는 시(詩)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경청에 익숙하지 못한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의도로 대화를 하지 않고 나를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일어나죠. 경청의 목적은 ‘이해’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은 갈망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 줄 때 숨통이 트이고 심리적 산소를 공급받습니다. 이해받지 못한 삶, 인정받지 못하는 삶은 우울하고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지요.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이해받고 싶은 사람 99명이라면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 1명에 불과합니다.어쩌면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받고 싶은 사람 999명에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1명일지도 모릅니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입니다.서로 자기를 이해시키려 몸부림치면 결과는 감정의 충돌, 분노, 절망입니다. 이 순서를 바꿀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먼저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나를 이해시키는 노력은 다음 순서에 하면 됩니다.상대방이 한참을 떠들며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에 귀 기울여 주면, 상대는 이해받았다는 안도감과 후련함을 느낍니다. 이때는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지요. 그럴 때 나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면 상대도 쉽게 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지 순서만 잠깐 바꿀 뿐인데, 우리는 평화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나를 둘러싼 먹구름 아래 고단한 삶은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의 외침으로 가득합니다. 귀 기울여 주위 신음을 포착하는 일에 전심전력하는 하루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대가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1

새(鳥)조차 귀를 기울이게 하는 남자

힘을 다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한 인물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며 종교 권력을 이용, 탐욕을 채우려던 당시의 종교 권력층과는 정반대로 걸었던 인류의 스승입니다. 앗씨시의 성자로 잘 알려진 성 프란체스코입니다.맑고 순수한 삶의 방식으로 신과 이웃을 섬겼던 성 프란체스코의 삶에 신기한 일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자연 만물과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해와 달, 나무와 숲, 새와 물고기, 온갖 동물들과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그들을 “사랑스러운 형제들”이라고 인격화해서 불렀습니다.한 번은 프란체스코가 새들이 떼 지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새들에게 설교했습니다. “나의 새(bird) 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그러자 새들은 눈을 반짝이고 귀를 쫑긋 세우며 프란체스코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목을 늘리거나 날개를 빼고 입을 벌려 기이한 몸짓으로 흥겨워하며 그를 응시했지요. 프란체스코는 수도복 자락으로 새들을 스치며 한가운데를 오가면서 대화했습니다. 성호를 그어 새들을 축복하자, 새들은 기쁜 듯이 몸짓을 하며 사방으로 날아갑니다.‘경청’ 책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를 수집, 경청의 위대한 인물을 찾아 일화를 모았던 기억이 납니다. 빌 클린턴, 기업인 등 경청에 관한 유명한 일화들이 많이 있었지만, 역사상 ‘듣기’에 관한 세계 챔피언은 성 프란체스코였습니다. 그가 쓴 평화의 도구라는 시에는 경청의 핵심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습니다.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게 하소서.”러시아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은 말년에 이렇게 후회합니다. “내 생애에 성 프란체스코 같은 이가 몇 분 있었다면 나는 피비린내 나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를 부각시켜야 하는 고단한 세상살이, 어떻게 하면 성 프란체스코의 삶을 닮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20

시간에 대하여

일주일은 168시간입니다. 새로운 계획에 참여하자고 설득하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합니다. “정말 좋겠는데, 시간이 없어서요.” 화장품 업체 매리 케이(Mary Kay)사 회장 매리 케이 여사가 신입 사원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조언이 있습니다. “30분만 일찍 일어나세요. 1주일이면 210분을 벌 수 있습니다. 3시간 30분이죠? 1년은 52주니까 182시간을 확보하는 셈이에요. 우리 회사의 1주일 근무시간이 40시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매일 30분 일찍 일어나 독서나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으면 연간 4.5주의 새로운 근무 시간을 얻는 셈이에요. 한 달 조금 넘지요? 매일 30분씩 일찍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1년을 12개월이 아닌 13개월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이 조언은 젊은 시절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새벽 30분이면 1달 근무시간과 맞먹는 새로운 시간을 준다고? 만약 3시간을 투자할 수 있으면 6개월을 벌 수 있겠어!” 매력적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이론과 정반대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성 언론인 로라 밴더캠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원하는 삶을 만드는 게 아니고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면 시간은 저절로 아낄 수 있다.” 즉, 사람들에게 시간이 부족한 근본적인 이유는 시간을 쥐어짜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분명치 않기 때문이라는 겁니다.시간은 탄력적인 생물에 가깝습니다. 쥐어짜려 하면 실패하지만 정말 필요로 하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그 필요는 우리 마음이 선택하는 법이고 무엇을 간절히 마음으로 원하면 그 원하는 곳에 시간을 쓰게 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시간을 못 만드는 이유는 그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내게 주어진 168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7

소리의 발명가

음악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을 발명한 사람입니다. 정전기장 이론으로 우주 연구의 기초를 놓은 과학자이지요. 소년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바흐와 베토벤에 빠집니다. 하지만, 악보대로 연습해 완벽하게 연주하는 일에 싫증을 냅니다. 처음 본 악보를 연습 없이 즉석에서 연주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낍니다. 그에게는 늘 새로운 악보가 필요했습니다.소년은 세상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시도를 하지요. 피아노 위 뚜껑을 열고 피아노 줄 사이에 다양한 물건을 끼워 넣기 시작합니다. 털실, 포크, 나무 빗장, 플라스틱, 지우개, 볼트. 마침내 소년은 아버지를 뛰어넘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소리의 발명가’ 세계에 입문합니다. 존 케이지 이야기입니다.그는 1951년 세상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공간을 찾아 나섭니다. 그가 발견한 장소는 하버드 대학 녹음실이었습니다.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방음 공간입니다. 존 케이지는 그곳에서도 소리를 듣습니다. 먼저 자기 숨소리를 듣습니다. 호흡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심장 소리가 들려옵니다. “쿵, 쿵, 쿵…”문득 영감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차단해도 어딘가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오선지에 악보를 끄적입니다. 순식간에 완성한 이 작품이 존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됩니다. 어제 편지에 설명한 4분 33초가 바로 그것입니다.나다운 삶은 멈춤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온갖 소음과 자극으로부터 나를 분리하는 일로 시작합니다. 내 심장 소리, 호흡 소리. 저만치 아래 내 의식의 심연 깊은 곳에 가두어 두었던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진정한 내 삶을 시작하는 법입니다. 상대방 마음의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 아름다운 공명이 일어나 질적으로 완벽하게 새로운 너와 나의 관계 또한 시작할 수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6

4분 33초

연미복을 차려입은 피아니스트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우레 같은 박수를 받은 뒤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호흡을 가다듬은 피아니스트는 조심스레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악보를 제자리에 놓습니다. 청중들은 연주를 기다리지요.그런데 연주자는 묵묵히 피아노 건반을 응시합니다. 33초의 시간이 흐른 후 피아노 뚜껑을 닫습니다. 1악장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잠깐 호흡을 고른 후 다시 뚜껑을 열고 2악장 연주를 시작하지요.이번에도 역시 연주자는 건반을 응시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콘서트홀의 무대는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청중석에서는 약간의 기침 소리,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부스럭대는 소리, 한숨 소리, 에어컨 소리가 가늘게 들립니다. 오히려 벽면의 시계 초침에서 미세한 울림이 들리듯 합니다. 2분 40초의 2악장이 끝나고 다시 피아노 뚜껑 덮기.마지막으로 1분 20초의 3악장을 동일한 방식으로 연주하고 피아니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악보를 경건하게 다시 품에 안고 청중에게 절을 하고 퇴장합니다. 관객들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연주회. 4분 33초의 공연 모습입니다.작곡가 존 케이지는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곧 음악이다.”침묵은 우리의 귀를 활짝 열도록 인도합니다. 평소 연주회장에서 소음으로 인식되었던 기침소리, 부스럭 소리, 바람 소리를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것이죠. 케이지에게 있어서 침묵은 진정한 평화에 이르도록 하는 하나의 수단인 동시에 재료인 셈입니다. 자신의 이름 케이지(Cage 새장)처럼 전통적 시스템이라는 새장에 수천 년 동안 묶여 있던 작곡가, 연주자, 청중에 대한 고정 관념과 음악과 소음에 대한 개념들을 모두 새장 밖으로 훨훨 날려 보냄으로써 진정한 소리를 찾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5

슬픔의 미학

러시아 음악의 진정한 별. 표도르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쓴 만년의 걸작은 교향곡 6번 ‘비창’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며 만족했습니다. 낭만주의 교향곡 중에 작품성이 가장 탁월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원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에는 표제가 붙지 않지만, 아끼던 동생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의 제안으로 ‘비창’이라는 표제를 악보에 적어 넣었다고 하지요.이 작품을 첫 연주한 지 9일 만에 차이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욱 불멸의 명성을 얻습니다. 음악 전체에는 비통함의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연주의 하이라이트 4악장은 울부짖는 아다지오의 비통한 현악으로 시작하지요. 투티의 포르티시모로 고조한 뒤 피아노시모로 툭 떨어집니다. 서서히 하강하는 파곳의 독주를 거쳐 애절하기 이를 데 없는 안단테 2주제가 등장합니다. 2주제는 탐탐(징)이 공허하게 울리며 시작하고 금관이 절망의 소리를 내며 코다로 들어갑니다. 피치카토의 쓸쓸함과 더불어 스러지는 종결부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인생이 느낄 수 있는 절망과 슬픔을 음악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슬픔이 가득할 때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면 그대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그의 음악이 우리 마음을 다독여주기 때문이지요. 그 상처들을 속속들이 어루만져 주는 힘일 것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몸에 좋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력이 키워지는 것은 바로 깊은 슬픔의 체험을 통해서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말입니다.삶은 빛과 그림자의 연속입니다. 그림자를 거부하고 밀쳐내려 하면 할수록 우리 삶은 더 피곤하고 공허할 수 있습니다. 슬픔 속에 감춰진 연금술의 마법 같은 요소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픔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껴안아 삶의 보약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난이도가 높지만 궁극적 삶의 지혜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4

두려움을 줄이는 방법

1850년 독일의 작은 마을. 피아노 독주회 광고가 났습니다.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가 연주하는 콘서트였습니다. 순식간에 티켓은 다 팔리고 연주회는 지역사회에 큰 화제가 됩니다. 곳곳에 포스터가 붙습니다. “피아노의 왕자 프란츠 리스트의 제자, 그 품격 있는 연주가 우리 마을에 오다.”프란츠 리스트는 마침 우연히 그 마을을 여행 중이었습니다. 포스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제자 중에 이런 여인이 있었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습니다. 프란츠 리스트가 그 마을에 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음악회를 준비하던 여인은 밤새 고민하다가 연주회 아침 리스트가 묵고 있는 저택을 찾아가 용서를 빕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병든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어서 시골 마을을 돌며 연주회를 하고 있습니다. 아무 이름도 없는 제게 극장이 선뜻 공연 허가를 내줄 리 없기에 선생님 제자라고 속였습니다. 연주회를 취소하고 잘못을 빌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리스트는 무릎을 꿇은 여인을 일으킵니다. “솔직하게 말해 주어 고마워요. 이쪽으로 와서 피아노를 한 번 쳐 볼 수 있겠어요?” 리스트는 원포인트 레슨으로 여인의 부족함을 보완해 줍니다. “당신은 내 제자요. 이제부터 떳떳한 마음으로 연주를 해도 좋소.”무명의 피아니스트는 용서의 기쁨과 감동을 안고 그 감격을 연주에 쏟아부었습니다. 청중들은 기립 박수로 여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수가 그쳐갈 무렵 무대에 프란츠 리스트가 등장합니다. 리스트는 자신의 제자의 연주를 축하한다며, 청중들을 위해 멋진 연주를 선사했습니다. 그날 독일의 작은 마을에는 별들이 더할 나위 없이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프레드 러스킨은 말합니다. “용서는 감옥 문의 열쇠를 우리 손에 쥐어 준다. 용서하고 나면 두려워할 일이 적어진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3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헨리나우웬 박사를 아시지요? 하버드 대학교수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경력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토론토 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가 남은 생애를 약자를 위한 섬김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이 시대의 스승 가운데 한 분입니다. 그는 겟세마니 수도원을 방문해 토머스 머튼을 딱 한 번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그 만남은 헨리 나우웬에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기지요. 토머스 머튼을 자신의 스승으로 삼습니다.작년 겨울 토머스 머튼이 쓴 ‘칠층산’을 읽으면서 저는 죽비로 등짝을 호되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들은 새벽 2시 첫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저녁의 삶을 극도로 절제합니다. 하루는 머튼이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서 늦잠을 잤습니다. 문득 깨어보니 시간이 새벽 2시를 넘은 시각. 아픈 몸을 이끌고 갑니다. 새벽 3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요.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고백합니다.칠층산은 제법 두꺼운 책입니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음미하면서 읽고, 토머스 머튼의 성장 과정에서 읽은 책 이야기들이 흥미진진해서 후다닥 읽고 던지기가 아까운 책이었지요. 이제 그 책을 읽고 난 후 1년이 넘었습니다. 아직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은 토머스 머튼이 늦잠을 자고 새벽 3시에 첫 미사를 드리러 가는 장면입니다.‘칠층산’을 읽은 후 저의 새벽이 달라졌습니다. 저녁의 달콤한 삶을 포기하고 새벽에 클북에 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글쓰기 루틴을 만든 것도 모두 토머스 머튼의 자극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죽어서도 책으로 후배를 흔들어 깨웠습니다.온갖 좋은 책과 훌륭한 리더들이 여기저기 빛나는 시대입니다. 훌륭한 스승들은 삶으로 우리를 일깨우지요. 그들의 수사와 현란한 말씀이 아니라, 눈빛과 표정 삶의 궤적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이런 스승을 곁에 둘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10

평생의 잠을 깨우는 스승

위대한 인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한 경험입니다.무작정 저 높은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삶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멈춤의 시간이 생의 한복판에 존재합니다. 텅 빈 공간. 그 안에서 마음껏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진짜 나를 만나 앞으로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 시간을 충만하게 누립니다.교부들 가운데 사막으로 나간 구도자들이 많았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고 오직 신과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가장 열악한 환경인 사막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교부 안토니우스입니다. 그는 사막에 들어가 20년을 씨름합니다. 고독하고 팍팍한 사막의 한가운데서 홀로서기를 시도합니다. 안토니우스는 지혜와 능력, 인격과 사랑을 갖춘 현자로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나지요. 그를 만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를 한 번 만나는 경험만으로도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해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안토니우스를 찾아오는 제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제자는 1년에 한 번 스승을 만나는 기회라 잠시도 스승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묻고 대화하고 무어라도 하나 더 배워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유독 한 제자는 말이 없습니다. 첫해, 둘째 해도 그랬습니다. 해마다 그 제자는 말이 없이 조용히 방문했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돌아가지요. 몇 년을 거듭한 후 한 번은 안토니우스가 제자에게 묻습니다.“형제님은 해마다 저를 찾으시지만, 한 번도 제게 묻지 않으시는군요. 혹시 어떤 이유라도 있으신지?”제자는 대답합니다. “스승님을 뵙는 것으로 족합니다. 스승님의 얼굴을 보고 하루 종일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1년 동안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난초 향은 하룻밤 잠을 깨우고 좋은 스승은 평생의 잠을 깨운다는 공자의 말씀을 떠올립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9

잭 런던과 모차르트

‘야성의 부름’으로 알려진 잭 런던(1876∼1916)이란 작가는 하루에 무려 20시간씩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의 진정한 장인, 마에스트로입니다.“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몽둥이라도 들고 찾아 나서야 한다.” 그의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잭 런던은 20시간 글을 쓰고 나머지 4시간으로 잠을 보충했는데, 자꾸만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게 되자 놀라운 일을 벌입니다. 침대 위에 역기를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만큼 절박하게 글을 썼습니다.모차르트는 친구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네,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나는 이미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보지 않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네.”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를 신에게 키스를 받은 존재로 묘사하지요. 궁정 악사 살리에르가 왜 자신에게는 영감의 키스를 해 주시지 않느냐고 신에게 저항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묘사와 달리 모차르트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음악에만 온전히 바친 인물입니다. 그의 손은 작곡을 위해 가느다란 깃털 펜을 너무도 오래 사용한 나머지 손의 뼈마디가 온통 뒤틀려 있었다고 합니다.창작은 하늘의 영감을 받아 뮤즈가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숨결을 들이마시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 정해진 루틴이 있는 작업이 비로소 영감 넘치는 작업을 가능케 합니다.가장 능률적으로 일하는 예술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른 아침에 작업합니다. 세상은 고요하고, 전화도 오지 않고, 마음은 평안하되 깨어 있고, 다른 사람의 말로 아직 오염되지 않는 시간은 하루 중 오직 새벽뿐입니다. 위산일궤의 마음가짐으로 매일 한 삼태기의 흙을 모아 나르는 결심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독자님들이 늘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7

창조적 습관 만들기

‘천재들의 창조적 습관’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세계적인 안무가 트와일라 타프는 말합니다.“창조성은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멈추지 않고 노력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하죠.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습관(habit)이 핵심입니다.”그녀의 하루는 일어나자마자, 새벽 5시 30분에 택시를 잡아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녀의 의식(ritual)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지죠. 맨해튼 91번가와 퍼스트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서 2시간 동안 근육을 푸는 운동에 집중합니다. 엄숙한 종교 행위를 수행하듯 이 루틴을 마무리한 다음 창작에 시간을 투자합니다.트와일라 타프는 ‘새벽 5시 반에 택시 타기’가 본인의 의식이라 했습니다. 그것만 성공하면 그다음은 저절로 이어지는 법이라고요. 그녀는 말합니다. “창조성은 몸의 움직임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신적인 활동 이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 보라.”제가 새벽마다 글쓰기에 도전해 이렇게 매일 새벽 편지를 독자님들께 전달하는 것도 트와일라 타프의 새벽 루틴에 자극받은 결과입니다. 업무에 치여 지친 영혼과 몸으로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절실히 깨닫습니다. 밤에 아무런 일정을 잡지 않고 일찍 잠들며 무조건 새벽에 집필 공간으로 나를 밀어 넣기! 글쓰기는 그다음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앞으로 노동 없는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미래를 예측합니다. 10년 후일지, 15년 후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런 날이 옵니다. 그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향기와 맛을 낼 줄 아는 힘입니다. 그것을 ‘교양’이라 부르지요.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이 가을 교양을 함양하기 위한 나만의 창조적 의식 하나쯤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