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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장 난 활주로

스탠퍼드 대학 프레드 러스킨은 ‘용서학’을 연구합니다. 그는 용서는 화해와 다르다는 색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용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상대와 무관하게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의 행위가 용서입니다.”공항 활주로 예를 듭니다. “착륙 유도 장치가 고장 난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공항을 향해 날아오던 비행기들은 주변 상공을 선회하죠. 착륙 유도 장치의 수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연료가 떨어지기 전에 착륙을 해야 하는 기장과 승무원들, 이미 착륙해 집에 돌아갔어야 할 시간에 공항을 아래 두고 선뜻 착륙을 못해 선회하는 짜증 난 승객들. 오랜만의 만남으로 흥분에 들떠 공항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마중 나온 이들의 초조함.”프레드 러시킨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상태’를 고장 난 활주로에 비유하죠. 모두에게 힘든 상태라는 것입니다. 용서를 영어로는 Forgive라고 하지요. 상대가 아닌 나를 위하여(For) 주는(give) 가장 멋진 선물입니다. 찾아가서 화해하고 손잡고 포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음 단계의 행위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용서는 내 마음 안에서 빙글빙글 돌며 선회 비행을 계속하는 지긋지긋한 그 존재들을 착륙시켜 내 마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길을 터 주는 일입니다.프레드 러스킨은 덧붙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쉽게 용서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누구나 예외 없이 그 한 사람을 쉽게 용서하지 못합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를 평생 관찰했고, 내가 수치스러운 행동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바로 그 눈길, 그 존재.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 삼각지 허름한 국숫집 할머니의 용서처럼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는 일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10-03

임마누엘 칸트의 조언

임마누엘 칸트는 일정한 시간에 산책하기로 유명합니다.주위 사람들이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췄다고 할 정도였지요. 어느 날 한 부인이 칸트에게 질문합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시간을 잘 다스리고 질서 있게 살고 싶습니다. 비결이 뭘까요?”칸트의 답은 뜻밖입니다. “부인, 바느질 바구니를 깨끗하게 정리해 보세요.” 선문답 같은 대화지요.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바느질 바구니를 정돈하면서 작은 실천을 해 보면, 보이지 않는 삶의 질서를 바로잡을 동기 부여가 되는 법이니까요.인생에 백해무익한 것들은 소리 없이 강합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지독하게 파고들죠. 세상이 척박하고 삶이 피폐할수록 달콤한 유혹들은 삶을 어느 순간 점령해 버립니다.삶을 바로 세워줄 지렛대 역할을 하는 ‘좋은 습관’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오르막길을 오르는 자전거 여행자처럼, 끙끙거리면서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저는 인생에서 소중한 그 모든 행위를 새벽에 다 몰아서 실천합니다. 지상 최후의 자유시간, 새벽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든 저녁 일과를 포기하고 늦어도 밤 9∼10시에는 침대에 들어갑니다. 결단과 삶의 가지치기가 필요하지만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할 수 있습니다.새벽 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소중한 행위들 책읽기, 글쓰기, 사색하기, 묵상하기, 운동하기, 일기 쓰기 - 모두를 끝냅니다. 여기까지가 하루 일과의 오르막길입니다. 아침 8시 이후에는 신나는 내리막길 하루가 활짝 열립니다. 휴식과 업무를 적절히 조절해 남은 하루를 저절로 굴러가도록 합니다. 업무는 스스로의 동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제가 억지로 의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나를 몰고 가는 힘이 있거든요. 반면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은 의지를 발휘하고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저절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30

오르막과 내리막

운동으로 걷기를 좋아하지만, 간혹 속도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헬멧을 쓰고 자전거에 오릅니다. 왕복으로 달릴 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딱 절반씩 있습니다. 내리막이 없는 오르막이 없고, 오르막이 없는 내리막은 있지 않지요. 힘든 오르막길을 페달을 밟으며 끙끙 오를 때는 조금만 더 가면 자전거가 내리막을 만나 절로 굴러가며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맞을 생각에 괴롭지 않습니다. 지형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광활한 대륙이 아닌, 우리나라의 지형에서 오르막과 내리막은 수시로 나타납니다.인생도 비슷하게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짧게 보면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 즐거운 시간도 있고 맑고 환한 빛나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우울한 시간들이 항상 우리를 뒤따릅니다. 날씨가 항상 흐리고 비가 오는 날만 있지 않고 맑고 환한 날, 바람 부는 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책 읽고, 글 쓰고, 운동하며 내면을 가꾸고 돌보는 일.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습관 만들기는 마치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과 흡사하지요. 단번에 이뤄지지 않습니다.시도하고 넘어지고, 나는 왜 늘 이럴까 좌절하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합니다. 특히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습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서로가 지켜봐 주는 것이 좋은 자극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해 그저 흉내만 내면서 헉헉 따라가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삶에 떠밀려 하류로 두둥실 흘러내려 가는 수많은 삶보다는 천만 배 가치가 있는 시도들입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버둥거리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안주하려는 내면의 속삭임과 싸우곤 합니다. 커다란 에너지를 소모하지요. 어떻게 하면 물결을 거슬러 올라 저 원천에 닿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9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이카루스의 실패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 도전은 죽음으로 끝났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잉태한 하늘을 날려는 염원은 라이트 형제에 의해 비행기를 꿈꾸게 했고 미국과 소련이 죽을 기세를 다해 우주선 개발에 착수하게 했으며 불과 반세기 만에 엘론 머스크는 지구로 귀환하는 우주선까지 뚝딱 만들어 냈습니다.오늘날 이카루스의 비극에 도전이라도 하듯 태양을 향해 녹지 않을 탄소 복합섬유로 몸을 감싼 태양 탐사선 파커를 날려보내는 데까지 인류의 꿈은 이뤄지고 있습니다.꿈을 향해 날갯짓하는 우리의 인생. 추락할 수도 있고 크게 다칠 수 있으며 목숨까지 잃을 수 있지만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마틴 루터 킹이 38세에 남긴 명연설 ‘목숨을 바칠만한 귀중한 것’, 쩌렁쩌렁한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생각에 잠깁니다.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귀중한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고달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저처럼 서른여덟 나이 먹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언젠가 이 사람은 어떤 위대한 원칙이나 위대한 사안, 위대한 대의를 위해 일어나야 할 시점을 맞이합니다. 이 사람은 겁이 나서 혹은 좀 더 오래 살고 싶어서 그런 사명을 거부합니다.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비난을 받고 신망을 잃게 될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칼에 찔리지 않을까, 총에 맞지나 않을까, 집이 폭파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국 대의를 포기하게 됩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흔 살이 되었다고 합시다. 하지만 이 사람은 서른여덟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있었던 영혼의 죽음을 뒤늦게 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의를 위해 일어서기를 거부한 그 순간 죽은 것입니다.”가을이 깊어갑니다. 2020년을 석 달 남짓 앞둔 지금. 무엇을 향해 자신의 삶을 일으켜야 할지 성찰하고 고민하는 가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6

한계를 넘어선 도전

테세우스에게 한눈에 반한 크레타 공주 아리아드네는 미궁을 설계한 다이달로스를 찾아와 탈출법을 알려 달라 떼를 씁니다. 다이달로스는 공주에게 괴수를 죽이는 칼과 붉은 실뭉치를 전합니다. 미궁에 들어갈 때 실을 풀어 나중에 그 실을 따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거지요.아무리 괴수지만, 자기 아들을 죽이는 음모에 가담한 다이달로스를 크레타 왕 미노스가 가만히 둘리가 없습니다. 파란만장한 다이달로스의 운명. 결국, 그는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높은 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이카루스는 창밖에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습니다.“아버지. 저 새들처럼 날개를 만들어 달면, 우리도 이 탑을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크레타 왕 미노스는 다이달로스의 재능을 아까워해서 파수병에게 그가 발명을 하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재료를 공급해 주라 명령한 바 있습니다.나라에 보탬이 되는 발명을 기대하면서요. 다이달로스는 날개 발명에 착수합니다. 며칠에 걸쳐 그는 튼튼한 날개 발명에 성공합니다. 새의 깃털을 모으고 밀랍을 채취해 날개를 붙입니다.이들 부자는 극적으로 크레타 탈출에 성공하지요. 왼쪽으로는 사모스와 델로스섬을, 오른쪽으로는 레빈토스 섬을 지나 고대 그리스판 아이언 맨처럼 자유롭게 에게해 상공을 날아오릅니다. 아들 이카루스는 비행에 심취해 아래로는 바다 물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위로는 태양을 향해 가까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 충고를 잊어버립니다.날개의 신통방통한 능력에 심취해 점점 더 높이 날아오릅니다. 태양을 향해 자신의 한계를 잊어버린 채 더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비행하는 데서 환희와 절정을 맛봅니다.결국, 이카루스의 날개를 붙인 밀랍이 뜨거운 열에 녹아내리고, 바다를 향해 거침없이 추락해 죽고 맙니다. 아버지가 뒤늦게 아들을 만류하려 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5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도끼, 송곳, 측량자를 발명한 사내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다이달로스, 아테네 왕족 출신입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에게 건축 기술과 공예술을 배운 손재주가 뛰어난 발명가입니다. 크레타의 여인 나우카테와 결혼해 아들 이카루스를 얻습니다.다이달로스에게는 조카 탈루스가 있습니다. 조카가 너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불과 12살에 조카는 물고기의 등뼈를 보고 날카로운 톱을 발명합니다. 막대기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둥근 원을 그릴 수 있는 콤파스도 척척 만들지요. 다이달로스는 조카 탈루스의 재능을 보고 질투에 눈이 멉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절벽으로 유인해 밀어버립니다. 다행히 이 장면을 본 아테나 여신이 탈루스를 새로 변신시켜 목숨을 구하기는 합니다만, 조카를 살해한 죄로 다이달로스는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다이달로스는 아테네를 탈출하지요. 아들 이카루스와 아내를 챙겨 크레타 섬으로 망명합니다. 당시 크레타는 미노스 왕이 해상무역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입니다. 미노스 왕은 사람 몸에 소의 머리를 갖고 태어난 아들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왕가의 수치요, 난폭하고 사나운 괴물인 아들. 그 유명한 미노타우로스입니다.다이달로스가 망명하자 미노스는 왕궁으로 받아들입니다. 극진히 대접하고 난폭한 괴물 아들을 가둘 수 있는 지하 궁전의 미로를 만들어달라 하지요. 한 번 들어가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를 만들고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거기 가둡니다.크레테는 아테네보다 훨씬 부강했습니다. 해마다 아테네에서 선남선녀 7명씩을 공물로 받아 미로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칩니다. 이 가혹한 공물에 분노한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가 나서, 자신이 공물로 바쳐진 척하면서 미로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처단하고 미로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요. 이때 테세우스가 미로를 빠져나온 것이, 다이달로스 덕분입니다. (계속)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4

미지의 양식(糧食)을 찾아서

그레고르는 꿈꾸던 구원, 즉 변신에 이르는데 결과는 해충이라는 반전으로 작품은 시작합니다. 가족조차 받아주지 않는 완전히 고립된 존재. 카프카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자신의 꿈과 이상을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를 통해 그려냈습니다.카프카의 글은 생전 몇 작품이 출판되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친구 막스브로트에게 본인의 사후 모든 작품들을 태워 없애 달라고 유언할 정도로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리던 카프카는 40대 초반에 생을 마칩니다.문학을 통해 구원에 이르고 싶은 그의 열망은 여러 장애물에도 꿋꿋이 펜을 놓지 않게 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항상 깨어 끊임없이 원고지와 씨름했습니다.우리를 일상에서 건져 줄 미지의 양식(unknown food)은 무엇인가요? 더듬거리며 늘 그곳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가슴 고동치는 꿈은 무엇입니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뛰고 혈관이 꿈틀거리며 근육이 팽팽해지는 그 무엇. 떠올리는 순간 저 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의 눈빛을 반짝이게 만드는 것, 그것을 우리는 꿈이라고 부릅니다. 꿈은 잘 짜진 계획이 아닙니다. 견적이 제대로 나오는 것은 ‘기획’이요 ‘플랜’일뿐, 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꿈은 탐욕으로 비롯한 야망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레미제라블을 유산으로 남긴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진보’라고 불러보라. 진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을 ‘내일’이라고 불러보라. ‘내일’은 억제할 수 없게 자신의 일을 하는데, 그 일을 바로 오늘부터 한다.”억제할 수 없는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밤을 꼬박 지새운 카프카의 열정. 그가 작품을 쓴 지 벌써 100년의 세월이 넘게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카프카의 생명력 넘치는 문장들 때문에 전율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3

첫 문장 쓰기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작가들은 집필을 마친 후 첫 문장을 수없이 다듬곤 합니다. 소설의 첫 문장 중 가장 유명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카프카의 변신이 손꼽히곤 하지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을 기억하는 분도 많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족은 모두 저마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문장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 인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잊지 못할 문장을 쓰는 것은 모든 작가의 꿈입니다. 그대는 어떤 문장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가요?카프카는 프라하에 살았던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도 독일인도, 체코인도 아닌 정체성 문제 때문에 늘 이방인으로 살았던 고독한 천재였지요. 카프카는 문학을 자기 삶의 구원으로 여겼습니다.글쟁이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믿는 유대인 장사꾼 아버지 압력에 짓눌려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영 보험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일과 문학 사이의 경계에서 갈등했지요. 오직 글을 쓸 때만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카프카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오후 2시에 퇴근하면 여름에는 몰다우 강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매일 1.6㎞를 수영했습니다. 오후 4시 전에 잠을 청하고, 저녁 늦게 일어나 식사와 산책을 하고 밤 10시 무렵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변신’도 그런 삶의 방식으로 생산한 문장들입니다. 불과 며칠 동안 단숨에 써 내려간 걸작이지요.주인공 그레고르 잠자(Samsa)는 카프카(Kafka) 자신의 투영이라는 것을 이름을 통해 보여줍니다. 문학을 통한 구원에 도달하고픈 열망과 돈을 벌어 가족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갈등과 충돌합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22

빛과 그림자

캔디 챙은 동네 빈집 담벼락을 빌려 지나가는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소망을 적는 것 일종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칠판을 만듭니다.뉴욕 한복판에서는 ‘살아가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을 적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여기 적힌 수많은 대답의 공통점은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는 내용이었습니다.의학 공부를 시도하지 않은 것, 꿈을 좇아 따라가지 않은 것,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않은 것, 내 안의 예술가적 기질을 무시한 것, 더 나은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한 것. 무언가 시도하지 못하고 훗날 큰 후회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아닐까요?의학 공부에 도전했다가 실패할 것을, 꿈을 따라가면 생계가 어려울 것을, 사랑을 고백했다가 버림받을 것을, 예술가로 살려 했다가 영감이 고갈돼 실패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선뜻 심장이 뛰는 삶에 도전장을 내밀기 어려워합니다.오래전 도올 김용옥의 미학 강의를 우연히 EBS에서 듣다가 무릎을 친 경험이 있습니다. 인간이 극한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아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지고의 예술품이나 감탄을 자아내는 풍광을 만나면 누구나 감동하고 전율하고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10분만 지나면 대부분 지루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지요.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같은 말을 합니다.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낮이 지나 밤이 오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여기는 것. 이 과정이 삶의 진리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무언가 시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카뮈는 말합니다. “깊디깊은 겨울에 결국 내 안에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여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9

꿈의 나라, 몽상가의 땅

2017년 할리우드 최대 화제작은 ‘라라랜드’ 였습니다.골든 글로브 7개 부문,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석권한 수작입니다. 3천만 달러 저 예산 영화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라라랜드(La La Land)는 ‘꿈의 나라’로 사전에 나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비현실적 세계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몽상가의 땅 정도 뜻이겠지요.영화는 불가능한 꿈을 위해 분투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줍니다.LA는 4월 어느 날 ‘라라랜드 데이’를 선포하고 시장이 피아노로 영화 OST를 연주할 만큼 반향을 일으켰죠. 재즈 음악도 환상적이고 화면 구성이나 카메라 앵글, 의상, 색상 등을 유심히 보면 재밌습니다.배우를 꿈꾸며 LA에 온 미아. 마음껏 재즈를 연주할 수 있는 바(Bar)를 꿈꾸는 세바스찬. 두 사람의 꿈과 사랑 이야기입니다. 미아가 오디션 보는 장면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지요.“제 이모는 파리에서 산 적이 있어요/ 여행 중 일을 얘기해 주었죠/ 맨발로 강에 뛰어든 적이 있대요. (중략) 그 열정을 기억해요/ 그녀는 말했어요/ 그런 정신 나감이 세상을 보게 해 준다고/ 세상과 거꾸로 간다 해도/ 그 작은 조약돌이, 화가가, 시인이, 배우들이 말이죠./ 꿈을 꾸는 그댈 위해/ 비록 바보 같다 해도/ 상처 입은 가슴을 위해/ 우리의 시행착오를 위해…이모는 꿈꾸는 바보의 삶을 미아에게 보여줍니다.라라랜드는 이 영토 문법과 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저 영토 세상을 꿈꾸는 자들의 나라죠. 안전과 안정, 움켜잡은 것을 지키기 위해 꿈을 잃어버린 삭막한 세상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몽상가의 삶입니다.세상은 이런 정신 나간 라라랜드 시민들이 있기에 한 뼘씩 앞으로 전진합니다. 삶에 지쳐 꿈을 놓아버리고 먹고사는 일에 지쳐 방향과 기력을 잃었다면, 라라랜드 돈키호테 삶이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8

구름으로 살아가는 법

무협지를 보면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온 가족이 원수들에게 몰살당하고 목숨만 건진 소년이 스승을 찾아 산으로 들어갑니다. 스승은 한동안 물 길어오고, 청소만 시키죠. 그러다가 됐다 싶은 시점이면 체력 단련을 시작합니다. 어린 묘목 하나를 심고 매일 그 작은 나무를 뛰어넘는 연습을 합니다. 나무가 자라고 소년의 점프 실력도 점점 높아지고 마침내 무술을 배울 때가 오는 겁니다.최근 밝혀진바, 무언가 성취하는 데 있어 재능이란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상당한 기간을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을 반복할 때 위대한 성취가 가능하다고 하지요. 새로운 이론같지만, 무협지에는 뻔한 스토리였지요. 작은 것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쌓아가는 일이 훗날 공중을 펄펄 나는 무림의 고수를 만들어 내는 비결입니다.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 뼘씩 전진해 나가는 일이 그래서 위력적입니다. 습관이 되기 때문이지요. 물론 시간만 투자한다고 해서 위대한 결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정확한 방법과 전문가의 피드백이 필수입니다. 홀로서기는 그래서 위험합니다. 나만의 독단에 빠지기 쉽고, 피드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나를 1%씩 꾸준히 향상시키는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합니다.프리드리히 니체는 디오니소스 찬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많은 것을 알려야 할 사람은 많은 것을 자신 속에 숨겨 둔다.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조금 깨달음이 있다고 교만하지 않고, 내 안으로 꼭꼭 숨겨 두는 일. 번개가 번쩍일 순간을 기다리면서 오랫동안 구름으로 회색 지대를 견뎌 내는 일. 그 묵묵한 인내의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희망으로 인내하며 매 순간을 진지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 오늘 하루 곰곰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7

내 마음 중심에 있는 것 (2)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빠진 크리스틴 스페인(Christine Spain)은 54세 여성입니다. 어느 겨울날, 이웃에서 모임을 갖고 늦은 밤 애완견 릴리와 함께 귀가하던 중 갑자기 쓰러집니다. 알코올이 문제였습니다. 릴리는 갑자기 쓰러진 주인 주위를 빙빙 돌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멀리서 화물 열차 불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두면 크리스틴은 그대로 열차에 깔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지요. 릴리는 미친 듯이 주인을 선로에서 끌어내려 애씁니다.기관사가 멀리서 목격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습니다만 열차는 제동거리 때문에 서서히 크리스틴과 릴리를 향해 접근합니다. 릴리는 필사의 힘을 다해 주인을 선로 밖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하지요. 그러나 릴리는 오른쪽 앞발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열차 바퀴에 깔리고 맙니다.동물 병원으로 가족들이 달려옵니다. 옛 주인을 알아본 릴리는 부끄러운 눈빛으로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듭니다. 앞 다리를 절단하고 내장이 파열된 심각한 몸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흔히 충견(忠犬)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충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한자의 충(忠)은 가운데 중(中) 아래에 마음 심(心)이 놓여 있습니다. 내 마음 중심에 놓여 있는 것. 우리는 그것에 충성을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그 중심에 놓인 것이 돈이면 우리는 돈의 충실한 노예입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명성이면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몸값과 명성을 높이기 위해 충성을 다 합니다. 그 중심에 놓인 것이 권력이라면, 우리는 파워를 획득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겠지요. 결국,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은 내가 무엇에 중심을 두고 충성을 바쳐왔는가, 하는 것의 최종적인 결과물입니다.“강아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조쉬 빌링스의 말이 뜨끔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6

내 마음 중심에 있는 것 (1)

“쾅!”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갑자기 사무실 바닥이 요동칩니다. 건물이 좌우로 미친 듯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회의 중이던 마이클 힝슨 씨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연달아 들립니다.‘지진이 난 걸까?’ ‘미사일에 건물이 파괴된 건가?’ ‘전쟁일까?’ 온갖 생각이 스칩니다. 시각 장애인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마이클 힝슨 씨는 본능적으로 안내견 로젤과 연결된 끈을 꽉 붙잡습니다. 911 테러 현장입니다.맨해튼의 세계 무역센터 78층에 위치한 컴퓨터 판매회사 뉴욕 지사장이었던 마이클 힝슨은 안내견 로젤의 침착한 인도에 따라 78층에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인 마이클씨는 비상사태를 대비, 늘 건물의 구조나 주변 지형지물을 잘 익혀 두었던 터라 로젤의 도움을 따라 신속하게 건물 계단을 이용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원래 앞이 안 보이는 저로서는 타인을 보고 행동하거나 누군가를 따라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었어요. 늘 캄캄한 어둠 속에서 홀로 다니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겨우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대피하려는 순간 100미터 떨어진 쌍둥이 건물 북쪽 타워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사방이 건물이 무너지면서 쏟아진 먼지와 잔해 폭풍으로 휩싸입니다. 안내견 로젤이 당황하지 않도록 힝슨은 호흡을 맞춰 뛰기 시작합니다. 잿더미를 피해 코너를 도는 순간 갑자기 로젤이 멈춥니다. 위에서 파편 더미가 쏟아져 내렸던 겁니다. 힝슨은 로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그냥 달리다가 파편 더미에 묻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겁니다.힝슨은 눈에 재 가루가 들어가 앞을 볼 수 없는 한 여인을 구출해 함께 로젤의 안내로 탈출에 성공합니다.“제 생명의 은인은 로젤입니다.” 그녀는 그 순간을 회상하며 눈물짓습니다.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5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이 72명 아이들에게는 주변 사람 중에 적어도 한 사람 이상 그 아이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어른, 믿어주는 어른이 존재했다는 겁니다.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삼촌, 이모, 이웃 중에서 그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봐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고 무조건 적인 사랑을 베풀어 아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심리적 언덕이 되어 준 사람이 반드시 한 명 이상 존재했다는 것을 에미 워너 연구는 입증합니다.이 한 사람이 없는 아이들, 즉 나머지 129명 아이들은 악순환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지만, 믿고 지지해 준 한 사람이 있었던 아이들 72명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겁니다. 에미 워너 교수는 이 속성을 회복탄력성(Resilience)라고 이름 붙입니다. 어릴 때 받는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이 회복 탄력성의 근간을 이룬다고 결론을 내립니다.한 사람의 믿음이 우리를 살립니다. 덴마크 농가 가난한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1955년부터 40년간 걸친 하와이‘카우아이 종단연구 1’을 통해 그 믿음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한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비록 그가 하는 행동이 이해할 수 없고 타산이 맞지 않으며 하는 일마다 최악의 결과를 낸다 하더라도, 비난하거나 채찍질하거나 찌르는 말을 하지 않고, 덴마크 할머니처럼 믿어주고 맞장구쳐주고 기뻐해 준다면 그 한 사람의 지지와 격려로 세상은 지금보다 한결 아름답고 멋지게 변할 것을 믿습니다.어둠으로 캄캄한 방에는 창문이 여럿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하나의 창문만 있어도 그 방은 신선한 공기와 환한 빛으로 가득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10

역경을 이긴 아이들의 특징

“말을 암소하고 바꿨지.” “어머, 우유를 실컷 먹을 수 있겠군요. 버터와 치즈도 식탁에 올릴 수 있고요. 정말 잘 바꿨어요.”“암소를 양하고 바꿨다오.” “그게 더 나은걸요! 양젖과 치즈와 털옷과 털 양말까지! 암소는 아무리 털이 많아도 그런 건 주지 않잖아요? 당신은 현명해요.” 할머니는 기뻐서 어쩔 줄 모릅니다.“양을 거위하고 바꿨는데?” “그래요? 올해는 거위 요리를 먹게 되었으니 더 좋아요.” “거위를 암탉과 바꿨지.” “최고예요. 닭이 알을 낳아 부화하면 병아리를 얻게 될 테니까요. 이제 마당에 닭이 가득하겠군요. 바로 그거예요.” “그렇지? 하지만,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바꿔 버렸는걸.”“어머나, 당신께 키스해 드려야겠군요. 영감, 고마워요! 오늘 저녁 당신을 부추를 넣은 오믈렛과 베이컨을 해 드리려고 했는데 부추가 없지 뭐예요. 그래서 옆집에 가서 부추를 조금만 빌려 달라고 하니 이러더군요. ‘빌려 달라고요? 하지만, 할머니 집에는 썩은 사과 한 알도 없을 텐데. 어떻게 빌려줄 수 있겠어요?’ 그 부인에게 썩은 사과 한 자루를 통째로 빌려줄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요, 영감.” 할머니는 남편 입술에 키스합니다.“거참 유쾌하군. 갈수록 손해를 보는데도 저렇게 너그러우니, 이 정도면 금화를 줄 가치가 충분히 있어.” 부자 영국인 두 사람은 내기에서 진 것을 인정하며 할아버지에게 금화 한 자루를 선물하지요.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에이미 워너라는 심리학자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서 가장 열악한 아이 201명을 관찰합니다. 3분의 2는 심각한 문제아로 자랐지만 72명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대도시 남부럽지 않은 정상 가정 아이들처럼 성장합니다. 72명 성장에 담긴 비밀을 연구하던 중 이들에는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공통 속성이 있음을 발견하지요.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9

이상한 거래

덴마크 시골에 가진 것은 없으나 유쾌하게 살아가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부부는 말 한 마리를 처분하기로 합니다. 시장으로 가던 할아버지는 암소를 키우는 남자를 만납니다. “신선한 우유가 나오겠지? 말과 바꾸면 좋겠어.” 양을 끌고 가는 사람과 마주칩니다. ‘집 앞 공터에는 풀이 충분하니 암소보다 양이 나을 것 같은데?’양을 끌고 시장을 향하던 할아버지는 거위를 안고 논길을 걷는 남자를 만납니다. “실한 놈이구려. 할멈은 거위가 좋다고 몇 번이나 말했거든. 양하고 바꾸는 게 어떻겠소?” 감자밭에서 암탉 한 마리를 본 할아버지. 마음이 또 흔들립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암탉은 알도 잘 낳을 거고. 거위와 바꾸면 수지맞는 거래가 될 거야.’할아버지는 주막을 찾습니다. 입구에서 썩은 사과를 짊어지고 주막을 나서는 마부를 만나지요. 할아버지는 암탉과 바꾼 썩은 사과 한 자루를 메고 주막으로 들어갑니다. 맞은편 좌석에는 돈 많은 영국 부자 두 사람이 있습니다.할아버지는 말을 가지고 나왔다가 썩은 사과로 바꾸기까지 과정을 자랑삼아 들려줍니다. “영감님은 이제 집에 가면 마나님한테 혼나시겠군요.” 영국인이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뭐라고? 오히려 내게 입을 맞춰주며 기뻐할걸요? 마누라는 틀림없이 ‘영감이 하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하고 말할 거요.” 할아버지는 큰소리칩니다.“내기할까요? 영감님이 이기면 금화 한 자루를 주겠소. 평생 돈을 펑펑 써도 남을 거요.” “거 참, 너그러우시구려. 하지만, 난, 이 썩은 사과 한 자루와 마누라, 나 자신밖에 걸 수 없소. 당신네가 이기면 우리 부부는 기꺼이 당신들 종이 될 수 있지. ”내기가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때마침 도착한 주막 주인의 마차를 타고 농부 집으로 함께 가지요. 영국인은 창밖에 숨어 대화를 엿듣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8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피실험자가 광고를 볼 때 뇌파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느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관찰한 빅 데이터를 모아 마케팅 전략을 수립합니다. 고급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유심히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나긋나긋 느린 음악이 주로 흐릅니다. 매장 내 음악 속도는 고객 매장 체류 시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가격표가 빨간색인 이유는 가격 파괴 기대감을 심어줘 시선을 고정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뇌는 손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2+1이나 한정 판매가 효과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기회를 놓쳤을 때 손해 볼 것이라는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백화점이나 매장, 홈쇼핑은 뉴로 마케팅 집합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성적 사고방식으로 자제하려 해도 우리의 각오는 그들 전문성을 이겨내기 힘든 게 사실이지요.왜 굴지의 기업들이 인공지능 스피커를 각 가정에 서로 깔려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을까요? AI 스피커는 사물 인터넷의 첫 교두보로 모든 가정에서 빅 데이터를 수집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AI 스피커 점유율은 데이터양과 질에서 현저한 차이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편리함과 즐거움. 빠른 속도와 안락함. 다양한 먹거리와 안전하고 풍요로운 삶. 누구나 선망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서히 길들여지다가 언젠가는 덜컥, 더 이상 우리의 자유 의지대로 살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지금 이 새벽에도 포항 앞바다에는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이 찬란하게 빛납니다. 그 불빛을 보면 견딜 수 없어 수면 위로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오징어들의 몸짓을 상상합니다.유하 시인은 그의 시 ‘오징어’에서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이라 외쳤는데, 지금 우리를 향해 밝게 비추고 있는 저 빛이 과연 진리의 빛인지, 뉴로 마케팅의 첨단 연구로 똘똘 뭉친 유혹의 빛인지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5

왼쪽 자리 효과에 대해

학생들을 무작위로 선발해 두 장의 카드를 주고 1초 만에 추정치를 답으로 적게 하는 실험을 했습니다.A카드문제: 1×2×3×4×5×6×7×8=□ B카드문제: 8×7×6×5×4×3×2×1=□ A그룹이 참여한 1번 카드의 평균값 512, B그룹이 참여한 2번 카드의 평균값 2천250입니다. 4배나 차이가 납니다. 사실 정답은 4만320입니다만.콜로라도대학 매닝 박사와 워싱턴주립대 스프로트 박사 연구 ‘왼쪽 자리 효과’입니다. 사람들은 왼쪽에 있는 숫자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이지요.연구팀은 확신을 얻은 후에 소비자들의 심리에 가격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추적 연구합니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2달러와 4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은 펜을 보여줍니다.A그룹의 학생들은 주로 2달러짜리 펜을 선택합니다. B그룹에게는 4달러짜리 펜을 3달러 99센트로 가격을 바꾸어 2달러짜리와 하나를 선택하게 합니다. 3달러 99센트 쪽으로 손길이 가는 빈도가 높아집니다. 44%의 학생들이 3달러 99센트짜리 펜을 선택하지요. 1센트 차이가 학생들의 구매 형태를 완전히 바꾼 겁니다.왼쪽에 있는 숫자가 4에서 3으로 바뀐 것은 1센트 차이였지만 반사적으로 1달러 차이로 느낀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마트에 장 보러 갈 때 꼭 필요한 물건만 사리라 결심했다가 나올 때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물건들을 카트에 가득 담아 후회하신 경험은 없으신가요? 왼쪽 자리 효과 실험 결과를 즉각 매장에 응용한 것 처럼, 마케팅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어떤 행태로 움직이는가를 예의 주목합니다. 대표적인 연구가 뉴로 마케팅(neuro marketing)입니다. 신경 마케팅쯤 되겠지요. 소비자들은 이성으로 쇼핑하는 것이 아니라 반사에 가까운 내면의 심리 과정을 거쳐 물건을 구매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4

‘아마도(maybe)’라는 긍정이 만든 기적

잭은 인근 존스홉킨스 대학 전문가 200명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답장이 하루에도 몇 통씩 들어옵니다. 세계 최고의 의학 전문가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잭의 실험 과정에서의 오류와 아이디어의 부적절함, 이 연구가 왜 의미가 없는지 반박을 쏟아냅니다. 순식간에 100통이 넘는 거절 편지로 메일함이 쌓입니다. 거절의 이유는 논리적이며 날카롭습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비판과 거절 속에서 소년의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립니다. 199통의 거절 편지 끝에 마지막으로 기적과 같은 메일 한 통이 도착합니다.“얘야. 어쩌면(maybe) 내가 이 연구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존스홉킨스 마이트라 박사의 답변이었습니다.잭은 199통의 거절보다 ‘아마도(Maybe)’라는 한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벌떡 일어나 마이스트라 박사에게 달려갑니다. 논문 500편과 수십 권의 책을 읽어 인터뷰 준비를 하지요. 박사와 연구원 20명이 몰려들어 수도 없는 질문 공세를 퍼붓습니다. 잭은 침착하게 그 모든 질문에 대해 답변하지요. 마이스트라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실험실 한쪽을 내어줍니다.이 연구소에서 7개월을 보낸 후 잭은 마침내 탄소 나노 튜브에 항체를 엮어내 조각 센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피 한 방울을 뽑고 센서를 담그기만 하면 5분 이내로 결과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비용은 불과 35원(3센트) 정확도는 100%입니다. 60년 전에 정립한 구닥다리 췌장암 진단 방식과 비교해 보면 잭의 방식이 168배 빠르고 2만 6천배 저렴하며 400배 더 민감하고 100%에 가까운 정확도를 보입니다.췌장이라는 신체 기관이 있는 것조차 몰랐던 중2 소년이 거의 혼자 힘으로 기적을 일으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대범한 십대들이 여기저기 대나무처럼 쑥쑥 솟아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3

4천 번 실패를 넘어서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인 잭은 대담한 질문을 던집니다. “췌장암을 진단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잭은 암에 걸리면 특정 단백질이 혈액에서 증가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라? 해결책은 간단하겠네? 췌장암에 걸릴 때 증가하는 단백질을 찾으면 되잖아?”하지만 잭은 혈액 속 8천 종류 단백질이 있다는 걸 아직 몰랐습니다.잭은 다짐하지요. “내가 반드시 찾아내고 말겠어.” 산 같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격이지만, 소년은 도전을 시작합니다. 방학 3개월 내내 단백질 하나하나 분석합니다. 주방 구석과 학교 실험실을 오가면서 실패를 반복합니다. 췌장암에 걸려도 미동도 없는 단백질 수치 8천 종을 하나씩 확인해 나갑니다. 실패, 또 실패, 또 실패… 잭은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순수한 결심을 지켜내죠. 방학이 끝나갈 무렵 잭은 발견에 성공합니다. 4천 번 실패 끝에 드디어 췌장암이 걸렸을 때 수치가 증가하는 단백질을 찾아낸 겁니다.‘메소텔린’은 췌장암, 난소암, 폐암에 걸리면 증가하는 단백질입니다. 잭은 기뻐 날뛰지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가만 생각해 보니 혈액 속에서 메소텔린이 증가했는지를 감지해 낼 센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피를 한 방울 뽑아 센서에 떨어뜨리면 메소텔린의 지표를 알아낼 수 있어야 췌장암을 진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잭은 혼란에 빠집니다. 새 학기를 시작했지만, 메소틸렌 증가 수치를 혈액에서 감지해 낼 수 있는 물질을 찾는데 골몰하지요. 어느 날 생물 수업 시간에 책상 밑에 넣고 몰래 읽고 있던 과학 저널에서 탄소 나노 튜브에 대한 논문을 읽습니다. “유레카!” 머리카락보다 5만 배나 더 가느다란 탄소 나노 튜브에 메소텔린에 반응하는 항체를 엮으면 센서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