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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1세기 에디슨이라 불린 소년

의대손(宜代孫)은 고종황제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의대손이 만든 발명품을 구입해 궁궐에 도입하려 시도 중입니다. 촛불과 횃불에 의존해 밤의 조명을 해결해야 했던 우리 궁궐에 서양의 전구가 최초로 들어오게 된 셈이죠. 의대손은 에디슨의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겁니다. 에디슨은 당시 조선의 궁궐에 자신의 발명품이 설치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고 전합니다.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1천200번의 실험을 거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물론 에디슨 이전에도 몇 사람이 전구의 발명을 성공했지만, 필라멘트 수명이 상용화할 정도로 제대로 된 것은 에디슨의 업적이라고 해석하고 있지요.에디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1천200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전구를 켤 수 없는 1천200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뿐입니다.”21세기 에디슨으로 불리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에 사는 열다섯 살 잭 안드라카(Jack Andraka). 잭은 아버지 친구 ‘테드’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거였지요. 췌장암은 자각 증세가 없고 미리 예후를 알 길이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죠. 발견하면 이미 암세포가 다 퍼진 말기 상태라 췌장암 진단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조금만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더라면’ 잭은 이구동성으로 한탄하는 말을 듣고 질문을 던집니다.“왜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일까?”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잭은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정보를 뒤지기 시작합니다. 의학 논문, 저널, 책, 대학 강의 등을 섭렵하지요. 잭이 발견한 충격적인 결론은 이렇습니다. 지금 의료계가 사용하는 췌장암 진단법은 60년 전에 개발한 방법으로 정확도는 30%에 불과하며 4시간이나 걸리고 비쌉니다. 한 번 검사에 92만원(800달러).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9-01

넓고 깊은 생각을 키우려면

영화 ‘올드보이’에서 15년 동안 밀폐 공간에 갇혀 있던 최민식은 끝없이 묻습니다. “누가 나를 가둔 것일까? 유응삼? 이소영의 정부? 강창석? 김사송?” 유지태는 말합니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점심은 뭘 먹을까? 내일 누구를 만나야 하지? 아이 학원은 어디로 보내야 할까?” 생각은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오대수처럼 질문 자체가 맞는지, 틀렸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답만 추구하니 틀에 박힌 결과만 경험합니다.질문이 변하면 생각이 확 달라집니다. 알파고와 바둑 두던 이세돌을 기억하십니까? 이긴 쪽 우승 상금은 100만달러. 행사비용은 100만 달러. 모두 200만 달러(22억원)를 들인 행사였습니다. 구글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사람들 머리 속에 인공지능 AI의 발전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남길 것인가?”인공지능, AI라는 난해한 개념을 한순간에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는 없을까? 생각을 거듭합니다. 제대로 질문하자 찾아온 답은 놀라웠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바둑 승부’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은 뻔합니다.대국은 모두 다섯 판이 벌어집니다. 이 다섯 번의 바둑 시합이 벌어지는 일주일 동안 구글의 시가 총액은 무려 58조 원이나 상승합니다. 하루에 10조 원 이상 돈을 쓸어 담은 겁니다. 22억 원 투자 후 58조 원 거두기. 구글은 너무도 선명하게 인공지능 분야 미래를 전 세계에 보여줬고, 사람들 머릿속에 남은 인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질문이 바뀌면 생각의 틀이 확 바뀝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습관적으로 질문하던 틀을 깨 보는 9월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질문을 의심치 않고 답만 찾으려 애쓰던 구습을 깨고 질문이 온당한가, 전제의 오류는 없는가를 깊이 숙고하는 멋진 가을 맞으시길!/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9

양초와 다이아몬드 (3)

패러데이가 기록한 노트를 보면 의미 있는 발견 순간을 기록한 페이지에 11, 894번 숫자가 있습니다. 한 페이지에 3번씩 실험한 결과를 필기했으니 패러데이는 4천 페이지째 이르러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한 것이지요.빅토리아 영국 여왕이 온갖 지위와 명예를 보장해 주겠노라, 제안하지만, 패러데이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겸손한 태도를 유지합니다. 사후 가장 명예로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할 것도 수락하지 않습니다. 끝내 평민들의 공동묘지에 자신의 시신을 묻어달라 유언하지요.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청소년을 위한 과학 특강을 개최해 다음 세대가 과학에 흥미를 갖도록 합니다. 패러데이가 시작한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강연은 오늘날에도 역사가 면면히 이어져 200년 넘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리차드 도킨스, 칼 세이건 등 연사로 초대받은 사람은 과학계 전설들입니다.20파운드 지폐 뒷면에는 패러데이 초상과 그 크리스마스 특강에서 양초 하나로 6개의 실험을 보여주는 위대한 강연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패러데이는 양초 하나로 다양한 물리, 화학 개념들을 설명한 후에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양초의 불꽃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지만, 다이아몬드는 불꽃이 없으면 결코 빛날 수 없단다.”‘단 하루를 살더라도 이렇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이다’ 얼마 전 칼럼에 소개한 황농문 서울대 교수의 ‘몰입’ 예찬이었습니다. 두뇌를 5%도 채 가동하지 않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우리 인생에 일침을 가하는 따끔한 충고였지요. 사람은 뇌를 풀가동하고 몰입의 상태에 들어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지요? 마이클 패러데이처럼, 책 읽기와 노트쓰기, 편지쓰기, 강의 듣기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몰입으로 열고 싶어 하는 그대를 존경합니다. 양초 불꽃처럼 눈부신 세계가 눈앞에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8

양초와 다이아몬드(2)

패러데이는 책의 가르침을 따라 근면한 독서, 노트 쓰기, 강의 참석, 편지 교환을 인생 습관으로 삼습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철학 문집’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메모 노트를 만들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열아홉 살부터는 소규모 과학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회원들과 편지를 정기적으로 주고받는 일을 실천하죠.패러데이는 책을 읽거나 강연에 참석하면 철저하게 그 내용을 노트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많은 페이지를 할애, 기록하고 또 기록합니다. 그리고 제본 기술을 이용해 노트를 멋들어진 책으로 만듭니다. 이 습관이 결국 인쇄소 제본공에서 위대한 과학자로 대전환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왕립연구소 회원이었던 서점의 고객 윌리엄 댄스가 패러데이의 노트를 보고 감동합니다. ‘험프리 데이비 강연’ 고액 입장권 4장을 선물합니다. 험프리 데이비는 영국에서 가장 저명한 과학자였습니다. 인기 스타였지요.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비의 강연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합니다.‘영국 왕실 기하학 수업’ 강연을 앞자리에 앉아 꼼꼼하게 메모하며 듣습니다. 네 차례의 강연 모두를 완벽하게 노트를 작성하고 멋들어지게 제본합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강연 노트 제본한 책 4권을 험프리 데이비에게 선물로 증정하지요. 평소 습관대로 마음을 움직이는 편지를 씁니다. 자신을 실험 기구 닦기로라도 써달라는 내용이지요. 감명을 받은 험프리 데이브는 패러데이를 기억합니다. 꼼꼼한 강연 노트 제본이 정말 인상적이었거든요.제본공 패러데이는 마침내 영국 왕립연구소 험프리 데이비의 조수로 들어가, 마음껏 노트하고 사색하며 책을 읽고 실험실의 장비를 장인의 솜씨로 매만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브를 능가하는 과학자로 성장합니다.(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7

양초와 다이아몬드(1)

지금 시각 새벽 4시 7분. 책을 읽으러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밤새 책을 읽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저도 새벽 일찍 필사와 쓰기를 끝내고 랩톱을 켜고 칼럼 쓸 준비를 합니다. 클북 새벽 천장과 책상 스탠드에 달린 수많은 LED 전구들. 노트북의 전원, 이 모든 것이 전기라는 에너지를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전기를 발명한 고마운 과학자를 아시지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입니다.런던 근교 뉴잉턴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패러데이는 흙수저 출신입니다. 끔찍하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냅니다. 학교 따위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친구들이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인 열두 살에 가난을 피해 런던으로 이사합니다. 이때부터 패러데이는 알바를 시작하지요. 조지 리보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사환으로 첫 일을 맡습니다. 신문을 배달하고 사람들이 읽고 버린 신문을 수집하는 보잘것없는 일들입니다.서점 주인 리보의 마음에 쏙 들지요. 성실하고 총명한데다 맡긴 일은 완벽하게 해 내는 책임감까지 갖추고 있는 아이를, 서점에서 직영하는 책 제본소에 투입합니다. 제본공이 되는 도제 과정을 수업료까지 면제해 주면서 7년을 가르칩니다. 패러데이는 프로 제본가로 성장하며 다락방에서 생활합니다.패러데이가 서점과 제본소에서 생활한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습니다. 주위에 책이 가득했으니까요. 주인 허락으로 제본한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책을 정성스레 만들고 밤에는 책 내용에 푹 빠져듭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던 수많은 책이 무학자 패러데이를 세계 최고 지성인으로 성장하게 만듭니다. 패러데이는 1809년 아이작 와츠가 쓴 ‘정신의 개선-The Improvement of the Mind’ 책을 우연히 만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6

종(Bell)을 울리는 종(Servant)의 삶

이문재 시인은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땅바닥이라고 말하는 곳은 사실 하늘의 바닥이다. 땅바닥은 없다. 땅바닥은 땅의 머리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인간 중심주의가 땅의 정수리를 땅의 바닥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우리는 땅바닥이 아니라 땅의 정수리를 함부로 밟고 있다.”그의 대표작 ‘농담’을 아시지요?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 / 종은 더 아파야 한다.강하거나 외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움켜쥐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나다움을 포기하고 세상의 각본에 휘둘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인 것이지요. 3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듭니다. 왜 갑자기 종이 나오는 것일까? 산뜻한 내용 전개에 감탄하며 고개 끄덕이다가 눈동자를 커지게 만드는 것이 3연입니다. 속도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충만한 삶으로 회복을 위해서는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은 일깨웁니다.몸을 붓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땅바닥이라 부르지 않고 지구의 정수리라 여기며 생태계를 지켜내려 안간힘 쓰는 반항아들입니다. 종메가 자신을 힘껏 내리쳐 아름다운 울림을 만들어 낼 때, 그 아픔을 견디는 이들입니다.시인 정현종은 종메를 생각합니다. 종의 아픔보다 더 진한 종메의 아픔을 매일 같이 견대내며 삿된 생각들을 아침마다 잘라내고 밀어낼 때 비로소 우리 몸은 붓이 되는 모양입니다.종이 되어 아름다운 울림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더 깊고 충만한 소리를 내기 위해 하늘 바닥 저 아래 종(servant)의 자리까지 낮아져야 함을 깨닫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5

한 줄기 생각을 붙들고 있는 사람

레이저 광선처럼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달라지면 세상이 바뀌지요. 문제는 그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편집자는 늘 책만 생각하는 사람, 기자는 늘 기사만 생각하는 사람, 시인이란 늘 시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작가란 오롯이 늘 어떤 글을 세상에 내 보낼까를 한 줄기 생각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속도가 생명인 지금 이 시대에 그 한 줄기 생각을 붙들며 살기란 극도의 절제를 필요로 합니다. 자기 절제를 놓치는 순간 도도한 강물처럼 내 생각을 휩쓸어 가는 생각의 물살은 어느새 돈 걱정, 사람 걱정으로 밀려들기 마련이지요.문학 평론가 김종철이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를 찾아가 인터뷰한 경험을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한 줄기 생각이란 것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오로지 원고료 수입만으로 살아가는 일본 순문학의 대표주자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생활비를 감당할 길이 없을 것 같아 부인과 단둘이 지냅니다. 문학을 위해 세속적인 안락을 포기하지요.하루 일과도 규칙적입니다.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체력을 관리합니다. 체중이 늘면 머리가 둔해지기 때문에 저녁은 먹지 않습니다. 물론 술과 담배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언론과 연락을 끊고 살지요. 그의 집은 논 한가운데 덩그러니 섬처럼 고립되어 있습니다.김종철은 마루야마 겐지에게 묻습니다. “늘 삭발을 하고 계신데요, 혹시 이유가 있으신지요?” “쉰 살 생일 아침에 문득 거울을 보니 문학에 대한 각오가 자꾸만 느슨해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머리를 깎았어요. 그날부터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밀며 흐트러진 마음을 잡습니다.”마루야마 겐지는 ‘소설은 몸으로 쓰는 것’이라 말합니다. 자신의 몸이 곧 붓이자 펜인 겁니다. 언제나 최상의 소설을 쓰기 위해 최상의 몸, 최상의 컨디션을 확보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그의 빼어난 문장과 상상력은 매일 아침 면도날로 자신의 머리를 밀며 구도자처럼 지켜내는 깨끗한 몸에서 나옵니다. 몸을 붓 삼아, 자신 전부를 펜 삼아 언어를 남기는 사람들은 광풍처럼 우리를 ‘돈’의 세계로 몰아가고 물질이 전부라 속삭이는 이 시대정신에 마취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레이저 광선 같은 한 줄기 생각을 붙드는 이들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2

맨발 대학(Barefoot College)

인도에는 맨발 대학(Barefoot College)이 있습니다. 한국 맨발 학교가 맨발로 걷는 행위를 통한 배움이라면, 인도 맨발 대학에서 말하는 ‘맨발’은 하나의 상징입니다.1967년 기근에 시달리던 인도 비하르 주를 방문했던 벙커 로이는 굶주리고 교육받지 못하고 천대받는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합니다. 커다란 충격에 휩싸인 그는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황무지와 다름없는 시골에 내려와 맨발 대학을 설립합니다. 이름은 대학이지만, 맨발 대학은 여타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과는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학위를 주는 곳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주는 곳이지요.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사회를 살기 좋게 만드는 사람을 길러내는 곳입니다.맨발 대학에는 교과 과정이 없고 교수도 없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가난한 농민들, 임금 노동자들, 소외받는 불가촉천민과 여성들, 장애인들이 학생이자 선생이 되어 자유롭게 서로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먼저 온 사람이 나중에 온 사람을 이끌어 주는 방식의 교육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면, 식수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가는 마을에서 온 학생은 직접 수동 펌프 기술을 익힙니다.생전 처음 마을 밖으로 나온 여성들은 말도 안 통하고 문자도 읽을 수 없지만 오로지 모방, 반복, 따라 하기 같은 원초적인 학습을 통해 6개월 만에 수동 펌프 기술의 달인으로 변신하는 거지요. 태양열 조리기 기술을 이곳에서 배운 세나즈씨는 말합니다.“매일 4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이 조리기로 만든 음식으로 식사를 해요. 100명이 이 조리기를 사용하면 한 달에 84㎏의 가스연료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세나즈씨는 이 기술을 배운 덕분에 한 달에 2천190루피, 미화 약 56달러를 법니다. 인도에서는 여성이 이렇게 큰돈을 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돈을 벌 수 있게 되자 집안에서 발언권도 덩달아 강해졌습니다.가난에 찌들고 계급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눌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하고 헌신한 벙커 로이의 삶이 허덕이며 살아가던 수천, 수만 인도인들에게 한 줄기 빛을 선물합니다. 그들은 맨발 대학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대학 졸업장이 줄 수 없는 진정한 배움의 기쁨 가득한 곳입니다.맨 얼굴과 맨손과 맨발로. 자연 그대로 세상 그대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품고 동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는 아름다운 날을 꿈꿉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1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왜 없을까요?

맨발 학교를 아십니까? 대구교대 특수교육과 권택환 교수가 지난 2013년 3월 1일 시작한 신통방통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는 다섯 가지가 없습니다.1. 건물 2. 교사 3. 교재 4. 시험 5. 시간표.맨발 학교의 수업은 운동장, 산, 바닷가 모래사장 등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의 수업은 새벽, 한밤중, 낮, 저녁을 가리지 않습니다. 맨발로 걷는 것이 수업이니까요.‘진리는 단순하고 실력은 꾸준함에서 나온다. 작고 단순한 것도 꾸준히 하는 사람이 행복을 잡는다’가 맨발 학교 교훈입니다.권택환 교수가 맨발 학교를 시작한 계기는 한 권의 책을 읽은 후입니다. 세계 지적장애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진호군의 어머니가 쓴 ‘자폐아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라는 책이지요. 김진호군이 맨발 걷기로 자폐를 극복한 것을 깨닫습니다. 그 책에서 발견한 한 문장이 권택환 교수의 뇌리에 번개처럼 번쩍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자폐아가 없다.”권택환 교장은 말합니다. “교육부에서 일할 때, 한국의 자폐성 아동이 매년 1천명씩 급증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갖는 10개 장애 유형 중에 과거 7위였던 자폐가 지금은 2위까지 올랐습니다. 미국은 자폐 발병률이 68명 중 한 명입니다. 특히 실리콘 밸리에 많아요. 유럽은 미국과는 달리 자폐 아동이 적습니다. 어려서부터 흙과 교감하는 교육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흙 속의 무해 박테리아와 접촉하면서 몸의 면역력이 길러지고 몸속의 유해 전자파를 흙이 흡수합니다. 이런 과정을 어싱(earthing)이라고 합니다.”정현종 시인은 ‘한 숟가락 흙 속에’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한 숟가락 흙 속에 /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래! /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 삼천대천세계가 거기인 것을! / 알겠네 내가 더러 개미도 밟으며 흙길을 갈 때 / 발바닥에 기막히게 오는 그 탄력이 실은 /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이 밀어 올리는 / 바로 그 힘이었다는걸!”아인슈타인이 연구소 근처를 맨발로 걷다가 상대성 이론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일화는 우연으로 들리지 않습니다. 양말, 신발, 아스팔트로 겹겹이 우리의 몸은 흙과 차단되어 있지요. 그 차단을 훌훌 벗어버리고 자연과 교감하는 맨발 걷기는 실로 혁명입니다. 태어날 때 부여받은 맨발로 한 숟가락에 1억5천만 마리 미생물이 꿈틀거리는 맨땅을 밟는 일. 가족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20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나는 산 정상에서 내 위로 번개가 먹구름 가운데 반짝이며 갈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초록빛 숲, 평야, 강과 호수 마을들을 보았습니다. 세이렌의 유혹하는 노래들을 들었으며 양치기의 굵은 고동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악마들의 날개 끝을 만져보았습니다.당신의 책을 통해서 나는 끝도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진 적도 있고 기적을 행하기도 했으며 한 마을을 불태우고 살육했고 새로운 종교를 설파했으며 전 세계를 정복하기도 했습니다. 책들을 통해 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고금에 걸쳐 인간들이 만들어낸 불안한 사상들이 내 머릿속에 작은 덩어리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 누구보다도 내가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략) 당신들이 살아가면서 의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진정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내가 한때 천국의 축복처럼 여겼던 200만 루블의 재산을 포기할 것입니다. 재산을 포기하는 방법으로 나는 계약의 규칙을 어기기 위해 정해진 마감 시간 5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입니다.”변호사는 약속대로 11시 55분에 탈옥을 감행하고 은행가는 쪽지를 금고에 넣어 보관하는 것으로 체호프 단편 ‘내기’는 여운을 남긴 채 끝납니다.책을 통해 사람은 변합니다. 마르틴 발저는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젊은 변호사의 15년을 묘사하듯 이렇게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 폭발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책은 생각을 서서히 변화시킵니다. 일정 임계량을 넘는 순간 젊은 변호사처럼 폭발적인 진보가 일어납니다. 그 임계점은 1천 권일 수도, 3천 권일 수도, 1만 시간 의식적 연습일 수도 있습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삶을 꿈꾸어 봅니다. 책으로 대화하고 책으로 교감하고 성장하는 빛나는 나날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책이 있는 구석방에 나를 유폐시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와 더불어 행동하는 양심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그대 용기에 큰 박수를 드립니다. 세상 도처에서 In omnibus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requiem quaesivi, 마침내 찾아낸, et nusquaminveni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nisi in angulo 나은 곳은 없더라 cum libro -토마스 아 켐피스 Thomas 00E0 Kempis/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9

15년 삶을 건 내기

독방에 홀로 있는 변호사는 결국 책을 손에 잡기 시작하죠. 첫해에는 가벼운 소설들을 읽습니다.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고전을 읽기 시작합니다. 5년째에는 다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입에 대지 않던 와인을 요청합니다. 6년 반이 흐르자 그는 외국어와 철학, 역사를 공부합니다. 10년이 지나자 변호사는 일 년 내내 신약 성서만을 읽습니다. 마지막 2년 동안 그는 온갖 종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습니다. 자연과학, 고전문학, 화학, 의학, 심리학, 생리학, 천문학, 물리학, 역사 등 인간 지성이 닿을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책을 섭렵합니다.그사이 은행가는 부주의로 인해 재산을 거의 날립니다. 15년이 다가오자 초조해진 은행가는 마감 하루 전에 변호사를 죽이고 200만 루불의 채무에서 벗어날 흉계를 꾸밉니다. 감시자의 눈을 피해 조용히 변호사의 방에 잠입한 은행가는 뼈만 남은 채 앙상하게 말라 꼼짝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합니다. 훅 불면 날아갈 듯 가벼운 변호사를 침대에 옮긴 후 베개로 눌러 살해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보입니다. 범행을 저지르려는 순간 은행가는 책상 앞에 놓인 작은 쪽지 하나를 발견하지요.“내일 정오가 되면 나는 자유다. 그러나 나는 마감 5분 전에 이곳을 떠날 것이다. 지난 15년의 시간을 통해 나는 당신들이 추구하는 물질적 세계의 모든 것을 경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뀐 것을 입증하기 위해 200만 루블을 내 자유 의지로 포기함으로써 증명해 보이련다.”15년 책 읽기를 통해 변호사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은행가는 눈물 흘리며 그의 이마에 키스하고 그곳을 빠져나갑니다. 변호사가 남긴 쪽지 내용은 안톤 체호프의 명문장으로 가득합니다.15년간 나는 세상과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비록 땅이나 사람을 직접 느끼지는 못했지만, 당신이 준 책들을 통해 나는 향기로운 와인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숲에서 사슴과 멧돼지를 사냥했으며 여인들을 사랑했습니다.시와 천재적인 영감의 마술에 의해 창조된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구름처럼 신비롭고 영묘했으며 밤마다 나를 찾아와서 정신을 자극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내 귀에 들려주었습니다. 책을 통해 나는 엘부르스 산맥과 몽블랑 산을 올랐으며 거기서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저녁에는 태양이 황금색과 진홍색으로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봉우리를 뒤덮는 것을 감상했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8

독방에 홀로

2010년 8월 17일, 의문의 심리 실험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가 올라옵니다. 20평 안락한 공간에 홀로 30일 동안을 견디면 95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 조건은 간단합니다. 30일 동안 TV, 책, 컴퓨터, 신문, 인터넷, 대화 등 모든 일상생활을 단절하고 오직 창조적 활동, 즉 그림 그리기나 손으로 쓰기만 할 수 있습니다. 주 2회 담당 심리학자와 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외부와의 접촉도 금지합니다. 24시간 CCTV로 관찰한다는 조건도 있습니다. 7일까지는 중도 포기할 수 없으며 시급 1만1천원. 시간이 흐를수록 시급이 올라갑니다. 이런 조건으로 30일까지 버티면 950만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이었지요.많은 누리꾼이 후끈 달아올랐지만 실제로 지원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실험 이후 정신적 문제가 생길 경우 국내 최고 의료진과 교수들로부터 무료 치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사람들이 망설였다고 합니다. 자해 등으로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는 경고문을 보면서 대부분 포기했다고 하지요. 실험에 도전한 한 남성은 30일 동안 영어 단어 1만 개를 외우고 나올 것이라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시작했는데 13일 차에 악몽을 꾼 이후 견디지 못하고 포기 벨을 눌렀습니다.단편 소설의 최고봉이라 일컫는 안톤 체호프. 그가 쓴 1889년 작품 ‘내기’에 위 상황과 비슷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한 젊은 변호사가 부유한 은행가와 파티장에서 격론을 벌입니다. 사람을 단번에 죽이는 사형제도와 서서히 죽이는 종신형, 그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인가 하는 주제였습니다. 젊은 변호사는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백번 낫다는 주장을 하고 부유한 은행가는 사형제도가 훨씬 인간적이라면서 불꽃 튀기는 설전을 벌입니다. 흥분한 은행가는 젊은 변호사에게 제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독방에 5년 동안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200만 루블을 상금으로 걸겠소.”25세의 피 끓는 변호사는 한 술 더 뜨지요. “차라리 15년으로 합시다. 5년은 실험해 볼 가치도 없소.”내기는 단숨에 성립합니다. 은행가는 정원 바깥채에 변호사를 감금하죠. 조건은 작은 창문 하나를 통해 와인, 담배 등을 비롯한 음식을 제공하고 책은 무한정 넣어 주며 피아노도 한 대 제공한다는 조건입니다. 외부 접촉은 일체 차단합니다. 30일이 아닌 15년 조건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배려해 줘야 하겠지요? 무료한 젊은이는 하루 종일 피아노만 칩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5

두 청년이 의기투합할 때

시카고 대학은 1892년 록펠러의 전폭적인 투자로 멋진 캠퍼스를 갖추고 탄탄한 교수진을 꾸렸지만, 삼류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이었습니다. 재단에서는 학교를 이끌어갈 젊은 지도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발굴한 새 총장은 예일 대학에서 법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었던 30세 젊은 청년 로버트 허친스입니다.허친스는 컬럼비아 대학 교육학자인 절친 27세 모티어 J. 애들러 박사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애들러 박사는 허친스에게 두툼한 목록 하나를 보내지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서(Great Books) 목록이었습니다.애들러는 제안합니다. “만약 시카고 대학에서 이 위대한 저서들로 학생들을 가르쳐 보실 의향이 있으면 저도 함께하겠습니다.”허친스 박사는 목록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목록에 자신이 읽은 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죠. 신입생들 가운데 뛰어난 학생 20명을 뽑습니다. 매주 두 시간씩 고전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시작하지요. 허친스는 20대 초반 학부생들과 매주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고전 30권 정도를 독파해 나갈 무렵부터 변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50권을 넘긴 시점부터는 학생들의 질문의 깊이, 생각의 폭, 점과 점을 잇는 상상의 능력,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해 삶에 적용하는 힘이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100권에 도달할 때 학생들이 지닌 잠재력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허친스 총장과 애들러 박사는 시카고 대학 전체에 고전 읽고 토론하기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합니다.기득권 교수들의 극심한 반대와 모함에도 1930년대부터 시카고 대학의 커리큘럼은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가 핵심 프로그램으로 바뀝니다. 이후 시카고 대학 학생들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시카고 대학 출신들이 받은 노벨상이 81명에 이릅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진의 반발 등으로 허친스 총장의 실험은 22년 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만, 분명한 열매가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고전 토론이 직업을 얻는 기술을 직접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만 ‘나다움’이 무엇인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 삶의 롤 모델은 누구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음은 확실합니다. 먹구름 너머 눈부신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확실한 도구는 책 중의 책 고전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3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삶(2)

동굴 속 답답한 공기와 달리 맑고 달콤한 산소가 폐 속으로 들어와 새로운 활력을 몸에 공급합니다. 밤이 되자 눈뜰 용기를 냅니다. 하늘에는 뭇 별들이 반짝입니다. 교교한 달빛에 비친 나무며 들판이며 산들을 바라봅니다. 하룻밤을 흥분으로 지새웁니다. 눈이 현실에 적응합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세상 만물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멀리 뛰어가는 사슴 한 마리.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꿩 한 마리를 봅니다. 경이로움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마침내 죄수는 용기를 내어 가장 강렬한 빛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플라톤은 동굴 밖으로 나온 죄수가 경험하는 세상을 ‘진정한 삶’이라고 말합니다.동굴 안에서 희미하게 보던 삶을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시(可示)적 영역이라면, 동굴 밖 세상은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가지(可知)적 영역이라 말합니다. 가지의 영역에서는 태양으로 비유한 선의 이데아, 즉 만물의 궁극의 제1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진정한 삶, 진정한 앎에 이르도록 빛을 비춰 준다고 말합니다.지성으로만 알 수 있는 영역은 오로지 캐묻는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하지요. 캐묻는 삶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금광에서 황금을 캘 수 있는 비결입니다.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진정한 삶을 한 번 본 사람은 거기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동굴로 돌아가야 합니다.다시 어둠에 적응해야 하고, 밖에서 본 것들을 죄수들에게 설명하고 사슬을 끊고 방향을 돌려 밖으로 탈출하자고 설득해야 한다는 거죠. 죄수들은 익숙해진 삶에 태클을 걸고 자꾸만 캐묻는 이 작자가 귀찮아집니다. 결국, 죄수들은 밖에 나갔다 온 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자고 결의합니다.아테네 법정에서 죽을지라도 캐묻는 삶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포한 소크라테스 존재와 죽음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진정한 골드러시는 생각에서 황금보다 소중한 것들을 캐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축제입니다. 익숙하게 살고 있는 먹구름 아래 현실이 어쩌면, 동굴 안의 죄수와 같이 희미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자기 인식과 성찰. 동굴 밖으로 나가 보고 싶은 호기심과 열망. 같이 가자고 부추기는 진정한 친구.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삶이 고난의 통로를 거치고 진흙으로 엉망이 된다 해도, 빛을 만나 안구에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해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길입니다. 진정한 황금은 우리 생각 안에 이미 가득 매장되어 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2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묻는 삶(1)

생각 속 황금은 어떻게 캐낼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사형을 결정한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 자신은 포테이다이아와 암피폴리스 그리고 델리온 전투에서 그대들이 나를 지휘하라고 임명한 장군들이 머무르라고 명령할 때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장소를 죽음을 무릅쓰고 지켰습니다. 그랬던 내가, 지혜를 사랑하며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이 인생에 대해 생각하도록 캐묻는 데 삶을 바치라고 신께서 이 땅에 보내주셨는데도 죽음이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자리를 버리고 떠난다면 이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소크라테스는 삶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캐묻는’ 데 있다고 말하지요. 문답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것이 삶의 목적이므로 설령 죽음에 이르는 한이 있어도 자신의 할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제자 플라톤은 ‘국가’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캐묻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갑니다. 동굴의 구조가 특이합니다. 벽 앞에는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단히 결박해 놓은 상태로 평생 한 번도 뒤를 돌아볼 수 없었고 오직 앞만 볼 수 있습니다. 뒤편에는 담이 있고 그 담을 끼고 길이 나 있습니다. 담 뒤편에 큰불이 피워져 있어서 그 불빛에 사물들이 비치고 죄수들은 담 위를 오가는 물건들의 정체에 대해 그림자를 보고 유추합니다. “아. 지금 당나귀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구먼.” “이번에는 두 사람이 가고 있네.” “바윗덩어리가 굴러간다.” 이런 식으로 그림자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거지요. 죄수들은 세상만사를 벽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본질이 아닌 피상적인 생각으로 평생 살아갑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합니다. “어느 날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게.”동굴은 비스듬히 지하 쪽으로 깊게 파 내려가 있고 불이 피워진 담 아래쪽으로 밖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통로가 존재합니다. 풀려난 죄수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자유의 걸음을 한 발씩 딛게 되지요. 통로를 따라 오르막을 기어오르자 저 멀리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출구입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망막을 보호하기 위해 눈을 감다시피 하고 동굴 밖으로 나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있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11

황금을 가장 많이 캘 수 있는 곳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이 노래 원곡은 어부 이야기가 아니라 광부와 딸 이야기입니다. “In a canyon, in a cavern, 골짜기와 동굴 안에서 Excavating for a mine 광산을 캐며 Lived a miner, forty niner, 살아가는 포티나이너와 And his daughter, Clementine. 그 딸 클레멘타인.”포티나이너는 금광을 찾아 1850년대 미국 서부로 몰려간 사람들, 금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을 뜻하는 말입니다.금광을 통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드는 현상을 ‘골드러시’라고 하지요. 일부 성공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금광을 찾는 데 실패합니다. 정작 부자가 된 사람들은 금광에 달려든 사람이 아니라 몰려든 그들에게 온갖 생활용품을 팔던 사람들입니다.리바이 슈트라우스(Levi Strauss)는 천막 캔버스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팔았고 바로 그 청바지가 리바이스입니다. 찰리 채플린 주연의 영화 ‘골드러시’를 보면 먹을 것이 떨어지자 가죽으로 된 신발을 삶아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골드러시에 휩쓸려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을 묘사한 장면이었지요.일리노이대 해부학 교수 할리 먼센은 인체를 화학 성분으로 분석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칼슘 2.25㎏, 인산염 500g, 칼륨 252g, 나트륨 168g, 마그네슘 28g, 그리고 소량의 철과 구리 성분으로 구성됐음을 밝혔습니다. 체중의 65%는 산소, 18%는 탄소, 10%는 수소, 나머지 3%는 질소로 돼 있다는 것도 입증했지요. 이 모든 인체 구성 물질의 값을 계산했을 때는 단돈 89%, 우리 돈 1천원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한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물질로 생명의 가치가 정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우리의 이마 안쪽에 있는 그 무엇. 체중의 0.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산소는 거의 20%를 소비하는 신체 기관. 두뇌 속에 과연 어떤 것이 채워져 있는 가로 한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법입니다.“황금은 땅에서 채굴된 것보다 인간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이 채굴되었다”라고 나폴레옹 힐은 말합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주 무대가 샌프란시스코였고 그 지역에서 훗날 실리콘 밸리가 탄생했으니 멋진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8

대오각성(大悟覺醒)

한 남자가 유서를 씁니다. 궁정 음악가 가정에서 태어나 승승장구하던 그는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왼쪽 귀에 고음이 들리지 않기 시작하지요.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칩니다. 증세는 점점 심해집니다.1802년 의사 권고로 하일리겐슈타트라는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6개월을 쉽니다. 도시를 떠났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유서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절규합니다. “신이시여! 제게 단 하루만 온전히 깨끗한 귀를 허락해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절대 안 된다고요? 안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가혹합니다.”이 유서를 쓰고 난 후 남자는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대오각성(大悟覺醒). 죽음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남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가혹한 운명과 맞서 싸우겠노라 다짐합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이지요.윙윙거리는 굉음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울려댑니다. 자기 귀에서 울리는 이 지독한 소음 때문에 세상 모든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로 작품을 쓰기 시작합니다. 결국, 완전한 귀머거리로 쓴 곡이 9번 합창 교향곡입니다. 프리드리히 실러 시에 베토벤이 곡을 붙인 4악장의 장엄함. 이 4악장을 빛나게 하려고 1악장에서 3악장까지 빠른 전개로 기대를 한껏 끌어올립니다.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한 상태로 9번 합창 교향곡 초연 무대에 올라 지휘합니다. 현악 연주자들 활 놀림을 보며 곡 진행을 파악하려고 진땀을 흘립니다. 마지막 피날레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성악과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곡이 끝나는 지점을 파악 못 해 계속 손을 움직이지요.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거가 베토벤 옷자락을 잡아끌며 청중 쪽으로 몸을 돌리게 했고 열광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고 그제야 연주가 끝난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쓴지 22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일입니다. 베토벤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어떤 분은 해마다 12월이면 유서를 작성한다고 합니다. 신과 맺는 1년 동안의 인생 연장 계약서라고 표현하더군요. 대오각성, 이 네 글자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럭저럭 살아온 지금까지 내 인생이라는 판을 뒤흔드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도끼질 같은 충격,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아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음을 심각하게 고려하며 유서를 썼던 베토벤 심정 말입니다. 삶이 변하지 않고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대오각성이 없기 때문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7

마지막 5분

1849년 세모뇨프스키 광장에는 스물여덟의 꽃다운 젊은이가 스무 명의 사형수들과 함께 기둥에 묶여 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영하 50℃의 추운 날씨. 세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운데 광장은 몰려든 구경꾼들로 가득합니다. 집행관이 소리칩니다. “마지막으로 5분을 주겠다.”동지들과 독서토론 모임, 즉 반체제 활동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겁니다. ‘친구들이여! 먼저 세상을 떠나는 나를 용서하시오.’ 생각을 더듬는 동안 다시 소리가 들립니다. “남은 시간 3분!”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지요. ‘다시 한 번 인생을 살 수만 있다면 일분일초를 아끼며 살고 싶다.’ “이제 마지막 1분!” 저승사자 같은 집행관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매서운 바람도 냉기도 느낄 수 없다니. 모든 것이 너무 아쉽다.’ 격렬한 감정에 휩싸입니다.“자! 이제 사형을 집행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군화 소리가 들립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이윽고 “철커덕!”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형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탕!” “탕!” “탕!”세 명의 죄수가 목숨을 잃은 상황. 멀리서 고함이 들립니다. “멈추시오!”광장 끝에서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병사 한 명이 사형을 중지하고 사형수들을 시베리아로 유형 보내라는 황제 친서를 들고 옵니다. 기적입니다.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옙스키 청년 시절 실화입니다.사형 집행 중단 사건은 황제 니콜라이 1세가 기획한 의도적인 연출이었지요. 물밀듯 들어오던 서유럽 사상을 두려워한 황제는 러시아 지식인들을 위협하고자 이런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젊은 도스토옙스키는 그날 경험을 평생 자산으로 삼아 치열한 삶의 태도를 갖습니다. 유형지에서 4년을 보내는 동안, 사형 집행 직전의 5분을 떠올리며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순간처럼 소중하게 살아냈던 것이지요.혹한의 날씨, 무거운 족쇄를 차고 생활하는 비참한 유배지에서의 삶이었지만, 그는 창작 활동에 몰입했습니다. 상상의 원고지에 상상의 펜으로 한 줄 한 줄 글을 썼습니다. 유배 생활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 후에도 도스토옙스키는 ‘인생은 5분의 연속’이라는 각오로 치열한 글쓰기에 매달렸고 18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영원한 만남’, ‘백치’, ‘학대받은 사람들’ 등의 작품을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6

랍비와 황제의 밀약(2)

성문은 무너지고 로마 병사들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합니다. 110만 명이 몰살당합니다. 예루살렘 길거리에 어린아이 무릎 높이까지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말합니다. 150만 명 유대인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나라 없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으로 살아가지요.한 나라가 멸망하면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면 모든 문화나 문명은 다 사라집니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역사상 28개 문명이 발생했는데 유일하게 수천 년을 살아남은 문명은 유대 문명이 유일하다고 하지요. 멸절 위기에 처한 유대 문명은 어떻게 그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았을까요?랍비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 멸망 후 야브네로 떠납니다. 제자들과 함께 작은 학교를 세우지요. 황제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들 티투스를 유대 총독으로 보내면서 작은 학교 설립을 돕습니다.그 학교에서 요하난 벤 자카이는 랍비들을 길러내기 시작합니다. 한 명 두 명 길러낸 랍비들은 유대 전역으로 흩어져 마을마다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회당을 짓습니다. 그곳에서 토라와 탈무드를 목숨 걸고 가르칩니다. 회당은 영토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의 구심점입니다. 나라는 망했지만, 탈무드와 토라를 가르칠 수 있는 랍비를 길러낼 수 있으면 민족이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으로 뼈아픈 역사의 경험을 통해 학습 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세계 인구 0.2%밖에 안 되는 유대인들이 세계 경제 70%를 장악하고 있고, 노벨상을 22% 휩쓸고 있으며 미국의 모든 언론과 영화, 포춘 500대 기업을 거의 쥐락펴락한다는 이야기는 신물나게 들었습니다. 배움이라는 것이 모든 민족의 뼛속에 DNA로 아예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의 작은 학교에서 시작한 교육이 2천 년의 세월 동안 흩어져 있는 모든 유대인의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먹구름 아래 환경이 로마 군인들에게 포위당한 예루살렘보다 낫다고 볼 수 없습니다. 칼과 창으로 살육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장치들로 우리를 교묘히 길들여 소비하는 대중으로 만드는, 진짜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막는 캄캄한 세상입니다.손 놓은 채 10년 후를 맞을 수 없습니다. 10명이 될지, 100명이 될지 모르지만 서로 연대하면 분명히 승리할 것이라 믿습니다. 독일 꼬마 펠릭스핑크바이너가 말합니다. “잊지 마세요. 모기 한 마리는 코뿔소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 모기는 코뿔소의 길을 바꿀 수 있어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5

랍비와 황제의 밀약(1)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1차 유대-로마 전쟁을 꼽습니다. AD 66∼70년 벌어진 끔찍한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인구가 80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리스인과 유대소송에서 승리한 그리스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는데도 로마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유대민심이 흔들리는 와중에 로마 총독 폴로루스가 성전에서 17달란트 금을 몰수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성전 모독 행위에 분노한 유대인들은 로마 수비대를 급습해 병사들을 살해합니다. 네로 황제는 유대를 공격하라고 명령합니다.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완강한 저항 때문에 수도 예루살렘만은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장군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주민들이 굶주려 항복하기를 기다립니다. 2백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몰살당한 상태입니다. 온 나라는 피로 물들었고 성벽 내부는 굶주림과 질병, 끝없이 발생하는 아사자로 항복하자는 측과 끝까지 저항하자는 측으로 나뉩니다.예루살렘 지혜자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 민족이 살아남을 길은 협상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전염병에 걸린 시신이라고 기지를 발휘해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막사로 찾아갑니다. 면담은 흔쾌히 이뤄집니다.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사령관의 눈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장군에게 로마 황제에게만 표하는 존경을 드립니다.” 당황한 장군이 손사래를 칩니다. “황제를 모독하는 그런 발언은 삼가시오.” 벤 자카이는 말합니다. “아니오. 당신은 반드시 로마의 황제가 될 것입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주위를 살핍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둡시다. 나를 찾아온 목적이나 말해 보시오.”“장군. 나에게는 작은 소원 한 가지가 있소.” “무엇이오?” “예루살렘은 궤멸 직전의 상황이오. 우리는 항복하고 성문을 열어 투항할 것이오. 그 대가로 작은 부탁이 하나 있소이다. 야브네 거리만은 파괴하지 말아 주시오. 방 한 칸의 교실이라도 좋으니 조그만 학교 하나만 그곳에 지어 주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작은 학교만은 없애지 말기를 부탁하오” “그 정도는 충분히 들어줄 수 있소.”대화를 나누는 도중 로마에서 파견한 전령이 헐레벌떡 막사로 뛰어들어옵니다. “황제가 돌아가셨습니다. 원로원에서 장군님을 차기 황제로 선출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랍비의 통찰에 경의를 표하고 엄명을 내리지요. “작은 학교는 절대로 없애지 마라”(내일 편지에 계속)/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2019-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