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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미학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등록일 2019-10-14 20:17 게재일 2019-10-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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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의 진정한 별. 표도르 차이코프스키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쓴 만년의 걸작은 교향곡 6번 ‘비창’입니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며 만족했습니다. 낭만주의 교향곡 중에 작품성이 가장 탁월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원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에는 표제가 붙지 않지만, 아끼던 동생 모데스트 차이코프스키의 제안으로 ‘비창’이라는 표제를 악보에 적어 넣었다고 하지요.

이 작품을 첫 연주한 지 9일 만에 차이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욱 불멸의 명성을 얻습니다. 음악 전체에는 비통함의 감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연주의 하이라이트 4악장은 울부짖는 아다지오의 비통한 현악으로 시작하지요. 투티의 포르티시모로 고조한 뒤 피아노시모로 툭 떨어집니다. 서서히 하강하는 파곳의 독주를 거쳐 애절하기 이를 데 없는 안단테 2주제가 등장합니다. 2주제는 탐탐(징)이 공허하게 울리며 시작하고 금관이 절망의 소리를 내며 코다로 들어갑니다. 피치카토의 쓸쓸함과 더불어 스러지는 종결부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인생이 느낄 수 있는 절망과 슬픔을 음악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묘사한 걸작입니다. 슬픔이 가득할 때 차이코프스키를 들으면 그대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은, 그의 음악이 우리 마음을 다독여주기 때문이지요. 그 상처들을 속속들이 어루만져 주는 힘일 것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몸에 좋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력이 키워지는 것은 바로 깊은 슬픔의 체험을 통해서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말입니다.

삶은 빛과 그림자의 연속입니다. 그림자를 거부하고 밀쳐내려 하면 할수록 우리 삶은 더 피곤하고 공허할 수 있습니다. 슬픔 속에 감춰진 연금술의 마법 같은 요소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슬픔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껴안아 삶의 보약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난이도가 높지만 궁극적 삶의 지혜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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