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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의 이름은

작가들은 때로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클북에서 작년 ‘내 꿈은 퇴사다’라는 책을 출간할 때, 저자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으로 책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표를 품고 다니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묘사해 대만에 수출 계약을 하는 등 호평을 받은 책입니다.20세기 초 스위스에 한 유명 작가가 활동했습니다. 쓰는 책마다 최고의 찬사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전성기에 이른 그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카를 융의 제자 랑에게 심리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가 내린 처방은 이렇습니다. ‘스스로를 벗어나, 자신을 관조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라.’조언을 따르기 위해 작가는 새로운 이름을 하나 지었습니다. 에밀 싱클레어(Emil Sinclair). 지금 내가 쓴 작품이 작품 자체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명성 덕분에 내용과 무관하게 팔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요. 그래서 새로운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 책을 쓰기로 결정합니다. 1919년, 그가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놀랍게도 자신의 전작(前作)을 모두 뛰어넘습니다. 이 작가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 그가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 발표한 작품은 그 유명한 ‘데미안’입니다.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소설가 중 최고의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스티븐 킹입니다. 비평가들은 스티븐 킹이 지나치게 다작(多作)을 한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에 발끈한 스티븐 킹이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자 비평가들은 열광합니다. 스티븐 킹을 뛰어넘는 신인 등장! 이런 표현을 쓰면서 말이지요.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스티븐 킹은 비평가들을 골려주었습니다.이름이 갖는 의미와 무게가 있습니다. 작가들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새 이름으로 나를 다시금 새롭게 바라보며 새 출발 하는 것은 비단 작가들만의 특권이 아니겠지요?/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30

새벽마다 맨발 걷기를 실천하는 분들이 주위에 있습니다. 이들은 맨발 걷기의 유익에 대해, 함께 맨발 걷기를 하시는 분들에 대해 특별한 감회를 말합니다. 저는 아직은 겁이 나서 맨발 걷기는 도전하지 못하지만 매일 꾸준히 걸으려 노력합니다. 목표는 하루 2만보.하루 2만보를 걸으려면 여러 번 시간을 쪼개야 합니다. 일정이 들쭉날쭉한 작가의 특성상 저는 유연하게 시간을 만들려 애씁니다. 기상 직후 6천보, 점심 식사 후 4천보, 밤에 1만 보를 걷기도 하고 아침 일정이 여유 있는 날은 아침에 1만5천보 정도 걷고 남은 일과 중 5천보를 채우기도 합니다. 목표를 높게 잡으니 평균 2만 4천보 이상은 늘 걷습니다.주말에는 장거리 원정을 다니곤 합니다.올해 포항에서 시작해 강원도 거진 최북단까지 걸어서 한 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물론 구간을 쪼개 도전해 보는 거지요. 한 번 출정하면 25∼30㎞를 걷습니다. 이런 날은 하루 3만보 넘게 휴대전화에 찍힙니다.꾸준히 운동할 때 제일 큰 복병은 부상입니다. 발바닥이 버텨줘야 하는데, 지난주쯤 물집이 잡혔습니다. 발바닥과 양말, 운동화 사이 미세한 틈이 문제였습니다. 평소 신던 양말 대신 스포츠 양말을 신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틈이 발생했던 모양입니다. 오백원 동전 만한 물집이 잡혀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하루 2만보 목표는 깨지 않으려 불붙는 발바닥을 참으며 걷고 있습니다.작은 틈이 상처를 줍니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틈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적(敵)들은 아주 미세한 틈을 신기하게 파고듭니다. 삶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걷기 고수들은 맨발 걷기를 실천하는 것일까요? 양말도 신발도 훌훌 벗어 던지고 지면에 발바닥을 밀착합니다.상처받을 두려움 없이 성큼성큼 내딛는 그들이 존경스럽습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9

인페르노와 바이러스

지난 2016년,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영화 ‘인페르노’가 개봉된 적이 있습니다. 인페르노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이탈리아 원어입니다.이 작품에는 보티첼리의 그림 ‘지옥의 지도’가 등장합니다. 단테가 글로 묘사한 지옥 모습을 보티첼리는 회화의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지옥은 총 9개의 거대한 고리 즉, 9환(環)으로서 지구 아래쪽 지하로 내려가면서 점점 깊어지는 구조를 갖습니다. 지구 중심부에 가장 깊은 고리인 아홉 번째 환이 있고 그곳에는 타락한 천사 루키페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9번 고리까지 내려가는 과정은 음울하고 드라마틱합니다.지옥의 입구에는 이런 유명한 귀절이 적혀 있습니다.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중략)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편 3곡 1-9행)영화 ‘인페르노’에는 바이러스가 등장합니다. 세계 인구 절반을 줄이겠다고 협박하며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거대한 음모와 싸우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요즘 현실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장면입니다.굳이 ‘신곡’을 읽으며 지옥을 여행하지 않아도 요즘 세상은 지옥의 모델 하우스 비슷한 느낌입니다. 본의 아니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모두가 고통을 받지만 약자와 고령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바이러스와의 전투를 벌이는 중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 작은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추게 하고 인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인류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지혜를 발휘해 고비를 넘겨왔습니다. 정신세계 또한 한고비를 넘길 때마다 더 성숙해지고 깊어지는 학습을 반복했음을 믿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6

단테의 ‘신곡’ 이야기

고전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마크 트웨인의 명언이 떠오릅니다.“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책.” 이 정의에 가장 어울리는 책이 단테의 ‘신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승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 삼아 지옥에서 출발, 연옥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사후 세계 여행담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지요.14세기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는 중세의 끝 무렵에 다다라서 종교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으며 정치적으로도 파벌싸움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단테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피렌체의 최고 지도자 위치에까지 올랐지만, 정적들에 의해 축출당해 국외 망명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신곡’은 3이라는 숫자를 반복합니다. 모든 서술은 한 연이 3행짜리 시구로 이어집니다. 지옥 33곡, 연옥 33곡, 천국 33곡에 서문 1곡 해서 총 100곡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1행이 모두 11개의 음절로 이뤄진 정형시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한 행은 2개 혹은 1개의 리드미컬한 각운을 띠고 있어서 이탈리아 원어를 낭독하는 유튜브를 찾아보면 아름다운 음악 같은 운율로 시종 리듬감 넘치는 전개가 펼쳐집니다.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에서 단테 ‘신곡’을 검색하면 관련 도서가 무려 1만 2천 종류가 뜹니다.인류 역사상 한 지성이 작품 한 편으로 후대에 이토록 지대한 영감과 영향을 끼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뮈엘 베케트는 인생 말년에 은둔 생활을 하며 오직 한 권의 책만 반복해 읽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그것이 바로 ‘신곡’입니다.희망이 사라진 대한민국을 헬(hell) 조선이라 부르는 청년들이 많습니다.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20대 청년의 94%, 30대 93%가 이런 진단에 동의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암울한 시대, 단테의 ‘신곡’ 읽기에 한 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5

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폴란드태생 유대인 평론가입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귄터 그라스가 신작 ‘광야’를 발표했을 때, 독일 슈피겔지는 그 책을 쓰레기라며 반으로 찢는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모습을 합성해 표지에 실은 적도 있습니다.그의 자서전 ‘Mein Leben(나의 인생)’을 필사하고 토론하는 모임을 진행 중입니다. 물론 코로나19 때문에 화상으로 비대면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만.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성장합니다. 우리로 치면 대학입시에 해당하는 아비투어(Abitur)를 치른 후 어느 날 아침, 집으로 불쑥 찾아온 관리에 의해 제대로 짐을 챙기지도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베를린에서 추방당합니다. 그때 소지품은 손수건 한 장, 작은 가방, 발자크의 소설 한 권.아직 게토가 만들어지거나,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기 전 상태였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폴란드로 정처 없이 떠나는 기차 안에서 재미없는 발자크 책을 읽으며 무덤덤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무일푼에 손수건 한 장, 책 한 권 들고 낯선 국경을 넘지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신이 보이지 않는 짐을 들고 왔음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어’였습니다. 베를린에서 탐닉하며 빠져들었던 독일 문학, 독일 연극 등이 자신에게 선물해 준 언어라는 선물을 두뇌에 한가득 저장해 보이지 않는 짐으로 운반해 온 것을 깨닫지요. 보이지 않는 이 재산은 결국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쓸모있는 유대인으로 만들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삶도 언제 어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가득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구축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는 새벽입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4

중산층의 기준

며칠 전 일입니다. 생각학교 ASK 강의 준비를 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의 중산층 기준과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 기준을 대비한 내용이었습니다. 너무도 극명한 차이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직장인들이 생각하는 한국 중산층 기준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부채 없이 30평 이상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가? 월 현금 소득 500만원 이상인가? 2천cc급 이상 중형차를 보유했나? 통장 예금 잔고가 1억원 이상인가? 연 1회 이상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나? 어떠신가요? 이 기준에 모두 통과하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십니까?미국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 기준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둘째 사회적 약자를 도울 것, 셋째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 정신, 넷째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는가?유럽의 기준을 보겠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제시한 영국 중산층 기준은 이렇습니다. 첫째 페어플레이를 할 것, 둘째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셋째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저항할 것, 넷째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하게 대처할 것, 다섯째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지킬 것.조르주 퐁피두 19대 대통령이 제시한 프랑스 중산층 기준입니다. 첫째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함, 둘째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을 것, 셋째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함, 넷째 남들과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할 줄 아는 능력, 다섯째 사회적 공분에 의연히 참여할 것, 여섯째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조선 중기 학자 김정국은 이미 오래전 말했습니다.“멋진 삶은 책 한 묶음, 거문고 한 벌,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말 하고 사는 것이다.”눈에 보이는 번지르르함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우리 의식이 바뀌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3

고도(Godot)를 기다리는 사람들

1957년 11월 19일, 캘리포니아 산 퀜틴 교도소에는 수감자 2천400명이 연극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4년 만에 교도소에서 연극을 공연하는 일대의 사건이라, 죄수들은 모두 흥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교도소 측이 선택한 연극은 ‘고도를 기다리며’였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자 배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었지요. 이 작품은 유럽에서 이미 개봉한 상태였는데 평론가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습니다. 파리, 런던, 뉴욕의 지적인 관객들마저 혼란스러워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죄수들은 이 작품에 열광했습니다. ‘산 퀜틴 뉴스’ 편집자는 이렇게 썼습니다.“죄수들은 무게가 총 642파운드인 근육질 마차가 무대에 등장하고, 여자들이 나오고 우스갯거리가 진행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것이 전혀 일어나지 않자, 죄수들은 심하게 분노하며 폭동을 일으킬지 몰랐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연극에 온통 마음을 뺏겼으며 모두 깊은 감동을 하였다.”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두 주인공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주고받으며 고도를 기다린다는 내용입니다. 끝내 고도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도 ‘가 누구냐는 질문에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으면 극에 분명히 썼을 거요!”라고 대답했습니다.주인공이 기다렸던 고도는 과연 누구일까요? 죄수들은 석방과 자유라고 즉각 이해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속박을 풀어줄 그 무엇을 고도에 투영합니다. 신(神)일수도 화폐일 수도,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습니다.사람들의 이런 약한 마음을 이용해 얽어매는 사악한 집단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사이비 집단의 실체도 보았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 ‘달콤한 미혹’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캐물으며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22

마법사의 폭풍

1998년 5월, 멕시코시티. 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한 나이 든 프로 레슬러의 은퇴식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멕시코는 프로 레슬링이 큰 유행이었는데 이번에 은퇴하는 선수를 보며 사람들은 감동과 벅찬 사랑을 느꼈습니다.레슬러는 ‘마법사의 폭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1975년 프로 레슬링에 입문해 항상 황금색 가면을 쓰고 경기해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화려한 분장 뿐 아니라 현란한 개인기는 관중을 압도했으며, 위기의 순간마다 꺾이지 않고 다시 일어나 상대 선수를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23년 동안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준 ‘마법사의 폭풍’ 은 오십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은 현역 레슬러로 활동하기에는 체력과 기술이 한계에 도달했던 거지요. 그는 끝까지 자신을 아껴 준 팬들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마법사의 폭풍’이 링 위에 오르자 관중은 모두 일어서서 박수로 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표했습니다. 링 한 가운데 선 마법사의 폭풍은 관중의 박수가 잦아들자 놀라운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23년 동안 한 번도 벗지 않았던 자신의 황금가면을 천천히 벗기 시작한 겁니다. 관중들은 그가 준비한 선물에 충격을 받고 숨을 죽였습니다.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작은 가톨릭교회 신부 세르지오구티에레스입니다. 프로 레슬링을 하는 동안 저는 고아원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 있었고,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그의 말이 끝나자, 한동안 관중의 정적이 이어지더니 더욱더 뜨거운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세르지오는 23년 동안 가난한 신부라는 신분을 감춘 채 레슬링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3천여 명의 고아들을 돌봐 온 것입니다.나는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멈추어 생각해 보는 새벽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9

어떤 안경을 쓸까?

여기 긴 두 문장이 있습니다. 잘 비교해 보세요.미움의 안경을 쓰고 보면 똑똑한 사람은 잘난 체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착한 사람은 어수룩한 사람으로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활력 있는 사람은 까부는 사람으로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예의 바른 사람은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듬직한 사람은 미련하게 보입니다.반면, 사랑의 안경을 쓰고 보면 잘난 체하는 사람도 참 똑똑해 보이고, 어수룩한 사람도 참 착해 보이고, 소극적인 사람도 참 얌전해 보이고, 까부는 사람도 참 활기 있어 보이고, 실없는 사람도 참 밝아 보이고, 얄미운 사람도 참 싹싹해 보이고, 미련한 사람도 참 든든하게 보인답니다.한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는 큰 싸움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손자 역시 자신에게도 이 싸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추장은 궁금해하는 손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얘야, 우리 모두의 속에서 이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늑대 간의 싸움이지. 한 마리는 악한 늑대로서 그놈이 가진 것은 화, 질투, 슬픔, 후회, 탐욕, 거만, 자기연민, 죄의식, 회한, 열등감, 거짓, 자만심, 우월감 그리고 이기심이란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인데 그가 가진 것들은 기쁨, 평안, 사랑, 소망, 인내심, 평온함, 겸손, 친절, 동정심, 아량, 진실 그리고 믿음이란다.”손자가 추장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둘이 싸우면 어떤 늑대가 이길까요?” 추장은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우리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기기 마련이란다.”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두 개의 안경과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어떤 안경을 쓰고,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는 바로 내가 선택하는 법입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통해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을 가꾸어가는 멋진 새벽이시길./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8

가장 값진 보물은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 틈에 남루한 랍비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배는 순풍에 돛 달고 목적지를 향해 기분 좋게 항해하고 있었지요. 손님들은 모두 자기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내 소유의 토지는 얼마나 넓은가 육안으로는 그 끝을 누구도 볼 수 없지요.” 그러자 다른 사람이 지지 않고 한 마디 덧붙입니다. “우리 저택에서는 늘 파티가 열리는데 한 번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도 모두 황금으로 되어 있소.”모두 껄껄 웃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있을 때 가난한 랍비가 끼어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부자는 바로 나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내가 가진 것을 당신들에게 보여줄 수가 없어 안타깝소.”부자들은 랍비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비웃습니다. “랍비여, 당신 머리가 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요.” 모두 그를 보며 비쭉거렸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합니다. “두고 보시오. 내 말이 맞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거요.”그때 어디선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해적이다!” 사람들은 허둥지둥 자기 보물들을 간수하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결국 그들은 자랑하던 보물을 해적들에게 송두리째 빼앗기고 겨우 목숨만 구한 채 항구에 도착했습니다.가난한 랍비는 마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같은 배에 탔던 부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파산해 거지처럼 살고 있었지요. 그들은 랍비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랍비님의 말이 옳았어요. 빼앗길 염려도 없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식이야말로 가장 값진 보물임이 틀림없어요.”지혜로운 사람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정성껏 돌봅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지식과 교양은 가장 값진 보물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7

깨진 꽃병의 비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지방의 작은 마을에 조촐한 파티가 열렸습니다.한 노부부의 결혼 50주년 기념 파티입니다. 부부는 한 마을에서 태어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왔습니다.마을 사람들은 그동안 노부부가 한 번도 큰소리치면서 싸우는 것을 본 일도, 술자리에서나 빨래터에서 부부가 서로를 헐뜯는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습니다. 노부부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부부였습니다.파티가 열린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실 탁자 위에 깨진 꽃병 하나가 놓여 있었지요. 파티와 어울리지 않는 흉물스러운 꽃병이어서 몇몇 부인들이 치우려 했지만 할머니는 한사코 만류했습니다.이들 노부부가 손님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거실로 나왔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대단치도 않은 일로 많이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벌써 50년이나 되었군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남편과 제가 이때까지 아무 탈 없이 결혼생활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 탁자 위 깨진 꽃병 때문이랍니다. 남편에게 실망을 느낄 때나 여러 가지 고난으로 괴로울 때 저 꽃병이 나를 지켜주었답니다. 51년 전 늠름한 청년이었던 남편이 청혼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던 지 감격한 나머지 이리 저리 집안을 춤추듯 돌아다니다 탁자 위 꽃병을 깨뜨리고 말았어요. 저 깨진 꽃병은 그 날 제가 경험한 감동 바로 그 자체입니다. 그날의 감사한 마음과 감동을 늘 기억하기 위해 꽃병을 저기 50년 동안 놓아 두었던 겁니다.”흉물스러운 꽃병은 이제 사람들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병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네 상처(scar)를 별(star)로 만들어라.” 서양의 유명한 격언입니다.누구에게나 있는 아픈 상처는 우리 삶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고 빛나는 존재로 탈바꿈시켜 별처럼 반짝일 수도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6

15㎝의 위력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척추 마비 장애인이 1천m 암벽에 도전했습니다.29세 마크 웰먼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엘카피딩암벽에 도전해 성공했습니다. 그의 등반은 친구가 암벽에 로프를 걸어주면 팔의 힘만으로 기어오르는 방식으로 여러 날에 걸쳐 이어졌습니다.그는 한 번에 겨우 15㎝만 몸을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무려 9일에 걸친 이 등반에서 그는 39℃가 넘는 폭염 속에서 약 7천 번 로프를 끌어당기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등정에 성공했지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한 번에 15㎝만 오르면 됩니다.”누구나 표현하지 않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꿈을 품고 살아갑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꿈에 관해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이 있는 것을 봅니다. 첫째 유형은 꿈을 꾸는 사람이고 둘째 유형은 꿈을 이루는 사람입니다.꿈을 꾸는 사람은 그저 꿈만 꾸는 사람입니다. 몽상가지요. 그들은 이런 식입니다. “5개 국어를 하고 싶다. 내가 5년만 더 젊었어도 가능할 텐데.” 그런 사람은 10년 후에 만나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을 향해 오늘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마크 웰먼이 한 번에 15cm씩 몸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꿈틀거리며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 목표라도 조금씩 잘게 쪼개고 꾸준히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는 그 목표가 자리를 내어주게 마련입니다.샘물을 길어 내면 다음날 새롭고 신선한 물이 솟습니다. 아까워 쓰지 않으면 결국 샘물은 메말라버립니다.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쏟을 때 샘물처럼 다른 에너지가 또 솟구치게 마련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15cm 위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그대의 숭고한 노력에 뜨거운 박수를 드립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5

플라시보 효과 vs 노시보 효과

일정기간 한 집단의 환자들에게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을 투약하고 다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기존의 보통 약’을 투약했습니다. 실험 후 환자의 위장 상태를 검사했습니다.‘새로 개발한 특별 약’을 투약한 집단의 위장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았습니다. 문제는 새로 개발한 특별한 약이라는 것이 단순한 영양제였고 기존의 보통 약이란 것도 동일한 영양제였다고 합니다.두 집단이 서로 다른 효과를 낸 것은 환자의 심리적 상태, 즉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던 거죠. 이것을 의학계에서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 부릅니다. 대개 30% 확률로 이런 결과가 나타났습니다.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는 것도 있습니다.노시보란 ‘해를 끼친다’는 의미의 라틴어입니다. 혈액응고방지목적으로 아스피린을 처방한 두 그룹에게는 위장관 부작용이 있다고 경고해 주었고 나머지 한 그룹에게는 주의사항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세 그룹의 위 내시경 결과는 차이가 없었으나 부작용 주의를 들은 그룹은 듣지 않은 그룹보다 3배 이상 통증과 부작용을 호소했습니다.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곰 쓸개는 크기가 손바닥 1/5 정도밖에 안 되지만 우리에 30분 정도 가두어 놓고 약을 올리면 쓸개의 크기가 손바닥만큼 커진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곰을 자극하면 즉시 몸이 반응하는 겁니다.사람은 나이 일곱 살 이전에 어떤 태도로 세상을 살아갈지 거의 프로그래밍이 완료된다고 합니다. 유명한 수도회에서는 일곱 살 이전에 아이를 자신들에게 맡기면 성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단언하기까지 합니다.일곱 살 이전에 부정적인 마음 상태로 프로그래밍 받은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자각하고 서로를 일깨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합니다. 긍정의 마음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2

착각은 자유

한 여인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탑승할 시간이 많아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항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와 비닐로 포장된 쿠키 한 봉지를 샀습니다. 서점에서 잡지 한 권도 샀지요. 공항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잡지책을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옆 자리에 있던 신사가 옆 좌석에 놓아둔 쿠키 비닐 포장을 뜯고 덥석 하나를 꺼내 먹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인은 무척 놀랐지만 태연하게 자신도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가 상황을 깨닫고 무례한 행동을 그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그런데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끗 여인을 한 번 바라볼 뿐, 계속 쿠키를 먹는 것 아닙니까?그냥 물러나면 비행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남자가 물러설 때까지 여인은 꿋꿋이 쿠키를 먹었습니다. 남자도 말없이 커피를 마시며 쿠키를 먹습니다. 결국, 쿠키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쿠키를 절반으로 쪼개 한쪽을 여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기 입에 털어 넣었습니다.여인은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고 여인은 비행기에 탑승해 좌석벨트를 맸습니다. 남자의 뻔뻔한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이륙 후 립스틱을 꺼내려고 핸드백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상상치도 못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카페에서 샀던 쿠키가 봉지도 뜯지 않은 채 들어 있었던 겁니다. 대합실에서 정작 뻔뻔스러운 사람은 본인이었던 거지요.실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명한 경영학 책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틀림없이 진실이 믿는 것이 오류일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편견을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경청의 기본적인 태도는 열린 마음으로 내 아집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상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1

박수를 치기 위해

지미 듀란테(Jimmy Durante: 1893-1980)가 참전 용사들을 위한 쇼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바쁜 일정 때문에 단 몇 분밖에 출연할 수 없다고 쇼 기획자에게 말했습니다.쇼 기획자는 당대 미국 최고 연예인인 지미 듀란테를 무대에 세우기만 해도 대성공이라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간 지미 듀란테는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수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지미 듀란테의 열정은 더했습니다.쇼 기획자는 왜 그가 마음을 바꿔 그렇게 오랫동안 무대에 서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30분이 지나서야 지미 듀란테가 무대에서 내려왔습니다.쇼 기획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몇 분간만 무대에 설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지미 듀란테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그럴 계획이었지만 내가 계속 쇼를 한 데는 이유가 있소. 저기 맨 앞줄에 앉은 사람들을 보시오.”쇼 기획자는 무대 맨 앞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참전 용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둘 다 전쟁에서 팔 하나씩을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오른쪽 팔이 없었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 팔이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채 즐거운 표정으로 한쪽 손바닥들을 서로 부딪치며 열심히 손뼉을 치고 있었습니다.내게 부족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결핍을 핑계로 자기 합리화하며 현실과 세상을 탓하기 바쁩니다. 손뼉을 치는데 반드시 두 손이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가진 것과 네가 가진 것이 함께 어울릴 때 우리에게는 즐거움이 있고 박수 소리를 크게 울릴 수 있습니다.새벽은 자신을 돌보기 좋은 고요한 시간입니다. 온종일 세파에 휘둘려 살다 보면 어느새 내 결핍에 대한 원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고요한 새벽, 맑은 눈으로 내가 가진 좋은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삶은 어떨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10

젠틀맨의 우정

수학자 기쿠치 다이로쿠(菊池大麓: 1855∼1917)는 일본에 근대수학을 도입했고 도쿄대 총장, 문부대신, 교토대 총장, 이화학연구소의 초대 소장 등을 역임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했을 때 일입니다.기쿠치는 옥스퍼드대학의 유일한 동양인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시험이 있을 때마다 항상 1등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영국학생들은 크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영국학생 브라운은 언제나 기쿠치를 따라잡지 못하고 2등만 차지했습니다.학기말 시험을 얼마 앞두고 기쿠치가 독감을 앓게 되어 학교를 며칠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학교에 퍼지자 영국 학생들은 브라운이 1등 할 기회가 왔다며 몹시 흥분했습니다.어떤 친구는 다가와 “브라운 잘해, 그 원숭이 같은 작은 녀석을 보기 좋게 꺾어주라고!” 하고 격려까지 했습니다. 기말시험을 치르는 날, 기쿠치는 핼쑥한 얼굴로 학교에 나와 시험을 치렀습니다. 며칠 뒤 학교 게시판에 성적이 발표되었습니다.게시판 앞에 와글거리며 모여 있는 학생들 틈에서 누군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런, 또 기쿠치가 1등이야!” 학생들은 모두 한숨을 쉬었습니다.기쿠치가 게시판 근처로 걸어와 서툰 영어로 말했습니다. “내가 병석에 있으면서도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브라운 덕분입니다. 그는 매일 내 방에 찾아와 교수님이 하신 강의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모두 숙연해졌습니다. 브라운은 쉬 뒤집어질 수 있는 1등 자리보다는 2등 자리에 머물지라도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젠틀맨 정신을 발휘한 거지요.대한민국 중산층 기준은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현금 보유액수로 정해진다고 하지요? 영국인들은 ‘명예롭고 정정당당한 삶’이 중산층 잣대라고 합니다. 한 수 배우는 새벽입니다. /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9

마음의 장벽 깨뜨리기

1954년까지는 육상선수들이 1마일(약 1.6km)을 4분 내에 주파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온갖 연구를 통해 4분 장벽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깰 수 없음을 증명했습니다. 오랫동안 이 믿음은 깨지지 않았습니다.어느 날 한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장벽을 깨뜨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훈련했고, 마침내 그 장벽을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스포츠 역사에 길이 남을 그의 이름은 로저 베니스터입니다. 영국의 아마추어 육상 선수이자 옥스퍼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의대생이었습니다.그는 의대생답게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최대의 고통과 최적화된 마지막 질주(스퍼트)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단거리 경기나 마라톤과는 다르게 1마일 경주를 위해서는 스피드와 스태미너를 잘 조절해야 했습니다. 2년 동안의 도전 끝에 1954년 5월 6일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하려면 트랙을 네 번 60초 안에 돌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돌다가 심장이 터질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마침내 네 바퀴 완주해냈고, 그의 기록은 3분 59초 4였습니다.4분 장벽이 깨진 후, 불과 6주 후 한 명이 마의 4분을 깼습니다. 최초로 마의 장벽이 깨진 지 체 1년이 지나지 않아 37명의 선수가 그 장벽을 넘어섰습니다.놀랍지 않습니까? 통계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수백 년 동안 1마일을 4분 안에 주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 10년 만에 지구촌 곳곳에서 300명도 넘는 사람이 그 일을 해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장벽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무하마드 알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챔피언은 경기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챔피언은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소망, 꿈, 이상에 의해 만들어진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8

돌멩이의 가치

스승이 한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돌멩이를 시장에 가서 팔려는 척하되 팔지는 마라.” 제자는 시장 어귀에 하얀 보자기를 펴 놓고 돌멩이를 그럴 듯하게 전시했습니다. 돌을 팔겠다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양을 보며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불쌍하게 여긴 한 노인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오천 원 줄 테니 돌멩이를 팔고 저녁이나 먹고 들어가구려.” 제자는 팔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노인은 필시 사연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만 원을 줄 테니 팔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묵묵히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점차 그 수가 늘어나 급기야 서로 가까이서 보겠다며 밀고 당기고 아우성이었습니다. 하얀 보자기 위에 놓인 돌멩이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격 흥정에 사람들이 끼어듭니다.“저 돌을 달여 먹으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복이 굴러들어 온대.” “모양을 보니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보이네.” “어떤 물에라도 저 돌을 넣고 하루를 지나면 정수 능력이 뛰어나고 육각형 물이 된대.” 가격이 점차 높아졌지만, 제자는 조금도 팔 의향이 없었습니다. 안달이 난 사람들이 가격을 계속 올렸습니다.“오만 원” “팔만 원” “이십만 원” “오십만 원” 사람들은 돌멩이가 신비로 가득 차 있다고 믿으며 서로 돌을 사려 안간힘을 다했습니다.처음으로 다가온 노인이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고집을 부리지 말고 백만 원에 파시오. 그것이 내 마지막 소원이오.” 다른 사람들은 한탄하며 물러섰습니다. 젊은이는 주섬주섬 돌을 보자기에 싸서 돌아갔습니다.돌아온 그에게 스승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정하는 가치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겠느냐?”헛된 가치에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캐묻는 자세가 필요합니다./조신영 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5

플라시도 도밍고의 성공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더불어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는 오페라의 대중화에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1981년 대중 가수인 존 덴버(John Denver)와 함께 ‘퍼햅스 러브 (Perhaps Love)’를 연주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결과입니다.플라시도 도밍고가 젊은 시절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무렵의 일입니다. 소프라노마르타와 오랫동안 공연을 하고 싶었던 그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거의 3년을 머물며 오페라 공연을 했습니다. 파우스트 공연이 있던 날, 도밍고는 마르타를 향해 “당신을 사랑해… 당신을 사랑해…” 노래하는 장면에서 그만 목소리가 갈라지는 등 몇 가지 자그마한 실수를 범했습니다.하지만, 다음날 신문에는 온통 그의 공연과 성악가로서의 위대함을 칭찬하는 기사가 일색이었습니다.도밍고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공연을 다 마친 날 마르타는 도밍고에게 다가와 이렇게 충고해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노래를 알아듣기 어려워요. 당신의 발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당황한 표정을 짓는 도밍고를 똑바로 보며 마르타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칭찬하니 기분 좋아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고쳐야 할 부분을 말해 드린 겁니다.”도밍고는 우쭐했던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텅 빈 극장에 남아 발음을 거듭 고쳐가며 연습했습니다. 2년 후에는 정확한 호흡법으로 풍부한 성량과 안정적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그는 발음상의 문제를 고쳤기 때문에 오늘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요즘은 누구나 지적받기를 싫어합니다. 그저 달콤한 위로와 인정만 얻으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마르타처럼 내 부족함을 따끔하게 지적해 줄 수 있는 진정한 벗이 필요한 때입니다./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4

홀로 있을 때

어느 날 셰익스피어가 친구의 집에 방문했지만, 그는 집에 없었습니다. 하인은 따뜻한 홍차와 간단하게 읽을 책 한 권을 건네고 부엌으로 되돌아갔습니다.아무리 기다려도 친구가 오지 않자 무료했던 셰익스피어는 차라도 한 잔 더 마실 생각이었습니다. 주방으로 가던 중에 흥얼흥얼 거리는 콧노래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부엌에서는 아까 자신을 대접했던 하인이 양탄자를 뒤집어 바닥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누가 일부러 들춰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더러운지 깨끗한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셰익스피어는 하인이 콧노래를 부르며 양탄자를 뒤집어 닦던 그 순간을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평생 기억했다고 합니다. 이후로 셰익스피어는 누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 하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혼자 있을 때도 누가 지켜볼 때와 다름 없이 행동에 아무 변화가 없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무슨 일에서나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입니다.”중용(中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 삼가고(戒愼乎 其所不睹), 들리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두려워한다(恐懼乎 其所不聞).” 이런 경지에 오른 상태를 ‘신독(愼獨)’이라 표현합니다. 남의 시선이 머무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삼간다는 의미지요. 송사·채원정전(宋史·蔡元定傳)에서는 ‘신독’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밤길 홀로 걸을 때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잠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 엄격한 자기관리를 뜻하는 ‘행불귀영(行不愧影)’이라는 성어가 여기서 비롯했습니다.시인 윤동주는 노래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진짜 ‘나’ 아닐까요?/인문고전독서포럼 대표

2020-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