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다. 올해는 팬데믹에서 엔데믹의 시대가 열리며 일상회복을 꿈꿨던 한 해였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뚫고 나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래서였을까. 터널 앞 눈부심에 주춤하듯이 올해는 나아가려는 힘과 머무르려는 힘이 팽팽히 맞섰다. 평범했던 일상이 ‘뉴노멀’이라는 이름 앞에 변모했고, 새로운 변화가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체했다. 일시적이었던 재택근무가 엔데믹시대에도 혼용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기술혁신으로 등장했던 메타버스와 AR 등은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세상을 구축하며 승승장구 중이다.그 중 가장 큰 변화는 ‘관계’로 꼽힌다. 대면 중심의 관계가 비대면으로 이어지면서 SNS(소셜미디어)세상의 관계로, 직장의 사회적 관계에서 가족 중심의 관계로 확장·변모했다. 가족, 공동체, 쉼, 돌아보기 등의 단어가 유독 회자된 이유이기도 하다. 고즈넉한 풍경을 벗 삼아 불멍, 풀멍, 물멍을 즐기려는 이들로 산과 들, 바다가 붐볐다. 물론 가족 중심 등 소규모 여행이라 차분하게, 조용히 머무른 이들이 많았다.힐링을 위한 촌캉스와 워케이션의 장소로 단연 1위는 어촌마을이다. 바다 풍광의 감성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서핑 등 액티비티를 즐기려는 MZ세대까지 몰리면서 활기를 띠었다. 비대면 맞춤형 취미인 낚시인들도 꾸준히 바다를 찾았다. 단절된 관계의 헛헛함을 ‘훌쩍 떠나는 여행’과 ‘타지에서 1달 살기’ 등과 같은 낯선 체험으로 채우는 시간이기도 했다.자연이 내어주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일상의 불안을 잠재워준다. 파도소리와 바다내음, 수평선 위 반짝거리는 햇볕 등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치유자원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불안에 맞서 다양한 형태로 고군분투했다. 다만 그 사이,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대외적인 상황도 급격하게 변했다.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은 경제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었다. 최근 자본주의 경제의 순환주기인 회복과 성장, 둔화, 침체의 완만한 곡선에 변화가 감지된다. 경기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현상도 뚜렷하다. 감염병 팬데믹이 불황으로 옮아가고, 곧이어 경제 위기로 향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코로나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위기에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대증요법’ 외에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는다. 동시에 뷰카(VUCA)라는 경제 용어도 자주 회자된다.뷰카는 변동성(Volatile),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함(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을 뜻하는 단어로 기업 경영에 쓰는 용어다. 최근에는 세계 경제 상황과 대외적 요인이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크며, 복잡하고 모호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뜻하는 말로 확장된 것이다. 코로나발 경제 위기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비견되며 다양한 분석이 나오지만, 이 또한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워낙 천문학적인 금액이 실물경제에 스며들었고 어떤 형태로든 해소되어야하기 때문이다.뷰카의 시대를 맞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팬데믹도, 경제위기도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올해 가족, 공동체(커뮤니티), 지역(로컬) 등의 화두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위기와 불안 앞에서 사람들은 가족 중심으로 모여 지역의 공동체 안위를 살피며 버텼다는 해석이다. 글로벌 대신 ‘로컬’이란 단어에 먼저 반응하고, 네트워크 중심의 오픈 관계보다는 지인 중심의 커뮤니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정현미 작가
이 지점에서 내년의 화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동안, 자본주의의 특징인 성장과 개발의 논리는 주춤했다. 동력이 부족해진 자본주의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우리나라도 그 과정에 있다. 경제분야의 뷰카는 곧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경기 침체 속에서 실직과 고물가 등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작용해 지금보다 훨씬 팍팍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IMF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은 견고해졌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들도 비슷한 진단을 한다. 결국 우리는 묵묵히 오늘을 살아내며 이 위기를 지나가야한다. 또 다시 힐링이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견고한 연대와 유대를 갖춰야 할 듯하다. 팬데믹 동안 각자 도생의 고군분투 역량을 키웠지만, 단절된 인간은 반복된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바다가 내주는 품과 커뮤니티가 안겨주는 안정감 등 어떤 형태로든 결속감을 키워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관계가 중요하다. 2023년에도 감성여행, 상담예능, 힐링 등의 키워드가 여전히 대세가 될 듯하다. 그리고 그 대세 속에서 바다는 묵묵히 제 역할을 할 것이다. 내년에도 바다에서 희망을 길어보길 바래본다.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