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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생존수영

등록일 2022-07-13 18:22 게재일 2022-07-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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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하며, 물에 떠 있는 생존수영 방법으로 일명 ‘잎새뜨기’. /출처-ISR 라스베거스 LCC

“수도꼭지를 튼다. 그때 아주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투명한 것이 주르르 떨어졌다. 나는 그걸 곰곰이 노려본다. 손으로 건드린다.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물이…. 젤리 같으면 좋겠다. 앗, 몰랑몰랑 쫀득쫀득. 물이 모래알처럼 차르르 쏟아진다. 죽처럼 뚝뚝 떨어진다. 못처럼 쨍그랑 떨어진다. 깜짝 놀라 수도꼭지를 잠근다. 두 손으로 붙잡고 두근두근 돌린다”

어린이 과학동화 ‘물은 예쁘다’의 한 구절이다. 아이들이 물을 경험하며 느낀 점을 표현한 글로, 물의 다채로운 성질들이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으로 펼쳐진다. 초등생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자 물의 또 다른 모습이 표출됐다. 아들에게는 물이 파란색이었나보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는 유난히 물놀이를 좋아했다. 양수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물속에서 편안함과 포근함을 느낀다는 육아서적의 조언대로, 욕조 한가득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하곤 했다. 소리를 지르며 물장구 치고, 또 까르르 웃던 아이는 어느덧 생존수영을 배울 나이가 됐다. 학교에서 잎새뜨기를 배운 첫 날, 아이는 처음으로 물놀이의 공포와 재미를 동시에 느낀 듯 보였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서 에너지를 최소화하며, 구조를 기다리는 잎새뜨기(생존수영의 일종). “엄마, 여름바다는 갑자기 사람을 휩쓸어간데. 그럴 때 허우적거리지 말고 이렇게 누워서 떠 있으면 된대” 이안류(빠른 속도로 해안에서 바다로 흐르는 좁은 해류) 상황에서 생존수영을 배웠는지 아이는 약간의 공포를 상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도 아직 생존수영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지는 않았다.

본격적인 여름이다. 땀을 흘리고, 물놀이가 일상인 계절이다. 계곡과 바다는 물놀이 온 이들로 가득하다. 서핑과 카약, 요트, 윈드서핑 등 레저 활동을 즐기는 이들로 해수욕장은 이미 만원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구명조끼 착용법 등 수상안전에 관한 설명이 이어진다. 각종 리플렛과 안전구호들이 해수욕장 곳곳에서 눈에 띈다. 최근 5년간 어선 해상추락 사망자의 97%, 비어선 해상추락 사망자의 100%가 구명조끼 미착용이라고 한다. 어떤 형태의 물놀이든, 낚시든 ‘안전’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매년 100명 안팎의 소중한 생명이 해양사고로 세상을 등진다. 특히 요즘은 해양레저 활동의 증가로 그 위험도가 더 높아졌다.

해양수산부가 이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올 여름 해양사고 예방 및 방지를 위해 ‘대형사고 예방을 위한 취약선박 안전관리 강화’와 ‘인명피해 유발 안전사고 및 빈발 선박사고 중점관리’, ‘여름철 위험요인(태풍)대비 대응태세 확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중 특히 눈여겨볼 것이 3번째 여름철 위험요인 대비 대응태세로, 찾아가는 해양안전체험시설 운영이다.

해양수산부는 전국 각지에 위치한 물놀이 시설 6곳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해양안전체험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서는 구명조끼착용법과 구명뗏목 작동 및 탑승, 생존수영 등 배울 수 있다. 또 가상현실 체험장과 해양안전 전시관도 함께 설치돼있어 여객선 화재 사고 발생 시 비상탈출 등을 가상현실로 체험해볼 수 있다. 비상 상황 시 구명설비와 구명뗏목 내 설치된 생존용품의 위치와 용도도 알아볼 수 있다.

정현미작가
정현미작가

여름 휴가철 대비 여객선 특별안전점검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얼어붙었던 여행수요가 폭발하면서 여객선을 이용, 섬을 관광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17년 1천690만 명을 육박했던 여객선 이용객은 코로나로 급감하다 최근에 다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안전에 만전을 더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KOMSA)은 연안여객선 특별안전점검에 나서고 있다. 기관과 항해설비 등을 살펴보고 태풍발생 상황 등에 대비한다.

사실 여객선은 우리에게 이중적인 함의로 다가온다. 섬을 잇는 낭만의 대명사이자 사고위험이 넘실대는 수단이다. 구명뗏목의 위치와 사용법을 면밀히 살피는 데에는 아픈 과거의 교훈도 숨어있다. 잎새뜨기를 배우면서 아이가 바다의 위험성을 체감했듯이, 각종 안전설비와 비상시 대피요령 등을 접하면서 우리 역시 조용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행길에 오른다. 여객선 갑판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난다. 바다가 주는, 물이 주는 무정형의 느낌은 미지의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망망대해의 압도적인 힘에 감탄하고, 동시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불안하다. 바다가 내어주는 품에서 마음껏 놀기만 하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아이는 8살 때 바다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갖기 시작했다. 뭐든 한없이 좋은 건 없는 모양이다. 곧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다. 한없이 즐기는 대신 ‘안전’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뼛속까지 희극인 여름 휴가철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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