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이미지는 종종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다. 전쟁이나 대형재난사고 등 참혹한 현장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힌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라는 대참사의 기억까지 더해져 비극의 이미지로 공전 중이다.
2019년 미국의 케이블방송사 HBO가 고증해 낸 드라마 ‘체르노빌’은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사고 축소와 은폐로 현장 수습이 더딘 상황에서, 사상자의 내밀한 말로까지 그려내며 원전의 위험성을 알렸다. 피폭 사실조차 몰랐던 소방관들의 죽음과 희생이 겹치면서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방사능의 공포로 떠오른 것은 일본의 원전 오염수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발생한 오염수를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에 걸쳐 인근 해양으로 방출한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태평양 바다로 흘려보낼 계획이다. 원전 오염수를 정화해 방사성 물질을 최대한 제거·희석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오롯이 믿을 국가는 없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 또한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오염수가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쿠로시오 난류’가 캄차카 반도에서 남하하는 ‘오야시오 한류’와 만나 북태평양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따른 것으로, 방사능의 직접적인 피해는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수산물의 안전성이다. 사고 발생 2년 후인 2013년 과학저널 ‘네이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에서 반경 200km 내 민물고기에서 세슘이 검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일대 대부분의 수중생물이 오염됐고, 많은 이들이 방사능 수산물을 섭취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수산물이력관리제’와 ‘원산지표시제’ 등의 제도를 통해 안전성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지만, 사실 이들의 신뢰도는 낮다. 수산물의 검역 자체가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조사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2013년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모든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이 조치는 2019년 한·일간 수산물 수입금지분쟁(DS495) 승소로 국제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아 후쿠시마 원전의 완전한 폐로까지 유효할 수 있다.
내부피폭 시 가장 문제가 되는 방사성 물질은 세슘과 스트론튬이다. 세슘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70일이다. 체내원소들이 70일이 지나면 배출된다는 의미지만, 섭취가 계속되면 체내에 쌓이게 된다. 세슘은 골수암과 갑상선암, 유방암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론튬은 주로 뼈에 축적되며 뼈암과 불임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일본 원전 오염수 방출 외, 원전의 안전성 문제는 그동안 시민사회단체를 통해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는 후쿠시마와 같은 원전사고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일반인들의 시각은 이와 다르다. 핵폐기물 역시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문제로 방폐장 인근 주민들이 건강상의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앞선 정부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원전을 조기 폐쇄하고 원전건설을 중단하는 등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정책의 추진 속도조절 실패로 특정 산업과 지역 경제에 악영향을 끼쳐, 결국 정권 말기 원전산업으로 회귀하는 듯한 인상을 보였다. 한편 경상북도는 전 정권의 탈원전 정책으로 28조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용역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원전의 안전성 여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분야다. 원전 사고가 발생할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가 가능하기에 원전 폐쇄만이 답이라는 급진적인 주장부터 안전한 운영 및 관리로 충분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다양하다. 원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느냐 대체에너지로 전환하느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만 어떤 정책이든 연착륙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미 수십 년 간 이어온 원전정책으로 산업생태계가 조성된 상태인데, 그걸 갑자기 축소시킨다는 것은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이미 우리가 목도한 바다.
당장 내년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갈 것이다.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원전오염수가 해양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한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수산물 소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방사성 물질 피폭 중 음식물을 통한 피폭이 80%에 달했다고 한다. 성찰하지 않는 과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수산물의 방사능 안전관리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