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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혁신’, 그 속의 함의를 따져보다

등록일 2022-11-16 18:03 게재일 2022-11-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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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운항선박의 지능항해시스템 화면. /출처:자율운항선박기술개발사업 통합 사업단

환경과 산업, 제도와 규제 등은 일반적으로 상충되는 의미를 지닌다. 신산업 육성 등의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환경영향평가를 들어 반대 의견부터 제시하는 경우가 잦다. 개발과 환경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도 많다. 대화와 토론, 타협을 통해 해결하자는 논리는 꼭 정반합의 원리로 진행되지 않는다. 밀고 당기는 힘의 논리에 의해 교착상태에 빠지거나 명분에 갇혀 해결이 지연되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개발의 논리가 친환경 등 녹색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분법의 논리가 흐려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을 실현해야 한다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 덕분이다. 지난해 12월 환경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의 범위를 정한 것으로,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 녹색분류체계는 6개 환경목표를 두고 경제활동을 분류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 순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이 그것이다. 6대 환경목표를 기준으로 삼아 신사업을 추진할 때 친환경 여부를 판단한다. 투자지원 등 녹색금융도 환경목표에 부합하면 가능하다.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실제로 독일의 세계적인 해운회사인 하파크로이드(Hapag-Lloyd)는 2020년 대우조선해양에 LNG컨테이너선 6척을 발주할 때 위의 환경목표에 부합해 녹색금융의 지원을 받았다. 12개의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대출을 해줄 때 대출시장협회(Loan Market Association)가 제정한 녹색대출원칙을 충족해 전폭적인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산업의 규제도 친환경일 경우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각 분야별 신기술 개발 등 다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규제 혁신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술 환경의 변화를 현장에서 즉각 수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따랐다. 규제법령의 조문 등이 오래되고 현장의 목소리가 행정과 입법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양수산부는 얼마 전 자율운항선박과 친환경선박의 상용화를 위해 규제 혁신에 나선다고 밝혔다. 친환경 선박의 시험운항에 소요되는 각종 규제를 간소화하고, 친환경 신기술로 개발된 설비와 기자재의 인증기간도 1년 이상 단축한다고 한다. 해양바이오 소재 활용도 다변화한다. 굴 등 패류 뿐만 아니라 갑각류에서 나오는 부산물도 폐기물이 아닌, 해양바이오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해양심층수 소금 역시 별도 식품유형으로 분리해 활용도를 높일 계획이다.

더불어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에도 초점을 두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수산물에 대해 금어기와 금지체장 등 규제 일변도로 수산업을 관리해왔다. 자연스레 단속과 신고로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해양수산부는 최종산출물 중심의 총허용어획량(TAC, Total Allowable Catch, 어종별 어획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해 어획하는 제도)으로 수산자원을 관리하기로 했다. 수산자원의 증감을 따져 어종별로 잡을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하고, 장기적인 관리를 통해 지속가능한 어업을 실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녹색경제활동과 친환경 기술 개발, 지속가능한 어업 등은 현재 우리가 처한 전 지구적 상황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환경과 개발이란 구태의연한 논리에서 벗어난 상생의 길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진통 하나 없을 수는 없다.

정현미작가
정현미 작가

이번 규제 혁신 내용 중에는 항포구, 어항 등지에 쇼핑센터와 일반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수 있도록 제한을 푼 혁신이 담겼다. 그동안 이 지역에는 횟집과 지역특산물 판매장 등으로 입점을 제한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었다. 또 바닷가 캠핑장 시설도 확충한다. 샤워장과 관리동 등을 늘려 바다 낚시객들이나 캠핑객들의 이용 편의를 증대시킨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규제 혁신은 어촌계와의 갈등과 바닷가 인근의 환경오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동시에 해양레저관광객을 늘리고 어촌관광소득 증대로 어촌경제 활성화를 제고할 수도 있다. 상충되지만 함께 가야 할 방향이라는 논거가 성립되는 지점이다.

모든 경제 활동이 녹색성장일 수 없다는 점은 당연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집단 지성의 혜안이지 않을까? 이번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규제 혁신안도 대국민공모전과 해양수산 업·단체 의견을 수렴하고, 또 7천200여 개에 이르는 해양수산 규제법령 조문을 전수 조사해 개선과제를 발굴한 것이라고 한다. 각종 제도의 장점이 단점을 상쇄할 수 있는 묘안을 찾기 위해 애쓴 결과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녹색경제활동이 전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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