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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교감하기

등록일 2022-06-15 18:10 게재일 2022-06-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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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내준다. 바다가 건네는 위로에 교감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은 전남 완도 여서도. /해양수산부 제공

5월부터 내리쬐던 볕의 강렬함이 남달랐다. 덩달아 한낮의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향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여기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막바지에 이르자 야외는 다시 인파로 북적였다. 사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자유로이 거닐 수 있는 환경을 되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다.

최근 밤바다를 찾은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깊은 상념에 젖었다. 폭죽놀이를 하는 사람들과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의 가벼운 실랑이로 일상회복 현장을 만나기도 했다.

파도소리가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상식을 뒷받침하듯이 곧 평온과 여유가 찾아왔다. 바닷물의 음이온 입자들이 해변가를 맴돌고, 해풍이 귓가를 스치는 환경에서 사람들은 곧잘 이완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이터다. 흔히 말하는 해양치유 효과의 일부이기도 하다.

바다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바다에 마음을 내준다. 잔잔히 일렁이는 수평선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혼란이 가라앉는 경험을 하곤 한다. 온 몸의 힘을 빼고 물위에 둥둥 떠 있을 때의 이완과 비슷하다. 불안 강도가 높고, 만성질병으로 인한 통증이 잦은 경우 심신안정 등 치유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일종의 바다와의 교감이다.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걷는 동안 뺨에 전해지는 해풍의 시원함을 만끽하는 것. 바다와의 대화가 아닐까 싶다.

바다 생물과 사람 간 교감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문어의 지능이 반려견과 비슷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사람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모습은 화제가 됐다. 친근해진 사람과 손가락 놀이를 하고, 포식자에게 공격당해 상실감에 젖어있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다큐는 문어를 통해 교감 뿐만 아니라 새끼를 낳고 죽어가는 모습을 통해 생애의 애틋함까지 담아냈다.

돌고래 체험도 대표적인 사례다. 상업적인 체험으로 질타를 받았지만,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는 사람과 돌고래 간 교감 때문일 것이다. 특히 임신부들이 돌고래를 만난 기억은 특별하게 회자된다. 뱃속 아이 태동이 심해졌다거나, 돌고래들이 임신부를 둘러싸고 빙빙 도는 행동을 보였다는 등 다양한 체험담이 들린다. 돌고래의 초음파에 반응하는 뱃속 태아의 행동이 늘상 이슈의 중심이다. 태아가 돌고래와 어떻게 교감을 나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사이에 뭔가 있다는 것이다.

바다생물로 한정 짓지 않으면 동물 간 교감의 대표격은 ‘동물매개치료’다. 치료사와 내담자 간의 신뢰를 쌓는 데에 동물을 매개, 심리적인 치료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반려견 등 동물이 갖고 있는 정서적 교감능력을 활용해 내담자의 긴장도를 낮추고 통증을 줄이는 등 다양한 심리 치료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담자는 동물을 통해 낯선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치료사를 신뢰하며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상담에 응하게 된다고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다. 부모관계든 연인관계 등 다양한 관계를 통해 존재를 확인받고 유대를 맺고 앞으로 나아간다. 관계는 교감의 전제이자 존재의 이유인 셈이다. 문어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는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해양생물도 비슷한 패턴을 가진다. 돌고래가 태아에게 보낸 초음파도 관계 맺기의 일종일 것이다.

정현미작가
정현미작가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교감’과 ‘관계’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알게 됐다. 관계를 맺지 않았을 뿐인데, 코로나 블루와 각종 정서적 불안증상이 사회 전반을 드리웠다. 결국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는 반증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극단적인 단절의 상황에 놓였을 때,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적인 실험이기도 했다. 홀로 바다와 산, 들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삼삼오오 모여 바다에서 모래와 해풍, 파도소리에 치유 받지만 누구나 단절의 기억과 낯섦이 어떤 것인지 인식하게 됐다.

관계를 통해 교감을 맺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동일한 행동 패턴이다. 그 속에서 따뜻한 위안과 위로, 삶의 동력을 얻는다. 문어 이야기를 촬영한 감독 역시 심한 번아웃을 경험한 후 어린 시절의 바다를 찾았고, 그곳에서 문어의 생태를 관찰하게 됐다.

삶의 난간에 부딪혔을 때 고향을 찾아 추억을 회상하고 관계를 반추하는 것 역시 좋은 과거와 교감하는 행위일 것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물놀이 기억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물이 주는 물질의 특성뿐만 아니라 함께 놀이를 했던 관계의 추억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물놀이 시즌이 찾아올 것이다. 연중 개장하는 해수욕장까지 생긴다고 한다. 단절의 기억을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다시 함께하는 행위이지 않을까. 올해 여름은 작정하고 바다와 친해볼 예정이다. 무의식 속에 갇힌 기억을 딛고 다시 관계 속에서 교감하는 것,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위로받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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