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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17

▲ 이병철 시인크리스마스 이브에 비가 내렸다. 불탄 9층 건물의 검은 그을음을 씻어주지도 못하면서. 세상은 몹시 추웠다. 많은 사람의 환호와 동경 속에 오히려 고독했던 한 영혼을 안아주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울고, 어떤 삶은 불현듯 멈추고, 어떤 삶은 기어이 계속 되고, 여기는 춥고, 저기는 따뜻하고, 행복은 더 행복하고, 불행은 더 불행했다.촛불이 환했다. 태극기들이 나부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새 대통령을 뽑았다. 세월호가 올라왔다. 사람들이 뼈가 되어 돌아왔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다. 미국 대통령이 다녀갔다.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투덜거렸다.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말기로 했다가 다시 짓기로 했다. 서울에서 양양까지 새 길이 났다. 사람들이 고속철을 타고 강릉에 갔다. 사람이 사람을 홧김에 죽이고 술김에 죽이고 재미로 죽였다. 혐오가 물처럼 공기처럼 흘러 다녔다. 방송국이 쉬다가 다시 방송을 시작했다. 불이 났다. 배와 배가 부딪쳤다. 사람들이 자꾸 죽었다. 포항에 지진이 났다. 수능이 일주일 미뤄졌다. 북한 병사가 총 맞은 채 귀순했다. 수술한 의사가 분노했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까발려졌다. 천만 영화가 한 편 나왔다. 늙은 영화감독과 젊은 여배우가 통념에 반하는 연애를 계속 했다. 연예인들이 민박집을 하고 식당을 열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됐다. 노벨문학상은 이웃나라 태생의 영국 작가가 받았다. 축구대표팀이 욕을 많이 먹었다. 미국서 별 볼일 없던 야구 선수들이 돌아와 떼돈을 받았다. 여자 골프 선수들은 대단했다.지나고 나니 그저 담담하게 적는 한 줄 문장일 뿐이다. 정리나 결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하기 위해서, 왜 기억해야 하느냐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지난날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완전히 소멸되는 걸 조금이나마 늦추려고, 그때의 아픔이 나중엔 전혀 안 느껴질까 봐, 그때의 기쁨이 훗날 모르는 일이 될까 봐, 계속 아프기 위해 기억을 꼬집고, 계속 웃기 위해 좋았던 일들을 헤아린다.1월엔 할머니의 대퇴골이 부러졌다. 눈멀고 잘 못 듣는 할머니가 걷지도 못하게 됐다. 2월엔 넙치농어 낚시에 실패했다. 심장 부정맥 수술을 받았다. 3월엔 탄핵에 환호했다. 4월엔 큰 쏘가리를 잡았다. 오래 동경한 스타와 만났다. 5월엔 대선 사전투표를 하고 바이칼 호수에 다녀왔다. 6월엔 그게 마지막일 줄 모르면서 마지막 여행을 함께 다녀왔다. 7월엔 세상 하나가 끝났다. 영원히 마음 불구가 되었다. 8월엔 절뚝거리고 비틀거리면서 살아지니까 살았다. 서해의 한 갯바위에서만 마음 편했다. 9월엔 아버지가 위암수술을 받았다. 경과가 좋았다. 엄마의 뇌경색은 경미한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10월엔 첫 시집이 나왔다. 11월엔 시집 출간을 여러 사람과 자축했다. 12월엔 일본 북해도에 다녀왔다. 2년간 써온 경북매일신문 칼럼은 잠시 쉬기로 결정했다. 세상에 할 말이 생기면 재개할 것이다.“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정현종,`견딜 수 없네`)라는 시구에 가슴 저렸으나 이제는 견디려 한다. 어쩔 수 없다고, 체념과 포기도 배우고, 비우고 버릴 줄 알 때가 되었다.나는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약속하지 않으려 한다. 내 뜻대로 되는 일 하나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과 믿을 수 없는 불운이 길항하는 내 삶은 흑자와 적자를 오가다 0원이 찍힌 통장처럼, 결국은 `나`만 남고, 끝내 `오늘`에 멈춘다. 어떤 삶을 살아도 나는 나고, 지나온 시간과 살아갈 시간 모두 오늘이다.`열심히 살겠다`는 말만큼 정직한 고백은 없다. 나는 오늘을 열심히 살겠다.

2017-12-26

부시리 가고 부시리

▲ 이병철 시인돌아보니 올해도 참 부지런히 낚시를 다녔다. 제주, 여수, 가거도, 위도, 군산, 거제도, 통영, 포항, 속초, 곡성, 남원, 순창, 옥천, 금산, 영동 등을 다니며 각종 물고기와 만났다. 제일 행복했던 건 4박5일 동안 쉬지 않고 낚시만 했던 초여름 가거도의 추억이다.서울에서 목포까지 네 시간, 다시 목포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다섯 시간을 가면 가거도에 닿는다. 가히 사람이 살 만한 섬이라고 해서 가거도(可居島)인데, 사람보다 물고기가 훨씬 많이 산다. 그 황금어장에서 이른 여름휴가를 보냈다.`엔젤호`를 타고 우럭과 광어, 쏨뱅이를 잡고, 갯바위에서 굵은 농어를 잡았다. 밤낚시로 통통한 볼락 수십 마리를 낚기도 했다. 나는 루어낚시를 했지만, 찌낚시한 일행들이 낚은 돌돔과 참돔을 회로 먹는 즐거움도 누렸다.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오후, 멀리까지 나가는 대신 근해에서 선상 타이라바 낚시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타이라바는 도미를 칭하는 일본어 `다이`와 루어의 일종인 `러버 지그`의 합성어인데, 참돔 낚시에 주로 쓰이는 루어 채비이다. 포인트에 도착해 엔젤호 박현우 선장이 가이드해주는 대로 낚시를 시작했다.타이라바를 바닥까지 내린 후 살짝 띄워 액션을 줘도 반응이 없어 채비를 회수하려는데 중층에서 퍽, 하는 입질, 제대로 물었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지고 팽팽하게 당겨진 줄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그 엄청난 힘은 부시리가 틀림없었다.드랙을 조이며 힘겹게 릴을 몇 바퀴 감으면 녀석은 금세 드랙을 차고 나가 나를 허탈하게 했다. 폭발적인 힘에 쩔쩔 매는 동안 팔은 저리고 손이 아파왔다. 낚싯대를 받친 아랫배에 멍이 드는 것 같았다.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좀 더 강하게 낚싯대를 당기는 순간,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초릿대가 하늘로 솟았다. 아뿔싸, 놓쳤다.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허무함은 마치 연인과의 이별 같았다. 온 힘을 다해 겨루던 상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쏟아 부은 힘도 함께 소멸되었다. 내가 당기면 버티던 물고기도, 당신도 없다. 당겨도 당겨도 허공뿐이다. 온 마음과 정성을, 내 간절한 모든 눈빛을 다 가져간 부시리여, 오 연인이여!허탈함도 잠시, 다시 낚싯대가 휘어졌다. 당장 끊어질 듯한 낚싯줄이 소프라노 소리로 울었다. 놓친 게 아니었나? 아니, 분명히 놓쳤다. 다른 녀석이다. 또 다른 부시리가 물었다. 한 녀석이 먹이를 쫓아 헤엄치면 다른 녀석들이 따라붙는 부시리의 습성 덕분이다. 타이라바를 물고 버티던 녀석이 주둥이에서 바늘을 털며 루어를 뱉어내자 내내 침 흘리며 뒤따라오던 다른 부시리가 그걸 덥석 문 것이다.또 몇 분 동안의 힘겨루기 끝에 마침내 배 위로 녀석을 끌어올렸다. 미터급 부시리였다. 팔이 후들거리고 어깨가 저렸다. 부시리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앞뒤 가리지 않는 맹목적 욕망의 결과는 파멸이다. 결국 녀석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해체되어 고소한 뱃살회 한 접시로 저녁상에 올려졌다.남의 것을 탐하는 눈먼 열정과 욕망에의 질주는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선홍빛 부시리회가 내게 말해줬다. 놓친 부시리로부터도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었는데, 온힘을 다해 버티고 버티다보면 절망과 비극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탈주자 부시리가 몸소 가르쳐 주었다.부시리회에 소주를 마시며 나는, 최선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비록 놓치더라도, 사랑의 근육들이 마음 곳곳에 박혀서, 성실한 사랑의 습관이 생겨서, 다른 사랑이 다가올 때, 그 땐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벌써 지난여름 일이다.

2017-12-19

일본과 처음 악수하다

▲ 이병철 시인홋카이도에 다녀왔다. 십 수 년 전 유럽에 갈 때 도쿄를 경유하느라 나리타공항 호텔에서 하룻밤 잔 것 말고 제대로 된 첫 여행이었다. 너무 가까워 호기심이 안 생겼을까. 오랫동안 일본은 여행지로서 관심 밖이었다. 어쩔 수 없는 반일감정과 `예의가 지나쳐 오히려 인간미가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볼 것도 먹을 것도 별로 없는, 그저 가까운 맛에 가는 여행지라고 무시하면서도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등을 전율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내심 궁금해졌을까. 온천과 숙박이 결합된 전통 여관 료칸을 즐기며, 지루한 일상에 지친 눈을 설경에다 씻고 싶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상적이었다. 일본의 친절과 예의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스노비즘적 태도이든 저자세이든 간에 여행자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낯선 도시를 친근하게 바꿔준 것은 삿포로역 근처 백화점 `에스타`의 엘리베이터 안내원이었다. 백발을 빗어 넘긴 노신사는 내가 일본어를 못 알아듣자 영어로 층별 안내를 해줬고, 내릴 때 허리를 숙이며 배웅의 말을 건넸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미소 지었고, 그 미소는 일본의 첫 인상이 되었다.눈보라 맞으며 걷기 힘들어 택시를 몇 번 탔는데 가까운 거리라도 친절하게 운행해줬다. 스노타이어와 체인이 장착돼 있어 거침없이 달렸다. 친절한 서비스 정신과 함께 사고에 미리 대비하는 철저한 준비성까지 보았다. 외국인 여행자라고 해서 가까운 거리를 괜히 돌아가는 짓 따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저절로 들었다. 신뢰의 여부는 태도가 결정하기 마련인데, 내가 탄 택시들은 모두 한결 같았다. 연말연시나 악천후에 택시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 장거리 승객만 태우는 돼먹지 못한 승차거부가 만연한 서울 밤거리를 떠올리자 슬퍼졌다.흰 운동화를 신고 삿포로와 오타루의 눈길을 푹푹 발이 빠져가며 걸었다. 그런데도 운동화가 새것처럼 하얬다. 4박5일 동안 쓰레기를 단 한 번 보았다. 그것도 투명한 비닐쪼가리였다. 음식점, 선술집, 지하철 어디서도 시끄럽게 떠들거나 공공질서를 훼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친절하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맛있고, 아름답고, 바르다. 문화사대주의가 아니다. 여행에서 감동 받는 순간은 일상에서의 결핍이 충족되거나 혐오하던 풍경들과 대비되는 양상을 볼 때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산기슭인데 주말마다 만취한 등산객들이 고성방가와 노상방뇨하는 추태를 본다. 모텔과 술집이 밀집해 있어 밤낮 시끄럽다. 음식점에서 몰상식한 이들은 큰 소리로 욕설을 섞어가며 대화하고, `술자리 게임`이라든가 `건배 제의`로 소음 테러를 가한다. 그 꼴 보지 않으며 북해도의 미식과 맑은 술을 즐기니 수명이 느는 기분이었다.일본에 대한 생각이 새로워졌다. 좋은 여행이었다. 여행 이전과 이후는 뭐라도 달라야 한다. 불호가 호감으로, 편견이 앎에의 호기심으로 바뀌면서 책을 몇 권 주문했다. 지금 이 글은 피상적 인상 묘사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단순한 인상들을 통해 일본과 악수하게 되었다. 어느 지역의 문화를 사랑하는 것은, 여행하는 것은 과거사나 정치와는 별개의 문제여야 한다.여행객에게는 그가 여행한 지역이 곧 그 나라 전체다. 평창이 지금처럼 해서는 곤란하다. 벽지 누렇게 뜨고 바닥에 곰팡이 핀 민박집이 하룻밤 수십만원, 펜션은 100만원을 호가한다. 그 돈이면 나는 태평양과 마주보며 노천온천을 즐길 수 있는 노보리베츠의 료칸 리조트에 가 며칠 쉬다 오겠다. 이번에 체크아웃하면서 지배인에게 내 시집을 선물했는데 속지에다 이렇게 써줬다. “Here is paradise. Thanks for your kindness!“ 천국을 만드는 것은 결국 친절과 예의다.

2017-12-12

`당신들의 나`보다 `나의 나`

▲ 이병철 시인얼마 전에 첫 시집을 냈다. 처음 낳은 자식과 마찬가지다. 내 눈엔 예뻐 죽겠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다. 시는 음식점에서 뛰어다니다 그릇을 깨뜨리지도, 마트에서 울며 떼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장이 지루하거나 동어반복하거나 알맹이 없이 난해하기만 하면 손가락질 받는다. 독창적인 개성과 미적 감각이 없는 시,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나 공감이 없는 시는 예쁨 받기 힘들다.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다. 여러 시인과 평론가들에게 시집을 보내 반응과 평가를 기다린다. 어떤 피드백이라도 감사하지만 이왕이면 좋은 말을 듣고 싶다. 그러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다. 시집을 읽은 독자가 인터넷에 독후감을 올리진 않았을까, 매일 내 이름과 시집 제목을 검색해본다. 시가 자식이라면 팔불출의 자식사랑이다.`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박이 되어 나를 구속한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타인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정작 내 생각과 말을 표현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시집 북콘서트에서 나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적당히 아름답고 또 적당히 위트 있는 말들로 시를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좋은 시`로 여겨질 것 같아 그랬다.`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꽤 듣는 편이긴 한데, 그다지 좋은 사람도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대체로 친절하고 대체로 선하며 대체로 깍듯하다. 타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욕먹기 싫어서, 누군가 나를 불호하거나 적대하는 것은 신경 쓰이는 일이라서 모두에게 적당한 미소와 예의로 대한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 안에 스스로를 가둬 불편할 때가 많다.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가 망가질까봐 짜증도 못 내고 싫은 소리도 못한다. `양심 냉장고` 덕분에 양심의 대명사가 된 방송인 이경규가 “불편해 죽겠다”고 호소했던 게 남의 일만 아니다.남들이 나를 좋게 봐주었으면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강박은 유별나다. `동네 창피하게`, `남부끄럽게`, `남우세스럽게`라는 말은 거의 신앙과 다름없다. `옆집 반응`과 `동네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이제는 `해외 반응`에 집착한다. 김연아가 우승하고, 손흥민이 골을 넣고,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할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에는 `해외 반응`이 반드시 오른다. `치맥 해외 반응`, `삼겹살 해외 반응`, `김치 해외 반응`까지 살핀다. 내 것이 혹 남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 하는 불안증, 나보다 뭔가 더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내 것이 봐줄만해지는 낮은 자존감 때문이다.`해외 반응`의 역사는 유구하다. 원나라가 어떻게 생각할까, 명나라가 뭐라고 할까, 청나라가 과연 곱게 봐줄까 전전긍긍하며 할 말 제대로 못하던 긴 세월을 지나 일본 눈치 보고, 미국 심기를 살피며 살았던 선조들의 눈칫밥이 유전형질이 되었는지 무슨 일만 생기면 해외 반응부터 확인한다. 외부의 시선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알려는 시도는 좋으나 외부의 평가가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내 수준을 알기 위해 문학 공모전에 거푸 도전했던 습작기, 시는 갈수록 `나`를 잃어버리고 심사자의 기호에만 맞추려는 기성품이 되어 갔다. 해외 반응을 신경 쓰면 쓸수록 우리 것을 잃어버린다. `세계화`를 외치며 얼마나 이상한 짓을 많이 했나. 애니메이션 `김치워리어`나 `강남스타일` 손목 동상 같은 흉물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새해엔 SNS도 덜 하고, 부풀려진 인간관계 부피도 줄여야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기보다 정말 소중한 이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들의 나`보다 `나의 나`를 더 사랑하려 한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아. 그저 존재할 뿐이지.”

2017-12-05

진정한 힘

▲ 이병철 시인술만 마시면 `미친 개`가 되는 스물여덟 살 재벌 3세가 제 버릇 못 버리고 또 까불었다. `국내 최대` 법무법인 신입 변호사들과 술 마시다가 남자 뺨 때리고, 여자 머리채를 잡았다. “아버지 뭐 하시냐, 허리 꼿꼿이 세워라, 나를 주주님이라고 불러라” 등의 `꼰대짓`과 `갑질`도 빼먹지 않고 살뜰히 다 했다.대기업과 법무법인은 어떻게 유착돼 있을까. 똥과 파리? 시체와 구더기? `베테랑`이라든가 `내부자들` 또는 `부당거래` 등 영화에서 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폭행과 폭언 수모를 당한 피해자들 중 어느 누구도 한화 그룹 3남 김동선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는 걸 보니 알만 하다. 법조인들이 범법자를 싸고돌며 `정의`보다 `돈줄`과 `빽` 지키기에 급급해하는 동안 사건은 세상에 아예 알려지지도 않았다. 재벌 주폭(酒暴) 난봉질은 지난 9월의 일이라고 한다. `난봉`은 언행이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며 주색에 빠져 행실이 추저분함을 의미한다.조금만 힘이 있어도 과시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일까.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나에게나 중요하지 타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은 쉽게 과시하지 않는다. 진정 가치 있는 것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타인 위에 군림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도 본 적 없다. 건방지고 예의 없고 함부로 손찌검하고 물건 집어던지는 게 다 못 배워서 그런 거다. 부모에게 제대로 못 배우고, 학교에서 딴 짓하고 노느라 책 한 줄 안 읽고, 주변에 쓴 소리하는 선생 하나 없고, 어려운 일에 부딪쳐본 적 없고, 자기 힘으로 노력해 무언가 성취해본 경험도 없는 미숙하고 불쌍한 인간이다.며칠 전, 글 쓰다 새벽에 출출해 근처 24시 순댓국집에 갔다. 건너편에 아주 소란스럽게 떠들며 술과 밥을 먹는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있었다. 2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남자 둘은 몸에 문신으로 미술작업을 했고, 여자는 그 중 하나의 아내다. 대화 소리가 하도 큰 바람에 알고 싶지도 않은 남의 사생활을 들어 알았다. 입만 열면 욕설이고 데시벨이 지나친 고성이었다. 저들끼리 장난치고 싸우다 밥그릇을 던지기도 하고, 깡패입네 칼을 몇 방 맞았네 사시미칼 어쩌고저쩌고하며 깔깔거렸다. 밥맛 떨어졌지만 참고 먹었다. 점잖게 말해봤자 알아들을 리 없고, 내 쪽으로 술병이나 집어던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게 그런 경우다.가진 것이라고는 객기와 만용,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나 먹히는 싸움 실력이 고작일 텐데,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겨 목소리 커지고 다리 떨고 개차반이 된다. 자기 엄마와 통화하는데도 말끝마다 욕이다. 엄마가 잘못 키웠다. 문득 재미난 생각이 들었다. 이 깡패도 재벌 3세 앞에서는 공손히 두 손 모으고 굽실거리겠지, 재벌 3세도 칼 찔릴까 무서워 이런 망나니는 못 건드릴 거야. “저 싸움 잘합니다!” 전 국민에게 앙상한 `알통`을 과시한 개그맨 신종령까지 같이 모여 술 마시면 어떤 풍경이 벌어질까?나도 허우대 믿고 어깨 힘주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는 운동하러 간 복싱 체육관에서 정말 왜소하고 살이 하얀 중년의 어른이 샌드백을 치는데 온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파워풀했다. 무서웠다. 그걸 보고나서부터는 절대 힘 믿고 까불거나 다른 사람을 얕잡아보지 않는다. 꼭 `인생도처유상수`라서가 아니다. 과시하지 않아도 배어나는 예의와 겸손, 절제, 인내야말로 진정한 힘인 까닭이다.예의, 겸손, 절제, 인내의 훈련이 잘 되어있는 사람을 보면 그가 어떤 어려움과 싸워 이겼는지, 어떤 절망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용기로 도전하고 성취했는지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이국종 교수 같은 분에게는 더욱 그렇다.

2017-11-28

지진도 흔들 수 없는 인간애

▲ 이병철 시인지진으로 포항시가 고통받고 있다. 건물들이 부서지고, 삶터를 잃은 이재민들이 영하의 추위에 대피소에서 쪽잠을 자고 있다. 수학능력시험 고사장들이 파손되어 수험생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에 정부는 수능시험을 일주일 연기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가적 재난사태인 것이다.지난 15일 오후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서울에서도 지진이 느껴졌다. 원고를 쓰려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책상과 방바닥이 기우뚱 흔들리는 것을 체감했다.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도 깜짝 놀랐는데, 진앙지인 포항 시민들의 충격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가늠조차 못하겠다.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빨리 피해복구와 보상이 이뤄져 시민들의 삶이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추가 지진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도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연의 일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법이므로, 인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대비한 후 자연의 너그러움을 바라야 할 것이다.아파트, 공공기관, 편의점, 카센터 등에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지진이 발생한 순간의 긴박함이 서늘하게 피부로 와서 닿는다. 땅이 흔들리고 진열대가 넘어지고, 천장과 벽이 무너져 내리는 중에도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피했고, 자신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긴급한 상황에서 이웃의 안전을 먼저 챙겼다. 포항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이웃을 향한 배려와 희생,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건물이 마구 요동치는 상황에서 산후조리원 직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신생아들부터 지켰다. 아기들이 누운 침대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으로 붙잡고, 한 명 한 명의 아기들을 온몸으로 감싸 안아 낙하물과 충격으로부터 보호했다. 자신이 다칠 수 있는데도 자기 몸을 기꺼이 방패삼아 내어주었다.진앙지와 가까워 지진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은 한동대학교인데, 건물 외벽이 붕괴되는 위험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함께 대피하던 중 다리 힘이 풀려 넘어진 청소 아주머니에게로 달려가 일으키고 등을 쓰다듬으며 “어머니, 괜찮아요”라고 다독여주었다. 한 커피전문점의 사장은 손님들과 직원들을 먼저 다 대피시키고 가장 마지막에 건물을 빠져나왔다. 회사원들은 자신보다 동료 직원부터 감싸 안았고, 유치원과 학교에서 교사들은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대피하게끔 인솔했다.시민의식은 이토록 성숙했는데 관료와 정치인, 종교인, 기업가 등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의식은 속된 말로 너무나 후졌다.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되어 있는 건물은 국내 전체 건물의 7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진작 법제화했어야 하고, 법 제도가 아니더라도 건설사들이 자발적으로 했어야만 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며 헛소리를 해대는 정치인, “종교인 과세를 하려니까 포항에 지진이 난 것”이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목사는 이 땅에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추방시켜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되려면 이웃의 아픔에 대한 최소한 공감과 이해는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못하는 이들이 사이코패스다. 격리조치가 필요하다.시민들은 이미 보여줬다. 더 강력한 지진이 오더라도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나`보다 `우리`를 먼저, `혼자`보다 `함께`를 먼저 실천하며 재난을 극복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해보였다. 이제 국가와 `국가`를 자처하는 사회지도층들이 응답할 차례다. 국민이 앞서가는 만큼 국가도 열심히 쫓아와주길 바란다. 지진도 흔들 수 없는 우리의 삶을 때로는 `국가`라는 이름의 당신들이 흔들었다. 이젠 같이 발맞춰 가자.

2017-11-21

먹고 싶다, 독도새우

▲ 이병철 시인“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우의 고향”이라고 고쳐 불러야 할 것 같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한 마리의 새우가 전 세계에 알렸다.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만찬에 `독도새우`로 불리는 도화새우가 올랐는데, 지난주 내내 화제였다.청와대는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했지만, 누가 봐도 일본에 `한 방 먹인` 것이다. 이미 메뉴를 공개할 때 학명인 `도화새우` 대신 `독도새우`로 표기하지 않았나. 이 새우는 조선시대 안용복과 독도의용경비대장 홍순칠에 못지않은 공적을 올린 셈이다. 안용복, 홍순칠, 독도새우가 이제 독도의 3대 수호신이 되었다.독도 인근 심해에서 주로 잡힌다는 이 새우는 크기가 압도적이다. 먹어보지 않아서 그 맛을 상상할 뿐이지만, 풍문으로는 킹크랩이나 로브스터보다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회로 먹고 구이로 먹고 찜으로도 먹는다. 청와대에서는 `독도새우를 넣은 복주머니 잡채`로 냈다고 한다. 언론사에 배포된 사진을 보면 상차림 우측 상단에 독도새우가 있는데, 잡채에서 따로 꺼내놓은 것인지 아니면 별도 요리인지 헷갈린다. 아무튼 상차림 사진에서도 이 새우는 한국 지도를 펼쳤을 때 독도쯤 되는 위치에 늠름한 자태로 앉아 있다.새우는 전 세계 바다와 담수에 2천900여 종이 살고 있다. 키토산과 칼슘, 타우린 등 양질의 영양소를 몸에 지니고 있으며 맛도 뛰어나다. 그래서 물고기도 좋아하고, 게도 좋아하고, 오징어도 좋아하고, 고래도 좋아한다. 새우를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고생대에 출현하여 5억8천만년 동안이나 지구 생물들의 훌륭한 먹이로 사랑받았다. 유명한 새우들도 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가 친구 버바와 함께 그물로 잔뜩 잡던 `버바검프쉬림프`, 무려 80억 봉지가 팔려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산 25만개 높이이고, 펼쳐놓으면 지구를 1천2백 바퀴 도는 `새우깡`도 있다. 청나라 때의 승려 화가인 팔대산인(八大山人)의 그림에 등장하는 새우도 `인기 새우`다.새우 요리는 무엇이든 다 맛있지만 나는 작은 보리새우를 기름에 튀기듯 볶은 것과 간장으로 담근 새우장, 민물새우를 넣고 끓인 된장찌개, 그리고 대하구이를 좋아한다. 저수지로 붕어 낚시 다닐 때 미끼로 쓰려고 새우 채집망에 떡밥을 넣어 물속에 던져놓으면 민물새우들이 한가득 잡힌다. 되지도 않는 낚시 집어치우고 새우만 잡을 때도 있다. 호박 넣고 볶아먹어도 맛있고, 찌개를 끓이면 정말 시원하다. 대하의 경우 대천이나 강화도, 안면도에서 먹는 것보다 김포 전류리포구에서 한강 새우잡이 어부들이 잡은 것을 소금구이로 먹는 게 나는 좋다.트럼프 만찬에 `쉬림프(shrimp)`를 올리는 것을 통해 청와대는 국제사회에 독도를 알리고, 매우 부당한 일본과의 영토 분쟁 상황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켰다.음식도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화새우라는 본래 명칭을 사용했다면 `은유`가 됐을 텐데, `독도새우`는 매우 강력하고 분명한 `직유`이자 직설이 됐다. 우리 일상에서도 시험날 아침상에 미역국을 올리지 않는 것이나 수비 실책을 뜻하는 은어인 `알`을 까지 말라며 야구선수 밥상에 계란을 올리지 않는 것 등 음식을 `상징`으로 여기는 일이 자연스럽다. 음식의 상징성, 음식의 상상력이 몹시 재미있다. 음식도 시와 노래, 한 편의 영화, 표어나 포스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독도새우는 보여주었다.아아, 나도 독도새우 한번 먹어보고 싶다. 한 마리에 1만5천원이라니, 이번 주 금요일에 여는 내 첫 시집 발간기념 북콘서트 입장료와 같은 값이다. 열 마리쯤은 먹고 싶은데 비싸서 못 사먹겠다. 그나저나 북콘서트에 오신 손님들께 독도새우 한 마리급의 즐거움이나 드릴 수 있을까. 기다려라, 독도새우. 한판 붙자!

2017-11-14

강백수, 청춘의 노래

▲ 이병철 시인`강백수밴드` 단독공연이 열린 공연장은 50명 남짓 들어갈 공간에 80여 명의 관객들이 들어차 열기로 후끈했다. 모두 얼굴이 환하고 행동은 편했다. 의자에 앉거나 벽에 기대거나 선 채로 공연을 즐겼다. 맥주를 마시면서, 연인을 끌어안으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연주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신이 난 강백수는 각종 현란한 춤까지 선보이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흡사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 또는 쿵푸팬더, 전설적 베이시스트 아브라함 라보리엘을 연상케 했다. 재담도 수준급이어서 그가 입을 열면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같은 멘트라도 강백수가 하면 웃긴데, 신이 내린 `D자` 몸매와 임꺽정 형용임에도 어딘지 친근한 외모 덕분일 것이다. `백수와 조씨`로 초창기 활동을 함께 한 `조씨`가 뮤지션이라고는 볼 수 없는 철도공사 직원 내지 반도체공장 작업반장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 `남철-남성남` 급의 만담을 펼칠 때는 포복절도하는 이들마저 있었다. 그 `조씨`가 하모니카 연주로 강백수와 호흡을 맞출 때, 뮤지션의 광휘가 불꽃처럼 뿜어져 나오는 것에 감탄했다.마지막 곡 `아이 해브 어 드림`과 앙코르곡 `삼겹살에 소주`가 울려 퍼지는 내내 모든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른바 `떼창`이라는 것이 공연장을 들썩이게 했다. 공연이 끝나도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며칠 술을 참았다던 그와 근처 포장마차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멋있었다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해줬다. 그의 음악과 술에 대책 없이 취해 집에 와 보니 코트 주머니엔 마늘쫑과 콩나물 몇 가닥이 들어 있었다.강백수는 1987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밴드하면 여고 축제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친구의 꾐에 넘어가 음악을 시작했다. 그렇게 가난한 인디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 데 대한 소회가 `하헌재 때문이다`라는 곡에 담겨 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글재주를 바탕삼아 한양대 국문과에 진학,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하고 있다. 그가 쓴 노랫말에는 삶의 깊이와 통찰력, 시적 비유가 빛난다.그는 흙수저 세대의 공통된 `찌질함`과 아픔, 꿈과 희망, 사랑을 노래한다. 그래서 청춘을 노래하는 뮤지션이다. “가수가 판검사를 어떻게 이겨”(`벽`)라고 부르짖거나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1년으로 날아가 한창 잘나가던 30대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이 말을 전할 거야. 아버지 6년 후에 우리나라 망해요. 사업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차라리 잠실주공5단지나 판교 쪽에 땅을 사요. 이 말을 전할 거야”(`타임머신`)라고 읊조릴 때, 가난한 청춘의 자화상과 IMF 세대의 슬픔이 환기된다. 그러나 현실의 비극에 주저앉아 패배를 수용하기보다 그마저도 유머와 추억으로 승화시키는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이 그의 노래엔 있다. 강백수가 어떤 음악을 하는 지는 이 한곡의 노래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울산`의 노랫말을 옮기며 스탠드의 불을 끈다. 강백수, 청춘의 노래, 언제나 변함없기를.“추운 겨울 날 내 나이였던 꽃다운 우리 엄마가 나를 낳은 곳.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 가난한 우리 아버지가 달려오던 곳.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자그마한 텃밭을 일구던 남창마을에 장이 열리면 외할머니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다릴 건넜지. 외삼촌과 외숙모의 자그마한 식당이 있던 공업탑 로터리. 오빠야, 형아, 몇 밤 자고 가나 묻던 동생들이 살던 곳, 울산. 우리 엄마가 눈 감으시던 그 밤에 눈이 벌겋던 우리 외삼촌은 말했지. `엄마 없다고 외갓집을 잊고 살면 안 된다. 틈 날 때마다 울산에 오니라.` 세월이 흘러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 따라 하늘로 돌아가시고 이른 나이에 외숙모마저 떠난 집을 외삼촌 홀로 지키시고, 오빠야 오빠야, 하얀 얼굴로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사촌여동생 신랑을 만나 자그마한 핏덩이 하나를 기르는 곳, 울산.”

2017-11-07

만나고 싶지 않은 강도

▲ 이병철 시인나는 살면서 금품 갈취를 두 번 당했다. 모두 유년 시절의 일이다. 처음은 1994년 봄,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비디오 게임기 게임팩을 사러 친구와 용산전자상가에 갔다. 신용산역에서 내려 길고 어두운 지하도를 나오자마자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불량소년들에게 붙잡혀 뒷골목으로 끌려갔다. 도루코 면도칼을 들이밀며 집 전화번호를 물었다. 가진 돈을 내놓지 않으면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겁먹은 나는 거의 울먹이며 “오팔칠에 이공이륙이요.” 그렇게 주머닛돈을 다 털린 채 다시 음습한 지하도를 지나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그날 이후 용산전자상가에 갈 때는 반드시 돈을 운동화 속에 숨긴 채 행인 중 남자 어른 뒤에 딱 붙어다녔다. 아빠와 같이 온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지하도를 나오면 게임기 가게로 전력질주했다. 고린내 나는 운동화 깔창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 내밀 때마다 가게 주인 눈치를 봤다. 마치 침투작전 수행하는 군인처럼 긴박했다. 그렇게 한두 해 가슴 졸이며 다니다가 비디오 게임에 흥미가 없어졌다. 비디오 게임기가 컴퓨터로, 컴퓨터가 노트북으로, 노트북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는 동안 어른이 됐다.중학교 1학년 때 동네에 `용범이`라는 `날라리`가 하나 있었다. 두 살 위 형이었다. 오락실과 사철탕집이 마주하고 있는 골목이 그의 구역이었다. 어느 겨울날, 길에서 그와 맞닥뜨렸다.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뒤져서 나오면 십 원에 한 대씩”이라고 협박했다. 진짜 한 푼도 없다며 주머니를 털어 보이는 시늉을 하자 길을 터줬다. 친구와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주머니에 천 원짜리 몇 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근처 노점에서 계란빵 사먹다가 용범이에게 들켰다. 사철탕집 골목으로 끌려들어가 흠씬 맞았다. 라면 사서 끓여먹자던 친구의 주장을 계란빵으로 일축한 나는 친구로부터 온갖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그때 이후 지금껏 돈을 뺏기거나 험한 꼴 당하지 않았다. 대개 그런 일은 소년들의 뒷골목에서 일어나고, 나는 그 골목을 일찍이 떠나왔다. 이제는 그 시절의 억울하고 분했던 마음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속된 말로 `삥 뜯기는` 일을 살면서 다시 겪을 리는 없을 것 같다.그들도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유년의 뒷골목도 아니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산길도 아닌 곳에서 대뜸 길 막고 돈 내놓으라 겁박하는 날강도를 만날 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돌아가신 부친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선산 장지로 가는 길, 장의차를 막아 세우고는 통행료를 요구한 마을 주민들에게 500만원을 갈취당한 유족들 이야기다. 유족들 입장에서야 자식 된 도리로 탈 없이 장례를 치르고 싶고, 또 마을 주민들과 괜히 불화했다가 부모 묘소가 해코지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 것이다. 강도야 다 똑같은 강도지만, 칼 든 강도보다 어쩌면 더 나쁜 자들이다. 상을 치르는 유족들의 절박한 상황을 악용해서 `마을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삥`을 뜯는 게 관습이라고 한다. 그렇게 갈취해서는 마을 발전은커녕 술 마시고 노름하고 유흥으로 탕진한다.이런 일들이 계속 있어왔고 지금도 흔하다. 최근 이슈가 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사니까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사과하며 유족들에게 350만원을 돌려줬다는데, 후일담을 들어보니 마을 주민 자녀들이 “돈을 요구한 것은 옆 마을 사람들”이라며 발뺌하고 있단다. 반성을 안 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보도된 충남 부여 옥산 외에도 여러 곳에서 비슷한 악덕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8일,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장례절차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번 기회에 그 몹쓸 강도짓들이 뿌리 뽑히길 바란다. 무슨 놈의 `용범이`들이 이토록 많은 세상인가.

2017-10-31

첫 시집을 내며

▲ 이병철 시인세상 이슈들 소재 삼아 글을 못 쓰겠다. 안 써진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엽기적 살인 행각, 연예인 최시원네 집 개에 물려 패혈증으로 사망한 한식당 `한일관` 대표의 안타까운 사연, MB 정부 국정원 정치공작 의혹 등 화젯거리가 많지만 이미 세간의 언어들로 충분히 소비되고 있어서인지 보탤 말이 없다. 사실 나는 나 이외의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경주마처럼 시야가 좁고 생각이 단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나와는 무관하게 여겨질 때가 많다.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사회참여라는 말이 멋쩍고 어렵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만 하자는 주의다. 장기기증 서약을 한 것이나 아동센터에서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동시 쓰기를 가르친 것 따위에 어떤 정의감이나 목적의식은 없었다. 타인에게 피해 입히지 않기, 공공질서 지키기, 나보다 약한 사람 돕기 같이 당연한 일이라 용기 내거나 희생을 감수한 것 아니다. 부끄럽다. 자신을 내던지면서 남을 돕고, 부당한 것들을 바로잡고, 더불어 삶을 실천하고, 결국 어떻게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감사하는 마음과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자와 나르시스트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나는 이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오래 간직해야 한다.요즘 세상 이슈들에 관심을 안 가진 까닭은 내 이슈가 가장 `뜨거운 감자`여서다. 첫 시집을 발간하게 됐다. 나한테는 엄청난 사건이다. 남들이 열심히 경제활동해서 사회 생산성을 높일 동안,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사회참여에 힘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안 나는 이 시집 한 권 내려고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나 싶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별 도움은 안됐던 것 같다. 시를 쓴다는 자기낭만에 취해 술이나 마시고, 시상 떠올린다며 여행 가고 낚시 다녔다.공고를 졸업하고 전문대에 들어가 처음 시를 배울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즐거운 것과 만났다. 매일 빨간 줄이 그어진 종이를 붙잡고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행복했다. 대학 졸업 후 어느 여름날엔가는 안성 금광저수지변에 계신 은사께 시를 보여드리기 위해 주소도 모르면서 그 넓은 저수지를 한 바퀴 다 돌아 거의 탈진한 적도 있다. 은사께 칭찬 한마디 들으면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아직 오지 않은 생의 비극들마저 만만했다. 나름대로 이십대의 대부분 날들을 시 쓰기에 바쳤다.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행복했다. 오솔길의 임금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되자,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멀리 달아났다. 하지만 달아날수록 시는 더 강하게 나를 잡아당겼다. 돌아선 뒤통수에 쏟아지는 시의 따가운 눈총이 미안하고 괴로워 몹시 취해버린 밤도 많았다. 돈 잘 벌어도 시를 안 쓰니 불안했고, 돈 한 푼 못 벌어도 시 한 편 쓰면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했다.그렇게 `나`와 `내 시`에만 집중한 십여 년이 담긴, 어쩌면 이기적이고 지극히 세계관이 협소한 언어들로 지은 첫 시집을, 부끄럽고 빚진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시라도 잘 썼으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라서 더 창피하다. 존경하는 선배가 쓴 해설 원고를 읽다가 그만 울고 말았다. 가슴 벅찬 감격과 지난날들에 대한 회상, 어떤 후회들, 몇몇 떠오르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민망함 같은 게 마구 뒤섞인 눈물이었다.눈물은 각성으로 이어지는 법이라서, `나`라는 자의식을 다 쏟아낸 이 한 권의 시집 이후 나는 세상을 좀 더 멀리 보고, 둘러보고, 깊이 보기로 한다.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쓸 수 있는 시를 고민해보려 한다. 그래도 당분간만은 더 `나`만 생각하면 안 될까. 시집이 많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 `대박`을 기원한다는 뜻이다.

2017-10-23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 이병철 시인최근 한 조사에서 등산을 제치고 국민 취미 생활 1위에 등극한, 자랑스러운 나의 취미 낚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낚시가 선생 노릇을 할 때가 있는데, 이십대의 마지막 겨울, 포항 양포방파제에서 그랬다.결국 놓쳤지만, 어쨌든 내 생애 첫 볼락을 그때 만났다. 인조미끼를 사용하는 루어낚시에 심취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서툴지만 열정만큼은 뜨거워서 강에서 꺽지 잡던 낚싯대를 챙겨 포항으로 달려갔다. 거기서는 감성돔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귀한 물고기, 산지에서 다 소비가 되어 서울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겨울바다의 진객 볼락을 꼭 잡아보고 싶었다.인터넷으로 대충 공부하고 현지 낚시점에 가 조언을 좀 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조행기들을 훑어보니 아이스박스 한 가득 볼락을 잡아낸 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까짓 거 뭐 어렵지 않겠는데` 자신감이 마구 솟았다. 너무 많이 잡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눠줄 주변 사람들 얼굴부터 떠올렸다.야광 지그헤드와 볼락용 웜, 싸구려 집어등 등 볼락 낚시에 필요한 장비들을 사서는 방파제에 올랐다. 테트라포드를 넘어 다니다가 좋아 보이는 자리에 서서 낚시를 시작했다. 겨울바다의 칼바람은 매섭고, 파도가 발밑을 때릴 때마다 움찔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금방 잡힐 것 같던 볼락은 좀처럼 루어를 물지 않았다. 한 발 더 앞에서 던지면 왠지 볼락이 잡힐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바닷물과 가장 가까운 테트라포드에 발을 디뎠다. 해조류와 이끼에 덮여 몹시 미끄러웠다.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오로지 볼락을 낚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위험을 무릅쓰는 미련한 짓이었다.그렇게 해 저물녘, 마침내 한 마리를 잡아냈다. 생애 최초의 볼락이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리 들고 저리 들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손에서 놓쳤다. 그걸 다시 잡겠다고 급히 몸을 움직인 순간, 발이 미끄러져 차가운 겨울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하반신이 잠긴 채 두 팔로 테트라포드를 붙잡았다. 천만다행이었다. 황급히 기어 올라와 가슴을 쓸어내렸다. 겁에 질려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안전한 자리로 옮겼다. 허리 아래가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듯한 추위를 참아가며 서너 시간 더 낚시를 했던 것 같다. 물에 빠지고 나니 악에 받혀 오기가 생겼다. 그러나 결국 단 한 마리 볼락도 잡지 못했다.위험을 감수하고 아슬아슬한 테트라포드에 서서 무리하게 낚시한 대가는 컸다. 비싼 방한복 바지가 찢어지고, 얼어붙어 통각을 못 느낀 무릎은 진작 까져 피 흘리고 있었다. 쓰고 있던 모자와 낚시 장비 몇 개를 잃어버렸다. 감기몸살은 덤으로 얻었다. 그때 깨달았다. 어디든 발 딛고 서 있는 자리가 탄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내가 서 있는 자리가 위태로운데 위태로운지 모르고, 겨우 버티고 서 있으면서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줄 착각하던 시절에 한 사람을 만났다. 계속 흔들리며 중심도 못 잡으면서 아찔한 곡예처럼 하루하루 줄타기하던 날들, 만남의 기쁨에 취해 내 불안한 현실과, 서른 넘은 나이와, 열등감으로 금방 미끄러지는 우울을 눈치 채지 못했다.발 디딘 자리가 불안하면 그 어떤 것도 붙잡을 수 없다. 나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한 곳에 당신이라는 한 생애를 초대할 수 없다. 결국 그 사람은 늘 비틀거리고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떠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가 버렸다. 예정된 일이었다.이제 나는 볼락을 제법 잘 잡는다. 절대 미끄러지지 않는 곳에 두 다리를 안전하게 고정하고 여유 있게 수십 마리씩 잡아내는 사람이 됐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흔들리는 중일까. 술에 취해 늦가을 바람 부는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지상의 거처 하나씩 분양해주고 싶다.

2017-10-17

추석 생각

▲ 이병철 시인“조상 덕 본 사람들은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사람들만 차례상 앞에 절하는” 추석 연휴가 끝났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나 집 한 채 없는 나는 조상 덕 못 본 축에 끼는데, 명절마다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에 갇혀 한숨 푹푹 쉬는 일을 반복한다. 온몸이 쑤시고 눈 침침하고 소변이 마렵다보면 차창 밖 하늘을 나는 새들은 물론이고 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뻥튀기 장수마저 원망스럽다.연휴가 길어서 귀성 차량이 분산되는 데다 해외여행 간 사람들도 많아 고속도로 소통이 원활할 거라고 누가 그랬나. `민족 대이동`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1시간 30분이면 가는 충남 당진까지 4시간 넘게 걸렸다. 꽉 막힌 행담도 휴게소 진입로를 보고 겁에 질려 화장실 가는 것도 포기했다. 매년 이 고행을 함께 하는 반려견 순돌이가 멀미를 하는지 뒷좌석에다 구토를 했다. 짜증이 나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어디쯤 왔냐”, “언제쯤 오냐” 전화가 계속 울어댔다.힘들게 도착한 당진 집, 아버지가 사둔 제철 꽃게와 대하를 쪄 먹고 프로야구 중계 보다가 잠들었다. 예년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차례를 지냈지만 올해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차례를 안 지낸다는 속설을 따랐다.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차례 안 지내니 실컷 늦잠자고 편했다. “음식 준비하지 말고 제발 좀 쉬시라”고 해마다 잔소리해도 멈출 수 없던 엄마의 바쁜 손이 마침내 놀았다.한나절 걸려 도착해 저녁 먹고 자고, 다음날 점심 먹고 또 한나절 걸려 돌아왔다. 아버지 얼굴 보고 밥 두 끼 먹느라 그 고생을 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스마트폰을 보니 SNS엔 온통 외국으로, 제주도로 여행 간 친구들 사진이다.명절에 해외여행을 가고, 가족 외식을 하는 요즘의 세태가 몹시 반갑다. 차례상에 홍동백서 틀리고 지방 잘못 쓰면 조상님이 노한다기에 얼마나 전전긍긍했었나. 유교적 가부장 관습에 지나치게 매여 명절의 절차와 형식만 챙기는 사이 보이지 않는 부엌에서 여성들의 희생이 당연시되어 왔다. 가족들이 모여 정을 나누기는커녕 싸우고 헐뜯고 등 돌린 채 헤어지는 일 다반사였다. 누구는 음식 장만하느라 온몸이 결리고, 또 누구는 말다툼의 가시 돋친 말에 상처 입는다면, 명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번지르르한 차례상이야말로 허례허식이다.차례를 지내든 해외여행을 가든 가족 외식을 하든 간에 가족끼리 즐겁고 편안하게 보내면 그만이다. 조상의 은덕 운운하며 우쭐하거나 열등감을 가질 것도 아니다. 내 주변에는 조상으로부터 받은 은총 하나 없이도 열심히 벌고 모아 해외여행 간 사람들 많다. 차례상에 피자와 치킨을 올려도 좋고, 교회나 절에 가 기도를 드려도 좋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상을 기억하면서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원망할 것은 원망하면 된다. 풍습은 풍습일 뿐 절대적 규범이 될 수 없다.추석 다음날, 할아버지를 모신 국립이천호국원에 가 봉안함 앞에 꽃을 놓아드리면서 나는 할아버지가 젊어서 노름으로 가산 탕진했다던 일이 떠올라 몇 마디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물려준 재산은 없어도 나 어릴 적 몸에 좋다는 한약을 왕창 달여 먹여 이토록 장대한 기골이 되게 하셨으니, 건강이야말로 최고의 상속이자 내리사랑 아닐까.당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버지가 준 돈이라고 했다. 내 차 뒷바퀴가 닳아 갈아야겠다며 타이어 값하라는 것이었다. 마모되는 타이어처럼 아버지 마음도 자꾸 얇아진다. 자식 걱정이 늘어난다. 가슴이 환하다 이내 먹먹해졌다. 무연고 묘지나 다름없던 봉분을 새로 이장한 외할머니 산소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엄마의 말이 쓸쓸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타이어 새로 갈고, 설에는 엄마와 함께 땅끝 해남 외할머니 계신 곳에 가야겠다.

2017-10-10

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

▲ 이병철 시인`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봤다.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이 자신의 독일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했다. 역사교사, 화학자, 연구원인 그들은 첫 이틀간 다니엘의 도움 없이 서울을 여행했다. 길을 헤매기도 하고, 음식 주문에 애를 먹기도 했으나 큰 어려움은 겪지 않았다. 대중교통 시스템, 치안, 공공서비스, 시민의식, 음식, 문화 공간 등 한국도 여행하기 참 좋은 나라라는 걸 방송을 보며 새삼 느꼈다.독일인 친구들은 아침 일찍 DMZ 투어에 나섰다. 투어버스를 타고 파주 비무장지대와 휴전선, 도라전망대, 제3땅굴, 판문점, 임진각 등을 견학했다. 가이드로부터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듣는 표정이 진지했다. 독일도 분단을 겪어선지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듯 보였다. “우리는 통일이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화학자 페터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걸음을 재촉한 다음 일정이 놀라웠다. 택시를 타고 서대문형무소 견학을 간 것이다. 독일 친구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사의 현장에서 숙연해졌다. 온갖 잔혹한 고문 방법, 신체를 구속하는 끔찍한 독방,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등을 보며 일본의 만행을 비판했다.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대해 외면하는 것은 잘못이며,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은 지금도 과거사를 반성하며 항구적 책임으로 여긴다.나도 모르게 “고맙다”고 혼잣말을 했다. 독일 친구들이 숙연해하고 분노할 때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DMZ 투어 버스에 탄 한국인은 가이드 한 사람뿐이었다. 오랫동안 들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 정도로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은 너무 익숙해 오히려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식민치하가 몇 년이었는지, 한국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물으면 말을 뭉뚱그린다. 둔감도 아니고 불감이다. 입시에 목매게 하고, 편향 교과서나 읽게 하면서 교육에 소홀했던 기성세대와 국가 잘못도 크지만 스스로 바르게 알고자 노력해본 적 없는 무관심이 더 큰 문제다.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친한 선배들을 최전방 강원도 양구로 초대했다. 1박2일 동안 나름대로 `안보관광` 가이드를 자처했다. 평화의 댐과 도솔산을 지나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GOP 군사도로로 해발 1천242m 가칠봉 초소까지 올랐다. 미리 출입신청을 요청해 허가를 받고, 군복을 입은 내가 안내했다. 11월의 전방은 칼바람 가운데 적막했다. 철책 너머 북한군 초소를 보는 지인들의 눈빛이 깊었다. 전방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마음 속 묵직한 먹먹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비포장도로를 내려와 제4땅굴 견학을 하고 나오는데,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보였다. 가이드가 갑자기 내게 설명을 요청했다. 군복 차림에 다이아몬드 계급장 모자를 쓰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땅굴을 통해 대규모 병력과 무기가 짧은 시간 동안 서울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부터 북한군이 땅굴을 판 방식과 기간, 한국군이 땅굴을 발견해낸 과정 등을 설명했다. 가이드의 통역을 들은 일본인들이 박수를 쳤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나와 사진을 찍었다. 분단국가의 가장 삼엄한 경계에서 군복 입은 장교를 만났으니 그들에겐 진귀한 경험이었을 것이다.내 주변 사람들은 양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도 잘 찾지 않는 그 최전방까지 온 일본인들이 대단했다. 티브이로 독일 친구들의 여정을 보면서 느낀 것과 비슷한 고마움을 그때도 가졌던 것 같다. 여전히 진행 중인 한국의 아픔을 들여다본 독일 친구들은 다음날 경주로 가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정말 멋진 여행이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추석 연휴가 꽤 길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면, 역사 및 안보 견학을 떠나보면 어떨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안중근기념관, 을지전망대, 제2땅굴 등 “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라고 우리에게 손짓하는 곳이 많다.

2017-09-26

적반하장의 사회

▲ 이병철 시인불난 집 문 부수고 불 꺼준 소방관에게 현관문과 소파를 변상하라고 한 정신 나간 집 주인 이야기를 들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아 기사를 찾아봤더니 사실이다. 화재 진압 및 인명구조 중 발생한 기물 파손 손해배상 요구가 지난 2년간 서울에서만 54건 접수됐다. 목숨 살리고 재산 지켜줬더니 감사는커녕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 인면수심(人面獸心)도 정도껏 해야 할텐데, 몰상식한 이기심과 천박한 돈 타령은 도대체 언제쯤 그치는 걸까.동물도 자신을 구해준 존재에게 은혜를 갚는다. 때로 사람은 동물보다 못하다. 소방서에 찾아가 돈 물어내라고 발악하는 자들이 만약 `오수의 개` 주인이었다면, 죽다 살아 기력 없다며 개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은혜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고, 부끄러움을 모르면서 현관문과 목숨 중 무엇이 더 소중한지도 분간 못하는 사람들이다.신께서 “네 마음이 번잡하니 꼭 필요한 두 가지 감정만 남겨두고 없애겠다”고 한다면,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을 선택할 것이다. 감사하고 죄송할 줄만 알아도 남에게 해악 끼치지 않으며 살 수 있다. 십여 년 전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갔을 때,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지만 `thank you`와 `sorry` 두 단어만 가지고도 큰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었다.은혜 입은 고마움을 모르고,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금방 잊는 사람들은 대개 타인 없이 혼자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누리는 것들이 타인과의 관계, 즉 사회라는 기반 위에서 상호성을 통해 얻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고, 내가 끼친 민폐는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얼버무린다.당장 소방관이 없다면, 경찰이 없다면,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다면, 농부들이 사라진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될까. 초등학생한테도 안 물어볼 질문을 던져야 하는 세상이다. 염치와 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 나라를 만든 건지, 나라가 먼저 잘못된 본을 보이니 너도나도 그 비상식을 따라하는 건지 궁금하다.소방관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 사람들이나 세월호 구조에 나섰던 민간잠수사들을 고소했던 무능한 국가나 서로 마찬가지다. 선거철에 고개 숙이며 굽실거리다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회의원들도 똑같다.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고 한국 축구를 살린 영웅 히딩크 감독의 도움 제안을 걷어차 버린 축구협회도 있다. 길 알려준 이에게 고맙단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뻣뻣함, 차선 끼어들고 비상등 한번 켜지 않는 뻔뻔함 같은 일상의 몰염치와 무례함이 쌓이고 쌓여 `적반하장(賊反荷杖)`의 사회가 된 것일까.시민의식이 바뀌려면 국가가 먼저 모범을 보여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 구조나 구급활동에서 발생한 기물 파손의 경우 시·도가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으로 처리가 가능하나 화재 사고는 보험 가입이 안 돼 소방관들이 사비를 들여 보상하는 일이 잦다. “파손되는 기물이 고급 승용차이든 대리석 기둥이든 피카소 그림이든 간에 국가가 다 책임질 테니 화재 진압에만 최선을 다 하라”는 약속을 소방관들에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웃을 위해, 공익을 위해 희생한 의인에 대한 포상 범위도 확대해 “내가 의로운 일을 하면 누군가는 반드시 보답해준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불 꺼준 소방관더러 소파 값 물어내라 했다는 집 주인 기사를 읽던 중, 강릉 석란정 화재 현장을 진압하던 소방대원 두 명의 순직 속보를 접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소파, 현관문, 화단, 빗물받이, 자동차 사이드미러 따위 값을 청구하는 동안 그들은 천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바쳐 우리의 삶을 지켜주었다.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두 마디 말은 인간 사회의 기본 언어다. 이걸 못하면 `인간 실격`이다. 그래서 다시 연습해본다. 고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2017-09-19

비효율의 아름다움

▲ 이병철 시인부안 위도 갯바위에서 60cm가 넘는 광어를 잡았다. 자연산 광어회를 안주 삼아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함께 간 친구들이 열광했고, 나는 낚시인의 긍지와 자부심에 취했다. “자연산은 배가 하얗고, 양식은 얼룩덜룩해. 이만큼 큰 걸 `빨래판 광어`라고 부르는데, 너희가 어디 가서 이런 걸 먹을 수 있겠냐. 따라온 보람이 있지?”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일장연설을 했다. 행복한 낮술이었다.그러나 그 광어를 잡기까지 들어간 비용과 시간, 노력을 생각하면 목으로 넘어간 것은 술이 아니라 쓰디쓴 눈물이다. 낚시에 서툰 친구가 내 낚싯대를 부러뜨렸다. 나도 낚시 장면을 촬영하다가 액션캠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날려먹은 돈이 20만원 넘는다. 그 돈이면 다금바리도 사 먹을 수 있다. 그뿐이랴. 낚시 장비를 짊어 메고 길도 없는 산중을 헤쳐 미끄러운 갯바위를 오르내리는 일은 온몸이 결리는 중노동이다.속 쓰리지만 내 손으로 잡은 물고기를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는 기쁨이 커 손해를 셈하지 않았다. 따져보면 낚시는 비효율적 활동이다. 횟집에서 사 먹으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사실 맛도 더 좋다. 하지만 `분위기`라든가 `기분`은 얻을 수 없다. 낭만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갯바위에서 고생한 이야기, 손맛의 무용담이 술상에 오르는 동안 부러진 낚싯대와 잃어버린 액션캠마저 술안주가 되었다. 보름달이 파랗게 엎질러질 때까지, 밤바다는 꿈결 같았다.가끔 집으로 손님들을 초대해 직접 요리한 파스타와 스테이크 따위를 대접하곤 한다. 그날은 한나절 내내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집 청소를 하고, 장을 보고, 재료들을 다듬어 정성껏 요리하고,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 상에 올린다. 사 먹는 것보다 더 비싼 돈을 들여 다섯 시간 동안 차려낸 저녁상이 한 시간 만에 설거지거리가 되어도 허탈하지 않다. 요리하는 과정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음식을 맛본 손님들 얼굴이 환해지는 순간의 기쁨 같은 것들이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비효율적임을 알면서도 그 일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는 `욜로`와 다르다. `비효율의 아름다움`에는 내 유익의 추구만 있는 게 아니라 나를 희생해 타자와 함께 행복하려는 이타적 정신도 포함된다. 허영심이나 속물근성에서 비롯한 과소비는 지양해야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 `비용 대비 효과`의 공식을 적용해 효율성만 강조하면 우리 삶엔 낭만과 정신적 가치들이 사라질 것이다. 시가 소멸하고, 돈 안 되는 것들은 전부 허섭스레기가 되는 세상, 어쩌면 이미 와 있는지 모른다. 노동과 생산, 부의 축적만을 위해 살아가는 건조한 사회는 백 년 전 `포드주의`나 `테일러리즘`과 다르지 않다.비효율과 효율의 잣대를 감히 들이댈 수도 없는 문제다.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물질주의와 인간주의의 가운데에 강서구 특수학교 논쟁이 있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말하진 않겠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라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기저에는 “장애 학생을 교육해봤자 그들은 사회에 생산적 기여를 할 수 없다”는 왜곡된 인식과 “특수학교가 생기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천민자본의 갑질이 깔려 있다. 일그러진 욕망과 이기주의의 방식으로 효율성에만 집착해온 결과다.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이 들어서는 게 그들 삶의 효율성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들인 노력과 얻은 결과의 비율이 높은 특성”이다. 애써서 이룬 물질적 풍요의 목록에 한방병원은 기꺼이 편입시키면서도, 특수학교 설립이 자신들이 누려야 할 마땅한 `노력의 결과`를 훼손한다는 오해는 끝내 버리지 않을 모양이다. 한방병원이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인간 사회의 소중한 가치를 부디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2017-09-12

향기로운 술, 향기로운 사람

▲ 이병철 시인사극 드라마에는 술 마시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출출하고 입이 심심한 밤에 그걸 보고 있으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장돌뱅이가 주막에 앉아 뜨끈한 국밥에 탁주를 들이켜는 것은 그런대로 모방이 가능하다. 집 근처 순댓국집에 가 막걸리 시켜 먹으면 된다. 그런데 정말 넋 놓고 바라보는 그림의 떡은 임금 수라상이나 양반집 주안상이다. 산해진미를 안주 삼아 청자주병의 술을 따라 마신 후 수염을 닦는 그 멋스러움이 부럽다. 아니, 술병에 담긴 전통주 맛이 궁금하다.공장에서 만들어 유통하는 소주, 맥주만 주구장창 마셔대니 결국 내가 즐기는 건 술이 아니라 알코올의 취기에 불과하다. 진짜 향 깊고 맛있는 술을 음미해본 적이 없다. 와인을 자주 마시는데, 라벨에 적힌 원산지와 수확시기, 포도 품종 따위 정보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폼이나 잡는 뜨내기일 뿐이다. 우리 전통주의 경우 내겐 풍문조차 깜깜한 미지의 영역이다.며칠 전, 전남 순창의 한 식당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13세기 고려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전통 명주 호산춘(壺山春)을 마시게 된 것이다. 주인장이 흔쾌히 내어주었는데, 무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외손자인 이연호 명인이 담근 술이다.맑은 금빛 감도는 술에서 꽃향기가 났다. 달짝지근하면서 개운했다. 뒷맛도 산뜻했다. 입 안에 대숲을 흔드는 바람이 부는 느낌이었다. 술이라기보다는 향기로운 차를 마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내 은은한 취기가 생겼다. 화려하게 외모를 꾸미지 않고도 내면에서 우러나는 매력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사람과 만난 기분이었다.오늘날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해당하는 호산(壺山)에서 빚은 `춘주(春酒)`다. 멥쌀 곱게 간 것에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차게 식혀 죽을 만든다. 거기에 섭누룩을 가루 내어 섞고 골고루 치대 술밑을 빚는다. 술밑을 뭉쳐 술독에 담아 안친 후 사흘간 발효시킨다. 이렇게 빚은 밑술을 체에 걸러 막걸리를 만든 다음, 하룻밤 불린 찹쌀로 지은 고두밥과 함께 버무려 술독에 담으면 덧술이 된다. 따뜻한 데서 또 사흘간 발효시킨 후 압착, 여과해내면 마침내 호산춘이다.사람으로 치자면, 뜨겁고 차가운 고난의 온도를 모두 견디고 캄캄한 골방에서 성숙의 훈련을 한 사람, 내면의 불순한 것들을 걸러내 마음이 맑은 사람, 아무리 길고 외로워도 과정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타자와 기꺼이 버무려지고 때로는 치대임을 당해도 관용할 줄 아는 사람, 유행을 쫓거나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멋을 지닌 사람이다.조선 중기에는 각 지방마다 특산주가 있었다. 서울 삼해주, 충청도 청명주, 진도 홍주, 김천 과하주, 여산 호산춘과 문경 호산춘(湖山春), 그밖에도 벽향주, 죽력고, 이강고, 송순주, 노산춘 등의 우리 전통주에는 술 빚는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은 물론이고 달빛과 바람, 해와 구름, 새 울음, 귀뚜라미 울음, 산과 호수가 담겨 있다. 저마다 특색과 개성이 있으며, 맛 깊고 향기로웠을 것이다.어쩌면 옛날이야말로 다양성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와인은 한 병 한 병마다 맛과 향이 다르고, 한 잔의 술에서 그 술을 빚은 가문의 역사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때로 좋은 와인을 마시면 가만히 앉아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우리에게도 와인처럼 시간과 장소, 그리고 `서사`를 담은 전통주가 있지만 간신히 명맥만 잇고 있다. 전통주의 대중화는 공업용 알코올 같은 소주와 보리차처럼 밍밍한 맥주를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는 우리 술 문화를 보다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이번 가을엔 말과 생각이 향기로운 사람과 마주앉아 오랜 시간을 견딘 술을 나눠 마시고 싶다. 맑고 은은하게 취해 악수만 하고 헤어지고 싶다. `2차`없이.

2017-09-05

모난 돌 정 맞지 않는 사회

▲ 이병철시인메이웨더가 이겼다. 경기 내용은 언급하지 않겠다. 종합격투기 최강자이긴 하나 복싱 경력이 없는 맥그리거가 전설적인 챔프와 복싱 룰로 붙은 `미스 매치`다. 이 이벤트성 시합이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돈 잔치`가 된 것은 두 선수의 `개성` 덕분이다. 실력도 물론이지만 화려한 쇼맨십과 퍼포먼스, 서로를 향한 자극적인 도발이 분위기를 띄웠다. 둘의 개성을 극대화시켜 거기에 근사한 `스토리 라인`을 입힌 프로모터들 역시 대단하다.자신을 `머니(Money)`라고 부르며 명품 시계와 슈퍼 카, 초호화 파티로 돈 자랑을 일삼는 메이웨더, 화려한 언변과 기행으로 상대를 도발하는 등 도무지 겸손을 찾아볼 수 없는 `떠벌이` 맥그리거. 둘 다 우리 정서에선 `비호감` 캐릭터다. 예의와 겸손, 착실함, 용모단정을 요구하는 “모난 돌 정 맞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종목 불문 우리나라에서 메이웨더나 맥그리거 같은 스타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생각한다.운동선수에게는 개성보다 실력이 중요하지만, 개성을 함께 쌓는다면 실력이 빛을 발할 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같은 실력이라면 개성 넘치는 선수보다 겸손하고 무난한 캐릭터의 손을 더 들어준다. 결국 협회 말을 잘 들어 통제하기 쉬운 선수들만 남는다. `무난함`을 중시하는 사회적 정서가 대중들에게 내면화된 탓이 크다. 운동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분야가 다 그렇고 문학도 마찬가지다. 엔터테인먼트는 엔터테이너 고유 영역으로만 여긴다. 어느 시인이 옷 잘 입고 타투 새겼다고 욕먹는 걸 들은 적 있다. 나도 부츠 신고 카우보이모자 쓴 채 시 낭송했다가 손가락질 받았다.흰 색, 회색 차만 타고 다니는 몰개성과 획일화의 사회는 `도전`에 대해서도 인색하다. 다른 영역을 넘나드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모난 돌 정 맞는다”는 잔소리는 “주제와 분수를 알라”는 `꼰대질`로 이어진다. 매니 파퀴아오가 한국 복서였다면 한 체급 챔프는 되어도 8체급 석권의 위업은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실력 때문이 아니라 불안한 도전보다는 무난한 안주를 권하며 분수 파악을 강요하는 풍조 탓이다.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은 곧 개인의 취향과 판단, 선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겸손의 미덕`을 말하는 선한 얼굴 뒤의 질투와 시기, 깎아내리려는 저열한 욕망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을 제거해왔을까.`메이맥`시합과 같은 날, 4체급을 석권한 푸에르토리코의 복싱 영웅 미구엘 코토와 일본의 카메가이 요시히로가 WBO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전을 벌였다. 코토가 3대0 판정으로 승리하며 오랜 공백을 깨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일본 복서가 세계 타이틀 링에 오르는 건 흔한 광경이다. 10명이 넘는 세계 챔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는 정기적으로 복싱 경기가 열리고, 사람들은 경기장을 찾아 응원한다. 집념과 집념, 인생과 인생이 맞부딪는 링을 향해 박수를 보낸다. 시합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토리 라인을 입혀 판매하는 탁월한 프로모션 덕분이다.나이트클럽 전단지만큼 조악한 디자인에 선수보다 협찬사와 시의원 이름이 더 크게 실린 한국 복싱 경기 포스터를 보면서 `개성`과 `도전`의 중요성을 다시 느낀다. 오일장 약장수 쇼 같은 주먹구구에서 벗어나려면 협회나 후원사에 기죽지 않는 `개성파`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 캐릭터들에다 그럴싸한 `이야기`와 상품 `이미지`를 입혀줄 전문 경영인, 광고인, 영화인, 문학가 등의 힘도 빌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장르와 분야를 넘나드는 도전들이 보편화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메이맥` 같은 빅 이벤트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 없다. 그 한 경기가 몇 사람을 먹여 살릴까. 실력과 개성을 통한 도전, 그것을 매력적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일, 모난 돌이 정 맞지 않는 사회의 창조경제다.

2017-08-30

여수기행

▲ 이병철 시인올 여름 마지막 여행을 다녀왔다. 전남 여수는 유년 시절 아버지 따라 처음 본 바다를 품고 있는 고장이다. `바다`라고 발음하면 뒷목이 서늘해지고 입 속에 짠맛이 돈다. 눈앞이 파랗게 저물면서 어디선가 통통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내면에 각인된 바다의 원형은 여수가 준 선물, 백석은 `통영1`에서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고 노래했는데, 내 `처음 바다`를 향해 가는 길에는 아버지 담배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대전 지날 때부터 빗방울 잦아들더니 여수는 볕이 쨍쨍했다. 돌게로 담근 간장게장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다. 여수가 고향인 친구 황종권 시인이 식도락 가이드를 책임졌다. 갓김치와 젓갈, 생선 조림 등 갖가지 반찬들을 거느린 돌게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산처럼 쌓인 고봉밥이 금세 사라졌다. 자극적으로 짜거나 달지 않으면서 속살이 탱탱해 물리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서울에서 딸려온 걱정과 잡생각이 다 사라졌다. 밥도둑이 내 마음까지 훔친 것이다.친구를 시인으로 키운 섬달천 바다를 찾았다. 근처 마을 조부모님 댁에 가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거동 불편한 할아버지께서 버선발로 마중하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마당 장독대에 내려앉은 햇살에서 연필심 냄새가 났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고관절 골절로 요양병원에 누워 계신 내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코끝이 따가웠다.사진작가들이 손에 꼽는다는 섬달천 노을은 황홀한 장관이었다. 그걸 보러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달려왔다. 그 노을을 덮고 자려고 바닷가에 텐트를 쳤다. 낚시로 잡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회 뜨고 탕 끓여 술 마셨다. 시장에서 산 붕장어와 돼지 목살도 숯불에 구웠다. 둥근 달 모양이라 하여 달천도인데, 눈썹달 곱게 뜬 밤하늘을 머리에 이고 친구 어머니께서 텐트 펼친 방파제로 위문을 오셨다. 직접 담근 묵은지를 집어 뭉텅뭉텅 썰어 주시는 어머니 손을 나는 오래 바라보았다. 김치 국물 스미어 발갛게 물든 손이 동백꽃처럼 환했다.이튿날 점심, 그 귀하다는 `하모 유비끼`(갯장어 샤브샤브)를 먹었다. 여름철에만 맛볼 수 있는 계절 별미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싱싱한 자연산 갯장어 살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요리인데, 아무리 먹어도 젓가락이 멈추질 않아 당황스러웠다. 황종권 시인 부모님께서 화끈하게 한 판을 더 추가하고, 회까지 시켜주셨다. 친구 잘 둔 복을 제대로 누린 셈이다.배를 타고 `황금 자라 섬` 금오도에 가 전라도 말로 `벼랑길`을 뜻하는 `비렁길` 산책도 하고, 바다에서 해수욕도 즐겼다. 루어 낚시로 큼지막한 무늬오징어 두 마리를 낚아 회와 통찜으로 요리했다. 낚시로만 잡을 수 있는 무늬오징어는 하모만큼이나 귀해서 나는 점심에 친구에게 받은 은혜를 어느 정도 갚게 됐다. 밤늦도록 향기로운 술이 비처럼 우리를 적셨고, 새벽에는 정말 시퍼런 비가 쏟아져 꿈결의 숙취까지 깨끗이 씻어줬다.섬의 노을과 새카만 밤 아래 앉아서 나는 친구에게 “세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아름답고 신기한 곳인데, 세상에 익숙해진 나는 점점 감동하지도 않고 또 놀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세상은 그대로이나 나는 자꾸 덤덤해진다. 삶에서 점점 경이에의 경험을 잃어버리는 게 안타까워 한 소리다.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는 것도, 시간만 나면 산과 물로 걸음을 옮기는 것도 어쩌면 삶의 경이로운 순간들을 애써 회복하려는 안쓰러운 몸짓인지 모른다.금오도 밤하늘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그날 새벽 내내 생전 처음 보는 경이로운 천둥벼락을 해변에 내리꽂았다. 민박집 티브이와 냉장고 콘센트를 서둘러 뽑고,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린 채 떨면서 겨우 잤다. 아침 하늘은 새벽의 흉포한 몽유병을 전혀 기억 못한 채 그저 맑았고, 그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모든 풍경은 다 새롭고 낯설었다. `감동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데는 역시 여행만한 게 없다.

2017-08-23

광부 화가 황재형

▲ 이병철 시인지난 주말 강원도 양구에 다녀왔다. 공병 장교 생활을 그곳에서 했다. 장맛비와 폭설 사이 민들레 피고 단풍 지는 일 세 번 겪으니 민간인이 됐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고, 혹한기 훈련 도중 할아버지 임종 소식을 들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 전방 밤하늘을 수놓던 은하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이제는 같은 문양으로 어우러져 가을빛처럼 잔잔하다. 양구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박수근의 고향이다. 군 복무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가족들이 몹시 보고 싶을 때 눈 쌓인 길을 걸어 박수근미술관에 가곤 했다. 꽁꽁 언 손발을 녹이며 미술관에 들어서면, 그림은 잘 모르지만 마음이 편했다. 가족과 이웃,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 앞에서 괜히 눈물 나곤 했다. 토요일, 미술관엔 서늘한 하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에선 젖은 낙엽 냄새가 났다. 재촉하지 않아도 가을은 계절의 문 뒤에 벌써 와 서성이고, 내 가슴 속에도 누구 것인지 작은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가난과 병, 온갖 불행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의 마음`을 놓지 않았던 박수근의 그림들을 보며, 한 예술가의 위대한 영혼 앞에 숙연해졌다. 그는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쯤이면 도착했을 것이다.부끄러운 얘기지만, 몇몇 화가 이름 주워들어 아는 주제에 미술을 좋아한다고 떠들곤 했다. 지적허영이 문제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 화가 아니면 외국 거장들의 그림이나 돼야 볼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문화 사대주의도 참 고쳐지지 않는 병이다. 박수근미술관에 오면 1전시관의 박수근 작품만 눈 여겨 보고는 2전시관 국내 현대화가 그림들은 아예 안 보거나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날도 학예사가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 작가인 황재형 화가 기획전까지 관람할 것을 권했으나 마음이 이미 저녁 술상 앞에 가 있어서 내키지 않았다.그런데 황재형 화가의 작품과 마주서자 내 뻣뻣한 태도와 애써 힘준 어깨의 긴장이 다 무너져 내렸다. `검은 울음`, `탄천의 노을`, `귀가`, `사망진단서`, `아랫목`, `이른 장마`, `광부초상`, `어머니` 같은 그림들을 볼수록 내 마음 속수무책이었다. 가슴 저리고 눈물 나는 걸 어쩌지 못해 숨골로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자꾸 오르내렸다. 그가 그려낸 탄광 막장 속 광부들의 삶에는 꾸며지지 않은 날 것의 숭고함과 감동이 있었다. 광부 화가 황재형의 삶을 들여다보면 더 먹먹해진다.황재형은 전남 보성 사람이다. 1952년 태어나 중앙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대에 이미 명성을 얻어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돌연 태백 탄광촌으로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며 살았다. 광부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캄캄한 갱도에 들어가 석탄을 캤다. 그러면서 광부들의 삶과 탄광촌이 쇠락하는 모습, 태백의 자연을 캔버스에 그렸다. 30여년을 광부 화가로 살았다.“70년대 후반부터 소재를 얻기 위해 탄광촌에 드나들었는데 어느날 문득 더 이상 관찰자로서만 그곳을 기웃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길로 짐을 싸 황지로 가는 열차를 탔습니다. 제대로 광부를 그리기 위해선 내 스스로 광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백, 정동, 구절 탄광 등을 전전하며 광부 생활을 시작했지요.”그는 “막장에선 삶의 마지막 희망이 별처럼 빛난다”면서 흑탄더미 속으로 팔을 집어넣어 별처럼 빛나는 것들을 만지고 끌어안고 울어 삼켰다. “예술가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작품을 온몸으로 사는 것”이라는 신념대로 자기 삶을 탄광 속에 불꽃으로 던져놓고 그 광휘가 밝히는 사람과 자연의 얼굴을 그렸다. 시커멓게 흐르는 탄천 위로 금빛 노을 내려앉은 그림 속 풍경을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아아 내 시는, 내 문장은 지금 어느 안락한 자리에 멀뚱거리고 서 있나.

2017-08-16

이재용 부회장의 말실수

▲ 이병철 시인이스마일 카다레가 쓴 `꿈의 궁전`은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국민들의 꿈을 수집하고 선별해 술탄에게 보고하는 국가기관 `타비르 사라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권력 암투를 다루고 있다. 물론 `타비르 사라일`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가장 은밀한 영역인 수면과 꿈을 관장하는 일은 전화 도청과 SNS 감시, 메신저 사찰 등 국정원이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벌인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 터키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지만 21세기 대한민국 현실과 대응하면서 지난해에 특히 더 실감나게 읽었다.우리의 의식이 활동하는 낮 동안 무의식은 통제되고 억압된다. 그러나 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수면 활동 중에는 무의식이 온갖 `상징`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꿈이다. 꿈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들을 수반한다.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아쉬움, 동경, 채워지지 않는 소망들에 대한 반응으로써 간절한 소원을 환각적 체험을 통해 성취된 것으로 표현하는 심리적 행위”이다.그런데 사람의 무의식이 꼭 꿈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꿈이 무의식이 머무는 비밀의 방이라면, 강박증과 말실수는 무의식이 표출되는 외부 통로다. 강박증은 지속적이지만 말실수는 순간적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말실수의 경험이 있다.프로이트는 말실수에 대해 연구하면서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무의식중에 밖으로 드러내는 행위이자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하는 현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몹시 허기진 중에 “배부르다”고 하거나 추운데 “덥다”고 하는 등 말이 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그러하다. 배부른 상태와 따뜻한 온기를 향한 욕망이 의식적 행위인 `말`에 불쑥 개입해 혼란을 일으킨 결과다. 애인과 데이트 도중 나도 모르게 전 애인의 이름을 부르거나 다급한 순간에 “엄마야” 외치는 것도 비슷하다.한 스님이 간신히 교통사고를 면하고는 “아이고 하나님!” 했다는 이야기나 어느 교회 방송실에서 “예수는 중”이라고 자막 실수를 낸 일화도 풍문으로 돈다. 말실수는 이토록 사소하고 일상적이다.좀 더 오묘하며 흥미로운 사례들은 따로 있다. 정치인들의 말실수다. 정치 메커니즘이나 복잡한 정략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므로, 그냥 있었던 일들을 나열만 해본다.지난 4월, 당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광주 유세 중 “문재인이 돼야 광주의 가치와 호남의 몫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11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서 “지난 15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인 지난해 4월, 이준석 후보 지지 연설 중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안철수 의원을 선택해주시기를…”이라고 말하고는 당황하며 발언을 고쳤다.이처럼 웃음을 유발하는 정치인들의 여러 사례를 그야말로 `압도`하는 강력한 말실수가 나왔다.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 공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사실을 진술하면서 “회장님이 살아계실 때부터”라고 말했다가 황급히 “회장님이 건재하실 때부터”라고 정정한 것이다.세간에서 이건희 회장의 건강 이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중에 벌어진 해프닝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말실수에 대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도 많다. 정말 단순하게 잠시 단어를 혼동하거나 생각이 뒤엉켜서 또는 감정의 격랑에 의해 내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프로이트의 주장이 신뢰할 만한 것이라면, “저는 재산 전체를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라든가 “직원들의 유급휴가를 확대하겠습니다” 같은 말실수들이 여기저기서 회자되길 바란다.

2017-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