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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그날

▲ 이병철 시인“언덕 위에 손잡고 거닐던 길목도 아스라이 멀어져 간 소중했던 옛 생각을 돌이켜 그려보네/ 나래치는 가슴이 서러워 아파와 한숨지며 그려보는 그 사람을 기억하나요 지금 잠시라도/ 달의 미소를 보면서 내 너의 두 손을 잡고 두나 별들의 눈물을 보았지 고요한 세상을”어릴 적 아버지 따라 전국 팔도로 낚시를 다녔다. 국도를 달리는 낡은 봉고차 카세트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들이 스무 해가 지나도 머릿속에서 재생이 되는데,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서유석의 `타박네`는 제목과 가수, 노랫말을 정확히 알고 있어 그동안 참 많이도 흥얼거렸다.그런데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그저 구슬픈 멜로디만 흐르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김연숙의 `그날`이다. 오랫동안 이 노래를 알고자 애를 썼다.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었다. 오직 아버지 봉고차에서만 듣던 노래였으나 내 사춘기의 시작을 알린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내 곁을 떠났다.아버지는 대기업에 납품하는 가방공장 사장이었다. 중학교 마치고 상경해 남대문 밑바닥서부터 잔뼈가 굵어 솜씨가 좋았다. 몇 년 만에 가게를 내고 곧 공장을 열었다. 덕분에 나는 유복한 유년을 보냈다. 우리 집 옥상엔 아버지의 골프 연습 시설이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주말마다 낚시를 다녔고, 엄마는 평일 오전에 에어로빅을 했다.그러나 IMF 폭풍을 피하지 못했다. 공장은 부도를 맞고, 집안 곳곳엔 차압딱지가 붙었다. 아버지는 지방을 전전하는 행상이 되어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다. 엄마의 새벽 식당일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박스 줍기가 시작된 것도 그 즈음이다.생각날 듯 나지 않는 무언가가 마음을 그토록 답답하게 하는 줄은 몰랐다. 그러다 십 수 년 만에 궁금증이 풀렸다. 동네 술집서 육회에 소주 먹다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돌연 굽혔던 허리를 세우고 귀를 쫑긋거렸다. 가게에 노래 제목을 물었고, 그제야 김연숙의 `그날` 임을 알게 된 것이다.노랫말이 고우면서 아프다. 아프기 보단 아리다. 짓이긴 꽃에서 꽃물 배어나듯, 노을강의 역광 위에 작은 물고기가 일으킨 파문 하나 퍼지듯, 그렇게 고우면서 아리다.중학교 1학년 때, 공장 부도 후 쫓기듯 가족과 떨어진 아버지가 일 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본다는 생각에 설레어 토요일 방과 후 성남 비행장으로 갔다. 봄날이었다. 에어쇼가 열리고 있었다. 비행기들이 일으킨 모랫바람 속에 아버지가 손을 흔들었다. 빨간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채 소시지를 굽고 있었다. 파인애플을 꼬치에 끼우고 있었다. 나는 철이 없어, 평소 좋아하던 군것질거리를 실컷 먹는다며 마냥 즐거웠다. 아버지는 환하게 웃었다.빨간 모자 아래 그 웃음이 얼마나 애처로운 것인지 깨달았을 때 나는 어른이 돼 있었다. 머리가 굵어 아버지가 어려웠다. 살가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게 됐다. 같이 목욕탕에 갈 수 없는 나이가 돼버렸다.20년 지난 봄날, 아들은 심장 부정맥 수술을 받았고, 아버지는 암이 될 뻔한 위 선종이 발견돼 곧 제거 수술을 받는다. 연초에는 할머니가 낙상해 고관절 골절을 입었다. 연이은 악재에 답답했는지 얼마 전 아버지는 그토록 미워했던 할아버지 묘소를 몇 해만에 찾았다. 나는 소중했던 옛 생각을 돌이켜 그려보며, 모두가 한 밥상 위에서 밥 먹던 시절을 추억한다. 그 시절은 아스라이 멀고, 아버지는 늙었다. 벚꽃 피면 시골집에 며칠 내려가 아버지 곁을 좀 지켜야겠다. `그날`을 듣는다. 1994년 어느 일요일 오후, 국도를 달리는 아버지의 봉고차. 졸린 햇살이 차창을 통과해 사다리꼴로 펼쳐지고, 떡밥 냄새와 물비린내 버무려진 차 안에 아버지가 태우는 담배 연기 가득하다. “달의 미소를 보면서 내 너의 두 손을 잡고….” 오후의 환한 빛 속을 은은하게 채우는 곱고 아린 노래, 장단을 맞추 듯 아이스박스에 담긴 붕어들이 이따금 꼬리지느러미를 푸드덕거린다.

2017-03-08

책 읽기와 연애

▲ 이병철 시인책 읽기는 연애와 같다. 400쪽 책 한 권을 남녀의 만남에 빗대어 보면 책 읽기와 연애의 상관관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처음 만난 남녀가 우선 서로의 외모에 주목하듯 처음 30쪽을 읽는 독자는 작가의 문체나 이야기의 도입부가 입맛에 맞는지를 재어본다.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 금방 책을 덮어버리는 깐깐한 독자들도 있다. 100쪽까지의 읽기는 서로의 마음을 엿보려 다가가는 과정이다. 첫인상에 이끌린 남녀는 지속적으로 만나며 상대의 마음을 들춰본다. 모든 것이 흥미진진하다. 조금씩 나타나는 작가의 생각, 사건의 전초와 인물 간의 갈등이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을 성급하게 한다. 본격적인 교제에 앞선 전 단계로 남녀의 만남에서 싱그러운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 시기다.잊히지 않는 100쪽 중 하나가 옥타비오 파스 `활과 리라`의 1부 `시편`이다. 그걸 읽을 때 내 방이 남태평양 산호초 군락처럼 느껴지고, 창밖의 빗소리조차 영롱한 벨플레이트 연주로 들렸다. 사랑에 빠지는 사이 우리는 이러한 착시와 환청을 경험한다.300쪽까지의 읽기는 열애의 날들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남녀는 거칠 것이 없다. 정신적, 육체적 교감이 완성된다. 항상 붙어 다니고, 자꾸 보고 싶다. 책을 손에서 놓질 않고,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 밥 먹으면서 읽고, 화장실 가서도 읽는다. 이때쯤 작가의 저술 의도가 명확히 나타나고, 갈등구조와 사건의 본말이 수면 위로 떠올라 흥미의 절정을 이룬다.마지막 400쪽까지의 읽기는 이별 연습이다. 만남은 흥미를 잃고, 대화는 차분해진다. 설렘이 사라진 대신 신중함이 생긴다.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걸어갈 방향을 모색한다. 결말로 향하는 책장은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 얇아지는 남은 책장의 두께가 안타까워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는다. 작가의 사상이 날개를 접으며, 갈등이 해소되고 사건이 종료된다. 주인공이 죽는 일은 다반사고, 시공의 배경이 허무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마르케스 `백 년 동안의 고독`처럼 말이다.책을 덮는 순간, 독자는 연인과의 헤어짐처럼 책과 이별한다. 그러나 여운이 남아 헤어진 남녀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듯 다른 책들을 읽기도 하고, 헤어지고도 이내 못 잊어 덮었던 책을 다시금 펼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책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서 `결혼`을 해버리기도 한다.책 읽기에는 남녀 관계와는 달리 사회 통념의 도덕이 존재하지 않는다. `장미의 이름`을 본처 삼고, `슬픈 열대` `건축 예찬` `부서진 사월` `김수영 전집`을 후처 삼을 수 있는 일부다처, 일처다부의 세계다. 폴 오스터와 연애하면서 후지와라 신야와 바람을 피울 수 있고, 사르트르와 카뮈를 동시에 사귀며 `문어발`을 걸칠 수도 있다. 모든 책에는 고유의 빛깔과 향기가 있으며 그것은 여러 이성의 다양한 매력과도 같다.`모래의 여자`를 읽을 때 나는 비밀스러운 연애를 했고, 이스마일 카다레의 책을 읽을 때엔 회색빛 우울을 지닌 여인과 사랑을 나눴다. 정민 교수의 책을 읽으면 전통 있는 가문의 규수를 만나고, 칼 세이건을 읽으면 쾌활한 천문학도 여대생을 만난다. 마티스나 샤갈에 관한 책을 읽고 있으면 큐레이터와 마주 앉아 지치지 않는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책 읽기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이며 다양한 가치들의 경험이다.두 인격체의 만남이 서로의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켜 내면을 성숙시키듯 책 읽기 역시 작가의 생각과 다양한 삶의 기록들이 독자의 정신을 확장시킨다. 이성과의 연애 경험이 책 읽기에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책 읽기가 이성교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책과의 연애 경험이 많을수록 이성과의 교제는 더 현명하고 풍요로워진다. 책과의 연애는 황홀한 로맨스다. 나는 오늘도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나의 궁전, 갖가지 매력의 연인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책으로 지은 세상으로 향한다. 그들과 브루클린의 밤거리를 지나 이베리아, 차마고도로 이어지는 데이트 코스를 사뿐사뿐 걷는다.

2017-02-22

넙치농어를 찾아서

▲ 이병철 시인4박 5일간 제주에 다녀왔다. 겨울이 본 시즌인 넙치농어 낚시를 위해서다. 우리 바다에 사는 농어는 일반 농어, 점농어, 그리고 넙치농어 세 종류다. 넙치농어는 난류성 어종으로 회유하는 성질이 있는데, 제주 남쪽인 서귀포 일대와 가파도, 지귀도, 마라도 등에서만 잡을 수 있다. 그 위쪽으로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시즌이라지만 그것도 날씨 등 조건이 맞을 때 얘기다.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꽝을 면하기 어렵다. 그 어렵다는 넙치농어 낚시에 도전한 것은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 경험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장비를 꾸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날씨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로 가 넙치농어를 노리는 것이었는데, 풍랑주의보로 일정 내내 배가 뜨지 않는다고 했다.계획대로 가파도에 갔다면, 한 방송사에서 낚시 장면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모든 낚시꾼들이 한번쯤 꿈꾸는 자신의 멋진 낚시 영상을 소장할 기회가 사라졌다. 촬영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계획이 가파도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결국 지역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 서귀포 남원 해안 일대를 낚시 장소로 택했다.넙치농어는 루어(물고기 모양 인조미끼)로 잡는다. 조류 흐름이 좋고 파도가 센 암반지대로 접근하기 때문에 방수복과 바지장화, 펠트화, 구명조끼 등을 착용하고 갯바위 끝에 서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낚시해야 한다. 일반 농어에 비해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라서 루어를 물어도 줄을 터뜨리거나 바늘을 휘어버려 빠져나가기 일쑤다. 서귀포 남원읍의 유명한 포인트인 일화연수원 앞 여밭, 해녀탈의장 부근, 양식장 배출수 나오는 자리 등 넙치농어가 있을 만한 곳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낚시했다. 파도가 쳐야 유리한데 북서풍이 몹시 세게 불었지만 바다는 오히려 잔잔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의 기온은 좀처럼 오를 줄 몰라 젖은 손이 꽁꽁 얼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방수복을 입었지만 파도에 젖은 옷 위로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온몸이 오들거렸다. 그 와중에 실수로 낚싯대를 부러뜨리고, 개당 2만원이 넘는 고급 루어 여러 개를 수장시켰다. 단 한 번, 루어가 바위에 부딪치는 느낌과 완전히 다른, `툭` 하는 입질을 받았지만 잡을 수 없었다.그렇게 나흘간의 넙치농어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야속한 하늘은 더욱 심술을 부려 눈보라가 거의 태풍 수준이었다. 하루 더 도전할 의지가 완전히 꺾인 채 패잔병 몰골을 하고 제주 시내 맛집 탐방이나 다녔다. 그런데 낚시를 망치고도 기분은 몹시 좋았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과 조르바가 전 재산을 바쳐 공들인 케이블카 사업을 말아먹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춤을 추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 대목에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라고 적었다. 낚시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올 때도 있고, 경험과 지식, 완벽한 계획이나 준비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아흔아홉 번 실패를 견디는 불가해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낚시는 인생과 무척 닮아 있다. 이 세계는 물론 우리 삶이 혼돈과 우연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낚시는 말해준다. 무엇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분석과 통계라는 것만큼 쓸모없는 게 또 있을까. 세상만사의 우연성을 인정하고 내 실패도 그 혼돈의 일부임을 수용하는 순간, 삶은 여전히 정복해야 할 것들로 넘실거리는 미지의 바다로 남는 것이다.넙치농어여, 기다려라! 또 한 번 실패하러 내가 간다.

2017-02-15

점수로 평가할 수 없는 삶

▲ 이병철 시인얼마 전, 러시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가 김연아의 기록을 경신했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기록한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 합계 228.56점보다 1.15점 높은 229.71점을 받았는데 `메드베데바가 김연아를 넘어섰다`는 투의 자극적 문구들이 뉴스 기사를 장식했다.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가 특히 극성이었다. 하긴 김연아의 점수는 절대 깨지지 않을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으니, 신기록 탄생이 크게 놀랄 만한 일은 틀림없다. 반대편에서는 점수 인플레 영향이라며 메드베데바의 기록을 평가절하하고 있다.정작 김연아는 이 일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다. 아마 언론과 인터뷰를 하더라도 진심으로 메드베데바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보낼 것이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개최국 러시아에 유리한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을 때도 그랬다. 김연아는 덤덤한데 주변에서 난리였다. 세계피겨연맹에 제소해야 한다거나 평창에서 보복해야 한다는 분노의 성토들이 들끓었다.필자가 존경하는 선생은 “이루었으나 더 이루어야 하므로 시는 언제나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술이나 학문처럼 점수를 매겨 평가할 수 없는 노력들은 `언제나 이루지 못하는` 경지를 피안(彼岸)에 두고 있다. 나는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김연아에게서 그걸 보았다. 이미 모든 것을 이룬 한 인간이, 언제나 이루지 못하는 경지를 향해 뛰었고, 마침내 다다랐다. 더 이루었다.김연아가 다다른 곳은 높고 빛나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 곳이야 이미 무수히 올라섰다.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점수로 다다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려는 그녀의 시야에 메달이나 등수 따위는 없었다. 그건 애초에 우리들의 범속한 화두였다. 마지막 경기는 어떤 다짐이나 약속도 아니고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와 스스로 작별하는 시간이었다.그때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얼음 위에 가장 빛나는 몸짓을 선물했다. 자기 자신에게 애틋하지만 담담한 인사를 고했다. 그건 사랑의 대상을 향한 최고의 예우로, 내가 살면서 본 가장 근사한 오마주였다. 4분 10초의 연기가 아니라 스케이트를 신었던 18년의 한 생애였다. 그리고 결국 `언제나 이루지 못하는` 경지를 이루었다. 김연아의 점수는 점수 너머에 있고, 그녀의 스케이팅은 피겨스케이팅 너머에 있다. 김연아를 생각하며 메드베데바의 경기 영상을 봤다. 확실히 기량이 뛰어나 보인다. 정말 잘한다. 그런데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예술성이 풍부해 보이거나 미적 고취를 일으키거나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기술적으로 훌륭하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 그녀가 김연아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김연아보다 뛰어난 스케이터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노래방에서 100점 맞는다고 해서 노래 잘하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예술인들을 감시 및 관리한 것도 예술을 점수 매겨 평가하려는 어리석은 발상의 결과다. 진정한 예술은 리스트 너머에 있다. 예술은 점수로 평가하는 지원사업 따위에 종속돼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숫자와 점수들이 나를 대신하고 있는가. 등수와 학점으로 능력은 물론 인성까지 평가받고, 영어 점수와 연봉으로 삶 전체가 저울대에 오른다. 정육처럼 등급과 무게로 계량되는 숫자놀음의 굴레에 우리는 갇혀 있다.그러나 삶을 위한 노력들은 점수를 매겨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은 늘 이룬 것 같지만 이루지 못하고, 언제나 이룰 수 없는 꿈을 쫓아 나아가는 무모한 여정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점수 너머에 있다. 나라는 한 사람을 점수와 기록이 결코 말해줄 수 없다. 사랑이나 행복, 또는 꿈이라는 추상들, 그 이루지 못하는 걸 이루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며 한 걸음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17-02-08

말의 힘을 믿으며

▲ 이병철 시인2014년, 손학규씨가 정계은퇴를 선언했을 때, 언론인 김정남씨가 한 인터넷신문에 기고한 `손학규 정계은퇴를 보며 생각한다`라는 칼럼 중 흥미로운 내용이 있다.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손학규가 내세운 `저녁이 있는 삶`이 `시참(詩讖)`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과연 그가 `저녁이 있는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탄식이다.`시참`의 사전적 의미는 “우연히 지은 시가 뒷일과 꼭 맞는 일”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웠던 손학규 자신이 만덕산으로 들어가 두해 동안 남녘의 저녁놀과 밥 짓는 연기, 밤 부엉이 우는 소리 가운데 살았으니, 정말 기가 막힌 시참이 된 셈이다.시참이라는 면에서 보면 시 쓰기는 자기 운명의 섬뜩한 묵시록을 작성하는 일인 것 같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고 쓰고 정말 박제 되어버린 천재 이상이 떠오른다. 친일과 독재 찬양으로 얼룩질 삶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라고 선포하고는 정말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은 서정주는 또 어떤가. 기형도는 1989년 초에 발표한 시 `빈집`에서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쓰고는 얼마 뒤인 3월 7일, 심야영화가 상영되던 파고다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200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나무도마`라는 강렬한 시로 당선된 신기섭 시인은 등단 1년도 채 되지 않은 그해 12월 4일, 눈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글은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걸까. “옥상에 흰 눈이 쌓이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는데 새벽에 출장, 영천행. 무언지 모를 불길한 기분…. 옥상에 쌓이는 눈은 나 아니면 아무도 밟아줄 사람이 없는데”라는 독백이 비극적인 시참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시참에 대해 생각하며 새삼 말의 힘을 실감한다. `말하는 대로`라는 노래가 그저 단순한 대중가요로만 들리지 않는다. 말이 가진 강력한 힘을 믿는다면 타인에게 또 스스로에게 아무 말이나 막 던질 수가 없다. 지금도 아프리카 원시 부족에서는 주술이 유효하다. 언어를 통해 복과 저주를 기원하고, 병을 고치거나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말을 통해 생명이 창조되었다. 그때 언어는 대상을 묘사하고 수식하기 위한 외부적 장치가 아니라 대상을 직접 창조하고 진화시키는 내재적 힘이었다. 언어가 부여한 기질에 따라 생명들은 세상에서 살아나갔다. 그 언어를 로고스(logos), 원리와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창조론적 관점에서 만물의 탄생과 습성을 결정짓는 강력한 힘이다.말은 힘이 세다. 말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 습관들,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언어들이 나 또는 타인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이는 말 대신 살리는 말,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의 말, 저주 말고 축복의 언어를 더 많이 써야 하는 이유다.우환이 생겼다. 팔순 넘은 할머니께서 낙상을 입어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노인 고관절 골절은 치료 후에도 거동이 제한돼 합병증 위험이 큰 만큼 치명적이다. 나를 업어 키우고, 폐지 주워 교복을 사 입힌 할머니다. 평생 어두운 눈과 먹먹한 귀로 사셨다. 이제 눈은 보이지 않고 보청기 없이는 듣지 못한다. 몇 년 째 외출도 못했는데, 또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계셔야 한다. 새해 복을 기원하는 덕담들의 은총으로부터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다. 올해도 많은 분들이 내게 축복의 인사를 건네주신다. 감사하면서, 죄송한 요청이나 이번만은 나 대신 할머니에게 그 말의 힘을 전해주시라. 내 복 말고 할머니의 건강을 빌어주시길 부탁드린다. 말의 힘을 믿으면서, 나는 요즘 새벽기도에 나가고 있다.

2017-02-01

똑같이 하지 맙시다

▲ 이병철 시인폴 버호벤 감독의 2007년작 `블랙북`은 2차 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치에 의해 가족을 잃은 유태인 여인이 복수를 다짐하며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에 가입한다. 그녀는 독일군 대위를 유혹해 나치 사령부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레지스탕스 내부자의 배신으로 동료들이 살해되는데, 그녀가 누명을 뒤집어쓴다. 나치 패망 후 그녀는 독일군 부역자로 몰려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한다. 성난 시민들은 독일군과 동침한 여자들의 머리를 밀고, 벌거벗겨 매질을 한다. 침을 뱉고 오줌을 갈기고, 커다란 통에 가득 모은 인분을 쏟아 부으며 키득거린다.실제 있던 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지만, 현실이 훨씬 처참하다. 네덜란드처럼 프랑스 시민들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잔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법 절차가 마련되기 전에 독일군 병사들을 거리에서 즉결처형했다. 처형에 앞서 눈알을 뽑는 등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 부역자를 묶어둔 채 그의 딸을 성폭행하거나 독일군 정부였던 여성을 동물과 교미하게 하는 야만적 행위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눈먼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해방감과 승리감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아드레날린의 과도한 분출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성이 마비된 결과이기도 하다.부모님께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너도 똑같이 그러면 안 된다`는 꾸짖음이다. 어디 가서 맞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꼭 그대로 되갚아주려는 불같은 성미를 그 가르침 덕분에 많이 달랬다. 똑같이 그러지 말라는 말씀 안에는 `똑같이`의 정도를 뛰어넘어 미쳐 날뛸 것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던 것 같다. 더 나쁜 인간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똑같이 해주겠다고 이를 가는 사람치고 더 심하게 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누군가를 적으로 간주하면 승리가 절실해진다. 그로부터 받은 상처들, 피해들을 따져가며 상태가 역전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 판이 뒤집어져 이기게 되면 정당한 심판과 보상의 범위에 굳이 포함될 필요 없는 비열한 욕망들까지 마구 개입한다.김기춘과 조윤선이 구속되던 날, 어느 진보 시사평론가가 자신의 SNS에 `구치소 입소하면 항문 검사도 하느냐`고 묻는 글을 올렸다. 경험자들과 풍문 들은 자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수감자가 마약이나 자해도구를 숨겨올 수 있기 때문에 한다고 한다. 그게 뭐 대수인가. 구치소에서라도 법적 절차가 공평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물은 것이라면 그냥 보고 넘겼을 텐데, 그 글에는 저열한 욕구가 담겨 있어 불쾌했다. 여성인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한 성희롱 의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거기 달린 댓글들은 과도한 음담패설이라 옮길 수도 없다. 피해의식과 패배감이 지나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승리에도 흥분하며 전리품만 챙기려 든다. 순간의 기쁨에 취해 다음 싸움을 위한 준비들을 놓쳐버린다. 그러다가 죽 쒀서 개 준다.범법자에 대한 법적 심판보다 엘리트가 몰락한 게 더 통쾌한 모양이다. 특히 상대가 매력적인 경력과 외모를 지닌 여성이라는 데서 더 큰 희열과 승리감을 누리는 듯하다.`쌩얼`이 어떠니 콧구멍 속 이물질이 어떠니 성적 농담들을 하며 히죽대는 모습이 졸렬하다. 국기문란 주범들을 옹호할 생각은 한 치도 없다. 그들은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법과 이성의 범위를 벗어난 조리돌림은 곤란하다. 정의가 이겼다면, 빛이 어둠을 이겼다면 정의와 빛에 걸맞은 승자의 관용과 품격이 필요하다.그들과 똑같이 하지 말자. 이 성숙한 태도 없이 정권 교체가 된다면, 끔찍하다. 억눌린 욕망들, 일그러진 패배감이 승리를 맛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야만과 폭력이 정의를 참칭하며 날뛸 지 걱정된다.

2017-01-25

불조심 포스터

▲ 이병철 시인여수 수산시장에 불이 났다. 명절을 앞두고 발생한 화재라서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지난 11월 말 대구 서문시장에서 큰 불이 난 데 이어 연말에 또 대구 팔달시장이 화마의 습격을 받았다. 한 달 보름 사이에 재래시장 세 곳이 불에 탔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연이은 악재다. 시장과 상인들이 재기할 수 있게끔 피해 복구와 보상이 잘 이뤄져야 한다.포항에 가면 꼭 죽도시장에 들른다. 거대한 개복치나 돔베기(상어 고기)가 널브러진 광경은 진기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과메기나 피데기 따위를 사고, 소머리곰탕 한 그릇 먹는다. 디저트로 호떡 입에 물고 좁은 골목을 지나면서 상인들을 살펴본다. 주름진 얼굴, 불긋한 살갗, 단단해 보이는 손톱, 전대, 해진 방석, 바지장화, 졸음, 박장대소, 수다, 사투리, 욕설 같은 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노라면 웃음도 나고 뭉클해지기도 한다.점포와 좌판들마다 난로 한 대씩 열을 뿜고 있다. 나물 파는 할머니는 난로를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다. 아케이드 공간이라고 해도 겨울 추위는 어쩔 수 없다. 바닥 냉기와 웃풍을 견디며 종일 장사하려면 전열기구는 필수다. 재래시장들의 화재 뉴스를 접하고 죽도시장을 걸으니 담요와 방석 가까이 놓인 난로들이 신경 쓰인다. 외부로 아무렇게나 노출돼 물기나 충격에 취약해 보이는 콘센트들도 그렇고, 식당의 대형 가스레인지도 위험해 보인다.화재 위험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포항시에서도 그것을 인지해 지난 12월 화재 예방 특별 점검과 화재 초기 진압을 위한 소방차 진입 훈련을 실시했다. 규모와 방문객 수, 시가지 인접성 등을 따져 보면 죽도시장 화재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화재 예방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가방 공장에 불이 났다. 지하실에서 열 명 정도가 일하던 작은 업장이다. 소식을 듣고 엄마와 함께 달려갔다. 연기와 화염이 공중으로 치솟고, 아버지와 직원들이 간신히 밖으로 대피했다. 주변에 주차된 차들의 후미등이 열기에 녹아 일그러지고 있었다. 울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를 보면서 불이 참 미웠다. 그날 일기장에 불을 만든 사람을 원망하는 문장을 잔뜩 써 넣었다.그 경험을 바탕으로 `불조심 포스터`라는 시를 썼다. “불이 혀를 내밀어 집을 삼키는 그림을 그릴 거야. 우리 집이 그렇게 타버렸으니까”로 시작하는 그 시는 초등학교 때 불조심 포스터를 그려 상 받은, 그러나 불쾌했던 기억의 재구성이다. 장려상 받은 그림을 교장실 앞에 전시하게 됐는데, 담임이 자꾸 그림에 손을 대게 했다. 더 실감나게 그리라는 것이다. 여러 번 덧칠을 해도 맘에 들지 않았는지 급기야 뺨을 때렸다. 그걸 “불을 더 빨갛게 그리라니까,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 화끈거리는 뺨 위로 햇살이 눌러붙었다”라는 구절에 담았다.그 시에서 `불`은 인간 욕망의 은유다. “불이 데려갈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겠어. 아니 내가 불이 되어 당신들을 데려갈 거야”라는 문장은 타자의 욕망에 의해 자기 욕망이 좌절된, 그래서 일그러진 욕망을 갖게 된 어느 소년의 독백이다. 욕망은 확실히 불과 같다. 잘 조절하면 어둠과 추위를 견디게 하고, 날것을 익혀주지만 조절에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다. 최순실이 그랬다.조기 대선이 예상되면서 대권 후보들이 바쁘다. 꽃동네를 찾고 지하철 타면서 서민 흉내도 낸다. 포럼을 출범시키고, 강연을 한다. 가스 레버 조절을 잘못해 불이 치솟듯 컨트롤 안 된 욕망이 막말이나 경거망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겨울철 화재만큼이나 정치인들의 욕망 불길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불이 국민들을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전하게 해줄 것인지 잘 가려야 한다. 잘못된 불은 경제와 안보, 문화예술, 민주주의, 국민의 삶 모두를 처참하게 불태울 것이다. 이미 겪은 일이다. 권력욕과 물욕이 지나친 자가 방화범이다. 집집마다, 우리들의 마음마다 불조심 포스터 한 장씩 그려야 할 때다.

2017-01-18

순리와 역리

▲ 이병철 시인주말 날씨가 겨울 같지 않고 따뜻했다. 볼락 낚시를 하러 포항에 있었는데 낮 기온이 15도까지 올랐다. 지난 주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번 겨울 전체적으로 포근하다. 소한에도 춥지 않아 계절을 착각한 개나리가 곳곳에서 피어났다. 유채꽃과 동백이 만발한 제주도는 여행 욕구를 자극시킨다.추운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따뜻한 겨울이 반가울 만도 한데 막상 그렇지 않다. 자연의 이치가 어그러지는 게 언짢다. 삼한사온이니 엄동설한이니 다 옛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겨울엔 좋아하는 낚시도 쉽지 않고, 빙판에서 자빠지기 일쑤고, 귀찮게 내복을 껴입어야 하고, 난방비 걱정도 해야 하지만 지나온 겨울을 추억하면 얼음처럼 아름다운 순간들은 모두 맹렬한 추위 속에 있었다.동네 비탈길에서 썰매 타던 생각이 난다. 구멍가게 앞을 지날 때면 뜨거운 김 내뿜는 호빵 찜통 앞에 한참 서서 침을 삼켰다. 스무 살에 운동화 신고 올랐던 태백산 상고대의 숨 막히는 절경을 잊을 수 없다. 밤새 안 써지는 글을 붙잡다가 한숨 쉬러 반지하를 나섰을 때 세상의 모든 지붕들이 폭설에 덮인 걸 보고 눈물을 흘린 적 있다. 발 시려 금방 그만뒀지만 맨발로 눈 쌓인 골목을 걷기도 했다. 연인과 맞잡은 손을 점퍼 주머니에 넣고 천원 지폐와 동전 털어서 산 군고구마 나눠먹던 겨울도 몹시 추웠다.알래스카에 자리 잡은 상층 고기압의 영향으로 한반도 북쪽에 제트기류가 형성, 북반구의 찬 공기를 막고 있는 것이 포근한 겨울의 원인이다. 나는 봄부터 가을까지 강에서 쏘가리 낚시를 즐기는데, 요즘 날씨가 따뜻하다보니 1월인데도 여기저기서 쏘가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겨울 쏘가리 낚시에 성공한 이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부러워 죽겠다. 나도 한번 가볼까 고민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쏘가리는 겨울엔 활동하지 않는다`는 속설에 담긴 순리를 지키고 싶어서다.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기 전의 이야기겠지만, 쏘가리 낚시는 매화 필 때 시작해서 첫 서리 내릴 때 마친다고 들었다. 더 일찍 개시해서 더 늦게 마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넉 달에서 다섯 달쯤은 굳이 하지 않는다. 쏘가리도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 대신 겨울에 제철을 맞은 볼락이나 호래기 등을 잡는 것으로 심심함을 달랜다. 좋아하는 야구도 겨울엔 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려면 적당한 휴식과 공백이 필요하다. 아무리 춥지 않다 하더라도 내게 겨울은 쉼과 멈춤의 계절이다. 그게 나는 순리라고 생각한다.얼마 전, 나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를 확인한 일이 있다. 나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타인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타인의 평가가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거나 내 전부를 나타내줄 수는 없지만, 그 평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나를 A로 알지만 세상 사람들은 B라고 한다면, B를 인정하는 게 순리다. 세상의 이치란 불변하는 것 같아도 변하기 마련이다. 세상이 다 제멋대로 뒤죽박죽이더라도 꿋꿋이 제자리에 서는 순리가 있고, 변화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그 질서에 적응하는 순리도 있다.세상이 바뀌어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 또 때로는 세상이 바뀌면 부지런히 그 변화를 쫓아가야 한다. 세상이 변한다고 중심을 버리는 것도 문제지만 새로운 시대를 낡은 사고방식으로 사는 것도 문제다. 새해가 밝았으니 내 삶에서 무엇이 순리이고 역리인지 가려봐야겠다. 어쭙잖게 부화뇌동하는 구석은 없는지, 미련하게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착각 속에 머물러 있는 데는 또 없는지. 거울 앞에 서면 20대 때와는 많이 달라진 내 모습에 마음이 처참하다. 날렵한 몸매와 턱선은 온데간데없고 웬 슈렉이나 사스콰치가 종종 서 있다. 시간의 섭리라고 생각할 게 아니다. 여기에는 순리 대신 역리가 필요하다. 이 낯선 변화가 완전히 나를 지배하기 전에 다이어트에 성공해야 한다. 나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나이에 맞는 멋을 유지하는 것, 그게 2017년 나의 순리다.

2017-01-11

닭의 해를 사는 법

▲ 이병철 시인새해가 밝았다. 조류 인플루엔자로 가금류 3천만 마리가 생매장됐는데 `붉은 닭의 해`다. 이건 무슨 은유인가. 달력도 참 짓궂다. 하루 빨리 방역에 성공해서 더 이상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피해를 입은 축산농가와 유통업계 종사자들이 슬픔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들이 힘을 합쳐 도와야 한다. 부화하려는 병아리가 안에서 두드리면 그 소리를 들은 어미 닭이 밖에서 부리로 쪼아 알을 함께 깨뜨리는 것을 줄탁동시라고 한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막기 위해 농민들이 몸부림쳤지만 방역당국이 제대로 된 대책을 내지 못했다. 줄탁에 실패한 것이다.천만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줄` 했더니 바위보다 견고하던 커다란 알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검과 헌재 탄핵심판이 어떻게 `탁` 할 것인지 궁금하다.온갖 수난과 고초를 겪고 있는 마당에 닭의 해라니 닭 입장에서도 운명의 장난 같을 것이다. 십이간지 다음 순서인 개한테 한번 바꾸자고 할 수도 없고 이제 와서 오리나 꿩을 대타로 내세울 수도 없고 정말 곤란하게 됐다. 2017년의 마스코트로서 여기저기 얼굴 내밀어야 하는데 고병원성 바이러스 덩어리 취급 받고 있으니 큰일이다. 한쪽에서는 매일 죽어나가고, 한쪽에서는 새해 희망을 노래해야 하는 이 지독한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그래도 새벽닭은 운다. 동족의 주검 위에서 힘차게 울어 아침을 끌고 온다. 좀 모자란 행동을 하는 사람을 흔히 `닭대가리`라고 부르는데, 닭은 조류 중에서 특히 지능이 낮아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한다.그걸 좋게 포장해 `나쁜 일을 잘 잊는 낙천성`이라고 해두자.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다시 아침을 여는 단순한 용기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때다.닭의 해니까 닭처럼 살아야겠다. 닭은 생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무척 강한 짐승이다. 못 먹는 게 없고, 어떤 상대와도 당당히 싸우며, 멋진 벼슬과 오색 깃털로 자신을 치장한다. 시골집에서 방목해 키우는 닭들에게 유해어종인 배스를 던져준 적 있는데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지네나 독사를 먹고 자라 털이 다 빠지도록 그 맹독을 이겨낸 닭은 `약닭`으로 불린다. 닭은 솔개나 매하고도 싸운다. 사람에게 쫓기다 궁지에 몰리면 푸드덕 날아올라 얼굴을 쪼기도 한다. 싸움닭들이 혈투를 벌이는 걸 보고 있노라면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경기는 격투도 아니다. 투지와 근성이 남다르다. 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날개 친다. 날지 못하는 새의 몸부림만큼 처절하게 아름다운 것은 없다. 새벽마다 목청껏 울고, 끊임없이 알을 낳는다. 닭만큼 성실한 짐승도 없다. 멍청할 정도의 낙천성과 절대 기 죽지 않는 용기, 왕성한 활동력, 성실함, 안 되는 줄 알면서 계속 시도하는 도전 정신을 나는 닭에게서 배우고 싶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닭에 깃든 사람의 마음, `닭`이라는 상징이 가리키는 따뜻한 정서를 항상 기억하고 싶다. 예컨대 씨암탉 잡는 장모의 정성 같은 것이다.앓아누웠을 때 연인이 끓여준 삼계죽 한 그릇에는 얼마나 애틋한 마음이 들어있던가. 동네 치킨집에 모여 술 마시며 신세 한탄하다 하나 남은 닭다리를 끝내 남겨두던 내 가난한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기쁠 때나 슬플 때, 아플 때나 안 아파도 기운 낼 일 있을 때 사시사철 나는 닭을 먹고 또 먹었다. 서른네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닭고기다.유년의 겨울밤, 술과 노동과 사람에 취해 눈길 위를 비틀거리는 아버지 언 손에 비닐봉지 들려 있다. 달력종이로 감싼 통닭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비닐에 물방울로 맺힌다.영하의 추위 속에서 노릇노릇한 냄새가 아버지보다 먼저 현관을 열고 방에 든다. 통닭이 식을까 봐 잠바 속에 넣고 왔는지 아버지 옷에서 고소한 기름내가 난다.어린 아들 맛있게 먹으라고 통닭을 품안에 넣는 그 마음으로 한 해를 살고 싶다.마음의 온기를 꺼뜨리지 않고 가족과 이웃, 소외된 이들, 힘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2017-01-04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 이병철 시인또 한해를 살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스스로가 대견해서 뭉클하다. 큰 돈을 벌거나 대단한 성공을 거둔 건 없다. 사는 형편은 지난해나 마찬가지고, 여전히 미혼이다. 살이 더 쪘고, 지난해보다 못생겨졌다. 눈에 띄게 진보하고 발전한 것 없지만 감격스럽다. 어떻게든 살았고 지금 살아있다. 그게 눈물겹도록 기쁘다.얼마 전, 지인들과 함께 올해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 세 가지씩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빴던 일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반면, 좋았던 일은 너무 많아 교묘하게 두세 개 묶어 발표하는 꼼수를 썼다.경북매일에 매주 칼럼 쓴 것과 문학상 수상 등 글로 이룬 나름의 성과들을 묶어 3위에 올렸다. 이 글이 50번째 칼럼이다. 펑크 없이 50주를 왔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많은 약속들로 이뤄진 여정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자축할 일이다. 매주 칼럼을 쓰다 보니 시나 비평 등 문학적 글쓰기에도 순기능이 된 것 같다. 문학상 상금으로 빚도 갚고 밀린 방세도 냈다.박사과정을 수료한 것과 모교에 시간강사 출강하게 된 것을 `학문적 경사`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여 2위에 올렸다. 더는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돼서 벌써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다. 모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봄과 가을 내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누린 `취미의 폭발적 중흥`을 1위로 꼽았다. 그 맛에 살았다.2월엔 북극해가 파도치는 노르웨이 트롬소 해변에 텐트 치고 자면서 낚시로 대구를 낚았다. 매화 피는 봄부터 단풍 가을까지 섬진강으로 매주 쏘가리 낚시를 갔다. 내친김에 노와 오리발로 이동하는 밸리보트를 사서 큰 호수 구석구석을 누볐다. 바다낚시도 자주 했고, 제주도에도 두 번 다녀왔다. 그 사이 차는 5만km를 주행했다. 사회인야구 리그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보았고, 투수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취미가 삶을 끌고 왔다. 내년에도 이렇게 살고 싶다.따지고 보면 나빴던 일도 많다. 지금은 회복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다. 더 내려갈 데도 없는 신용등급은 끝내 더 하락했다. 여러 도전에서 실패했고, 꼭 되었으면 하는 일은 거절당하거나 아예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나에게서 멀어지는 마음들을 끝내 붙잡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연재해나 재난, 전쟁, 사고, 불치의 병을 겪은 것도 아니다. 범죄자로 전락하거나 억울한 누명을 쓴 일도 없다. 가족을 잃지도 않았다. 하긴 몇 해 전 큰 교통사고로 다리 두 군데가 으스러졌을 때도 불행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 생을 긍정하고 낙관하는 건 천성인지도 모르겠다.“1년 내내 고생해 거두어 반쯤 말린 포도가 한 아름씩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광경을 보았다. 통곡 소리가 더 커졌다. 나는 문간에 서서 수염을 깨물던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가 그 뒤에 서서 훌쩍훌쩍 울었다. `아버지.` 내가 소리쳤다.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시끄럽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나는 그 순간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나는 그 순간이 내가 인간으로서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위대한 교훈 노릇을 했다고 믿는다.”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의 한 대목이다. 죽고 병들고 저 하나 어쩌지 못하는 인간이 실존 한계와 싸우며 몸부림치는 모습에 나는 늘 감동한다. 재해, 가난, 병, 죽음 등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모든 불행 가운데서도 먹고 마시고 웃고 노래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인간다움`은 위대한 것이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캄캄해도 나는 아직 나로 살아 있다. 작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한 해를 잘 살았다. 세상은 멈추고, 때로 후퇴하고, 또 때로는 침몰하지만 나는 움직이고, 나아가고, 가라앉지 않았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 분명한 증거는 없다. 모든 게 다 없어져도 나만은 없어지지 않았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주말 지나면 새해 첫 월요일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2016-12-28

땅에는 평화

▲ 이병철 시인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나라는 어수선하고 그 틈을 타 생활물가가 올랐다. 그래선지 거리에 오색 불빛과 캐럴송이 희미하다. 토요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예고되어 있다. 트리 전구 대신 광장의 촛불이 도시를 가득 메울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자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개사한 캐럴송을 부르며 성탄을 맞이할 것이다.`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성탄 메시지다. 하늘 영광이야 사람들이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찬란하고 위대하다. 땅의 평화가 우리들 몫이다. 그런 면에서 촛불 집회는 성탄의 의미를 빛나게 한다. 촛불 집회도 붐비고 술집과 레스토랑, 호텔, 펜션도 붐빌 것이다. 상업과 쾌락에 치우쳐 세속의 이벤트 데이로 변질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것도`땅에는 평화`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나는 방탕과 유희쯤이야 예수님께서도 넉넉히 기뻐하시리라 생각한다. 나는 예수님이 아주 `쿨`한 분인 줄로 믿는다.그러나 나 혼자 누릴 때보다 이웃과 함께 나눌 때 평화는 널리 퍼진다. 얼음을 녹이고 어둠을 밝히는 건 촛불처럼 작은 마음들이다. 자원봉사나 성금 기부는 대단한 실천이다. 꼭 봉사나 기부 아니더라도 평화를 실천하며 이웃과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성탄전야 하루만이라도 배달 음식 그릇을 설거지해서 내놓는 것이다.택배 기사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분리수거를 좀 더 꼼꼼하게 한다거나 차를 벽면에 바짝 붙여 세우는 것도 작은 실천이다.20대 때 크리스마스이브는 친구들과 진탕 마시고 노는 날이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 온 세상 떠들썩한 날 방구석에 앉아 티브이 보고 화투패나 맞추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엄마는 일 나가고, 동생은 나가 놀고, 나마저 밖으로 나돌면 두 분이서 참 외롭겠다 싶어 언제부턴가는 매년 성탄전야에 꼭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사서 할아버지 할머니랑 초에 불붙이고 소원도 빌고 했다. 물론 그러고는 다시 밖에 나가 실컷 놀았다. 이젠 그럴 수도 없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안 계시고, 할머니는 앞을 못 본다. 기쁜 날 가족과 함께 하는 것도 `땅에는 평화`다.머리맡에 양말 걸고 자는 짓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했던 것 같다. 산타클로스가 엄마라는 사실을 눈치 챈 건 그보다 앞서서다. 유치원 겸 태권도장 다니던 일곱 살 때는 산타로 분한 원장에게 완전히 속아 “너 만날 동생 괴롭힌다며?”하는 말에 오금이 저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미국 프로레슬링에 빠져있던 열 살 무렵엔 엄마 산타가 머리맡에 둔 피규어 선물이 맘에 안 들어 심통 났다. 정의의 사도 헐크 호건이 아니라 비열한 악당 홍키통크맨이었기 때문이다.그걸 고르고 사면서 흐뭇했을 엄마 얼굴을 20년도 더 지나서야 겨우 그려본다. 그때 엄마와 지금 엄마, 마음도 표정도 그대로인데 주름살과 흰머리가 다르다.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부모들은 애들 잠든 사이 까치발로 몰래 다가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아둘 것이다. 산타 옷 입고 수염 붙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흥이 많은 집이라면 애꿎은 애완견이 루돌프 용역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 어린이들의 판타지를 위한 일이다.그러나 어른들도 아이처럼 꿈꾸고 소망할 수 있다. 나는 캐럴송 중에서 나탈리 콜의 `Grown-up Christmas list`를 좋아한다. 국내외 여러 가수들이 불렀지만 김효수가 부른 것을 특히 즐겨 듣는다.말 그대로 `어른의 크리스마스 소원 목록`인데, “고통 받는 삶이 없기를, 전쟁도 없기를, 시간이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모든 사람이 친구를 갖고, 정의는 항상 이기며,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노래다. 이 마음이야말로 `땅에는 평화`다.이 땅의 권력자들은 어떤 성탄 소원을 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기를` 하고 기도하면 곤란하다. 아마 뭘 빌어도 안 이뤄질 게 분명해 보인다. 산타할아버지는 누가 착하고 나쁜지 알고 계시니까.

2016-12-21

`라라랜드`와 `청와대 극장`

▲ 이병철 시인`라라랜드`를 봤다. `위플래쉬`를 연출한 다미엔 차젤레의 뮤지컬 영화다. 일 년만의 극장 나들이였다. 그동안 마땅히 볼 게 없었다. 영화에 까다로운 감식안을 들이대거나 지식깨나 가진 것은 아니다. 그저 현실과는 좀 다른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걸 멋지게 보여주는 영화에 구미 당긴다. 영화는 내가 살지 못한 삶의 대리체험, 스크린은 다른 세상의 입구다.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땅에 발붙인 채 머리로는 하늘을 나는 일이 아닐까.일상은 삶의 중력에 붙잡혀도 상상은 우주를 유영하는 것, `라라랜드`도 그렇다.이상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꿈을 좇아가다가도 때로는 자기 열정을 위반하며 스스로 꿈에서 멀어지기도 하는 두 남녀가 등장한다. 그들의 희로애락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천문대 언덕의 노을 풍경이 대학로 낙산공원과 꼭 닮아서 나는 더 큰 현실감을 느꼈다.하지만 주인공들이 밤하늘로 날아올라 춤추며 노래할 때, 황홀감에 나른했다. 다른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상상력은 아니지만, 전체 맥락과 분위기에 어울리게 연출되었다. 터무니없이 공상적이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않았다.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상상이다. 공감은 거기서 일어난다. 다미엔 차젤레는 나랑 동갑인데, 나는 속으로 `너 나랑 비슷한 상상을 했구나?` 혼잣말했다.영화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만큼 전하려는 메시지나 감성자극이 인간과 무관할 수 없다. 사랑, 정의, 슬픔, 공포 같은 추상적 관념들을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표현하느냐의 문제다. 주인공이 하늘을 날고, 거미로 변하고, 시간여행을 하더라도 인간 보편의 정서를 만지면 관객은 공감한다.`땅에 발붙인 채 머리로는 하늘을 나는 것`이 내용과 형식의 균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상적 형식에만 치우쳐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마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디 워`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같은 경우가 `뜬구름`이다.철없는 짓이지만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드래곤볼`에 심취해 있다. 유년기 때 만화책으로 다 봤는데 몇 장면이 문득 궁금해 한두 편 내려 받아 본 것이 실수였다.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고 25분짜리 153부작을 일주일 만에 다 보고 말았다. 손오공과 그 친구들은 장풍으로 산을 날려버리고, 구름 타고 날고, 여러 초능력을 발휘한다. 구슬 일곱 개를 모으면 용이 나타나 소원을 이뤄준다는 설정도 허무맹랑하다. 그런데 손오공이 죽은 할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이라든가 친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영화를 통해 체험하고픈 다른 세상이라는 것도 결국 우리 마음속에 늘 존재하는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 항상 있지만 현실엔 없는 것,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세계를 예술은 보여줘야 한다.`드래곤볼`도 강함에의 동경, 영원한 삶을 향한 소망, 사후세계나 신에 대한 호기심이 그 바탕을 이룬다. 신화나 전설도 마찬가지다. 거인이 등장하든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든 간에 거기엔 인간 보편의 소망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기 마련이다.`청와대 극장`이 왜 폭삭 망해 주저앉았나. 관객인 국민들의 소망은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감독, 주연, 조연 모두 황당무계하고 초현실적인 대사와 행동으로만 일관했기 때문이다. 국민 아니 인간 보편의 정서는 아무데도 없고, 그저 주인공들끼리 구름 위에서 희희낙락했다. 웃길 땐 웃겨주고 감동이 필요할 땐 감동 주는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등장시켜야 하거늘 국민들 슬픔과 분노의 지점은 포착 못하고 `암 유발` 인물들만 잔뜩 내보냈다. 국민들은 민생이라는 땅에 발붙인 채 머리로는 끊임없이 더 좋은 세상을 가리키는 지도자를 기다린다. 당장 현실의 고단함이 나아지지 않더라도 상상만큼은 풍요로울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한다. 지금 이 `촛불의 도시`(city of candles)가 언젠가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꿈들로 빛나는 `별들의 도시`(city of stars)가 되기를 소망한다.

2016-12-14

테러리스트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

▲ 이병철 시인장 보러 동네 마트에 갔다. 비 오는데 마트에서 우산꽂이를 준비해두지 않았다. 마트 내부에 물 떨어질까 봐 우산을 입구에 세워두고 들어갔다. 라면과 깻잎 통조림, 캔맥주 따위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먼저 선 아주머니가 계산대 위에 젖은 우산을 올려두고 있었다. 계산대는 물로 흥건했고, 물건 올려둘 공간이 없었다. 캔맥주 쥔 손이 시렸다. 짜증이 났다.송년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지하철 문이 열렸는데 문 앞에 서 있던 젊은 커플이 애틋한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들 때문에 못 내리는 전동차 내 승객들과 빨리 타려는 승강장의 승객들이 뒤엉켰다. 그런데도 아랑곳 않고 문 가운데를 막아 선 채 사랑의 말을 속삭였다. 열불이 났다. 그냥 지하철이란 말이다. 입영열차도 아니고, 은하철도도 아니고, 유라시아 횡단열차도 아니다. `너희들은 반드시 헤어질 것이다. 헤어지는 방법도 아주 비참하게 찢어질 것이다` 속으로 저주를 퍼붓고 내렸다.내 행동이 타인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지하철 한 시간만 타도 그런 사람 여럿 본다. 이어폰 밖으로 쿵쾅거리는 음악소리, 두세 사람 서 있을 공간을 독차지한 백팩,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쩍벌`들, 욕설, 비속어, 웃음소리로 소음공해 만드는 무개념 통화 등 유형도 여러 가지다. 비 올 때 출구 나가기도 전에 우산 펴는 짓 좀 안했으면 좋겠다. 비 한두 방울 맞는 게 그렇게 싫은가?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우산 펴느라 길 막고, 뒷사람한테 빗물 튀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나는 공익을 위해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태안 만리포에 기름 닦으러 갔던 것이나 ARS 전화로 수재의연금과 불우이웃 성금 내본 게 전부다. 그래도 공해는 끼치지 않고 살았다. 이타적으로 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기적이지는 않았다. 남을 도와 이롭게 하지는 못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스스로 견디질 못한다. 내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는 게 싫은 만큼 나로 인해 타인이 불편을 겪는 것도 싫다. 휴대폰은 항상 무음 모드, 대중교통 내에선 급한 전화 아니면 통화도 잘 하지 않는다. `내리는 승객 먼저`, `하차하는 승객을 위해 내렸다가 다시 타기`는 시민의 당연한 에티켓이다.어쩌면 내가 개인주의자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택시에 타거나 식당에서 밥 먹을 때, 기사나 가까이 있는 종업원이 들을까봐 친구와 사적 대화도 잘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 올바른 개인주의는 `나`라는 개인이 보장되는 만큼 타인 역시 개인으로 존중하고 보호해주는 것이다. 나와 타인 사이의 선을 함부로 넘지 않는 개인들이 이룬 사회야말로 진정 건강한 공동체라고 나는 믿는다.사람들이 비눗방울 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자주 상상한다. 일종의 보호막 같은 것이다. 모두 똑같은 반경의 둘레 속에 저마다 `자기범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무례, 양심불량, 부도덕으로 그 방울을 뚫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보호막을 찢는다. 피해 입은 사람들이 항의하면 그들은 `내가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사회의 재산과 생명, 안전을 짓밟고 파괴하는 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면, 개인의 고요와 휴식, 자기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내밀한 취향을 훼방하는 자들 역시 테러리스트다.원하는 걸 해줄 수 없다면 싫어하는 짓이라도 안 해야 된다. 국민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인데 그건 안하고서 싫어하는 일만 골라 한다. 불 난 시장에 가서 피해 상인들의 호소 한 마디 듣지 않고 사진만 찍고 왔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 줄도 모르고, 여전히 국민들의 비눗방울엔 관심 없이 자기 보호막만 지키려 한다. 매주 광장에서 국민들은 자기 `개인`은 포기하고 타인의 `개인`은 존중하는 멋진 공동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대통령을 지키려는 이들만 딴세상 사람 같다. `이기적 유전자`가 있는 모양이다. 한 사람 때문에 5천만명이 불편하다는 걸 왜 모를까.

2016-12-07

뒤통수 조심합시다

▲ 이병철 시인친구와 함께 예비군 훈련을 가기로 했는데 훈련 당일에 친구가 오지 않았다. 나는 사실 그날 훈련받기가 좀 부담스러웠지만 친구를 배려하느라 하는 수없이 그러기로 했던 터다. 혼자 훈련받고 혼자 밥 먹었다. 짜증과 분노가 밀려왔다.철없던 범죄의 기억을 고백하자면, 중학교 3학년 때 외삼촌 오토바이를 몰래 끌고 나와 친구들과 타고 논 적 있다. 무면허였다. 관악산 관음사까지 이어진 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배드민턴 치고 하산하던 주민이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다. 덤불에 숨었다. 조금만 버티면 경찰이 철수할 것 같은데, 초입에 어설프게 숨었던 한 놈이 발각됐다. “너는 훈방 조치한다”는 회유에 넘어간 그놈이 우리의 은신처를 줄줄이 불었다. 그때 정말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뜻을 모아 행동을 같이 하기로 했는데 중요한 순간에 이탈해 연대를 와해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하자! 하자!” 앞장서서 외치다가 진짜 하면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그런 걸 `뒤통수 친다`고 표현한다. 최전방에 동반 입대한 두 친구가 있는데, 동고동락하자 해놓고 한 녀석이 군에 연줄 있던 아버지를 통해 `꿀보직`으로 도망갔다. 전방에 혼자 남은 친구는 나중에 유격훈련 조교가 돼서 배신자를 `빡세게` 응징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주 나오는 안줏거리다.숱하게 들은 뒤통수 이야기가 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회군`이다. 학생 시위를 주도하던 서울대 총학생회 지도부 내에서 온건파 심재철과 강경파 유시민의 입장이 엇갈렸다. 수십만 대학생들은 원래 청와대까지 행진하기로 했으나 총학생회장 심재철의 난센스로 인해 서울역에서 해산하고 만다. 유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내려진 심재철의 결정에 의해 결국 그 많은 인파는 뿔뿔이 흩어졌다. 한 데 운집한 엄청난 시위대에 쩔쩔매던 전두환 신군부는 알아서 사분오열된 대학생들을 손쉽게 제압했다. 휴교령과 계엄령이 확대되고, 사흘 뒤 광주의 비극이 시작됐다.2002년 대선 전날 밤 단일화 약속을 깨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던 정몽준도 있다. 대북관의 차이가 막판까지도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실은 노무현이 공동 유세현장에서 자신 대신 정동영과 추미애를 차기 리더십으로 추켜세운 것에 심기가 상했다. `소주 러브샷` 연대가 무너져 사면초가에 몰린 노무현이 정몽준 집 앞에서 문전박대 당하던 모습이 기억난다.연대의 가치, 공동체의 비전보다 개인의 손해나 이득이 더 크게 보이는 순간 개인은 언제든 이탈할 수 있다. 언제든 뒤통수 칠 수 있다. 손해나 이득은 금전적인 것, 정치적인 것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데 집단 속 일부 개인은 그것들을 주시하며 열심히 계산기 두드린다. 때로는 영웅심리나 지나친 이데올로기 경도가 연대 이탈의 동기가 되기도 한다.광화문 집회에 참가했던 네 명의 시민단체 회원이 북악산 넘어 군부대를 지나 청와대로 진입하려다가 검거된 해프닝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철없는 짓을 영웅적 행위로 착각해 실시간으로 SNS에 중계하고, 파출소에서 독립투사마냥 당당했다. 무슨 김신조 일당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영웅이 되고 싶은 개인의 한심한 욕망이 촛불을 퇴색시킨다. 연대의 목적을 망각하고 제멋대로 날뛰다 공동체 전체에 피해를 입힌다. 이런 것도 뒤통수 치는 행위다.인파가 늘어나고, 한목소리로 같은 소망을 외칠수록 연대를 와해하려는 자들의 회유와 왜곡, 날조, 폭력 조장 등 방해 공작도 거세질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 `나`로 광장에 설 때 취약하다. 집회가 거듭될수록 `개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날 것이다. 그들에 의해 연대에 균열이 생겨선 안된다. 화합의 광장이 혹시라도 분열의 자리가 될까봐 노파심이 든다. 물론 작은 잡음은 큰 함성에 묻히겠지만 비폭력 시위, 자발적 환경 미화, 의경 보호, 준법 철저 같은 미덕이야말로 촛불 연대를 결속하는 힘이다.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 뒤통수 조심하면서.

2016-11-30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

▲ 이병철 시인친구 황종권 시인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해주러 지난 주말 여수에 다녀왔다. 간 김에 이틀 머물며 유명한 통장어탕도 먹고 낚시도 했다. 보리멸과 붕장어 따위를 잡았다. 내내 따뜻했는데 낮엔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따사로운 남도의 가을빛 아래서 파란 숨 실컷 쉬었다. 돌산대교 건널 때 눈앞에 펼쳐지는 여수 바다를 `원샷`했다. 트림 한번 시원하게 했다. 나라꼴로 꽉 막힌 가슴이 좀 트였다.여수에 머무는 동안 기분이 몹시 좋았다. 경사 생긴 친구가 술값을 전부 부담해서 그랬다. 술 얻어먹고 내기 당구도 이겼다. 옥돔만한 초대형 노가리 구이와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새벽까지 취했다. 바다도 좋고 물고기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이 제일 좋았다.친구의 친구와 악수하고 바로 친구가 됐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여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다. 그날 시청 앞에서 `여수시민 비상시국회의`가 열려 종일 바빴다고 한다. 술집에서는 너나없이 현 시국을 걱정했다. 처음 본 사이인데도 금방 끈끈해졌다. 한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원수끼리도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와 나 모두 상대가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가웠다. 사람의 마음은 논리와 인과를 생략한다.다음날 점심, 황종권 시인 집을 찾았다. 내 차 타고 같이 서울에 가기로 했다. 여수 국동의 조용한 주택가, 뒤로는 구봉산이 서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진 동네다. 정겨운 세탁소와 이발소 간판을 지나 골목에 들어섰다. 아버님께서 집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반갑게 손 잡아 주시며 아무 한 일 없는 내게 자꾸 `고맙다`고 하셨다.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친구 집에서 고릿한 청국장 냄새와 밥숟가락 부딪는 소리, 식구들의 왁자한 웃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마주한 이웃집 감나무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친구 여동생은 편한 복장으로 있다가 현관에 선 나를 보고는 기겁하며 도망갔다. `엄마, 오빠 친구 왔어!` 소리에 밖으로 나오신 어머님도 마찬가지 무방비 상태였다. 머리 한쪽은 잔뜩 눌려 떡이 됐고, 다른 한쪽은 사자 갈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오메 어째야 쓰까잉. 들어와서 밥 좀 먹고 가셔요.` 급히 사투리를 표준어로 교정하시느라 `버퍼링`이 발생했다. 어머님은 아들의 시상식에 제일 예쁜 옷, 그러나 지금은 입을 수 없는 옷을 입고 가기 위해 일주일간 고구마만 드셨다 한다. 어머님이 내 손을 잡고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 하셨다. 촌놈을 서울에 보내놓으니 늘 불안하실 것이다. 돌아선 등으로 쏟아지는 친구 부모님의 눈빛, 남도 햇살, 까치 소리가 다 따스했다.축하해주러 함께 왔다가 고향집에 김장하러 먼저 올라간 이병일 시인 집에 갔을 때도 느꼈던 온기다. 마이산이 솟아 있는 전북 진안 백운면 허름한 농가다. 거기 팔순 넘은 노부모가 아직도 고추 농사, 마늘 농사짓고 계신다. 9남매 막내인 이병일 시인 큰형이 58년 개띠다. 몇 해 전 그 집에 갔을 때, 병일 형은 백운면 농협에 들러 한우 등심을 끊었다. 등급과 부위 표시가 되어있는데도 `고기 좋은 놈으로 주세요.` 하는 말이 고기로 스며들어 마블링 몇 겹 더 만드는 듯했다. 이불과 메주덩이가 나란히 놓인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프라이팬에 구워먹는 소고기 맛은 환상적이었다. 어머님께서 퍼주신 밥은 먹어도 먹어도 그릇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서울 올라갈 때 늙은 호박이며 감자며 고추 말린 것 잔뜩 챙겨주면서 연신 `고맙소, 고맙소.` 하셨다. 그날도 참 햇살이 좋았다.사람의 마음에서 바다 냄새, 흙냄새가 난다. 사람임에도 사람의 마음을 가져본 적 없는 이들은 절대 모른다. 요즘은 사람의 마음마다 촛불이 켜져 있다. 촛불도 좋고 바다도 좋다.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에 머물고 싶다. 광장에 가야겠다. 포항에 가야겠다. 포항에도 그리운 사람의 마음이 있다. 잔잔한 포구가 아니라 비바람 몰아치는 장쾌한 망망대해다. 그 바다와 마주 앉아 과메기에 소주 한잔 해야겠다.

2016-11-23

별이 쏟아지는 광장으로 가요

▲ 이병철 시인백만 촛불이 타올랐다. 사는 곳, 나이, 하는 일이 각각 백만 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한 이름으로 모였다.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던 국민대통합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세종로를 흐르는 촛불은 용광로 쇳물 같았다. 함성은 뜨겁고 이성은 냉정했다. 집회는 내내 질서와 평화를 유지했으며, 폭력이나 비양심이 드물게 삐져나오려 할 때마다 자체 정화되었다. 사람들은 일그러진 국가 면전에다 국민의 위엄과 품격을 보여주었다.시위라기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MC의 진행과 가수 공연, 시민들의 자유 발언은 선동이나 호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위트 넘치는 해학과 풍자, 자기반성 등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무척 세련된 것이었다.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 저명인사들도 있었지만, 내빈 소개 같은 의전 따위 끼어들 수 없었다. 광장의 주인은 오직 국민이어서 국민이라는 이름 외에 다른 직함이나 자격은 무용했다.교복 입은 학생들이 흥분한 일부 어른들로부터 경찰을 보호했다. 기성세대 눈에 인터넷 폐인으로만 보이던 `이태백` 청년들이 “지지율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탓해” 같이 재치 번뜩이는 팻말을 들고 집회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30대 젊은 아빠는 이제 갓 말을 배우는 어린 아들에게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해서 화가 난 사람들이 야단치러 모인 거”라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줍고, 줄 서서 지하철 타고 귀가했다. 백만 촛불집회는 국민의 분노만 나타낸 것이 아니라 성숙한 의식, 젊은 세대 문화의 건강하고 역동적인 힘을 함께 보여주었다. 반짝이는 눈빛, 미소와 어우러진 촛불들은 꼭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 같았다.십여 년 동안 광장을 외면하고 살았다. 효순·미선 추모 집회가 열린 2002년 11월, 광화문 거리에 나가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분노와 슬픔의 대열이 평화롭게 거리행진을 하던 중, 거대한 깃발과 붉은 머리띠들이 대열로 비집고 들어와 과격하고 폭력적인 구호를 부추기는 걸 보았다. 특정한 정치 목적을 지닌 이데올로기 집단에 의해 일반 시민들의 순수한 마음이 이용될 수 있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버거킹과 스타벅스에 앉아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을 향해 욕설과 야유를 퍼부으며 거기서 나오라고 강요하는 모습은 인민재판이나 다름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광장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그러나 이제 광장에 다시 나가려고 한다. 12일 집회에는 오래 함께 하지 못하고 잠시 몇 걸음 보탰을 뿐이지만, 내게는 큰 변화이자 용기다. 딱딱하고 날카롭던 광장을 부드럽게 바꿔낸 국민들 덕분이다.예전엔 사람 많이 모인 곳에서 언제나 추태가 벌어졌다. 어릴 적 야구장에 가면 어른들이 욕설을 하고 경기장에 쓰레기통과 술병을 집어던졌다. 관중석에 불을 지르는 미치광이들도 있었다. 연고지 정치인을 연호하며 상대팀 관중들과 패싸움을 벌이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성들부터 어린 아이까지 누구나 흥겹게 응원가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세대가 바뀌니까 문화도 달라진다. 광장에 대한 내 마음의 장벽을 허문 것은 박근혜 정부를 향한 국민 공통의 분노이기도 하지만, 집회문화, 아니 세대문화의 성숙함과 쾌활한 에너지다. 광장은 이제 정의로운 사회참여의 장인 동시에 즐거운 소통과 교류가 이뤄지는 놀이공간이다.세종로를 도도하게 흐르는 촛불의 강을 보며, 추운 밤거리에 어깨를 견고히 부여잡은 민중의 산맥을 보며 “저 산맥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오천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국가도 통치자도 먼지처럼 사라지지만 민중은 늘 그 자리에 서서 울고 웃고, 흐르며 살고 죽는다. 백만 촛불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말도 없이 또 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탐욕스러운 위정자들에 의해 이 터가 더럽혀질 때면 또 다시 산을 이루고 강물로 흐를 것이다. 나도 그 강의 한 물굽이가 되고 싶다. 즐겁고 신나게.

2016-11-16

사람이 그리운 계절

▲ 이병철 시인섬진강변에 `살뿌리가든`이라는 매운탕집이 있다. 지금은 폐업했다. 지난해까지 그곳 주인이었던 새터민 이경철씨 내외에게 정말 많은 신세를 졌다. 귀한 몽골 말젖술을 얻어 마시기도 하고, 공짜 밥을 얻어먹기도 했다. 방값도 안 받고 뜨끈한 아랫목을 그냥 내어주었다.그 집 식구들이 전부 휴가를 가 식당이 텅 빈 적이 있는데, 그 땐 아예 생활하는 안방을 쓰라고 방 열쇠 숨겨놓은 곳까지 알려주었다. 몹시 고마워 나도 그 집 갈 때마다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남원 시내에 `향토가든`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이전 개업했다. 그때 두어 번 찾아가 맛난 어탕을 먹었다. 봄에 만나길 약속하고 돌아서자 겨울이었다.늘 그 자리에 있겠거니, 별일 없이 잘 계시겠거니 생각하며 다음에 가야지 미루다가 가을이 되었다.지인들에게 살뜰히 연락을 챙겨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동안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름 전, 섬진강에 갔다가 불쑥 그 집을 찾았다. 과일바구니 하나 사들고 남원 진고개 먹자골목에 들어섰는데, 향토가든은 없고 웬 대패삼겹살집이 있었다. 가게도 사람도 다 바뀐 것이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급히 장사를 접고 연락처도 바꿀 만한 변고가 있던 걸까 걱정이 되었다. 진작 한번 찾아가지 못한 게 미안하고 속상했다. 허탈한 마음에 과일바구니 손잡이만 자꾸 매만졌다.엊그제, 동네 노가리집에 가 맥주를 마셨다. 몇 달 전에 문을 연 집인데 처음 가봤다. 내가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백반집을 하던 `금식이 아빠`가 평생 모은 돈으로 낸 가게다. 나는 금식이 아빠가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이나 낮이나 늘 낡은 오토바이에 철가방을 싣고 음식 배달을 다녔다. 하루도 쉬는 걸 보지 못했다.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그릇에 담아주었고, 싼값에 팔았다. 장사를 마친 늦은 밤이면 경광봉을 들고 방범대원으로 봉사했다. 그분이 근사한 가게를 갖게 되어 내가 뭉클하고 기쁘다.서빙을 하는 젊은 남자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내가 쳐다보자 그도 나를 힐끔힐끔 보았다. 계산을 할 때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이 집 아들이죠?” 물었다.“이름이 주화 맞죠? 형은 금식이. 옛날 `골목식당`하던 때, 그러니까 우리 어릴 때 골목에서 매일 같이 놀았는데, 기억나요?” 그제야 그가 반갑게 웃으며 나를 알아보았다. 20년 만에 본 사람인데, 단 한번 눈맞춤에 20년이 고작 하루처럼 느껴졌다.지금은 없어진 그 골목의 풍경, 함께 뛰놀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 그 골목 허름한 공장에서 빵 포장지 만들던 우리 엄마, 일 마친 엄마 손잡고 집으로 걸어가던 저녁의 달빛, 골목식당서 순댓국에 소주 마시고 불콰해진 아버지, 그 젖은 어깨와 무뚝뚝한 손, 평생 단 한 번의 따뜻한 말, 가로등 불빛에 스민 유년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가까이 있어도 20년 동안 한 번을 못 본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보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볼 수 없게 되고, 궁금해 찾아가면 아주 알 수 없는 먼 곳으로 더 달아난다. 그리운 사람은 계속 그립고, 그리움 바깥에 있던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추억을 몰고 온다.찬바람 부니 사람이 그리워진다. 사람에게로 가던 마음의 오솔길마다 단풍들었다. 사람 빈자리는 시퍼렇게 시리고, 사람 든 자리는 봄볕 너울진다.대통령도 사람이 그리워서 최순실을 옆에 두었다. 혼자라서 외로웠다고 울먹이며 고백했다. 외로우면 외로운 자리에서 내려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면 될 텐데, 안타깝다. 우병우도 사람이 그리웠는지 후배 검사들과 이야기꽃 피우러 검찰청에 간 모양이다. 손님에게 따뜻한 차도 내어주고 점퍼도 빌려주는 검찰청 사랑방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하면 족발도 시켜 먹고 술도 한잔 마시고 밤새 고스톱도 치다가 아침엔 사우나도 갈 것 같다. 그렇게라도 외로움을 달랬으면 좋겠다. 앞으론 진짜 외로워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016-11-09

대통령이 대통령이 아니었다

▲ 이병철 시인그동안 대통령 아닌 사람을 대통령으로 잘못 알았다. 대통령은 꼭두각시였고, 뒤에서 조종한 사이비교주의 딸이 진짜 대통령이었다. 최순실과 그 작당들이 벌인 국정농단과 국기문란의 구체적 사실들이 계속 파헤쳐지고 있다. 캐도 캐도 끝이 없다. 메가톤급 충격의 뉴스가 너무 많이 쏟아져서 하루 종일 특보만 방영해도 될 정도다. 웬만한 특종은 특종도 아니다.`순실의 시대`, `국가적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라가 엉망진창이다.사이비교주 최태민 딸인 최순실, 그 딸인 승마선수 정유라, 최순실 언니 최순득, 조카 장유진, 영상감독 차은택, 호스트바 종업원 고영태, 헬스 트레이너 윤전추….이런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라는 신조어)들이 대통령과 청와대, 내각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이 나라를 통째로 구워삶아먹고 있었다. 십상시보다도, 라스푸틴보다도, 정난정과 윤원형보다도 더 교활하고 괴이한 자들이다. 국민들은 지금 웬 떠돌이 약장수 악극단에게 속아 가산을 다 털린 기분이다. 근본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장기판의 말처럼 쥐고 보드게임하듯이 국정을 갖고 놀았다.수습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꼭두각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다. 호흡기에 의지한 채 간신히 헐떡이고 있다.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민이 수습해야 한다. 국민의 분노는 산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중이다. 시국선언과 촛불집회,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가 매일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껍데기만 남은, 아니 껍데기조차도 온전치 않은 상태다. 직책을 유지할수록 더 비참해질 뿐이다. 국민의 뜻에 따르는 것만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애국으로 보인다.최순실에게 속은 대통령이 불쌍하다며 동정론을 꺼내드는 이들이 있다. 최순실에게 속은 대통령이 불쌍한가 아니면 대통령에게 속은 국민이 불쌍한가?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을 퍼뜨려 물타기하려는 시도는 이제 안 먹힐 것이다. `일베` 마저 등을 돌린 지금 어버이 연합이니 엄마부대니 하는 극우시민단체들이 박근혜 동정론을 펼치는 한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최초 보도한 언론사를 향해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만 아는 이들이다. 썩은 동아줄 잡았다가 처참한 나락으로 추락해봐야 한다.전위적 옷차림의 팝 가수 레이디 가가의 내한공연에는 사탄·마귀 물러가라며 통곡으로 기도하던 보수 기독교계는 왜 샤머니즘과 사이비 이단종교를 향해서는 대적기도하지 않는가? 무당이 무서워서 목사들이 침묵하는 중인가? 아니면 억울함을 당한 대통령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자고 신도들에게 외치는 중인가? 보수종교계,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일베, 재래시장, 국밥집, 경로당, 춘천 국회의원, 교수, 의사, 기업 모두 잘못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허깨비에 홀렸다는 걸 알았으면 억울하고 분해서 목 놓아 울어야 한다.목 놓아 우는 건 국민들뿐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잃었지만, 국민이 있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분노하고 울고 추운 거리에 나와 촛불을 밝히는 국민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모두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상처 입힌 자들은 어딘가에 숨어 분노의 불길이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국민들은 이 치욕과 고통 앞에 당당히 서서 진실을 향해, 정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제야 시작되었다.검찰은 얼마 전 미르재단 압수수색하면서 빈 박스를 들고 사진을 연출했다는 의심을 받았다.촬영된 사진을 보니 정말 빈 박스였다. 눈 가리고 아웅은 더 이상 안 된다. 국민들은 이제 속지 않는다. 무녀와 꼭두각시에게 이만큼이나 철저히 속았는데, 어떻게 더 속을 수 있겠는가. 안 속는다.

2016-11-02

문단의 성폭력 사건을 보며

▲ 이병철 시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시 창작 수업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주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과제물로 시험을 대체해서 수업을 쉬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휴강한 덕분에 모처럼 며칠 시간을 내 충주, 대구, 남원을 거치며 낚시를 즐겼다. 실컷 놀 수 있어서 휴강이 좋은 건 아니었다. 학생들한테 시에 대해 말한다는 게 부끄러워 그랬다. 시인들이 아름답지 않은데, 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매일 폭로가 업데이트되고 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 끔찍한 기억을 증언하는 피해자들의 언어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혼자라서 외롭던 이들이 서로 손잡아 견고한 연대를 이루고 있다. 폭로가 무서운 자들은 밀려오는 파도를 피한답시고 반성문을 써 올리고, 피해자에게 종일 연락을 시도하며 용서를 구했다. 앞에서는 점잖은 척, 뒤로 저질러온 비도덕적 말과 행동들이 세상에 명백해지자 어디론가 밀항을 시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피할 곳은 없다. 마땅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학생들에게 낸 과제는 `우리 시의 아름다운 시어를 찾아서`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 중에 최근 성폭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시인들의 시도 몇 편 보인다. 당혹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다 그런 건 아니라고, 안 그런 시인들이 훨씬 많다고, 침소봉대하지 말라고, 시와 시인은 별개라고 말해야 할까? 너무 비겁하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들 중에는 내가 잘 아는 이도 있다. 그의 행실에 대해 전해들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직접 보고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른 체했다. 침묵과 방관은 가해를 동조하는 일이다.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남자 시인이 시를 가르쳐준다며 여자 습작생을 불러 성폭력을 저질렀다. 피해자 중에 미성년자도 있다. 평소 동경하던 시인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반짝였을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몇몇 시인들은 그 마음의 투명한 데를 파고들어 `등단`이니 `입시`니 `문단` 운운, 알량한 권력을 과시하며 협박했다. 그 권력구조의 무게에 짓눌려 깨져버린 꿈들, 찢긴 상처들이 너무 많다. “나는 돌아왔지만 내 꿈은 돌아오지 못하고”라던 이성복의 시구가 떠오른다.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같이 분노하고 아파해야 하는 일이다. 개인 인성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잘못된 구조 안에서 수많은 묵인과 방조, 외면이 암세포처럼 자라나 썩은 것이기 때문이다.시를 가르쳐줄 수 있다는 그 오만한 생각부터 바꿔야한다. 시는, 옆에서 도울 수는 있어도 가르칠 수는 없다. 나도 과외를 한 적이 있지만 부끄러워서 금방 그만 뒀다. 지금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는 시 창작 수업의 목표는 `시 쓰는 기술보다 시 쓰고 싶은 마음을 위해서`이다. 목표대로 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문예창작과에서 문학을 공부한 내가 스승에게 배운 것은 시가 아니라 시 쓰는 사람의 태도, 시 쓰는 정신이었다.태도는 가르칠 수 없는 자들이, 정신은 가르칠 수 없는 자들이 고작 시 찍어내는 기술이나 전수하면서 제 지위와 힘을 이용해 추악한 짓을 일삼는 게 지금 문단의 자화상이다. 낯 뜨겁다고 해서, 제 발 저리다고 해서 누구도 이 치욕을 부정해선 안 된다.내일모레면 학생들과 다시 만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시에 환멸을 느낄 학생들에게 여전히 시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텐데. 밥 딜런의 노래를 내내 들려줄까, 시인이 되고 싶은 우편배달부와 파블로 네루다의 우정을 그린 영화`일 포스티노`를 보여줄까. 아니면 백련산 단풍 그늘에서 야외수업을 할까. 시 쓰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이성복, `그날`)은 마을로 오라고, 차마 손짓할 수 없다.

2016-10-26

밥 딜런과 찔레꽃

▲ 이병철 시인“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한 대목이다. 나는 이 노랫말만큼 근사한 시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태어나 처음 자기존재의 근원과 죽음이라는 한계에 대해 본능적으로 감각한 한 소년의 두려움과 고독이 느껴진다. 노래에서부터 문학적, 철학적 사유가 촉발된다.“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라고 노래한 이문세의 `옛사랑`도 그렇다. 이영훈이 쓴 노랫말은 한 편의 시다. 가사가 환기시키는 보편 정서와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같은 감각적 이미지는 좋은 시가 가져야 할 미덕으로 충분하다. 이런 경우 시와 노래 사이에는 종이에 인쇄되느냐 아니면 가수 목소리에 실려 나오느냐의 차이만 있게 된다.한 문학평론가는 조용필 노래가 지닌 문학성에 대한 고찰과 그의 전기를 담은 `조용필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영훈의 `광화문 연가`와 루시드폴의 `물고기 마음`은 노랫말을 책으로 엮은 가사집인데 이미 7년 전에 출간된 바 있다. 류근 시인의 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김광석이 부른 것이나 김남주의 시를 안치환이 노래한 것은 무척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시에 현대음악을 입혀 랩과 보컬, 댄스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트루베르`의 음악을 나는 좋아한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 덴버 듀엣의 유사품이든 아니든 간에 박인수, 이동원이 부른 `향수`는 아름답다.시와 노래, 문학과 음악은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 보완한다. 노래의 통속성이 인쇄문자의 엄숙함을 입어 정형 미학을 얻기도 하고, 문학의 경직감이 노래를 통해 한결 가볍고 편해지기도 한다. 나는 노래 부르는 것만큼이나 시 암송하는 걸 좋아하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 서정주의 `화사`나 `자화상`, 이성복의 `연애에 대하여`, 정지용의 `유리창1`, 전윤호의 `늦은 인사` 같은 시를 외우다 보면 목소리의 떨림과 굵기, 고저장단, 박자, `꺾기`가 신경 쓰인다. 시를 마치 노래처럼 대하는 것이다. 꼭 노래 부르는 기분이 든다.기독교에서는 찬송을 `곡조 있는 기도`라고 표현한다. 문학적 수사와 철학을 담고 있는 노래를 곡조 있는 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시와 음악은 하나였고 중세시대 음유시인은 곧 가수였다. 조동진, 김민기, 정태춘 등 문학가들이 유독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다.이들에게는 문학가들도 `노래하는 시인`이라든가 `시 쓰는 가객` 등 시인의 칭호와 대우를 쉽게 허락한다.그런데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받은 건 못마땅한 모양이다. 그의 노랫말이 시적이지 않아서, 문학적으로 뛰어나지 않아서 비판하는 건 수긍해도 대중음악가가, 가수가 어떻게 노벨상을 받느냐고 따지는 꼬장꼬장한 태도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동일성의 원리로 타자성을 배격하는 폭력은 나치나 IS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지나친 순혈주의, 정통주의 역시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번 노벨문학상을 두고 문학의 굴욕이니 조롱이니 하며 탄식하는 사람들 모습에서 `장미의 이름`의 호르헤 수도사가 언뜻 보인다.노벨문학상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누가 받으면 또 어떤가. 상이 문학과 예술,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문학이 인간에게 정신의 풍요 또는 궁핍을 준다면 밥 딜런의 노랫말은 충분히 문학적 기능을 하고 있다.나는 내 마음의 노벨문학상 장사익 `찔레꽃`을 들으면서 가을처럼 깊어지는 중이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아, 울고 싶다. 나는 이보다 좋은 시를 쓸 수 없을 것만 같다.

2016-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