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황종권 시인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해주러 지난 주말 여수에 다녀왔다. 간 김에 이틀 머물며 유명한 통장어탕도 먹고 낚시도 했다. 보리멸과 붕장어 따위를 잡았다. 내내 따뜻했는데 낮엔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따사로운 남도의 가을빛 아래서 파란 숨 실컷 쉬었다. 돌산대교 건널 때 눈앞에 펼쳐지는 여수 바다를 `원샷`했다. 트림 한번 시원하게 했다. 나라꼴로 꽉 막힌 가슴이 좀 트였다.
여수에 머무는 동안 기분이 몹시 좋았다. 경사 생긴 친구가 술값을 전부 부담해서 그랬다. 술 얻어먹고 내기 당구도 이겼다. 옥돔만한 초대형 노가리 구이와 김치찌개를 앞에 두고 새벽까지 취했다. 바다도 좋고 물고기도 좋지만 사람의 마음이 제일 좋았다.
친구의 친구와 악수하고 바로 친구가 됐다. 두 아이의 아빠인 그는 여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 중이다. 그날 시청 앞에서 `여수시민 비상시국회의`가 열려 종일 바빴다고 한다. 술집에서는 너나없이 현 시국을 걱정했다. 처음 본 사이인데도 금방 끈끈해졌다. 한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원수끼리도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와 나 모두 상대가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가웠다. 사람의 마음은 논리와 인과를 생략한다.
다음날 점심, 황종권 시인 집을 찾았다. 내 차 타고 같이 서울에 가기로 했다. 여수 국동의 조용한 주택가, 뒤로는 구봉산이 서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진 동네다. 정겨운 세탁소와 이발소 간판을 지나 골목에 들어섰다. 아버님께서 집 앞에 나와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반갑게 손 잡아 주시며 아무 한 일 없는 내게 자꾸 `고맙다`고 하셨다.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친구 집에서 고릿한 청국장 냄새와 밥숟가락 부딪는 소리, 식구들의 왁자한 웃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마주한 이웃집 감나무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친구 여동생은 편한 복장으로 있다가 현관에 선 나를 보고는 기겁하며 도망갔다. `엄마, 오빠 친구 왔어!` 소리에 밖으로 나오신 어머님도 마찬가지 무방비 상태였다. 머리 한쪽은 잔뜩 눌려 떡이 됐고, 다른 한쪽은 사자 갈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오메 어째야 쓰까잉. 들어와서 밥 좀 먹고 가셔요.` 급히 사투리를 표준어로 교정하시느라 `버퍼링`이 발생했다. 어머님은 아들의 시상식에 제일 예쁜 옷, 그러나 지금은 입을 수 없는 옷을 입고 가기 위해 일주일간 고구마만 드셨다 한다. 어머님이 내 손을 잡고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 하셨다. 촌놈을 서울에 보내놓으니 늘 불안하실 것이다. 돌아선 등으로 쏟아지는 친구 부모님의 눈빛, 남도 햇살, 까치 소리가 다 따스했다.
축하해주러 함께 왔다가 고향집에 김장하러 먼저 올라간 이병일 시인 집에 갔을 때도 느꼈던 온기다. 마이산이 솟아 있는 전북 진안 백운면 허름한 농가다. 거기 팔순 넘은 노부모가 아직도 고추 농사, 마늘 농사짓고 계신다. 9남매 막내인 이병일 시인 큰형이 58년 개띠다. 몇 해 전 그 집에 갔을 때, 병일 형은 백운면 농협에 들러 한우 등심을 끊었다. 등급과 부위 표시가 되어있는데도 `고기 좋은 놈으로 주세요.` 하는 말이 고기로 스며들어 마블링 몇 겹 더 만드는 듯했다. 이불과 메주덩이가 나란히 놓인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프라이팬에 구워먹는 소고기 맛은 환상적이었다. 어머님께서 퍼주신 밥은 먹어도 먹어도 그릇 바닥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서울 올라갈 때 늙은 호박이며 감자며 고추 말린 것 잔뜩 챙겨주면서 연신 `고맙소, 고맙소.` 하셨다. 그날도 참 햇살이 좋았다.
사람의 마음에서 바다 냄새, 흙냄새가 난다. 사람임에도 사람의 마음을 가져본 적 없는 이들은 절대 모른다. 요즘은 사람의 마음마다 촛불이 켜져 있다. 촛불도 좋고 바다도 좋다.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에 머물고 싶다. 광장에 가야겠다. 포항에 가야겠다. 포항에도 그리운 사람의 마음이 있다. 잔잔한 포구가 아니라 비바람 몰아치는 장쾌한 망망대해다. 그 바다와 마주 앉아 과메기에 소주 한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