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버호벤 감독의 2007년작 `블랙북`은 2차 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치에 의해 가족을 잃은 유태인 여인이 복수를 다짐하며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에 가입한다. 그녀는 독일군 대위를 유혹해 나치 사령부에 취직하는 데 성공한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스파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레지스탕스 내부자의 배신으로 동료들이 살해되는데, 그녀가 누명을 뒤집어쓴다. 나치 패망 후 그녀는 독일군 부역자로 몰려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한다. 성난 시민들은 독일군과 동침한 여자들의 머리를 밀고, 벌거벗겨 매질을 한다. 침을 뱉고 오줌을 갈기고, 커다란 통에 가득 모은 인분을 쏟아 부으며 키득거린다.
실제 있던 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지만, 현실이 훨씬 처참하다. 네덜란드처럼 프랑스 시민들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잔혹행위를 서슴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법 절차가 마련되기 전에 독일군 병사들을 거리에서 즉결처형했다. 처형에 앞서 눈알을 뽑는 등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 부역자를 묶어둔 채 그의 딸을 성폭행하거나 독일군 정부였던 여성을 동물과 교미하게 하는 야만적 행위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눈먼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해방감과 승리감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아드레날린의 과도한 분출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성이 마비된 결과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자주 들은 말이 있다. `너도 똑같이 그러면 안 된다`는 꾸짖음이다. 어디 가서 맞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꼭 그대로 되갚아주려는 불같은 성미를 그 가르침 덕분에 많이 달랬다. 똑같이 그러지 말라는 말씀 안에는 `똑같이`의 정도를 뛰어넘어 미쳐 날뛸 것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던 것 같다. 더 나쁜 인간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똑같이 해주겠다고 이를 가는 사람치고 더 심하게 하지 않는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누군가를 적으로 간주하면 승리가 절실해진다. 그로부터 받은 상처들, 피해들을 따져가며 상태가 역전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다 판이 뒤집어져 이기게 되면 정당한 심판과 보상의 범위에 굳이 포함될 필요 없는 비열한 욕망들까지 마구 개입한다.
김기춘과 조윤선이 구속되던 날, 어느 진보 시사평론가가 자신의 SNS에 `구치소 입소하면 항문 검사도 하느냐`고 묻는 글을 올렸다. 경험자들과 풍문 들은 자들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수감자가 마약이나 자해도구를 숨겨올 수 있기 때문에 한다고 한다. 그게 뭐 대수인가. 구치소에서라도 법적 절차가 공평하게 적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물은 것이라면 그냥 보고 넘겼을 텐데, 그 글에는 저열한 욕구가 담겨 있어 불쾌했다. 여성인 조윤선 전 장관에 대한 성희롱 의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거기 달린 댓글들은 과도한 음담패설이라 옮길 수도 없다. 피해의식과 패배감이 지나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승리에도 흥분하며 전리품만 챙기려 든다. 순간의 기쁨에 취해 다음 싸움을 위한 준비들을 놓쳐버린다. 그러다가 죽 쒀서 개 준다.
범법자에 대한 법적 심판보다 엘리트가 몰락한 게 더 통쾌한 모양이다. 특히 상대가 매력적인 경력과 외모를 지닌 여성이라는 데서 더 큰 희열과 승리감을 누리는 듯하다.
`쌩얼`이 어떠니 콧구멍 속 이물질이 어떠니 성적 농담들을 하며 히죽대는 모습이 졸렬하다. 국기문란 주범들을 옹호할 생각은 한 치도 없다. 그들은 반드시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지만 법과 이성의 범위를 벗어난 조리돌림은 곤란하다. 정의가 이겼다면, 빛이 어둠을 이겼다면 정의와 빛에 걸맞은 승자의 관용과 품격이 필요하다.
그들과 똑같이 하지 말자. 이 성숙한 태도 없이 정권 교체가 된다면, 끔찍하다. 억눌린 욕망들, 일그러진 패배감이 승리를 맛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야만과 폭력이 정의를 참칭하며 날뛸 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