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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조심 포스터

등록일 2017-01-18 02:01 게재일 2017-01-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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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여수 수산시장에 불이 났다. 명절을 앞두고 발생한 화재라서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지난 11월 말 대구 서문시장에서 큰 불이 난 데 이어 연말에 또 대구 팔달시장이 화마의 습격을 받았다. 한 달 보름 사이에 재래시장 세 곳이 불에 탔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연이은 악재다. 시장과 상인들이 재기할 수 있게끔 피해 복구와 보상이 잘 이뤄져야 한다.

포항에 가면 꼭 죽도시장에 들른다. 거대한 개복치나 돔베기(상어 고기)가 널브러진 광경은 진기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과메기나 피데기 따위를 사고, 소머리곰탕 한 그릇 먹는다. 디저트로 호떡 입에 물고 좁은 골목을 지나면서 상인들을 살펴본다. 주름진 얼굴, 불긋한 살갗, 단단해 보이는 손톱, 전대, 해진 방석, 바지장화, 졸음, 박장대소, 수다, 사투리, 욕설 같은 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노라면 웃음도 나고 뭉클해지기도 한다.

점포와 좌판들마다 난로 한 대씩 열을 뿜고 있다. 나물 파는 할머니는 난로를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다. 아케이드 공간이라고 해도 겨울 추위는 어쩔 수 없다. 바닥 냉기와 웃풍을 견디며 종일 장사하려면 전열기구는 필수다. 재래시장들의 화재 뉴스를 접하고 죽도시장을 걸으니 담요와 방석 가까이 놓인 난로들이 신경 쓰인다. 외부로 아무렇게나 노출돼 물기나 충격에 취약해 보이는 콘센트들도 그렇고, 식당의 대형 가스레인지도 위험해 보인다.

화재 위험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포항시에서도 그것을 인지해 지난 12월 화재 예방 특별 점검과 화재 초기 진압을 위한 소방차 진입 훈련을 실시했다. 규모와 방문객 수, 시가지 인접성 등을 따져 보면 죽도시장 화재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화재 예방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가방 공장에 불이 났다. 지하실에서 열 명 정도가 일하던 작은 업장이다. 소식을 듣고 엄마와 함께 달려갔다. 연기와 화염이 공중으로 치솟고, 아버지와 직원들이 간신히 밖으로 대피했다. 주변에 주차된 차들의 후미등이 열기에 녹아 일그러지고 있었다. 울며 발을 동동 구르는 엄마를 보면서 불이 참 미웠다. 그날 일기장에 불을 만든 사람을 원망하는 문장을 잔뜩 써 넣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불조심 포스터`라는 시를 썼다. “불이 혀를 내밀어 집을 삼키는 그림을 그릴 거야. 우리 집이 그렇게 타버렸으니까”로 시작하는 그 시는 초등학교 때 불조심 포스터를 그려 상 받은, 그러나 불쾌했던 기억의 재구성이다. 장려상 받은 그림을 교장실 앞에 전시하게 됐는데, 담임이 자꾸 그림에 손을 대게 했다. 더 실감나게 그리라는 것이다. 여러 번 덧칠을 해도 맘에 들지 않았는지 급기야 뺨을 때렸다. 그걸 “불을 더 빨갛게 그리라니까,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 화끈거리는 뺨 위로 햇살이 눌러붙었다”라는 구절에 담았다.

그 시에서 `불`은 인간 욕망의 은유다. “불이 데려갈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겠어. 아니 내가 불이 되어 당신들을 데려갈 거야”라는 문장은 타자의 욕망에 의해 자기 욕망이 좌절된, 그래서 일그러진 욕망을 갖게 된 어느 소년의 독백이다. 욕망은 확실히 불과 같다. 잘 조절하면 어둠과 추위를 견디게 하고, 날것을 익혀주지만 조절에 실패하면 자신은 물론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다. 최순실이 그랬다.

조기 대선이 예상되면서 대권 후보들이 바쁘다. 꽃동네를 찾고 지하철 타면서 서민 흉내도 낸다. 포럼을 출범시키고, 강연을 한다. 가스 레버 조절을 잘못해 불이 치솟듯 컨트롤 안 된 욕망이 막말이나 경거망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겨울철 화재만큼이나 정치인들의 욕망 불길도 조심해야 한다. 어떤 불이 국민들을 따뜻하고 배부르고 안전하게 해줄 것인지 잘 가려야 한다. 잘못된 불은 경제와 안보, 문화예술, 민주주의, 국민의 삶 모두를 처참하게 불태울 것이다. 이미 겪은 일이다. 권력욕과 물욕이 지나친 자가 방화범이다. 집집마다, 우리들의 마음마다 불조심 포스터 한 장씩 그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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