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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농어를 찾아서

등록일 2017-02-15 02:01 게재일 2017-02-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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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4박 5일간 제주에 다녀왔다. 겨울이 본 시즌인 넙치농어 낚시를 위해서다. 우리 바다에 사는 농어는 일반 농어, 점농어, 그리고 넙치농어 세 종류다. 넙치농어는 난류성 어종으로 회유하는 성질이 있는데, 제주 남쪽인 서귀포 일대와 가파도, 지귀도, 마라도 등에서만 잡을 수 있다. 그 위쪽으로는 여간해서 나타나지 않는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시즌이라지만 그것도 날씨 등 조건이 맞을 때 얘기다.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꽝을 면하기 어렵다. 그 어렵다는 넙치농어 낚시에 도전한 것은 무모한 짓인지도 모른다. 경험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열심히 장비를 꾸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날씨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가파도로 가 넙치농어를 노리는 것이었는데, 풍랑주의보로 일정 내내 배가 뜨지 않는다고 했다.

계획대로 가파도에 갔다면, 한 방송사에서 낚시 장면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다. 형편없는 실력이지만, 모든 낚시꾼들이 한번쯤 꿈꾸는 자신의 멋진 낚시 영상을 소장할 기회가 사라졌다. 촬영은 차치하고라도 모든 계획이 가파도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당황했다. 결국 지역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 서귀포 남원 해안 일대를 낚시 장소로 택했다.

넙치농어는 루어(물고기 모양 인조미끼)로 잡는다. 조류 흐름이 좋고 파도가 센 암반지대로 접근하기 때문에 방수복과 바지장화, 펠트화, 구명조끼 등을 착용하고 갯바위 끝에 서서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낚시해야 한다. 일반 농어에 비해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라서 루어를 물어도 줄을 터뜨리거나 바늘을 휘어버려 빠져나가기 일쑤다. 서귀포 남원읍의 유명한 포인트인 일화연수원 앞 여밭, 해녀탈의장 부근, 양식장 배출수 나오는 자리 등 넙치농어가 있을 만한 곳을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낚시했다. 파도가 쳐야 유리한데 북서풍이 몹시 세게 불었지만 바다는 오히려 잔잔했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영하의 기온은 좀처럼 오를 줄 몰라 젖은 손이 꽁꽁 얼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방수복을 입었지만 파도에 젖은 옷 위로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온몸이 오들거렸다. 그 와중에 실수로 낚싯대를 부러뜨리고, 개당 2만원이 넘는 고급 루어 여러 개를 수장시켰다. 단 한 번, 루어가 바위에 부딪치는 느낌과 완전히 다른, `툭` 하는 입질을 받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흘간의 넙치농어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야속한 하늘은 더욱 심술을 부려 눈보라가 거의 태풍 수준이었다. 하루 더 도전할 의지가 완전히 꺾인 채 패잔병 몰골을 하고 제주 시내 맛집 탐방이나 다녔다. 그런데 낚시를 망치고도 기분은 몹시 좋았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과 조르바가 전 재산을 바쳐 공들인 케이블카 사업을 말아먹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춤을 추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 대목에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라고 적었다. 낚시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한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올 때도 있고, 경험과 지식, 완벽한 계획이나 준비가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아흔아홉 번 실패를 견디는 불가해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낚시는 인생과 무척 닮아 있다. 이 세계는 물론 우리 삶이 혼돈과 우연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낚시는 말해준다. 무엇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분석과 통계라는 것만큼 쓸모없는 게 또 있을까. 세상만사의 우연성을 인정하고 내 실패도 그 혼돈의 일부임을 수용하는 순간, 삶은 여전히 정복해야 할 것들로 넘실거리는 미지의 바다로 남는 것이다.

넙치농어여, 기다려라! 또 한 번 실패하러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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