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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980년 5월 주남마을

▲ 이병철 시인김 씨는 아까시 냄새에 재채기를 한다. 핸들을 잡은 손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졸음이 향기롭게 번져가는 버스 안, 봄빛이 환하다. 쪽잠 자는 여고생 숙이가 자꾸 뒤척이는 것도, 칼빈을 꼭 쥔 옆집 박 씨 손이 덜덜 떨리는 것도 거울로 다 보고 있다. 무서운 꿈이 저들을 짓누를까봐 김 씨는 재빨리 기어를 변속한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가슴도 함께 흔들린다.도청 지나 광주천 옆을 달리자 물장구치는 아이들이 보인다. 물비늘 위로 언뜻 무지개가 비친다. 가족들과 소풍 앉던 자리에 싸리꽃이 고봉밥으로 부풀어있다. 김 씨는 마른 침을 삼킨다. 이제 화순이 가깝다. 잠 깬 숙이가 더께 낀 손으로 주먹밥을 먹는다. 기름도 안 바른 맨밥을 넘기다 체할까봐 김 씨는 천천히 액셀을 밟는다. `아야 싸목싸목 씹어 묵어라잉.`주남마을 어귀, 아까시 꽃그늘 아래 무장한 군인이 경광봉을 흔든다. `아따 여그가 정류장도 아닌디 워째 버스를 세워분다요.` 큰소리로 뱉은 농담의 꼬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겁을 집어먹은 숙이가 딸꾹질을 한다. `아야 긍께 찬찬히 묵어라 안 했냐.` 김 씨 등에 맑은 땀이 흐르고, 거울 속 박 씨 눈망울이 도축장 소 마냥 끔벅거린다. `기왕 가는 먼 길 버스 타고 편히 가자고.` 김 씨가 삼단 기어를 넣고 힘껏 액셀을 밟는다.`말간 하늘서 우박이 쏟아지는가….``아야 왜 그냐 밥 먹은 것이 체해부렀냐?` 허옇게 눈 까뒤집고 고꾸라진 숙이 품에서 피에 젖은 주먹밥이 굴러 떨어진다. 그걸 먹으려는 듯 입 벌린 채 엎드린 박 씨의 눈에 새카만 구멍이 뚫려 있다. 승객들이 앉았던 자리마다 뻘건 내장이 펄떡거린다. 피와 뇌수가 꽃처럼 흐드러진 버스 안, 탄약 냄새와 피비린내와 아까시 향기가 서로를 팽팽히 밀어낸다. 김 씨는 핸들을 놓지 않는다. 아직 화순에 닿지 못했다. 힘겹게 눈꺼풀 들어 거울을 보니 저 뒤에서 숙이가 제 동무와 손뼉을 치며 재잘거리고, 박 씨는 줄로 엮은 장닭을 옆구리에 낀 채 꾸벅꾸벅 존다.`오메 다들 종점까지 가능갑네.` 김 씨가 속도를 높인다. 꿈결보다 환한 버스 안, 아까시 냄새가 배추흰나비로 나풀거린다. 무등산 위에 걸친 구름 사이로 태양이 반사경을 반짝이고 있다. 낮별 총총한 종점이 가깝다.1980년 5월 23일, 전남도청을 출발해 시외로 가던 미니버스에 탑승한 시민 17명이 광주 동구 주남마을에 매복해있던 계엄군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에 의해 살해당했다. 위 글은 그 사건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팩션(faction)이다. 몇 해 전에 시로 써둔 것을 산문 형식으로 풀어보았다.오늘은 5월 18일이다. 호남, 영남 가를 것 없이 한국인이라면 올바로 기억해야하는 역사다. 폭동, 북괴의 사주 따위 궤변에 놀아나는 것만큼 어리석음도 없다. 부산과 마산에서부터 산불처럼 일어난 민주주의 열망이 광주에 옮겨 붙었다. 광주의 것만이 아니라 영남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아픔이자 긍지이다.억지로 부정하는 자들이 문제지만, 광주의 것으로만 전유하려는 태도도 안타깝다. 명백한 사실이라도 전하는 방식이 거칠면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또 시끄럽다. 그 노래의 맥락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웬만한 행사에서 애국가도 생략되는 요즘이라면 가급적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쪽으로 양보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광주 정신은 숭상하나 노래가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5·18이 자꾸 이념논쟁거리가 되게 해선 안 된다. 모두가 편하게 발화하고 기념하려면, 주체 스스로 무게를 좀 덜고 빗장 몇 개쯤 풀어야 한다.광주의 대표적 `창조마을`로 자리매김한 주남마을은 매년 5월이면 그날의 비극을 기리는 행사를 갖는다. 희생자 추모 중심이 아닌 치유와 평화, 성숙한 공동체 정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5월 18일의 참된 가치가 투쟁보다는 주먹밥과 식수를 나누고, 생면부지인 남을 위해 헌혈한 광주 사람들의 이웃 사랑과 개방적 자세, 오월 햇살처럼 따뜻한 그 휴머니즘에 있다고 생각한다.

2016-05-18

관심병 들끓는 사회

▲ 이병철 시인지난 한 주간 세상이 시끄러웠다. 동거하던 선배를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열흘에 걸쳐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한 살인범 조성호 때문이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는데 언론과 대중은 하나같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 그 반응들을 보면서 부디 더 많은 범죄자들의 얼굴이 공개돼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끔찍한 악은 가장 선한 이웃의 얼굴로 다가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며 깨우친 `악의 평범성`을 조성호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악의 평범함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악의 천연덕스러움`이다. 조성호는 선배의 시체를 집 안에 둔 채로 SNS에 10년 뒤 인생계획과 `일하는 것에 감사하다. 일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내용의 글을 써 올렸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나서도 자신을 노출하고 광고하며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했던 것이다. 이만하면 중증 관심병 환자다. 타인으로부터 관심 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를 요즘 `관심병`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SNS를 통해 잠시나마 망각하려 했을지 모른다.사체를 유기한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과 데이트 약속을 잡았던 것도 관심병의 심각한 징후다. 그는 선배가 자신을 어리다고 무시해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선배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아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인정받지 못하니 아예 인정의 공급자를 제거해버렸다. 이런 자가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를 향해 `묻지 마 칼부림`을 저지르고, 여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여자를 살해한다. 그 여성은 천만다행이다. 혹여나 데이트가 이뤄졌을 때, 조성호를 무시하거나 관심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이 한심한 살인범은 선배로부터 무시당해 위축된 자존감을 SNS 글 올리기, 여성과의 데이트로 회복하려 했다. 자기를 인정해줘야 할 선배를 자신이 제거해버렸으니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정을 갈구한 것이다.설령 완전범죄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거들먹거리다 검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얼굴과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그토록 원하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으니 만족스럽겠다.헤겔은 모든 사회적 갈등과 범죄의 심리적 원인은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생겨나는 `인정 투쟁`의 결과라고 말했다.시인 이성복은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에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SNS의 존재원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 받고 싶어 하는데, SNS는 그 욕망을 사이에 두고 관음증과 노출증을 두루 키운다.관심을 끌기 위해 별의별 허세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은밀한 부분까지 거리낌 없이 까 보이는 것도 병이지만 타인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관심병이다. 조성호의 가족, 친척, 지인들까지 이미 다 추적당했다.악플이나 근거 없는 소문내기, 허언증, 일부러 보편 정서에서 벗어난 삐딱한 말만 하기 따위가 모두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관심병자들의 애처로운 몸부림이다. 요지경 속 같이 해괴한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별로 어려운 예언도 아닐 것이다. 살인마 조성호더러 잘생겼다느니, 훈남이라느니, 이상형이라느니, `용자`(용기 있는 자)라느니 하는 `같잖은` 소리들이 SNS와 포털 사이트 댓글창, 일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나돌기 시작할 것이다.괜히 헛소리 `지껄여서` 관심 한번 끌어보려는 자들의 덜떨어진 작태다. 그런 관심병자들에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속 권상우의 대사를 빌려 한마디 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멋있어 보이냐?”

2016-05-11

어린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 이병철 시인5월 5일은 어린이날. 노랫말처럼 “어린이들 세상”이다. 그런데 요즘 어린이들을 위한 세상이 있기는 한지 모르겠다. 학원과 과외, 영어 유치원 등 사교육에 짓눌린 아이들의 괴로움은 물론이고, 매일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아동 학대와 존속 살인, 미성년 대상 성범죄 따위 소식들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너희들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얼마 전 강남 일대에서 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머리 좋아지는 주사`를 맞게 해 화제가 되었다. 또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며 짧은 혀를 늘이는 설소대제거술을 시키기도 했다. 온갖 괴상한 일들은 다 강남에서 일어난다. 하여간 강남이 문제다. 아이들을 무슨 표본실의 청개구리처럼 다룬다. 주사 맞히고 혀 늘이면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 되는 줄도 모르고.“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물론 공부를 안 했지만(안 한 것과 못한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 주변 친구들은 공부 잘하면 일꾼이 될 거라 믿고 코피 흘려가며 공부했다. 부모 시대에는 공부 잘하면 좋은 일자리 얻고 돈 벌 수 있었으니까, 그걸 교훈 삼아 자기 미래를 걸었다. 그런데 좋은 대학 나와서 성공하는 근대적 신화가 무너지고, 이제는 부모 배경에 의해 자녀의 삶이 결정되는 상속의 시대다. 2016년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수저계급론`은 유효할 것이다. 아니 더욱 심화될 것이다.내가 어릴 땐, 나처럼 공부 안 하는 애들은 밖에서 마음껏 뛰놀 수라도 있었다. 서울 도심의 관악산만 가도 장수풍뎅이와 하늘소, 온갖 나비를 채집하고 개울에서 가재를 잡았다. 재개발되기 전의 널찍한 골목에서 술래잡기하고 놀았다. 눈 쌓인 길바닥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를 탔다.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 외에는 놀 거리도, 놀이할 공간도 없어 보인다.자연이 훼손되고, 도시 환경이 변한 것을 꼬집는 게 아니다. 자라도 나라의 일꾼이 되지 못한 청장년들, 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려주지 못한 부모 세대의 좌절감, 상실감, 열패감, 소외감, 무력감이 분노와 우울, 광기로 이어져 세상이 흉흉하다. 공황증, 광장공포, 정신분열, 강박증 등 온갖 정신장애와 난폭운전과 보복운전, 묻지 마 칼부림, 층간소음 갈등 등이 도처에 널려 있다. 요즘 부모들이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노인을 위한 나라도, 청년을 위한 나라도, 어린이를 위한 나라도 없다. 세상이 점점 일부 기득권자들과 `금수저`들만을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 그 상속에서 소외된 1인 가정, 무자녀 가구, 기러기 아빠, 한 부모 가정, 혼자 살다 고독사하는 독거노인들의 사회에서 무슨 가정의 달인가. 엄마부대와 어버이연합이 `엄마`와 `어버이` 이름을 욕보이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살해한다.제자에게 오물을 먹이는 스승, 선생을 폭행하는 제자가 한 교실에 있는 세상이다.가정의 달을 맞아 5월 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 나흘간 연휴로 국민들에게 쉼을 주고,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휴의 달콤함도 일부 계층은 누릴 수 없다. 공장은 여전히 돌아갈 것이고, 청년들은 평일보다 더 고된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며, 학생들은 5월 모의고사와 온갖 공모전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선행학습과 생활기록부 한 줄 기재를 위한 체험학습을 할 것이다. 노인들은 탑골 공원에서 눈꺼풀에 엉겨 붙은 햇살마저 무거워 죽음 같은 낮잠이나 꾸벅거릴 것이다.국민들이 바라는 건, 선거 패배를 무마하고 일시적으로 국정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깜짝 이벤트가 아니다. 진짜 쉬어야 할 사람들은 쉬지 못하고, 군림하는 기업만 배불리는 야바위 장터는 더더욱 아니다. 무한경쟁과 수저계급론을 완화시킬 제도적 장치 마련과 분노, 우울, 패배감 등 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을 치유하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푸른 오월`을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미세먼지도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2016-05-04

Come what may

▲ 이병철 시인가수 박정현과 뮤지컬 배우 홍광호가 함께 부른 `Come what may` 영상을 보는 일로 요즘 하루를 열고 닫는다. 영화 `물랑 루즈`에서 니콜 키드먼과 이완 맥그리거가 부른 것보다 훨씬 낫다. 박정현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를 연상케 한다면 홍광호는 왕자까지는 아니고 믿음직한 심복 또는 가난해도 꿈 크고 정직해 공주의 마음을 얻는 나무꾼 정도로 보인다.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며, 홍광호의 중저음으로 노래가 시작된다. 그걸 이어받은 박정현이 청아한 음색과 파워풀한 성량을 발휘할 때, 나는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둘이 한 목소리를 이뤄 때론 밀고 때론 붙잡으며, 하나가 잠시 물러났다가 다른 하나와 함께 날아오르며 바다에서 하늘까지, 달에서 태양까지, 여름에서 겨울까지를 오르내린다. 그걸 보고 들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노래의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나무꾼이 손을 내민다. 공주가 그 손을 받아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꽉 잡은 채로 모든 격정을 다 쏟아낸다. 5분짜리 노래가 한 연인의 평생처럼 느껴진다. 마주 본 두 사람이 “I will love you, until my dying day”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면서 노래는 끝난다. 한 편의 웅장한 뮤지컬을 본 것 같은 감동이 나를 감싼다. 이럴 땐 우는 수밖에 없다. 노래를 마친 두 사람은 상기된 얼굴로 포옹하고 무대를 내려온다. 무대 위에서 영원을 약속하던 연인이,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다시 선후배이자 동료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도 퇴장했는데 나만 아직도 나무꾼인 채로 박정현 공주를 애틋하게 그린다.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하리다!가수나 연기자들은 참 대단하다. 연기와 현실을 분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뜨거운 감정을 주고받다보면 실제 사랑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박정현과 홍광호의 무대를 보면서, 저 둘이 사랑하게 되지 않는다면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저토록 확신에 찬 두 눈에 세상 모든 별빛을 담아 서로를 바라보는데.대학 때 직접 쓴 희곡을 가지고 극을 연출한 적이 있다. 배우들은 후배들이었다.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후배가 연기를 잘했다. 고등학생이었는데 혼자 노래 부르는 장면에서 보석처럼 빛났다. 그 아이가 예쁘기도 했지만, 배역이 좋았다. 원래 지닌 매력이 배역과 어우러져 극대화됐다. 내 마음이 이상했다. 그 후배를 계속 극 중 역할로 생각하며 상사병을 앓았다. 영화 `홀랜드 오퍼스`에서 고등학교 음악 교사인 홀랜드가 자신이 지도하는 학생 로웨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로웨나가 조지 거슈윈 곡 `I got rhythm`을 부르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그 아이도 로웨나처럼 눈부셨다.상대 연기자와 금방 사랑에 빠져버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배우도 가수도 되지 못한다. 극이 끝난 후에도 혼자 환상 속에 남아 고통 받을 게 자명하다. 연예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대와 무대 뒤, 극 중 세계와 현실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배역의 자아에 함몰되어선 안 된다. 그런데 가수도 배우도 아니면서 무대와 무대 뒤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판이 깔렸을 때는 무릎도 꿇고 구걸도 하고 호떡도 먹고 “여러분 사랑합니다” 외쳐대더니 무대의 불이 꺼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꼰대`로 되돌아갔다. 수많은 약속들과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벌써 무시되거나 폐기되고 있다. 국민들을 드라마에 빠져 현실도 분간 못하는 바보로 보면 안 된다. 국민들은 누가 제일 뛰어난 연기자인지 두 눈 부릅뜨고 볼 것이다. 부디 무대에서 한 약속들을 무대 아래에서 다 지켜주길 바란다. Come what may(무슨 일이 있더라도).

2016-04-27

몰라도 다 아는 사랑

▲ 이병철 시인`흐르는 강물처럼`은 멋진 영화다. 눈부시던 시절의 브래드 피트가 몬태나를 흐르는 빅블랙풋강에 몸을 담근 채 플라이낚시를 하는 장면만으로도 낚시꾼인 내겐 인생 영화다. 아버지의 정형화된 낚시 방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창조적 기법으로 대형 무지개송어를 낚아낸 브래드 피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아름답다.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낚시가 아닌 목사 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설교다. “이웃이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그를 돕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때로는 원치 않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라는 영화 속 설교는, 내가 교회에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마음을 울렸다.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모른다. 가족, 연인, 친구라는 이름이 너무 두텁다. 이미 그 이름 안에서 많은 것들이 완성되었다고 믿어버리기가 쉽다. 항상 가까이에 있어 그 사이로 언제나 그늘이 지는 줄도 모르고, 다 안다는 침묵 속에서 얼마나 많은 외로움이 자라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엄마 생일 선물을 고르다가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뭘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흐르는 강물처럼`은 위안을 준다. 그래, 모른다. 모르지만 사랑한다. 다들 그 모르는 만큼의 공백을 사랑으로 메꾸는가 보다. 그래서 사랑은 핑계이자 만능이다. 사랑은 앎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몰라도 할 수 있고, 알고 하면 더 좋다. 영화 속 목사의 말을 나는 “기왕이면 알고 사랑하자” 정도로 받아들였다.결코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완벽히 이해하면서 또 완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제에 유가족들 곁에 가만히 있어준 사람들 말이다.유가족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들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준 이들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어깨를 빌려주고, 애타게 외치는 소리가 무관심이라는 소음에 묻히지 않게끔 함께 목청 높여주었다. 몰라도 다 아는 사랑이 거기 있었다.유가족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다. 쨍쨍한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 방치된 이들, 대낮같은 수치와 모욕, 멸시와 냉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이들이다. 그들에겐 숨을 곳도 쉴만한 그늘도 없다. 세상이 잠마저 뺏어가 밤도 새벽도 없다. 그 외로움을 국가는 알지 못하고, 연민도 하지 않는다. 아니, 다 알면서 모른다고만 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제일 나쁘다.두 해 전 그날도, 지난해와 올해 4월 16일에도 비가 내렸다. 나는 정말 하늘이 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그런 곳이다. 한 사람이 슬프면 누군가는 꼭, 사람이 아니라면 새와 나무와 파도라도 반드시 함께 울어주기 마련이다. 눈물 같은 비를 맞으며 유가족들과 함께 울어준, 때로 따뜻하게 웃어준 이들에게 고맙다. 광장에 가지는 않았어도 저마다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모한 이들의 마음 또한 소중하다. 그날은 지나갔고, 모두들 각자의 `서로 모르는`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거기서 또 모르는 사람들,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과 어설프고 어색하며 때론 불편하고 귀찮은 마음들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저 바다에 잠겨 있어 우리가 정말 모르는 것들이 분명하게 떠올라야 한다. 다 알면 더 애통하겠지만, 그만큼 연대와 위로, 사랑도 견고해질 것이다. 내년 4월 16일은 화창했으면 좋겠다.

2016-04-20

선거는 축제다

▲ 이병철 시인내일은 20대 총선일이다. 드디어 다 끝난다. 유세차량의 불법 도로점거로 인한 교통체증도, 촌스러운 뽕짝 유세송의 소음공해도, 나를 조폭 형님처럼 만들던 90도 폴더 인사도, 세균 감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끈적끈적한 악수도 모두 끝이다. 선거 한번 치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지만, 국민들의 피로도 상당하다. 보기 싫은 얼굴들 매일 보고, 듣기 싫은 소리 또 듣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선거를 축제라고도 하는데, 맞다. 임시공휴일이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치르는 대선이나 무더운 여름날 지방선거에 비해 총선은 벚꽃 만발한 봄날에 실시된다. 나는 12일 밤부터 낚시를 가기 위해 이미 사전투표를 완료했다. 선거 때마다 산과 강과 바다로 놀러갔지만, 투표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국민의 권리니 민주주의의 꽃이니 거창하게 운운할 건 아니고, 그냥 외출 전 가스밸브 잠그듯 하는 것이다. 괜히 마음 찜찜할 바에야 그냥 몇 걸음 걸어가서 도장 한 번 찍고 오는 것이다.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 소중하다는 투표권 행사가 이리도 간단한 것인가, 허탈할 정도다. 그만큼 쉬운 일이니 부디 투표하고 맘 편히 놀러가시라.중학생만 되어도 학급 반장이나 전교회장이 누가 되든 별 관심이 없다. 선거에 가장 몰입하며 온갖 희로애락을 경험한 건 초등학교 다닐 때다. 아직도 기억난다. 반장 선거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장 후보로 내가 나를 추천하는 건 민망하므로, 나를 공천해줄 친구를 미리 포섭해두거나 아예 `이병철 대세론`을 아이들에게 미리 퍼뜨렸다. 담임교사군주제였던 1학년 때를 제외하고, 나는 2, 3, 4, 5학년 내리 4선에 성공한 거물(?)이었다. 6학년 때는 전학 온 친구가 새로 인기몰이를 했는데, 일찍이 대세가 기울었음을 감지하고 불출마하며 백의종군, 킹메이커가 되었다. 그 대가로 나는 학급 서기 겸 친교부장에 임명되며 내각에 입각했다.2, 3, 4학년 때는 과반수 득표를 훌쩍 넘기며 2차 투표까지 가지도 않고 당선되었다. 남녀 모두에게 고르게 지지를 받았으며, 특히 공 차고 뛰어 놀기 좋아하는 화이트칼라(체육복) 계층의 몰표를 얻었다.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5학년 때였다. 군소후보들이 사퇴하며 다자구도는 일찍 무너지고, 양강 대결로 갔다. 소위 `좀 사는 집`아이였던 상대 후보가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햄버거와 피자로 향응을 제공하고, 엄마 아빠를 데려와 지원 유세를 시키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판이 요동쳤다. 그 녀석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이다.이대로 3선의 명예가 처참하게 주저앉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 한 사람씩 따로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은밀한 약속을 내걸었다. “축구할 때마다 너 공격수 시켜줄게”, “화장실 청소는 주로 4분단 애들한테 시킬게” 따위였다. 화장실 청소는 명백한 정치 보복이었다. 4분단 대부분은 햄버거에 홀려 내게서 등을 돌린 아이들이었다.선거는 결국 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최종 유세에서 구체적 공약을 내건 연설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프라모델 조립 시간 확대`, `체육 시간에 발야구, 피구, 축구, 야구 등 구기 종목 신설 및 확대`, `학교와 기관의 유착을 의심케 하는 단골 소풍지 서울대공원 대신 롯데월드 선정`, `체육 시간에 옷 갈아입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체육복 등교 추진` 등인데,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감으로 아이들은 내 손을 들어주었고, 나는 `위대한 급우 여러분`과 함께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어른들의 선거가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도 재미없고 유치하다. 그래도 투표는 반드시 하자. 나랑 친한 아이가 반장이 되면 참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종이에 삐뚤빼뚤 친구 이름을 적던 기억을 되새기며, 도장을 찍어보자. 도무지 그런`초딩`의 마음이 안 생긴다면, 투표 마치고 놀 때라도 초등학생처럼 신나게 놀자. 말로만 축제가 아니라 어느 한 구석이라도 진짜 축제 같은 데가 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6-04-12

봄꽃은 간다

▲ 이병철 시인지난주 갑작스런 고온현상으로 5월 하순마냥 더웠다. 벚꽃이 화들짝 폈다. 저들도 놀란 모양이다. 요즘은 봄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매화와 산수유가 아직 꽃망울 매달고 있는데 진달래, 개나리가 피어난다. 벚꽃과 목련도 하늘 아래 환하다. 어딜 가도 다 울긋불긋하다. 자연의 순리가 깨지는 건 안타깝지만, 꽃의 독주가 아닌 오케스트라를 듣는 기쁨이 크다. 웅장하고 환희로운 색채의 볼륨을 한껏 높여본다.봄꽃 피는 무렵이면 몇 개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학부 시절, 시비(詩碑) 탐방을 하고 인증 사진을 찍어 제출하는 과제를 받았다. 햇살 좋은 봄날에 집 밖으로 나가 꽃도 보고 시도 읽으며 세상 아름다운 줄 좀 알라는 교수님의 배려였다. 연세대 윤동주 시비, 도봉구의 김수영 시비, 남산의 김소월 시비 등이 있었지만 안 갔다. 그땐 꽃이 예쁜 줄도 몰랐고, 세상의 풍요는 더더욱 나와 상관없었다. 과제는 내야했기에 인터넷에서 찾은 소월의 `진달래꽃` 시비 사진에다가 내 사진을 합성해 제출했다. 칼라 인쇄를 하면 티가 날까봐 흑백으로 출력했다. 모교에서 시간 강사를 하는 지금, 학생들에게 같은 과제를 냈다가 내 안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는 철회했다.학과 내에 시를 쓰는 소그룹이 따로 있었는데, 지도교수님을 따라 봄 북한산에 갔다. 청수장에서부터 대동문, 칼바위능선을 지나 백운대까지 올랐다. 산을 오르며 본 진달래능선이 산불처럼 장관이었다. 산에서 내려와 구파발 홍탁집에서 저녁까지 술을 마셨다. 내가 좋아하던 여학생이 먼저 자리를 떴다. 바래다주며 어떻게든 친해지고 싶은데, 교수님이 요지부동이었다. 마음이 다급해져 “교수님, 많이 드셨는데 이제 일어나시죠” 했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이놈이 나한테 투사를 하네” 하셨다. 시는 해석과 투사의 예술이라고, 거기서도 가르치셨다. 그녀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고, 막걸리 되게 취해 혼자 걸어오는 밤, 내 마음 열병을 벚꽃에다 떠다 넘겼다. 다 봄 때문이라고, 이 뜨거운 불덩이는 다 꽃 같은 그 아이 때문이라고!두 해 뒤, 사이먼 앤 가펑클 `April come she will`처럼 사월을 온통 꽃숭어리로 뒤덮으며 한 여자가 왔다. 그녀는 꼭 목련꽃 같았는데, 저 혼자 아름다우면서 또 두루 선하고, 누구에게도 지나치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 말없이 큰 눈만 빛낼 때, 그 깜박이는 작고 둥근 우주에 빠져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사랑은 피어서는 더없이 순결한데, 지고나면 진창이다. 꼭 목련꽃처럼 말이다. 온통 멍들고 짓이긴 상처와 고름 위를 질척거리며 한 시절을 보냈다. 그 여학생도, 목련꽃 같던 그녀도 지금은 모두 애엄마가 되었다.꽃이 아름다운 줄 알게 된 후로는 섬진강변 홍매화와 김해 건설공고 와룡매화도 보러 가고, 쌍계사 벚꽃길도 거닐곤 한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의 수양벚꽃은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꽃송이마다 거기 아직 색도 열기도 다 가시지 않은 내 봄날의 추억들이 물들어 있다. 매년 피는 봄꽃이지만 2016년의 봄꽃은 지금 뿐이다. 봄날도 가지만 봄꽃도 간다. 살면서 놓친 것들이 많지만 특히 속상한 건 2003년의 벚꽃과 2006년의 진달래와 2011년의 매화를 보지 못한 일이다. 나를 위해 차려놓은 봄꽃 뷔페에 가 앉지 못했다. 봄날에 꽃구경 한번 가지 않는 것은 취소 연락도 없이 예약 장소에 안 나타나는`노 쇼(no show)`나 마찬가지다. 겨울을 뚫고 힘들게 꽃대궐 차린 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학생들에게 주지 못한 과제를 여러분께 드리고자 한다. 시비가 세워진 곳은 대개 공원이거나 자연과 가깝다. 꽃구경 할 겸 시비 탐방 한번 다녀오시라. 대구에는 이상화 시비가 있고, 도동에는 아예 시비 공원이 있다. 포항에도 이육사와 박인로의 시비가 있다. 영화 `동주`로 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요즘이야말로 연인끼리, 가족끼리 가볼 만하다. 그런데 부디 남자들끼리는 가지 말기를!

2016-04-06

`백년 동안의 고독`과 총선

▲ 이병철 시인`백년 동안의 고독`은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이다. 노벨상을 받은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인데, 중남미 문학의 한 경향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한다. 환상과 마술, 신화적 요소들이 사실과 혼재되어 있는 것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특징이다.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싸움에서 진 사내의 피가 산과 들판을 흐르고 골목을 꺾어 자기 엄마 집 주방 벽을 타고 오르는 장면이라든가 모든 남자들을 사랑의 열병에 빠지게 만든 미녀가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 집시 예언자 메르키아데스가 선보이는 갖가지 마술들, 돼지꼬리를 단 아이의 탄생 등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흥분된다.그런데 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너무도 복잡한 인물관계 때문이다. 이 소설은 환상의 마을인 마콘도를 배경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사를 그려내고 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술라에서부터 시작된 가문은 두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대령, 딸인 아마란타로 이어지고,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호세, 17명의 아우렐리아노,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호세 아르카디오, 아우렐리아노, 아마란타 우르술라 등등 손발가락을 다 합쳐도 셀 수 없는 가계를 이룬다.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호세가 저 호세 같고, 이 아우렐리아노가 저 아우렐리아노 같다. 세군도는 그 세군도가 아니고, 우르술라와 우르술라는 서로 다른 인물이다. 도대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다 똑같고 또 다 다르다. 몇 번을 읽어도 복잡한 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요즘은 아예 책에 `부엔디아 가문 가계도`가 첨부되어 나와 있다. 나는 노트에 일일이 가계도를 그려가며 이 소설을 읽었다는 자부심을 항상 느낀다.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소설보다 더 한 혼돈을 요즘 매일 보고 있다. 누군가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너도나도 아들이란다. 자기가 적통이고 계승자라며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자기 아버지 등에 칼을 꽂거나 부관참시 하는 촌극을 일으킨다. 어제의 철천지원수들이 오늘 동지가 되고, 단짝들이 갈라선다. 이쪽이 파랗더니 저쪽이 파랗고, 저쪽이 빨갛더니 이쪽이 빨갛다. `빨갱이`라면 치가 떨린다는 사람들이 빨간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미 사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부활했다. 후보 등록을 마친 정당 수만 25개다.하도 옮겨 다니고 뛰쳐나가는 통에 누가 여당이고 야당인지 모르겠다. 헷갈린다. 헷갈리니까 대충 찍는 수밖에 없다. 1번이든 2번이든 3번, 4번이든 찍어봤자 다 오답일 게 분명하다. 투표를 앞둔 마음이 꼭 공부 안 한 과목 시험지를 받아든 것만 같다. 아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문제가 엉터리로 나온 경우에 더 가깝겠다.국민들이 보기엔 다 똑같은 아우렐리아노들인데, 자기들끼리는 피아식별이 분명하다. 홍길동이 퍼스트네임이고 미들네임, 라스트네임은 따로 있다. `진실한 사람`, `혼이 정상인 사람`, `친노`, `친문`, `반노`, `안측`, `천측` 등등 말이다. 한국 정치사 최고의 코미디는 허경영이 아니라 정당 이름 `친박연대`다.이 마구잡이식 잡탕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고 밥맛도 떨어진다. 신문은 집어던지고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다시 펼쳐야겠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을 외우다보면 정치인들 이름은 금방 잊어버릴거다. 어차피 국민들에게 또 4년 동안의 고독을 안겨줄 사람들이다. 내가 속한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는 심판 한 명이 하루에 네 경기를 소화한다. 사회인 야구는 몸개그의 향연이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그 심판이 외친다. “코미디 네 편 잘 보고 갑니다!” 두 주 앞으로 다가온 총선, 본 것이라곤 공천 코미디뿐이다. 선거유세는 또 얼마나 웃길까.

2016-03-30

정치가 여행이라면

▲ 이병철 시인스무 살에 친구와 둘이서 첫 배낭여행을 떠났다. 야간열차에서 자고, 빵 한 조각으로 하루를 버텼다. 몇 천원 아끼려고 버스도 안 타고, 코인라커도 안 썼다. 20kg 배낭을 메고 도시 끝에서 끝까지 걸어 다녔다. 마냥 좋았다. 모든 게 첫 경험이고 낯선 자극이었다. 두 해 뒤 다시 유럽에 갔다. 혼자였다. 야간열차 쪽잠과 굶주림, 행군 수준의 걷기 등은 그대로였지만 내용이 달랐다. 우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여행했다. 그리스 크레타와 산토리니는 그때만 해도 덜 알려진 여행지다. 터키 이스탄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도 들렀다. 외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여행 동기가 남달랐는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나를 주체할 수 없어서 그리스로 날아갔다.조류독감 진원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감기 기운이 들었다. 약을 먹어야하는데, 짐 부피를 줄인다며 온갖 비상약을 다 뜯어 넣어온 게 문제였다. 뭐가 감기약인지 몰라 소화제, 설사약, 멀미약, 진통제, 감기약 등이 섞인 알약 열 알을 한입에 털어 넣고 잤다. 일어나니 멀쩡했다. 그만큼 내구성이 좋았다. 크레타로 가는 아홉 시간의 페리 항해를, 10월 중순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갑판에서 버텼다. 여행비만 아낄 수 있다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다.지난 여름, 세 번째 유럽 여행에선 형식과 내용이 모두 달라졌다. 십년 사이 다른 문화권에 대한 거품 같은 환상들이 좀 가라앉아서 아무거나 다 좋진 않았다. 하고 싶은 건 하고, 먹고 싶은 건 먹었다. 야간열차 대신 비행기로 도시 간을 이동했다. 호텔에서 자고, 그 도시의 가장 맛있는 음식을 그곳 와인과 함께 매일 먹었다. 지중해 한 가운데서 스노클링을 하고, 보르도에 가 몇 곳의 샤또(Chateau·성)를 구경하기도 했다. 꼭 한번 맛보고 싶던, 이베리아 문학에 종종 나오는 코치니요(새끼돼지통구이)를 바르셀로나의 한 레스토랑에서 먹었을 때는 아득한 꿈 하나를 이룬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그리고 얼마 전 노르웨이에 다녀왔다. 명소 견학 등 낯선 문화 체험과 견문 확장이 그동안 여행의 목적이자 형식, 또 내용이었다면 이번엔 모든 것이 달랐다. 내 취미 활동을 다른 나라에 가서 해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내 생각엔 이 단계가 여행의 상위 2등급 정도 된다. 한국서 쓰던 장비를 그대로 가져가 텐트 치고 캠핑했다. 섬진강에서 쓰던 쏘가리 낚싯대로 60cm가 넘는 노르웨이 대구를 낚았다.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사는 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찍이 외국으로 자전거 투어를 가거나 스키, 골프 여행을 간 사람들은 여행 고수들이다. 취미를 즐기며 문화 체험은 덤으로 얻어가는 것이다.다음엔 최고 단계의 여행을 해야겠다. 아예 현지인으로 사는 것이다. 아프리카든 갈라파고스제도든 가방 하나 없이 맨몸으로 가 현지에서 옷 사 입고, 현지 여성과 연애하며, 취미 활동은 물론 병원, 교회, 헬스클럽, 목욕탕, 관공서를 우리 동네처럼 드나들고 싶다.하지만 여행에 등급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여행은 가치 있다. 내 여행의 변천사는, 이게 좋았다가 저게 좋아지고, 전엔 싫다더니 이젠 좋다고 하는 내 취향 변화의 반영일 뿐이다. 인생의 은유가 여행이라면, 세상살이의 한 형태인 정치도 여행이다. 정치인의 삶을 흔히 정치 여정이라고 하지 않나. 다만 여러 번 여행이 아니라 단 한번 여행이다. 처음 정한 목적과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완주해야 한다.여행자는 국적을 바꿀 수 없는데, 정치인들은 당적을 막 바꾼다. 지역구도 그렇다. 동음이의의 여권에 도장 찍으려고 변장한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지 말아야 할 것 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도 먹는다. 정치를 자기 취향과 입맛대로 한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 우르르 몰려간다. 여행처럼, 모든 정치가 가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유권자들이라도 엄격한 입국심사원이 되어 사람을 가려 뽑았으면 좋겠다. 공천이라는 게 꼭 밀입국 같다.

2016-03-23

무작정 노르웨이 기행문 1

▲ 이병철 시인열하루 동안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텐트와 침낭, 낚싯대를 메고 가 캠핑을 했다.`북극의 관문` 트롬소(Tromso)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 피워 양고기를 구워 먹었다. 온통 흰 눈에 덮여 딴 세상 같은 해변으로 북극해의 파도가 엄숙한 성가처럼 밀려왔다. 어둠마다 얼음이 박혀 있어 바람은 날카롭고, 유리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로라(aurora)`로 불리는 북극광(北極光)을 보기 위해 떨며 밤을 지새웠다. 오로라는 뜨지 않았지만, 더 바랄 것 없었다. 밤은 황홀했다.피요르드(fjord) 탐사도 했다. 빙하가 지반을 침식시켜 생긴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찬 협곡이다. 산악열차와 배를 타고 설산이 커튼처럼 겹친 피요르드를 통과했다. 호수가 맑아 하늘로 솟은 설산이 물속에도 있었다. 그 비현실적 풍경을 글로 설명 못 하겠다. 곧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베르겐 인근 바다에서 낚시로 60㎝가 넘는 금빛 대구를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아름다움이나 생의 환희는 그저 입을 다물게 만든다.천혜의 자연과 그걸 누구나 공평하게 누리도록 하는 `자연에의 접근권` 덕분에 나는 대자연의 깊은 내부까지 들어가 환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자연에의 접근권이란, 노르웨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산과 바다, 강, 호수, 공터 등 어디에서든 야영과 취사, 트래킹을 허용하는 법적 보장을 뜻한다. 나 같은 방랑객에게는 자연에의 접근권이야말로 복지다.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는 노르웨이 특유의 지리 및 문화, 사회, 경제적 특징에서부터 비롯된다. 땅 크기는 우리나라의 약 네 배 정도 되는데, 인구는 고작 500만명에 불과하다. 어업과 관광산업이야 더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석유까지 나온다. 1인당 GNP는 무려 10만달러에 달한다. 인구밀도가 낮은 만큼 개인이 누리는 몫이 넉넉할 수밖에 없다. 세법도 우리와 다르다. 고소득자에게 적용되는 세율이 훨씬 높다. 복지 재원 마련이 수월하고, 혜택의 분배는 공평하다. 하도 뜨문뜨문 떨어져 사니까 이 사람들도 외로운 거다. 자연에의 접근권이라는 것도 대자연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렇게나 텅 빈 곳을 누군가가 채워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낯선 이에게 친절한 것도 같은 이유 아닐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의 제도적 실천인 복지 역시 마찬가지다. 넓은 땅에 인구가 적으니까 사람이 귀한 것이다. 보행자가 길을 다 건너기 전엔 차도 트램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가진 자들이 더 많이 책임지는 국민성은 환경이 길러낸 습성이다.우리나라 인구밀도와 1인당 GNP를 생각하면, 우리가 북유럽 수준의 복지를 누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제적 여건이나 법 제도는 차치하고서라도 국민성부터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복지는 제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도 있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 타인의 실수나 부족함에 대한 관용,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돈이 땅 사도 배 아파하지 않는 여유 같은 것들 말이다. 귀국해서 서울 도심의 횡단보도 하나 건넜을 뿐인데도 몹시 슬퍼졌다.여행을 하면서, 진정한 복지는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풍요와 아름다움. 그걸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명소마다 투기꾼과 기업가들이 몰려가 골프장과 스키장, 카지노, 호텔을 짓는 걸 위락(慰)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복지는 너무 먼 얘기다. 자연의 소중함을 알아야 사람 귀한 것도 알게 된다.그런데 엉뚱한 데서 한국식 복지의 우수함을 보았다. 복지(福祉)는 `행복한 삶`인데, 저녁 8시가 넘으면 마트에서 술을 팔지 않는 노르웨이는 내게 불행과 깊은 절망을 안겨줬다. 천하태평 닐리리맘보인 오슬로 공항 창구는 또 어떤가. 덕분에 두 번이나 환승 비행기를 놓쳤다. 늦게까지 술 팔고, 무엇이든 빨리 처리해주는 것도 내겐 훌륭한 복지다. 그걸로 만족하련다.

2016-03-16

내 이름은 이병철

▲ 이병철 시인나는 내 이름을 싫어한다.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이 입다 벗은 옷을 주워 입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들고, 이름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것만 같다. 내 고유한 생이 누군가의 아류처럼 여겨지는 것만 같아 불쾌하다.새 학기 출석을 부를 때면 선생님들은 꼭 “회장님이 여기 계시네? 너희 집 돈 많으냐?”라고 물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군대에 가서도, 심지어 사회에 나가서도 그 질문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도 자주 물어보니까 “이름만 부자고 사람은 거지”라고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인 적도 있다.회장님과 나는 이름의 한자도 똑같다. 아버지께서 작명소에 가 지어왔는데, 돈 많이 버는 이름이라면서 역술인이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나도 미아리에 돗자리 깔겠다. 정씨면 정주영, 김씨면 김우중, 신씨면 신격호라고 이름 짓는 일이 뭐 어려운가.한산 이씨 문열공파로서 목은 이색의 후손인 나는 항렬로 따지자면 `복`자 돌림을 써야 한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복` 대신 얻은 이름이 병철인데, 이것도 그다지 세련되지는 않다. 그저 다른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이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초등학생 때는 다들 유치해서 `병`이 들어가는 욕설 등으로 놀렸다. 중학생 때는 그 수준이 조금 향상됐다지만 “이 병은 철로 만들었습니다” 따위 졸렬한 삼행시를 듣고 있노라면 막말로 뚜껑이 열렸다. 고등학생 때는 `빙치리`, `뱅철이` 같은 언어유희의 표적이 되곤 했다. 왜 나는 혁이나 빈, 훈, 우성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없는가 한탄하는 날이 많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고 진짜 진지하게, 나는 “이병 이병철” 하기 싫어서 장교로 군대에 간 사람이다.누가 문득 내 이름을 부를 때, 혹은 약 봉투나 우편물에 적힌 내 이름이 보일 때 나는 순간적으로 소스라친다. 기표로서도 이상하고 음가도 괴상한데 `회장님`이라는 기의 때문에 더더욱 내 이름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등단만 하면 필명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몇 개의 이름을 지어놓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나는 `이병철 시인`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필명을 써서 복잡하고 귀찮은 일들 자주 겪을 바에야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필명의 물망에 올랐던 이름들은 차마 열거할 수 없다. 정말 손발이 다 오그라든다.그럼에도 손자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음성이나 눈멀고 귀먹은 할머니의 어눌한 발음을 생각하면 내 이름은 우산이며 난로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따뜻한 입술로 내 이름을 부를 때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꼭 `병철`이 아니었더라도 좋았을 것이다. 이름이 어떻게 본질을 규정하고 구속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내겐 `늑대와 춤을`이나 `주먹 쥐고 일어서` 같은 인디언 이름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이젠 다 틀렸다. 개명도 할 수 없고 필명을 쓰기에도 늦었다. 이름으로부터 도망치거나, 대적하는 일이 요원해진 가운데, 단 하나의 가능성만 유효하다. 내 이름이 가진 상투적 기의를 스스로 거세시키는 방법이다. `회장님`과 무관하게 철저히 자본과 경제, 돈으로부터 멀어져서 사는 것이다. 이 방법론은 자발적 가난을 의미하거나 궁핍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되진 않을 것이다. 먹고 살만큼은 벌어도 물신의 노예는 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게 내 이름에 대한 복수이자 예의다.이 글이 게재될 때 나는 노르웨이 베르겐에 있을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프런트에서 벽안의 외국인이 `리쁑촐`하는 소리나 가만히 들으면서, 노르웨이식으로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게 좋을까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뭉크보다는 `글람벡 뵈`나 `스톨텐베르그` 같은 고난도 발음이 좋겠다. 그런 이름이라면 친구들도 어떻게 놀려먹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힐테니까.

2016-03-09

행복은 취향에 있는 것

▲ 이병철 시인오지랖 중에 가장 기분 나쁜 오지랖은 누군가가 내 취향에 대해 평가하고 간섭하는 일이다. 나는 취미로 낚시와 야구를 즐기는데, 그것도 오래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별의별 참견하는 소리들을 자주 듣곤 한다.낚시의 경우, SNS에 물고기 사진 좀 작작 올리라는 것부터 “그만 좀 다녀라”라는 말까지 듣는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 취미 1위가 낚시라면서, 낚시하는 남자는 어디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고 목청 높인다. 자기 아버지나 남편이 낚시하는 꼴 보기 싫다고 해서 왜 나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 가면 술이나 마시거나 `다른 짓`을 하지 않느냐며 불쾌한 추측으로 내 취미를 제한하려는 사람도 있다.“진짜 재미없고 따분하던데 그걸 왜 해요?” 따위 질문에는 아예 대답하고 싶지도 않다.야구는 낚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힐난을 덜 받는 편인데, 그래도 기분 나쁜 말들이 종종 들린다. 그게 운동이 되느냐는 조롱 섞인 질문부터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폼만 잡는다는 소리, 좀 더 나이 들면 골프로 갈아타라는 회유 등등 다양하다.그런 말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내가 가진 취향이 보편적이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인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하든 와인을 마시든 인테리어를 하든 그들은 참견을 도무지 참지 않았다. 청승 떤다고, 허세를 부린다고, 과소비라고 하면서 말이다. 중고차를 사면 너한테 차가 무슨 필요냐고, 포즈 잡고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올리면 네가 연예인이냐고 한다. 내 취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병적인 입방아가 문제다.그렇게 저열하고 수준 낮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슬프다. 그들에게 나는 햇반에 라면만 먹고, 밍밍한 국산 맥주와 소주만 마시고, 장판이 눌러 붙은 낡은 방에서 대충 자고, 평생 대중교통만 이용하고, 현상수배 포스터 같은 무표정한 사진만 찍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나는 월세 원룸을 나만의 취향과 감각으로 꾸며서 생활하는 중이다. 최근 방 꾸미기가 유행하자 한 신문사에서 내 방을 취재해갔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돈 아깝다”, “그러니 네가 월세 사는 거다”, “남의 집을 무엇 하러 꾸미냐” 같은 비난 일색이었다. 그때 이런 메모를 했다. “자가, 전세, 월세라는 계약 형태가 주거 내용마저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건 천박하기 그지없다. 공간은 곧 자기 자신인데,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옷은 왜 골라 입나? 집은 내밀한 취향의 장소로서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다. 내 집이면 가꾸고 전월세면 주어진 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취향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 수 없다”라고.17세기 프랑스 작가인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는 “행복은 취향에 있는 것이지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지, 다른 사람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생각이 비난 받을 때보다 취향이 비난 받을 때 자존심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라고도 했다. 남의 취향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이들에게 라 로슈푸코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심코 남의 취향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오지랖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는지 알아야 한다.“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듯 교제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한 라 로슈푸코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내 취향이 소중하듯 남의 취향도 소중하다. 혹시 나도 은연중에 타인의 취향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주제넘게 참견하려 들진 않았는지 돌아보면서, 지나친 관심은 폭력이므로 가만히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

2016-03-02

신사가 되지 못한 끄리의 고백

▲ 이병철 시인나를 잘 아는 이들은 절대 동의할 수 없겠지만, 평소 사람들로부터 점잖고 차분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다. 장교로 군 복무를 하고,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들을 모시면서 어떤 침착한 태도 같은 것들이 습관처럼 몸에 밴 것 같다. 하지만 내 차분함은 고작 한 꺼풀이 전부다. 벗겨지는 순간 흉한 알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가 지닌 매너는 사실 습관이 아니라 의식적인 것이다. 타인에 의해 간섭 받거나 피해 입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나도 타인의 반경 안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 것뿐이다. 내가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도 부당하게 피해를 입을 때, 타인의 고의적 잘못으로 내가 억울함을 당하게 될 때 나는 폭주한다. 길길이 날뛰는 야수가 된다.하루는 지인들과 청계천에 바람을 쐬러 갔는데, 대학 운동부로 보이는 사내들이 술병을 들고 웃통을 벗은 채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피해가려는데 동선이 겹쳤다. 인공폭포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물장난을 하는데 그 물이 나와 우리 일행에게 튀었다. 같이 온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다가 이미 피가 거꾸로 솟아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만류를 뿌리치고 그들에게 가 험한 말을 했다. 싸우자는 거였다. 몸싸움이 일었다. 그러다 그쪽이 사과하면서 일단락되었는데, 하마터면 일대 다수로 맞아죽을 뻔했다. 그 순간에 치미는 부아를 해결하지 않으면 몸속에 불이 나 견딜 수가 없다.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것, 이성의 웃통을 함부로 벗지 않는 것이 신사의 품격이라면, 나는 자격미달이다. 택시 승차나 주차 문제, 내 소중한 생활권이 침해될 때, 친절과 예의가 무례함으로 돌아올 때, 이유 없는 고압적 태도와 마주할 때 나는 성격이 급해지고 다혈질로 변한다. 그걸 겉치레로 감추느라 피곤하다.타인과 전혀 무관한 상황에서도 울컥할 때가 있다. 지난주 내내 몹쓸 결막염으로 고생했다. 눈두덩이 부어오르고, 토끼눈이 되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고, 돌이 들어간 것처럼 아팠다. 밖에 돌아다니기는커녕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일상이 멈추면서 산더미 같은 일들을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열불이 뻗쳤다.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까칠했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막 걷어찼다.고작 결막염 하나로도 그 난리인데, 누명을 써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거나 강제로 징집이라도 되면 미쳐 날뛰다 제 분에 못 이겨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강에 사는 물고기 중에 끄리라는 녀석이 있는데, 성격이 포악하고 급해 깡패라고 불린다. 낚시로 잡아 살림통에 넣어 놓으면 마구 뛰어오르고 사방팔방 부딪치다가 5분 만에 죽어버린다. 금방 죽어서 관상용도 될 수 없고, 맛이 없어 식용도 안 된다. 그래서 잡고기 취급을 받는다. 내가 꼭 그 끄리 같다.누구라고 제 안에 불덩이 같은 분노가 없겠는가. 시대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힌 사람들을 알고 있다. 한 국가와 민족이 겪은 것보다 더 처절한 개인의 아픔을 평생 지고 사는 분들 말이다. 나로서는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여덟 시간도 아니고 팔십 평생이다. 끄리 같은 내 소갈딱지였다면 알코올 중독의 불한당이 되어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살았을 것이다. 그분들이라고 그렇게 할 수 없어 안 한 게 아니다. 왜곡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참고 또 참으며 비인간적인 이들을 상대로 신사적인 싸움을 묵묵히 해온 것이다. 국가의 품격을 높인 건 정치가나 기업가가 아니라 바로 그분들이다.영화 `귀향`이 개봉되었다. 상영관 수를 늘리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는 중이다. 상업시설인 극장은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영화를 상영할 의무가 없으므로 나는 상영관 확보 운동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다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조그마한 일에만 분노하는 삶의 태도를 바꿔보고자 한다. 불같은 에너지를 좀 더 공의로운 곳에 쓸 수 있다면 좋겠다.

2016-02-24

밸런타인데이의 추억

▲ 이병철 시인상술이니 사대주의 풍속이니 해도 분명 유쾌한 이벤트이긴 하다. 올해도 내게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괜찮다. 형형색색 초콜릿 상자를 쌓아둔 거리에서 어린 연인들이 자기 몸 만한 바구니를 들고 걷는 걸 보니 내 마음도 달짝지근했다.나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순기능을 긍정한다. 짝사랑이든 소위 `썸`이든 적당한 때에 마음을 고백해야 사랑이 이뤄지는 법이다. 이뤄지지 않더라도 관계가 명확해져서 헛심 쓸 일 없어지므로, 고백이란 남녀관계의 불가결 통과의례다.이 `고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만만찮다. 레스토랑, 풍선, 촛불, 야경, 반지, 단기속성으로 배운 단 한 곡 피아노 연주 등 고백의 최적 환경을 이루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간소화 시켜주는 것이 초콜릿과 사탕이다. 알아서 로맨틱하고 알아서 들뜨는 날이다. 타이밍과 명분, 분위기까지 이미 조성되어 있으므로 이날만큼은 누구나 용기를 내볼 만하다. 초콜릿과 사탕을 핑계 삼아 건네진 수많은 고백들, 맺어진 연애들, 뼈아픈 거절들을 생각한다. 내게도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 대한 추억이 있다. 초콜릿 하나 받지 못한 형제들을 위해 교회에서 일괄적으로 목에 걸어주던 ABC초콜릿 목걸이 이야기는 아니다.땅을 친 후회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남자애들 모두가 좋아하던 여자애의 초콜릿 수신자로 간택되었다가 자격을 박탈당한 일이다. 친구들과 교실 청소를 하다가 그 애가 두고 간 비밀 일기장을 열어보았다. 거기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입 다물고 있어야 했거늘, 소년들은 짓궂다. 2차 성징에 관한 내용, 짝사랑 이야기 따위를 우리만 아는 암호로 떠들다가 들통이 났다. 그 애는 엉엉 울었고, 그걸로 끝이었다.사실 밸런타인데이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화이트데이 100일 전부터 매일 밤 막대사탕 하나씩 사서 만든 백 개짜리 사탕 꽃다발도 중3 소년의 사랑을 이뤄주진 못 했다. 남대문시장에 가 미국 남부의 목가적 전원을 그린 영화에나 나올법한 대형 피크닉 바구니를 사서 거기 사탕을 가득 채워 선물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다. 그건 스물세 살 때 일이다. 전기밥통에 쪄낸 빵에다 생크림과 젤리, 딸기 따위를 조악하게 얹어 만든 케이크를 준 적도 있다. 나라도 싫어했을 것 같다. 식구들만 괜히 찬밥 먹었다.아아, 받기만 하고 떠난 여인들이여.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미덕은 `기브 앤 테이크`에 있다. “나는 초콜릿을 받았는데 왜 너에게는 명품 백을 줘야하느냐”는 일부 남성들의 볼멘소리도 있지만, 어쨌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공평한 시스템이 정체불명의 서양 기념일을 이 땅에 정착시킨 주요인이다.그런데 밸런타인데이가 먼저인 게 남자인 나로서는 불만이다. 먼저 받는 쪽이 불리하다. 여자들은 초콜릿 선물을 하면 한달 뒤를 기대할 수 있지만, 남자들은 사탕을 주고나면 기대할 게 없다. 요새 화이트데이 다음에 블랙데이니 뭐니 생겨났는데, 짜장면 따위 얻어먹긴 싫고, 빼빼로데이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외롭다.그 사이에 그녀들은 사탕도 편지도 뜨거운 마음도 다 까먹는다.쌀도 주고 약도 주고 친구 잔치에도 갔는데 사탕은커녕 미사일과 지뢰, 삐라 뭉텅이, 그리고 차가운 외면만이 돌아왔다.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서 줬던 선물 도로 뺏고, 실망했다며 크게 삐쳤다. 예전에 방영되던 한 음악방송 타이틀이 `김정은의 초콜릿`인데, 북쪽 청년은 `통일 대박` 로맨스에 관심 없는지 우라늄 초콜릿과 탄저균 사탕만 빨아먹고 있다.얼마 전 중국에서 구애에 실패한 코끼리가 열다섯 대의 차를 때려 부쉈다. 그 심정 이해한다. 버려진 전기밥통 케이크를 보고 나도 동네 쓰레기통 몇 개 걷어찼다. 하지만 아무리 야멸치게 딱지 맞았을지언정 우리가 그 코끼리는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2016-02-17

제트기류의 나비효과

▲ 이병철 시인마침내 한파가 물러갔다. 기록적인 추위였다. 특히 제주도에는 무려 90년만의 강추위와 32년만의 폭설이 찾아왔다. `찾아왔다`고 하면 너무 친절한 느낌이고, `급습했다`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렇다. 추위와 폭설은 제주도를 급습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시설과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제주공항과 여행객들이 무방비로 당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일망타진(?)이 이뤄졌는데,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사례들이 사람들 입에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월차 내고 여행 갔다가 폭설에 발이 묶여 나란히 출근 못 한 남녀 사원들의 비밀 사내연애가 곳곳에서 들통 났다고 한다. 들통 난 비밀연애야 시원하게 인정하고 그간의 사정을 고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불륜과 `바람`이다. 출장 간다고 했던 남편이 뉴스 화면에 낯선 여인과 함께 등장했다. 등산모임에 다녀온다던 아내가 제주공항에서 젊은 남자와 같이 있는 걸 지인이 목격했다. SNS에 퍼진 실시간 제주공항 상황 사진 속에 내 남자친구가 왜 민경이랑 같이 있는지 모르겠다. 기도원에 부흥회 다녀온다던 여자친구는 하늘로 승천했는지 닷새 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등 온갖 사연들이 알려지면서 제주도는 `불륜 커플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판이다.여행은 달콤했을 것이다. 애월과 협재 겨울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은 장관이다. 테디베어 박물관이니 러브랜드니 아쿠아리움 같은 필수 데이트 코스도 빼놓을 수 없다. 제철 방어회와 흑도야지를 먹으며 “우리 이래도 괜찮을까?”라고 묻는 말에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한 절대 들킬 일 없다”고 대답했으리라.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하늘이 두 쪽 난 듯 폭설이 쏟아진 것이다.북경의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뉴욕에 폭우가 내린다는 나비효과가 떠오른다. 이번 한파와 폭설은 북반구 중고위도의 제트기류가 지구온난화로 약해지면서 북극의 찬바람을 밀어내지 못 한 것이 원인이다. 제트기류의 약화가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한파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지만, 지구가 따뜻해지면 한국 어느 가정에 매서운 찬바람이 몰아친다는 건 새로운 이론이다. 학계의 주목까지는 차마 요청하지 못 하겠다.우주의 예측불허성, 이것은 카오스 이론(혼돈 이론)의 핵심 개념이다. 이쪽의 나비 날갯짓이 바다 건너 먼 나라에 비를 내린다는 걸 그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뉴스에서만 들었던 지구온난화가 이혼소송과 가정 파괴, 자녀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똑같은 힘으로 여러 번 종이를 구겨도 종이에 새겨지는 구김살의 문양은 제각각이다. 돌연한 사고로 삶이 송두리째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이 세계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과 불확실성, 혼돈으로 이뤄진 곳이다. 자꾸 확실하다고 말하는 사람, 무엇이든 금방 단정 짓는 사람, 쉽게 장담하고 확신하는 사람일수록 어리석은 자다.바람피우다 제트기류에 얻어맞은 이들은 전혀 측은하지 않다. 입사 자축 여행을 갔다가 첫 출근을 하지 못 한 신입사원의 사연이나 생애 첫 가족 여행이 가족 노숙이 되어버린 이웃의 이야기는 참으로 안타깝다. 며칠 전만 해도 여행의 즐거움을 누리며 제주 찬가를 부르더니 이제는 다시 안 간다며 제주를 저주하는 친구에게 변변한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 했다. 어쩌겠나. 세상이 그렇고 인생이 그러한 것을. 단 몇 분 뒤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이달 말에 나는 제트기류의 고향인 저 문제적 북반구, 노르웨이로 여행을 간다. 텐트와 침낭 메고 가 캠핑을 할 거다. 정말로 혼자 가기 때문에 자연의 정의구현에 까발려질 죄나 비밀은 없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예정된 계획들이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변경되는 사태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인 탓에 돈으로 어떻게 해볼 요령이 없어서다. 차라리 북극곰을 만나거나 바이킹족 여인과의 로맨스는 환영이다.

2016-02-03

불편한 솔선수범

▲ 이병철 시인공병 장교로 근무하던 군대 때 일이다. 이제 막 자대에 부임한 초급 장교였던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단장 공관 복원` 공사였다. 소대원들과 함께 폐가나 다름없던 옛 공관을 맨손으로 부수고 뜯어내고 파내며 기초 공사를 했다. 굴삭기를 비롯한 공병대 중장비가 주요 공사를 하는 동안 나와 소대원들은 나무에 올라 벌집을 제거하고, 인근 민가의 개집을 철거하고, 돌을 뽑아낸 진입로에 잔디를 심었다. 준공식 날, 하늘이 뚫린 듯 폭우가 쏟아졌다. 군사령관과 사단장 등 별들의 향연에다 군수, 도의원, 기자들까지 모인 가운데 기념식수용 소나무를 운반하는 수레가 진입로를 오르지 못해 행사가 지연됐다. 이등병처럼 얼어 있던 대대장이 갑자기 우산을 내던지고 달려가 소처럼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행사 미관을 해친다 하여 안 보이는 구석으로 `치워져` 있던 나와 소대원들도 달려 나가 수레를 밀었다. 소나무는 결국 크레인에 의해 운반되었다. 대대장은 사단장에게 `불굴의 군인 정신`을 칭찬 받았지만, 우리들은 다시 치워졌다. 준공식이 끝난 후 속옷까지 흠뻑 젖은 채로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먹으며 `잔반 처리`를 할 때, 소대원들에게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군대에서는 상급자의 솔선수범이 우스운 촌극을 낳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심을 기억하고자 `처음○○` 소주만 마신다는 참모장에 의해 모든 부대의 회식 자리는 물론 20년 째 두꺼비만 애호한 주임원사까지 술을 바꾸고, 연대장이 자전거 출퇴근을 하자 모든 간부들이 월급을 털고 신문구독을 신청해 자전거를 장만한 일도 있다. 얼어붙은 저수지를 스케이트장으로 만들어 지역민에게 개방한 날, 먼저 스케이트화를 신고 엉거주춤 빙판을 달리다 자빠진 사단장 뒤로 무궁화와 다이아 수십 개가 일제히 엉덩방아를 찧던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어디 군대뿐이겠는가. 퇴근 안 하는 상사 때문에 할 일 없이 자리 지키고 앉은 직원들의 한숨소리는 우리 고유의 기업문화가 되었다. 회사를 사랑해서 일요일에도 출근한다는 전무님 덕분에 사원들은 `월화수목금금금` 마법의 달력을 책상에 올려놓는다. 사장님들은 제발 새로운 취미활동을 자제해줬으면 좋겠다. 등산, 골프, 조기축구, 낚시, 스쿠버다이빙, 심지어 주말농장 가꾸기까지. 어떤 가수는 `취미는 사랑`이라고 노래했지만, 직장인들에게 `취미는 사장`이다.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킬지 모르거나 너무 잘 아는 우두머리들이 불편한 솔선수범을 보이곤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함이든 알고 이용하는 속셈이든 `알아서 기는` 아랫사람의 눈치와 만날 때 위와 같은 촌극들이 발생한다. 감화와 감동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불안감과 약점을 건드려 마지못해 나서게 하는 것은 솔선수범보다는 협박에 가깝다.얼마 전 대통령이 경제단체와 기업인 주도의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영하의 추위를 무릅쓰고 거리에 나가 서명부에 직접 이름을 적은 것이다. 국민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나름의 솔선수범인데, 국민운동이 되는 대신 청와대에 `찍힐 것`을 두려워한 정재계의 `진실한 사람 인증`으로 변질되는 모양새다. 회장님 및 기관장님들이 서명하는데 하부조직과 그 직원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머잖아 서명운동 행사장에 45인승 관광버스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이라고 했는데, 15년만의 최강 한파다. 겨울바람에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다. 쪽방촌 독거노인들은 난방비 걱정에 입김 나오는 냉골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고, 한파 여파로 국가의 혈액 재고가 바닥났다고 한다. 서명운동보다 독거노인을 위한 연탄 배달이나 헌혈에 솔선수범한다면 국민들 마음에 따뜻한 봄바람이 불지 않을까.

2016-01-27

욕망이라는 이름의 어묵탕

▲ 이병철 시인사람들은 보통 자신과 욕망하는 바가 같은 이를 미워한다. 내가 특정한 누군가를 계속 험담한다면, 그건 그 험담의 대상이 내가 가지려는 것을 똑같이 욕망하거나 이미 가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오르고 싶은 자리, 얻고자 하는 상급을 향한 일차선 도로를 남과 함께 주행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다. 고등학교 때, 한 남학생을 똑같이 연모하던 여학생 둘이 서로에 대한 비난과 근거 없는 악의적 소문내기로 척을 졌던 일이 떠오른다.그 남학생이 나라는 것을 굳이 밝히는 까닭은, 두 여학생의 우정에 금이 가게 한 것을 이제나마 사과하기 위함이다. 나는 둘 중 누구의 손도 잡아주지 않음으로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의 분노와 미움을 나에게로 돌리며 둘이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일은 이렇게도 흔하다.플라톤이 이상국가에서 시인을 추방해야한다고 목청 높인 것은 그 자신이 시인이었기 때문 아닐까. 어느 술자리에서 한 젊은 시인이 자신보다 어린,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시인의 시집을 어묵탕 냄비에 넣고 끓여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내가 욕망하지만 소유하지는 못하는 것을 타인이 갖고 있을 때, 열등감은 `시집 어묵탕`과 같이 유치하고 졸렬한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자기 안에 어묵탕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질투와 증오를 제어하지 못 하는 것이다.나는 쏘가리 낚시를 즐긴다. `즐긴다`는 것도 강가에 나 홀로 있을 때만 가능한 얘기다. 내가 자주 가는 전남 곡성 섬진강 일대는 포인트로 진입하는 포장도로가 하나뿐인데, 남원 톨게이트를 지날 때부터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영 거슬린다. 이 차에도 낚시꾼, 저 차에도 낚시꾼이 타고 있을 것만 같다. 우회전과 좌회전, 시골 구멍가게를 지나 굴다리를 통과할 때까지 내 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지프차를 보며 불유쾌한 예감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마침내 정체를 드러낸 낚시꾼과 같은 장소에 차를 세우고 강가로 걸어가는 기분은 정말 찝찝하다. 그 역시 내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하루 종일 낚시해도 한 마리 잡을까말까 한 쏘가리인데, 그 저조한 확률을 남과 공유해야 한다는 데서 부아가 치민다. 그러다 옆의 사람이 한 마리 잡기라도 하면 눈이 뒤집힌다. 옆에서 들려오는 환호작약과 물 첨벙거리는 소리는 마치 나를 조롱하는 듯하다. 그런데 대뜸 그가 나에게 저쪽으로 채비를 던져보라며 힌트를 준다. 그가 가리킨 곳을 공략해서 나도 한 마리를 낚아낸다.그와 나는 이제 적이 아니라 함께 낚시를 즐기는 `조우(釣友)`가 되었다. 급기야 근처 식당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상대방의 낚시를 추켜세우기까지 한다. 화산처럼 뜨거운 욕망도,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미움도 한순간에 봄볕처럼 유순해질 수 있다.나와 욕망하는 바가 같다고 해서 타인을 미워하지 말자. 영광에도 차수가 있어서, 그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 거기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줄지 누가 아는가. `먼저`와 `나중`보다 그토록 욕망하던 산정에 오르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닐까.공천도 하나고 당선의 영광도 하나이긴 하지만, 상대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 탈당과 창당, 전략적 단일화와 경선 불복, 룰 변경 따위를 매번 반복하는 정치권의 `욕망 질주`는 국민을 지치게 만든다. 자리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과 신뢰를 욕망한다면, 배신인지 영합인지 같은 것들을 과감한 결단과 통합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국민들 눈에는 정치판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다 똑같은 모양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어묵탕처럼 보일 뿐이다.

2016-01-20

`불가역`을 생각하다

▲ 이병철시인 2016년의 시작은 `불가역(不可逆)`이라는 말과 함께 왔다.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상 발표문에 나온 말이다. 절대 바뀔 수 없다, 즉 위안부와 관련해서는 이제 다 끝난 얘기라는 것이다. 이 협상의 하이라이트는 합의 결과에 대해 번복하기 없기, 딴소리하기 없기, 다시는 위안부로 시비 걸기 없기를 약속하면서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10억 엔을 받기로 한 것이다. 굴욕 외교라는 비난이 거세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할머니들의 고통을, 오랜 세월 국민들이 지켜온 소중한 가치를 고작 97억 원이라는 푼돈에 팔아넘겼다는 이유다.도박 및 알코올 중독의 무능한 아비가 집문서나 땅문서, 자식이 손수 마련한 대학 등록금을 술값과 판돈으로 엿 바꿔먹듯 탕진하는 내러티브가 외교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데 놀랐다. 이러한 불가역 협상은 보통 사기꾼의 달변에 속아 넘어가거나 내 사정이 도무지 궁하여 `눈물의 땡처리`를 해야만 할 때, 또는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천치일 때 이루어지곤 한다. 내게도 뼈저린 불가역 협상의 기억들이 있다.유치원을 겸한 태권도장에 다니던 여섯 살, 서울대공원으로 간 가을 소풍에서 보물찾기를 했다. 나무 위와 바위틈 등에 숨겨진 종이를 찾으면 거기 적힌 상품을 주는, 일종의 경품 행사였다. 잔디밭을 한참 헤매다 꽃덤불에서 종이를 발견했다. `학용품`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나는 학용품이 뭔지 몰랐다. 한 살 위 형에게 물어봤더니 그거 별로 좋은 거 아니라면서 자기랑 바꾸잔다. 그래서 바꿨다. 바꾼 종이에는 `비누곽`이라고 쓰여 있었고, 집에 와 엄마에게 비누곽 습득의 과정을 말한 나는 등짝을 얻어맞았다. 연필과 샤프, 지우개, 노트 등으로 구성된 학용품이 1등 상품임을 알았을 땐 이미 불가역 상태였다. 물정 모르는 천치가 사기꾼의 꾐에 넘어간 복합적 사례다.사정이 궁하여 어리석은 거래를 한 적도 있다.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홀로 자취하며 대학원에 다닐 때, 한 일 년 버티다 생활비가 없어 막막했다. 책을 사 보기는커녕 전기와 가스마저 끊길 지경이었다. 책상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장교 임관기념 반지가 생각났다. 금값이 한창 오를 때였다. 며칠을 고민하다 금 거래소에 가서 팔아먹었다. 산값보다 두 배 넘게 받았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엔 별로 고민도 안 했다. 돌잔치 때 선물 받아 유년기부터 20여년을 쓴 내 은수저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은수저 각 한 벌을 내다 팔았다.그렇게 해서 월세도 내고 라면도 사먹고 하면서 며칠 잘 지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밀려왔다. 잠깐의 어려움에 현혹되어 영혼을 내다 판 것 같은 자책감에 괴로웠다. 내가 헐값에 넘긴 것은 임관기념 반지가 아니라 군대에서 겪어내야 했던 폭염과 고된 훈련, 그걸 이겨낸 자부심이었다. 그 반지 하나를 얻으려고 바쳤던 육체와 정신의 아름다운 고통이었다. 은수저 한 벌이 아니라 숟가락에 국물보다 먼저 고이던 아침 햇살, 밥 한 술에 담긴 사랑과 유년의 추억, 할아버지에 대한 은빛 기억들을 나는 팔아먹은 것이다.우리나라가 일본한테 사정이 궁했던 모양이다. 그걸 안 일본이 교활하게 꼼수를 부려 우리를 바보천치로 만들었다. 이 협상으로 일본과의 외교가 정상화되어 당장 얼마간 이득을 볼 순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 자리마다 모두 폐허가 되어 뼈아픈 후회를 삼킬 것”이다. 명분을 포기한 실리는 결코 이익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이 나라는 청년들에게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엿 바꿔먹게 하는 불가역 거래를 강권하는데, 마땅히 지켜야 할 것조차 쉽게 내다 팔아버리는 행태까지 보인 것이다.그나저나 그때 내게 비누곽 쥐어준 그 녀석은 학용품으로 공부 열심히 했을까? 이리저리 잔머리 굴려 성공한 사람이 되었을까? 어림도 없지! 절대 그랬을 리 없다. 27년 묵은 뒤끝이다.

2016-01-13

`전해라`의 사회학

▲ 이병철 시인요즘 인터넷이나 티브이에서 “~한다고 전해라”라는 댓글이나 자막을 자주 본다. 25년간 무명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가수 이애란의 노래 `백세 인생` 패러디들이다. 이씨가 안면근육을 모두 사용하여 유사 하회탈 얼굴로 열창하는 장면에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노랫말이 적힌 캡처 이미지가 SNS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게 이 패러디 현상의 시작이다. `전해라`의 유행에 힘입어 이씨는 각종 티브이 프로그램과 뉴스에까지 출연했다.“육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로 이어지는 이 노래는 무병장수의 기원을 담고 있어 환갑이나 고희, 팔순잔치 등 행사곡과 노년층 애창곡을 목표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20년 묵은 이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층의 폭발적 반응을 얻으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유행가가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한마디로 요약하면, 한낱 인간이 염라대왕과 저승사자에게 배짱 부리며 개기는 내용이다. 이 `배짱`과 `개김`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리만족의 통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 절대적 권력, 슈퍼 갑에게 당당하게 자기 할 말 다 하는 로망이 “부장이 야근하라 하거든 금요일이라 칼퇴근한다고 전해라” “남편이 밤늦게 밥 차리라 하거든 라면 끓여 먹으라고 전해라” “교수님이 과제 제출하라 하거든 노느라 못 한다고 전해라” 같은 패러디를 양산하고 있다.그런데 사실 “~한다고 전해라”의 어법은 할 말 다 하는 배짱과는 거리가 멀다. 위의 패러디들도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만 소비될 뿐이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대상을 향해 큰소리 뻥뻥 치는 상상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직접 말할 용기가 없거나 명분이 서지 않을 때, 또 말의 수신자와 물리적·심리적 거리가 멀 때 우리는 주로 전언을 사용한다. 중학교 시절 옆 학교 주먹 좀 세다는 녀석과 한 학기 내내 “나 피해 다니라고 전해라” “까불다 죽는다고 전해라” “금요일 방과 후에 봉천동 공사장으로 오라고 전해라” “거긴 네 앞마당이니 신림동 지하주차장으로 오라고 전해라” 따위 졸렬한 전언들로 신경전을 벌이다 정작 대면했을 때 싱겁게 악수하고 끝냈던 기억을 떠올리면, `전해라`는 확실히 대범함보다는 소심함 쪽에 가깝다.개인과 개인의 간극이 넓은 사회가 전언의 일상화를 부추긴 것은 아닐까. 직접 말할 만큼 살가운 밀착이 불가능해져서 매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마음을 전달할 수 없는 소통 장애는 아예 시대병이 된 듯하다. 언론을 통해 전언만 앞세우는 정치인들은 국민과 불통한다. 말 바꾸기가 횡행하고,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세태가 `전해라`를 남발하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언에는 발뺌과 물타기의 공간이 늘 존재해서, 최초 발화자나 그 말을 전한 사람이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든가 “그저 말을 전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백세도 못 사는 인생인데, 할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하고 살자 전해라! 그러나 당분간 `전해라` 유행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렇게 된 바에 전언의 형식으로 직접 말하자.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엄마, 사랑한다고 전해라” “여보, 고맙다고 전해라” “아들딸아 자랑스럽다고 전해라”라고, 이럴 때 유행어 핑계로 한번 해보는 거다.어떤 일을 해낼 용기와 명분과 능력이 다 없거나 셋 중 하나라도 모자랄 때 전언은, 일부러 여러 사람 들으라는 선언의 성격을 나타내며 주목과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나는 용기와 명분과 능력이 다 있음에도 새해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중이다. “올해는 장가가고 싶다고 전해라!”

201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