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은 내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이다. 노벨상을 받은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인데, 중남미 문학의 한 경향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한다. 환상과 마술, 신화적 요소들이 사실과 혼재되어 있는 것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특징이다.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다. 싸움에서 진 사내의 피가 산과 들판을 흐르고 골목을 꺾어 자기 엄마 집 주방 벽을 타고 오르는 장면이라든가 모든 남자들을 사랑의 열병에 빠지게 만든 미녀가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 집시 예언자 메르키아데스가 선보이는 갖가지 마술들, 돼지꼬리를 단 아이의 탄생 등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흥분된다.
그런데 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너무도 복잡한 인물관계 때문이다. 이 소설은 환상의 마을인 마콘도를 배경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사를 그려내고 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아내 우르술라에서부터 시작된 가문은 두 아들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대령, 딸인 아마란타로 이어지고,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 호세, 17명의 아우렐리아노,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호세 아르카디오, 아우렐리아노, 아마란타 우르술라 등등 손발가락을 다 합쳐도 셀 수 없는 가계를 이룬다.
읽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호세가 저 호세 같고, 이 아우렐리아노가 저 아우렐리아노 같다. 세군도는 그 세군도가 아니고, 우르술라와 우르술라는 서로 다른 인물이다. 도대체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다 똑같고 또 다 다르다. 몇 번을 읽어도 복잡한 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요즘은 아예 책에 `부엔디아 가문 가계도`가 첨부되어 나와 있다. 나는 노트에 일일이 가계도를 그려가며 이 소설을 읽었다는 자부심을 항상 느낀다.
이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소설보다 더 한 혼돈을 요즘 매일 보고 있다. 누군가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 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너도나도 아들이란다. 자기가 적통이고 계승자라며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자기 아버지 등에 칼을 꽂거나 부관참시 하는 촌극을 일으킨다. 어제의 철천지원수들이 오늘 동지가 되고, 단짝들이 갈라선다. 이쪽이 파랗더니 저쪽이 파랗고, 저쪽이 빨갛더니 이쪽이 빨갛다. `빨갱이`라면 치가 떨린다는 사람들이 빨간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다. 이미 사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부활했다. 후보 등록을 마친 정당 수만 25개다.
하도 옮겨 다니고 뛰쳐나가는 통에 누가 여당이고 야당인지 모르겠다. 헷갈린다. 헷갈리니까 대충 찍는 수밖에 없다. 1번이든 2번이든 3번, 4번이든 찍어봤자 다 오답일 게 분명하다. 투표를 앞둔 마음이 꼭 공부 안 한 과목 시험지를 받아든 것만 같다. 아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 문제가 엉터리로 나온 경우에 더 가깝겠다.
국민들이 보기엔 다 똑같은 아우렐리아노들인데, 자기들끼리는 피아식별이 분명하다. 홍길동이 퍼스트네임이고 미들네임, 라스트네임은 따로 있다. `진실한 사람`, `혼이 정상인 사람`, `친노`, `친문`, `반노`, `안측`, `천측` 등등 말이다. 한국 정치사 최고의 코미디는 허경영이 아니라 정당 이름 `친박연대`다.
이 마구잡이식 잡탕을 보고 있으니 머리가 아프고 밥맛도 떨어진다. 신문은 집어던지고 `백년 동안의 고독`이나 다시 펼쳐야겠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을 외우다보면 정치인들 이름은 금방 잊어버릴거다. 어차피 국민들에게 또 4년 동안의 고독을 안겨줄 사람들이다. 내가 속한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는 심판 한 명이 하루에 네 경기를 소화한다. 사회인 야구는 몸개그의 향연이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그 심판이 외친다. “코미디 네 편 잘 보고 갑니다!” 두 주 앞으로 다가온 총선, 본 것이라곤 공천 코미디뿐이다. 선거유세는 또 얼마나 웃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