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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축제다

등록일 2016-04-12 02:01 게재일 2016-04-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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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내일은 20대 총선일이다. 드디어 다 끝난다. 유세차량의 불법 도로점거로 인한 교통체증도, 촌스러운 뽕짝 유세송의 소음공해도, 나를 조폭 형님처럼 만들던 90도 폴더 인사도, 세균 감염의 위험성이 매우 높은 끈적끈적한 악수도 모두 끝이다. 선거 한번 치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찮지만, 국민들의 피로도 상당하다. 보기 싫은 얼굴들 매일 보고, 듣기 싫은 소리 또 듣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선거를 축제라고도 하는데, 맞다. 임시공휴일이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치르는 대선이나 무더운 여름날 지방선거에 비해 총선은 벚꽃 만발한 봄날에 실시된다. 나는 12일 밤부터 낚시를 가기 위해 이미 사전투표를 완료했다. 선거 때마다 산과 강과 바다로 놀러갔지만, 투표를 거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국민의 권리니 민주주의의 꽃이니 거창하게 운운할 건 아니고, 그냥 외출 전 가스밸브 잠그듯 하는 것이다. 괜히 마음 찜찜할 바에야 그냥 몇 걸음 걸어가서 도장 한 번 찍고 오는 것이다.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 소중하다는 투표권 행사가 이리도 간단한 것인가, 허탈할 정도다. 그만큼 쉬운 일이니 부디 투표하고 맘 편히 놀러가시라.

중학생만 되어도 학급 반장이나 전교회장이 누가 되든 별 관심이 없다. 선거에 가장 몰입하며 온갖 희로애락을 경험한 건 초등학교 다닐 때다. 아직도 기억난다. 반장 선거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장 후보로 내가 나를 추천하는 건 민망하므로, 나를 공천해줄 친구를 미리 포섭해두거나 아예 `이병철 대세론`을 아이들에게 미리 퍼뜨렸다. 담임교사군주제였던 1학년 때를 제외하고, 나는 2, 3, 4, 5학년 내리 4선에 성공한 거물(?)이었다. 6학년 때는 전학 온 친구가 새로 인기몰이를 했는데, 일찍이 대세가 기울었음을 감지하고 불출마하며 백의종군, 킹메이커가 되었다. 그 대가로 나는 학급 서기 겸 친교부장에 임명되며 내각에 입각했다.

2, 3, 4학년 때는 과반수 득표를 훌쩍 넘기며 2차 투표까지 가지도 않고 당선되었다. 남녀 모두에게 고르게 지지를 받았으며, 특히 공 차고 뛰어 놀기 좋아하는 화이트칼라(체육복) 계층의 몰표를 얻었다. 가장 어려웠던 선거는 5학년 때였다. 군소후보들이 사퇴하며 다자구도는 일찍 무너지고, 양강 대결로 갔다. 소위 `좀 사는 집`아이였던 상대 후보가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햄버거와 피자로 향응을 제공하고, 엄마 아빠를 데려와 지원 유세를 시키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판이 요동쳤다. 그 녀석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이다.

이대로 3선의 명예가 처참하게 주저앉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 한 사람씩 따로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은밀한 약속을 내걸었다. “축구할 때마다 너 공격수 시켜줄게”, “화장실 청소는 주로 4분단 애들한테 시킬게” 따위였다. 화장실 청소는 명백한 정치 보복이었다. 4분단 대부분은 햄버거에 홀려 내게서 등을 돌린 아이들이었다.

선거는 결국 나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최종 유세에서 구체적 공약을 내건 연설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프라모델 조립 시간 확대`, `체육 시간에 발야구, 피구, 축구, 야구 등 구기 종목 신설 및 확대`, `학교와 기관의 유착을 의심케 하는 단골 소풍지 서울대공원 대신 롯데월드 선정`, `체육 시간에 옷 갈아입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체육복 등교 추진` 등인데, 오랜 숙원이 이루어지리라는 기대감으로 아이들은 내 손을 들어주었고, 나는 `위대한 급우 여러분`과 함께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

어른들의 선거가 초등학교 반장 선거보다도 재미없고 유치하다. 그래도 투표는 반드시 하자. 나랑 친한 아이가 반장이 되면 참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종이에 삐뚤빼뚤 친구 이름을 적던 기억을 되새기며, 도장을 찍어보자. 도무지 그런`초딩`의 마음이 안 생긴다면, 투표 마치고 놀 때라도 초등학생처럼 신나게 놀자. 말로만 축제가 아니라 어느 한 구석이라도 진짜 축제 같은 데가 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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