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몰라도 다 아는 사랑

등록일 2016-04-20 02:01 게재일 2016-04-20 18면
스크랩버튼
▲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흐르는 강물처럼`은 멋진 영화다. 눈부시던 시절의 브래드 피트가 몬태나를 흐르는 빅블랙풋강에 몸을 담근 채 플라이낚시를 하는 장면만으로도 낚시꾼인 내겐 인생 영화다. 아버지의 정형화된 낚시 방법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창조적 기법으로 대형 무지개송어를 낚아낸 브래드 피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아름답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낚시가 아닌 목사 아버지의 생애 마지막 설교다. “이웃이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그를 돕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때로는 원치 않는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라는 영화 속 설교는, 내가 교회에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마음을 울렸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모른다. 가족, 연인, 친구라는 이름이 너무 두텁다. 이미 그 이름 안에서 많은 것들이 완성되었다고 믿어버리기가 쉽다. 항상 가까이에 있어 그 사이로 언제나 그늘이 지는 줄도 모르고, 다 안다는 침묵 속에서 얼마나 많은 외로움이 자라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엄마 생일 선물을 고르다가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이다. 뭘 좋아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흐르는 강물처럼`은 위안을 준다. 그래, 모른다. 모르지만 사랑한다. 다들 그 모르는 만큼의 공백을 사랑으로 메꾸는가 보다. 그래서 사랑은 핑계이자 만능이다. 사랑은 앎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몰라도 할 수 있고, 알고 하면 더 좋다. 영화 속 목사의 말을 나는 “기왕이면 알고 사랑하자” 정도로 받아들였다.

결코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완벽히 이해하면서 또 완전히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제에 유가족들 곁에 가만히 있어준 사람들 말이다.

유가족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그들이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준 이들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어깨를 빌려주고, 애타게 외치는 소리가 무관심이라는 소음에 묻히지 않게끔 함께 목청 높여주었다. 몰라도 다 아는 사랑이 거기 있었다.

유가족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다. 쨍쨍한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 방치된 이들, 대낮같은 수치와 모욕, 멸시와 냉대에 무방비로 노출된 이들이다. 그들에겐 숨을 곳도 쉴만한 그늘도 없다. 세상이 잠마저 뺏어가 밤도 새벽도 없다. 그 외로움을 국가는 알지 못하고, 연민도 하지 않는다. 아니, 다 알면서 모른다고만 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게 제일 나쁘다.

두 해 전 그날도, 지난해와 올해 4월 16일에도 비가 내렸다. 나는 정말 하늘이 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그런 곳이다. 한 사람이 슬프면 누군가는 꼭, 사람이 아니라면 새와 나무와 파도라도 반드시 함께 울어주기 마련이다. 눈물 같은 비를 맞으며 유가족들과 함께 울어준, 때로 따뜻하게 웃어준 이들에게 고맙다. 광장에 가지는 않았어도 저마다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모한 이들의 마음 또한 소중하다. 그날은 지나갔고, 모두들 각자의 `서로 모르는`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거기서 또 모르는 사람들,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과 어설프고 어색하며 때론 불편하고 귀찮은 마음들을 주고받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저 바다에 잠겨 있어 우리가 정말 모르는 것들이 분명하게 떠올라야 한다. 다 알면 더 애통하겠지만, 그만큼 연대와 위로, 사랑도 견고해질 것이다. 내년 4월 16일은 화창했으면 좋겠다.

3040 세상돋보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