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밸런타인데이의 추억

등록일 2016-02-17 02:01 게재일 2016-02-17 18면
스크랩버튼
▲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상술이니 사대주의 풍속이니 해도 분명 유쾌한 이벤트이긴 하다. 올해도 내게는 어떠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괜찮다. 형형색색 초콜릿 상자를 쌓아둔 거리에서 어린 연인들이 자기 몸 만한 바구니를 들고 걷는 걸 보니 내 마음도 달짝지근했다.

나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순기능을 긍정한다. 짝사랑이든 소위 `썸`이든 적당한 때에 마음을 고백해야 사랑이 이뤄지는 법이다. 이뤄지지 않더라도 관계가 명확해져서 헛심 쓸 일 없어지므로, 고백이란 남녀관계의 불가결 통과의례다.

이 `고백`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만만찮다. 레스토랑, 풍선, 촛불, 야경, 반지, 단기속성으로 배운 단 한 곡 피아노 연주 등 고백의 최적 환경을 이루기 위한 여러 요소들을 간소화 시켜주는 것이 초콜릿과 사탕이다. 알아서 로맨틱하고 알아서 들뜨는 날이다. 타이밍과 명분, 분위기까지 이미 조성되어 있으므로 이날만큼은 누구나 용기를 내볼 만하다. 초콜릿과 사탕을 핑계 삼아 건네진 수많은 고백들, 맺어진 연애들, 뼈아픈 거절들을 생각한다. 내게도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 대한 추억이 있다. 초콜릿 하나 받지 못한 형제들을 위해 교회에서 일괄적으로 목에 걸어주던 ABC초콜릿 목걸이 이야기는 아니다.

땅을 친 후회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남자애들 모두가 좋아하던 여자애의 초콜릿 수신자로 간택되었다가 자격을 박탈당한 일이다. 친구들과 교실 청소를 하다가 그 애가 두고 간 비밀 일기장을 열어보았다. 거기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입 다물고 있어야 했거늘, 소년들은 짓궂다. 2차 성징에 관한 내용, 짝사랑 이야기 따위를 우리만 아는 암호로 떠들다가 들통이 났다. 그 애는 엉엉 울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사실 밸런타인데이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나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화이트데이 100일 전부터 매일 밤 막대사탕 하나씩 사서 만든 백 개짜리 사탕 꽃다발도 중3 소년의 사랑을 이뤄주진 못 했다. 남대문시장에 가 미국 남부의 목가적 전원을 그린 영화에나 나올법한 대형 피크닉 바구니를 사서 거기 사탕을 가득 채워 선물했지만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다. 그건 스물세 살 때 일이다. 전기밥통에 쪄낸 빵에다 생크림과 젤리, 딸기 따위를 조악하게 얹어 만든 케이크를 준 적도 있다. 나라도 싫어했을 것 같다. 식구들만 괜히 찬밥 먹었다.

아아, 받기만 하고 떠난 여인들이여.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미덕은 `기브 앤 테이크`에 있다. “나는 초콜릿을 받았는데 왜 너에게는 명품 백을 줘야하느냐”는 일부 남성들의 볼멘소리도 있지만, 어쨌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공평한 시스템이 정체불명의 서양 기념일을 이 땅에 정착시킨 주요인이다.

그런데 밸런타인데이가 먼저인 게 남자인 나로서는 불만이다. 먼저 받는 쪽이 불리하다. 여자들은 초콜릿 선물을 하면 한달 뒤를 기대할 수 있지만, 남자들은 사탕을 주고나면 기대할 게 없다. 요새 화이트데이 다음에 블랙데이니 뭐니 생겨났는데, 짜장면 따위 얻어먹긴 싫고, 빼빼로데이까지 기다리기엔 너무 외롭다.

그 사이에 그녀들은 사탕도 편지도 뜨거운 마음도 다 까먹는다.

쌀도 주고 약도 주고 친구 잔치에도 갔는데 사탕은커녕 미사일과 지뢰, 삐라 뭉텅이, 그리고 차가운 외면만이 돌아왔다. 너무한 거 아닌가. 그래서 줬던 선물 도로 뺏고, 실망했다며 크게 삐쳤다. 예전에 방영되던 한 음악방송 타이틀이 `김정은의 초콜릿`인데, 북쪽 청년은 `통일 대박` 로맨스에 관심 없는지 우라늄 초콜릿과 탄저균 사탕만 빨아먹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구애에 실패한 코끼리가 열다섯 대의 차를 때려 부쉈다. 그 심정 이해한다. 버려진 전기밥통 케이크를 보고 나도 동네 쓰레기통 몇 개 걷어찼다. 하지만 아무리 야멸치게 딱지 맞았을지언정 우리가 그 코끼리는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3040 세상돋보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