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철 시인`순돌이`가 죽는 꿈을 꿨다. 얼마나 울었던지 잠을 깨보니 베개가 축축했다. 14년째 같이 사는 슈나우저인데, 사실 내가 양육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밥 주고 산책시키고 씻기고 병원 데리고 다니며 키운다. 보고 있으면 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른다.꿈이 유난히 괴로웠던 것은 엄마의 슬픔까지 생생하게 만져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엄마의 SNS를 보니 순돌이와 웃으며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 탓에 엄마의 미소와 순돌이의 착하고 큰 눈망울이 자꾸 번져 보였다.주먹만 할 때 우리 가족이 되어 나와 동생의 대학 졸업, 내 입대와 전역, 동생의 결혼과 출산, 할아버지 별세, 할머니가 쇠약해지는 과정, 엄마의 40대와 50대, 아버지의 귀농을 모두 지켜보았다. 여섯 식구 북적이며 살던 시절을 떠나보내고 이제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아들·딸보다 더 오래 곁을 지키는, 엄마의 참된 `반려`다.인간의 1년이 개에겐 7년쯤이라, 순돌이는 사람 나이 팔순의 노견이 되었다. 여전히 건강하고 활달하지만 조금씩 지치는 기색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데, 생활이라는 핑계와 그리움이 똑같이 견고하다. 6년 전 교통사고로 반년 동안 입원했을 때 순돌이에게 쓴 편지를 꺼내본다.“널 생각하다 걸음을 돌린다. 너도 날 생각하고 있을까? 7년 전, 비 개인 가을 밤하늘 아래서 처음 만나던 날, 보드라운 털에 감싸인 네 따뜻한 몸의 떨림이 손끝을 타고 심장까지 전이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니? 까맣게 빛나는 네 눈이 별빛을 담아 글썽거렸지. 내 마음엔 늦봄의 햇살이 너울지고 있었단다. 신기하지? 언제나 사랑이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증폭, 이유 모를 호감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너보다 앞서 나와 마음을 나누던 네 형을 하늘로 배웅하고, 깊은 슬픔 끝에 너와 만났단다. 네 몸짓이 마음을 부비며 상처를 아물게 하는 동안, 눈물은 미소로 바뀌고, 나는 행복해졌어. 이별은 늘 새로운 만남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단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만나는 순간 이별은 시작되고 있음을, 사랑만큼 눈물도 깊어진다는 것을 그때 눈치 챘는지 몰라.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토록 오래 헤어진 적은 없었는데…. 현관에 들어선 나를 반기느라 달려오다가 몇 번이고 미끄러지던 네 모습이 떠오르곤 해. 꿈에서도 너를 자주 본단다. 너와 나란히 걷던 남현동 골목들과 관악산 오솔길이 그리워지면, 해거름 내려앉은 운동장에 나가 말없이 서울 쪽을 바라보곤 해.넌 언제나 내 가장 좋은 친구, 내 영혼이 쉴 따스한 품이었지. 이곳에는 내 마음 앉아 쉴 곳 없단다. 그래, 나는 몹시 외로워 하루가 저무는 텅 빈 운동장에 서서 순돌아 뭐해? 가만히 속삭여 본다. 내 외로움을 엿들은 포플러 나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너도 들리니? 힘없는 발걸음을 졸졸 따라오는 내 그림자 뒤에 혹시 네가 있진 않을까? 순돌아, 거기 있니?”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반려견 `마루`와 반려묘 `찡찡이`를 들였다. 약속한대로 유기견 `토리`도 입양할 예정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동물보호법이 강화되고, 동물권이 신장되기를 기대해본다. 마루와 찡찡이, 토리가 청와대에 입성한 것도, 순돌이가 14년을 가족으로 함께 사는 것도 모두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의식 덕분이다. 생애 전체를 인간에게 바치는 반려동물을 위해, 삶의 작은 일부를 내어줄 줄 아는 사람은 경이와 신비, 감사로 가득한 세계를 살아갈 자격이 있다. 꿈은 반대니까, 가족이 죽는 꿈은 무병장수의 길몽이라니까 안심한다. 이번 주말은 순돌이와 보낼 것이다. 산에도 가고, 옥상에서 볕도 맞고, 맛있는 간식을 먹여줘야겠다. 나는 순돌이 것을 탐내지 않는데, 순돌이는 내 것을 자꾸 뺏어먹으려 한다. 그냥 한입 내어주고 말겠다. 배 위에 올려두고 함께 낮잠 자면 꿈도 환한 빛으로 물들 것 같다.
2017-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