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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한 휴가를 위해

▲ 이병철 시인시간 소비가 비교적 자유로운 프리랜서라서 남들 일할 때 열심히 놀러 다녔다. 올해만 포항, 제주도, 부산, 거제도, 가거도, 러시아 이르쿠츠크 등지에서 재밌게 놀았다. 인제, 양양, 영월 같은 곳은 그냥 `슥` 다녀왔다. 글 써서 버는 돈은 고스란히 여행 경비가 됐다. 실컷 놀았는데도 휴가철이 되니 안달이 난다. 남들 놀 때 또 같이 놀고 싶다. 외로워서 그런다.혼자 사는 집에 오면 나를 반기는 건 불 꺼진 어둠, 불을 켜봤자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부재다. 그 고독감이 싫어서 자꾸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혼자 떠난 여행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익숙한 외로움보다는 차라리 낯선 곳이 낫다. 캄캄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하면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정태춘 노래·`시인의 마을`)이라도 좋다. 여행은 낯선 감각들과의 조우, 일상에는 없는 상념과 번민을 가져보는 경험이다. 일상을 더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각성의 기회가 된다.다 요설이다. 그냥 휴가철에 들떠서 놀러가고 싶은 거다. 어디로 가야 할까. 동남아 몇 개 나라와 일본 교토, 오키나와, 북해도 등을 두고 고민하다가 관뒀다. 성수기 물가가 몹시 비싼데다가 여행객이 너무 많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외로운 게 싫고, 바캉스 분위기에 젖고 싶다면서 사람 많은 곳으로는 발길이 향하지 않는 이중성 때문에 여행지 고르는 게 쉽지 않다. 적당히 북적이면서 또 적당히 한산한 곳, 혼자의 고독과 여럿의 어울림이 공존하는 그런 곳 어디 없을까.제주도는 진작 포기했다. 숙소와 렌터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성수기보다 더한 `극성수기`라서 여행 경비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차라리 해외여행을 가는 게 합리적이다. 지난해 여름, 성산항에서 우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위한 거대 인파의 `엑소더스`에 몸이 끼인 일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고기국수 한 그릇 먹으려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짓을 또 할 수는 없다.아직 휴가 계획을 못 세운 친구에게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려 했던 `고슴도치섬` 부안 위도, 해상왕 장보고의 숨결이 물결치는 청정바다 건강의 섬 완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향수`의 고장 옥천, 섬진강과 장미, 매화의 고장이자 한국영화사 획기적 개성인 호러무비의 배경 곡성, 백석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평안도에서부터 수일 밤낮을 달려간 동양의 나폴리 통영, 그곳에 가면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영일만 친구가 버선발로 마중 나와 물회와 대게를 사줄 것만 같은 포항” 등을 추천했다. 동행할 경우 완벽한 가이드도 약속했다.친구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여행 계획을 고민하다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특별한 곳에 가서 특별한 경험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 남들 다 하는 걸 나도 해야만 한다는 초조감이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져 결국 휴가를 망치게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겪었던 `나쁜 여행`들은 전부 특별함을 좇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평범해지고, 유행에 속하려다 내 취향을 잃어버린 경험들이었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남들이 작성한 블로그 여행기나 맛집 후기를 신봉하느라 내 취향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어디 가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나는 접이식 테이블과 간이 의자, 쿨러백을 샀다. 이 계절에 읽으면 좋을 책과 평소 마시고 싶던 스파클링 와인도 마련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함께도 좋고 혼자도 좋다. 강가든 바다든 계곡이든 옥상이든 지하주차장이든 어디라도 가서 계곡물, 바닷물,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책 읽으며 쉴 거다. 그게 가장 특별한 휴가다.

2017-08-02

공감능력 `제로` 공직자들

▲ 이병철 시인개, 돼지에 이어 레밍이다.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기에 새로 출시된 승용차나 레몬 맛 아이스크림 같은 건 줄 알았다. 찾아보니 들쥐다. 내가 쥐띠라서 그런지 몰라도 되게 기분 나빴다. 십이간지 순서도 개, 돼지 다음이 쥐인데, 내년엔 어떤 이가 국민들더러 미련한 소라고 막말을 할까.홍수가 나 사람이 죽고 온 도시가 물에 잠겼는데 유럽 연수를 갔다. 갈 수도 있다. 업무의 일환이자 예정된 계획이다. 불법행위도 아니다. 도의원 몇 명 없다고 수해복구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 있으면 더 방해만 된다. 장화 신고는 설렁설렁 사진 몇 장 찍고 올 게 뻔하다.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눈치가 없을까. 연애할 때 눈치 없는 애인은 생판 모르는 남보다 더 못한 존재다. 새로 산 옷 입고 왔더니 바깥 돌아다니기 귀찮다며 집 앞 분식집이나 가자고 한다. 꾹 참았더니 이번엔 자기 친구들하고 같이 놀자며 당구장에 끌고 가 투명인간 취급한다. 화를 내고 따져도 뭐가 잘못인지 모른다. 오히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망신 준다며 적반하장이다.이런 인간하고는 당장 헤어져야 한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공직에 앉아 있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는 `공(空)직자`들이다. “사는 게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임기가 끝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사퇴할 순 없잖아”의 마인드로 자리만 채우고 있는, `공(空)감`의 관료주의가 이번 `홍수 외유` 사태의 본질이다.소대장 시절에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소대원이 있다. 신병 훈련을 마치고 갓 자대에 배치된 이등병이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날, 자신을 배웅하고 귀가하시던 아버지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막막했다. 그 친구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겠다”고 했다.정말 성실했다. 결손자녀라서 외박이나 휴가 등을 배려 받을 수 있음에도 본인이 고사했다.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혼나고 훈련 받았다. 딱한 사정을 아는 부대원들도 내색 안하고 그 친구를 편히 대했다. 소대에 포상휴가증이 생기면 저마다 몰래 나를 찾아와 자신 말고 동료에게 줄 것을 부탁했다.전역하는 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며 환하게 웃어 보인, 경북 봉화에 사는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공감은 팀워크를 가능하게 한다. 공감할 줄 모르는 공직자들은 국민과 손발을 맞출 수가 없다.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로는 더 낮아져야 하는데, 선거철에만 허리 숙인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고개 끄덕여주며, 위로가 필요할 때 손을 내미는 것은 늘 보통 사람들이다.“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나”라는 질문의 답은 언제나 `여러분`이다. 위정자들 빼고 국민들끼리는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 모른다. 금 모으기 운동할 때 결혼반지, 부모 유품 내놓은 것도 국민들이고,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쏟아졌을 때 그걸 닦으러 달려간 사람들도 국민들이다. 당시 받았던 사랑에 보답하겠다며 태안 군민들이 수해지역 주민들을 도우러 자원봉사단을 꾸렸다고 한다.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캄캄한 바다로 뛰어든 것은 민간 잠수사들이다. 책임져야 할 자들은 국민 뒤에 숨어 구경만 한다. 정작 일해야 할 자들은 제 구두에 흙 묻을까봐 어린 군경들에게 손가락 지시만 한다. 과연 누가 레밍인가?한 방송 관계자가 8년 전, 당시 17살이던 배우 유승호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여름 야외촬영 준비 중에 계속 옆에 서 있길래 실내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더니 “어른들이 더운 데서 고생하시는데 어린 제가 어떻게 에어컨 쐬고 앉아있어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곤 끝까지 안 들어가고 곁을 지켰다 한다. 17세 소년의 공감능력 그 반의반만이라도 공직자들이 가졌으면 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2017-07-27

타자라는 지옥, 나라는 지옥

▲ 이병철 시인“타자는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이다. 혼자서 알몸으로 있다가 누가 지켜보면 부끄러워 옷을 입는다. 혼자 노래 부르며 춤추다가도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면 중단한다.길에서 넘어졌을 때 아무도 없으면 엉덩이를 붙잡고 실컷 아파하지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쪽팔려서` 얼른 일어난다. 내 행위의 자유를 앗아가므로, 타인의 시선은 감옥이고 지옥이다. 타자의 시선들로 이뤄진 `감시`의 사회를 미셸 푸코는 `파놉티콘`(원형감옥)이라고 했다. 어디에나 보는 눈들이 있다. 시선을 수단으로 과시와 감시, 증명과 확인, 관음과 노출이 이뤄진다. 굳이 시선이라는 작용이 아니더라도 타자는 그 존재 자체로 지옥이다. 나에게 고통을 줄 때 특히 그렇다. 타인의 체온, 냄새, 분비물, 소음, 신체접촉으로 가득한 출퇴근길 지하철을 우리는 지옥철이라고 부른다. 폭언과 욕설을 들으면서, 종근당 운전기사들은 이장한 회장이 지옥의 사자 같았을 것이다. 매일의 노동을 보람으로 여기던 급식조리사들에게 이언주 의원의 막말은 지옥의 언어가 되었다.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해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 헤어진 연인에게 염산 테러를 당해 얼굴이 녹아내린 채 평범한 삶을 박탈당한 사람에게 타인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도 내 상황과 환경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마음이 여유로워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읽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이웃 여자아이의 리코더 소리, 옆집 마늘 빻는 소리는 더없이 정겹고 편안하지만, 온 신경을 집중해 예민한 글쓰기를 하고 있을 때는 밤새 귓가에 앵앵거리는 모기보다 성가시다. 아침잠을 방해하는 공사 소음도 지옥의 소리, 어떤 이는 잠깐의 작은 지옥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 타자에게 영원한 지옥을 안겨주기도 한다. 고층 아파트 작업자의 생명줄을 끊은 잔혹한 살인범처럼 말이다.이웃의 소음에 끓어오르는 화를 몇 번이고 삭이면서,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외딴 섬에 가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모든 사람들을 “있어도 있지 않은 부재”로 여기면서, 서로 어떤 간섭도 구속도 고통도 주고받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정작 지옥은 나다. 나라는 지옥에서부터 타자들을 격리시키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주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내 안에도 지옥이 열려 나는 `나`라는 타자로부터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시인과 촌장, `가시나무`)라는 노랫말처럼,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여러 욕망들과 무의식들을 거느린, 내가 어쩔 수 없는 `타자`이기도 하다.“햇볕에 따끈하게 데워진/ 쓰레기봉투를 열자마자/ 나는 움찔 물러섰다// 낱낱이 몸을 트는 꽃잎들/ 부패한 생선 대가리에 핀/ 한 숭어리의 흰 국화// 그들은 녹갈색과 황갈색의 진득거림을/ 말끔히 빨아먹고/ 흰 천국을 피워냈다/ 싸아한 정화의 냄새를 풍기며// 나는 미친 듯이 에프킬라를 뿌려대고/ 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고/ 지옥을 봉했다/ 그들을 그들이 태어난/ 진득거림으로 돌려보냈다”황인숙의 시 `움찔, 아찔`이다. 얼마 전 나는 `쓰레기봉투`같이 비열한 욕망 속에서 “흰 천국을 피워냈”다. 내 `부패한` 천국이 그에게는 지옥이어서, 그는 “에프킬라를 뿌려대”듯 나를 경멸하며 “한 천국을 지옥으로 만들고 지옥을 봉했”다. 오랜 시간 기쁘고 행복해 마치 낙원 같았던 세계가 내 진득거리는 죄악으로 지옥이 됐다. 관계를 망치는 건 천국의 나날 저 밑에서 조금씩 움트는 캄캄한 욕망들이다. 내가 만든 지옥에서 그도 나도 고통 받겠지만, 부디 나 혼자 오래 괴롭기를, 내가 후회와 반성, 부끄러움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나라는 지옥에서 그가 영영 벗어나기를 바란다.

2017-07-20

`효리네 민박`을 보며

▲ 이병철 시인`효리네 민박`을 재밌게 보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단 3회 방송했을 뿐인데 화제 몰이를 하는 중이다. 제목 그대로 이효리가 민박집을 운영하는 게 내용의 전부다. 부부가 살고 있는 제주도 집에 일반 여행객들이 와서 묵는다.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 그리고 종업원 아이유(이지은)가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메라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그 과정을 담아낸다. 그게 다다. `삼시세끼`와 `윤식당`도 같은 포맷을 공유한다. 시골에서 출연자들이 밥 세끼를 자급자족해서 차려 먹는 것이나 발리 해변에 한식당을 열어 외국인들에게 불고기와 라면을 파는 것, 그리고 연예인 부부의 집에 일반인 여행객들이 숙박하는 것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또 어딘가 닮아 있다. 단순함과 자연스러움, 편안함이 공통분모다. 그러면서 환상을 심어준다.어느 시대든 인기 TV이 프로그램은 현실의 결핍과 대중 욕망을 꿰뚫는다. 방송 제작자들의 현실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다. 국가부도 경제난에 허덕이며 이타적 정신이 실종되어 갈 때 `양심 냉장고` 같은 기획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 세기말의 혼란과 불안감은 그저 신나게 흔들고 놀면서 망각하자고 했다. 연예인들이 단체로 나와 춤추고 게임하며 노는 걸 보여주는 예능 프로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무더기로 쏟아졌다. 일회적이고 가벼운 만남을 선도하고 장려하는 미팅 프로그램도 여럿 등장했다.십여 년 전에는 채널도 몇 개 없는데다 그 채널들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매우 폭력적이고 남성적이었다. 예능 프로는 마치 직장 남성들의 2차 회식을 옮겨온 것 같았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논리가 아직 유효하던 때라서 그런지 방송도 치열하고 자극적이며 경쟁을 부추겼다. 떡 먹기 게임하다 출연자가 사망하고, 뜀틀 넘다가 다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방송에서마저 아등바등 부대끼며 몸부림치거나 또는 그 몸부림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쾌락적 유흥의 방식으로 예능 프로는 존재했다.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경제발전 주역들이 퇴장하면서 기존의 치열하고 자극적인 포맷의 방송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물론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대규모 육상 대회라든가 서로 쫓고 쫓기며 이름표 떼기 게임하는 프로그램이 아직 있지만, 인위적이거나 과도한 설정이 들어가면 시청자들은 외면한다. 교육과 사회제도에 끊임없이 간섭 받으며 기성 체제가 강요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지쳤기 때문일까. 개인에게 `특별함`을 요구하던 시대가 지긋지긋해진 까닭인지도 모른다.별다른 목적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앞에 사람들은 모여 앉는다. 모니터 속 연예인의 일상을 `돈지랄` 이라든가 `서민 퍼포먼스`라고 아니꼽게 보지 않는다. `특별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개인의 자존감이 낮았던 시절이 아니다. 나와는 다른 방식의 삶으로, 다르지만 또 비슷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잘 사는 삶`에 대한 획일화된 기준이 해체되면서 연예인이나 재벌 앞에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대중들에게 생겼다. 그 건강한 자존감 위에 `욜로(YOLO)`라든가 `혼밥` 문화가 서 있다. 방송을 통해 타인의 다양한 삶을 관찰하면서 내 욕망을 투영해보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이른 아침 일어나 요가와 차로 심신을 다스리는 이효리의 모습은 참 편안해 보인다. `효리네 민박` 류의 프로그램에는 속도, 경쟁, 욕심, 고독이 없다. 출연자들은 느린 일상 속에서 자족하고, 비교하지 않으며, 이웃과 어울린다. 이룰 수 없는 환상을 심어 위화감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평범함으로 가장한 특별함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꼴사납게 몸부림치지는 않는다. 설정이고 판타지일지언정 잠시나마 속도와 경쟁을 잊게 해준다. 기왕 `바보상자`라면, 치열한 세상에서 느린 삶의 미덕들을 꿈꾸게 하는 순박한 바보상자가 더 좋지 않은가.

2017-07-12

안개를 넘어서

▲ 이병철 시인“너무 멀고 험해서/ 오히려 바다 같지 않은/ 거기 있는지조차/ 없는지조차 모르던 섬”이라고 했던가. “가고, 보이니까 가고, 보이니까 또 가서 마침내 살만한 곳이라고…. 보라는 듯이 살아오는 땅”(조태일 시 `가거도`) 가거도에 다녀왔다.목포까지 차로 네 시간,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고 또 다섯 시간을 가야 발 디딜 수 있는 섬이다. 그것도 바다 날씨가 좋을 때 얘기다. 안개가 짙게 끼는 바람에 배로만 여덟 시간이 걸렸다. 새벽 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오후 4시가 돼서야 도착했다.오직 낚시를 위한 여행, 가거도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중간간여 갯바위에 내려 루어 낚시로 농어를 걸어 냈다. 밤새 갯바위에서 비박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볼락을 잡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참돔 루어낚시를 문 `바다의 폭군` 부시리와의 한판 승부였다. 씨름 끝에 갑판으로 끌어올리고 보니 1미터짜리 대물이었다. 손맛 아니라 `몸맛`을 만끽했다. 농어, 방어, 부시리, 우럭, 볼락, 쏨뱅이, 돌돔 등 낚시로 잡은 각종 생선들과 해삼 내장, 자연산 전복, 흑산도 홍어까지. 가거도 밥상은 끼니마다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잘 먹고 놀면서 며칠을 보냈다.목요일부터 바다가 수상했다. “바다가 왼종일 새앙쥐 같은 눈을 뜨고 있었다”(김춘수 시 `처용단장`). 안개는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바다는 자꾸 음흉하고, 다 지워진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몽롱했다. 여객선이 제시간을 한참 지나서야 들어왔다. 안개가 더 자욱한 다음날엔 아예 출항 못했다. 해무에 덮인 바다를 보며 김승옥의 명문을 고쳤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가거도를 삥 둘러싸고 있었다”라고.낚시와 진수성찬의 기쁨은 어느새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낚시는 재미없고 젓가락 들기도 귀찮았다. 중요한 스케줄이 있어 반드시 섬을 나가야 했다. 토요일 안개는 더 두꺼웠다. 겨울이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숨이 막혔다. 목포를 출발한 여객선이 안개주의보가 발령되면 곧장 회항한다고 했다. 선착장으로 나가 아무 기척 없는 바다를 오래 바라보았다. 여객선이 가거도까지 온다는 소식에 환호하며 짐을 쌌지만, 배는 흑산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돌아갔다.일행들은 며칠 더 머무르자고 나를 설득했다. 육지로 나갈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냐는 것이었다. 내 `중요한 스케줄`이라는 일들을 가볍게 여겼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이 보기엔 얼마든지 양해를 구하고 취소하거나 미룰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꼭 지켜야 할 약속이고, 응답해야 할 초대였으며,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그것들을 다 놓친 채 안개에 갇혀 하루를 허무하게 보내느니, 안개를 찢고 나가 만남의 기쁨과 소박한 일상을 붙잡기로 했다. 진도 서망항까지 가는 사선을 수소문했다. 200만원, 빚을 내서라도 배를 탈 각오였다. 때로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 그게 얼마든 꼭 사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간절함이 안개를 뒷걸음치게 했을까. 마침 경조사에 참석하는 주민들을 태우고 육지로 가는 배가 있어 거기 함께 탔다. 뱃삯으로 10만원을 냈다. 망망대해를 헤쳐 진도에 도착했다. 서울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안개는 확실성을 불확실성으로 바꾼다. 삶도 종종 안개 낀 바다 같다. 맑아서 멀리까지 잘 보이는 날은 드물고, 한치 앞을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 세상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안개는 말해준다. 그러나 가끔 안개 속으로 몸을 던지면 저쪽에선 결코 알 수 없고 볼 수 없던 것들을 뚜렷하게 만질 수 있다고, 때로는 용기가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꿔준다고, 안개는 또 나에게 귀띔한다.

2017-07-05

존경 없는 명예는 한낱 멍에

▲ 이병철 시인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 특수부대 `네이비 씰`의 전설적인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해 200명이 넘는 적군을 저격 사살한 그는 미군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다.스코프에 포착된 표적 중에는 자살폭탄을 매달고 아군을 향해 뛰어드는 어린 아이와 여성도 있다. 그의 총알이 표적의 이마와 심장을 관통하는 순간,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한 인간의 육체, 생각, 기억, 꿈, 사랑, 전 생애가 피 흘리며 흙바닥에 뒹구는 시체로 변한다. 그걸 스코프로 지켜볼 때마다 그의 내면 역시 `죽음의 이미지`에 의해 저격당했을 것이다.전역 후 그는 피 냄새와 총성, 죽음이 없는 일상에 적응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두 권의 자서전을 냈는데, 영웅적인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전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는 참전 병사들을 돕는 활동에도 나서며 건강한 삶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2013년, 해병대에서 저격수로 복무한 에디 루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크리스 카일이 돕던 PTSD 환자였다. 카일의 아내는 남편이 항상 전쟁터와 전쟁터 밖 현실과 싸웠다고 말했다.영화 `람보 - 퍼스트 블러드`에서 베트남전 용사인 람보는 함께 참전한 동료들이 극심한 PTSD를 앓다가 자살하거나 후유증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동료를 만나러 찾아간 한 작은 도시에서 그는 부랑자 취급을 받으며 시민들로부터 격리된다. 공권력에 부당한 체포와 폭력을 당하자 무기고를 탈취, 인간병기가 되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베트남전 당시 지휘관인 트라우먼 대령이 람보의 광기를 멈추고자 대화를 시도한다. “혼자서 전쟁을 계속 하려는 건가? 작전은 끝났어.”“끝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돌아왔을 때 모든 눈들이 살인자를 보는 듯했죠. 누가 저를 보호해주죠? 모두 어디 있나요? 내 친구 램포드, 유쾌한 내 친구. 내 친구는 누구죠? 아무도 없어요. 난 친구가 필요해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생활고를 겪던 제1연평해전 용사가 편의점에서 콜라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전투 중 포탄 파편을 맞은 후유증 탓에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유공자 연금을 투자 사기로 날리고, 거액의 빚을 진 채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그는 “배가 고파 빵을 사러 갔는데 음료수 살 돈이 부족했다”고 진술했다. 그에겐 단돈 1천800원이 없었지만, 정말 부족했던 것은 국가의 예우와 사람들의 관심이다.한국전쟁 용사 중 대부분이 극심한 생활고와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장애를 안은 채 폐지 수집으로 연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무공훈장이나 참전용사증서가 무슨 소용일까. 따뜻한 밥 한 끼로 바꿔 먹을 수도 없는 무용지물이다. 마땅한 존경이 있어야만 명예가 명예일 수 있다. 존경 없는 명예는 한낱 멍에일 뿐이다. 명예에 합당한 존경, 성의를 다한 예우, 실질적 지원과 보상이 영웅들에게 필요하다. 군인을 `군바리`라고 비하하는 대중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 군인, 소방관, 경찰 등 `제복에 대한 존경`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내 일상의 행복과 소중한 꿈들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 그 희생이 사라지는 순간,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땅 밑 캄캄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다.`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 카일의 실제 장례식 영상을 보여준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미식축구 슈퍼볼과 팝 스타들의 공연이 열리는 댈러스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운구차가 도로로 나서자 수만 명 시민들이 성조기를 흔들며 영웅을 추모했다. 자신들을 위해 고통 속에서 삶 전체를 희생한 이에게, 단 몇 분이나마 평온한 하루의 일부를 내어주며 존경과 감사를 보냈다. 이제 우리 차례다.

2017-06-28

그 비만 온다면

▲ 이병철 시인“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한대수의 `물 좀 주소`다. 요즘 밖에 나가 땡볕 아래를 걸으면서 주술처럼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흥에 겨워 부르는 것이 아니므로 칭얼거리는 게 맞겠다. 제발 비 좀 오라고, 징징대며 보채고 있다. 1973년 이후 두 번째로 극심한 가뭄이라고 한다. 5월 말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이 가장 적었던 해는 2000년인데, 그때보다 고작 8mm 더 내렸다. 평년 대비 절반 수준 강수량 탓에 전국의 강과 저수지, 논밭이 타들어간다. 대형 호수인 충남 예산 예당저수지 낚시 좌대들이 사막 같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다. 비를 내리는 저기압보다 고기압이 강세를 보이는 것이 봄 가뭄의 원인이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불볕더위와 가뭄의 나날이 계속될 것이다. 싫다. 정말 싫다. 시원한 폭우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우산도 없이 그 비 다 맞으면서 동네 한 바퀴 걸을 것이다.지난해 늦여름에는 지면을 통해 덥다고 칭얼거렸더니 이튿날 바로 가을이 왔다. 봄꽃 구경 가라고 부추기는 글 썼더니 돌풍을 동반한 장대비가 내려 꽃 다 져버린 일도 있다. 가뭄 이야기를 괜히 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글은 일종의 `기우제`인 셈이다.“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보면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이나 비가 오던데, 당신 능력은 인간의 상상 그 이상 아니던가요? 일주일만이라도 좀 어떻게 안 될까요?”비가 내리지 않아 농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논에 물을 댈 수 없으니 모내기도 못하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고온현상은 계속돼 농민들 약 올리듯 대구와 광주에선 열대과일인 바나나가 열리기까지 했다. 땅이 말라서 쩍쩍 갈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폭염과 건조한 대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마르게 한다. 아프리카 해변의 대낮, 끓는 기름을 정수리에 붓는 듯한 태양에 짜증이 솟구쳐 아랍인을 살해한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말이다.경남 양산에서 한 40대 남성이 아파트 외벽 작업자의 휴대폰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옥상으로 올라가 작업 밧줄을 끊었다. 다섯 아이를 둔 가장은 12층 높이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아침잠을 방해받는다며 분노를 조절 못해 저지른 충동적인 살인이다. 충북 충주에서도 한 50대 남성이 인터넷 수리를 하러 방문한 기사를 흉기로 살해했다. 인터넷이 느리다는 이유로 그랬다. 피해자는 노모와 아내, 대학생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다.섭씨 40도가 넘어 온 세상이 이글거려도, 1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더라도 제 분에 날뛰어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땡볕과 가뭄은 극악무도한 범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다만 점차 열대화, 사막화되는 기후가 우리 사회에 내면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와 사람의 심리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고온현상으로 꽃들은 기다림 없이 서둘러 피었다가 급하게 져버린다. `균형`의 계절인 봄과 가을은 점점 사라지고 폭염과 한파가 두드러진다. 일교차는 점차 커지고,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들 성정도 기후처럼 변하는 중이다. 인내가 사라지고,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한 중용 대신 양극화만 극심해진다. 변덕스런 일교차처럼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이 횡행한다. 마음에 `불신`과 `의심`의 미세먼지가 가득 끼어 있다. 분노는 금방 부글부글 끓고, 비난은 집중호우처럼 거세며, 타인을 향한 시선은 혹한의 칼바람처럼 냉혹하기만 하다.땅에도, 마음에도 단비가 필요하다. 열기를 식히고, 건조한 곳을 촉촉하게 적셔줄 비가 절실하다. 바싹 말라 뒤틀리고 갈라진 자리마다 스며들어 부드럽게 쓰다듬어줄 비를 기다린다.

2017-06-22

미당 생각

▲ 이병철 시인학위 논문 주제를 미당 서정주에 관한 것으로 정하고는 시간 날 때마다 `봉산산방(蓬蒜山房)`에 가 한두 시간씩 앉았다가 온다. 햇살 속에, 바람 가운데 어떤 말씀이라도 들릴까 싶어 나무에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러고 있다. 서정주 시인이 1970년부터 200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집이다. 서울 관악구 예술인마을, 내가 나온 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다. 어릴 적 등하교길이나 구멍가게에서 시인을 한번쯤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생전 미당은 담장 너머 아이들 합창 소리 듣는 걸 좋아했다 한다.관악산에서 사당역 방면으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가끔 들여다보는 걸 제외하면 찾는 이가 드물다. 덕분에 내 별장처럼 대나무 그늘 아래 누워 낮잠도 잔다. 그러다 문득 허공에 대고 “왜 그랬어요?” 물어본다. 물론 대답 없다. 댓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뿐,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도 17년이나 됐다.친일, 독재찬양, 교언영색…. 미당의 삶을 긍정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동정이든 증오든 나는 그에게 어떤 손가락질도 할 수가 없다. 나라고 해서 그처럼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감싸기엔 너무 엉망으로 살았고, 욕하기엔 시가 너무 빛나서, 나는 좋아하는 시인을 묻는 질문에 “삶과 시가 분리된 서정주”라고 대답해버리곤 한다.친일의 대명사인 미당이 중앙고보 시절 항일 운동을 주도했다가 퇴학당한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 사건 이후 민족, 애국, 정의, 현실참여 따위에서 등을 돌려버렸다. 자기 평생이 영광보다 치욕으로 얼룩질 것을 그때 이미 알았는지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자화상`)고 썼다.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하고선 정말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았다.스스로를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여긴 듯하다. 수캐도 그러하고, `화사`의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뚱아리”도 시인의 `자화상`이다.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입마춤`) 같은 구절은 늑대인간 류 괴수를 연상시켜 섬뜩하다. 오직 배부르고 따뜻하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이 처세와 아첨, 어용이라는 방식으로 삶을 한쪽에서 끌고 갔다. 다른 한쪽엔 시에 대한 허기, 써야만 사는 불치의 병이 있었을 텐데, 역시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죽는 날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라는 궤변으로 자신을 변호한 미당을 향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거두지 않는다. 공식적인 사과나 반성은 없었지만, 나는 그가 정말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티 안 나게 시인의 방식으로 반성한 것이 문제다.말년에 살게 된 집 이름을 `봉산산방`이라고 지은 것에 주목해본다. `쑥 봉(蓬)`과 `마늘 산(蒜)`.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됐다는 단군신화에서 빌려온 것이다. “나는 짐승이니 쑥과 마늘만 먹듯 시를 쓰며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어찌 보면 은유적 회개다. 하지만 거기 살면서도 독재정권에 어용했으니 성숙한 인간으로의 전환은 끝내 이루지 못한 것 같다.엉망진창 문제적 인간, 그러나 가장 찬란하고 아득한 시인의 집 뜰에 앉아 생전 그처럼 초등학교 아이들 합창 소리 듣는다. 석조에 핀 수련이 잠시 흔들린다.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허탈하고 쓸쓸한, 그런데 아름다운 오후가 간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두 달 동안 맥주로만 연명하다 뒤따라 간 한 인간의 지극히 인간됨,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짐승에 가까웠던 한 생애를 생각한다. “내일 다시 올게요.” 수련이 한 번 더 흔들린다.

2017-06-14

삶을 벼락처럼 바꾸는 만남

▲ 이병철 시인거제도 해금강 유람선에 올랐다. 오색 등산복 차림의 어머님들과 함께 `아리랑 1호` 명찰을 가슴에 달고 앉아 약장수를 방불케 하는 선장의 속사포 `구라`에 박수치며 웃었다. 사자바위, 소녀바위, 십자동굴을 보면서 탄성이 나왔다. 절해고도는 아니지만 푸른 바다 위 홀로 아름다워 외로운 해금강을 뒤로 하고 외도로 향했다. 유럽풍 건축물들과 인위적 꽃나무들이 먼저 떠올라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섬에 내리는 순간, 인위와 무위가 어우러진 절경에 감탄했다. 산책로를 오를 때마다 예쁘게 깎아놓은 정원수와 조각상, 대숲, 새소리, 분수, 꽃향기가 오감을 즐겁게 했다. 인공자연에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일은 묘한 감흥을 일으켰다. 외도 해상농원 설립자 고(故) 이창호씨 기념관에서 한참 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연보를 읽으며, 내가 밟은 것이 그저 작은 섬 관광지가 아니라 한 인간의 위대한 피와 땀, 눈물이라는 사실에 벅찬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외도의 작은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이창호씨와 최호숙 여사 부부의 숨결이 닿아있다.1969년 7월, 해금강 부근으로 낚시를 왔다가 태풍을 피해 외도에서 하룻밤 민박을 한 것이 운명의 변주가 되었다. 섬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창호씨는 3년에 걸쳐 섬 전체를 사들인 후 황무지를 가꾸기 시작했다. 작은 선착장 하나 만드는 데도 6번이나 실패했고, 감귤나무와 방풍림, 돼지 농장을 차례로 망쳤다. 풍랑과 해일, 뙤약볕과도 싸워야 했지만 `미친 짓`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상의 편견도 칼날 같았을 것이다.수차례 실패 끝에 30년간 식물원으로 가꾼 것이 지금의 외도다. 90년대 초 문화시설 허가를 받고 한려해상국립공원에 편입된 후 2007년까지 1천만 명이 넘게 찾은 한국 대표 관광지가 됐다. 맨손으로 바위섬을 일궈 만인에게 내준 이창호씨는 2003년 세상을 떠나고, 부인 최호숙 여사가 섬을 가꿔가고 있다. 외도를 빠져나와 거제 남정리를 지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이다.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어렵지 않게 생가를 찾았다. 마을은 여전히 들떠 있었다.노인들이 자발적으로 주차 안내를 하고, 생가 앞에선 `대통령님 탯줄 잘라준 추경순 할머니 아드님`께서 방문객들을 모아놓고 대통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좁은 마당에 다 무너진 시멘트벽, 그렇게 허름한 집은 처음 봤다. 그것도 지금 사는 분들이 고쳐 쓰는 덕에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살 때에는 흙벽돌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이 초라한 지붕 아래서 가난과 겸손을 배웠겠구나, 문간만 나서면 펼쳐진 산과 들, 푸른 하늘과 바다를 달리며 가슴을 키웠겠구나 생각했다. 초가지붕처럼 소박한 사람, 거제 바다처럼 정직한 변호사 문재인을 현실정치로 이끈 것은 노무현과의 만남이었다. 그도 그 만남을 `운명`이라고 칭한다. 타자와의 만남이나 우연한 사건을 통해 생애가 돌연 뒤바뀐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노무현을 만나 대통령의 길까지 걷게 된 문재인,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노동운동의 대모가 된 이소선 여사, 외도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가 섬에 평생을 바친 이창호씨 모두 그러하다. 인권변호사로, 공장직공의 어머니로, 교사로 살던 평범한 삶의 궤적이 한 사람, 한 사건, 한 장소에 의해 완전히 새로워진 것이다.마틴 부버는 “나는 너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과 세계를 이해하며 삶을 비약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금껏 나를 시인으로 살게 한 숱한 만남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만 아니었으면, 하고 이가 갈리는 밤도 많으나 대체적으로 감사하는 편이다. 글 쓰고 놀고 먹는 것 같은 나도 누군가의 삶을 벼락처럼 바꾸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맘대로 사는 듯한 내 삶도 어떤 개입에 의해 전혀 뜻밖의 것이 될지 모른다. 그 우연한 혼돈을 나는 기꺼이 기다린다.

2017-06-07

순돌아, 놀자!

▲ 이병철 시인`순돌이`가 죽는 꿈을 꿨다. 얼마나 울었던지 잠을 깨보니 베개가 축축했다. 14년째 같이 사는 슈나우저인데, 사실 내가 양육하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밥 주고 산책시키고 씻기고 병원 데리고 다니며 키운다. 보고 있으면 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른다.꿈이 유난히 괴로웠던 것은 엄마의 슬픔까지 생생하게 만져졌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엄마의 SNS를 보니 순돌이와 웃으며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 탓에 엄마의 미소와 순돌이의 착하고 큰 눈망울이 자꾸 번져 보였다.주먹만 할 때 우리 가족이 되어 나와 동생의 대학 졸업, 내 입대와 전역, 동생의 결혼과 출산, 할아버지 별세, 할머니가 쇠약해지는 과정, 엄마의 40대와 50대, 아버지의 귀농을 모두 지켜보았다. 여섯 식구 북적이며 살던 시절을 떠나보내고 이제 엄마와 단 둘이 산다. 아들·딸보다 더 오래 곁을 지키는, 엄마의 참된 `반려`다.인간의 1년이 개에겐 7년쯤이라, 순돌이는 사람 나이 팔순의 노견이 되었다. 여전히 건강하고 활달하지만 조금씩 지치는 기색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데, 생활이라는 핑계와 그리움이 똑같이 견고하다. 6년 전 교통사고로 반년 동안 입원했을 때 순돌이에게 쓴 편지를 꺼내본다.“널 생각하다 걸음을 돌린다. 너도 날 생각하고 있을까? 7년 전, 비 개인 가을 밤하늘 아래서 처음 만나던 날, 보드라운 털에 감싸인 네 따뜻한 몸의 떨림이 손끝을 타고 심장까지 전이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니? 까맣게 빛나는 네 눈이 별빛을 담아 글썽거렸지. 내 마음엔 늦봄의 햇살이 너울지고 있었단다. 신기하지? 언제나 사랑이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증폭, 이유 모를 호감에서 시작되는 법이니까.너보다 앞서 나와 마음을 나누던 네 형을 하늘로 배웅하고, 깊은 슬픔 끝에 너와 만났단다. 네 몸짓이 마음을 부비며 상처를 아물게 하는 동안, 눈물은 미소로 바뀌고, 나는 행복해졌어. 이별은 늘 새로운 만남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단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만나는 순간 이별은 시작되고 있음을, 사랑만큼 눈물도 깊어진다는 것을 그때 눈치 챘는지 몰라.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토록 오래 헤어진 적은 없었는데…. 현관에 들어선 나를 반기느라 달려오다가 몇 번이고 미끄러지던 네 모습이 떠오르곤 해. 꿈에서도 너를 자주 본단다. 너와 나란히 걷던 남현동 골목들과 관악산 오솔길이 그리워지면, 해거름 내려앉은 운동장에 나가 말없이 서울 쪽을 바라보곤 해.넌 언제나 내 가장 좋은 친구, 내 영혼이 쉴 따스한 품이었지. 이곳에는 내 마음 앉아 쉴 곳 없단다. 그래, 나는 몹시 외로워 하루가 저무는 텅 빈 운동장에 서서 순돌아 뭐해? 가만히 속삭여 본다. 내 외로움을 엿들은 포플러 나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너도 들리니? 힘없는 발걸음을 졸졸 따라오는 내 그림자 뒤에 혹시 네가 있진 않을까? 순돌아, 거기 있니?”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 반려견 `마루`와 반려묘 `찡찡이`를 들였다. 약속한대로 유기견 `토리`도 입양할 예정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동물보호법이 강화되고, 동물권이 신장되기를 기대해본다. 마루와 찡찡이, 토리가 청와대에 입성한 것도, 순돌이가 14년을 가족으로 함께 사는 것도 모두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의식 덕분이다. 생애 전체를 인간에게 바치는 반려동물을 위해, 삶의 작은 일부를 내어줄 줄 아는 사람은 경이와 신비, 감사로 가득한 세계를 살아갈 자격이 있다. 꿈은 반대니까, 가족이 죽는 꿈은 무병장수의 길몽이라니까 안심한다. 이번 주말은 순돌이와 보낼 것이다. 산에도 가고, 옥상에서 볕도 맞고, 맛있는 간식을 먹여줘야겠다. 나는 순돌이 것을 탐내지 않는데, 순돌이는 내 것을 자꾸 뺏어먹으려 한다. 그냥 한입 내어주고 말겠다. 배 위에 올려두고 함께 낮잠 자면 꿈도 환한 빛으로 물들 것 같다.

2017-05-31

국민을 안아주는 나라

▲ 이병철 시인살면서 연인 외에 다른 사람에게 안겨본 경험이 거의 없다. 안기기엔 부담스러운 `등빨`을 지닌 까닭일까. 안아주기에 특화된 넓은 가슴둘레를 가졌으면서 타인을 안아준 적도 드물다. 교회 수련회나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같은 데서 몇 번 한 게 전부이니, 나는 안고 안기는 데 인색하게 살았다.`남녀 칠세 부동석`을 가르쳤던 할아버지와 무뚝뚝한 아버지 아래서 나는 목석같은 사내로 자랐다. 포옹이라는 것은 참으로 쑥스러운 짓이었다. 기껏 내가 품에 안는 것은 개, 병아리, 이웃집 네 살배기 정도였다. 그 애도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레슬링 기술을 걸려고 안았다. 동생을 안아준 것도 한번 뿐이다. 여섯 살 때 태권도장 성탄절 잔치에서, 탈지면 수염 붙인 관장님을 산타클로스로 믿어 “동생 괴롭히면 선물 안 준다”는 협박에 넘어갔다. 남북정상처럼 서로 어정쩡하게 안고 `김치`하며 겨우 웃었다.의젓함이라든가 남자다움으로 포장된 뻣뻣함은 어느새 결핍이 되어, 사춘기 무렵 나는 노래와 영화를 통해 포옹의 이상향을 그렸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듣고 “힘겨운 날에 너마저 떠나면 비틀거릴 내가 안길 곳은 어디에”라는 가사에 심취했다. 학원 갔다 오는 길에 콜라 한 잔 마시고 괜히 비틀거려보기도 했다. 컬트의 `너를 품에 안으면`, 박정현의 `꿈에`, 김수희의 `애모`, 영턱스클럽의 `타인`, 김정수의 `당신`까지, 안고 안기는 노래들을 좋아했다.영화 `록키`에서 피투성이 록키와 애드리안이 껴안는 장면이라든가 `반지의 제왕`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샘과 프로도가 얼싸안는 장면, `주먹이 운다`에서 처절한 복싱 경기 후 류승범이 치매 걸린 할머니(나문희)와 포옹하며 우는 씬은 언제 봐도 감동적이다. `타이타닉`의 뱃머리 포옹은 지금도 배만 타면 흉내 낸다. `러브 액추얼리`가 도입부에 런던 히드로 공항의 일반인들 포옹 장면을 넣은 것도 무척 인상적이다.대중문화가 내 뻣뻣함을 유연하게 바꿔준 덕도 있지만, 점점 스킨십에 관대해지는, 아니 스킨십을 필요로 하는 사회가 나를 부추기는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나 힘든 일을 겪은 후배를 안아주는 게 예전처럼 쑥스럽지 않다.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자며 시작된 `프리허그`가 확산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포옹은 여전히 `이벤트`의 영역이지만, 점점 일상의 행위로 바뀌어가길 원한다.지난 10년 동안 `프리허그`가 참 많았다. 줄 서서 안기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가, 국가가 안아주지 않는 취업준비생, 입시생, 미혼모, 비정규직원, 다문화가족, 외국인노동자, 유가족도 있었다. 모든 국민들이 힘겨운 시절에 지쳐 위로 받을 `품`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국가는 한 번도 그 품을 열어주지 않았다. 우리끼리 안고 안기는 프리허그가 그래서 더 특별한 이벤트였는지 모른다.하지만 이제 포옹이 일상이 되는 사회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국가가 안아주지 않아서 우리끼리 안는 게 아니라, 국가가 먼저 안아주니 우리도 따라 껴안는 일이 익숙해질 것이다.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말없이 안아주던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과의 프리허그 약속을 지킨 사람, 그가 지금 메마르고 차가웠던 `국가`의 심장에 눈물과 온기를 채워 넣고 있다.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돌아가신 아버지께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눈물 흘린 김소형 씨를 또 가만히 안아주었다.위에서 언급한 노래 중에 “너를 품에 안으면 힘겨웠던 너의 과거를 느껴”라는 가사가 있는데, 정말 그녀의 아픔을 다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보여준 장면이다. 국민을 안아주는 나라, 위로와 격려가 더 이상 이벤트가 아닌 나라에 나는 살고 있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국가가 너를 안아주네”라고, 한 복음성가의 노랫말을 고쳐본다. 이번 주말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넉넉히 안아줄 생각이다.

2017-05-24

바이칼의 감동

▲ 이병철 시인이르쿠츠크에서 버스를 타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을 달렸다. 고려인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와 버려졌던 땅, 광막한 들판 너머로 지평선이 시간을 끊임없이 데려가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맨손으로 파헤쳐 감자 심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고려인 1세대들도 저 지평선에 실려 아득한 먼 곳으로 사라졌겠지. 생각에 잠긴 사이 버스는 알혼섬에 도착했다. 포장도로와 흙길, 물길을 번갈아 가며 여섯 시간 걸렸다.알혼섬 일대는 한민족의 시원지이자 샤머니즘이 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바이칼 호수 유역에 정착해 살다가 몽골과 만주를 거쳐 백두산으로 내려왔다. 시인 백석이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던 것을 기억한다”(`북방에서`)고 한 것은 우리 민족 이주사(史)에 대한 선험적 원형이다.그때 같이 오지 않고 지금껏 바이칼을 지키는 사람들이 부랴트 민족이다. 그들은 예로부터 샤먼을 의지하는데, 알혼섬 어디에나 서낭당, 솟대, 장승 등 우리 민속신앙과 똑같은 상징물들을 볼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센 곳이라던가. 전 세계 무당들의 성지라고 한다.그렇다고 부랴트 사람들이 무슨 심령술사나 영화 `곡성`에 나오는 박수무당인 것은 아니다. 우리와 머리, 피부, 눈동자 색이 같으며 알타이어계 말을 구사하는, 오래 전에 갈라진 한 핏줄이다. 친절하고 소박한 사람들, 저녁상에 우리 음식과 비슷한 돼지고기찜과 나물무침을 차려주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옥타비오 파스가 “샤먼들은 사물에 깃들인 정령들로부터 지혜와 행동의 지침을 얻는다.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고 사물 안의 지혜의 소식과 감정이입의 깊은 공감에 잠길 때 자신의 내부에 솟구치는 특별한 노래와 표현 이미지를 듣고 본다”고 한 말을 떠올리면, 샤머니즘을 믿는 부랴트인들은 사물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더 중시하며, 미물에도 눈과 귀를 기울이는 타자지향의 성숙한 세계 인식을 지닌 사람들이다.나 역시 샤먼의 기질을 타고난 게 분명하다. 얼음이 녹지 않은 바이칼 호수의 칼바람도, 아찔한 벼랑을 뛰놀다 내게로 와 얼굴을 핥아대는 개들도 다 반가웠다. 내가 잃어버린 고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칭기즈칸의 유해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신성한 불칸 바위와 알혼섬의 하늘, 3천만년을 얼고 녹은 바다 같은 호수를 보며 울었다. 벅찬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들판을 달려가다 넘어졌다. 무릎 꿇고 엎드려 바이칼 호수 물을 마셨다. 이틀 전 이르쿠츠크에서 마신 러시아산 보드카도, 군 시절 유격훈련 산악 행군 중에 들이켰던 `맛스타`도 그 청량한 맛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감동과 흥분을 주체할 수 없어 불칸 바위 벼랑에 매달려 노래도 불렀다. 결코 `아재`가 아닌데, 왠지 `광야에서`를 꼭 불러야 할 것만 같아 목청껏 질렀다.나는 쉽게 감동하는 사람이라 알혼섬에 내 노래와 입맞춤, 영혼 몇 다발을 두고 가는 게 몹시 기뻤다. 불칸 바위에게는 메아리를, 바이칼에게는 키스를 돌려받으러 다시 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사실 이르쿠츠크 왕복 항공권이 채 50만원도 안하는데다 네 시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얼마든지 또 올 수 있지만, 바이칼은 다시 못 올 것처럼 괜히 비장하게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숙소로 돌아와서도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라는 노래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불렀지만 가창력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3시간에 100루블인 와이파이 티켓을 사서 스마트폰을 열었더니 새 대통령이 주먹 쥔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험한 광야를 앞장서 걸으며 크게 보고 멀리 나아가는 지도자가 되길, 부랴트인에게 배운 대로 합장한 손을 세 번 흔들어 기도했다.

2017-05-17

이르쿠츠크에서 영등포행 버스를 타다

▲ 이병철 시인사전투표를 마치고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왔다. 바이칼 호수를 앞에 두고 울란우데와 마주보는, 러시아와 몽골 접경지대에 위치한 도시.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는 바이칼로 가는 기점이다. 여기서 승합차를 타고 네 시간 달리면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그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에 닿을 수 있다.낙후한 공항, 차가운 회색 밤하늘 아래 `IRKUTSK`라고 적힌 입구를 촬영하다가 키가 큰 여경에게 제지당했다.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반은 고려인, 반은 러시아인과 여행자들이었다. 러시아어와 영어, 한국어까지 3개 국어로 진행된 깐깐한 입국심사와 마약탐지견을 동원한 보안검색을 통과하느라 진이 빠졌다.밤 10시, 현지 숙소 주인인 `닉`이 구형 현대차를 타고 마중왔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닉과 `스파시바` 밖에 모르는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시베리아의 봄추위에 익숙지 않을 나를 위해 히터를 틀어놔서 보드카를 마시기도 전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나를 `poet`(시인)이라 소개했지만 알아듣지 못해 `코리안 푸시킨`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내리던 비가 그쳐 아침이 맑았다. 한국의 4월처럼 따뜻했다. 레닌 거리를 향해 걸었다. 교복 입은 초등학생들, 장신의 슬라브 미녀들, 나와 머리칼, 피부, 눈동자 색이 같은 고려인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어로 `터미널`, `자동문`, `영등포` 등이 적혀 있는 버스들이 달렸다. 노후 버스를 몽골 등에 수출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이르쿠츠크에서 영등포 행 버스를 탔다.그런데 이 한국 버스들의 매연이 지독하다. 90년대 한국을 누비던, 진작 폐차되었어야 할 차량들이다. 노란 테이프로 헤드라이트를 칭칭 감거나 범퍼가 박살난 채로 달리는 차들도 검은 연기를 뿜어댄다. 앙가라강 다리를 지나는데, 숨 쉴 수 없을 만큼 매연이 독했다. 끈적한 공기에서 나는 기름내, 오래된 목조건물들의 나무 냄새, 부서진 담벼락 시멘트 냄새 등 이르쿠츠크에선 내 유년을 채우던 온갖 나쁜 `도시의 냄새`들을 다 맡을 수 있었다.카잔 성당으로 가는 길, 공장과 중고차 시장, 한국차 전용 공업사, 부탄가스와 초코파이를 쌓아둔 고려인 상점이 뜨문뜨문 위치한 외곽지대에 다 허물어져가는 목조주택들이 있다. 판자촌이다. 빈티지한 분위기가 좋아 사진을 찍는데, 사람 없는 폐가처럼 보이는 나뭇더미에서 아기를 업은 고려인 여자가 나와 빨래를 널었다. 나는 몹시 미안했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17만5천 명의 조선인들이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버려졌다. 그중 1만 명이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80년 전 일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황무지를 개척하고 공동 농장을 경영하는 등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 러시아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소수민족이 됐다. 지난해 러시아 총선에서 고려인 의원이 당선된 곳이 바로 이르쿠츠크다.한국인들이 처음 연해주로 이민한 것은 1863년 철종 14년 때다.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 등에 정착했다.철종은 조선사에서 가장 무능한 지도자로 꼽힌다. 19세에 즉위했는데 대왕대비 김씨의 수렴청정과 외척 안동 김씨 일가의 세도정치에 조종당했다. 여색에 빠져 병 걸려 죽었다. 민생은 파탄나고,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다.수렴청정과 세도정치, 익숙한 단어다. 나무판자집에서 빨래를 너는 고려인 여자를 보며 한국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침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땐 당선인이 확정된 후다. 누가 되었든, 한국을 계속 살고픈 나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헬조선`에서 도망쳐도 살 길 막막했던 고려인들의 아픔이 재현되지 않도록 말이다.

2017-05-10

동물원의 북극곰

▲ 이병철 시인우리 사회가 동물원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프리카를 흉내낸 인공 아프리카, 북극을 흉내낸 가짜 북극 등 동물원은 모방 세계다. 이 모방 세계 안에서 동물들은 유토피아와 가짜 유토피아 사이의 혼란을 겪는다.온대기후 한국 땅에 갇혀 지내는 북극곰이 비참해 보인다. 환경 자체가 폭력이며, 생존이 곧 지옥 아닐까. 타고난 기질, 개성이 어떻든 간에 정해진 환경에 무조건 적응해야 하는 곳이 동물원이라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인공 얼음 위에서 어떤 북극곰은 여기가 북극이라고 믿지만, 다른 북극곰은 북극이 아니라는 걸 안다. 가짜 유토피아를 유토피아인 양 착각하고 살거나, 유토피아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냥 현실을 수용하며 사는 것이다.인간이 뭐 대단히 지혜롭지도 않은 것 같다. `자유`, `기회`, `복지`, `편리`, `안보`, `안전` 같은 말들이 인공 나무와 호수, 얼음 역할을 하며 허상의 유토피아를 이루고 있다. 그것들은 있으면서 없고,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 같아도 몇몇 사람이 독차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철석같이 믿거나, 살 만한 곳이 아닌 걸 알면서도 그저 살아간다.살 만한 곳이 아닌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믿는 태도는 상상임신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부재와 무능이 드러난 `국가`를 계속 좇으며 `새마을 운동` 같은 지나간 애국의 형식으로 이상과 허구의 간극을 견딘다. `중산층`, `내 집 장만`, `자수성가` 따위 소멸된 이상들을 여전히 바라보기도 한다.또 어떤 이들은 아무리 몸부림쳐봤자 구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는 그저 적응하며 사는 쪽이 덜 고생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수저계급론`과 `헬조선`의 사회에서는 든든한 배경 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득권의 장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취업, 연애, 결혼, 내 집 장만을 아예 포기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세상을 살아간다. 패배를 수용하고, 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 없이 스스로를 유폐시킨다.현실에 대한 맹목적 긍정이나 무기력한 패배적 수용 모두 싫다. 살 만한 곳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저 살아야 한다면, 기왕 즐거운 게 낫다. 요즘 나는 어떻게든 즐길거리를 찾아 오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주의로 살고 있다. 자꾸 그러다 보니 세상도 살만한 곳으로 느껴진다. 이 아이러니가 삶의 동력이다. 즐기기 위해 일하고, 일해서 얻은 대가로 즐긴다. 낚시를 하고, 여행을 간다. 이런 태도를 `욜로(YOLO)`라고 부른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다(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를 아끼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하는 존재가 아닌가”라고 묻는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간 체험의 가장 기본값인 `자기 자신`마저도 체험할 수 없게 한다. 입시와 취업의 지옥 경쟁, 고된 업무와 야근의 연속 가운데 여가라는 것은 아예 꿈꿀 수도 없는 팍팍한 현실은 구성원들에게 한 주체로서의 개인을 아예 포기시킨다. 요즘 `욜로족`이 급증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구조에 대한 반작용이다. 욜로족들은 노후 대비, 결혼, 저축, 봉사, 기부 등 미래 또는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거부하고 당장의 즐거움만을 추구한다.지난 2014년, 어린이대공원 북극곰 `얼음이`가 30도 넘는 폭염에도 실내 우리로 들어가지 않다 죽었다. 현재 우리나라엔 두 마리의 북극곰이 남아있는데, `얼음이`와 비슷하게 죽을 것이다. 땡볕 아래 위태로운 얼음을 밟고 선 북극곰의 슬픈 눈을 떠올리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나는 다음 달에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간다. 바이칼 호숫가에 앉아 러시아 전통 꼬치구이인 샤슬릭과 함께 보드카를 마실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욜로족`이 되길 희망한다. 같이 놀 친구들이 있으면 좋으니까.

2017-04-26

만나면 좋은 친구, 좋지 아니한가

▲ 이병철 시인삶은 아름답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생을 무조건 긍정하는 편은 아닌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낙관주의자가 된다. 삶은 사람의 준말이지 않은가. 좋은 사람은 단 한번 만나도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게 한다.지난 주말 저녁이 그랬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낯을 가리는 편이라 오래된 친구 외에는 잘 만나지 않는 내가 홍대까지 외출을 했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인 강백수 군이 서현진 아나운서와의 술자리에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엔 록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 형도 있었다.편한 술자리지만 내겐 더없이 각별했다. 서현진 아나운서의 오랜 팬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진행하던 아침 라디오를 매일 챙겨들었다. 푸르른 20대의 날들에는 언제나 아침을 깨워주던 서현진 아나운서가 있었다. 몇 년 전 라디오를 그만두었을 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내 20대도 떠나갔다.아나운서, 록커, 싱어송라이터, 시인이 모인 술자리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팬으로서 앉아 있자니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나고 술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눈을 뗄 수가 없고 내 눈엔 서현진 아나운서만 보였다.하지만 그날 저녁을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은 좋은 사람들의 좋은 태도였다. 정신 차리고 시인의 위엄을 지키기로 한 뒤부터는 대화에도 적극 참여하고, 잘 모르는 싱글몰트 위스키도 `음미`라는 것을 해가며 홀짝홀짝 마셨다. 한경록 형의 말대로 어떤 위스키에서는 벚꽃 향기가 났다. 네 사람 사이 오가는 대화에서도 나는 꽃 냄새를 맡았다. 향기로운 말 외에 다른 안주는 필요 없었다.한 사람은 미스코리아 출신의 MBC 간판 아나운서였다. 또 한 사람은 한국 펑크록의 시조인 메가히트 밴드 크라잉넛의 리더다.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고 명예와 인기를 다 얻은 사람들이다. 콧대가 높을만도 하고 권위적이며 오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오만과 권위도 보지 못했다. 차별이나 편견은 더더욱 없었다.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여주는 그들 덕분에 아직 시집 한 권도 못낸 무명시인과 공익근무 중인 가난한 싱어송라이터는 마음 편히 웃고 대책 없이 취할 수 있었다. 음악, 문학, 책, 영화, 연애, 가족, 반려동물, 공통된 것과 상반된 것에 대해 대화하며 밤이 깊었다. 기분 좋게 취해 상수동 밤거리를 걷는데 라일락이 달빛에 젖어 있었다.서현진 아나운서와 한경록 형 모두 권위주의와 갑질, 기득권 폭력의 피해자들이다. 서현진 아나운서는 2009년 언론노조 총파업과 2012년 MBC 파업에 참여했다가 2014년 퇴사했다. 파업 이후 서현진, 김주하, 오상진 등 아나운서 11명이 회사를 떠났다. 한경록 형은 `인디음악`에 씌워진 대중의 편견과 외면, 오해와 끊임없이 싸워왔다. `인디`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성공한 지금, 후배들에게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신인 밴드들을 물심양면 돕고 있다. 둘 다 약자의 입장을 잘 아는 사람들인 것이다.MBC는 아직도 비정상이고, 암 투병 중인 이용마 기자를 포함한 해직기자들은 복직되지 않았다. 서현진 아나운서의 방송을 듣던 때는 지금보다 세상이 좀 더 좋은 곳이었을까. 그때보다 지금이 나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3주 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5명의 후보들은 모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오만하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약자의 처지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에게 투표할 생각이다. 그러면 다시 서현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르니까. 좋지 아니한가.그날 밤 나는 흥분해서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된 것 같아!”라고 외쳤다. 다음날 술 깨고 보니 `노팅힐`이 아니라 영화 `심야의 FM`에서 수애의 사생팬으로 등장하는 마동석에 훨씬 가까웠음을 알아차리고 종일 괴로워했다.

2017-04-19

`원더풀 투나잇`과 일상의 기다림

▲ 이병철 시인패티 보이드가 내한했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과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을 미친 사랑의 불길로 뛰어들게 한 `록 음악의 뮤즈`다. 1965년 조지 해리슨과 결혼해 12년을 살았고, 이혼 후 1979년 에릭 클랩튼과 재혼했지만 십년 뒤 헤어졌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은 절친한 사이였다.비틀즈의 앨범 `Abbey Road`에 실린 `Something`은 조지 해리슨이 패티 보이드에게 바친 사랑 노래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러브송이라고 극찬한. 친구 아내를 사랑한 에릭 클랩튼이 실연의 고통을 울부짖은 노래가 그 유명한 `Layla`인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 도입부의 기타 소리가 들리면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다.지난 금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데 `Layla`가 나왔다. 배철수 씨가 `패티 보이드 여사`를 소개했다. 내한 일정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것. 그녀는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그리고 자신의 삶과 사랑,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조지 해리슨과 처음 만난 날 그가 대뜸 청혼한 것을 영국 북부지방 출신 특유의 난해한 개그로 받아들였다는 일화, 다른 여자가 아닌 에릭 클랩튼의 기타에게 질투를 느꼈다는 이야기,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중 누가 더 인간적으로 매력적인지를 묻는 질문에 “조지는 19살에 만났으니 19살의 내겐 조지가 매력적이고, 에릭은 30대에 만났으니 그때의 내겐 에릭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한 현명한 대답 등이 인상적이었다.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에릭 클랩튼의 명곡 `Wonderful tonight`이 만들어진 비화다. 파티 약속이 있어 외출 준비를 하는데, 그날따라 옷 선택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에릭 클랩튼이 기다리는 동안 옷을 여러 번 바꿔 입고, 머리를 올렸다가 풀기를 반복하고, 메이크업을 다시 고치는 등 한참을 치장한 끝에 화난 남편을 걱정하며 까치발로 계단을 내려갔다고. 그런데 에릭 클랩튼은 화를 내기는 커녕 당신을 위해 지금 막 노래를 만들었다며 `Wonderful tonight`을 들려줬다 한다.“늦은 저녁,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녀는 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려요. 그리고 나에게 묻지요. `나 괜찮아 보여요?` 나는 대답합니다. `응, 당신 오늘밤 정말 근사해` 라고.”치장하는 여자를 하염없이 기다려 본 남자는 안다.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짜증나며, 대충 씻고 어제 신었던 양말을 다시 신은 자신이 야만인처럼 느껴지는 비교성찰의 시간이라는 걸. 그래서 남자들은 오랜 치장 끝에 중국 경극배우나 일본 갸루의 모습으로 나타난 여자를 향해 화를 내거나 “줄 긋는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따위의 `망발`을 해버린다. 기다리다 지쳐 부아가 치민 것인데, 기다림에 익숙하지도 않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할 줄도 모르는 게 문제다.한국 남자들은 모든 것에 성미가 급하다. 내 이야기라서 너무 잘 안다. 스스로 판단해 문제를 푸는 아이의 노력을 기다리지 못하고 답을 가르쳐준다. 그것도 모르냐며 꿀밤을 쥐어박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초보운전 차가 차선 바꾸는 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거칠게 다뤄야 운전이 는다며 경적을 울려 `배려`한다. 배달 음식, ARS 상담사와의 통화 연결, 0대 0 축구 경기, 식물 키우기, 빨래 마르기 등을 기다리다 열이 뻗친다. 그래서 괜히 연인에게, 가족에게, 애꿎은 타인에게 화를 낸다. 내 기분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공해를 저지른다.에릭 클랩튼의 경우처럼, 어떤 가치 있는 일들은 무용하고 따분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기다림 속에서 탄생한다.전자레인지의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 1분 동안 세상을 흔들 시 한편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기다림과 좀 더 친해질 생각이다.

2017-04-12

강물과 꽃과 생일

▲ 이병철 시인섬진강휴게소에서 아침을 맞았다. 올해 가장 부드러운 햇살이 나를 훑었다. 재첩국을 먹고 하동, 구례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유홍준 교수가 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19번 국도를 몇 해 전에 지났지만 캄캄한 밤이라 아무것도 못 봤다. 달빛 베일에 싸여 실루엣만 보이던 그 길을 향해 달리자 얼굴 본 적 없는 신부에게 가는 옛 신랑처럼 가슴이 쿵쾅댔다.섬진강 모래톱은 체에 거른 보릿가루처럼 색감이 곱다. 손으로 느끼는 질감과 눈으로 느끼는 질감은 따로 있다. 설악산의 깎아지른 바위들을 볼 때 내 눈은 무엇엔가 할퀸 듯 껄끄럽고, 변산 격포의 해넘이를 볼 때엔 화로에서 갓 꺼낸 감자에 닿은 것처럼 화끈거리는 것이다. 섬진강변을 보는 눈이 강아지 털에 감싸이는 듯 했다.강줄기가 채찍이 되어 바람의 등허리를 때렸다. 따뜻한 공기 속을 봄바람이 말처럼 달렸다. 서울은 아직 이르지만 남녘은 벚꽃 천국, 꽃잎의 대설주의보다. 센 바람에 꽃잎들이 흩날리며 눈물겹게 아름답다. 화개장터와 쌍계사에 가는 차들로 19번 국도는 주차장이 돼 있었다. 꽉 막힌 도로가 반가울 줄이야. 앞에서부터 차들이 빠져나가 점점 속도가 나는 게 싫었다. 열 시간이고 이대로 멈춰 서서 꽃비에 젖고만 싶었다.꽃구경 실컷 하고 벚꽃길에서 나왔다. 검증할 방법은 없지만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뭉클하다. 그걸 자연에서 발견할 때는 감동이 더 크다. 꽃잎의 화사함이 마음 속 고민과 어두운 생각들을 몰아낸 모양이다. 감정의 정화작용이므로, 꽃잎은 내게 카타르시스다.화개장터에 갔다. 깨 볶는 소리, 뻥튀기 소리, 뽕짝, 엿장수 음담패설, 참기름 냄새, 풀빵 냄새, 황기, 당귀, 감초, 갈근, 칡 냄새, 돼지머리 삶는 냄새, 명란젓, 창난젓, 밴댕이젓, 곤쟁이젓 냄새까지. 사라져 가는 것들, 급변하는 세상의 한 구석에서 발버둥 치며 겨우 살아있는 오래되고 촌스러운 것들을 보고 있으면 애잔해진다. 북을 때리며 우스꽝스럽게 춤추는 엿장수가 쓸쓸해 보였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던 신경림의 시 `농무` 한 구절을 떠올렸다.천막 주점에 앉아 벚굴과 은어튀김을 먹었다. 막걸리도 마셨다. 동행한 친구가 마침 생일이라 재첩비빔밥 가운데다 은어튀김을 초처럼 꽂아놓고 축하했다. 나는 꽃잎 하나를 주워와 친구의 막걸리 사발에 띄워주었다. “어느 지나간 날에 오늘이 생각날까…” 귀에 익숙한 이문세의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문득 꽃잎과 생일, 살아있음과 소멸에 대해 생각했다.우리는 살면서 죽고 죽으면서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소멸 중이다. 그게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울 수 없는 나는 자꾸만 현존하는 소멸, 소멸하는 현존을 향해 마음이 기울어진다. 생일은 기쁜 날이지만, 거듭될수록 우리를 죽음에 가깝게 한다. 생일은 곧 소멸의 진행을 확인하는 날이다. 입술을 내밀어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어 끄는 순간도 소멸이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금세 과거가 되어버린다. 꽃잎도 그러하고, 엿장수도 그러하고, 내 앞의 친구도 그러하다. 꽃도 삶도 사랑도 진다. 영원한 것은 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뿐이다. 시간의 흐름이 우리를 끊임없이 흩어간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오늘을 사는 것밖에. 소멸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든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꽃은 지기에 아름답고, 만남은 이별이 예정돼 있으므로 소중하다는 말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나는 다시 꽃비를 맞기로 하고 주점에서 나왔다.화개장터를 빠져나와 쌍계사 가는 길도 벚꽃이 지천이었다. 하늘을 뒤덮은 벚꽃잎들 사이로 햇살이 눈부셨다. 바람이 불자 꽃잎이 머리 위로 흩날렸다. 나는 이 세상을 더 사랑하기로 했다.

2017-04-05

아무 말 대잔치

▲ 이병철 시인글쓰기가 버겁다. 매주 칼럼을 쓰고, 매달 두세 군데 문예지에 시와 비평을 발표하고 있지만 신선도가 떨어진다. 글쓰기가 즐거울 땐 생각이 활어처럼 이리저리 뛰는데, 요즘은 좁은 수조에 갇혀 배 뒤집으려는 생선처럼 힘겹다. 글쓰기라는 게 참 모호한 행위다. 직업이라기엔 빈곤하고, 취미라기엔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이 저당 잡혀 있다.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요즘 나는 정말 무기력하게 쓴다. 고장이 났지만 작동을 멈추지 않는 기계처럼.실력 없이 요행으로 처신해온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복식호흡이나 두성을 배우지 않고도 노래 몇 곡 부를 수 있지만 더 부르면 성대 결절에 걸린다. 입력 없이 출력만 해서 고장 났다. 연료는 안 넣고 엔진만 돌리니 생각이 침체돼 눌러 붙었다. 요즘 책도 안 읽고 음악도 안 듣는다. 취미 활동도 일상 습관으로 편입돼 새로울 게 없다. 낯선 곳으로 여행 간 게 언제였던가. 삶에서 `최초의 경이`와 `미지에의 도전`을 잃었다.글쓰기가 싫다. 싫으니까 힘에 부친다. 쓸 말이 없다. 세상사 무궁무진해 쓸 거리는 넘쳐나는데, 다들 그걸 쓰니까 말 보태기가 민망하다. 시의적 소재로 글을 몇 편 써봤지만 남들이 말한 바를 따라 읊는 게 고작이었다. 독창도 개성도 없는 글을 한 편 더 세상에 내놓는 것은 언어공해다. 말만큼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도 없다.말이 공해임을 절감하면서부터 글쓰기가 싫어졌다. 말은 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차단의 방식임을 자주 느낀다. 도처에 말이 넘친다. 범람하는 말들 중 마음에 담을 만한 것은 드물다. 생각의 전달, 타인과의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그저 말하는 게 좋아서 말하는 사람들, 말하기 위해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다.얼마 전,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말을 할수록 듣는 사람은 안중에 없고 오직 말하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내가 한 말들은 세상에 떠도는 말들과 별다를 바 없는데다 주제를 이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말하는 자신에게 도취돼 계속 떠들었다. 어휘가 막막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적당한 것이 튀어나오자 그 어려운 걸 해낸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말하기와 글쓰기 모두 나르시시즘의 한 표출 형태다. SNS가 특히 그렇다. `아무 말 대잔치`다. 굳이 안 해도 될 말들을 한다. 글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 밑에다 글과는 무관한 댓글을 단다. 남들이 다 한 말 받아쓰기 한다. 아무 고민이나 의심 없이 풍문을 옮긴다. 입안이 가득 차 우물거리는 걸 못 참는다. 말과 글에 목적과 사유, 공감을 담기보다는 행위 자체에 만족한다. 그러면서 정치에 참여한다는 자부심, 소셜 네트워크 구성원이라는 안도감을 느낀다.분명한 목적이니 귀담고 읽을 만한 가치니 하는 것들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혼잣말도 욕설도 말장난도 다 말이고 글이다. 말과 글은 공기 같은 것이다.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타인과 관계 맺기를 전제로 하는 언어행위라면 말과 글은 신중해야 한다. 내 말이 내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지, 그것이 듣는 이에게 또 어떻게 전달되는지, 상대방의 말을 나는 이해하고 있는지, 그의 말에 담긴 감정들을 공감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나르시시즘의 말하기도 문제지만 나는 없고 남의 말만 흉내 내는 앵무새 말하기도 곤란하다.대선후보들의 말이 어디를 향하는지 유심히 살피는 요즘이다. 아무리 이미지 정치의 시대라지만 후보들의 말은 국민을 향하기보다 자신에게만 집중되는 듯하다. 자기 말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연설과 토론, SNS 활동은 모두 국민과 관계 맺는 언어행위다. 자신의 말이 국정철학을 잘 표현하는지,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자신이 국민의 요구를 이해하고 있는지, 국민들의 희로애락을 공감하는지 고민해야 한다.정치도 `아무 말 대잔치`가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2017-03-29

소래 바다는

▲ 이병철 시인나는 잘 가지 않지만 소래포구는 내 친구가 연인과 자주 데이트 가는 곳이다. 거기 수인선 협궤열차는 오래 전에 사라졌고, 열차가 다니던 철길이 남아 있다. 1960년대 실향민들이 새우잡이를 하면서 만들어진 포구는 새우, 젓갈, 꽃게로 유명한 어시장이 되었다. 좌판 횟집에 앉아 바다를 보며 먹는 생선회는 그저 음식이 아닌 추억과 낭만의 다른 이름이다.“돌아가신 아버지를 소래 포구의/ 난전에서 본다, 벌써 귀밑이 희끗한 늙은 사람과/ 젊은 새댁이 지나간다/ 아버지는 서른여덟에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지난날/ 장사를 하느라 흥해와 일광을 돌아다니며 얻은/ 병이라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소래에 오고 싶어하셨다/ 아니 소래의 두꺼운 시간과 마주한 뻘과 협궤 쪽에 기대어 산/ 새치 많던 아버지, 바닷물이 밀려나가는/ 일몰 끝에서 그이는 젊은 여자가 따르는 소주를 마신다/ 그이의 손이 은밀히 보듬는/ 그 여자의 배추 살결이/ 소래 바다에 떠밀린다/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산다.”송재학의 시 `소래 바다는`이다. 죽은 장돌뱅이 아버지, `젊은 여자`와 새살림을 차린 아버지를 하필 소래포구에서 추억하는 것은 아버지가 소래에 오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대신 소래에 간 시인은 `내 낡은 구두 뒤축을 떠받치는 협궤 너머`로 젊은 여자와 사는 아버지의 환영을 본다. 아버지가 사라진 현재의 소래엔 낡은 구두를 신고 아버지의 쇠잔한 삶을 그대로 살고 있는 시인만이 서 있고, 아버지는 협궤 너머 피안의 소래에서 젊은 여자와 영원히 산다. 소래포구 난전에서 본 귀밑이 희끗한 사람은 기억 속 아버지인 동시에 시인 자신이다.이 시를 읽은 스무 살 무렵 소래포구를 동경했다.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에 내려 다시 버스로 갈아타 소래포구에 갔다. `일몰 끝에서 소주를 마시는` 시적 풍경의 실현을 위해 어시장으로 향했다. 좋게 말해 난전이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호객 행위가 도를 넘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좌판 횟집에서 두 마리 합쳐 500그램도 안 되는 광어회를 5만원 넘게 주고 사 먹었다. 초장과 채소 값은 별도, 매운탕도 1만원을 더 내야 먹을 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 점 먹지도 않았는데 접시가 깨끗했다. 최종 금액은 10만원이 넘었다. 결국 은행에 가 돈을 뽑아와야만 했다.소래포구 화재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 심상찮다. 대구 서문시장과 여수 수산시장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쌤통, 인과응보, 자업자득, 통쾌 같은 단어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동안 바가지, 물건 바꿔치기, 저울 속이기, 과도한 호객행위, 카드 계산 거부, 비위생, 불친절 등 악덕 상술에 상처 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 왔다가 시간과 돈 버리고 불쾌함만 안고 갔으니 불난 시장을 보며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된다. 타인의 불행을 두고 조롱하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다수 고객의 비판과 분노를 상인들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오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조선 거상 임상옥은 `장사는 돈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과 손님 모두에게 적용되는 격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재래시장에서 기대하는 것은 철저한 위생과 규격, 포인트 적립이 아니다. 조금 서툴고 어설퍼도, 전문 외식업체 수준의 위생과 청결이 아니더라도, 몇 백 원 계산이 틀리더라도 정감 있는 말 한마디와 환한 웃음, 장난스러운 에누리 흥정으로 전대와 지갑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 빈틈을 채우는 마음의 거래, 바로 그것이다.삶터를 잃어버린 소래포구 상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빠른 피해 복구가 이뤄져 본래의 활기찬 포구를 회복하면 좋겠다. 어시장만 되살리고 악덕 상술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상인들이 비양심적 얌체 영업을 할 수밖에 없던 구조적 문제가 있다면 그것도 이참에 뜯어고치길 바란다.

2017-03-22

탄핵심판 결정문을 보며

▲ 이병철 시인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는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3년, 박근혜 정부 4년, 유신체제로부터 40년의 시간을 단 21분으로 압축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탄핵심판 결정문이 군더더기 없는 명문이었기에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 있었다. 현학적이지 않고 과도한 수사도 없었다.헌재는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 이유로 탄핵 소추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세월호 구조 실패를 탄핵 사유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수가 느끼는 분노일지라도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은 논제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법의 준엄함을 보았다. 성실한 직책 수행을 못했다는 것이 탄핵 사유가 될 경우, 나는 성실하게 일해도 회사가 불성실하다고 판단하면 일방적 해고를 당할 수 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한 업무일지를 보여줘도 소용없다. 회사는 내게 15시간 일하지 않았으니 불성실하다고 말할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마다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트집 잡아 탄핵 소추안을 남발할 게 뻔하다.세월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불성실을 넘어 방치로 일관했다. 본인은 애썼다는데, 억지스러워도 이게 상대성이다. 법은 명확하게 나타난 구체적 사실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공학적 시스템`이다. 그래서 절대적이다. 탄핵 반대 세력들이 시비 걸 거리를 제거해버렸다.헌재가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대통령을 꾸짖을 때 통쾌함을 느꼈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 선생님이 불량학생에게 자주 하는 소리다. 이정미 재판관의 단호한 목소리를 들으니 실형을 선고받은 `일진` 청소년들이 울며 용서를 빌어도 “안 돼. 안 바꿔줘” 하던 천종호 판사가 떠올랐다. 최고 권력자라고 하더라도 법이 혼낼 수 있다. 잘못을 추궁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더 엄하게 야단칠 수 있다.“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한 것은 법의 합리성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작은 살점 하나 떨어져나가더라도 몸속의 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 자리에 있어봤자 나라만 더 망치고 국민들 힘들게 할 뿐이니 짐 싸서 나가라고 명령한 것이다. 수술 후 완전 회복까지는 상처에서 고름도 끓고 불순물도 나오고 통증도 있다. 탄핵 불복 폭력 시위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암묵적 불복 메시지는 그런 차원으로 보면 된다. 좀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다.가슴을 울린 구절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해 파면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다.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가장 아름답고 눈부신 절창이었다. 보수와 진보, 촛불과 태극기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의 문제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다 할 뿐이라는 신념의 표현이다.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고, “너보다 약한 친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처럼 헌재가 대통령에게 인간의 양심과 도덕, 정의를 가르쳤다. 불의를 자꾸만 이념으로 포장해 선동하는 자들은 어릴 적 부모님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 불의는 어떻게 해도 불의일 뿐이다.“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무겁고 찬란한 한 문장을 읽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퇴장한 이정미 재판관이 황야의 총잡이처럼 보였다.헌재 판결에 승복한다는 한마디 말만 해도 집으로 가는 길이 평탄할 텐데, 스스로 질척이며 진창을 걸어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과 상반된다. 정의는 잘 닦인 길이고 불의는 시궁창이다. 어디로 다닐지는 본인 선택의 몫이다.

201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