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돼지에 이어 레밍이다.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기에 새로 출시된 승용차나 레몬 맛 아이스크림 같은 건 줄 알았다. 찾아보니 들쥐다. 내가 쥐띠라서 그런지 몰라도 되게 기분 나빴다. 십이간지 순서도 개, 돼지 다음이 쥐인데, 내년엔 어떤 이가 국민들더러 미련한 소라고 막말을 할까.
홍수가 나 사람이 죽고 온 도시가 물에 잠겼는데 유럽 연수를 갔다. 갈 수도 있다. 업무의 일환이자 예정된 계획이다. 불법행위도 아니다. 도의원 몇 명 없다고 수해복구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 있으면 더 방해만 된다. 장화 신고는 설렁설렁 사진 몇 장 찍고 올 게 뻔하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눈치가 없을까. 연애할 때 눈치 없는 애인은 생판 모르는 남보다 더 못한 존재다. 새로 산 옷 입고 왔더니 바깥 돌아다니기 귀찮다며 집 앞 분식집이나 가자고 한다. 꾹 참았더니 이번엔 자기 친구들하고 같이 놀자며 당구장에 끌고 가 투명인간 취급한다. 화를 내고 따져도 뭐가 잘못인지 모른다. 오히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망신 준다며 적반하장이다.
이런 인간하고는 당장 헤어져야 한다.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공직에 앉아 있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하는 `공(空)직자`들이다. “사는 게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임기가 끝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사퇴할 순 없잖아”의 마인드로 자리만 채우고 있는, `공(空)감`의 관료주의가 이번 `홍수 외유` 사태의 본질이다.
소대장 시절에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소대원이 있다. 신병 훈련을 마치고 갓 자대에 배치된 이등병이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날, 자신을 배웅하고 귀가하시던 아버지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막막했다. 그 친구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실하게 복무하겠다”고 했다.
정말 성실했다. 결손자녀라서 외박이나 휴가 등을 배려 받을 수 있음에도 본인이 고사했다.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혼나고 훈련 받았다. 딱한 사정을 아는 부대원들도 내색 안하고 그 친구를 편히 대했다. 소대에 포상휴가증이 생기면 저마다 몰래 나를 찾아와 자신 말고 동료에게 줄 것을 부탁했다.
전역하는 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며 환하게 웃어 보인, 경북 봉화에 사는 그 친구가 보고 싶다. 공감은 팀워크를 가능하게 한다. 공감할 줄 모르는 공직자들은 국민과 손발을 맞출 수가 없다.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때로는 더 낮아져야 하는데, 선거철에만 허리 숙인다. 이웃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고개 끄덕여주며, 위로가 필요할 때 손을 내미는 것은 늘 보통 사람들이다.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나”라는 질문의 답은 언제나 `여러분`이다. 위정자들 빼고 국민들끼리는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 모른다. 금 모으기 운동할 때 결혼반지, 부모 유품 내놓은 것도 국민들이고, 태안 앞바다에 기름이 쏟아졌을 때 그걸 닦으러 달려간 사람들도 국민들이다. 당시 받았던 사랑에 보답하겠다며 태안 군민들이 수해지역 주민들을 도우러 자원봉사단을 꾸렸다고 한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도 캄캄한 바다로 뛰어든 것은 민간 잠수사들이다. 책임져야 할 자들은 국민 뒤에 숨어 구경만 한다. 정작 일해야 할 자들은 제 구두에 흙 묻을까봐 어린 군경들에게 손가락 지시만 한다. 과연 누가 레밍인가?
한 방송 관계자가 8년 전, 당시 17살이던 배우 유승호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한여름 야외촬영 준비 중에 계속 옆에 서 있길래 실내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더니 “어른들이 더운 데서 고생하시는데 어린 제가 어떻게 에어컨 쐬고 앉아있어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곤 끝까지 안 들어가고 곁을 지켰다 한다. 17세 소년의 공감능력 그 반의반만이라도 공직자들이 가졌으면 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