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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투나잇`과 일상의 기다림

등록일 2017-04-12 02:01 게재일 2017-04-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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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패티 보이드가 내한했다.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과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을 미친 사랑의 불길로 뛰어들게 한 `록 음악의 뮤즈`다.

1965년 조지 해리슨과 결혼해 12년을 살았고, 이혼 후 1979년 에릭 클랩튼과 재혼했지만 십년 뒤 헤어졌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은 절친한 사이였다.

비틀즈의 앨범 `Abbey Road`에 실린 `Something`은 조지 해리슨이 패티 보이드에게 바친 사랑 노래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러브송이라고 극찬한. 친구 아내를 사랑한 에릭 클랩튼이 실연의 고통을 울부짖은 노래가 그 유명한 `Layla`인데, 라디오에서 이 노래 도입부의 기타 소리가 들리면 발끝까지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다.

지난 금요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데 `Layla`가 나왔다. 배철수 씨가 `패티 보이드 여사`를 소개했다. 내한 일정으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것. 그녀는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그리고 자신의 삶과 사랑,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지 해리슨과 처음 만난 날 그가 대뜸 청혼한 것을 영국 북부지방 출신 특유의 난해한 개그로 받아들였다는 일화, 다른 여자가 아닌 에릭 클랩튼의 기타에게 질투를 느꼈다는 이야기,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중 누가 더 인간적으로 매력적인지를 묻는 질문에 “조지는 19살에 만났으니 19살의 내겐 조지가 매력적이고, 에릭은 30대에 만났으니 그때의 내겐 에릭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라고 한 현명한 대답 등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에릭 클랩튼의 명곡 `Wonderful tonight`이 만들어진 비화다. 파티 약속이 있어 외출 준비를 하는데, 그날따라 옷 선택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에릭 클랩튼이 기다리는 동안 옷을 여러 번 바꿔 입고, 머리를 올렸다가 풀기를 반복하고, 메이크업을 다시 고치는 등 한참을 치장한 끝에 화난 남편을 걱정하며 까치발로 계단을 내려갔다고. 그런데 에릭 클랩튼은 화를 내기는 커녕 당신을 위해 지금 막 노래를 만들었다며 `Wonderful tonight`을 들려줬다 한다.

“늦은 저녁, 그녀는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녀는 화장을 하고 긴 금발머리를 빗어 내려요. 그리고 나에게 묻지요. `나 괜찮아 보여요?` 나는 대답합니다. `응, 당신 오늘밤 정말 근사해` 라고.”

치장하는 여자를 하염없이 기다려 본 남자는 안다. 그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짜증나며, 대충 씻고 어제 신었던 양말을 다시 신은 자신이 야만인처럼 느껴지는 비교성찰의 시간이라는 걸. 그래서 남자들은 오랜 치장 끝에 중국 경극배우나 일본 갸루의 모습으로 나타난 여자를 향해 화를 내거나 “줄 긋는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따위의 `망발`을 해버린다. 기다리다 지쳐 부아가 치민 것인데, 기다림에 익숙하지도 않고, 기다림의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할 줄도 모르는 게 문제다.

한국 남자들은 모든 것에 성미가 급하다. 내 이야기라서 너무 잘 안다. 스스로 판단해 문제를 푸는 아이의 노력을 기다리지 못하고 답을 가르쳐준다. 그것도 모르냐며 꿀밤을 쥐어박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초보운전 차가 차선 바꾸는 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거칠게 다뤄야 운전이 는다며 경적을 울려 `배려`한다. 배달 음식, ARS 상담사와의 통화 연결, 0대 0 축구 경기, 식물 키우기, 빨래 마르기 등을 기다리다 열이 뻗친다. 그래서 괜히 연인에게, 가족에게, 애꿎은 타인에게 화를 낸다. 내 기분도 망치고 남도 망치는 공해를 저지른다.

에릭 클랩튼의 경우처럼, 어떤 가치 있는 일들은 무용하고 따분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기다림 속에서 탄생한다.

전자레인지의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 1분 동안 세상을 흔들 시 한편이 나올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기다림과 좀 더 친해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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