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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휴가를 위해

등록일 2017-08-02 21:45 게재일 2017-08-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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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시간 소비가 비교적 자유로운 프리랜서라서 남들 일할 때 열심히 놀러 다녔다. 올해만 포항, 제주도, 부산, 거제도, 가거도, 러시아 이르쿠츠크 등지에서 재밌게 놀았다. 인제, 양양, 영월 같은 곳은 그냥 `슥` 다녀왔다. 글 써서 버는 돈은 고스란히 여행 경비가 됐다. 실컷 놀았는데도 휴가철이 되니 안달이 난다. 남들 놀 때 또 같이 놀고 싶다. 외로워서 그런다.

혼자 사는 집에 오면 나를 반기는 건 불 꺼진 어둠, 불을 켜봤자 아무도 보이지 않는 텅 빈 부재다. 그 고독감이 싫어서 자꾸 어디론가 떠나려 한다. 혼자 떠난 여행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지만 일상이 되어버린 익숙한 외로움보다는 차라리 낯선 곳이 낫다. 캄캄한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하면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정태춘 노래·`시인의 마을`)이라도 좋다. 여행은 낯선 감각들과의 조우, 일상에는 없는 상념과 번민을 가져보는 경험이다. 일상을 더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각성의 기회가 된다.

다 요설이다. 그냥 휴가철에 들떠서 놀러가고 싶은 거다. 어디로 가야 할까. 동남아 몇 개 나라와 일본 교토, 오키나와, 북해도 등을 두고 고민하다가 관뒀다. 성수기 물가가 몹시 비싼데다가 여행객이 너무 많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외로운 게 싫고, 바캉스 분위기에 젖고 싶다면서 사람 많은 곳으로는 발길이 향하지 않는 이중성 때문에 여행지 고르는 게 쉽지 않다. 적당히 북적이면서 또 적당히 한산한 곳, 혼자의 고독과 여럿의 어울림이 공존하는 그런 곳 어디 없을까.

제주도는 진작 포기했다. 숙소와 렌터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성수기보다 더한 `극성수기`라서 여행 경비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차라리 해외여행을 가는 게 합리적이다. 지난해 여름, 성산항에서 우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기 위한 거대 인파의 `엑소더스`에 몸이 끼인 일을 생각하면 겁이 난다. 고기국수 한 그릇 먹으려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짓을 또 할 수는 없다.

아직 휴가 계획을 못 세운 친구에게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우려 했던 `고슴도치섬` 부안 위도, 해상왕 장보고의 숨결이 물결치는 청정바다 건강의 섬 완도,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향수`의 고장 옥천, 섬진강과 장미, 매화의 고장이자 한국영화사 획기적 개성인 호러무비의 배경 곡성, 백석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평안도에서부터 수일 밤낮을 달려간 동양의 나폴리 통영, 그곳에 가면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영일만 친구가 버선발로 마중 나와 물회와 대게를 사줄 것만 같은 포항” 등을 추천했다. 동행할 경우 완벽한 가이드도 약속했다.

친구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여행 계획을 고민하다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특별한 곳에 가서 특별한 경험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 남들 다 하는 걸 나도 해야만 한다는 초조감이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져 결국 휴가를 망치게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겪었던 `나쁜 여행`들은 전부 특별함을 좇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평범해지고, 유행에 속하려다 내 취향을 잃어버린 경험들이었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남들이 작성한 블로그 여행기나 맛집 후기를 신봉하느라 내 취향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어디 가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우선 나는 접이식 테이블과 간이 의자, 쿨러백을 샀다. 이 계절에 읽으면 좋을 책과 평소 마시고 싶던 스파클링 와인도 마련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함께도 좋고 혼자도 좋다. 강가든 바다든 계곡이든 옥상이든 지하주차장이든 어디라도 가서 계곡물, 바닷물, 세숫대야에 발 담그고 책 읽으며 쉴 거다. 그게 가장 특별한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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