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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쿠츠크에서 영등포행 버스를 타다

등록일 2017-05-10 02:01 게재일 2017-05-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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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사전투표를 마치고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왔다. 바이칼 호수를 앞에 두고 울란우데와 마주보는, 러시아와 몽골 접경지대에 위치한 도시.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는 바이칼로 가는 기점이다. 여기서 승합차를 타고 네 시간 달리면 인류가 20년 동안 마셔도 그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세계 최대의 담수호에 닿을 수 있다.

낙후한 공항, 차가운 회색 밤하늘 아래 `IRKUTSK`라고 적힌 입구를 촬영하다가 키가 큰 여경에게 제지당했다. 입국심사대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반은 고려인, 반은 러시아인과 여행자들이었다. 러시아어와 영어, 한국어까지 3개 국어로 진행된 깐깐한 입국심사와 마약탐지견을 동원한 보안검색을 통과하느라 진이 빠졌다.

밤 10시, 현지 숙소 주인인 `닉`이 구형 현대차를 타고 마중왔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닉과 `스파시바` 밖에 모르는 나는 서로 말이 없었다. 시베리아의 봄추위에 익숙지 않을 나를 위해 히터를 틀어놔서 보드카를 마시기도 전에 온몸이 화끈거렸다. 나를 `poet`(시인)이라 소개했지만 알아듣지 못해 `코리안 푸시킨`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내리던 비가 그쳐 아침이 맑았다. 한국의 4월처럼 따뜻했다. 레닌 거리를 향해 걸었다. 교복 입은 초등학생들, 장신의 슬라브 미녀들, 나와 머리칼, 피부, 눈동자 색이 같은 고려인들이 눈에 띄었다. 한국어로 `터미널`, `자동문`, `영등포` 등이 적혀 있는 버스들이 달렸다. 노후 버스를 몽골 등에 수출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이르쿠츠크에서 영등포 행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이 한국 버스들의 매연이 지독하다. 90년대 한국을 누비던, 진작 폐차되었어야 할 차량들이다. 노란 테이프로 헤드라이트를 칭칭 감거나 범퍼가 박살난 채로 달리는 차들도 검은 연기를 뿜어댄다. 앙가라강 다리를 지나는데, 숨 쉴 수 없을 만큼 매연이 독했다. 끈적한 공기에서 나는 기름내, 오래된 목조건물들의 나무 냄새, 부서진 담벼락 시멘트 냄새 등 이르쿠츠크에선 내 유년을 채우던 온갖 나쁜 `도시의 냄새`들을 다 맡을 수 있었다.

카잔 성당으로 가는 길, 공장과 중고차 시장, 한국차 전용 공업사, 부탄가스와 초코파이를 쌓아둔 고려인 상점이 뜨문뜨문 위치한 외곽지대에 다 허물어져가는 목조주택들이 있다. 판자촌이다. 빈티지한 분위기가 좋아 사진을 찍는데, 사람 없는 폐가처럼 보이는 나뭇더미에서 아기를 업은 고려인 여자가 나와 빨래를 널었다. 나는 몹시 미안했고,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17만5천 명의 조선인들이 화물열차에 짐짝처럼 실려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버려졌다. 그중 1만 명이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80년 전 일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강한 생명력으로 황무지를 개척하고 공동 농장을 경영하는 등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 러시아 내 가장 영향력 있는 소수민족이 됐다. 지난해 러시아 총선에서 고려인 의원이 당선된 곳이 바로 이르쿠츠크다.

한국인들이 처음 연해주로 이민한 것은 1863년 철종 14년 때다. 곤궁함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 등에 정착했다.

철종은 조선사에서 가장 무능한 지도자로 꼽힌다. 19세에 즉위했는데 대왕대비 김씨의 수렴청정과 외척 안동 김씨 일가의 세도정치에 조종당했다. 여색에 빠져 병 걸려 죽었다. 민생은 파탄나고,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수렴청정과 세도정치, 익숙한 단어다. 나무판자집에서 빨래를 너는 고려인 여자를 보며 한국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마침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땐 당선인이 확정된 후다. 누가 되었든, 한국을 계속 살고픈 나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 `헬조선`에서 도망쳐도 살 길 막막했던 고려인들의 아픔이 재현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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