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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리네 민박`을 보며

등록일 2017-07-12 02:01 게재일 2017-07-1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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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효리네 민박`을 재밌게 보고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단 3회 방송했을 뿐인데 화제 몰이를 하는 중이다. 제목 그대로 이효리가 민박집을 운영하는 게 내용의 전부다. 부부가 살고 있는 제주도 집에 일반 여행객들이 와서 묵는다.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 그리고 종업원 아이유(이지은)가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카메라는 최대한 개입하지 않고 그 과정을 담아낸다. 그게 다다. `삼시세끼`와 `윤식당`도 같은 포맷을 공유한다. 시골에서 출연자들이 밥 세끼를 자급자족해서 차려 먹는 것이나 발리 해변에 한식당을 열어 외국인들에게 불고기와 라면을 파는 것, 그리고 연예인 부부의 집에 일반인 여행객들이 숙박하는 것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또 어딘가 닮아 있다. 단순함과 자연스러움, 편안함이 공통분모다. 그러면서 환상을 심어준다.

어느 시대든 인기 TV이 프로그램은 현실의 결핍과 대중 욕망을 꿰뚫는다. 방송 제작자들의 현실 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다. 국가부도 경제난에 허덕이며 이타적 정신이 실종되어 갈 때 `양심 냉장고` 같은 기획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다. 세기말의 혼란과 불안감은 그저 신나게 흔들고 놀면서 망각하자고 했다. 연예인들이 단체로 나와 춤추고 게임하며 노는 걸 보여주는 예능 프로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무더기로 쏟아졌다. 일회적이고 가벼운 만남을 선도하고 장려하는 미팅 프로그램도 여럿 등장했다.

십여 년 전에는 채널도 몇 개 없는데다 그 채널들이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매우 폭력적이고 남성적이었다. 예능 프로는 마치 직장 남성들의 2차 회식을 옮겨온 것 같았다.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논리가 아직 유효하던 때라서 그런지 방송도 치열하고 자극적이며 경쟁을 부추겼다. 떡 먹기 게임하다 출연자가 사망하고, 뜀틀 넘다가 다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방송에서마저 아등바등 부대끼며 몸부림치거나 또는 그 몸부림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쾌락적 유흥의 방식으로 예능 프로는 존재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경제발전 주역들이 퇴장하면서 기존의 치열하고 자극적인 포맷의 방송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 물론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대규모 육상 대회라든가 서로 쫓고 쫓기며 이름표 떼기 게임하는 프로그램이 아직 있지만, 인위적이거나 과도한 설정이 들어가면 시청자들은 외면한다. 교육과 사회제도에 끊임없이 간섭 받으며 기성 체제가 강요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지쳤기 때문일까. 개인에게 `특별함`을 요구하던 시대가 지긋지긋해진 까닭인지도 모른다.

별다른 목적 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프로그램 앞에 사람들은 모여 앉는다. 모니터 속 연예인의 일상을 `돈지랄` 이라든가 `서민 퍼포먼스`라고 아니꼽게 보지 않는다. `특별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개인의 자존감이 낮았던 시절이 아니다. 나와는 다른 방식의 삶으로, 다르지만 또 비슷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받아들인다. `잘 사는 삶`에 대한 획일화된 기준이 해체되면서 연예인이나 재벌 앞에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대중들에게 생겼다. 그 건강한 자존감 위에 `욜로(YOLO)`라든가 `혼밥` 문화가 서 있다. 방송을 통해 타인의 다양한 삶을 관찰하면서 내 욕망을 투영해보기도 하고,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

이른 아침 일어나 요가와 차로 심신을 다스리는 이효리의 모습은 참 편안해 보인다. `효리네 민박` 류의 프로그램에는 속도, 경쟁, 욕심, 고독이 없다. 출연자들은 느린 일상 속에서 자족하고, 비교하지 않으며, 이웃과 어울린다. 이룰 수 없는 환상을 심어 위화감을 준다는 비판도 있다. 평범함으로 가장한 특별함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눈꼴사납게 몸부림치지는 않는다. 설정이고 판타지일지언정 잠시나마 속도와 경쟁을 잊게 해준다. 기왕 `바보상자`라면, 치열한 세상에서 느린 삶의 미덕들을 꿈꾸게 하는 순박한 바보상자가 더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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