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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 들끓는 사회

등록일 2016-05-11 02:01 게재일 2016-05-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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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철<br /><br />시인
▲ 이병철 시인

지난 한 주간 세상이 시끄러웠다. 동거하던 선배를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후 열흘에 걸쳐 사체를 훼손해서 유기한 살인범 조성호 때문이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했는데 언론과 대중은 하나같이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경악했다. 그 반응들을 보면서 부디 더 많은 범죄자들의 얼굴이 공개돼 `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가장 끔찍한 악은 가장 선한 이웃의 얼굴로 다가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보며 깨우친 `악의 평범성`을 조성호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

악의 평범함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악의 천연덕스러움`이다. 조성호는 선배의 시체를 집 안에 둔 채로 SNS에 10년 뒤 인생계획과 `일하는 것에 감사하다. 일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는 내용의 글을 써 올렸다.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고 나서도 자신을 노출하고 광고하며 타인의 관심을 얻으려했던 것이다. 이만하면 중증 관심병 환자다. 타인으로부터 관심 받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를 요즘 `관심병`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SNS를 통해 잠시나마 망각하려 했을지 모른다.

사체를 유기한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과 데이트 약속을 잡았던 것도 관심병의 심각한 징후다. 그는 선배가 자신을 어리다고 무시해서 죽였다고 진술했다. 선배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아 살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인정받지 못하니 아예 인정의 공급자를 제거해버렸다. 이런 자가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를 향해 `묻지 마 칼부림`을 저지르고, 여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여자를 살해한다. 그 여성은 천만다행이다. 혹여나 데이트가 이뤄졌을 때, 조성호를 무시하거나 관심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이 한심한 살인범은 선배로부터 무시당해 위축된 자존감을 SNS 글 올리기, 여성과의 데이트로 회복하려 했다. 자기를 인정해줘야 할 선배를 자신이 제거해버렸으니 다른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정을 갈구한 것이다.

설령 완전범죄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내가 사람을 죽였다`며 거들먹거리다 검거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얼굴과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그토록 원하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되었으니 만족스럽겠다.

헤겔은 모든 사회적 갈등과 범죄의 심리적 원인은 인정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생겨나는 `인정 투쟁`의 결과라고 말했다.

시인 이성복은 `두고두고 창피한 것은 회사에 들어가 처음 만난 여자 앞에서 노동자들이 불쌍하다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 바 있다.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SNS의 존재원리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심 받고 싶어 하는데, SNS는 그 욕망을 사이에 두고 관음증과 노출증을 두루 키운다.

관심을 끌기 위해 별의별 허세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은밀한 부분까지 거리낌 없이 까 보이는 것도 병이지만 타인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것 또한 관심병이다. 조성호의 가족, 친척, 지인들까지 이미 다 추적당했다.

악플이나 근거 없는 소문내기, 허언증, 일부러 보편 정서에서 벗어난 삐딱한 말만 하기 따위가 모두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관심병자들의 애처로운 몸부림이다. 요지경 속 같이 해괴한 요즘 세상을 생각하면 별로 어려운 예언도 아닐 것이다. 살인마 조성호더러 잘생겼다느니, 훈남이라느니, 이상형이라느니, `용자`(용기 있는 자)라느니 하는 `같잖은` 소리들이 SNS와 포털 사이트 댓글창, 일부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나돌기 시작할 것이다.

괜히 헛소리 `지껄여서` 관심 한번 끌어보려는 자들의 덜떨어진 작태다. 그런 관심병자들에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속 권상우의 대사를 빌려 한마디 한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멋있어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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