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중에 가장 기분 나쁜 오지랖은 누군가가 내 취향에 대해 평가하고 간섭하는 일이다. 나는 취미로 낚시와 야구를 즐기는데, 그것도 오래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별의별 참견하는 소리들을 자주 듣곤 한다.
낚시의 경우, SNS에 물고기 사진 좀 작작 올리라는 것부터 “그만 좀 다녀라”라는 말까지 듣는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 취미 1위가 낚시라면서, 낚시하는 남자는 어디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고 목청 높인다. 자기 아버지나 남편이 낚시하는 꼴 보기 싫다고 해서 왜 나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 가면 술이나 마시거나 `다른 짓`을 하지 않느냐며 불쾌한 추측으로 내 취미를 제한하려는 사람도 있다.“진짜 재미없고 따분하던데 그걸 왜 해요?” 따위 질문에는 아예 대답하고 싶지도 않다.
야구는 낚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힐난을 덜 받는 편인데, 그래도 기분 나쁜 말들이 종종 들린다. 그게 운동이 되느냐는 조롱 섞인 질문부터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폼만 잡는다는 소리, 좀 더 나이 들면 골프로 갈아타라는 회유 등등 다양하다.
그런 말들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내가 가진 취향이 보편적이지 않아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는 것인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요리를 하든 와인을 마시든 인테리어를 하든 그들은 참견을 도무지 참지 않았다. 청승 떤다고, 허세를 부린다고, 과소비라고 하면서 말이다. 중고차를 사면 너한테 차가 무슨 필요냐고, 포즈 잡고 찍은 사진이라도 한 장 올리면 네가 연예인이냐고 한다. 내 취향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병적인 입방아가 문제다.
그렇게 저열하고 수준 낮은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슬프다. 그들에게 나는 햇반에 라면만 먹고, 밍밍한 국산 맥주와 소주만 마시고, 장판이 눌러 붙은 낡은 방에서 대충 자고, 평생 대중교통만 이용하고, 현상수배 포스터 같은 무표정한 사진만 찍어야 하는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나는 월세 원룸을 나만의 취향과 감각으로 꾸며서 생활하는 중이다. 최근 방 꾸미기가 유행하자 한 신문사에서 내 방을 취재해갔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은 “돈 아깝다”, “그러니 네가 월세 사는 거다”, “남의 집을 무엇 하러 꾸미냐” 같은 비난 일색이었다. 그때 이런 메모를 했다. “자가, 전세, 월세라는 계약 형태가 주거 내용마저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는 건 천박하기 그지없다. 공간은 곧 자기 자신인데,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옷은 왜 골라 입나? 집은 내밀한 취향의 장소로서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다. 내 집이면 가꾸고 전월세면 주어진 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취향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될 수 없다”라고.
17세기 프랑스 작가인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는 “행복은 취향에 있는 것이지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지, 다른 사람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생각이 비난 받을 때보다 취향이 비난 받을 때 자존심은 더 큰 상처를 입는다”라고도 했다. 남의 취향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이들에게 라 로슈푸코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무심코 남의 취향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오지랖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는지 알아야 한다.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듯 교제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한 라 로슈푸코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내 취향이 소중하듯 남의 취향도 소중하다. 혹시 나도 은연중에 타인의 취향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주제넘게 참견하려 들진 않았는지 돌아보면서, 지나친 관심은 폭력이므로 가만히 한발 물러서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