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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빅텐트 成事, 김문수 후보 역량에 달렸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일요일(11일) 경남 창녕 전통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치는 이익을 노리고 막 움직이다 보면 반드시 걸려 자빠지게 돼 있다. 어느 집단을 보니까 그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말을 인용했지만, 누가 들어도 국민의힘 후보 강제 교체 과정을 비웃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당 대선후보를 김문수 후보에서 한덕수 전 총리로 강제 교체하려던 시도를 당원들이 바로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이 후보 말대로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선주자로 확정된 김문수 후보가 당권을 잡자마자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당 이미지를 쇄신시킨 것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다. 가장 주목되는 인사는 초선의 김용태 의원을 당 대표 격인 비대위원장으로 지명하고, 자신에게 험악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권성동 원내대표를 유임시킨 것이다. 1990년생인 김 지명자는 당내 최연소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에도 참여했다. 지난 10일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는 7명의 비대위원 중 유일하게 한덕수 전 총리로 후보를 강제 교체하는 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당내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가 개혁·포용 인사로 난국 수습에 나선 모습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젊고 개혁적인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워 당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포용력 있는 인사를 통해 당내 화합을 도모한 것은 국민의힘 이미지를 전격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지금 국민의힘 중도층 외연 확장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공식선거운동 직전까지의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대세론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지금부터 김 후보가 전면에 나서 이 후보 대세론을 깨야 한다. 그러려면 최우선 선결과제가 이번 조기 대선의 원인을 제공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대선이 민주당의 전략인 ‘윤석열과 이재명’ 대결 구도로 이어지면 국민의힘은 필패한다. 김 후보가 더 넓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윤 전 대통령 울타리 속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했던 양향자 전 의원이 말했다시피, ‘후보자와 배우자만 빼고 다 바꾼다’는 심정으로 당과 자신을 새롭게 변신시켜야 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이낙연 전 총리 등과의 빅텐트 추진도 당의 외연확장 후에나 가능하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10일 대선 후보로 가장 먼저 등록을 하고 부동층 지지자를 흡수하기 위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지금으로선 이 후보가 자진해서 빅텐트에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단일화 테이블에 앉히려면 우선 김문수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오는 29일이면 21대 대선 사전투표가 진행된다. 사전 투표일 전에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빅텐트가 구축되려면 18일, 23일, 27일 예정된 3차례 TV토론 등을 통해 김 후보의 당선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수밖에 없다. /심충택 논설위원

2025-05-13

이제 대법원까지 손보겠다는 민주당

지난주 경북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김영수 교수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삼권분립이 위기에 처한다고 경고했다. 유력일간지 칼럼 등을 통해 이번 대선정국을 깊이있게 분석해온 김 교수는 “최근 끝난 민주당 경선결과(이재명 후보 89.77% 득표율)는 민주주의 경선으로 보기 어렵다. 제왕적 총재로 불린 김대중 전 대통령도 78.04%의 득표율에 그쳤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라는 절대 반지를 끼면 삼권분립이 위기에 처한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진단이다. 제22대 국회들어 192석을 차지한 야권은 입법권은 물론 공직자 탄핵이라는 수단을 통해 행정부까지 장악하면서 국정이 마비된 지는 오래됐다. 그런데 이제 대법원까지 겁박하며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들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일 대법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과 관련해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와 국정조사, 특검추진까지 거론했다. 민주당은 앞서 형사 피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와 관련된 형사재판을 중단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 무효형(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친민주당 성향 대법관을 다수 임명해 대법원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민주당은 국회·대통령·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하고 대통령이 최종 임명하게 돼 있는 헌법재판관에 대한 최종 승인권을 국회가 행사하겠다는 대선공약도 검토하고 있다. 이러니 “히틀러와 김정은 보다도 더 심각한, 집단광기 수준의 사법부 압박”이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민주당의 이러한 시도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수많은 법안을 강행 처리했지만, 대통령이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가지고 있어서 부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에 제동을 걸 수단이 없어진다. 대통령을 제외한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도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151명 이상) 찬성으로 가능해 민주당(170석) 단독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자제해 왔던 국무위원 줄탄핵도 재개했다. 지난 1일 심야에는 민주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추진하자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전격사퇴했다. 이로인해 대행 3순위인 이주호 사회부총리가 대선 관리와 경제·외교·안보를 도맡게 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된 것이다. 민주당은 그동안 입법권만으로도 사실상 국정을 마비시켰다. 30번의 탄핵안과 33번의 특검법을 남발했다. 이재명 후보가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국민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듯이, 결국 유권자가 6·3대선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은 국민이 입법·사법·행정 3부 장악을 허용했다고 간주하고 지금처럼 독주를 계속할 것이다. /심충택 논설위원

2025-05-06

‘계엄의 늪’속에서 이재명을 이길 수 있을까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지난 27일 대선 후보 경선에서 89.77%의 누적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6·3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득표율은 반올림하면 90%다. 진보대통령의 대명사 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새정치국민회의·77.53%)도 달성하지 못한 수치다. 민주 당원과 지지층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그만큼 똘똘 뭉쳤다는 방증이다. 국민의힘은 “조선 노동당에서 볼 수 있는 득표율”이라고 했지만, 이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이 후보가 얻은 표 중에는 진보지지층 뿐만 아니라 중도층까지 포함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경선에서 권리당원·대의원·재외국민선거인단과 국민선거인단 투표율을 50%씩 반영하는 룰을 적용했다. 국민선거인단 투표에서 ‘역선택 방지조항’을 적용하긴 했지만, 중도층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90% 득표율이 나올 수 없다. 지난해 8월 당 대표에 연임된 이 후보는 핵심 과제로 ‘중도 공략’을 내걸었다. 진보층이 천박한 욕망이라고 비난했던 ‘먹사니즘(먹고사는 게 최고 가치)’을 그는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했다. 그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후에는 통합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이 후보의 이러한 변신에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많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회를 장악한 이후 사실상 국정을 마비시켰다. 재계가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 등 셀 수 없는 많은 법안을 본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했다. 30번의 탄핵안과 33번의 특검법을 남발했다. 헌정사 초유의 감액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제 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통령실이 당권과 입법권에 이어 예산권까지 장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은 2028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재명 대세론 속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실상 대선출마 뜻을 밝히면서 각 당의 대선 구도에 변수가 생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한 대행은 개헌에 동의하는 세력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대국민선언을 하면서 국민의힘 대선후보,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이낙연 전 총리 등과 ‘반(反) 이재명 빅텐트’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이 이 빅텐트의 주축이 되려면 우선은 ‘계엄의 늪’에서 벗어나 미래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주에는 국민의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윤희숙 원장이 ‘당을 떡 주무르듯 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러한 패권적 행태를 방관하거나 지지한 친윤 그룹의 책임’을 지적한 당의 정강·정책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윤 원장의 지적처럼 국민의힘은 지금 계엄과 탄핵이라는 ‘윤석열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어떤 공약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태연하게 탄핵정국에 머무르면서 중도층 민심 흐름을 외면하다가는 지난 4·2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TK지역만의 승리’라는 성적표를 또 받게 된다. 재보선에서는 TK(김천시장)를 비롯해 PK(거제시장), 서울(구로구청장), 충청(아산시장), 호남(담양군수) 5곳에서 기초단체장 선거가 치러졌는데, 국민의힘은 TK에서만 이겼다. 이게 불과 한 달 전의 민심이다.

2025-04-29

‘탄핵의 늪’에 깊이 빠져드는 국힘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이 소환되면서 경선 분위기가 예민해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20여 일이 돼 가지만 여전히 탄핵의 늪에 빠져 적전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후보 대부분이 극성당원들의 표심을 자극해 1차 컷오프에서 살아남겠다는 궁리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유권자 눈에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인기투표를 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4강 경선도 이런 식으로 치러지면 누가 본선 후보가 되든 후유증 때문에 당이 단합해서 대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우리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국민의힘 경선후보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갤럽이 가장 최근(4월 2주차)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판결에 대해 69%가 ‘잘된 판결’이라고 했다. ‘잘못된 판결’이라고 답한 사람은 25%밖에 되지 않았다. 국민의힘 대다수 후보들은 지금 민심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헌재의 탄핵 인용에 비판적인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겠는가.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에서 계엄과 탄핵의 늪을 빠져나오지 못하면 1년 뒤 지방선거에서도 이기기 힘들다. 최근에는 탄핵 찬반을 둘러싼 내부 총질보다 더 황당한 일들이 당 외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윤 어게인(Yoon Again)’ 신당 추진 해프닝과 전광훈 목사 대선출마 선언이다. ‘윤 어게인 신당’은 윤 전 대통령 변호인단에 속한 김계리·배의철 변호사가 지난 17일 추진한 신당 이름이다. 윤 전 대통령의 만류로 하루 만에 취소되긴 했지만, 지난 토요일 윤 전 대통령이 사저 인근 식당에서 두 변호사와 함께 식사하는 사진이 김계리 변호사 SNS에 공개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윤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1호 참모이자 ‘찐윤’이라고 불렸던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조차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윤 전 대통령을 사지로 내모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20일에는 윤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를 주도했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도 대선판에 뛰어들었다. 대선출마 명분은 “윤 전 대통령을 자유통일당으로 모셔오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제일 반가운 보도”라고 했다. 이게 사분오열된 보수세력의 현주소다. 국민의힘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맞서서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 그러려면 경선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대립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인물이 본선에 진출해야 한다. 본선에선 중도층 민심이 판세를 좌우할 것이라는 사실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일찌감치 ‘중도·보수’를 표방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대구경북지역은 서울 다음으로 국민의힘 책임당원이 많은 지역이다. 이 지역 유권자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하느냐가 보수정당 미래를 결정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2025-04-22

보수진영 후보 낮은 지지율, 돌파구 있을까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가 14~15일 양일간 대선 경선 후보자 등록 신청을 마감함으로써 경선레이스가 본격화됐다. 당 선관위는 서류심사를 거쳐 오늘(16일) 중 1차경선 진출자를 발표한다. 당내 과반이 넘는 의원들로부터 경선참여를 요구받아온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예상대로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경선 ‘빅3’로 분류되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장관과 홍준표 전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모두 국정 공백을 우려하며 경선참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데다, 한 대행 본인도 14일 “국무위원들과 함께 제게 부여된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선거 출마 요구에 대해 선을 그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출마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공표하지는 않았다. 공직자의 최종 사퇴 시한이 5월 4일이어서 아직 시간적 여유는 있다. 관심사는 국민의힘이 경선과정에서 중도층 민심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경선 불출마로 국민의힘으로선 중도층 외연 확장이 벽에 부딪힌 상황이다. 두 사람 모두 국민의힘에겐 중도층을 품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이 경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의 영토를 중원으로 넓히기는커녕 점점 쪼그라드는 행태가 할 말을 잃게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국민의힘의 또다른 고민은 대선주자들이 10명에 육박하지만 대부분 한 자릿수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진 의원, 전직 당대표, 광역단체장 등이 대거 주자로 나섰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독주하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맞설 인물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가장 최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9∼11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6명대상)를 보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민주당 이 전 대표는 48.8%를 기록했다. 그간 범보수 진영 선호도 1위를 기록했던 김 전 장관은 10.9%, 처음으로 조사 대상에 포함된 한 대행은 8.6%, 한 전 대표는 6.2%, 홍 전 시장은 5.2%,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3.0%,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2.4%를 기록했다. 범보수 주자 전체 지지율을 합산해도 이 전 대표 지지율에 한참 못 미친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국민의힘 경선이 흥행하면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에 탄력이 붙겠지만 당내에선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일찌감치 예비후보 등록을 한 후 대구경북(TK)지역을 중심으로 열심히 득표활동을 하는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대선을 완주하고, 유 전 의원마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 보수지지층 표 분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보수·진보 양진영의 결집력이 강해, 당락이 근소한 표차이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막판 보수진영 후보들의 극적인 단일화(‘빅텐트’)가 성사되면 다행이지만, 만일 ‘다대일’ 구도로 본선이 치러지면 국민의힘 후보가 민주당 이 전 대표를 이길 확률은 아주 낮아진다. 보수진영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5-04-15

TK당원들의 선택이 국힘 미래 결정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이 6월 3일로 확정되면서 57일간의 조기 대선레이스가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한자릿수인 후보 13~15명이 난립하는데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아직도 심각해 대선전략을 두고 고민이 많다. 부자 돈 걱정하듯이, 이재명 대표의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론 확산을 우려하는 민주당과 대비된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대선주자 중 김문수 전 장관은 9%, 한동훈 전 대표 5%, 홍준표 대구시장 4%, 오세훈 서울시장 2%로, 4명을 모두 합해도 20%다. 민주당 이 대표(34%)에 비해 14%포인트나 낮다. 특히 중도층에선 보수진영 주자의 지지율 합계가 14%로 이 대표(38%)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게 갤럽 분석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7일 황우여 전 비대위원장을 당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하고 대선체제로 전환했다. 일각에선 지명도가 높은 주자들이 많아 경선 흥행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지만, 당내 분위기는 가라앉은 모습이다. 절대 강자가 없는데다 당 내분도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끊임없이 탄핵 찬반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친윤(윤석열)계 일각에서는 탄핵에 찬성했던 인사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경선에 나와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는 모양이다. 윤상현 의원은 지난 6일 의원총회 자리에서 당 차원의 탄핵반대 집회를 거부한 당 지도부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향후 당내 경선과정에서도 ‘탄핵 찬·반’이 주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민주당 이 대표가 가장 바라는 일이 지금 국민의힘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젠 자연인으로 돌아간 윤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도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일과 5일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을 관저에서 만났다. 조기대선 얘기도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6일엔 변호인을 통해 “늘 여러분 곁을 지키겠다”며 대국민 메시지도 냈다. 당연히 당 안팎에서 조기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박 전 대통령 사저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박심(朴心)’ 논란이 인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사저정치는 ‘배신자론’ 등장으로 당 내분을 가져올 뿐 아니라, 그의 탄핵에 찬성한 유권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당별 경선이 끝나고, 본선이 치러지게 되면 보수·진보 강성 지지층은 전에 없이 결집할 것이다. 역대 대선처럼 승패는 중도·무당층이 결정하게 된다. 국민의힘이 본선에서 승리하려면 우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 대립을 통합해 낼 수 있는 인물이 경선에서 승리해야 한다. 당내 경선 선거인단 수가 서울 다음으로 많은 TK지역 당원들의 선택이 보수정당 미래를 결정하는 주요변수가 될 것이다.

2025-04-08

오늘은 단체장·지방의원 재보선 투표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조기 대선 풍향계’로 인식됐던 4·2 재보궐 선거가 오늘 치러진다. 이번 선거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 조기 대선이 확정될 경우, 향후 민심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받아 왔다. 교육감과 기초단체장, 지방의원을 뽑는 미니 선거지만, 대선 직전 전국의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초단체장 선거의 경우 선거구가 TK(김천시장)를 비롯해 PK(거제시장), 서울(구로구청장), 충청(아산시장), 호남(담양군수) 지역에 하나씩 있어 관심을 더했다. 하지만 지난달 28~29일 실시된 사전투표결과 이번 재보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은 지극히 낮았다. TK지역의 경우 김천시장 재선거 사전투표는 전체 선거인 11만7704명 중 2만1592명이 참여해 18.34%의 투표율을 보였지만, 대구시의원을 뽑는 달서구 6선거구 (본리동, 송현1동, 송현2동, 본동)는 선거인 6만1632명 가운데 2113명이 투표, 투표율이 3.43%에 그쳤다. 고령군의원 나선거구(다산·성산)는 선거인 9969명 중 1687명이 사전 투표에 참여해 16.92%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보수·진보 양진영을 대표하는 후보들이 출마한 부산시교육감 재선거는 당초 전국적인 관심을 모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전투표율은 5.87%를 기록했다. 역대 교육감 보궐선거의 사전투표율 중 가장 낮은 수치다. 지역별 사전투표율은 서울 7.68%, 부산 5.87%, 대구 3.43%, 인천 16.38%, 대전 5.18%, 경기 7.61%, 충남 11.94%, 전남 25.81%, 경북 18.23%, 경남 14.34%였다. 이번 재보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떨어진 것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여야가 극한 충돌을 하고 있는데다, 영남지역 산불 피해가 확산되자 각 당이 선거운동 자제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김천시장 재선거 등에 후보를 냈지만 지도부 차원의 유세는 하지 않았다. 민주당도 야권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지도부 지원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최근 조국혁신당과 2파전이 벌어지는 전남 담양만 찾았다. 모든 선거가 중요하지만, 이번 재보선은 12·3 비상계엄 이후 유권자들의 첫 ‘정치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내외 도시 간 경쟁을 주도하면서 시민 삶의 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역량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단체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도시의 품격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방의원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지방의원들은 재선, 3선을 거치면서 국회의원 못지않은 전문가로 생활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 누군지를 잘 선택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출마자 정보 확인과 투표 참여는 필수적이다. 정책 등 선거공보는 선관위 누리집 정책·공약마당을, 재산이나 병역·학력·세금납부·전과기록 등은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을 확인해 보면 된다.

2025-04-01

‘尹 선고’ 후폭풍, 정치권이 도발하지 말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그저께(24일) 기각된 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일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법조계에서는 빠르면 이번 주 후반 선고가 가능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4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이 모두 금요일에 선고된 점과 선고 전후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하면 금요일인 28일 선고될 가능성이 크긴 하다. 그러나 헌재가 한 총리 선고 당일에도 평의를 열어 윤 대통령 사건을 논의한 점으로 미루어, 선고일이 기약 없이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 사건 선고가 미뤄지면서 우려되는 점은 보수·진보세력 간의 시위형태가 격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에서는 탄핵 찬반집회가 진지전(陣地戰)을 연상케 할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주 들어 헌재가 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며 광화문에 천막당사를 만들었다. 당 지도부가 여기에 상주하면서 헌재를 압박해 탄핵 인용 결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법원이 집회를 불허하긴 했지만, 전국농민회 총연맹 산하 ‘전봉준 투쟁단’은 트랙터와 트럭을 동원해 서울 시가지에서 시위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거칠어지고 있다. 여당 의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탄핵 기각·각하’ 집회에 직접 참석하고 있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한 중진 의원은 “반(反)국가 세력과의 전쟁 선포”라고 했고,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오는 모양이다. 여야 정치권 모두 격화하고 있는 진영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앞장서서 충돌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총리가 직무에 복귀하면서 정부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사실상 지금도 국정은 마비상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리더십을 상실한 여권은 정국을 수습할 역량이 없고, 야권은 거리집회와 탄핵공세를 강화하면서 경제·외교·안보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도발에 대처할 국군통수권도 실제 공백상태고, 금융시장은 연일 휘청거린다. 우리사회가 지금의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정치권이 냉정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대해 여야는 물론 국민이 모두 승복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헌재의 탄핵선고에 승복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앞선 탄핵심판 변론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에게 잘못이 없음을 항변했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전남 담양에서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섬뜩한 말로 들린다. 이러다 정말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경제안보 위기와 나라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한다면 이제라도 두 사람은 국민통합을 위해 헌재와 법원의 판단에 대한 승복 의사를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여야 의원들도 그간의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같은 테이블에 앉아 협상하는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헌재 선고 결과에 대한 불복을 정치권이 오히려 부추겨서야 되겠나.

2025-03-25

‘한국무시’하는 미국에 대응할 외교력 있나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우려했던 미국의 ‘한국무시’가 현실화 됐다. 아직 미국의 공식 발표가 나온 건 아니지만, 에너지부(DOE)가 산하 국책 연구기관에 다음 달 15일부터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분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일종의 기피국가로 낙인찍혔다는 사실을 정부도 몰랐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완벽한 외교참사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세계 각국에 관세폭탄을 던지는 미국은 이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까지 재협상 대상으로 삼을 태세여서, 우리정부 공직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작년까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에 포함된 25개 나라는 심각성이 높은 순서로 테러지원국가(북한, 이란 등), 위험국가(중국, 러시아 등), 기타 지정국가(한국, 대만 등)로 분류된다. 이 목록에 오른 나라 중에서 미국과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국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외교부는 지난 17일 밤 민감국가 지정에 대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지만, 미 행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지정 주체가 미 에너지부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3년 1월 국방부 업무보고 때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게 화근이 됐다는 말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이 발언은 당시 바이든 행정부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이 우방국인 이스라엘과 대만을 민감 국가로 지정한 이유도 핵 비확산 문제 때문이다. 미 에너지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민감국가 목록은 DOE 산하 정보방첩국이 관리한다. 민감국가 출신 연구자들은 DOE 관련 시설·기관에서 근무·연구하려면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다만 한국은 최하위 관리범주에 속해 제한이 크게 엄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외교가 이렇게 혼란한 상황인데도 정치권은 서로 남탓만 하고 있다. 민주당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초래했다고 공격했다. 이재명 대표는 17일 “민감국가 지정으로 인공지능, 원자력, 에너지 등 첨단 기술영역에서 한미연합과 공조가 제한될 것이 명백하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핵무장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에대해 “민주당이 국익, 미래가 걸린 외교까지도 정쟁 도구로 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 대표를 겨냥해 “이런 인물이 유력대권후보라 하니 민감국가로 지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정부의 대미외교 역량이다. 정부는 민감국가 지정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부랴부랴 상황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미국 에너지부가 밝힌 민감국가 적용 시한까지는 아직 한 달 남짓 남았다. 이번주 중 산업부장관이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는 일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전에라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정 경위를 명확히 파악하고, 한미간 동맹체제에 금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2025-03-18

尹 석방후 더 심각해지는 ‘이념전쟁’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석방된 후 온 나라가 두 동강 난듯하다.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가 임박하면서 여야 정치권이 노골적으로 보수·진보 ‘진지전(陣地戰)’을 진두지휘하는 모양새다. 아마 두 진영 모두 세력을 최대한 결집시켜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 정치권이 탄핵 선고에 대한 불복을 부추기고 있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여야의 진지전은 지난 10일 수사 기관에 대한 고발전으로 비화했다. 여당은 윤 대통령 구속 과정에서, 야당은 석방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각각 공수처장과 검찰총장을 고발했다. 앞으로 탄핵 찬반집회를 등에 업은 여야의 정쟁 수위는 매일 점입가경으로 치달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관저정치’도 진지전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실이 말로는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두고 대통령이 외부 활동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이 강경 보수층을 자극하는 메시지를 내놓거나, 탄핵 반대 집회에 직접 참석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생기면 가뜩이나 위험 수위로 치닫는 진지전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도가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도 진지전이 격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507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42.7%, 민주당 41.0%로 나타났다. 차기 대선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도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 의견(50.4%)과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 의견(44.0%)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구·경북(정권연장 55.4%, 정권교체 36.4%)의 경우 정권 연장론이 19%포인트나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문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진지전이 폭동수준으로 격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보수·진보 어느 한 쪽도 헌재의 심판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반발할 게 뻔하다. 만약 탄핵이 인용돼 조기대선 정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진영 대결은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갈 것이다. 지난 6일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 유형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념 갈등(4점 만점에 3.1점)이었다. 이 조사는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전에 이뤄졌다. 같은 조사를 지금 한다면 이념 갈등 수치는 훨씬 더 올라갈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지만, 국민 대부분이 걱정할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이 상태까지 이른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지금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지지세력에 편승해 내 편을 집결시키고 세를 불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이런 극단적인 당리당략이 완충장치 없이 가속하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이후의 한국사회 통합은 요원해질 수 있다. 국가미래를 참담하게 하는 정치권의 뼈저린 각성이 요구된다.

2025-03-11

‘감시사각지대’가 된 선거관리위원회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정치부기자 시절 대구지역 일부 선거구 총선후보자의 캠프를 출입하면서 일반인에겐 생소한 선거관리위원회의 파워가 엄청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각 선거캠프에서는 선관위직원을 저승사자처럼 두려워했다. 선거법이 워낙 까다롭고 복잡해 후보자 연설 발언이나 선거운동원 활동, 회계자료 체크 등을 조금만 소홀히 했다가는 페널티를 당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각 선거캠프는 보통 선관위 전담직원을 따로 뒀으며, 이 직원이 일일이 선관위에 질의한 후 선거자금을 쓰거나 선거운동을 했다. 선관위는 후보자의 선거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과태료 부과, 고발, 수사 의뢰 등을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주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고 결정함으로써, 선관위는 이제 외부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사각(死角)지대’가 됐다. 헌재는 “감사원 감사가 아니더라도 국회의 국정조사나 수사기관을 통해 외부통제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사실상 ‘갑’의 위치에 있는 선관위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국회 출입기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실제 선관위는 국회의 자료 요구에 비협조적이거나 잘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사기관도 고소·고발이 없는 한, 판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선관위를 조사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지난주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결과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를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가 최근 10년간 291차례에 걸친 직원채용 과정에서 878건의 규정위반을 했다. 간부자녀와 친인척 특혜채용을 비롯해 면접 점수를 직접 조작하는 비리도 드러났다고 한다.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의 경우, 지난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 연락 전용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감사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맡은 선관위 총 책임자가 감시대상인 정치인과 몰래 소통했다는 의혹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김 전 총장이 휴대폰 데이터를 복구불능상태로 만든 뒤 감사원에 제출했기 때문에 그가 어느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감시사각지대에서 선관위가 각종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민주당은 지난주 선관위를 감사원 직무감찰 범위에서 제외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헌재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법안이다. 헌재와 선관위, 민주당의 카르텔을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출신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국회 입법권을 독점한 민주당이 선관위 비리문제에 침묵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헌재의 판단으로 선관위 비리가 용인받는 것으로 호도된다면 그것은 국가에 위험하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선관위의 상상을 초월한 비리행태는 국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선관위가 앞으로 정파성이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선거관리를 하려면 외부견제장치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

2025-03-04

與, 자칫 ‘중도 확장’ 타이밍 놓칠라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이 심상찮다. 최근 보수층 결집도가 느슨해지면서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에서도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주말(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TK지역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50%, 민주당 22%로 나타났다. 여당 지지율이 우세하긴 하지만 갤럽의 그 전주 조사와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25%(75%→50%) 하락했고, 민주당은 8%(14%→22%) 상승했다. 보수안방의 ‘집토끼’가 부동층 또는 민주당 쪽으로 대거 이탈한 것이다. 이번 갤럽조사에서는 국민의힘에 대한 중도층의 민심변화도 확연하게 드러났다. 정당별 지지도는 국민의힘 34%, 민주당 40%로 집계됐지만, 중도층만 분석해 보면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20%p나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중도층 민심은 변동성이 크다고 하지만 충격적인 결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공통적으로 중도층은 비상계엄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만약 지금 대선이 치러진다면, 여당 후보의 승산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근 여당을 극우정당으로 몰아붙이며 중도보수를 겨냥해 펜스를 넓히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상속세 감면 정책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과세표준 18억원까지는 상속세를 면제해 웬만한 집 한 채 소유자가 사망해도 상속세 때문에 집을 팔고 떠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상속세에 민감한 청장년층을 비롯해 중도·보수표를 충분히 잠식할 수 있는 정책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에서 공약으로 내건 ‘감세 의제’를 통해 중도층 공략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몸은 좌파이면서 입으로만 보수를 외친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 이에 맞설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강성 지지층을 붙잡는데 당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 일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강성 지지층만으론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소수다. 지난주 본격적인 대선 출마 행보를 시작한 안철수 의원이 “강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어 이들과 단결하면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 수적으로는 30% 정도”라고 한 발언에 일리가 있다. 탄핵심판 최종 선고가 임박하자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지지세력을 규합하는데 올인하고 있는 당내 친윤계와 다수의 TK의원이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국민의힘은 하루빨리 조기 대선 국면에 대비해야 한다. 중도층 민심을 잡을 타이밍을 놓쳐선 안 된다. 그러려면 우선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계엄의 바다’를 건너지 않고는 외연확장에 한계가 있다.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은 침묵하면서도 국민의힘 행보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 당 지도부는 중도층을 공략할 구체적인 민생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꼭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야당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어줘선 안 된다.

2025-02-25

광주에서 연출된 ‘이데올로기 양극화’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지난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집회는 우리나라 보수·진보 이데올로기 전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5·18 현장인 금남로에서는 지난 15일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 반대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경찰은 기동대 버스로 차벽을 설치해 양측의 충돌을 막았다.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보수·진보 집회가 동시에 열린 일은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이 얼마나 극단적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행히 집회는 큰 사고없이 끝났지만, 정치인들의 무차별적인 언어공격은 섬뜩함을 느끼게 했다. 마디마디가 살벌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탄핵반대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전두환의 불법 계엄으로 계엄군 총칼에 수천 명이 죽고 다친 광주로 찾아가 불법 계엄 옹호 시위를 벌이는 그들이 사람인가”라며 탄핵반대 군중을 싸잡아 공격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계엄을 옹호한 극우 집회는 주력이 광주시민이 아닌 외지인 집회, 떴다방 버스 동원 집회”라고 했다. 민주당은 더 나아가 그저께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5·18을 왜곡, 폄훼하는 극우 사이비 세력에 대해 당 차원에서 법적(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위반혐의)인 조치를 할 것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탄핵 찬·반집회에 참석한 국민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나라를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런 군중을 싸잡아 “악마와 다를 게 무엇인가”라며 극단적인 비난을 하거나, 법적조치까지 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이념을 대표하는 도시인 대구와 광주는 해마다 GRDP(지역내 총생산)를 발표할 때면 나란히 꼴찌 성적표를 받으며 경제적인 소외의식을 공유해왔다. 이 때문에 행정기관끼리는 ‘달빛 동맹’을 맺어 우의도 다지고 수도권에 대해 투쟁도 하고 있다. 대구시장은 5·18 민주화운동 행사에, 광주시장은 2·28민주운동 행사에 매년 꼭꼭 참석하면서 양 도시의 정체성을 서로 존중해주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 탄핵사태를 맞아 정치권이 거친 언어를 남발하며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강성 지지층을 자극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정국이 점점 극단화로 치달으면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최근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전쟁은 일상화되는 추세다. 도심 주요교차로와 가로수는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치현수막으로 얼룩져 있다. 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상대편을 비방하는 내용이 주류여서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이런 식으로 정치권이 사생결단식의 이념대결을 펼치면 헌재가 대통령 탄핵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우리 사회는 견디기 어려운 후유증이 발생할 것이다. 정치권이 우리사회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은 자기와 이데올로기가 다른 상대까지도 감싸 안는 그런 정치인을 보고 싶어 한다.

2025-02-18

탄핵선고 서두르는 헌재…여야 大選 모드

심충택 논설위원 2030세대가 합류한 대규모 탄핵반대집회가 대구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헌법재판소(헌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헌재는 “재판일정과 진행방법은 재판관 모두가 참여하는 평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가 3월 선고를 미리 정해놓고 서두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헌재 재판은 이제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 예정돼 있는 마지막 변론 기일은 13일(8차)이다. 재판부가 추가 기일을 잡더라도 이르면 이달 말 변론이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변론 종결부터 선고까지 2주 정도 걸린 것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에 대한 선고기일은 3월 중에 잡힐 가능성이 크다.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선고 후 60일내에 조기대선이 치러진다. 빠르면 4월, 늦어도 5월중에 조기대선이 치러질 수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은 이미 조기대선 모드에 들어갔다. 여권은 “조기 대선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예비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탄핵이 인용될 경우 바로 후보경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예비주자로 거론된다. 오 시장과 홍 시장은 일찌감치 언론인터뷰나 SNS를 통해 지지층 세력화에 나섰고, 한 전 대표는 곧 정치 활동을 재개할 움직임이다. 그의 측근 인사들은 최근 ‘언더73’(1973년생 이하 정치인) 모임을 결성해 한 전 대표 지원에 나섰다. 이 모임에는 국민의힘 김예지·김상욱·김소희·진종오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야권은 본격적인 조기 대선 준비에 들어간 모양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민생회복과 경제성장을 강조하면서 사실상의 집권 청사진을 내놓았다. 최근 중도층 확장을 위해 성장담론을 피력하고 있는 이 대표는 야권에서 사실상의 일극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대표의 유력한 대항마로는 친문계 인사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꼽히는 정도다. 김 전 지사는 최근 복당하면서 “대선승리를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겠다”며 대선주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외에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이 대표를 겨냥한 견제구를 날리면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보수·진보 강성지지층을 제외한 중도층만 추려내 분석해보면, ‘정권 연장’보다 ‘정권 교체’ 여론이 높게 나온다. 정당 지지도에선 국민의힘이 상승추세에 있는 것은 맞지만, 이를 보편적 민심으로 보긴 어렵다. 만약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집회 군중들과 정당 지지도 상승에 들떠 우경화하는 모습을 보이다간 금세 역풍을 맞게 된다. 특히 여권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비상계엄 찬반’ 여부가 주요변수가 될 경우, 후보가 누가 되든 승산이 낮다. 국민의힘 예비 대선주자들이 강성지지층 결집보다 중도층 외연 확장에 총력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2025-02-11

‘유치원서 TOSEL 숙제’ 이게 사교육 현실

심충택 ​​​​​​논설위원 최근 TV채널을 돌리다가 ENA(연예 전문채널)가 방영하는 ‘내 아이의 사생활’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인기 연예인 부부의 아이들이 해외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내용이었다. 부모 품을 떠난 아이들이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여행하는 모습이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감탄하는 내 모습을 본 와이프는 ‘영어 유치원’ 얘기를 꺼냈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에서도 요즘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일찌감치 영어유치원에 보내 영어로 일상생활을 하는 언어습관을 들인다는 것이다. 영어 사교육 실상은 최근 EBS가 보도한 내용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상당수 MZ세대 맞벌이 부부들은 기저귀도 못 뗀 영유아기부터 영어 사교육을 시작하고 있으며, 월 사교육비가 평균 182만9000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 사교육비 금액은 지난해 한 국책연구기관이 만 2세와 3세, 5세 자녀를 둔 엄마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6세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낸다는 한 엄마는 EBS와의 인터뷰에서 “유치원에서 영어단어 테스트를 보고, 일주일에 한번씩 토셀(TOSEL) 숙제도 계속 나온다”고 했다. 유치원에서부터 토익과 토플 같은 유형의 영어능력 시험을 치른다는 얘기다. 자녀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빚내서라도 따라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요즘 젊은 부부들의 생각이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매년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자료는 아니지만, 지난 2023년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국내 초중고 학생의 79%가 사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 총액도 27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학생 수가 주는 데도 사교육비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2023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55만3000원으로 집계됐지만, 서울 강남구 교육 특구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평균 185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초중고 12년간 약 2억7000만원을 사교육에 쓴다는 계산이다. 초중고 자녀 2명(4인 가구 기준)의 사교육비가 가계 월평균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4%까지 늘어났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사교육 열풍은 중·고등학교 단계에서 심각한 양극화 현상으로 표출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서열구조가 자녀의 고교 서열구조(국제고-특목고-자사고-일반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BBC(영국방송공사)는 “한국은 중세 유럽의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 감소 상황에서도 사교육비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사교육문화가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 기록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부담은 젊은 부부들의 출산기피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사교육비 문제는 학벌주의와 과도한 입시경쟁이 주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극화, 공교육의 질적 수준과도 연결되는 구조적인 병리현상인 만큼 정부, 학교, 학부모, 학생 모두가 함께 해결책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2025-02-04

여전히 ‘권고’로 지방의회 길들이는 정부

지방의회가 출범한지 올해로 34년(1991년 개원)이 됐지만, 중앙정부는 아직도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것 같다. 법률이 아니라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지방의원들을 길들이려 하는 태도는 개원당시나 지금이나 똑같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시비를 거는 단골메뉴는 지방의원들의 국내외 연수 비용문제다. 언론에서 지방의원 해외연수와 관련해 혈세 낭비 또는 ‘셀프 출장심사’ 등의 부정사례를 보도하면,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브레이크를 거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최근 지방의원들의 해외출장 비용제한과 사전·사후관리를 위해 ‘지방의회 공무국외출장 규칙 표준’을 개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지방의회가 이를 준수할 것을 권고한다”고 했다. 말이 권고지 지키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이 다쳐 강제성이 다분하다. 주요 내용은 해외 출장 심사 및 절차를 강화한 것이다. 지금은 심사위원회(광역의회 9명 이상, 기초의회 7명 이상) 의결을 거친 출장계획서를 심사 후 3일 이내에 누리집에 게시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 출국 45일 이전에 출장계획서를 누리집에 올려 주민의견수렴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출장 후에도 심사위원회가 출장결과의 적법·적정성을 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항공과 숙박대행, 차량임차, 통역을 제외한 예산 지출은 전면금지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보는 “교육을 통해 지방의회에 올바른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삐딱한 생각’과는 달리, 지금 지방의원들은 해외연수가 필수적이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를 예로들면 지역 현안 해결과 입법, 정책대안을 발굴하는 수많은 의원연구단체가 있다. 연구성과를 위해서는 해외주요 도시 벤치마킹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구시의회에서는 사회문제해결연구회, 대구 희망포럼, 미래 발전 포럼, ED 포럼, 지역 혁신·성장 포럼, 희망정책 연구 포럼 등에 의원 대부분이 중복 가입해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경북도의회도 마찬가지다. 해수담수화시설 발전연구회, 저출생 대책연구회, 학교폭력 정책연구회 등 16개의 의원연구단체가 결성돼 수시로 세미나와 간담회를 연다. 현안에 대한 용역을 발주해 조례제정에 참고하기도 한다. 기초의원들의 공부의욕도 광역의원 못지 않다. 대구 수성구의회를 예로들면 미래지향적 도시숲 만들기 연구회, 책 읽는 의원 모임, 둘레길 연구회 등의 연구단체에 의원 모두가 참여해 도시발전에 대한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 대한 예산낭비 문제는 어제오늘 제기된 일은 아니지만, 지방정부가 아니라 중앙정부가 이를 통제하려 드는 것은 월권이다. 엄연히 지방자치법과 조례에 의해 운영되는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지침이나 권고를 통해 압박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을 무시하는 행위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침이나 권고는 상급기관이 업무처리의 편의성을 위해 하급기관에 내려 보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지방정부를 구성하는 양대 축인 지방의회를 중앙정부가 하급기관으로 여기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지방자치정신에도 어긋난다.

2025-01-21

개학 임박… 의대정원 논의 시급하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인구이동이 많은데다 호흡기질환이 유행하는 설연휴를 앞두고 ‘의료공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지금도 독감이 유행하면서 사망자가 늘어 장례식장을 구하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지금까지 의료시스템이 버티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명절 비상응급 대책을 꼼꼼하게 챙기겠다고 발표했지만, 환자를 둔 가족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최근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70%가 의정 갈등 탓에 스트레스나 피로감이 크다고 했다. 겨울철에는 특히 초응급환자(중증외상, 급성기 심근경색, 뇌경색 등 전문의 협진이 필요한 환자)가 많아 응급실이 정상 작동되지 않으면 사망자가 속출할 수 있다. 겨울에는 코와 기관지 점막의 방어 능력이 떨어지고, 폐나 기관지에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바이러스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한다. 최근 독감환자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도 상급의료기관의 비정상적인 응급실 운영이 원인일 수 있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의료위기가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련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돌아올 기미가 없다. 정부가 지난주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하자”며 손을 내밀었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랭하다. 정부가 언급한 원점협의는 2026학년도 의대정원(2000명 증원포함 5058명)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여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또 사직한 전공의(1만2187명)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수련 특례’와 ‘입영연기’ 조치도 하겠다고 했다. 정부방침에 대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2026학년도부터는 의대정원을 기존(3058명)보다 더 줄이거나 아예 신입생을 뽑지 말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충분히 고려해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의정갈등 해소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공백 상태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을 경우, 의료시스템 붕괴는 시간문제다. 지난주 치러진 제89회 의사국시 필기시험에는 모두 285명이 응시했다. 응시자 전원이 합격한다 해도 올해 신규 의사 수가 300명을 넘지 않는다. 지난해 의사국시에는 3천231명이 응시해 3천45명이 합격했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수련병원에서는 전문의들의 사직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3~10월 전국 수련병원 88곳에서 사직한 전문의는 1729명으로, 전공의 이탈 이전인 2023년 같은 기간 사직한 865명에 비해 약 2배 증가했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가중된 진료부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외래·입원 환자 진료가 대폭 줄어들면서 수련병원의 경영난도 심각하다. 2025학년도 개학이 코앞에 다가온 만큼 의대정원에 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2026학년도에 또 2000명 증원되는 것으로 도장이 찍혀버릴 수 있다. 시급성 등을 고려하면 하루빨리 의료계는 정부와 대화 테이블에 앉아 의정갈등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2025-01-14

국정 혼란… ‘경주APEC’ 준비는 잘 되나

심충택 논설위원 정치 불안으로 국가 신인도와 위상이 끝없이 추락해 올가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주 SNS를 통해 APEC 회원국에 ‘여야정 공동사절단’과 최태원 회장(CEO서밋의장)을 파견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정치적 혼란에 대한 각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키자는 취지다. 정부는 관례대로 오는 5~6월 중 APEC 각국 정상과 기업인을 대상으로 초청장을 보낼 예정이다. 초청장은 한국 대통령 명의로 발송되지만, 현재로서는 누구 이름으로 보내게 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을 당시에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정부가 회의준비를 철저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연말 국무총리와 경제 6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도 한 대행은 “의장국 수임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의장국 활동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역내 다양한 협력 의제를 주도하는 역량을 갖췄음을 보여주는 국격 성장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연말부터는 한 대행의 직무가 정지되고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외교부가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우리나라가 의장국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1인 3역(대통령, 국무총리, 장관)을 해야 하는 최 대행이 경주 APEC회의에 얼마나 신경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주 APEC 회의는 이미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다. APEC 고위관리회의(SOM)를 준비하는 비공식회의가 지난달 서울에서 21개 회원국 관계자가 모두 참석한 가운데 이미 열렸다. 정부는 앞으로 2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3회의 고위관리회의를 비롯해 분야별 장관회의 10여 회, 산하 4개 위원회 및 40여 개 실무작업반 회의를 가진다. APEC 고위관리회의는 21개국 정상들이 논의할 의제를 결정하는 기구다. 경북도는 다음달 24일부터 3월 9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제1차 고위관리회의를 앞두고 어제(7일) 입출국과 수송, 관광 지원을 맡을 자원봉사자 신청을 마감한 상태다. 경북도는 APEC 회원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도 일정 인원 선발해, 한국과 회원국 간 가교역할을 맡길 계획이다. 경주 APEC 회의의 성공 여부는 주요국 정상들이 얼마나 참석하느냐에 달렸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참석 여부가 최우선 관심사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우, 대통령 재임당시 세 차례의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됐는데, 이 중 부통령을 참석시킨 경우를 제외하고는 두 차례 참석했었다. 시진핑 주석은 최근 10년간 개최된 APEC 정상회의에 모두 참석했다. 중국은 차년도 APEC 의장국이기도 해 참석 가능성이 크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때문에 지난 2022년부터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이철우 지사가 제안한 것처럼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정혼란을 수습해서, 경주APEC 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총력을 쏟아주길 바란다.

2025-01-07

윤석열·한동훈 갈등의 비극적 결말

심충택 논설위원 점입가경으로 치닫던 윤석열·한동훈 갈등이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일으킨 윤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실이 아니라 관저에서 변호인단과 탄핵심판에 대비하는 신세가 됐다.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공조수사본부는 그에게 내란·직권남용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오늘 오전까지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공수처 청사에 와서 조사를 받으라는 독촉이다. 공조본은 경찰청, 공수처, 국방부 수사기관이 모인 협의체다. 공조본에 빠진 검찰도 그에게 서울중앙지검으로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계속 불응했다간,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6일 사퇴했다. 그는 이날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탄핵이 아닌 이 나라의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당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의 사퇴다. 지난연말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끊이지 않았던 ‘윤·한 갈등’이 결국 ‘탄핵소추’와 ‘실각’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두 사람은 검사 시절 막역한 사이로 소문나 있다. 서울대 법대 선후배 관계이며, 검찰에서도 ‘특수통’ 선후배로서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 출범 이후 한 대표는 정권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두 사람간의 마찰은 한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발단은 김건희 여사 문제였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직후, 한 대표가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입장표명을 해야한다”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그 후 해병대원 사건 외압 의혹,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 이슈,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문제 등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악화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두 사람 간 충돌을 진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계파를 형성해 싸움을 부추겼다. 지난 7월 전당대회 때는 한동훈 후보 공격을 사주한 정황이 담긴 대통령실 김대남 행정관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갈등이 깊어졌다. 그 후에도 윤 대통령의 한 대표 패싱논란 등 두 사람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악재가 속출했고,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두 사람 간 충돌은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후 폭발했다.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 직전 한 대표가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히고 대통령 출당을 추진하자, 친윤계는 한 대표를 향한 사퇴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결국 친한계를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전원 사퇴로 ‘한동훈 지도부’는 붕괴됐다. 한솥밥을 먹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불신과 반목은 결국 당을 사분오열시켰다. 리얼미터가 지난주(12∼13일)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결과 민주당은 52.4%, 국민의힘은 25.7%를 기록했다. 양당 간 지지도 격차가 26.7% 포인트나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내분을 수습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다면 군소정당으로 추락할 수 있다. 조속히 당내부를 정비하고 당의 정체성을 확보해 여당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2024-12-17

‘尹의 거취’ 초읽기…하야냐, 탄핵이냐

심충택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 신세다. 비상계엄선포 수사당국이 그를 내란혐의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도 했다.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긴급체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되고 내란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야는 ‘자진하야’와 ‘탄핵’으로 그를 압박하고 있다. 가장 빨리 차기 대선을 치르는 경우의 수는 여당안대로 윤 대통령이 조기에 자진하야 하는 것이다. 국회가 윤 대통령의 사직서를 접수하는 즉시 사임이 공식화되고, 그 뒤로 60일 내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여당 일각에선 임기 단축 개헌을 통한 퇴진론도 나오고 있지만, 헌법에서 별도로 명시해 놓은 관련 규정이 없어 실현성이 낮다. 민주당은 그의 대통령직 유지에 “6초도 위험하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한다. 범야권 요구대로 윤 대통령이 탄핵당할 경우, 직무는 즉시 정지되지만 헌법재판소가 파면결정을 해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 대선은 파면된 날부터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헌재가 탄핵심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기간은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하게 되면 윤 대통령은 국정에 복귀한다. 국민의힘은 가능한 한 윤 대통령의 퇴진시점을 늦추고 싶을 것이다. 대선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확정 판결 이후에 치러지는 것이 가장 유리한 탓이다. 그러나 탄핵을 요구하는 거센 민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국민은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분노하고 있다. 친윤·친한 계파로 쪼개진 국민의힘으로선 탄핵을 요구하는 야당공세를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장외집회’와 ‘검경 수사’가 윤 대통령 운명 결정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탄핵찬성 인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촛불시위 규모로 커지면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여당 내에서 탄핵찬성 쪽으로 의사결정을 바꾸는 의원이 다수 나올 수 있다. 계엄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어떤 증거나 증언, 정황이 나올지도 관건이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당국은 윤 대통령 입건과 함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에 대해 내란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곽종근 특전사령관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국군방첩사령부를 압수해 계엄당시 관련자료도 확보했다. 만약 수사과정에서 민심을 뒤흔들 내란죄 증거 또는 증언이 나오게 되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긴급체포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포스트 계엄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지금 국정은 사실상 마비상태다. 국가적 혼란이 일주일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여권은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야권은 탄핵공세를 강화하면서 경제·외교·안보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도발에 대처할 국군통수권이 실제 공백상태고, 금융시장은 연일 휘청거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내년 1월 20일)을 40여 일 앞두고 정상외교도 올스톱됐다. 대한민국이 국정 공백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24-12-10